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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1/24 05:40:03
Name 王天君
File #1 don_jon.jpg (64.5 KB), Download : 55
Subject [일반] 돈 존 보고 왔습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바람둥이 영화는 많고, 섹스와 사랑의 관계에 대한 영화는 더 많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영화에 없는 것이 이 영화에 하나 있으니, 바로 ‘자위행위’라는 소재가 그것이죠. 더욱이 이 피난처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대안이 없는 일종의 루저들로 그려지는 반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존은 위너라는 점이 그렇습니다. 그는 원한다면 괜찮다 싶은 여자들과 바로 하룻밤을 즐길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갖춘 남자거든요. 그런데도 그는 실제 정사보다 포르노가 더 좋답니다. 그에게 포르노는 하나의 대안이 아니라 궁극의 쾌락이에요. 그리고 이 영화에서 ‘자위’라는 소재가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가상의 쾌락을 실재의 쾌락이 이기지 못할 때, 사람은 과연 어떤 것을 추구하고 어떻게 욕망을 억눌러야 하는 것일까요?

조금 낯부끄럽긴 하지만, 남녀의 성욕이 어떻게 자극받고 분출하는지에 대한 차이점을 다루기에는 ‘자위행위’만한 소재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 소재를 가지고 ‘남자와 여자는 이렇게 다르고 이런 부분을 서로 이해해야 한다’ 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만이 가진 판타지의 기준에 현실의 상대를 끼워맞추려는 어리석음은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하죠. 그 단적인 예가 바바라가 즐겨보는 로맨틱 코메디 영화입니다. 장르만 다를 뿐, 자신의 욕망을 허구를 통해 충족한다는 행위의 본질을 똑같으니까요. 영화는 존의 대사를 통해 직접 이 부분을 강조합니다. “너도 그 멍청한 로맨틱 코메디를 보는 거 좋아하잖아!!”  

자신의 욕망을 가상의 존재에 투영하는 것은 바보 같긴 하지만 나쁜 짓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존의 자위 중독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가 제대로 된 인간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오로지 욕망의 목표가 되고, 이것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깨지는 관계 속에서 존은 살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애정 관계에서는 남을 이용해먹으면서 존은 살고 있는거죠.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과정 없이는 결국 가해자와 피해자만 남게 됩니다. 그렇지만, 존은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형편없이 모자랍니다. 자신의 삶 속에 오로지 I, ME, MYSELF 만이 중심에 있는 사람이에요.

그의 자기 중심적 가치관은 먼저 식탁에서 그의 아버지와 말다툼을 하는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남의 말은 듣지도 않고 쌍욕부터 퍼붓는 아버지와, 똑같은 망고 나시를 입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존의 모습은 서로만 모르지 거의 판박이죠. 이는 존의 가치관이 부계 중심의 유전이구나 하는 심증과 함께 그가 가정이라는 기본적인 관계 안에서도 삐걱대는 인간임을 추측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또한, 존이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모습 역시도 그의 미숙함과 성장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죠. 이기적인 사람일 때 혼자서 열심히 근육만 키우던 그가 이후 농구라는, 타인과 함께 하는 스포츠에 눈을 돌리는 장면은 그가 조금씩  타인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방증입니다. ( 운동할 때마다 기도문을 중얼대는 설정은 아마 그의 나르시스즘을 부각시키는 장치로 보입니다. 자신을 가꾸는 이 시간이야말로 자신에게 가장 거룩하고 엄숙한 시간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겠지요)

존이 변할 수 있게 된 것은 그가 마지못해 나가던 학교에서 만난 에스더라는 중년의 여성 덕분입니다. 그녀는 존이 바바라와의 관계 속에서 얼마나 수동적이며 욕망에만 집착하고 있는지를 일깨워주죠. 지나치다 싶을 만큼 솔직하게  다가오는 에스더를 존은 기피합니다. 허나 바바라와의 결별 이후 욕망을 바바라에게 해소하는 계기를 통해 그녀와 가까워지고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죠. 그리고 주인공의 성장이 이루어지는 이 시점부터 영화는 진지해지지만 발랄한 템포를 잃어버립니다. 안 그래도 직접적인 영화가 인물의 대사를 통해 주제의식을 다 내뱉으니, 이야기 자체가 가면 갈 수록 조금 작위적으로 보이는거죠.

