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4/02/12 22:05:26
Name 헥스밤
Subject [일반] 환유로서의 예술, 인사이드 르윈
환유로서의 예술. 인사이드 르윈.



스포일러가 아주 한가득합니다. 개봉한지 꽤 된 영화라 많이들 보셨겠지만.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가난하고 멍청하고 비극적인 한 젊은 포크송 가수의 일상을 다룬다. 그리고 영화를 끌어가는 표현 기법상의 차원에서 ‘음악 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가가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예술적인 삶을 살다가 노래가 나오고, 노래가 나오고, 노래가 나온다. 이렇게 세 문장으로 이 영화를 소개하고 나면 당신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 예술 영화로군. 다른 당신들은 잰체하며 이렇게 이야기할 지도 모르겠다. 하, 예술에 대한 영화, 음악을 통한 영화라니. 예술을 예술로 표현한 메타-예술 영화로군.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신 둘 모두가 틀리고 내가 맞다. <인사이드 르윈> 은 분명히 예술이 주된 소재로 등장하지만 이는 예술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예술’이라는 개념은 일종의 거대한 환유이기 때문이다. 자,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가보도록 하자.

주인공 르윈 데이비드는 안 팔리는 뉴욕의 포크송 가수다. 한때 파트너와 함께 듀오를 결성했으나 파트너는 영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자살해버린 상태다. 그것 때문에 실의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놈인지 (보통 이런 경우는 두 가지 다 훌륭한 이유가 될 것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르윈은 참으로 예술가스러운 막장짓을 하며 살아간다. 집도 없는 채로 하루하루 지인들의 집을 순방하며 소파에서 잠을 청하며, 싸구려 포크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고, 친분 있는 대학 교수 집에서 나오는 길에 실수로 교수의 고양이를 탈출시키며, 친구의 여자를 건드려 임신시킨다. 그 와중에 입은 살아서 다른 가수들에게 충분히 가시돋힌 독설을 무례한 방식으로 퍼부으며, 챙겨주는 누나에게는 욕설을 퍼붓고, 치매노인인 아버지를 부러워하며, 자기 아이를 가지게 된 친구의 여자와 말싸움을 벌이고, 탈출한 고양이 대신 다른 길고양이를 잡아 교수에게 건네며(물론 이는 르윈의 고의가 아닌 실수였지만), 교수의 집에서 벌어지는 저녁식사에서 다른 손님들과 싸움을 일으킨다. 전형적인 젊고 멍청한 예술가의 표상이다. 그렇게 사는 그의 앞에는 불행과 불운으로 점철된 비극이 차례로 얼굴을 들이민다. 당장 영화의 도입부, 첫 라이브가 끝나자마자 르윈은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정체불명의 손님에게 ‘명확하게 서술되지 않은 이유’로 두드려맞는다. 아이를 낙태하기 위해 들른 단골 낙태 전문 병원에서 그는 그의 전 여자가 낙태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씁쓸한 소식을 듣게 된다. 그가 소속된 레이블은 망해가는 레이블이며, 시카고의 라이브 홀로 그의 앨범을 보내달라는 그의 요청을 깜빡했다. 모든 것들이 망쳐진 상태에서 새 출발을 하기 위해 시카고로 가는 차를 얻어 타고 나니 동승은 말 많은 마약중독자요, 운전자는 순찰하는 경찰에게 반항하다가 끌려가버린다. 새로운 꿈을 찾아 출발했으나 순탄치 않은 여행 끝에 도착한 시카고는 온통 눈밭이라 신발이 젖어버리고(아, 젖어버린 신발과 그 안의 양말은 젖어버린 눈가와 그 안의 눈동자에 비해 얼마나 슬픈가), 겨우 도착한 라이브홀에서 그는 간단하게 퇴짜맞는다.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음악을 접고 뱃일이라도 하려고 항해사 조합비가 연체되어 일을 못 받는 상태고, 연체된 조합비를 납부하고 나니 누나가 항해사 자격증을 갖다 버린 덕에 여전히 일은 할 수 없는 상태고.

물론 그것이 과연 ‘불운과 불행으로 이루어진 비극’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왜 하필 그런 레이블에, 왜 하필 그런 친구와, 왜 하필 한겨울에 시카고에, 왜 하필 조합비를 연체해서, 왜 하필 누나에게 자기 짐을 다 갖다 버리라고 해가지고는. 르윈이 겪게 되는 그 모든 비극들은 불행과 불운이라기보다는 르윈이 그의 타고난 멍청함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개척해낸 필연의 영토일 지도 모른다. 분명하게 슬픈 일이기에 비극인 것은 명징하지만.

