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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3/29 19:31:42
Name 王天君
File #1 stories_we_tell.jpg (109.7 KB), Download : 62
Subject [일반]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 보고 왔습니다. (스포 있습니다.)


“내가 이 영화를 찍자고 했을 때 어땠어? 불편하진 않았어?” “아니 그런 것보다도…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누가 굳이 볼까 싶은 건 있었어. 그냥 어디에나 있는 흔해빠진 가족 이야기잖아. 누구나 저마다의 역사와 사건들이 있는거고.”

영화 중간, 인터뷰를 하며 감독인 사라 폴리가 그녀의 오빠 에게 영화촬영에 대해 던진 질문입니다. 그리고 뒤따르는 그의 대답은 아주 자명한 사실이죠. 백혈병이나 뒤바뀐 친자식 등의 충격은 던지지 못하지만, 저마다 자신의 인생에서, 그리고 가족이란 테두리에서 그 구성원들과 다소 복잡하게 엉켜있는 사연들이 있습니다. 하물며 실화랍시고 온갖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언론을 통해 실화로 소개되고, 또는 각색을 거쳐 드라마로 쏟아져나오는 요즘 시대에 사라 폴리는 자기 가족의 이야기를 무려 다큐멘터리 장르 씩이나 동원해가며 들려주겠다고 하네요. ‘우리’는 사라 폴리를 포함한 그녀의 가족일테고 ‘이야기’는  고인이 된 지 오래인 어머니와 가족으로서 그들 자신에  대한 걸테니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를 별로 듣고 싶지는 않단 말이죠. 굳이 추억을 떠올리는 거라면 집에 있는 앨범을 펼쳐보면 될 일일텐데.

보아하니,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사라 폴리의 돌아가신 어머니, 다이앤 폴리인가 봅니다. 일단 이 인물은 한 이야기의  중심으로 잡기에는 모자람이 없는 인물 같습니다. 보통 사람과는 달리 대단히 활발하고 시끌벅적하고 늘 부산한 여자였군요. 그녀에 대한 증언은 온통 그녀의 커다란 목소리와 파안대소 그리고 허둥지둥 서두르며 뭔가를 빠트렸다거나 끊임없이 바쁘게 서두르는 생활 패턴에 대한 묘사들 뿐입니다. 전형적이지만 흔치 않군요. 저런 사람이 엄마였고 아내였다면 그 가족의 일상은 평범하지만은 않았을 거라 능히 짐작이 됩니다. 재미있지만은 않았겠지만, 정신없는 만큼 웃을 일도 많았을 것 같아요. 저런 인물이니 뭔가 전기적 구성으로 과거와 역사를 더듬어보는 것도 제법 흥미가 있습니다. 70년대 소동극 만화 속의 주인공을 보는 기분도 나구요. 거기다가, 감독인 사라 폴리와 너무 판박이라서 볼 때마다 유전자의 위대함을 느끼게 됩니다. 저 눈이며 턱이며 어쩜 그렇게 엄마를 빼다 박았는지. (그녀의 자매 중 한명도 이 형질을 고대로 물려받았습니다. 자연의 신비란!!)

그녀의 결혼 스토리도 딱 그녀답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연극 배우였는데, 굉장히 에너지 넘치는 배역을 소화하는 아버지에게 퐁당 빠져들어 결혼에 이르게 되었단 말이죠. 그런데 아버지 마이클 폴리는 사실 배역과는 전혀 딴판의 성격, 조용하고 내향적인 인물이었단 말입니다. 충동과 착각에서 시작된 사랑이 이런 진실을 마주했을 때 비극으로 치닫는 게 보통이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뻔한 신파로 몰고 가지는 않습니다. 기대와 다르다면 그 차이에 자신을 맞춘 채 조용한 남편의 아내로서, 꿈을 접고 양육에 몰두하는 어머니로서 다이앤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녀의 평범함을 입증하는 인터뷰 가운데에서 친구의 미심쩍은 인터뷰가 귀를 간지럽히기 시작합니다. “뭔가 비밀이 있는 사람이었지. 왁자지껄한 사람이 아무도 모를 속내를 감추고 살아가는 그런 느낌이 너네 엄마한테는 있었단 말이야.” 그럼 그렇지. 뭔가 사고를 치긴 쳤나 봅니다. 가장 일반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건…역시 외도?

