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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3/16 19:26:07
Name 당근매니아
Subject [일반] 크라잉넛 7집 'FLAMING NUTS' - 가사와 듣는 음악(2)
*반말 양해 부탁 드립니다.









앨범 평을 쓰기로 했다. 단, 규칙을 두 가지 정해서 쓰기로 했다.

1. 앨범을 켜놓고 들으면서 쓴다.
2. 한 곡의 평은 그 곡이 끝날 때까지로 한해 쓴다.

그러니 문장이 중간에 끊겨버려도 양해해주시라.




그 두번째는 크라잉넛 7집. FLAMING NUTS.

1번 트랙. '해적의 항로'는 이래저래 흥겹고 잘 쓴 곡이다. 공연용으로도, 앨범용으로도 훌륭한 사운드와 구성. 이러한 색채의 곡은 크라잉넛 앨범마다 한두 곡씩 끼어있는데 이 곡은 그 중에서도 잘 된 축에 들지 않나 싶다. 어찌되었건 15년 경력을 자랑하는 밴드가 제대로 '신나는 음악'을 만들려고 하면 이 정도가 나온다는 증거 같은 느낌. 곡 길이는 3분으로 길지 않고 구조나 멜로디도 단순한 편이긴 하다. 다만 중간의 멤버들간 대화하는 형식의 나레이션이 자연스럽게 들어가 있고, 그 부분이 주는 쾌감이 꽤 크다. 한 앨범의 첫 곡으로서, 그 방향성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대책 없는 모습이 좋은 밴드니까.

2번 트랙. 'Give me the money'는 나름 이 앨범의 타이틀곡이고 네이버 뮤직 쪽에서 보면 재생 빈도도 가장 높은 모양이다. 별로 내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이상과는 관계없이 현실적으로 돈에 매여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그려낸다는 취지 자체는 이해하지만, 거기에 딱 어울리는 메타포가 들어있는 것도 아니고 기발한 멜로디나 상승 작용이 일어나는 포인트도 없다. 이건 UMC/UW의 앨범에 비슷한 내용으로 쓰여진 곡과 비교했을 때 그 차이가 명확히 드러난다. 아마 2집의 '내 돈 어딨냐' 였을 건데.... 그 곡 역시나 반복 구절이 많아서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곡이지만, 크라잉넛의 이 곡보다는 재밌었다. 애초에 이런 소재의 곡이 요새 너무 많다. 차라리 '해적의 항로'를 타이틀곡으로 삼는 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이런저런 아쉬움이 스쳐간다. 가사에 재치라도 있었으면.

3번 트랙. '레고'는 꽤 재밌는 비유를 채용했고 그걸 곡 내내 한결같이 밀어부쳤다. 레고라는 것의 특성과 자신을 비교하는 내용이 계속 펼쳐지는데 이게 확 와닿거나 감정선을 건드리지는 않는다. 다만 발상 자체의 참신함이 지탱해 주고 있는 꼴. 후렴 부분에서 '~가 될래 GO! 레고레고~'하는 언어유희적 포인트를 주었는데, 처음 들었을 땐 무슨 소리를 하나 했으나 이 역시 다양하게 읽힐 수 있는 부분인 건 재미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어제 평했던 가을방학 '편애'가 보여주는 절묘함에는 확실히 미치지 못한다고 봐야 할 듯. 중간에 사랑 얘기는 갑자기 왜 들어갔는지 이해가 어렵다. 차라리 2집 시절의 감성으로 써내려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그건 그 나름의 카타르시스가 있는 것이었는데.

