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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5/17 20:20:13
Name Eternity
Subject [일반] [토론] 개인의 욕망 추구와 타인의 피해 사이의 충돌에 관하여
우선 토론 주제의 발단이 된 제 글부터 링크하겠습니다.

https://ppt21.com/?b=8&n=51766
([책 리뷰] 욕망해도 괜찮아 – 나는 지금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가)



주제는 간단합니다.

[개인의 욕망의 추구와 타인의 피해가 충돌할 때, 개인의 욕망의 추구(행복 추구)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입니다.

단, 여기서 [합법, 비범죄의 테두리 안에서] 라는 중요한 전제 조건이 한 가지 붙습니다. 개인의 욕망 실현과 행복 추구를 목적으로 한 불법과 범죄는 당연히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 이 논의의 전제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복잡한 이유는 이러한 '개인의 욕망과 타인의 피해'의 충돌 형태와 종류가 수도 없이 많다는 데에 있을 것입니다. 당장 몇 가지 예를 들어볼게요.

1. 음악소리를 크게 틀고 싶은 나와 그 소리에 스트레스 받는 이웃과의 층간소음 문제
2. 여자친구와 다른 여자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싶은 나와 그로 인해 상처받을 여자친구의 문제
3. 헤어진 옛 애인을 붙잡고 싶은 나와 그러한 나의 행동으로 인해 스트레스받고 괴로움을 느끼는 옛애인의 문제
4. 남편과의 성격 차이로 이혼을 고민하는 나와 이 이혼으로 인해 상처받을 자식들의 문제
5. 평생 독신으로 지내고 싶은 나와 이런 독신 결정으로 인해 상처 받은 부모님의 문제

1번만 해도 의견의 거의 갈리지가 않을 것이고, 2,3,4번의 경우는 약간씩 의견이 갈릴 수 있고 5번의 경우는 다시 의견의 거의 갈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렇게 놓고 보면 케이스 바이 케이스의 문제이기도 한데,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욕망과 타인의 피해의 문제’를 종류별로 나눠서 ‘여기까지는 개인의 욕망 win, 여기서 부터는 타인의 피해 win’ 하기도 어려운 노릇이다보니 큰 틀에서 고민하게 되더군요.




어쨌든 우선 이에 대한 [욕망해도 괜찮아]에 수록된 저자 김두식 교수 개인의 의견부터 소개하겠습니다. 책의 내용을 발췌해볼게요.

[경계선 넓히기를 얘기하다보면 “자기 욕망과 한계를 인정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선을 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희생자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중요한 문제죠. 최근 『착한 사람도 바람난다』(미라 커센바움 지음, 김정민 옮김 라이프맵 2011)라는 묘한 제목의 책이 번역됐습니다. ‘바람’의 문제를 연구하면서 본능에 충실하라든지, 가정의 품으로 돌아오라든지 하는 획일적 결론을 제시하지 않고, 대차대조표를 만들어서 배우자와 애인 두 사람 중 누구와 사는 게 행복한지 차분하게 분석하라고 조언하는 흥미로운 책입니다. 사실 이혼을 생각하는 부부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는 자녀의 행복입니다. 이혼은 자녀의 행복을 완전히 무너뜨린다는 게 사회통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부모들이 매일 다투면서 끔찍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보고 자라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혼한 한부모와 안정된 가정을 이루는 편이 나을 수 있다는 거죠.···(중략)···아이들을 보호하려고 부모가 희생하는 게 좋은 것 같지만, 자칫 애도 죽이고 어른도 죽을 수 있습니다.

물론 자기 행복을 위해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문제는 있죠. 그러나 비행기 사고가 났을 때는 자기가 먼저 산소호흡기를 입에 댄 다음 옆사람을 씌워주는 게 원칙입니다. 옆사람을 살린다고 우선권을 넘겨줬다가는 자기도 죽고 남도 죽습니다. 남편에게 맞고 살면서도 자기 삶을 희생하면서 아들을 붙잡고 “너만이 나의 희망”이라고 말한다면, 그게 오히려 아들에게 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일단은 내 행복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어쨌든 저는 제 삶이 우리 사회의 경계선을 넓히는 도구로 쓰였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이 책도 그렇고, 제가 진행하는 인터뷰도 그렇고, 너무 규범에 갇히지 말고 살살 놀면서 살자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p.291~293)




여기까지가 저자의 의견이고 이제 제 의견을 말씀드리면, 저는 사실 저자와 비슷한 의견입니다. 물론 결론은 케바케일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개인의 욕망 추구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우선시되어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겠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을 거구요. 하지만 누군가 제게 [그러니까 다 집어치우고, 그래서 개인의 욕망(행복) 추구랑 타인의 피해 가운데 어느 게 더 우선한다고 생각해?]라고 거칠게 묻는다면, 저는 [개인의 욕망의 실현, 즉 행복 추구가 더 우선한다]고 거칠게 대답하겠습니다. 다만 그 욕망이 [꼭 이루어야할 중요한 욕망]임을 전제로 합니다.

사실 타인에게 피해가 없다면, 꼭 이루어야할 욕망이든, 그렇지 않은 욕망이든 그냥 추구하면 그만입니다. 문제는 내가 추구하는 욕망과 행복이 타인에게 피해를 미칠 때인데, 그때에도 저는 본인의 삶에 꼭 필요하고, 자신이 이루지 못하면 평생 후회하고 불행해질, 꼭 이뤄야만 하는 욕망이라면 과감히 추구하는 게 옳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로 인한 타인의 불행을 걱정하기 이전에, 내가 먼저 살고 봐야한다고 봐요. 다만, 꼭 이루지 않아도 되는, 이른바 이루면 좋고 안 이뤄도 그만인 가벼운 욕망이라면 그로 인한 타인의 피해와 비교 형량(?)해서 결정해야한다고 보는 입장이구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합법 및 비범죄의 테두리 안에서 일 경우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타인의 행복과 불행을 염려하며 자신의 중요한 욕망마저 죽인 채 희생하며 사는 것이 과연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오히려 인생을 살다보면 지나치게 타인을 배려하며 본인의 욕망과 행복을 포기하고 희생하는 것이 나중에는 서로에게 독이 되는 비극의 양상을 심심치 않게 목격합니다. 위에서 김두식 교수가 예를 든 가정폭력 부부의 이혼의 문제도 그 한 예일 것이구요.

그래서 저는 자신이 꼭 이뤄야만 하는, 그렇지 않으면 삶 자체가 불행해지는 욕망이라면 과감히 추구하는 것이 맞다고 보고 대신 그에 따르는 책임은 당연히 본인이 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헤어진 옛애인을 붙잡지 않고서는 죽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고, 그녀를 붙잡지 않고는 어떻게 살 방법이 없다면 과감히 붙잡아야죠. (물론 그 행동이 스토킹 같은 범죄로까지 나아가지 않는 선에서 말이죠.) 지금 내가 죽게 생겼는데 그녀가 받을 부담과 괴로움까지 배려하라는 것은 남자에겐 분명 가혹한 처사일 것입니다. 결국 그 붙잡음으로 인해 그녀에게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쌍욕을 먹거나 하는 것은 순전히 본인이 감당할 책임인 것이고요. (반대로 그녀를 붙잡으면 좋지만 놓쳐도 그만이라는 가벼운 생각이면 굳이 욕망에 충실할 필요가 없겠죠.) 결국 남들에게는 별거 아닌 하찮은 욕망일지라도 내게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욕망이라면 전 과감히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이 맞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오히려 저는 "여기까지는 개인의 행복 추구가 우선이고, 여기서부터는 타인을 향한 배려가 우선이야."라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거나, 이러한 문제에 대해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협의를 통한 기준선을 만들어 내는 것 자체가 더 어렵다고 봐요. 모든 사람마다 개개인이 느끼는 기준선은 전부 다를 테니까요. 결국 이것은 사회적 합의 측면에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시선, 개인의 욕망의 차원에서 접근해야할 문제라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적어놓고도 뭔가 기분이 개운치가 않습니다. 오히려 찜찜해요. 제 논리에도 무언가 허점이 많고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는 걸 어림짐작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 그래서 이 글을 올리는 것이기도 하구요. 많은 분들에게 논리적으로 탈탈 털리더라도-_-결국 많은 토론과 논의를 통해 새롭게 깨닫게 되는 부분과 배울 점이 분명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정답이 없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의 문제일 수 있다는 점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논의해볼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봐요.