다시 연극배우로서의 꿈에 도전하고픈 다이앤은 남편의 동의 하에 몬트리올로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녀는 연극에 매진하죠. 이제 이쯤 되면 보는 사람들도 슬슬 감이 옵니다. 자신을 둘러싼 새로운 환경, 멀찍이 떨어져 있는 남편, 다시 에너지에 가득찬 나날들. 이쯤되면 누가 됐든 싱숭생숭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미심쩍지만 다이앤이 뭔가 엉큼한 짓을 했다고 직접적으로 영화는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내를 만나기 위해 직접 찾아간 남편과의 재회를 통해 이 부부의 사랑이 다시금 불타올랐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요. 그래도 의심의 여지는 여전히 있습니다. 혹시 외도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이 부부의 사랑에 대한 불씨가 된 건 아니었을려나요.

그리고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일단, 다이앤이 뭔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는 증언과 함께 재현영상으로 미스테리가 커집니다. 임신을 한 상태에서 누군가와 저런 전화를 하는 장면은 꽤나 꺼림칙하지 않나요? 그리고 낙태를 결심했던 다이앤은 갑자기 마음을 바꿔 늦둥이 딸을 낳았습니다. 다이앤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폴리 가족의 구성원으로 분주한 삶을 보냅니다. 그러다가 그녀는 암으로 비교적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하지요. 여기까지가 폴리네 가족이 익히 알고 있던, 어디에나 있을 법한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한 구석에 의혹의 실마리를 슬쩍 풀어놓았으면서도 이야기는 일단 어머니 다이앤, 아내 다이앤, 친구이자 동료 다이앤에 대한 회고로 일단락 되는 것 같긴 해요.

그런데 문제는 의외로 엉뚱한 곳에서 제기됩니다. 어머니의 빈 자리가 가져온 상실감도 그럭저럭 이겨내고 사라 폴리가 점점 자라날 무렵 이 가족들은 상당히 짖궃은 농담을 서로 건네기 시작합니다. 넌 왜 이렇게 아버지를 안닮았니? 아무리 봐도 넌 마이클의 유전자는 안 물려받은 것 같은데. 사실 아버지 본인이 듣고 있는 앞에서 이런 패륜적 농담을 주고 받는 게 상당히 골 때리긴 하지만 웃긴 것도 사실입니다. 마이클은 너무 택도 없는 소리라 농담으로 그저 웃으며 흘려 넘기고 말지요. 그런데 사라의 형제 자매들은 이걸 꽤나 강하게 믿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세명의 후보까지 두고 있었어요!! 너가 태어난 게 몇년도니까 어머니가 몬트리올에서 연극을 할 때 임신을 한 셈이고, 그 와중에도 너랑 닮은 사람은 요 사람들, 특히 이 사람이야 이 사람!! 그러니까, 이 영화는 정말로 다큐멘터리가 필요한 이야기로 변해갑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추적하는 것 말이죠. 그리고 대담하게도 사라는 해당 배우 제프에게 찾아가 다짜고짜 묻지요. 혹시… 우리 엄마랑 잤나요? 같이 연극할 때. 음, 절대 아니랍니다. 멋쩍어하면서도 한사코 부정을 하는 걸로 봐서는 안한 것도 같아요. 뭐 거짓말을 하려 했다면 애초에 촬영 자체에 응하지 않았을테니 저 진땀 어린 대답을 받아주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유력하지만 일단 보류, 정도로 넘어갈 수 있겠죠.

