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윈딩 레픈과 라이언 고슬링의 전작 ‘드라이브’는 감독과 배우로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던 작품이었습니다. 한 여자를 말없이 지키는 남자의 쌍팔년도 기사도 스토리에 골수를 흩뿌리고 피칠갑을 하니 그게 21세기에도 먹힐만큼 쌔끈하게 빠지는 작품이 되었단 말이죠. 그렇다면, ‘드라이브’에서 멜로와 정의 같은 드라마적 요소를 빼버리고 더욱 더 난폭하게 나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온리 갓 포기브스’는 폭력에 대한 레픈 감독의 이런 야심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방콕에서 무에타이 도장을 운영하는 쥴리앙은 마약 밀매를 하던 형 빌리가 죽은 사실을 알게 됩니다. 16살짜리 여자애를 강간하고 죽인 빌리는 그녀의 아버지에게 살해당했고, 그 복수극의 배후에는 전직 경찰 챙이 연루되어 있었죠. 빌리의 죽음에 격분한 그의 어머니 크리스탈이 그곳을 찾아 오고 복수를 밀어붙이지만 쥴리앙은 선뜻 나서지 못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챙이 눈치채고, 쥴리앙은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복수극의 한가운데에서 갈팡질팡할 뿐입니다.
어떤 영화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공간 자체가 아이디어의 출발점이 아니었을까 의심될 때가 있습니다. 이 영화가 그려내는 방콕이라는 공간을 보면 그 혐의점이 더 짙어지죠. 그 곳은 욕망과 폭력의 도시입니다. 경찰이 폭력의 한 축으로 서 있는 이 곳은 일종의 무법 지대이며, 난사되는 총알 속에서 영문도 모른 채 죽음에 휘말릴지도 모르는 곳입니다. 멀리서 바라본 그 곳은 빌딩들이 숲을 이루는 곳이지만 들여다 보면 아직도 원시적인 공간이며 그 안에서 인물들은 마약, 스트립바, 도장을 통해 환락과 폭력을 거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이 영화의 미쟝센을 상당부분 차지하는 무에타이는 하나의 흉기처럼 그려집니다. 무참한 구타의 현장에서 갑자기 무에타이 선수의 동상을 떡하니 보여주는 것은 폭력을 상징물로 삼은 공간의 위험성을 비추는 듯 합니다. 물론 서구 영화가 이런 식으로 아시아를 그려내는 것은 편협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비판의 여지가 있을 수 있긴 합니다.
이 영화에서 공간은 빛과 프레임의 제약을 심하게 받습니다. 온전하게 조명을 받는 장면이 거의 없을 정도에요. 어슴푸레한 푸른 빛 혹은 붉은 빛이 화면을 뒤덮고 있으며 그 안에서 인물들은 창백하게, 또는 음산하고 섬뜩하게 보이고 그들의 감정이 빛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붉은 빛은 욕망을, 푸른 빛은 공포를 드러냅니다) 쥴리앙은 큐브릭스러운 좁은 복도, 문 너머의 공간을 통해 보이는데 이 공간은 쥴리앙이 갇혀 있고 내몰린다는 심리적 압박감을 보여줍니다. 대조적으로 쳉은 주로 널찍하고 틔여있는 공간에서 활동하는 데 그의 무한한 힘과 지배력이 이를 통해 드러납니다. 악마의 문양이 온 벽에 새겨진 호텔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한 공간이며 쥴리앙의 욕망과 공포가 실체를 이루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시종일관 벽으로 차단한 프레임 너머에서 뭔가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을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드라이브’의 호텔에서 나오던 미쟝센을 작품 전체로 확장시킨 셈이지요.
영화의 가장 큰 줄기를 이루는 폭력의 연쇄에서, 인물간의 드라마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인물들의 욕망과 갈등은 폭력과 상관 없는 지점에서 나타납니다. 가장 주요하면서 유일한 드라마는 쥴리앙과 크리스탈 사이에서 발생합니다. 이들의 모자관계는 곳곳에서 성적 함의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신체접촉은 어딘지 농밀해 보이고 몽환적인 배경에서 재회가 이루어지지요. 어미는 자식에게 복수를 채근하고 사내답지 못함을 질책합니다. 아들이 자신의 애인을 선보이는 장면에서 어머니는 성적인 부분을 언급하며 그들에게 모욕감을 줍니다. 마이가 어머니 앞에서 한심하게 구는 자신을 나무라자 쥴리앙은 거의 발광을 하며 어머니를 변호하지요. 아들이 호스티스를 범하는 상상을 하는 장면은 어머니가 호스트 바에서 스트립쇼를 감상하는 장면과 겹쳐집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크리스탈은 쥴리앙이 어머니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를 죽인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이 부분에서 bare hands를 번역하지 않은 것은 좀 아쉽더군요.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간과한 느낌이 있습니다.)