이제 정리하겠습니다.

[개인의 욕망의 추구와 타인의 피해가 충돌할 때, 개인의 욕망의 추구(행복 추구)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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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17 20:24
수정 아이콘
야구에서 무사 주자 1루에 보내기 번트를 댈거냐 강공을 갈거냐 가지고 정답을 내려고 하는거랑 비슷하다 봅니다. 그냥 그때 가봐야지 알 수 있겠죠.
Eternity
14/05/17 20:25
수정 아이콘
그쵸, 정답이 없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 라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궁금하더라구요.
결국 논의의 핵심은 누군가 우리에게
[그러니까 다 집어치우고, 그래서 개인의 욕망(행복) 추구랑 타인의 피해 가운데 어느 게 더 우선한다고 생각해?]
라고 거칠게 물을 때 나라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구요.
ElleNoeR
14/05/17 20:45
수정 아이콘
최근에 개인적으로 고민을 많이 하던 주제네요.
각 개인마다 단어의 정의에 있어서 정도가 다르겠지만 제가 내린 결론은
"내가 편하고자 남을 불편하게 하지마라."
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Eternity
14/05/17 20:54
수정 아이콘
결론만 놓고 보자면 저와 반대의 포지션이시네요.
저도 요즘들어 고민이 많던 주제라서 다른 분들의 의견이 궁금해서 글을 올려봤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다리기
14/05/18 09:38
수정 아이콘
남 편하게 해주려고 내가 불편하게 되지말자

전 이쪽으로 결론을 내린 편인데 완전히 반대되는 의견이라 재밌네요 크크
몽키.D.루피
14/05/17 20:52
수정 아이콘
욕망이란 애초에 이룰 수 없는 꿈이죠. 욕망해도 괜찮다는 말 자체가 모순입니다. 인류 역사상 언제 욕망대로 살다간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습니까. 욕망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나요? 어쩌면 욕망이라는 건 말그대로 내면의 관념적, 가상의 문제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규범이 일종의 매트릭스라면 욕망도 매트릭스죠. 욕밍아웃을 한다고해서 그게 진정한 자기자신일 거라는 생각도 착각이라는 겁니다.

전 오히려 불안해도 괜찮아라고 이야기하고 싶네요. 욕망과 규범 사이에서의 불안감, 이게 인간의 본질이죠. 인간은 원래 갈팡질팡하고 하나의 정답만으로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때로는 색을 때로는 계를 선택하면서 뭐가 진짜일까 고민하는 존재죠. 하지만 그 고민이 우리 공동체를 건강하게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좀 더 성숙한 삶을 향해 나아가게 합니다. 그런 고민도 없이 색만 선택하는 삶이나 계를 선택하는 삶이나 다 맹목적이고 불행한 삶이 되겠죠. 그러한 고민이 끊기는 순간 가스통할배가 될 수도 있고 사이비 종교인이 될수도 있고 일부리거가 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토론과 고민은 일맥상통한다고 봅니다. 고민은 개인의 내면 속에서의 토론이거든요. 고민이 공동체로 확장되면 토론이 되는 겁니다. 자기자신의 고민이 깊으면 깊을 수록 현명한 판단을 내리듯이 공동체의 토론은 권장되어야하고 치열한 토론과 공동체의 고민의 과정속에서 올바른 합의가 나온다고 봅니다.

말이 딴데로 많이 샜는데... 어쨌든 제 생각은 욕망 또한 가상의 자신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욕망도 믿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주의해야할 건 욕망이든 규범이든 거기에 맹목적인가.. 라는 점이죠. 내가 맹목적으로 욕망을 추구할때 상대방에게는 피해 정도가 아니라 폭력이 됩니다. 하지만 맹목적이지 않는다면 상대방에게 굳이 피해까지 주면서 추구해야할 욕망이 과연 있을까 싶네요.
Eternity
14/05/17 21:08
수정 아이콘
우선 댓글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내용에 대한 제 의견은 저는 굳이 '욕망'이라는 단어 그 자체의 본질(?)에 천착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욕망이란 꿈일 수도 있고, 자신의 감정일수도 있고, 목표일수도 있고, 행복일수도 있고 여러가지로 변주가 가능한 것이라고 여겨지고
(사실 [감정수업]을 읽고나서 바로 글을 썼다면 '욕망의 추구'란 표현 대신에 개인의 '감정의 표출'이라고 적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결국은 (적어도 이 글에서는) '욕망'과 '행복'은 동의어입니다.
원래라면 욕망과 행복은 다른 개념이긴 하지만, 어쨌든 윗 글에선 욕망의 추구, 즉 자신의 행복 추구와 타인의 피해 간의 문제이죠.
그렇기에 욕망이란 애초에 이룰 수 없는 꿈이란 말씀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당장 이혼을 하고 싶은 것, 헤어진 여자친구를 붙잡고 싶은 것, 목표하는 직업을 갖고 싶은 것도 실현 가능한 욕망의 추구이자 본인의 행복 추구인 거죠.

논의가 확장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지엽적인 문제를 하나 여쭤보면,
위에서 예시를 든 문제 가운데 [헤어진 옛 애인을 붙잡고 싶은 나와 그러한 나의 행동으로 인해 스트레스받고 괴로움을 느끼는 옛애인의 문제][개인의 자유로운 감정 표출과 그로 인해 상처받는 타인의 문제]에 관한 몽키.D.루피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p.s [감정수업]을 읽고나서도 비슷한 고민이 들었는데
자신의 감정에 대한 인식과 자유로운 표출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강신주는 얘기하는데, 여기서도 의문점이 들더군요.
개인의 감정 표출과 상대방의 피해(상처)가 상충되는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욕망 이라는 단어 그 자체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게 제 의견입니다.
포포탄
14/05/17 20:55
수정 아이콘
사실 이문제는 정치학 최대, 최고(오래된)의 이슈죠. 이를 통해 각종 사상의 분화가 일어나기도 했구요.
더 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만, 하필 1박으로 세미나를 하는 날이라 참여 못 하는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Eternity
14/05/17 21:09
수정 아이콘
아 그런가요? 사실 저는 그전까지 이런 고민을 못하고 있다가
요즘 [감정수업], [욕망해도 괜찮아]를 연이어서 읽다보니 새롭게 든 의문이라서요.
오래된 이슈인지는 몰랐네요 흐흐
14/05/17 21:34
수정 아이콘
음.. 원하시는 대답은 아닐거라 생각되지만 애초에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주제라는 생각은 듭니다.
말씀하신 질문에 어느쪽의 입장을 취하던 절대적일 수 없고 상대적인 요소가 포함될 수 밖에 없다고 보거든요.
그럼에도 굳이 고르자면 전 개인의 욕망쪽을 택할 것 같습니다.
전반적인 입장역시 Eternity님과 비슷하지만 다른점은 욕망에 대한 전제에서 [꼭 이루어야할 중요한] 보다는
[책임질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Eternity
14/05/17 21:48
수정 아이콘
우선 댓글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꼭 이루어야할 중요한] 보다는 [책임질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라고 하신 부분도 어느정도 공감이 갑니다.
다만 제가 [꼭 이루어야할 중요한]에 방점을 찍은 이유는,
타인에게 피해를 가한 순간부터 이미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영역을 떠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예를 들어, 헤어진 옛 애인을 붙잡는다고 했을 때, 그녀가 느낄 스트레스와 괴로움을 내가 어떻게 책임질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이미 그 순간, 그 결정부터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영역으로 몸을 던지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결국 '책임질 수 있는지' 여부가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어떻게보면 불가능한(?) 그런 전제조건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쨌든, 정돈되지 않은 거친 발제문과 거친 질문에 솔직하게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4/05/17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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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부분은 분명 맞다고 생각합니다. 대개 타인의 피해를 책임질 수 없는 경우가 많긴 하죠.
다만 제 의도를 말씀드리는 부분에 약간 오해가 있던 것 같은데 저는 타인의 피해를 책임진다기 보다는
욕망의 결과에 따라 본인에게 돌아오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말한 것입니다.
단순하게는 비난,죄책감,후회 등이 있겠죠.

