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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2/04 23:00:02
Name 쿨 그레이
Subject [일반] [스압] 강박증과 천재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
이 무슨 카트리나와 투아모리의 상관관계인가 싶으신 분들이 있을 것 같은데... 아주 말이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 같네요. 나름대로 그 시작과 결과가 분명하니 말이죠. 먼저 강박증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 볼까요. 어김없이 올해의 첫 글도 여지없는 잡설이군요(...) 게다가 그간 글을 안 써서 그런지 스압이 좀 있겠네요.

둘을 이어주는 기본 키워드는 이겁니다. 저, 신경쓰여요! (아니, 정말로.)

미리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절대로 강박증 환자나 강박장애 환자를 비하한다던지 웃음거리로 삼기 위한 글이 아니니 이 점은 알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엔하위키의 설명을 조금만 퍼 와보면... 아, 미리 드리는 말씀인데, 어디까지나 참고하는 선에서 가져오는 거지, 절대로 그걸 통해서 자가진단으로 내가 강박장애에 걸렸구나 이런 이야기가 아니에요. 엔하위키에 나온 내용을 토대로 다 끼워맞추면 스스로를 사이코패스로 만드는 짓도 얼마든지 가능하죠(...) 정확한 건 병원에서 진단을 받는 게 제대로 된 패를 까는(?) 것이니 말입니다.

(전략) ...예를 들어 계속해서 손을 씻는다든가(세균불안), 의식하며 보도블럭의 금을 밟지 않고 지나간다든가(금을 밟으면 무슨일이 일어날듯한 불안감), 빌딩의 층수를 계속적으로 세거나(층수를 세서 외워야만 안심이 된다), 계속 가스 밸브와 열쇠를 체크한다든가(내가 안보는 사이에 누군가 만져서 돌려놨을것같은 불안감-혼자있는 상황이라면 혼자있다는걸 알아도 그런다), 반복적으로 청소를 하는(먼지가 내려앉는걸 참을수가 없다), 어제 읽은 항목을 또 읽는다던가 등 할 이유가 없는 데도 계속하는 것... (후략)

위에서 보도블럭과 열쇠는 저에게도 해당되는 건입니다. 뭐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나도 좀 그렇다 허허허 이러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기는 합니다만, 그러한 강박증 혹은 강박장애 환자와 유사한 패턴을 살면서 제가 꽤나 많이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긴 합니다. 몇 가지 이야기를 해 볼까요.


여기에 들어온 것도 시작이 스타크래프트 팬이었으니 - 올해로 8년차를 맞는 콩빠입니다만 - 스타크래프트 플레이를 하다 보면 다들 알고 계시는 게 있죠. 스투 말고 스1 기준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왜 스갤에 글 올릴 때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다가도 맨 막줄에 "스타 이야기 : 일꾼은 미네랄을 8씩 캡니다" 뭐 이런 식으로 알바의 광삭에 대응하는 구절을 넣고는 하잖습니까. 그 구절. 일꾼은 미네랄을 8씩 캐죠. 보통 사람이라면 거기에 대해 어떤 생각도 하지 않겠죠. 일꾼이 미네랄을 8씩 물어오건 10씩 물어오건 뭔 상관이냐, 이건데... 저 같은 경우는, 게임하면서도 바로 이 점 때문에, 자원을 항상 "짝수로" 맞추는 이상한 습관이 있습니다.

히드라는 꼭 둘씩 뽑아야 하고, 성큰은 셋이 아니라 (엄청난 자원낭비인 걸 뻔히 알면서도!) 넷씩 지어야 하고, 토스전이라면 성큰이 셋이면 스포어 하나를 더 짓던지, 아니면 뭐 히드라를 뽑고 가스는 어디 딴 데서 벌충을 하던지 하여간 미네랄과 가스를 무조건 짝수로 만들어야 "거슬리지" 않습니다. 이거, 쓰면서 놓고 보니 세팅저그 박태민 선수가 떠오르네요(일꾼이 미네랄을 캐는 소리가 이상하다고 세팅을 엄청나게 길게 하질 않나, 30분 세팅했는데 9드론 막히고 허무하게 끝나지를 않나).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습니다만 짝수를 맞춰 주는 게 하여간 여러 모로 걸리는 점이 없다는 거죠. 특히 에볼루션 챔버를 볼 때마다 굉장히 짜증나는 점 - 밀리 어택과 미사일 어택은 100/100, 150/150, 200/200인데 웬 방업이 150/150, 225/225, 300/300이란 말입니까. 어쨌든 게임이 길어지니 방2업은 해야겠고 자원이 홀수가 되니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뽑아야 할 거 히드라 한 마리 또는 스커지 한 쌍을 더 뽑자꾸나 이런 식이 된다는 거죠(차라리 뮤탈 방업을 2업까지 할 일이 생긴다면 모를까 - 뮤탈 방2업도 자원 소모는 225/225죠. 근데 보통 이런 일은 저저전에서나 있는 일 아닙니까. 거기서는 지상 방업을 할 일이 없고 결국 똑같은 수순으로...). 어쩌면 제가 오랜 기간 콩빠가 되는 것은 명백한 운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2업과 자원, 두 키워드가 두 번 강조되는 것도 기분 탓! 또, 뮤짤 같은 특수사항이 아니고서야(저는 보통 버로우업을 개발해서 버로우한 저글링을 두거나, 럴커와 묶습니다. 라바는 언젠가 쓰일 것이요, 오버로드는 언젠가 뮤탈 쫓아오고 속업이라도 했다 하면 무지 불편해서, 신경 안 쓰이려면 버로우 저글링이 가장 편하죠) 한 부대에 다른 유닛을 "섞어서" 부대편성을 하는 경우는 아예 없습니다.

