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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2/27 16:00:51
Name 당근매니아
Subject [일반] 법원은 언제나 그 정의로움을 보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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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법전을 들춰볼 일이 없을 것 같다가, 법을 공부하게 된 지 1년이 좀 넘었습니다. 민법과 특허법, 상표법, 디자인보호법을 보았지요. 전 특히 민법을 좋아합니다. 법문들은 엄정했고 논리적이었으며 사안을 쪼개고 분리해 다시 쌓아올리는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잘 모두어 올린 판례는 하나의 조각 같을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네트 상에서도 그러한 법의 매력이 흠뻑 빠져 있는 사람들을 가끔 만납니다. 예전에는 무슨 얘기를 하는지 제가 알아듣지 못해 넘어갔겠지만 이제는 그 이야기를 같이 나눌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럴 때 이건 일종의 유희가 되기도 할 겁니다. 법은 많은 것들 ㅡ 거의 모든 것들을 사리에 맞게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당사자가 된 후에야 보이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 조문과 조문 사이에 얼마나 많은 것이 숨겨져 있는지, 얼마나 많은 것이 '법관의 재량'인 영역으로 남겨져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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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9414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9415

예컨대 이런 것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첫 단추가 될 수 있겠지요. '불법파업'에 대한 사용자 측의 노조 상대 손해배상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헌법은 33조 1항에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그 하위법령들은 이를 구체화하여 노동조합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규정합니다. 그 법령들과 법리들을 통해 최종적으로 대법원이 내놓은 정당한 노동쟁의의 기준은 이렇습니다.  '주체가 단체교섭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여야 하고, 단체교섭과 관련한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 등을 목적으로 해야 하며, 시기와 절차도 법령에 따라 정당하고, 폭력이나 파괴 행위를 수반하지 않아야 한다.'
단체교섭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라 함은 법령이 정한 바에 따라 온전하게 설립된 노조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과거엔 한 개 회사체에 한 개 노조만이 허용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용자가 흔히 말하는 어용노조를 세우면, 제대로 된 노동조합이 추가로 서는 건 불가능했고 그렇게 자생하게 된 노조들에는 불법 노조 딱지가 붙었습니다. 불법노조가 쟁의를 하면 그건 불법 파업이 됩니다.
단체교섭과 관련한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을 목적으로 하라는 것은, 임금과 노동시간 등 근로와 직접 상관 있는 요소에 대해서만 쟁의하라는 겁니다. 이번 철도노조를 공격해 들어온 논리가 저것이었습니다. 왜 경영진의 권한을 침범하려 하느냐, 왜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려 하느냐 하는 것이었죠. 웃기는 건 정말 자신들의 근로조건에 대해서 쟁의를 하게 될 경우 '밥그릇 싸움'을 하려 든다 라는 비난을 듣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우습게도 이번 철도파업에서 철도노조는 '이건 우리 밥그릇 싸움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월급 더 받자고 하는 게 아니다' 라고 밝혀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외의 조건들은 더 이야기하는 게 무의미하지 않을까 합니다.
불법파업의 정의를 요리저리 다 피해가면서 파업하기가 얼마나 고단한지는 직접 찾아보시는 게 빠른 부분들도 있을 겁니다. 저걸 피해가지 못했을 때 요즈음 국가와 기업은 노조와 노조 간부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합니다. 그 액수는 끔찍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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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gyozisog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127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번엔 불법 시위 이야기입니다. 일전에 대자보에 관련한 '서강대 총학생회장의 글'을 퍼온 적이 있습니다. 고명우 씨인데, 몇달 전에 페북에 자신의 계좌번호를 올렸었습니다. 집시법 위반으로 벌금형이 나왔는데 그 몇백만원을 감당하기 어려웠거든요. 뭘 때려부수거나 한 것도 아닙니다. 도로점거, 확성기 사용 등으로도 우리 법원은 수백만원의 벌금을 부과합니다. 더불어 시위는 사전신고제입니다. 이건 올해 2월 3일 헌재가 다시 한번 확인한 일이기도 합니다. 시위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사전에 관청에 신고하고 '허가'에 가까운 인가를 받아야 합니다. 같은 장소에서 둘 이상의 시위가 일어나는 것 또한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를 이용해 삼성 등은 어용 단체를 만들고 매일 집회 신고를 먼저 넣어 삼성 본관 앞에서 시위가 일어날 가능성 자체를 원천 봉쇄합니다. 물론 신고는 하고 그로써 다른 단체들의 시위는 불가능해지지만, 신고한 집회가 열리는 일은 없습니다. 거기에서 신고를 하지 '못한' 집회를 열 경우 그건 불법 집회가 됩니다.