4번 트랙. '미지의 세계'는 단순한 가사에 곡 길이가 길어서 듣기 지루한 면이 있다. 반복구절 일부에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오프닝 곡의 일부를 차용한 게 아닐까 했는데 이건 확실치 않아서. 몇줄 되지 않는 가사로 곡을 써내려간 것이라고 한다면, 이전 앨범에 수록된 '비둘기'라든지 '게릴라성 집중 호우' 뭐 이런 것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렇게 처지는 멜로디를 깔고 반복하는 건 크라잉넛이 처음 보여주는 방식이라 당황스럽다. 결정적으로 재미있지 않다. 봐라. 여기까지 썼는데 아직 3분 밖에 안되어서 남은 2분 동안 무얼 적어야 할까 오히려 고민하게 되지 않는가. 차라리 공연장에서 연주 자체를 듣는 감각으로 몸을 맡긴다면 모를까 앨범으로, 혹은 mp3p 등으로 듣고 즐기기엔 주목할 포인트가 너무 적다.

5번 트랙. '5분 세탁'은 앨범의 타이틀곡인 give me the money가 했던 것과 사실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현실은 비참하지만 어찌되었건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 나아지지 않겠느냐 하는 크라잉넛식 희망가. 멜로디 구성이나 곡을 끌어나가는 방식 등은 이 곡이 훨씬 크라잉넛스러우면서 시원하다. '니가 취하고 비틀대고 방황하고 실수해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무너져도 괜찮아 누구나 한번쯤은 바닥치니  죽는단 말 대신 웃는단 얘길해봐'를 빠르게 끊어갈 때, 뭐랄까... 친구들에게 둘려싸여 위로 받는 그런 기분이 드는 건 나 뿐일까. 오래된 친구들이 등 두드려 주며 '괜찮아 병신아. 울지마' 하는 느낌을 이 곡에서 받는다. 크라잉넛이 가장 잘해오던 사운드에 자신들의 캐릭터성까지 제대로 부여한 곡이다. 사실 이 곡에서 제일 그다지인 부분은 제목과 연관하여 사용된 '세탁'이라는 모티브인데 그 역시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게 되어버린다. 오히려 그 덕분에 살아난 곡이 아닐까. 4분 즈음에 들어서면서 보컬 라인을 겹쳐 가는 것도 '다죽자' 등에서 보여주던 그 모습 그대로라 마음에 든다. 자연스럽게 흥얼대고 따라부르게 되는 곡으로는 이 앨범 전체에서 1순위가 아니었나 한다. 곡의 마무리 또한 간결한 기타 연주로 깔끔한 편. 소리 점점 뮤트 시키면서 끝내던 '베짱이' 시절과는 다르다.

6번 트랙. '땅콩'은 크라잉넛 앨범마다 하나씩 들어가있는 약빨고 달리는 곡인데 그 중 가장 좋은 편에 든다. 병맛 가사도 기대한 그대로고, 달리는 방식도 1집에서부터 이어지는 바로 그 감성. '말달리자'로 크라잉넛'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즐겁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대체 타임지가 선정한 10대 식품이 왜 나오는 건지 알 순 없지만, 그 부조화가 자고로 멋지지 않는가. '해적의 항로'와 세트로 들으면 아주 적절하리라 생각한다. 아마 드러머를 맡고 있는 양반이 부른 것 같은데 의외로 이런 지르는 곡에 적절하다.

7번 트랙. '새신발'은 가사만 놓고 보면 크라잉넛보다는 밝고밝은 노래 하는 다른 밴드에 어울리는 게 아닐까 싶지만.... 얘들이야 뭐 앨범에 이런 거 하나씩 끼워넣은 지 오래되었다 사실. 물론 '순이 우주로'를 제외하고는 내 취향에는 그다지 맞지 않은 편. 그렇게 특색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들의 강점도 아닌 느낌이 강하다. 차라리 심수봉이 피쳐링했던 '물 밑의 속삭임' 같은 곡으로 한 트랙을 만들어보는 건 어땠을까. 어쩌면 그냥 내가 컨트리풍 음악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탓에 마음에 들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렇게 재미 없는 가사는 좀 아니지 않나. 애초에 이쁜 가사 잘 쓰는 밴드도 아니고. 이 곡은 '황금마차'나 '밤이 깊었네'를 계승하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결과물은 사실 '튼튼이의 모험' 수준이 아닌가 싶다. 그냥 들어도 재미없고 가사를 음미하며 들어도 나오는 육즙이 없는 뭐 그런. 달리지 않는 크라잉넛 곡 중 성공한 것들은 묘한 맛이 있었다.