스타크래프트 2로 가면 더 가관입니다. 홀짝이 안 맞으니 신경쓰일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오히려 더 짜증납니다. 이번에는 미네랄이 끝자리가 5/0/5/0/... 이런 식으로 가기 때문에, 예컨대 150원짜리 병영을 짓다가 캔슬하게 되면 75%인 113원만 돌려받잖아요. 스1 시절에는 그냥 홀수 가격인 건물이나 유닛을 뽑으면 그만이었는데 이거 끝자리 5의 배수로 맞추려면 얼마나 더 짓고 캔슬하고 하는 짓을 반복해야 한단 말입니까(...) 뭐 테란이라면야(전 스투 들어오면서 한동안 주종을 테란으로 삼았었습니다. 성우들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웬만한 건물은 다 뜨니까 그냥 다 지어버리고 띄워버리면 되긴 한데... 저그로 플레이할 때 견제받아서 건물을 취소한다던가, 뭐 실수로 잘못 건드렸다면... 오 신이시여. 이 게임 말렸습니다. 아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물론 입에서 나오는 말을 매우 순화한 버전입죠)


어디 여행 갈 때도 그렇습니다. 일전에 제가 써서 추게 갔던 그 글 있죠? 열차 탈 때 잡다한 팁 말입니다(https://ppt21.com/pb/pb.php?id=recommend&no=2320). 고작 글 하나 추게 간 거 가지고 여러 번 울궈먹는 것 같아 필력 좋으신 분들께 심히 부끄럽습니다만 그게 다 저런 강박증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뭔가 딱딱 맞아떨어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고 해야 할까요, 다 거기서 나오는 겁니다.

저는 여행의 3요소를 이렇게 칩니다. 편한 자리, 좋은 풍경, 그리고 예정된 일정. 그래서 이런 메카니즘이 나옴에 따라서 다음과 같은 분석을 하게 되는 겁니다.

자리가 편해야지 → 근데 무궁화호 객차는 랜덤이고, 새마을호도 방향 따라 앞자리 뒷자리가 바뀌네 → 어디 편한 열차를 예측한다던가 하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 (여기서 관찰력이 발현) 어라, 내릴 때 보니 행선판을 그냥 뒤집어서 끼우잖아 → 아 그러면 서울에서 부산 가는 열차는 높은 확률로 당일 또는 다음날 부산에서 서울로 가겠군(수색기지나 가야기지 같은 데 들어가지 않는 이상) → 로지스(철도물류정보서비스)에서 확인해 볼까 → 역시 내 예상대로군, 하루는 꼬이기 좋으니 이틀 간격으로 맞추면 적당하겠어 → 이걸로 올라가고 내려갈 때의 객차의 앞 뒤 좌우방향 및 열차의 조성을 모조리 파악할 수 있겠군 음하하하

좋은 자리는 잡았고 → 근데 왜 이놈의 열차는 올라갈 때마다 딜레이 크리를 먹는 것이야 → 아예 그 딜레이를 미리 예측해버려야겠군, 예정보다 일찍 도착하면 최소한 민폐는 아니니 → 어디 보자, 어차피 노선도는 다 외웠고 속도도 잘 나오는 것 같은데 뭔 요소가 있나 → (다시 여기서 관찰력) 뭐야 이거, 시간표상으로는 1분 정차인데 뭐 이리 오래 걸려 → 아 사람이 많이 타니까 당연히 딜레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구만 → 그럼 지나가는 역들 중에서 사람이 많은 역을 추리고 승객 패턴 및 운행 환경에 따라 적당한 팩터를 취해 주면...

이런 식이죠. 그러니 덕력이 깊어질 수밖에요. 근본은 다, 저놈의 여행의 3요소에서 출발한 겁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해 볼까요? 엔하위키에서 한때 표, 그것도 열차의 행선판 가지고 수정전쟁이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렸던 때라(근 몇 년간 학업이 바빠서 도저히 신경을 못 쓰고 있습니다. 얼른 나머지 절반도 업데이트해야 하는데...) 참으로 되도 않는 소리를 지껄이는 등 화끈거리는 기억입니다만 어쨌든 그 행선판의 기초를 만드는 데 제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근데 그 때... 정말로 솔직히 말하는 건데, 제가 저렇게 템플릿을 제안했던 이유 중 하나가 (참으로 제가 생각해도 한심한 이유입니다만) 두 가지 때문이었습니다.