그 모든 사건들은 단절적으로 이어진다. 마치 그의 삶처럼, 그리고 그의 삶에 대한 태도처럼 말이다. 영화의 장면들은 결코 순탄하게 이어지지 않는다. 이어지는 각각의 장면들 사이에는 수 많은 생략과 비약들이 존재한다. 당장 첫 라이브 씬에서 아침에 일어나는 씬으로 이어지는 전개를 보라. 교수의 집에 방문하는 일도, 소파에 눕는 일도 생략되었다. 라이브, 그리고 정체불명의 손님에게 두드려맞기,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부주의하게 문을 열어 고양이를 탈출시키기. 바로 그러한 생략과 비약이 르윈의 시야이며 태도이며 삶이다. 그는 분명하게 자기 입으로 누나 집에 있는 자기의 모든 짐을-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은 채로-다 갖다 버리라고 하고, 그래서 그 안에 있던 항해사 자격증을 날려먹는 불운하고 불행한 비극에 직면한다. 모든 사건은 시간은 세계는 적어도 그의 시선에서 불확실하며 단절적이다. 과연 친구의 여자가 품은 아이는 내 아이일까. 2년간 잊고 있었던 전 애인인지 그냥 잔 여자인지 모를, 내 아이를 가진 사람은 무사히 아이를 낳고 고향으로 돌아갔을까. 르윈도 그의 삶의 단절성에 대해서 ‘느끼고’ 있다. 낙태 전문 병원을 주말에 예약하고 난 후 그 모든 사건을 겪고 뉴욕으로 돌아와 그녀에게 ‘뭐라고, 아직도 애를 안 떼었다고, 아직 한 주도 지나지 않았단 말야?’ 라는 그의 대사는 시간에 대한 그의 통합되지 않은 인식이 날것 그대로 표출된 대사가 아닌가. 그의 삶에서, 공간 또한 시간을 따라 통합적으로 배치되지 않는다. 오늘은 여기서 내일은 저기서 자고, 기회가 닿으니 시카고로 떠났다가 돌아오고 배를 타고 멀리 나가려고 한다. 하루 하루가 단절된 수준을 넘어 하루의 낮과 하루의 밤이 잘려 있다.

그리고 그러한 시공간적 단절은 영화가 전개됨에 따라 고양된다. 영화의 시작에서, 그는 여행에 대한 노래를 부른다. 총 한자루와 단검 한 자루를 들고 아칸소를 떠돌다가 이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어, 무덤 속에 평생 머물러야 되는 자의 노래를. 다음으로 등장하는 시간과 공간의 노래는 짐과 진의 듀엣곡이다. 고향을 떠나 100마일, 200마일, 300마일. 그러나 돌아올 돈이 없는 자의 노래. 마지막에 등장하는 거리감은 ‘배를 타고 수백마일 수만마일’ 밖으로 떠나 청어를 잡는 어부에 관한 노래이다. 사건들이 모이며 증폭되고, 노래가 품고 있는 거리감도 고양된다. 그는 음악과 예술을 포기하고,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항해사가 되려 한다. 어른이 되려는 것이나 그는

실패하고

영화의 도입부가 다시 펼쳐진다. 영화의 첫 장면이 다시 스크린 위를 떠돈다. 르윈은 총 한자루와 단검 한 자루를 들고 아칸소를 떠돌다가 이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어, 무덤 속에 평생 머물러야 되는 자의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부르고,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정체불명의 손님에게 두드려맞는다. 첫 장면과는 맥락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르윈이 구타당하는 장면의 바로 전 장면과, 바로 뒷 장면을 통해 그 이유를 알고 있기에. 정체불명의 손님은 르윈이 전날 모욕한 여가수의 남편이었다. 길가에 쓰러진 르윈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자기를 구타하고 택시를 타고 떠나는-이는 완결된 세계다. 르윈은 언제나 도보 혹은 지하철 혹은 히치하이킹으로 공간을 이동한다-자신을 구타한 손님에게 마지막 대사를, 인사를 건넨다. 내가 아는 거의 유일한 불어로 말이지.