https://www.lawtimes.co.kr/LawNews/News/NewsContents.aspx?serial=44856&kind=AA

그리고 그런 불법 집회들은 이런 기준에 따라 양형이 된다는 것이죠. 비폭력 '불법'집회가 얼마까지 구형 받을 수 있는지, 비폭력 '불법'파업이 얼마까지 구형 받을수 있는지를 보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입니다. 저러한 법리들을 기초로 하여 이러한 촌극이 벌어집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80392.html

'다함께'는 XX 같은 집단이지만 이건 꽤나 재밌는 일입니다. 몇몇 사안들 앞에서 不法은 고무줄과 같습니다.




/3

너무 정치적인 이슈만 다룬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글을 돌려 봅니다. 이번엔 이혼 위자료 관련한 내용입니다. 이 부분은 실례를 들어 보도록 하지요. 일전에 썼던 글을 대강 정리해서 인용하는 것으로 단락을 완성해볼까 합니다.

'가정이 있는 남자와 자식만 있는 여자가 서로 사랑을 속삭이는 메일을 주고 받고, 남자는 여자에게 집, 가구를 사주고 같이 산행을 다니고 여행을 다니고 심지어는 여자의 아이가 졸업할 때 식에 따라가서는 사진까지 찍어줍니다. 남자는 그것이 사업상 필요해서 한 일이었으며 외도가 아니었다 주장합니다.
이혼 소송이 걸려 그 사진들과 메일들을 외도의 증거로 제출하고 위자료를 청구했을 때, 재판정에서 판사는 그 증거들로는 외도를 증명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혼의 귀책사유 또한 일방에 있다고 결정내리지 않았습니다.
대체 그 외도라는 건 무엇으로 증빙되어야 하는 걸까요.외도를 외도라고 말하려면 어떤 행동들을 증거해야 하는 걸까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 그야말로 콘돔이라도 찾아다가 제출해야 하나요. 섹스를 해야만 외도이고 혹은 다른 스킨십을 해야만 외도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건 외도도 뭣도 아닌 일상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일까요. 이 사회는 언제부터 이렇게나 관대했었을까요.
그렇게 위자료가 산정됩니다. 전에 불법행위 쪽 공부하면서 보니 상해 입히거나 하는 경우에 치료비에 일실수입 같은 거 견적 내면 몇백 몇천 금방 가더군요. 변호사 말로는 판례 상 이혼 시 위자료 상한이 3천 정도인데, 그게 20년 넘게 상습적으로 폭행 당하면서 산 경우가 3천입니다. 상대 외도로 이혼 시 뭐 그런 건 얼마 쳐주지도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부부관계에서 한 쪽이 저지른 외도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크나큰 상처가 될 수 있는지, 이 사회는 별로 그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다시 0

법의 문장들은 일견 완성되어 있고 완벽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법을 이용해 판결을 써내려가는 것은 인간입니다. 그 부분에서 맹점이 생깁니다. 불법 집회와 파업을 규정하는 법리는 판사들의 손에 맡겨져 있고, 외도 정도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재판을 진행하고 위자료를 산정하는 것도 사람의 몫입니다. 그렇게 50년 인생이 서른살 먹은 판사의 혀와 펜으로 재단되는 일이 생기는 것이 사실입니다.
법이 아름다운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전 민법 '제3자를 위한 계약' 파트 같은 걸 읽을 때에 종종 감탄을 합니다. 그러나 법전과 현실의 괴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한 일일 겁니다. 그런 상황들을 직접 겪어보면 그 두려움은 더욱 커집니다. 판례의 당사자가 되보지 않은 채, 법정의 엄정함만 앵무새처럼 이야기하는 것처럼 비웃음 사기 좋은 일도 몇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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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27 16:03
수정 아이콘
변리사 준비하시는군요. 한때 공부했었고 몇년동안 관련 업무를 했었지요 흐흐. 민법은 여전히 재밌습니다. 특허법은.. 실무를 해서 그런지 여전히 머리속에 남아있네요. 다행이.