예들들어, 말씀하신 헤어진 옛 애인의 경우 만약 그녀가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됐다면
그녀의 스트레스를 어떻게 책임져 주는 그런 게 아닌,
더욱 악화된 그녀와의 사이를 받아들일 책임을 말한 것입니다.
(꼭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한정지을 필요는 없겠고요.)
굳이 둘 중에서 개인의 욕망을 택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포커스를 개인쪽으로 둔 이유에서이기도 합니다.
Eternity
14/05/18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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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저도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본문 내용을 발췌해보면,

[저는 자신이 꼭 이뤄야만 하는, 그렇지 않으면 삶 자체가 불행해지는 욕망이라면 과감히 추구하는 것이 맞다고 보고 대신 그에 따르는 책임은 당연히 본인이 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헤어진 옛애인을 붙잡지 않고서는 죽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고, 그녀를 붙잡지 않고는 어떻게 살 방법이 없다면 과감히 붙잡아야죠. (물론 그 행동이 스토킹 같은 범죄로까지 나아가지 않는 선에서 말이죠.) 지금 내가 죽게 생겼는데 그녀가 받을 부담과 괴로움까지 배려하라는 것은 남자에겐 분명 가혹한 처사일 것입니다. 결국 그 붙잡음으로 인해 그녀에게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쌍욕을 먹거나 하는 것은 순전히 본인이 감당할 책임인 것이고요.]

제가 느끼기엔 오히려 저보다 mcmc님께서 약간 더 급진적(?)이라고 느끼는 게,
저는 mcmc님께서 말씀하신 [스스로 감당하고 책임질수 있는지] 여부를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 [꼭 이루어야할 중요한] 욕망인지를 더한 것이거든요. 그 이유는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어차피 내 행동으로 인해 상대방이 받는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의) 피해를 내가 책임져줄 수 없으니, 내 욕망 추구의 전제 조건을 최대한 까다롭게 전제했달까요. 암튼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소독용 에탄올
14/05/17 21:59
수정 아이콘
어떤 '욕망'이 꼭 이루어야 할 '중요한'것이라고 판정하는 '기준'이 모호해서, 해당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하게 나올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의지' 뿐만 아니라, 주어진 '조건'위에서 이루어지는 결정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타인이, 그리고 그 타인의 '피해'가 선택을 수행하는 '개인'에게 가지는 '비중'에 따라서 이 선택 자체도 상당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Eternity
14/05/17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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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합니다. 저도 글을 쓰면서 그런 점을 느꼈어요. 그래서 본문에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해봤습니다.
[결국 남들에게는 별거 아닌 하찮은 욕망일지라도 내게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욕망이라면 전 과감히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이 맞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예를 들어, 양다리를 걸쳐서 두 사람을 만나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해봐요. 어떤 남자에겐 그게 별거 아닌 욕망일 수 있죠. 근데 예를들어 어떤 이에겐 이게 정말로 자기 일생일대에 꼭 이뤄야할 중요한 욕망이라면, 저는 두 여자에게 쌍욕을 먹든, 따귀를 맞든 과감히 이루어야한다고 보는 입장인 거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양다리를 일생일대의 숙원적 욕망-_-으로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으므로 보통의 경우에는 여자친구가 받게 될 상처와 인간적인 예의를 생각해서 양다리를 걸치지 않고 포기하거나, 현 여친과 헤어지거나 등의 선택을 하는 것이 옳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저 또한 개인적으로 양다리가 저의 중요한 욕망은 전혀 아니므로, 그럴 생각도 전혀 없구요.)
조금 과격하고 정돈되지 않은 거친 논지이긴 하지만 결국 제 의견은 그렇습니다.

어쨌든, 더불어 말씀하신 '조건'과 '비중'에 관한 이야기는 저 또한 숙고해볼만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yangjyess
14/05/17 22:00
수정 아이콘
성공적으로 개인의 욕망추구를 한 대표적인 인물들과 성공적으로 타인을 배려하며 살았던 대표적인 인물들을 역사 속에서, 혹은 주변 지인들 중에서 몇명 꼽아서 비교해 보면 어느쪽이 바람직한 삶인지 판단이 될듯 하네요. 개인차가 있겠지만 저같은경우는 벨붕 후자입니다.
Eternity
14/05/17 22:13
수정 아이콘
어느 쪽이 '바람직한 삶인지' 여부로 판단하자면 당연히 벨붕 후자이겠지만,
어느 쪽이 '본인에게 행복한 삶인지' 여부는 타인이 함부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적어도 본문은, 바람직한 삶 보다는
본인의 욕망(행복)을 추구했을 때 맞딱뜨리는 문제와 관련된 논의이니까요.
yangjyess
14/05/17 22:16
수정 아이콘
그렇죠. 다행히 저는 본인에게 행복한 삶도 후자입니다. 하지만 다른 많은 분들꼐서 자신의 욕망추구도 마음껏 하시길 바랍니다.
14/05/17 22:11
수정 아이콘
저는 '남을 적당히 불편하게 하는 정도는 괜찮다' 라고 생각해요. 그 적당히가 어느정도 인지가 중요하긴 하지만요.
남에게 그렇게 피해주기 싫으면 코박고 죽어야죠.
Eternity
14/05/17 22:15
수정 아이콘
네, 말씀하신 대로 '그 적당히가 어느정도 인지'가 참 어려운 문제네요.
사악군
14/05/18 20:03
수정 아이콘
자살은 어엄청나게 주위와 사회에 폐를 끼치는 짓입니다. 남에게 피해주기 싫으면 자기를 추스리고 열심히 살아야 하는거죠.
낭만토스
14/05/17 22:25
수정 아이콘
일단 무조건 본인이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5번의 경우 힘들어하는 부모님을 보는것이
더 힘들다고 느낄경우
그러니깐 내가 불행해지는거죠
결혼해서 얻는 불행 < 힘들어하는 부모님을 본 나의 불행

일경우 결혼을 할 수 있는거죠
보통은 아 자기보다 타인을 생각하는구나 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본인이 우선이라는 겁니다