이게 이 영화의 매력적인 요소입니다. 다큐멘터리란 장르를 이용해 사실성을 확보하면서도 곤란하기 짝이 없는 질문을 파헤치거든요. 어머니의 불륜을 파헤치는 이야기라면 가장 먼저 드라마를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이어도 어머니를 이해하고 아니라면 한바탕 코메디를 곁들인 한바탕 소동극으로 블라블라… 그렇지만 각색에서 오는 진실의 파편들이 어쩔 수 없이 떨어져 나갈 수 밖에 없다면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공정치 않은, 혹은 창조자의 욕심을 위해 인간의 삶을 우롱하는 결과로 나아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아마 사라 폴리는 자신의 어머니를 담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덧붙이거나 빼먹기를 원치 않았을 겁니다. 보는 사람 또한 자신의 어머니를 그렇게 마음대로 조각내고 부풀린 이야기는 원치 않지요. 그 결과 나온 것은 가장 공정하고, 진실하고, 성실하고, 웃긴 작품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감독이라는 작자가 찾아와 카메라를 앞에 두고 물어봅니다. “ 우리 엄마랑 뭔 일 있었던 거 아니에요?” 질문을 받는 입장에서나 하는 입장에서나 골 때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진지할 수 밖에 없는 장르이기에 이런 이야기들이 더 웃길 수 밖에 없는거죠.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발을 빼니 사라는 수사의 범위를 더욱 더 확대시키기로 결심합니다. 당시 연극의 제작자였던 해리 걸킨을 찾아가기로 하고 양해의 메일을 보내지요. 그의 답장, 그리고 대면했을 때 느껴지는 친근함에서 그녀는 어머니에 대한 인터뷰가 잘 풀릴 것 같다는 느낌에 즐거워합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해리와 사라는 비즈니스 관계를 넘어 친구가 되었죠. 이제 물어볼 차례가 됐습니다. “ 우리 엄마가 제프와 무슨 일이 있진 않았을까요? 당시 연극 관계자로서 꼭 제프가 아니라도 어머니한테 그런 낌새가 있진 않았나요?” “아냐아냐. 그녀는 매력적이지만 너희 아버지를 몹시 사랑했지. 배우들과 그런 일은 없었어.” “혹시라도 그럴 가능성은 없었을까요?” “사실, 다이앤은 나와 사랑을 나누고 있었거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쑥 튀어나온 자백에 사라는 좀 당황합니다. 그리고 이해합니다. 아, 그래서 이 사람과 난 그렇게 서로 잘 통했던 거구나. 한꺼번에 두가지 정답을 찾은 셈이죠. 우리 엄마와 한 때 뜨겁게 사랑했던 남자, 그리고 나의 생물학적 아버지. 이 버거운 진실을 한꺼번에 맞닥뜨렸으니 혼란스럽지 않은 게 이상할 겁니다.  이 느닷없는 조우에 보는 사람 역시도 뭐라 말을 해야 할지.

이제 좀 이해가 갈 겁니다. 왜 영화 중간 중간 다큐멘터리의 제작 과정과 감독으로서 이 영화를 통제하는 그녀의 모습이 굳이 담겼어야 했는지 말입니다. 이는 사라 폴리가 다이앤의 딸이어서, 영화의 생생함을 꼭 살리기 위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그녀가 다이앤의 인생과 숨겨진 이야기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렇기에 이 영화는 다른 사람들을 취재하는 장면에서는 철저히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감독과 연기자의 거리를 유지하는 반면 마이클 폴리와 해리 걸킨 두 인물이 등장하는 곳에서는 사라가 같은 프레임 안에서 자주 모습을 비춥니다. 다이앤이 이루어놓은 관계 속에서 그녀는 결코 이야기 바깥에 머무를 수 없는 사람이니까요. 어떻게 보면 다이앤이라는 여자가 남겨놓은 최후의 부분이자 정수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이게 꼭 마지막 자식이어서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잠깐 헷갈릴지도 모르니 첨언하자면, 이 놀라운 사실이 이 영화의 촬영 도중에 알려진 건 아닙니다. 애초에 다이앤의 인생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영화제작을 염두해 둔 스토리 메이킹의 과정이 아니었으니까요. 사라와 해리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놀라는 것은 영화가 만들어지기 훨씬 전에 그들이 경험했던 일이고, 이는 본인들이 직접 드라마로 구성한 것일 뿐이죠.