법원이 정의로운가에 대해서도 의문이지만, 저는 법이 정의로운가에 대해서도 늘 고민합니다. 법은 지키면 좋은것인지, 지켜져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모호합니다. 저 혼자만 살 때는 그 모호함이 크게 와닿지 않곤 했지만, 이제 제 아이가 생겼고 그 아이가 커나가며 법에 대해 물을 때 저는 어떤 대답을 해줘야 할지에 대해서 더욱 고민하게 될 것 같습니다.
Rorschach
14/02/27 16:04
수정 아이콘
전 정의로움을 보증하는 것은 법의 영역이지 법원의 영역이 아니라고 봅니다. 법원이 정의로울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니고 일단 법이 정의롭게 구성이 되어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지요.
14/02/27 16:09
수정 아이콘
한국과 일본에만 있는 법조항들이 꽤 있다고 들었는데, 이것 역시 일제의 잔재인건지
14/02/27 16:30
수정 아이콘
네. 흔적 맞습니다. 잔재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한게, 일본의 법 체계 자체가 나쁜건 아니라서요. 잘 만들었죠.

특히 특허법은, 놀랍도록 닮았습니다. 요즘엔 좀 달라졌지만 조문 기본 골격이 거의 같아서, 한국 특허법 아는 사람이면 일본 특허법 해석이 어렵지 않습니다. 미국, 유럽, 중국에 비해서는요.
당근매니아
14/03/01 17:19
수정 아이콘
독일쪽 법 체계를 일본이 받아들여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고, 그게 일제를 거쳐서 구민법에 녹아있었지요. 민법을 새로 만들면서 구조는 조금 상이해졌지만 기본적인 법리체계는 독일-일본-스위스 등등의 짬뽕이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민법 교수님들 방 가보면 독일법전이 꽂혀있는 경우가 많더라구요-_-; 아래에 SCV 님도 말씀하신 것처럼 특허법이나 상표법은 일본쪽 변리사 시험 문제를 그대로 가져와서 풀어도 될 정도고, 디자인법은 스위스 쪽 법리를 많이 가져왔더군요.
긍정_감사_겸손
14/02/27 16:14
수정 아이콘
법원이 정의로운가? - [리갈하이] 라는 법정 드라마(코믹 일드)를 추천합니다.
법은 이기기위한 수단일 뿐 신이 아닌이상 정의,진실이 무엇인지 알수없고 알려고도 하지마라. 재판에서 이기면 장땡이다.
증거와 판례에 따라 승부를 보는 경기장이 법원이다.
소독용 에탄올
14/02/27 16:22
수정 아이콘
법의 정당성은 해당 규정이 '합리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라고 믿는 상당한 수의 사람들을 기초로 합니다.
반면 정의로움은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가치'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정당함과 정의로움은 같은 의미가 아니기 때문에, 정당한 행위는 정의로운 행위가 아닐 수 있습니다.
더욱이 상당한 수의 사람들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은 상당한 수의 사람들에 의해 당연하다고 믿어지는 것을 공유하지 않을 수 있으며, '가치'도 공유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법이 혹은 법원이 언제나 정의로움을 보장하는가? 에 대한 답은 아니오 일것입니다.
법은 상당한 사람들에 의해 수용된 합리성에 기초한 당위에 기초해서 정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당함은 정의를 보장하지 않으며, 동일한 당위 혹은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정당성도, 정의도 없을 수 있습니다.
법원은 법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관료들의 조직으로서, 명시적인 법조문 뿐 아니라 해당 사회에서 해당 관료집단이 구성되어 온 맥락에 따라서 그 내적인 당위와 가치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가치나 당위가 모든이에게 공유된다는 보장은 없으며, 따라서 법원 역시 언제나(그리고 아마도 모두에게) 정의로울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법원은 법을 다루는 기술관료집단화 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이 차이는 더 커질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상당수의 사람들과, 이에 포괄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나타날 수 있는 당위나 가치의 차이를 줄이거나, 상당수의 사람들의 포괄범위를 넓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법이 상당수의 사람들이 연속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는 당위나 가치와 보이는 차이나, 법원이 상당수의 사람들이 가지는 당위와 가치와 보이는 차이를 감소시키기 위한 다양한 시도도 지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현재 보다 오해가 적고 읽기쉬운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입법 및 기존법령의 개선, 법령에 대한 홍보, 법원 구성에서 다양성 추구와 같은 부분은 이를 위한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입법과정에 상당수의 사람들이 가진 당위나 가치가 반영되는것도 무척 중요한 일이며, 이는 법이나 법원이 아닌 정치에서의 변화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감모여재