이 논리대로 하면 어떤사람은
대의를 거스르고 구차하게 살아서 오는 불행이
대의를 지키고 목잘려서 오는 불행보다
크기 때문에 순교를 하는거라고도 볼 수 있겠고요

아 저 사람은 나를 버리고 남을 위해 희생했구나
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보면 나를 위해서죠

다만 보편적으로 나의 목숨을 잃었을 때 오는 불행이
대부분 크니까 대단하다고 생각되어지고요

거시적으로 본다면 그 말이 그 말일수 있겠네요
Eternity
14/05/18 08:17
수정 아이콘
사실 기준이 다른듯 보이지만, 낭만토스님의 말씀도 결국은 개인의 욕망(행복) 추구가 더 우선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만약 저 본문의 1~5번의 예시 전부다 "개인의 욕망을 추구했을 때 얻는 행복이, 그렇지 않을 때 얻는 행복보다 더 크다." 라고 전제한다면,
(어디까지나 전제입니다.)
결국 본인의 행복을 위해서 그렇게 선택하라는 말씀이라고 느껴지거든요.
낭만토스님의 의견에 대한 반론이 아니라, 결국 큰 틀에서 보면 '나의 욕망(행복)이 우선이다.' 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아서요.
사악군
14/05/17 22:55
수정 아이콘
그래서 세상에 나쁜 사람이 더 잘사는거에요.

그 선을 낮게 잡을수록 마음껏 욕망대로 할수있고
심지어 마음도 가볍죠. 스스로에게도 더 떳떳합니다.
실제 범죄자들도 중범죄자일수록 더 뻔뻔하고
사소한 범죄자들이 더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비난같은 얘기가 아니라 그냥 자연스런 귀결이죠..슬프지만.
Eternity
14/05/18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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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에 관하여 '나쁜 사람'이라는 표현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물론 위에서 1,2번 (층간소음, 양다리 문제) 등은 타인의 비난을 받을 소지가 충분하지만 (나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케이스들이 더 많다고 봅니다.
본문의 예시만 해도 그 외의 문제들,
[헤어진 옛애인을 붙잡고 싶은 남자, 이혼을 하고 싶은 아내, 독신으로 평생을 살고 싶은 자식]
이들을 어떻게 '나쁜 사람'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요? 사악군님께서도 이들을 '나쁜 사람'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데에는 동의하실 것입니다.
이들은 결국 합법적인 삶의 테두리, 계라는 규범 안에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고 싶은 거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발생하는 거구요.
결국 제가 본문에서 질문하는 요지는,
(누가 봐도 욕먹을 게 확실하고 뻔한) 1,2번 사례의 문제보다는
3~5번 사례의 문제에 대한 피지알러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은 것이기도 합니다.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의) 개인의 욕망을 실현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싸잡아서 전부 '나쁜 사람'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는 점은 사악군님도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
전 오히려 반대로 본인의 욕망과 내면의 목소리를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추구하지 못하며 사는 것이 긍정적인 삶인지도 의문이구요.
결국 '선,악'의 문제가 아닌 '호, 오'의 문제라고 보는 만큼 '나쁜 사람'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사악군
14/05/18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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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의편함과 타인의 불편함 사이의 기준에서 나의편함의 가치를 우선할수록 이를 '나쁜 사람'이라 합니다.

나의 욕망이 절실하다면 남에게 피해를 줘도 무방하다는건 제대로 된 논거가 아니에요. 결국 자기욕심은 많고 남의 피해를 가벼이 생각하는 자들, 그런 '나쁜사람'들이 잘산다는 겁니다.

범죄는 빼고. 라는 말은 논리오류를 벗어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죠. 나의 절실함이 절대적 근거라면 그런 제한이 왜 필요합니까? 덱스터는 살인을 해도 그의 행복추구인겁니다.

옳은것은 나의 욕망의 절실함이 아니라
욕망의 실현시 타인의 피해와
실현시키지 못할때 나의 피해사이의 균형이죠.

여기서 정신적 피해는 최대한 배제하거나
그 기준을 나자신이 아닌 일반 상식에 맡겨야 하는겁니다. 내가 무엇을 강하게 원한다는 나자신만의
사정을 자기행동의 기반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을 나쁘다고 일컫는건 충분한 근거가 있죠.
Eternity
14/05/1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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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부분은 충분히 이해하겠습니다. 제 논거가 부족하다는 점도 인정합니다.
사실 그래서 이 글을 발제한 것이기도 합니다. 토론하면서,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듣고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서요.

다만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예시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라는 이부분입니다.
사악군님께서는 명백하게 [나의편함과 타인의 불편함 사이의 기준에서 나의편함의 가치를 우선할수록 이를 '나쁜 사람'이라 합니다.]라고 규정하고 계십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도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즉 저는 '나의 편함과 타인의 불편함 사이의 기준에서 나의 편함의 가치를 우선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는 거죠. 물론 그게 올바르다거나, 잘했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인간은 누구나 타인의 행복보다는 자신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두고 함부로 '나쁘다'라고 규정하고 재단하기는 곤란하다는 게 제 의견입니다. 하지만 이건 사악군님과 저의 의견 차이이므로 이 부분을 가지고, 즉 '나쁜 사람'의 정의에 대해 논하자는 건 아니구요.)

즉 사악군님이 말씀하신 '나쁜 사람'에 대한 정의가 옳냐, 그르냐에 대해서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일단 사악군님 말씀대로 [나의편함과 타인의 불편함 사이의 기준에서 나의편함의 가치를 우선할수록 이를 '나쁜 사람'] 이라고 전제했을 때, 사악군님의 논리대로 라면 제가 예시에서 언급한 3~5번의 사람들 모두 '나쁜 사람'으로 규정되어야 마땅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겁니다. 왜 [예시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시를 제외시키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사악군님께서 "내 생각은 이러이러 하므로, 본문에서 제시한 3~5번 케이스의 사람들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말씀하시면, 사악군님의 논리 그 자체에 완전히 동의는 못할지언정, 주장 그 자체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예시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저의 가장 궁금한 의문을 비껴가시니 저는 아직도 의문이 가시질 않네요.

물론 사악군님이 진정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은 [옳은것은 나의 욕망의 절실함이 아니라 욕망의 실현시 타인의 피해와 실현시키지 못할때 나의 피해사이의 균형이죠.] 부분이라고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부분에 대해선 저도 특별히 반론을 제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사악군님의 논리는 충분히 이해했으나, 그렇다면(사악군님의 논리대로라면) 본문처럼 [헤어진 옛애인을 붙잡고 싶은 남자, 이혼을 하고 싶은 아내, 독신으로 평생을 살고 싶은 자식] 등 나의 편함(행복)과 타인의 불편함(피해) 사이의 기준에서 나의 편함(행복)의 가치를 우선하는 사람들이 전부 '나쁜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얘기인데, 이에 대한 대한 사악군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사악군
14/05/1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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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준에서는 나의 편함과 타인의 불편, 나의 불편과 타인의 편함은 공정한 비교대상이 아니거든요. 내가 편하려고 남을 불편하게 하면 나쁜놈이고 남이 편하라고 내가 불편하면 호구입니다. 나의 불편과 타인의 불편만이 고려의 대상인거죠.

모바일이라 3번만 간략히 말하자면
정신적 피해는 나도 기준이 아니고 상대도 기준이 아니고 일반적인 잣대가 적용되어야겠죠.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 연락을 하는데
상대가 명시적으로 거부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면, 거부하였더라도 완곡한거부라면 그거부의 시효처럼(정해진건없지만) 한달이후
다시 연락해본다던가 이런식으로 접근하면 괜찮지 않겠나요?