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야말로 이 영화의 주제와 결말을 이해할 수 있는 핵심입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가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팔’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는 도입부에서 쥴리앙의 파이팅 자세를 무에타이 동상 앞에서 취하고 있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는 마이의 자위를 감상할 때 자신의 두 팔이 의자에 묶이고 상상 속에서 그 팔을 잘리며 어느 순간 그의 팔을 묶어놨던 끈이 풀려있습니다. 그녀가 술집 어느 방안의 조그만 무대에 있을 때 쥴리앙은 손으로 그녀와 성적 관계를 맺는 상상을 하고, 동시에 화면은 쥐락펴락하는 그의 손과 팔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그는 아버지를 맨손으로 때려 죽였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그는 어머니의 시체에 칼집을 내고 거기에 자신의 팔을 넣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팔을 쳉에게 내어주지요.
쥴리앙에게 팔은 성욕과 폭력의 도구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자신의 어미를 향해 있다는 점이지요. 그의 손은 어미 때문에 자신의 아비를 때려죽이는 원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탐하고 능욕하는 수단이지요. (어떤 점에서는 성불능이 의심되기도 합니다.) 큰 아들만을 편애하며 그의 성기를 흠모에 가깝게 자랑하던 어미의 시체를 쥴리앙은 마침내 손으로 범합니다. 그는 마지막 금기를 깨트리면서 타락할 때로 타락합니다. 또한, 그는 하마타면 쳉의 어린 딸을 죽일 뻔 했습니다. 따라서 쥴리앙이 쳉에게 팔을 자르게끔 하는 것은 어미에 대한 그릇된 욕망 때문에 타락한 자신을 속죄받고자 하는 것이겠지요. 오이디푸스가 스스로의 눈을 멀게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동시에, 자신의 욕망의 대상을 잃은 것과 자신의 힘, 남성성이 완전히 무력했던 경험 때문에 힘의 원천을 포기하고 절대적 힘 앞에 굴종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쳉이라는 캐릭터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인체 파괴를 자행하는 이 인물은 등장할 때마다 엄청난 위압감의 음악이 깔립니다. 그는 그를 향한 그 어떤 적의나 폭력에도 털끝만큼도 다치지 않으며 이를 처절하게 응징합니다. 맨손 결투에서 그는 호기롭게 도전하는 쥴리앙을 압도하지요. 그리고 그는 법을 상징하는 경찰과 다니며 자신 또한 전직 경찰입니다. 이렇게 정의와 힘을 나란히 가진 그는 이 영화의 제목이 나타내는 ‘신’이라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렇기에 그의 폭력은 단죄의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자신을 해하려는 자들은 결코 용서치 않고 죽음이라는 벌을 내리지요. 초반부 딸을 잃고 빌리에게 복수를 행했던 아버지의 팔을 자른 것을 쥴리앙과 연결시켜본다면, 그의 폭력은 도덕적 심판임이 더 명확해집니다. 쳉이 희생된 딸의 아버지의 팔을 자르는 첫 장면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도덕적 당위와 벌로 얻게 될 뉘우침이었으니까요.
이와 별개로, ‘온리 갓 포기브스’의 세계는 엄청난 폭력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입니다. 폭력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이는 아무도 없으며 그것은 어떻게든 되돌아오게 됩니다. 이를 지배하려 하거나 맞서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며, 목숨을 건지는 방법은 스스로 굴복하고 되돌아 올 폭력을 받아들이는 것 뿐이지요. 단 한번도 승리할 수 없던 절대적 폭력이 군림하는 곳, 그리고 그 앞에서 죄를 회개하고 거세를 받아들이는 곳, 이게 바로 레픈 감독이 아름답게 그려내는 폭력의 미학입니다. 서사의 부재, 드라마와 액션의 결합이 부자연스럽다는 점에서 드라이브 만큼의 점수는 주기 어렵습니다만, 과잉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의 스타일을 펼쳐내는 이 영화가 전 무척이나 인상깊네요.
@ 쳉이 폭력을 행사한 뒤 가라오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일종의 승전보로 봤습니다. 동시에, 신의 절대성을 내려놓고 한 명의 인간으로 돌아오는 의식처럼도 보입니다.
@ 주인공이 이렇게 오지게 맞는 영화는 처음입니다. 그 무기력함에 힘 빠진 사람도 적지 않을 것 같아요.
@ 엔딩곡인 Tur Kue Kwam Fun (You're my dream) 참 좋네요. Cliff Martinez의 오리지널 스코어도 아주 훌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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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들인 리뷰 잘봤습니다.
스타일 과잉은 괜찮은데 상징을 과도하게 드러내는게 약간 흠이었습니다. 그것만 제외하고는 저도 꽤 인상깊게 본 작품이었습니다. 전작 드라이브처럼 곳곳에 삽입된 사운드 트랙들도 정말 좋았고요. 음악을 잘아는 감독들의 영화를 보는 건 언제나 즐겁습니다.
영화 내내 몰랐는데 크레딧에서 엄마가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라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분장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런 bitch 역할을 스콧 토마스가 할 줄은 전혀 몰랐거든요. 결론은 크리스틴 짱짱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