1. 적어도 분기역까지는 커서를 옮기는 일 없이 클릭만 해서 다음 역으로 계속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 아 이게... 참 생각해 보면 쓰면서도 얼굴 화끈거리는 이유인데, 그래서 대전조차장역(5글자, 현재 일반철도 중에서는 - 가산디지털단지역같이 철도를 취급한 일이 없는 역은 개인적으로는 역으로 치지도 않습니다(...) - 제천조차장역과 함께 가장 이름이 긴 역)이 기준이 된 것이구요, 표가 충분한 너비를 확보할 수 있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표의 너비가 충분히 넓어야 역명 길이에 따라 표가 화면에서 흔들리는 일 없이 커서를 움직이지 않고 클릭 클릭만으로 다음 역으로 넘어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문서 끝에 두자는 의견이 있어서, 일단은 관망 중에 있습니다. 더 이상 이러한 개인적인 이유로 여러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도 하고 싶지 않고...)
2. 모든 역의 표는 같은 규격, 같은 모양, 좋은 가독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러면서도 각종 데이터 및 소속 노선, 그 노선의 양 기점역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이 점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터라 쓰면서 별로 부끄럽지는 않네요).

흔히들 철덕이 강박증 종결자라고들 하죠. 뭐 저도 그 예외는 아니었던 셈입니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엄청나게 길어졌으니 (모드질 할 때도 퍼센트 딱딱 맞추고, 홈페이지 만들 때도 가상의 선 그려놓고 그림은 무조건 가운데에 배율까지 정확하게 칼같이 맞춰야 하고... 그간 여러 닉으로 피지알에서 쓴 다른 제 글에 대한 이야기 등등 이야기할 게 이거 말고도 무궁무진하게 많습니다만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정말로 밑도끝도없으니) 일단 여기서 줄이죠. 근데 여기까지 저는 천재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가지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저런 "강박증"과 "천재"의 상관관계, 예전에 <민사고 영재들은 하버드에 가지 않는다>였나 하여간 제목이 그러했던 그 책에서의 발과 건빵의 상관관계와도 같은 이 둘이 뭔 관계가 있길래 제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그토록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것이냐 하면 말입니다...

(혹시 궁금하실지 모를 분을 위해 발과 건빵의 상관관계를 적어 드리자면... 여럿이 모여 있는 교도소에서 누가 건빵을 먹습니다. 근데 건빵이 셋도 침으로 녹여서 삼키기 힘든 물건인데 먹을 게 귀한 입장이니 욕심을 부려서 네 개를 처묵하다가 캑캑 목이 걸리죠. 당연히 이것만으로도 나머지 수감자들은 짜증 백 배인데 여기에 물 찾겠다고 방을 돌아다니다가 을 밟기라도 했다... 와장창! 이런 이야기입니다.)

강박증이라는 게, 사실 별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조건에서 주어진 정보를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게 강박증이죠. 이 말인즉슨, 보통의 다른 사람들보다 뭔가를 해내야 할 일이 (그게 크건 작건간에) 그 종류가 많고, 따라서 이것저것 많은 데이터를 미리 머릿속에 저장해 두고 있어야 신경쓰이는키니나리마스, 키니나리마스, 키니나리마스! 일이 없이 원하는 일을 자기가 만족할 수준까지 척척 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남들보다 훨씬 빠른 인지능력과 날카로운 관찰력, 그리고 해박한 지식이 요구됩니다.

예컨대... 주변에서 일하다 보면, 한글이나 워드로 짜면 줄이 삐뚤빼뚤하고 간격이 딱딱 안 맞는다는 이유로 엑셀에서 워드 작업을 하고 계신 분 봤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딱 그럽니다. 가장 최근에 만든 문서가 연구실 옮기는 건으로 서류 제출할 일이 있을 때였는데요, 기본 서식을 인터넷에서 대충 검색해 본 다음 필수요소를 줄 간격과 너비(이 와중에도 물론 픽셀 끝 수는 5 또는 0으로 맞춥니다) 및 맨 앞자리에 들어가는 한 글자 공백(키보드 기역 누르고 한자 누르고 1번 눌러서 생기는 " " ← 바로 이 전각문자로 맞춥니다. 이유는 하나, 스페이스 바 세 번 연타가 한글의 전각문자 하나에 정확하게 대응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죠)까지 딱딱. 만든 문서의 평가 자체는 꽤나 좋더군요. 이런 식으로 딱딱 일을 맞추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지식이 필요한 것이죠. 기본적으로 한글/워드/엑셀을 쓸 수 있어야 하며 제대로 된 서식을 만들기 위해서 엑셀을 마치 오른손 쓰듯이 능숙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뭐 이거야 쉬운 일이고... 이걸로 어느 열에 대충 입력만 해도 자동으로 주의 메시지까지 출력해 주는 누계파일을 만든다던가, 월별/카드 종류별/분야별 사용 누계/배정된 예산(예산안 자체는 수동입력)을 얼마나 초과했는가까지(저 각각의 모든 교집합을 다 보여줄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죠) 모조리 자동으로 내 주는 가계부 파일을 만든다던가(앱이 너무 귀찮아서, 또 어차피 컴퓨터를 계속 쓰는 이상 틈나는 대로 업데이트하기 위해서 아예 하나 만들어버린 겁니다)... 