14/02/27 16:25
수정 아이콘
법을 하는 사람으로서 제 생각을 얘기해보자면 - 과연 세상에 정의란 존재하는가? 만약 존재한다면 정의란 무엇인가? 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사실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온전한 정의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이고,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어설프게 정의를 내세워 법원이 판단하는 경우 더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치적 압박이 등에 의해 법리를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이혼 소송에서 위자료만 가지고 얘기하는것은 사실 옳지 않은 것이, 위자료보다도 재산 분할이나 부양료 등의 청구를 통해서 균형을 맞추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위자료는 온전히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인데 이를 적극적으로 값을 매겨 인정하는게 쉽지 않죠. 일실수입하고는 애시당초에 개념이 좀 다르다보니... 그리고 외도로 인한 이혼의 경우, 실제 사건들을 보면 대부분 쌍방에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정법원 판사님들께서 많이 하시는 말씀이 '외도는 파경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라는 얘깁니다. 바람피는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한 쪽 입장에서만 정의를 얘기하기 힘든 케이스죠. 이 경우도.
집시법은 대표적인 악법이고 근로기준법 역시 고쳐야 할 부분이 많은 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 법원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만든 법을 적용해서 심판하는 일을 할 수 있을 뿐이고, 그 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국회에서 개정을 하거나 헌법재판소에서 위헌법률심판 등을 통해 다투는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법원의 문제가 비단 그 점에 국한된 것은 아니고 정치적, 경제적인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부분이 더 큰 문제점이라는 것은 인식하고 있습니다만 - 원론적으로 얘기하자면 그렇다는 것이지요.
법철학을 공부해보셨다면 아시겠지만 결국 법관이 법을 적용하는 기계가 되어 대전제와 소전제로부터 가장 올바른 단 하나의 결론을 찾아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재량영역이 있는 것인지는 항상 논란의 여지가 있어왔던 부분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차라리 법관이 법을 적용하는 기계가 되는 편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더 올바른 판결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레지엔
14/02/27 16:53
수정 아이콘
마침 궁금한 게 있었는데 감모여재님의 리플에 내용이 있어서 질문을 좀 드리고자 합니다. 마지막 문단에서 말씀하신 법관의 포지셔닝 문제의 경우 법철학에서도 주요하게 다루며 일반 상식으로도 상당히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저 역시 감모여재님처럼, 법관(제 표현을 쓰자면 '법리적 판단의 전문가')은 철저하게 전문적 영역에서의 내적 논리에만 입각하여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이 내적 논리를 사회적 발전과 맞물리게 하는 것은 별도의 영역에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이건 제가 법률을 의학처럼 보기 때문에 그러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현실에서, 특히 법관들 본인에 의해서 '법률가는 인간이어야 한다'라는 주장이 더 강하고 스탠더드에 가깝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봅니다. 어떠한 인센티브가 '법률가는 인간이어야 한다'라는 주장을 강화하고 있을까요?
김기만
14/02/27 16:30
수정 아이콘
"법은 거미줄과 같아서 약한 파리들은 잡혀버리고 기운센 풍뎅이는 뚫고 지나가 버린다"