매일같이 연락해댄다거나 쫓아다닌다거나 하는건 안되는거고
반대로 상대가 병적으로 예민해서 몇달만에 전화한번해도 불같이 화를 낸다고 해도 그 전화가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거죠.

계량화되지않는 정신적 피해의 크기는 사실 알수가 없고 개개인의 감수성에 따라 달라지는거라
그게 기준이 되어서는 안되는거고, 보통 평균인이 공감할 수 있는 범위 내의 것이어야 한다는 게 골자입니다.

그 범위를 뜻하는 말이 '적당함'이고, 이에 대해 서로 생각하는 범위가 다르니까 각 예시에 어떻게 적용될지는
생각이 다를 수 있죠. 그런데 그 적당함을 평가하는 기준에 '나의 절실함'은 들어갈 수 없다는 게 제 의견의 포인트입니다.
Eternity
14/05/18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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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잘 읽었습니다.
말씀해주신 의견의 포인트도 이해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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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내용 및 질문입니다.
궁금한 점은 왜 굳이, '물리적 피해'와 '정신적 피해'를 구분시키시는지 의문입니다. 저는 피해를 받는다는 입장에서 이 둘을 나눌 필요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즉 물리적 피해와는 다르게 '정신적 피해'는 일반 상식에 맡겨야한다는 사악군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둘다 똑같은 선에서 판단해야한다는 게 제 입장이구요. (즉, 층간소음이나 양다리나 제가 볼때는 둘다 구분할 필요 없는 타인에 대한 피해인거죠.)
사악군
14/05/19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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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피해는 그자체로 상식선에서 피해인것이 확인되는것 아닌가요? 사실 특별히 구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악군
14/05/1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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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자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사람들은 범죄자입니다. 나쁜사람이라는 표현으로 부족한 사람들이죠. 거기 포함되긴 하겠습니다만.
지나가던행인27
14/05/18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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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나 케바케인 문제지요.
욕망일 뿐이지 필수불가결한 본능이 아니기때문에 욕망을 충족했을때의 쾌감과 그 책임 사이에서 항상 저울질하기 마련입니다.
본문에 든 예시만해도 법적, 도의적인 선에서 해결가능한 문제지만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많잖아요?
층간 소음으로 인해 이웃간의 폭행, 살인을 일으키거나 연인을 잊지못해 따라다니다가 스토커가 되고 범법자가 되곤하죠.
양다리, 결혼의 문제는 법적으론 문제가 되진않지만 주변에서 개새끼, 패륜아 소리를 듣죠.
이혼의 경우는 양육의 책임만 제대로 부과된다면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예전과는 달리요..
어디까지나 타인에게 피해를 줄수있는 욕망에 대해서는 한번 더 생각하고 책임질수 있을때 실행해야 한다 봅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욕망을 채운다는건 피해를 받기싫은 상대방의 욕망과 정면으로 충돌되는 부분이니까요.
어디까지나 적당히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 문제인데 굉장히 힘든 부분이 많다고 봅니다.
저는 법적, 혹은 도의적으로 문제가 되지않는 선에서는 욕망을 충족하려 노력합니다.
만 어디까지나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위해 노력할 뿐이고 언제나 감정적이 될때가 많은것 같습니다. 어려운 문제에요 크크
Eternity
14/05/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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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실 발제글을 쓰면서도 전형적인 '우문' 이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답이 없는 문제에 답을 찾으려고 하는 발버둥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런데 그렇게 어려운 문제이고 복잡한 문제인 만큼 피지알의 많은 분들의 의견이 궁금하더라구요.
저도 좀 더 배울 기회라고 생각했구요.

기본적으로 지나가던행인27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대체로 동의합니다만, 저는 말씀하신 내용 중에 [욕망에 대해서는 한번 더 생각하고 책임질수 있을때 실행해야 한다 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의문이 듭니다. 사실 딱 말만 놓고보면 지극히 온당하고 맞는 얘기이죠. 하지만 문제는 많은 경우, (사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내 욕망 추구와 상대방의 합법적 피해가 상충될 때 그 사람이 입는 피해를 내 자신의 책임질 수 없다는데에 있다고 봅니다.
(우선 여기서 기본적인 전제는, 욕망 추구로 내가 입는 피해는 당연히 내가 책임져야한다는 점이죠. 이 점은 기본으로 하고 넘어가자는 얘기입니다.)

결국 제 의견은,
현실적으로 '양다리로 인해 현 여친이 입는 마음의 상처', '붙잡음으로 인해 옛애인이 받는 괴로움', '독신 결정으로 인해 부모님이 받는 상처' 등을 사실 나 자신이 책임질 방법이 없고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상대방이 입는 피해까지 책임질 수 있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고 문제가 발생할 이유도 없겠죠. 그런데 그게 쉽지 않으니 문제인 거구요.
그래서 저는 거칠게 표현하면 '내가 내 욕망에 몸을 던지는 순간부터, 상대방이 입는 피해를 내가 책임질 방법은 없다.' 라고 생각하는 주의입니다.
결국 남은 건 선택의 문제인거죠. 추구할 것이냐, 추구하지 않을 것이냐.

그리고 이러한 선택의 기로에서 제 개인적인 의견은,
(본인에게 꼭 필요한 중요한 욕망이라면) 과감히 선택하는 것이 맞다. 라고 보는 입장인 것이구요.
뭐 써놓고보니 본문 내용을 그대로 되풀이해서 적어놓은 것밖에 되지 않은 것 같네요^^; 암튼 말씀하신대로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오빠나추워
14/05/18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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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생각은 내가 우선이고 행동 역시 그러고 싶지만 실제행동은 남이 우선이 됩니다.

이러한 결과가 '내가 생각하기엔 이런 행동이 옳으니까, 맞으니까' 라는 것도 있지만 비겁하게도 내가 그런 행동을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의 좋지 못한 시선 떄문인 것도 있는거 같습니다.

저는 제가 하고 싶은걸 하지만 남들을 많이 의식하는 편인거 같습니다. 멋져보이고 싶고 잘 나보이고 싶은 그런 욕구가 강한거 같습니다. 최근에 저와 비슷한 성격이고 높으신 위치에 계신 분과 대화를 나눳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나는다른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며 살아왔다. 실제로 사람들이 날 보며 멋있다고 하더라. 타인을 의식하는 인생 일지라도 내가 기분이 좋다면 이것또한 멋진 인생 아닌가?"

다른 것 보다 어떻게 보면 모났다고 할수있는 그런 성격을 순순히 인정하시는 모습이 되게 멋져 보였습니다. 뭐 결론은... 없습니다.