비단 엑셀뿐만 아니라, 홈페이지 관리에도 다른 사람들이라면 대충 사진 넣고 대충 손으로 커서 움직여서 크기 조정하고 하는 일을 눈 뜨고 절대 못 봐주니(...) 필연적으로 html 코드를 공부해야 원하는 만큼, 혹은 그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고... 때로는 그런 모든 것을 수동으로 일일이 처리하기에는 너무나 벅차니 프로그램으로 싸그리 몽탕바르탕 넘겨버리기 위해 프로그래밍도 공부해야 하고(실제로 지금 제가 혼자서 만들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수백 가지 화합물을 부르는 이름이 다 다르고 어디다 뒀는지도 모르니 원소별/작용기별(Functional Group, 예컨대 알코올기라던지)/위치별 검색이 가능한 프로그램이죠. 기본 언어는 C++, 예상 시간 약 한 달)... 그러한 모든 사항이 또 비단 일할 때뿐 아니라 하다못해 방에서 노닥거리면서 책을 읽을 때도 적용되니 그 덕질의 깊이는 다른 사람들을 능가하며, 그 앎의 범위 또한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넓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엔하위키의 자칭 천재 항목이 떠올라서 얼굴이 또 한 번 화끈거립니다만) 저는 주변에서 머리가 좋다는 이야기를 꽤나 많이 듣는 편입니다. 덕질의 범위도 굉장히 넓은 편이구요. 철덕, 역덕(미국사 시험 재미삼아 쳤습니다. 물론 철저하게 깨졌구요), 라노베덕, 프로그래밍덕(사실 저는 루키일 뿐이라 업으로 삼고 계시는 분, 예컨대 이두희 씨에게는 명백히 실례이겠습니다만), 밀덕(딱딱 맞아떨어지는 전술 - 하위까지 간섭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점에서 발터 모델의 성향이 아마 저와 비슷하지 싶군요), 게임덕, 야구덕(그래서 제가 몸으로 뛰고 변수가 많은 실제 경기보다 확연한 기록이 있는 세이버매트릭스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겁니다), 지리덕(적어도 국가 및 도시의 지구상 위치는 제가 뭐 백만년 살 거 아닌 이상 확실하잖습니까)... 두 개만 더 찾으면 훌륭한 십덕(十悳)이 되겠군요.


정리하자면, 강박증이거나 그러한 양상이 있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하고, 그러다 보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정보 혹은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능력의 양이 많아지는 겁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은 양의 정보를 지속적으로 처리하게 되니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거나 다른 사람이 전혀 신경쓰지 않는 소소한 부분까지 파악하고 또 자신도 모르게 처리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머리가 좋다거나 천재 소리를 듣게 되는 거죠. 사실 제가 생각해도 궤변입니다. 하지만 그럴듯하지 않나요? (천재 부분은 제외하고) 이런 예에 해당되는 제가 정작 살아가면서 필요한 눈치라는 건 또 전혀 없다는 게 아이러니라면 엄청난 아이러니죠(...)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르블랑이 농담할 때 그러던가요. 나를 키운 건 팔할이 거짓말이라고. 저를 키운 건 팔할이 바로 이 특성들이었습니다. 이러한 특성들이 있었기에 저는 좋은 학교에서 학창생활을 보냈고 좋은 대학원에서 동기들 혹은 선배들에게 머리는 좋지만 노력은 정말 안 한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솔직히 살면서 꽤나 불편합니다. 당장 어느 글을 써도 글자 수도 250자 단위로 맞추지 않으면 뭔가 께림칙하기 때문에 그냥 끝내도 될 이야기를 쓸데없는 이야기 붙여가며 줄줄 적어대고(이 글도 정확히 6500자에서 끝날 겁니다), 바로 며칠 전에 설 맞으러 서울에 올라갈 때만 해도 "내가 기숙사 내 방문을 열어두고 왔나?"라는 생각에 계속 불안해했고(방에는 저 혼자입니다. 내려와서 확인해 보니 제 방문은 잠겨 있더군요), 전개가 꿈도 희망도 없는 전개이고 제가 가장 아끼는 캐릭터마저 사망했는데도 지금까지 읽은 게 있다는 이유로, 또 지금까지 책갈피를 모았다는 이유로 - 같은 이유로 책갈피 빠진 게 있으면 초판 다 팔릴 때까지 버팁니다 - 라이트 노벨을 사서 읽고... 근데 그러한 불편한 점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는 것이, 참으로 괴이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현실 세계의 쉘든을 보고 계십니다(...) 뭐 물론 쉘든만큼 학업이 뛰어나지는 못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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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 그레이
14/02/04 23:14
수정 아이콘
여담입니다만 여기서 뜨는 건 6500자인데 실제로 복붙해서 워드에서 검사해 보니 6347자더군요. 뭔가 통계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스테비아
14/02/04 23:18
수정 아이콘
덜 덜 덜덜 덜덜 덜덜덜.....