사라는 이 사실에 심히 당황스러워합(했습)니다.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니라니, 그리고 난 어머니의 외도에서 태어난 자식이라니. 그렇지만 여기서도 영화는 위트를 잃지 않죠. 사라를 제외한 가족들은 다 한결같은 대답을 합니다. “그래? 어쩐지.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크크크크킄크)” 아 물론 이를 다이앤에 대한 가족들의 폄하와 불신으로 판단하시면 안됩니다. 그들은 그저 어머니의 성격과 여동생의 생김새에서 출발한 자신들의 유추가 진짜 들어맞는 다는 사실이 엉뚱하고 놀라워서 즐거울 뿐이니까요. 그렇다고 가벼이 여기는 것도 아닙니다. 사라의 자매와 형제는 이를 충분히 긍정하고 그 또한 어머니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죠. 섣부른 가치판단 대신 말이죠. 사실, 엄마가 바람을 폈다는 게 어쨌다는 말입니까? 오히려 사랑을 찾아 나설 줄 알던 여자로서의 용기에 감동받는 다른 딸도 있고, 아버지의 무뚝뚝함에서 그 책임을 찾는 사람도 있는데요. 그럴 수도 있던 활달한 성격의 다이앤을 어머니로서 그들은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 이게 결국 중요한 거죠. 그럼에도, 그들은 의견이 갈립니다. 이를 마이클 폴리, 사라의 법적 아버지에게 알릴 것인가 말 것인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는 법. 결국 사라는 혼자 살던 아버지를 찾아와 이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결과가 뻔히 예상되는 유전자 검사에서 해리 걸킨과의 부녀 관계를 99% 이상으로 확증받은 후 말이죠. “사실, 나 아빠의 친 딸이 아니래요. 물론, 그럼에도 난 아빠를 사랑하고 우리 사이는 변함없을 테지만.” 이 청천벽력에 사라 폴리가 겪었던 충격을 여기 늙고 조용한 또 다른 폴리가 고스란히 겪습니다. 이럴 수가. 이건 정말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진실입니다. 내가 가장 잘 안다 생각했고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이 이렇게 꿈에도 모를 진실을 안겨준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도 불쾌할 수도 있겠지요. 물론 그가 분노에 가득 차 저주를 퍼붓지는 않을 거란 걸 알지만요. 이 논픽션 스토리가 다큐멘터리 속 드라마로 재현되는 장면은 상당히 가슴 속 파문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마이클 폴리가 충격에서 벗어나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은 뭐였을까요? “이건 정말 놀라운 이야기다!! 이걸 글로 쓰고 싶다!!” 공교롭게도, 해리 걸킨 역시 거의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역시도 제작자로서 이 놀라운 소재를 어떻게든 영화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잠깐, 이거 뭔가 인간적인 결단이나 각오를 해야 하는 순서 아닌가요?

이 영화는 한 인간의 인생사를 조명하는 동시에, 창작자의 본능을 슬쩍 담아놓습니다. 원래 소설을 쓰곤 했던 마이클 폴리, 영화계에서 제작자로 활동했던 해리 걸킨, 그리고 현업으로 감독을 뛰고 있는 사라 폴리. 자기네 삶의 가장 은밀한 부분이고 오해받기 쉬운 부분을 기어이 이야기로 쓰고 마는 이들의 욕심과 열정이 이 작품이 태어날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니었을려나요. 어쩌면,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의 ‘우리’는 실질적으로 이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만들어 낸 이 세 사람을 뜻하는지도 모르죠. 동시에 그들은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가장 공정한 자격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녀를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남자, 다른 사람이 몰랐던 부분까지도 모두 알고 있다고 믿는 남자,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녀를 한번 알고 싶다고 궁금해하는 여자, 이 셋이 바로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남편인 내가, 그녀의 외도 상대였던 내가, 그 외도로 태어난 내가 이야기하겠다는데!! 그래서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는 다이앤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필수불가결의 요소였을지도 모릅니다. 나 말고는 그 누구도 그녀를 이야기하게 내버려 둘 수 없으니, 자신들이 직접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목소리로 그녀를 필름 안에 담지 않고서는 성이 차지 않았을거에요. 그리고 그것이 아마 그들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형태이기도 했을테구요.

  그리고 마이클 폴리가 다이앤의 남편으로서, 사라의 아버지로서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이야기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수용이나 이해에서 머무르는 게 아닙니다. “ 난 농담인줄만 알았는데. 사실 난 너가 나랑 꽤 닮았다고 생각했거든. 사실 그녀가 임신했을 때 그 이야기를 했어도 난 충분히 받아들였을거고 널 사랑했을거다. 다이앤이 그와 사랑을 나누지 않았다면, 지금의 너는 없었을 거 아니냐. 나는 지금의 너를 사랑하고 지금 너가 이렇게 태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항상, 너무나 감사한단다. 그에게도 참 감사해. 그가 아니었다면 내가 어떻게 이렇게 사랑스러운 딸을 얻을 수 있었겠니.” 오로지 아내를, 딸을 사랑한 사실에서 모든 선후결과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려 하는 이 남자의 부성을 관용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건 건방진 짓일 겁니다. 부모라는 존재가 베푸는 애정의 무한함은 유전자는 하찮은 조건이 되어버립니다. 아내의 외도 사실에 더 많이 사랑해주지 못했음을 자책하는 남자의 애정에서 도파민의 유효 기간은 그저 이론으로 남을 뿐이죠.  