글쓴님께서 말씀하신 논지와는 많이 빗나가서 제가 하고싶은 말들만 했지만 제 스스로를 돌아볼수 있는 시간이였네요. 감사합니다. ^^
Eternity
14/05/18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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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오히려 제가 생각지 못했던 지점을 짚어주신 내용이었습니다.
[솔직히 생각은 내가 우선이고 행동 역시 그러고 싶지만 실제행동은 남이 우선이 됩니다.]
라고 말씀하신 부분이 사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솔직한 의견이라고 느껴집니다.
어떤 욕망의 실현, 행복의 추구든 결국 타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죠. 그게 타인의 피해이건 타인의 시선이건 비난이건 뭐든 말이죠.
(논지가 좀 과격하고 거친 면은 있지만) 저는 좀 여기에서(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자는 주의인 거구요.
암튼 저도 여러가지를 생각해보게 되네요.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욕망의진화
14/05/18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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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제 아이디에 주목^^
즉 욕망은 진화합니다....전 기본적으로 글쓴분 생각과 거의 흡사한 포지션 입니다.
근데 이게 웃긴게 위의 예시가 아니더라도 이런 포지션을 표현하면(친구들과 무슨의견
을 주고 받거나 고민 상담할때 .꽤 직설적이고 단정적으로 표현을 합니다만)넌 많이 다
른거 같다라지 4차원아님? 이런 지적을 받곤 하네요..본인이 행복해야 본인이 당당해야
또는 본인이 부유해야..기본적으로 여우가 생기면서 베풀수 있다라는 신념이 있기에...
그렇다고 안하무인격으로 자기중심적으로 설득을 하는것도 아닌데...다소간의 사람들
이나 제주변 친구들을 보면 이렇듯 욕망 표현에 서툴루고 억누르다 보니까 스트레스가 오
는 경우들 많이 보았습니다...본문에서 언급되다 시피 자기가 받게되는 스트레스에 비례
해서 타인을 배려하는게 스트레스가 적다면 그렇게 하는게 맞는거고..근데 대부분 억누르
다 보면 고스란히 더큰 스트레스를 오는경우도 많은것 같습니다..반대로 욕망을 추구해서
받는 스트레스가 적다면...욕망을 추구해야죠...당연히..인간의 기본적으로 내재되있는 본
능인데...이걸 무조건 이성적으로 대처하기란 쉬운문제가 아니잖아요..타인의 시선이나 주
변의 평판에 너무 민감해 할필요 있나 싶습니다...본인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내재된 욕망을
억누루면서 조화로운것도 그들의 권리요.욕망(글쓴분이 전제한 개인의 행복추구에 부합하는)
을 추구하는 것또한 당연한 것인데...옳고 그름을 떠나서 답이 있고 없음을 떠나서 그건 본인
이 현재 상태와 멘탈 환경적인 여건들이 합쳐지면서 결정을 하는 겁니다...주변에 친구들은 저
에게 이따금 이런 충고를 해여...지나친 자기합리화 라고...그런 비판을 받아도 굳이 부정하지
는 않아요..저란사람은 합리화를 하지않음 스트레스에 치여 괴롭거든요..적당한 합리화까지 비
난 받을만큼 지배력 없이 살고 싶지도 않고...그래도 그친구들 무슨 문제 있으면 4차원 박사라고
비아냥대며 절 찾는거 보면 아주 괘변은 아니지 싶은데.저의 착각일수도 있습니다 ㅡㅡ^


피지알,모 네임드님이 쓰신 표현을 굳이 빌리자면...인간의 마음은 고정함수가 아니라 파동함
수다..즉 내 내면에 존재하는 울림이 있을때 움직일수도 가만일수도 있는것이다...이쯤하고..

여자는 평생을 함께할 남자를 꿈꾸고,남자는 아룻밤만 함께할 여자를 꿈꾼다!
인간 남녀의 서로 다른 욕망아래 숨겨진 진화의 역사를 둘추어낸다!
동상이몽, 한 이불 아래 두 욕망!

적어도 욕망vs욕망 으로 서로 대적할때 욕망이란게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인간의 욕망이란게
어떻게 표현되고 무서운건지..한번 읽어봐요....전 이책을 읽고 소름 끼치게 무서웠습니다...한
때의 트라우마로 인해 밑바닥으로 빠졌을때 저를 구해준..밑바닥으로 더 깊게 들어갈수록 건져
올릴게 많더라구요..저한테는 울림이 있는 책이었는데...글쓰분께 살며시 추천드립니다.
두꺼워요! 무려 20.000원 입니다..오늘따라 썰전의 욕망아주메의 섹시한 욕망드립이 생각나네요!
Eternity
14/05/18 16:27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중간의 말씀은 럽앤헤이트님의 표현이군요. 저도 인상깊게 읽었던 명구절입니다.
그리고 추천해주신 책은 기회가 되면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근데 책 제목이 <동상이몽, 한 이불 아래 두 욕망> 인가요?
책 제목을 명확히 적어주시지 않은 것 같아서요.
욕망의진화
14/05/18 18:23
수정 아이콘
책 제목이 제 아이디 라는. .
'욕망의진화' 저자 '데이비드버스'

비루한 진화심리학 서적일수도 있
지만 제겐 한때 바이블같은.. 그어
떤 연애지침이나 픽업이론을 제낄
정도로 저에겐 충격이었네요.특히
남녀관계 잘 안 풀리는분들 필독하
심 많은 도움이 될거 같습니다.조금
만 비틀어 인간관계에 적용해봐도
나름 괜찮은 툴이더군요
욕망의진화
14/05/18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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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다 집어치우고, 그래서 개인의 욕망(행복) 추구랑 타인의 피해 가운데 어느 게 더 우선한다고 생각해?]
라고 거칠게 물을 때 나라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의 저의 대답은 과감히 욕망을 추구하라 입니다...

전 욕망을 본능적인 상황으로 해석하기에...본능을 누룰필요 없다는 겁니다..똑같은 질문을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
이 했다면 반대의 대답을 햇곗죠...이터니티 님 정도의 식견과 시각을 같고 계신분이라면 굳이 이성으로 억누루지
않아도 규범안에서 욕망을 잘 표출하실거 같습니다...좋은 주말 되세욥^^
안경닦이
14/05/18 14:18
수정 아이콘
자신의 욕망이 중요하다면 타인의 욕망 역시 중요합니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욕망추구는 당연하겠지만, 내 욕망이 무조건 타인의 것보다 중요하고 가치있다고 쉽게 재단할 자신은 없네요. 반대로 타인의 욕망추구로 내가 피해를 받는 경우도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구요.
또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 동일한 욕망을 놓고 충돌할 경우도 있을 겁니다. 이럴 때마다 자신의 욕망만을 우선시한다면 최악의 경우 주변사람들로부터 고립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겠지요. 결국,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결론적으로 말씀처럼 사람마다 추구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확실한 결론은 내리기 어렵겠지만, 저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의 욕망 실현에 무게를 둡니다.
Eternity
14/05/18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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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문단에 대한 제 의견은
아래 후후하하하님에 대한 제 댓글로 갈음하겠습니다.
결론만 말씀드리면 저 또한, '내 욕망만 소중하고, 타인의 욕망은 내 것보다 덜 소중해.'라고 생각지 않는다는 거죠.
(각자의 욕망을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욕망 추구를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댓글을 한 번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말씀하신 대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의 욕망 실현'이겠죠.
이 지점을 찾기 위해 다들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것일테구요. 저도 공감하는 바이고,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라 생각하지만 현실세계에선 참 쉽지 않네요.
(참고로 김어준은 안경닦이님 말씀처럼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각자의 욕망을 건강하게 욕망하는 사회를 '명랑사회'라고 부르더군요.)
안경닦이
14/05/1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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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과 댓글을 다시 한번 읽어봤습니다. '타인의 욕망은 내 것보다 덜 소중해'라고 생각하지 않으신다고 하셨는데, 본문에서는 '개인의 욕망 추구와 타인의 피해 가운데 개인의 욕망 실현이 더 우선한다'고 거칠게 대답하신다고도 하셨습니다. 말꼬리를 잡으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결과적으로 타인의 입장에서 보면 저 사람은 내 피해보다 자신의 이익(욕망)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개인의 욕망시 타인에게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이 전제라면 타인이 욕망할 때 내게 피해가 발생한다 역시 성립합니다. 그런데 그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내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욕망한다는 것은 저로선 조금 이해가 안되는 부분입니다. 상대방의 욕망은 이미 내게 피해를 발생시켰으니까요.