이렇게 쓰면 신경쓰이시겠죠?
쿨 그레이
14/02/04 23:19
수정 아이콘
각 단어를 두 번씩 표현하셔야 하는데 덜덜덜 하나를 빼먹으셨고 말줄임표를 나타내기 위한 점은 세 개 또는 여섯 개인데 하나를 빼먹으셨으니 몹시 신경이 쓰입니다(...) 크크크크
스테비아
14/02/04 23:33
수정 아이콘
덜 덜덜덜 덜덜 덜덜 덜 더루웂!!(...) 그만하겠습니다 흐흐;;
쿨 그레이
14/02/04 23:34
수정 아이콘
이말년의 고만해가 생각나서 빵 터지네요 크크크크크
켈로그김
14/02/04 23:21
수정 아이콘
길을 걸어가면서 주차되어 있는 차 1대당 다섯걸음으로 맞추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초1~고3까지.
여기서 저기까지 100보를 걷는 동안, 주차된 차가 19대라면 -5. 22대라면 +10. 이런 식으로 한 대당 다섯 걸음..
이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면.. 그냥 재미있었던 듯 합니다.
혹은.. 책을 읽으면서 오른쪽 끝에서부터 문장기호와 영문, 숫자는1. 한글은2. 이런식으로 점수를 매겨서
공백이 생기면 아래줄로 이동하는 놀이(?)도 많이 즐겼습니다.
저 시기에 IQ테스트를 하면 151~158 왔다갔다 했지요.

그러다가.. 먹고 사는 문제가 피부에 와 닿기 시작하면서부터였나..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귀찮아져서 사고하지 않으려는게 습관이 되었고,
그 습관으로 15년 정도를 살아온게 지금의 저입니다.. 허당에 멍청이.. 게으름뱅이..
지금은 나름 행복한데.. 이렇게 살면 조만간 큰 낭패를 겪을 일이 올것만 같아서 불안하네요.
쿨 그레이
14/02/04 23:23
수정 아이콘
저는 버스 타면서 버스 옆을 지나가는 차의 번호판을 습관적으로 3 또는 9로 나눠 보곤 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눠지는지 여부를 테스트하기 위해 2나 4, 5는 너무 쉽고, 8은 숫자가 좀 애매하고(...), 7은 또 너무 오래 걸리고 하니 일단 더하는 연습을 하고 오 3 또는 9의 배수이구만, 나누면 어떻게 되더라 이렇게 하곤 했었죠. 지금은 버스 탈 일이 많지 않아서 그러지는 않습니다만(...) 생각해 보면 저도 뭐 그냥 재미가 있어서 그랬던 것 같네요.
얼간이
14/02/04 23:30
수정 아이콘
쿨 하지 않으시.... 크크크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쿨 그레이
14/02/04 23:32
수정 아이콘
놓고 보니 그렇네요 크크크크
사실 모티브가 된 캐릭터인 쿨 그레이 - 개와 공주의 위예시도 쿨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미호 회장이 붙여준 별명이라서 그렇게 불리는 것뿐 쿨과는 영 관련이 없다 싶구요.
G드라군
14/02/04 23:30
수정 아이콘
이 글을 보니까 냥이가 카펫에서 다이아몬드문양 위로만 다리를 뻗어서
지나가는 움짤이 생각나네요.
쿨 그레이
14/02/04 23:34
수정 아이콘
놓고 보니 동물들도 좀 그런 게 있죠. 뭣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다른 동물들에게도 어느 정도 강박적인 요소가 알게 모르게 가끔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 참에 한 번 찾아봐야겠네요.
14/02/04 23:39
수정 아이콘
워드나 표같은 건 잘 모를 때는 상관이 없었는데 조금 알고 나니 눈에 너무 확 들어오는 것이 그 이후 계속 신경쓰이게 되었습니다.
프로그래밍도 정말 교과서처럼 띄어쓰기 4번으로 층을 맞춰야지 마음이 놓이네요.
사람은 누구나 강박이 조금씩 있는건 아닐까요...
쿨 그레이
14/02/04 23:42
수정 아이콘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합니다. 그래서 궤변이라고 이야기했던 거고(...) 근데 또 무작정 궤변이라 하기에는 또 묘하게 말이 되는 뭐 그런 것 같아서 한 번 던져본 거죠.

그런 강박증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다면, 강박증과 IQ의 상관관계라던지, 혹은 종합적인 업무평가 지수 같은 것의 상관관계를 놓고 보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연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렌이시이
14/02/04 23:48
수정 아이콘
.
쿨 그레이
14/02/04 23:51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 점이 참으로 옳은 것 같습니다. 놓고 보면 저 같은 경우는 그러한 패턴의 특성이 모두 "머리를 쓴다"는 점인데, 아 그래서 제가 머리 좋다는 소리를 들었던 건가 싶네요. 저로서는 어쩌면 묘한 행운인 셈인데... 그렇다면 제가 이야기했던 것을 "머리 쓰는 것과 관련된 강박증 증세"로 한정한다면 어떨까요? 브레인 트레이닝도 어떻게 보면 단순한 머리쓰기의 반복이 아닌가 싶기도 해서 말이죠.
스테비아
14/02/04 23:52
수정 아이콘
1. 초딩 때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딸 때 이후로 모든 문서는 여백을 좌우20 상하 14/10 머리말꼬리말 0으로 맞추고 시작하려 합니다.
2. 차에 타면 점선으로 된 차선을 보며 바퀴가 흰색 선이 없는 부분만 닿는 느낌으로 점프(...)
3. 에스컬레이터 타고 오른손으로 손잡이?컨베이어벨트?를 잡고, 그 아래 철판의 이음새를 지날때마다 검지손가락을 뗍니다.
4. 아는 사람이 등을 보이면 어느샌가 어깨를 주무르고 있습니다...이건 아닌가?