8번 트랙. '취생몽사'는 이래저래 2집의 '서커스 매직 유랑단'을 떠올리게 하는 사운드와 가사로 구성된 곡이다. 근데 무언가가 부족하다. 무엇이 빠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뭔가 중요한 게 하나 빠져있는 느낌이 든다. 단순히 악기구성을 비슷하게 따라가고 유명한 풍류객들 이름을 끼워넣는다고 해서 그 느낌을 낼 수 있는 건 아니지 않겠나. '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 '마시자'만 못하고, 예전에 많이 말하던 조선펑크 느낌을 주고 싶었다면 '서커스 매직 유랑단'만 못하다. 훅도 강렬하지 않고.

9번 트랙. 'self happy chrestmas & new year' 인데 이 곡의 제목도 처음 의식했을 뿐더러 처음에 지르는 괴성이 제목을 읊은 거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세팍타크로 어쩌고 하는 줄 알았지. 의외로 가사가 괜찮은 편이다. 특히 '되돌아 보지마. 지금을 위해 바쳐 온 내 인생에 땅은 얼어도 눈물은 말라도 나 혼자일 지라도' 부분은 이 앨범 전체적으로 부족했던 가사와 멜로디 라인의 상승 작용을 보여주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다만 이 이외의 부분에서 가사전달력이 꽤 떨어지는 편이라, 비슷한 감성을 공유하는 다른 곡들 중에서 가장 좋은 가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온전히 즐기기 어려웠다. 내가 가사를 처음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또한 그런 연유가 아니었을까. 이 앨범 리뷰를 쓰면서 찾아낸 가장 큰 발견은 이 곡이 아닌가 싶다. 가사집을 펼쳐놓고 볼 때에 완전히 감상할 수 있는 곡이다. 근데 정말 가사가 뭉개져서 들리긴 한다.

10번 트랙. 이자 마지막 트랙인 '여름'은 어째 바로 앞의 곡과 계절이 6개월 휙 돌아갔다. 이번 앨범의 앨범 커버와는 가장 비슷한 감성을 전해주는 게 아닌가 싶지만, 앨범 커버엔 마체테 아저씨라서 사실... 아무래도 곡이 약한 감은 있다. 중간중간 들어간 타국언어가 그냥 분위기 내는 정도로 사용되는데 이걸 나 또한 찾아본 적이 없다보니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다. 사운드나 멜로디적인 면에서는 김인수 작사작곡인 곡들이 가지는 특징적인 사운드를 가지고 있는데, 가사 내용은 '새신발'과 다른 점을 찾기가 어렵다. 이 곡만의 특색도 애매할 뿐 아니라 앨범 전체가 성긴 느낌을 드는 주범 중 하나 아닐까.

11번 트랙. 'hidden track'으로 여름에서 이어지는 짧은 곡이 들어있는데 존재의의는 사실 알 수 없다. 이걸로 감상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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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회원1
14/03/16 19:53
수정 아이콘
이 앨범 좋아합니다. 저도 해적의 항로가 타이틀이 되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들었는데 저만 한게 아니었군요 ^^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곳은 Self Happy Christmas & New Year 입니다.
취생몽사는 확실히 서커스매직유랑단 보단 별로인 곡이라는 점도 동의하고요.
저 신경쓰여요
14/03/16 21:10
수정 아이콘
땅콩이라는 곡이 참 크크 재밌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신선함보다는 노회함이 많이 보이는 앨범인데, 그래도 '매너리즘'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있는... 나름대로 열심히 만든 앨범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네요.
14/03/16 22:22
수정 아이콘
오케이목장의젖소앨범을 매우 아끼는 팬입니다. 젖소앨범만큼은 아니지만 자주 듣고 좋아하는 앨범입니다 크크크
젖소,불편한파티, 최근앨범 순으로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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