미숙한 존을 보여줄 때의 초반과 성숙해져 가는 존을 보여주는 후반부는 진지함의 정도가 너무 커서 그 전환부분의 접합이 그리 매끄러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존의 깨달음, 그리고 존과 에스더 사이의 진정한 사랑을 이야기하기에는 다소 뜬금없어 보여요. 존이 얼마나 미숙한지 보여주기 위해 영화는 초반  짧은 시퀀스들을  빠른 속도로 반복시켜 다소 우스꽝스럽게 그려놓았습니다. 그에 비해 대단히 정적이고 각 씬의  길이도 긴 후반부는 너무 폼을 재는 느낌이에요.

게다가, 이 결말은 안 그래도 착한 영화를 더욱 더 착해 빠진 영화로 만들고 맙니다. 존이 에스더랑 사랑에 빠지면서 어떤 결론으로 이어질까요? “철없는 바람둥이가 상실의 아픔에 허덕이는 한 못난 여성 때문에 진정한 사랑과 이해에 눈을 떴다” 가 되버리고 맙니다. 거기서 반면교사를 위한 캐릭터인 바바라는 러닝타임만 잡아먹을 뿐 존에게 어떤 각성의 기회도 주지 못하고 붕 떠버리고 말죠. 그리고 존의 성장을 위해서 에스더는 조언자 정도가 충분한 비중이었습니다. 존의 로맨스를 에스더가 완성시키기 위해 깔아놓은 동정심 유발 조건은 이 둘의 사랑을 오히려 더 억지스럽게 만들 뿐이죠.

이것 때문에 영화는 그렇게나 비웃던 멍청이 로맨스물의 자가당착에 빠지고 맙니다. 그 어떤 조건도 마다하지 않고 에스더를 사랑하게 된 존의 모습은 그냥 여성들을 위한 판타지 그 자체에요. 거기에는 에스더가 어떤 사람이라서 끌리고 좋은지 존이 그녀에게 이성으로서의 호감을 느끼게 된 계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렸어야 했습니다. 성숙한 사람을 향한 존경과 성적인 매력을 단순히 동일하게 그릴 것이 아니라요.

이 영화는 여러 모로 연출의 재치가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동일한 시퀀스들의 반복과 약간의 변주를 통해 메시지를 더욱 더 쉽고 강하게 전달하려 하고 있죠. 그러나 가끔씩은 너무 친절해서 뻔해 보이기도 합니다. 더더욱이, 강박에 가까운 개과천선 로맨스의 내용은 이 영화만이 지니고 있던 발칙함과 경쾌함을 많이 희석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면, 네가 아무리 음탕하고 속 없는 이야기 해봐야 결국 마음 여린 얘기지 뭐 하고 다소 싱거워집니다. 그래도 이것이 연출, 각본, 연기 세 영역을 혼자 소화한 감독의 처녀작이라면,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좋은 것 같지도 않지만.

* 하루에 수음을 열번을 하고도 헬스를 뛰러 가는 존의 체력은 정말 엄청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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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오빠
14/01/24 06:49
수정 아이콘
글 자체도 스포니 댓글도 스포로 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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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정말 말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리얼리티가 없어요
스칼렛 요한슨을 버리고 아줌마한테 낚이다니ㅠㅠ
그래도 영화자체는 즐겁게 봤습니다 크크크
조토끼가 기본적으로 센스가 있는것 같아요
다음 연출작도 기대하게 되더군요
더블인페르노
14/01/24 09:22
수정 아이콘
저도 그냥 이건 판타지 영화라 생각을 ㅜ_ㅜ
14/01/24 20:35
수정 아이콘
저처럼 스칼렛 요한슨보다 줄리안 무어가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그리고 버린게 아니라 차인거죠.
PolarBear
14/01/24 09:18
수정 아이콘
어떻게 스칼렛 요한슨을...
14/01/24 09:55
수정 아이콘
김혜수가 유해진과 결혼? 이정도 급일려나요...
14/01/24 12:45
수정 아이콘
우연히 예고편 보고 하도 특이한 소재라서 기억에 있어서 스포있음에도 읽었습니다.
잘 읽어봤고요. 그래도 꽤 재미있기는 한 모양입니다? 크크. 두분 평가가 나쁘지 않네요.
조셉 고든 레빗 스펙트럼이 가면 갈수록 넓어지더군요. 온갖 장르를 섭렵하는 듯 합니다. 저번에 뉴욕 자전거 배달부 영화도 상당히 재밌게 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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