Au revoir

안타깝게도 한글 번역은 안녕, 정도로 되어 있다만. 내가 알기로 저 단어는 또 봅시다, 정도의 어감을 지닌 단어로 알고 있다. 방금 네이버에 찾아보니 연관검색어가 인사이드 르윈이니 아는 외국어 나왔다고 신나서 굳이 긴 말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생은 그 불안과 단절과 통합을 고양시키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간다. 제자리로 돌아온 생에게 르윈이 던지는 인사말은 Au revoir다. 아, 반복되는 삶에 반복되는 긍정. 얼마만에 인용하는 니체인가.

물론 이는 두 가지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서사의 맥락적으로 동일하다. 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서사의 맥락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첫 번째 입장을 따른다면, 결론에 대한 해석은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하나의 동어 반복이며 르윈의 Au revoir가 어떤 자조적인 대사이며, 르윈의 삶은 끝도 없는 나락을 반복하게 된다, 정도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두 번째 견해를 지지하고 싶다. 나는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르윈의 단절적 시야를 통해 전개되는 영화(라고 내게는 느껴졌다)이기에, ‘이유 없이 두드려맞는’ 첫 장면과 ‘삶 속의 모종의 명확하게 파악된 이유로 두드려맞는’ 마지막 장면은 다르다. 알고 맞는 것과 모르고 맞는 것은 다르며, 이유 없이 맞는 것과 이유 있게 맞는 것은 다르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부연적인 장면이건 새로운 날에 대한 장면이건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구타 전후의 맥락이다. 그의 Au revoir는 긍정이며, 완전한 단절에서 그나마 조금의 통합적 설명을 구축해가는 발전이다. 물론, 과연 르윈의 삶에 발전이 있을까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소설로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꼽고, 특히 그 중에 등장인물인 ‘요시야마’를 개인적으로 내가 아는 소설적 인물 중에 가장 매력적인 인물로 꼽는다. 그는 르윈처럼 쓰레기같이 살고, 그의 막돼먹은 삶을 비난하는 여자 친구에게 ‘때가 되면 이런 삶을 다 정리하고 고향 바닷가로 내려가 부두 노동자로 건실한 삶을 살겠어’ 라고 습관적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독자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 르윈이 건실한 삶에 실패하고 막장의 삶을 반복할 것처럼, 요시야마 역시도 말만 그렇지 결국은 그냥 그렇게 살다 죽게 되리라는 것을. 생에 대한 긍정은 딱 거기까지다. 그것이 실제로 삶을 어떻게 견인할 것인가 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가 될 것이고. 운이 좋으면 긍정이 되겠지. 불운하다면 할 수 없는 일이고 말야.

자, 제목과 글의 첫머리로 돌아가보자. 그리하여 이것은 예술에 ‘대한’ 영화가 전혀 아니다. 분명히 가장 중심적인 소재는 예술이고, 예술가이기에 발생하는 숱한 사건들과 예술가적 자존심이 만들어내는 문제들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데 꽤나 중요한 장치를 담당하고 있지만, 굳이 그것이 예술-그러니까 삶을 표현해내는, 삶의 반영이 되든 반정립이 되든 메타가 되든-이어야 하는가. 예술의 자리에 게임이 들어가도 되고, 예술의 자리에 학문이 들어가도 되고, 예술의 자리에 그 모든 ‘생활’에 반하는 무엇이 들어가도 영화는 그런대로의 완결성을 지닐 것이다. 아니, 생활에 합하는 것이라고 다를까. 돈 버는 기술을 배운다고 해서 돈이 벌리는 것은 아니잖아. 즉, <인사이드 르윈>의 예술은 개인이 삶 속에서 행해나가는 어떤 단절적인 행위들에 대한 환유로 기능한다. 이것은 예술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그저 우리의 가난하고 멍청하고 비극적인 삶에 대한 영화일 뿐이다. 물론 포크송은 우울한 루저 감성을 담아내기에 참 좋은 노래겠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비욘세
14/02/12 22:31
수정 아이콘
좋은 리뷰감사합니다. 영화를 보고 밀려왔던 감동이 틀리지않았다는것을 확신하게됬습니다.
고양이 이름이 밝혀지고 오프닝(과 유사한)이 다시 시작되면서 눈물이 쫙 나더군요.
我無嶋
14/02/13 00:10
수정 아이콘
어..이거 안봤는데 보고싶어지는데요;
OneRepublic
14/02/13 00:21
수정 아이콘
정말 재밌게 본 영화였는데, 너무 현실적이여서 짜증나고 슬프기도 했던 영화에요.
지니쏠
14/02/13 00:44
수정 아이콘
잘 봤어요. 영화도 재미있게 봤었는데, 관점이 좋네요.
파리베가스
14/02/13 01:24
수정 아이콘
리뷰를 보니 명쾌하게 풀리는 느낌입니다.