5. 기타 등등....의 행동을 항상 의식적으로 하지
읺으려 합니다. 그래서 겉보기엔 정상..
쿨 그레이
14/02/04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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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코에 참으로 능... 아 이게 아니지. 근데 사실 말씀하신 부분은 그냥 드러내도 웬만큼 관찰력이 좋지 않고서야 - 그것도 거의 스토커 수준이 아니고서야 - 바로 알아차리기는 어려운 거 아닌가요? 의식적으로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또 강박증이... 이거 이야기하면서 순환논리 때문에 제가 다 헷갈립니다. 나친적의 마리아가 내가 똥이고 똥이 나 으엥 뭐 그런 식으로 혼란이 와서 멘붕하는 장면이 떠오르네요 크크크
불량공돌이
14/02/05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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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심리학과 교양수업을 들은적이있는데, 여름철 나른한 강의시간에 우리의 잠을 깨우려는 교수님 왈
'거짓말 보태서 우리학교 학생의 70%는 약한 정신질환을 가지고있다. 여기서 정신질환이라고 하니까 좀 이상한데 강박관념 같은걸 다 포함하는거다. 너네들 고등학교 때 하루 공부할 양을 정해놨는데 다 못하고 자면 왠지 불안하고 심장이 콩닥콩닥한 사람들 있지? 이런것 까지 다 포함하면 70% 쯤 된다 이거야. 나머지 30%는 뭐냐고? 그건 그냥 미친놈들이고.'
결론은 그런 강박관념 같은거 좀 있어줘야 정상이라 이거지요.
쿨 그레이
14/02/05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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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재미있는 말씀이네요.
14/02/05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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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에는 강박증상의 범위 자체가 너무 넓어서 상관관계를 논하기는 힘들 것 같네요.
그런데 이 글을 보고 나니 반대로 막연히만 생각하고 있던 그 패턴 자체가 존재하는지는 궁금해집니다.
정말 어떤 천재들이 어떤 강박증상을 보였나, 그 숫자가 얼마나 되나 이런 것들 말이죠.

이 글과는 별개로 링크해주신 글은 정말 감사합니다 흐흐
쿨 그레이
14/02/05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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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패턴이 있는 거 아닐까 싶어서 이렇게 글을 써 본 거죠 뭐. 물론 저도 별 기대는 안 하고 있습니다만(...) 뭔가 혹시나 그런 게 있지 않을까 싶어서 가볍게 이야기해 본 겁니다. 천재들 중에서 강박증상을 보인 사람이 제법 된다더라, 그렇다면 둘 사이의 상관관계가 존재하는가, 거기서부터 이 글은 시작된 거죠.
삼공파일
14/02/05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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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떤 것에 강박적 성향을 보일 수 있습니다. 조금씩 다를 뿐이죠. 글쓴분은 숫자나 규칙성에 집착하는 편이고요. 컴퓨터 바탕화면에 아무런 아이콘도 없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나 치약을 끝에서부터 짜지 않으면 화가 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요. 강박증적인 성향이 공부에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또 아무렇게 생각나는대로 필기하고 약간 너저분해야 공부가 잘 되는 사람도 많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예로 드신 것들, 가스밸브를 안 잠갔다는 상상으로 마음 졸이는 것이나 분한 마음에 정 떨어진 소설을 끝까지 읽는 것 등은 정말 평범하디 평범한 집착입니다.

미리 전제해두셨듯이, 강박증과 천재에 관한 인과 관계가 입증되지 않았고 글쓴분은 강박증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강박적인 성향이 글쓴분의 성격이나 태도를 구성하는 요소가 아니라는 것이죠. 히드라를 두 마리씩 뽑는다거나 벙커를 취소한다거나 하는 것은 게임에서 이기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다면 얼마든지 안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그렇게 하는 것은 승부욕과 맞닥뜨리는 상황에서 회피하고 싶은 충동 때문에 다른 것으로 대리 만족과 합리화를 하는 겁니다. 오히려 "나는 어떤 부분은 부족하지만 무언가 집중해서 한다면 잘 할 수 있어"를 보여주기 위해서 강박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싶어요. 쉘든 같은 캐릭터를 보면서 선망하고 그것이 동질감으로 변하면서 "나는 강박적이야"라면서 거꾸로 자신을 구성하는 것이죠.