이제 어떻게 사라 폴리가 다이앤의 인생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보다 확고히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녀는 다이앤이 어머니로서 낳은 딸입니다. 그리고 남편 마이클 폴리와 함께 정성스레 키운 모성의 흔적이죠. 그와 동시에, 사랑받고자 하는 여성의 주체적 욕망의 결과물입니다. 사랑받고 싶어하는 여성성의 증거로서 사라 폴리는 세상에 태어났지요.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여자로서 그녀가 인생에 남겨온 모든 발자욱이 사라 폴리라는 존재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사라가 아니면 결국 누가 다이앤의 이 모든 부분을 이해하고 담아낼 수 있을까요? “다이앤이라는 여자는…” 하고 말문을 누군가는 틀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 마침표는 사라 폴리의 것이어야 했고, 사라 폴리 또한 이를 알고 있을 겁니다. 가끔씩 아버지의 나레이션을 엄격히 디렉팅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당신이 알고 있는 아내로서의 다이앤 폴리가 그녀의 전부가 아니에요!’ 라고 꾸짖는 것처럼도 들립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사라는 어머니 다이앤과 친아버지 해리 걸킨이 그저 단순한 잠자리 대상이 아니었다는 걸, 거기에는 꽤 진한 감정의 교류가 있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다이앤이 그저 욕정에 시달려 바람을 피운 건 아니라는 일종의 변호와 자신의 출생에 대한 의미부여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결국 끝에 가서는 그가 가족으로서 편입될 수 없었던, 다이앤이 결국에는 아버지 마이클 폴리를 선택했고 그는 결국 한때의 뜨거운 열병을 함께 앓았던 사람으로 남겨질 수 밖에 없는 해리 걸킨의 쓸쓸함을 보여줍니다. 이는 친부인 해리의 외로움을 달래주려 했던 것이었을까요? 오히려 저는 이것이 사라의 아버지 마이클을 향한 배려처럼 보였습니다. ‘아버지, 가장 사랑했던 여자가 다른 남자와 사랑을 나눴다는 사실에 혹시 상처받았을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결국 어머니가 가장 사랑했고 마지막까지 함께 있기로 했던 남자는 마이클 폴리 당신이었어요.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의리와 순정을 결코 져버리지 않았어요. 아파할 필요 없어요. 그대로 계속 그리워하고 사랑해도 괜찮아요.’ 이 영화의 포스터를 장식하고 있는 건 다이앤 폴리와 마이클 폴리입니다. 어쩌면, ‘우리’란 서로 가장 사랑했던 이 둘을 뜻하는 건지도 모르죠.

이리도 파란만장했던 진실을 추적하는 이야기의 결말은 뭘까요?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어쨋든, 혹은 그러니까, 사라, 마이클, 해리, 다른 자식들과 친구들은 모두 아련하게 그녀에 대한 향수에 젖으며, 그녀가 남긴 각자의 가슴 속 공백을 한번씩 어루만지게 하고 있잖아요. 그들은 여전히 그리워해요. 그리고 사랑합니다. 다이앤 폴리라는 여자는 이렇게 창작을 업으로 삼는 이들과 아직도 그녀를 생생히 곁에 붙들어놓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통해 필름에 담겨 영사기 빛 속에서 활짝 웃고 있군요. 그리고 이것이 이 영화의 제목이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가, 당신이 듣게 될 이야기가 아닌 이유일 것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그리움과 애정을 담은 이 영화는 그들만의 이야기로 남지 않았어요. 결국 이 영화는 우리 각자가 모두 주변의 누군가에 대해 애잔함과 따스함을 담을 이야기를 새로 하기를, 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모두는 사랑하면서도 완전히 알지 못하는 사람이 한 두명씩, 혹은 주위에 한 가득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 제가 극장에서 본 다큐멘터리 장르 영화는 다들 대단한 완성도와 재미를 자랑하는군요. 어쩌면 이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한계를 극복하고 상업영화로서 충분한 가능성을 제기하는 반증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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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29 21:44
수정 아이콘
좋네요. 잘 봤습니다.
Friday13
14/03/29 23:11
수정 아이콘
이거 볼 계획이 있는데, 어디서 보셨나요?
王天君
14/03/29 23:14
수정 아이콘
지금은 스폰지 하우스랑 마포구 상상마당에서 하고 있네요. 어디서 봤는지는 까먹었습니다. 필름포럼이었나 스폰지 하우스였나...
Friday13
14/03/29 23:15
수정 아이콘
역시 믿을건 스폰지 하우스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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