결국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봐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Eternity
14/05/18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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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점을 가지신 부분에 대한 제 입장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욕망과 배려와 관련해서 아주 크게 네가지 관점이 있다고 봅니다.

1) 나는 배려할테니, 너도 배려해.
2) 나는 배려할테니, 너는 욕망해.
3) 나는 욕망할테니, 너도 욕망해.
4) 나는 욕망할테니, 너는 배려해.

안경닦이님은 제 글이 4번을 추구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점을 갖고 계실지 모르지만, 저는 정확히 3번을 추구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안경닦이님이 말씀하신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 동일한 욕망을 놓고 충돌할 경우' 입니다.)

A라는 남자, B라는 남자, C라는 여자 셋이 있습니다. A와 B는 친구관계이고 C는 그냥 둘다 아는 사이입니다.
근데 친구사이인 A와 B가 동시에 C를 좋아합니다. 근데 A, B 둘 다 서로간의 우정은 포기할지언정 여자를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정도로 각자에게 간절한 욕망인거죠. 결국 한마디로 둘 사이의 욕망이 충돌하는 순간이고 그 욕망이 서로에게 피해를 주는 순간입니다.
이럴때 (제 논리대로라면) A는 친구 B에게 뭐라고 얘기해야할까요?
"난 너와의 우정이 깨져도(너한테 피해를 입히더라도) C를 포기 못해. 그러니 니가 포기해라." 라고 얘기할까요?
즉, 위의 4)번 처럼 얘기할까요?

전혀 아닙니다. 제 논리대로라면 (혹은 저라면) A는 이렇게 얘기해야합니다.
"난 너와의 우정이 깨져도(너한테 피해를 입히더라도) C를 포기 못해. 하지만 너도 그녀를 포기못하겠다면, 너도 열심히 그녀를 붙잡아. 서로에게 피해가 되더라도 각자 최선을 다해보자."
즉, 정확히 4번의 포지션이죠. 위의 상황에서 A 뿐만 아니라 B 또한 A와의 우정이 깨져도(즉, A에게 피해를 입혀도) 자신의 욕망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고 전제했을때, 결국 둘다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를 입히더라도 포기할 의사가 없는 거죠.
이 상황에서 A는 자신이 입는 피해는 전혀 고려대상이 아닙니다. 왜냐면 나 또한 내 욕망에 충실할 뿐이니까요. A입장에선 내 욕망이 소중한만큼 B의 욕망이 소중하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A입장에서는 서로가 각자의 욕망을 열심히, 치열하게 욕망하면 그뿐입니다. 그 상황에서 발생하는 피해는 서로가 감수하는 거죠. 즉,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 동일한 욕망을 놓고 충돌할 경우, 어느 누구도 상대방에게 배려를 강요할 수 없다는 게 제 입장입니다. 서로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면 그 뿐이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는 서로가 감수해야한다는 입장입니다. 이게 바로 책임감일 것이구요.
즉 제 논리의 핵심은 [나의 욕망이 가장 중요하다]가 아니라, [각자의 욕망이 가장 중요하다]인 거죠.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볼게요. 본문의 예 가운데
[남편과의 성격 차이로 이혼을 고민하는 나와 이 이혼으로 인해 상처받을 자식들의 문제] 입니다.
만약 자신의 행복을 위해 아들의 상처를 감수하고라도 이혼을 결정하여 실행한 여자가 있다고 해볼게요. 결국 아들에겐 상처가 되었구요. 그렇게 아들과 함께 단둘이서 살기 되었고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아들이 결혼을 했는데 그 아들이 아내와의 성격차이로 이혼을 고민합니다. 아들에게는 딸(나에겐 손녀)가 있구요. 이 상황에서 엄마인 내가 "니가 이혼하면 엄마인 나에게도 상처가 되고, 네 딸에게도 상처가 되니 이혼은 안된다."라고 극구 반대하는 게 맞는 것일까요? 엄마는 자신의 행복에 따라 아들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이혼했으면서, 이제와서 나에게 피해가 되고 또 제3자에게 피해가 된다는 이유로 이혼을 반대하는 게 제대로 된 욕망 추구일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이 경우도 정확히 4번이죠.

제 논리대로라면 아들한테 이렇게 얘기해야합니다. "니 이혼으로 나한테도 상처가 되고, 니 딸에게도 상처가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이 니가 유일하게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면 니 뜻을 존중한다. 너의 인생이니 니가 행복한 길을 선택하거라." 입니다.