상관 없는 개별적인 사건들을 모아서 "나는 강박적이야"라는 것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남에게 설명하거나 인정 받으려 하지 마시고, 학창 시절은 학창 시절대로 좋은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도 만족스럽게 한 것이고, 분석적이고 깊게 사고하는 습관은 똑똑한 이공계생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스타는 스타대로 빌드오더를 잘 짜지 않은 것이고, 숫자는 숫자대로 대칭이 맞아야 마음이 편한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숫자에 대해서 짝이 맞아야 마음이 편하신 것 정도는 독특한 성격이시지만 앞서 말했듯이 치약을 끝에서 짜는 정도의 흔함을 가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정말 강박적 성향으로 사물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강박적이라고 말하거나 그런 소리를 듣는 걸 불쾌해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마음을 편하게 하고 긴장을 풀어주기 때문입니다. 강박증 때문에 불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의 나를 만들어줬다고 여기는 건 다른 사람에게 나를 이해시키고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강박적 성향을 선택하거나 본인이 강박적 성향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으로 보여요. 혹여 사람들이 글쓴분은 쉘든 같다고 비교했을 때 불쾌함보다는 만족감을 더 느끼신다면 그럴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싶네요.
쿨 그레이
14/02/05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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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서두에도 말했듯이(아 이게 그러고 보니까 무의식적으로 좀 묘하게 흐르긴 했네요) 이 정도 가지고 강박증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정말로 그런 질환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그것 때문에 심하게 고생하시는 분들에 대해 예의가 아니죠. 그래서 서두에 미리 비하하거나 웃음거리로 만들 생각이 없다, 그렇게 쓴 겁니다. 막줄이야 뭐 별 의미없는 농담이구요(근데 솔직히, 부럽긴 해요. 그 나이에 최연소였나 하여간 뛰어난 박사고 연구를 한다는 점이).

제 글은, 바둑으로 치자면 뭐랄까, 그럴 듯한 꼼수라고나 할까요? 뭐 그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네요. 분명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죠. 하지만 또 (뭐든 안 그런 건 없겠습니다만) 일말의 공통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글쎄요. 왜 지적설계가 떠오르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소소한 공통점으로 설프게 끼워맞추는 그런 걸까요 크크 그러니 가벼운 글인 거죠. 가벼운 글치고는 스압이 좀 심했습니다만(...)

조언 대단히 감사합니다. 사실 그렇잖아요, 누구나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건 있는 거죠. 뭐 저도 그 중 하나이구요.
삼공파일
14/02/05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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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가볍고 유쾌한 글이었는데 강박적(?)으로 분석하고 문제를 만들어서 지적질을 했네요 ㅠㅠ 좋게 받아들여 주셔서 고맙습니다
be manner player
14/02/05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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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숨을 의식적으로 쉬고 걸을 때 손발 다르게 나가는 걸 의식적으로 합니다
강박증은 있는데 천재보다는 양서류에 가까운 거 같군요.
쿨 그레이
14/02/05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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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거 웃으면 안 되는데... 정말 죄송한데 오늘따라 계속 이상하게 엉뚱한 데서 터지네요.
VinnyDaddy
14/02/05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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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란 무엇일까요? 직관? 사고력? 끈기? 무엇이 뛰어난 사람을 천재라고 부르는 걸까요. 리만 가설을 제창한 리만은 생전에는 매우 직관적인 수학자인 줄만 알았죠. 그도 그럴 것이 뜬금없이 [나도하, 근을 몇 개 던져 봐라]가 아니고 근을 몇 개 제시하는데 다들 그냥 리만이 머리속에서 생각해낸 줄만 알았던 거죠. 하지만 리만 사후에 가정부가 태우다 남은 종이들을 분석해 본 결과 리만은 그걸 하나하나 다 풀었던 끈기있는 사람이었죠. 반면 폰 노이만처럼 머릿속에 몇만평은 되는 화이트보드를 넣어다니며 암산하고 임종 직전에도 독어로 파우스트를 암송하는 천재도 있는 거고요.

예가 길었는데, '어떤 결과물이 기존의 인식을 뛰어넘는 것일때, 그래서 "야, 천재적이다"는 소리를 불러일으킬 때'를 천재라고 정의한다면 글쓴 분의 말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강박은 어떤 form을 지키는 데서 온다고 보고, 창의성이 form을 깨는데서 온다고 볼 때 그 결과물의 방향이 완전히 새롭기는 힘들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VinnyDaddy
14/02/05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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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저걸 적다 생각났는데, 농구동아리 하던 시절에 아는 선배가 "나는 선수를 이렇게 구분한다"며 이야기해준 바가 있습니다. 그 후로 매우 요긴하게 써먹었는데요. 시합의 어떤 flow라는 것이 있다 할 때

1) 그 flow를 유지하는 타입 - 좋은 flow일때는 유용하지만 나쁜 flow일 때는 그걸 굳어버리게 만들 수 있다
2) 그 flow를 깨는 타입 - crack같은 역할의 조커로 쓸 수 있다. 반면 좋은 흐름일 때는 조심해야 한다
3) flow와 상관없는 타입 - 언제나 평타 이상을 쳐준다. 실력까지 최고면 팀의 에이스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저는 이후의 일상생활에서도 3) 같은 타입이 되보려고 노력중입니다..만 쉽게 흥분해버리고 시야가 좁아지는 통에 참 쉽지 않네요. 글쓴분 덕분에 잠시 추억을 떠올려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쿨 그레이
14/02/05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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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하게 단순화하면 이렇겠네요. Offensive Doctrine, Defensive Doctrine, 이도 저도 아닌 케이스. 스타로 치면 유리할 때 확실히 끝낼 수 있는 선수(불리하면 쭉쭉 밀리는 선수), 불리할 때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선수(대신 유리할 때 방심을 한다거나 효율적인 게임을 하지 못하는 선수),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는 선수 정도로 볼 수 있겠군요. 3번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이영호겠구요.
VinnyDaddy
14/02/05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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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이영호에 크게 공감합니다. 하하.