말주변도 없으니 뭐라 형용할 수가 없었는데 이 글을 보니 참 좋네요.
BlackRaven
14/02/14 00:12
수정 아이콘
르윈의 삶은 코언 형제가 여태껏 그려왔던 이해할 수 없는 우연과 비극이 반복되는 세계를 대변하는 것이겠죠. 그런 세계를 참으로 쓸쓸하면서도 감정적으로 넘치지 않게 그려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장면들에서 르윈은 고양이를 놓치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하나의 노래를 더 부르고, 자신을 폭행하고 떠나는 남자를 향해 (혼잣말로)작별인사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 정도가 르윈이 가질 수 있는(혹은, 코언 형제가 생각하는 삶에서의) 가장 큰 희망이나 기적이겠죠. 이 영화를 두번째로 다 본 시간이 저녁 7시 쯤 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유난히 더 길고 쓸쓸했던 그 길이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50791 [일반] '사랑'의 기준에 또다시 남녀가 들어갔군요 [88] 당근매니아6113 14/03/31 6113 5
50775 [일반] [영화공간] 내가 뽑은, 이 시대 한국 최고의 여배우들 [69] Eternity11056 14/03/31 11056 9
50641 [일반] 아라타와 일상, 그리고 말티엘 [15] AraTa_Higgs4646 14/03/24 4646 2
50619 [일반] [영화공간] 잊을 수 없는 한국 멜로영화 속 명대사 [22] Eternity8420 14/03/23 8420 11
50529 [일반] 이 뼈는 누구의 뼈인가? [24] Neandertal6381 14/03/18 6381 6
50351 [일반] 이 글에서 "이들"이 가리키는 대상은? [19] Neandertal4411 14/03/09 4411 3
50308 [일반] 동반자살.. 자살? [48] 절름발이이리7344 14/03/07 7344 2
50067 [일반] 애완동물 이야기 [22] Naomi4102 14/02/25 4102 6
49982 [일반] (펌) 홍대에서 불법으로 강아지, 고양이 파는 할머니. [95] 사직동소뿡이14468 14/02/21 14468 4
49889 [일반]  탓하지 않는 사회 - 바다탐험대 옥토넛을 통해본. [14] gungs10578 14/02/16 10578 3
49862 [일반] 발렌타인데이 선물 받으셨나요? [109] 리뉴후레시8131 14/02/14 8131 2
49828 [일반] 환유로서의 예술, 인사이드 르윈 [6] 헥스밤4534 14/02/12 4534 6
49812 [일반] 일전에 길을 가다 말입니다. [10] 김아무개4158 14/02/11 4158 1
49713 [일반] 영화는 수다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이 평가 했던 영화 총정리 2014.02.05 까지 [43] 하루타18379 14/02/06 18379 2
49563 [일반] 가수 '이랑' 을 소개합니다. [18] 지니쏠14346 14/01/31 14346 1
49551 [일반] [인사이드 르윈] 삶의 클라이막스 (스포일러 약간) [4] BetterSuweet3307 14/01/30 3307 0
49492 [일반] 흥행돌풍이라고 불러도 될만한 겨울왕국의 행보 [62] Rorschach11044 14/01/26 11044 0
49457 [일반] 친구야 내가 잘못했어. [27] 켈로그김5715 14/01/24 5715 12
49246 [일반] 천사의 미소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18] 12있는5385 14/01/12 5385 5
49064 [일반] 뽀로로유감 [33] 기아트윈스6091 14/01/03 6091 0
48990 [일반] 내 맘대로 뽑은 2013년 일본 애니메이션 BEST 50 [40] 오우거7591 13/12/30 7591 5
48857 [일반] 어서와요, 데이트후기는 처음이죠? (주의 : 보고나서 생기는 일들은 절대 책임 못짐) [68] 헤더6835 13/12/26 6835 34
48565 [일반] 역대 도쿄 어워드 애니 수상작 [33] 김치찌개6887 13/12/16 6887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