결국 '개인의 욕망 추구와 타인의 피해 가운데 개인의 욕망 실현이 더 우선한다' 라는 제 논리는 엄밀히 따지면, (나 뿐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욕망 추구와 타인의 피해 가운데 [우리들]의 욕망실현이 더 우선한다'라는 뜻입니다.
개인은, 나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이들을 의미하고, [같은 차원에서 여기에서 말하는, 타인에는 남 뿐만 아니라, 나도 포함이 됩니다.]
개인의 범주에 우리 모두가 포함이 되는데, 타인의 범주에 내가 포함이 안 될리가 없죠. 논리적으로 당연히 포함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제가 생각하기에
'타인이 입는 피해 = 타인의 욕망' 은 아닙니다. 이 둘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죠. 피해는 피해일 뿐입니다. 피해 그 자체가 타인의 욕망이 될 순 없죠. 그러니 내 욕망으로 인해 타인이 피해를 입어도, 타인의 욕망을 존중할 방법은 얼마든지 열려있다는 것입니다.
내 욕망 추구가 무조건 타인의 욕망 추구를 억압하는 제로섬 게임은 아니라는 얘기죠. 서로의 이해관계가 상충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를 입고, 입히더라도 서로가 건강하게 욕망하며 각자의 욕망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결론적으로 개인의 욕망 추구로 인해 타인이 입는 피해의 과정에서도 얼마든지 타인의 욕망을 존중할 방법이 있다는 뜻이구요.
(이에 대한 실례는 바로 위에 말씀드린 예시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가장 경계하는 태도는 [내가 배려할테니, 너도 배려해.] 즉 1번입니다. (2,4번은 논할 가치도 없구요.)
과연 1번이 '제대로 상대방의 욕망을 존중하는 방식'일까요? 전 전혀 아니라고 봅니다.
1번은 단지, [나도 억압할테니, 너도 억압해.] 일 뿐이죠. 전혀 존중이 아닙니다.
오히려 3번처럼 [나도 욕망할테니, 너도 욕망해.]
즉, [우리 서로 함께 욕망하자]가 더 솔직하고, 서로의 욕망에 대한 존중에 더 가깝다고 봅니다.
안경닦이
14/05/18 22:18
수정 아이콘
제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타인의 욕망으로 인해 내게 피해를 발생했을 경우, 그것을 억울함없이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인가 입니다. 내 욕망을 우선으로 여겨 상대방에게 피해가 갔을 때는 괜찮다고 했을 때 상대방의 욕망으로 인해 내게 피해가 발생했을 때 이를 아무 문제없이 받아들일 수 있느냐란 뜻입니다. 욕망 한 번에 피해 한 번이 발생한다고 가정하고,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욕망을 추구한다고 칩시다. 자신의 욕망대로 승승장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욕망을 이루거나 피해를 받는 횟수가 비슷한 사람도 있을 겁니다. 물론 피해의 빈도가 훨씬 높은 사람도 생길테고요. 공정하게 각자의 욕망만을 추구했으니 괜찮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제가 그 당사자가 된다면 쿨하게 받아들일 자신은 없습니다. 그래서 욕망은 하되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자는 입장인거구요.
그리고 심리적인 부분의 예를 들어주셨는데 그게 (합법적인)신체적, 물질적인 피해라면 과연 납득할 수 있을까요? 네가지 관점에 대해 써주셨지만 저는 어느 한 카테고리로 나누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Eternity님이 4번의 입장이라고 생각치 않을 뿐더러 저 역시 1번의 입장을 견지하지 않습니다. 아마 욕망과 피해라는 단어를 이해하는 부분에서 차이가 있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Eternity
14/05/18 22:32
수정 아이콘
네 저도 사실, 안경닦이님이 1번의 입장을 견지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그냥 개인적인 사족이라고 이해해주시면 좋을듯 하구요.
말씀하신대로 단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면에서 차이가 생기면서 논의가 미세하게 약간씩 엇나가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경닦이님의 의견 가운데 제 개인적으로 숙고해볼만한 내용들이 눈에 보이네요.
서로의 입장 차를 확인하고 이해한 것만으로도 나름의 가치있는 대화였다고 생각합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후후하하하
14/05/18 15:02
수정 아이콘
무언가 규칙적인 것에 대해서 논할때 빠지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것의 일관성과 공평성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주장하려는 것을 타인 또는 모든 사람이 했을때 그것을 용납할 수 있느냐겠죠.
헤어진 여자친구를 따라가서 상대의 시간을 뺏는 것을 옳다고 주장하려면 글쓴분 또한 그 여자의 입장이나 그 아버지의 입장등에서 봤을때 그것을 용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도움 받아야하지 비난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예를 들어 공인을 비난해도 된다는 룰을 만들려고 한다면, 자신이 공인이 되도 그것을 용납할 수 있는지, 자신의 아는 가까운 사람이 공인이 되서 비난을 받아도 용납할 수 있는지 더 나아가서 모든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사회에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그런 룰을 만든다면 아마 공인이 되려는 사람들이 줄어들테고 그것은 사회전체에 손실이죠.
그리고 이전에 제가 했던 말은 그 손실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시간 어떤 세대에도 공인은 항상 있어야 하는가 입니다.
Eternity
14/05/18 15:58
수정 아이콘
댓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 가운데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아끼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감정'이죠.
연애에 있어서 이 자존감이 필수라고들 이야기하는데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타인도 제대로 아까고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죠.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려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가 먼저 수반되어야하고, 타인을 제대로 사랑하려면 본인을 사랑하는 자존감이 먼저 확립되어야하는 것처럼, 욕망의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우선 명확히 하고 싶은 점은, 저는 '내 욕망만 중요하고, 타인의 욕망은 중요하지 않아.'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지나치게 본인의 욕망을 억압하고 타인을 향한 배려를 우선시 하는 사람]은 타인에게도 똑같은 잣대로 요구할 확률이 높다고 봅니다.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얘기이죠. 한번 생각해볼까요. 본인의 욕망을 억누르고 타인을 향한 배려를 우선시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은 그러지 않고 마음껏 욕망하길 바랄까요? 자신도 그렇게 배려하는만큼 서로 각자의 욕망을 누르고 배려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겠죠. 즉, 이런 자신의 기준을 상대방에게도 똑같이 적용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은 오히려 타인의 욕망을 더 존중하지 않을 확률이 높죠. 내가 배려하는 만큼 너도 배려해야하지 않겠니? 라고 요구할 확률이 높으니까요. '난 배려할테니까 넌 마음껏 욕망해' 라고 말한다면 그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고 심하게 말하면 호구이기도 하죠. 상대방의 욕망을 인정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배려의 늪에 빠진 사람'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러니 오히려 상대방의 욕망을 제대로 존중하고 인정하는 길은, 우선 나자신의 욕망부터 제대로 인식하고 추구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건강한 욕망 추구란 결국 나의 욕망이 중요한만큼 상대방의 욕망도 중요함을 인정하는 것이죠.
그러니 저는 '내가 헤어진 전애인을 붙잡고 싶은 욕망' 못지 않게, '그녀가 날 거절하고 싶은 욕망' 또한 존중합니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입장을 바꿔서 어떤 여자분이(저의 전 여친이) 저를 못잊고 계속해서 만나자고 연락을 해온다면, 저는 그에 대해 단호하게 거절하고 만나지 않겠다는 나의 욕망을 표출할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각자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이죠. 그럼 결국 거기서 충돌이 일어나고 문제가 생기겠죠. 하지만 어느 한쪽만의 욕망 추구가 아닌
"다시 만나고 싶은 욕망'과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거부의 욕망'이 충돌하는 상황이므로 그로 인해 서로에게 파생되는 문제는 각자가 책임지고 감당하면 그 뿐입니다.

본문에서 말씀드린, '나의 욕망 추구가 타인이 입는 피해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는 순전히 내 입장에서 얘기입니다.
상대방 입장에서 바꿔 생각하면, 당연히 그사람 입장에선 그 사람의 욕망이 내가 입는 피해보다 더 중요하죠. 이 사실을 서로 인정하자는 겁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나면 내가 입는 피해에 대한 억울함이나 부당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배려지상주의자'분들은 억울함이나 부당함을 호소할지 모르겠네요.
그러니 결국, 제 얘기는
[타인의 욕망추구로 인해 내가 입는 피해가 있다면, 나 또한 그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내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욕망하라]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각자가 함께 욕망하고 서로의 욕망을 인정하는 것이 보다 더 건강한 모습이라는 얘기죠.

어쨌든 나의 욕망이 중요한만큼, 상대방의 욕망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건강한 욕망 추구를 위한 기본 전제'입니다.
저 또한 이를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굳건히 옹호하는 입장이구요.
내 욕망만 중요하다며, 타인의 욕망을 무시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욕망할 자격 자체가 없는 거죠. (이런 사람들이 범죄자이기도 하구요.)

저는 서로가 지나치게 배려하고 부담주지 않으려고 각자 자신의 욕망과 행복을 누르고 억압하며 배려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회보다는,
각자 자신의 내면의 욕망에 솔직하고 서로 간의 욕망을 인정하며 가끔씩은 서로의 맨얼굴을 대면하는, 이른바 함께 욕망하며 살아가는 그런 사회를 원합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자면 전자를 권장하는 사회가 더 바람직하고 규범적으로 올바른 사회인지 모르겠으나,
개개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후자를 권장하는 사회가 우리에게 더 행복하고 건강한 사회라고 믿습니다.
후후하하하
14/05/18 16:47
수정 아이콘
욕망과 사랑을 혼합해서 표현하셨네요.
예를 들어 욕망과 사랑에 대해 구분을 하자면 욕망은 상대를 소유하고 싶은 소유욕이고 사랑은 단지 그 사람 자체가 좋은 쪽에 가깝죠
그 차이는 상대에게 어떤 말을 하느냐부터 어떤 행동을 바라느냐까지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튀어나오게 됩니다
우리가 바램이나 원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고 욕망이라는 단어를 선택하는 이유는 그것이 타인에 대한 어떤 행동양식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새 핸드폰을 갖고 싶다라고 하지 욕망하고 싶다고 하지 않습니다
욕망한다는 단어는 위의 예에 적용되는 것처럼 타인의 어떤 피해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글쓰신분이 그런 욕망하고 서로 피해 입히는 사회가 좋다고 한다 억압받는 사회가 싫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입니다
여기서 제 대답은 상대가 얻는 피해의 기준은 잘못되어 있고 고칠수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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