그나저나 이 댓글에도 댓글을 다실지가 개인적으로 궁금했었는데..
혹 이 글의 댓글 수도 짝수로 맞추고 싶은 생각도 있으신지가 궁금했었습니다. ^^;
쿨 그레이
14/02/05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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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하면 맞추려고 합니다(...) 제가 하루 종일 여기 붙어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서 이 점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생각은 합니다만 짝수가 아니면 뭔가 살짝 거슬리긴 하더군요 크크크크
쿨 그레이
14/02/05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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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면이 떠오르는군요. 먼나라 이웃나라 7권이었던 것 같은데, 이이도코토리의 한계를 논하면서, 좋은 걸 들여오는 건 좋은데 암만 들여온 A, B, C 가지고 응용해봤자 D, E, F가 떠오르겠냐는 이야기였죠. 물론 A, B, C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그럴듯한 결과를 낼 수 있기는 합니다(대표적으로 프로그래밍이 그렇죠. 예컨대 프로그래밍을 갓 배운 사람들에게는 다소 새로운 개념인 함수나 포인터 따위 쓰지 않고 소스 코드 줄줄 늘이고 임시 배열 만드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괜찮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죠). 하지만 분명한 건 그 A, B, C만 가지고는 D, E, F를 이용해서 돌파할 수 있는 한계를 그것만으로는 깰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구요.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강박적인 것으로는 그 결과물의 방향이 완전히 새롭기는 힘들다는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지니어스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저번 1시즌에 콩픈패스 있잖습니까. 그건 "기존의 인식"인 "색으로 카드를 구별한다"는 것을 명백히 뛰어넘는 것이었기에 천재적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거죠. 강박이라는 건, 음, "색으로만" 카드를 구분해야 한다는 그런 점이라고 보았을 때 그 결과가 홍진호의 "카드 뒷면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는 점에 비해 명백한 한계가 있었고, 그래서 홍진호가 그 라운드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것이겠죠.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VinnyDaddy
14/02/05 00:54
수정 아이콘
네, 콩픈패스는 당연히 몇 번이고 돌려봤죠. 하하. 거꾸로 말하면 그런 발견을 한 게 콩 하나 뿐이라는 것, 그리고 그 장면이 지금의 홍진호 전성기를 가져올 정도로 화제가 되는 출발점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그만큼 어떤 새로운 걸 발견한다는 건 힘들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SF 소설을 보면 명작 [뉴로맨서]에서 주인공은 고작 3Mb의 램 때문에 여친에게 배신을 당하죠. [스타쉽 트루퍼스]에서 하인라인이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려낸 강화복도 사실은 실전에 갖고 오기에는 힘든 면이 많은 것이구요. 그럼 미래예측을 못하고 새 시대를 그려내지 못하는 SF는 사라져야 할 장르일까요? [파운데이션]이 사실은 위기와 그 극복에 대한 군상극의 기능을 하는 것처럼, 생각지도 못한 길이 자기 의도와 달리 나올 수도 있는 게 세상 일이 아닐까 합니다. ...결론은, 쿨 그레이 님도 저도, 우리 모두 천재들에 기죽지 말고 열심히 살자 뭐 이런 희망찬... (?!)
14/02/05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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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내도 강박증상이 있습니다. 주로 손 씼는 거와 관련이 있는데 세균에 대한 불안감이 아주 심하지는 않아도 신경을 많이 쓰는 게 눈에 띱니다.
그래서인지 말씀하신 것처럼 똑똑해요.
어떤 정보라도 자신이 궁금해 하는게 있으면 참지를 못하고 파고 드는 성격이라 밤도 꼴딱꼴딱 샙니다.
거기다 정보조합능력이 탁월해서 결론 도달에 탁월한 능력까지 발휘합니다.
물론 그게 강박증세와 관련이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암튼 싸우면 맨날 깨지는 제가 불쌍합니다. T.T
쿨 그레이
14/02/05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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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이... 크크크크 아내 되시는 분이 상당히 머리가 좋으신 것 같네요. 사소한 것까지 따지고 들어가는 꼼꼼한 성격이신 것 같구요. 정보조합능력은 정말 부럽네요. 그러고 보니 말씀하신 여러 가지 조건을 보니까 시너지가 따로 없네요.
anic4685
14/02/05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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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탄다 에루는 궁금한게 생기면 호타로를 이용해야하는 강박증이 있는건가...응!?
쿨 그레이
14/02/05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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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 아니 캐릭터를 대놓고 계속 찍어대며 셔틀로 쓴다는 점에서는 그럴지도 모릅니다 크크크크
14/02/05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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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기억 글도 그렇지만 나는 250자 채우기도 힘들던데..
무식쟁이는 그냥 조용히 있어야겠다..
쿨 그레이
14/02/05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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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또 제 이야기 하는 걸 매우 좋아해서 말입니다 하하
14/02/0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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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있는 강박증이라고는 제가 체스를 많이해서 그런지 보도 블럭 타일이 체스판처럼 흑백 정사각형의 반복이면 나이트의 행마로 발을 대야 마음이 놓입니다.

천재로 여러 방면이 있는데 글에서 말씀하신 천재는 하나에 집중하는 형은 아닌듯하네요. 프리즌브레이크의 석호필처럼 하나의 사물에서 여러개의 가능성을 떠올리는 천재에 가까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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