라는 문구가 생각나네요.
앨런페이지
14/02/27 17:13
수정 아이콘
법이 정의로움을 보증하지는 못하지만 추구는 해야겠죠. 다만 정의로움이란 것에 대한 정의가 다를 수 있으니 그 사이에서 가장 높은 성취지점을 잘 찾아야 할겁니다. 법률가도 인간인 이상 정의로움에 대한 보증이 언제나 이루어지긴 힘들겠죠.;
도들도들
14/02/27 17:23
수정 아이콘
'법'과 '법리' 그리고 '법관의 재량'은 구별됩니다. 법리라는 것은 법이 불완전할 때 관련법의 체계나 정신 또는 사회통념을 고려하여 법원이 누적 발전시켜온 원리를 말하는 것이구요. 이와는 별개로 법관의 재량은 구체적 정의를 위하여 법 또는 법리에 의해 부여받는, 일종의 하위개념입니다.

사례1은 법리의 불완전성, 사례2는 법 자체의 불완전성, 사례3은 법관 개인의 재량의 불완전성을 지적하고 계신데요. 그 층위가 좀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법과 법리의 불완전성은 충분히 개선가능하고 또 개선되어야 하지만, 법관의 재량에 의한 불완전성은 재판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고 나아가 인간의 불완전성과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양자를 함부로 연결짓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판례들, 특히 민사법의 판례들을 보다보면 아름답게 맞아떨어지는 법리들에 매혹되는 순간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민사 법리들은 계약자유나 소유권절대 등 자본주의 원리에 의해 추론되는 것이 대부분이고, 이것은 대등하고 합리적인 양 당사자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논리적 아름다움을 넘어선 현실의 치열함까지 담보하고 있지는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논리적으로는 덜 아름답더라도 사회적 정의를 투박하게 바로 관철시킬 수 있는 일군의 사회법들이 등장한 것이고, 위 사례에서 제시된 노동법도 그 중의 하나인 셈이죠. 오히려 물어야할 지점은 민사법리를 적용하지 말라고 기껏 덜 아름다운 사회법을 만들어놨더니 왜 그대로 민사법리를 적용하고 있는지가 아닐까요. 위 사례에서 파업손해배상 같은 것 말이죠.
당근매니아
14/03/01 17:17
수정 아이콘
1,2,3을 저는 별 생각 없이 구분해서 썼는데 그렇게 정리해주시니 생각이 깔끔해지네요. 사실 제가 본문에 하나 더 쓰려다가 잊은 것이 재판의 장기화로 인한 약자의 약자화였습니다. 변호사비용과 가압류비용, 기타 생활비와 그런 것들이 재판 기간 내내 발목을 잡다보니 재판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돈 있는 놈이 이기는 싸움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잦더라구요. 위의 기사에도 그런 얘기가 얼핏 나옵니다만.... 이걸 어떤 식으로 고쳐나갈 수 있을 지 잘 모르겠습니다. 승소 시 받아낼 수 있는 변호사 비용 상한을 올려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사악군
14/02/27 17:36
수정 아이콘
냉정하게 말해서..상해 같은 거에서 치료비에 일실수입 같은 거 견적 내면 몇백 몇천 금방 가죠. 이건 실제로 발생한 물리적인 손해액입니다.

상대방의 외도로 인한 정신적인 손해액이라는 건 평가하기가 어려운 겁니다. 사실 저는 2천, 3천이라는 금액이 결코 그렇게 가벼운
금액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위자료라는 건 정신적인 손해를 보상해주기 위한 겁니다. 바꿔말하자면 기분나쁘게 한 값을 주는 거죠.
각자의 기분과 정신적 손해에 대해 가치평가는 엄청나게 다를 수 있지만 객관적인 평가는 그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3000만원이라면 월300받는 직장인이라면 10개월을 꼬박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하는 돈이고
사실 많은 매맞는 부부사이에 있어 부부의 전재산이 3000만원은 커녕 300만원도 안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 사회는 외도와 그로 인해 상처받는 배우자의 감정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적정한 평가를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당근매니아
14/03/01 17:15
수정 아이콘
사례 자체가 제 부모의 건인지라 생각이 많아서 답을 늦게 답니다.
제가 1심을 거치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A라는 진실이 있고, 한쪽에서 A를 말하고 한쪽에서 C를 말하면 판사가 B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움직이려 하는 방식으로 이혼 소송이 진행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실 대개의 경우엔 이런 시각과 사악군 님이 말씀하시는 쌍방과실이 맞을 겁니다. 근데 저희집 상황 같은 경우엔 그렇게 볼 수 있는 건덕지 자체가 없는 상황이었고-_-;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대는데 어머니가 판사와 조사관에게 매우 가부장적인 사고에서 발현되는 발언들을 몇시간씩 듣고 오셨다 하니 속된 말로 빡이 치더군요.
위자료에 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걸 일종의 전재산 액수 대비 퍼센테이지로 가야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말씀하신 것처럼 전재산이 300만원이 안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20억 있으면서 그러는 경우도 분명히 있는 거거든요.
치킨너겟
14/02/28 01:57
수정 아이콘
전 집시법과 저 노동관련법들을 더 뜯어고쳐야된다고 봅니다. 가끔 저런거보면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인지 헷갈려요
nicdbatt
14/02/28 02:13
수정 아이콘
잘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에는 법과 법리의 불완전성을 이용해 먹는 놈들이 제일 문제.
법과 법리의 부당함으로 인해 어쩔수 없이 벌어지는 부조리는 그나마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그런 거 이용해서 사람 잡고 돈 버는 인간들이 제일 싫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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