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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1/07 06:29:23
Name 기아트윈스
Subject [일반] 왕안석 이야기
중국 역사상 유능한 재상이 유능한 군주에게 전격 발탁된 적이 몇 차례 있었습니다.

드물긴 하지만, 아주 드문 정도는 아니고, 왕조마다 한 두 건 정도 보이는 정도이죠. 보통 창업주, 혹은 창업주의 손자 정도 대에서 이런 일이 보입니다. (유비와 제갈량 이라든가, 한 고조와 장자방, 당태종과 위징 등등)

하지만 송 신종과 왕안석만큼 드라마틱하고 강렬한 만남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왕안석은 위의 인물들을 모두 뛰어넘는 어떤 특별함이 있었고, 신종에게도 역시 그 어떤 특별함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우 영민했고, 매우 간절했고, 매우 유능했으며, 그 무엇보다도 거의 이상주의자라고 해도 될 만큼 [애국자]였습니다.

왕안석은 송나라가 처했던 여러 문제들, 특히 [북방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내부의 경제적 위기]를 아주 깔끔하게 처리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럴 능력과 계획이 있다고 믿었으며, 그 계획을 영민하고 젊고 야심찬 군주로부터 전폭적으로 승인받기에 이릅니다.

문제는 이 계획 자체보다는 그 추진 [과정]에서 드러났습니다. 그는 그토록 유려한 글솜씨를 보유한 천재 문장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계획에 대해 비판을 던지는 [방해 세력]들을 설득하는데는 그 솜씨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몹시도 혐오한 나머지,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제1원칙을 망각해 버린거죠. 그는 [소통] 대신 [통보]를 합니다. 이러이러한 계획이 이미 [국시]로 제정되었으며 황제폐하께서 승인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개혁과정을 [훼방]놓기 위해 이토록 눈에 불을 켜고 짖어대는 저 반대파들을 어떻게든 싹 밀어버리고 싶었죠. 한마디로, [불통]이었습니다.

그는 지속적으로 [언로]를 막았고, 반대파들을 [축출]했습니다. 반대파들은 자신들의 사적 이익 때문에 나라의 부국강병을 막는 암적인 존재들로 낙인찍혀져 멀리 좌천되었으며, 후에 그의 자리를 이어받아 개혁안을 지속시켰던 [그보다도 더 못났던] 후계자들은 심지어 이 [방해세력]의 이름을 수백개의 비석에 새겨 전국에 배포하여 영원토록 그들과 그들의 후손들을 공직에서 영원히 볼 수 없게끔 탄압했습니다.

송나라는 중국 역사상 신권이 가장 존중받았던 왕조로 꼽힙니다. 제가 알기로 아마 고위 관료가 역모죄로 몰려서 극형을 받는다든지 하는 일이 거의 없었을 겁니다. 만약 왕안석과 그 후계자들이 명나라 때 등극했다고 생각하면.... 어휴... 어쩌면 반대파들은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구법당을 향한 신법당의 증오심은 그정도 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악당은 아니다 하더라도 좀 교활하고 치사한 짓을 한다는 의식은 있었을까요? 역사가 늘 그렇듯,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특징 중 가장 무서웠던 것이 바로 그들의 비장미 넘치는 [애국심]이었으니까요. 그들은 이 나라를 구원할 유일무이한 방법을 알고 있다고 너무도 굳게 믿었고, 그래서 이에 대한 비판을 용납할 의향도, 용납할 능력도, 용납할 일말의 여지도 없었던 겁니다. 오직 그 [국시] 아래 [일치 단결]하여 정해진 목표를 향해 [힘껏 달려나가야] 한다는 [고결한(?) 애국심], 그것 하나 뿐이었죠.



------------


수 년 전, 성희롱 문제로 집권여당에서 퇴출당했던 전직 국회의원 K의 상당히 솔직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왕 토사구팽당한 마당에 전직 당대표에 대해 솔직하게 평가해달라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묘한 대답을 하더군요.

"애국심... 애국심의 화신이다. 그거 하나는 정말 어마어마하다."

그 이상을 말해달라는 인터뷰어의 집요한 질문에 K는 입을 꾹 닫았지만, 전 K가 이미 모든 것을 말했다고 생각합니다.

어휴....

이 글은 송나라 때 이야기입니다. 왕안석 이야기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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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 그레이
14/01/07 06:40
수정 아이콘
저는 개인적으로 왕안석을 좋게 평가합니다만, 그가 소통 또는 정치력이 크게 부족했다는 데에는 동의하고 있습니다. 송이 신권이 강했던 게 태조였나 누구였나 하여간 황제의 유지가 "처형당하는 선비가 없게 하라"였나 뭐 하여간 그 비슷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죠. 그래서 소동파도 죽을 뻔했다가 간신히 살아서 하이난으로 유배를 가기도 했구요.

왕안석이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기본적인 요소를 알았더라면, 아마도 훗날 그가 역신전에 이름을 올렸을 것이냐 열전에 이름을 올렸을 것이냐 따위의 논쟁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이건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죠. 누구 이야기였는지는 까먹었는데 아마 조선 초기 집현전 학사 중 한 명이었을 겁니다. 남들은 다 역신전에 이름이 올랐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게 포인트죠).
기아트윈스
14/01/07 06:54
수정 아이콘
맞습니다. 아마 송태조의 유훈이 큰 역할을 했을겁니다.

사실 채씨정권 하에서의 원우당 탄압 당시가 이 유훈이 깨지느냐 마느냐의 중대기로였는데 결국 지켜졌죠. (물론 소식은 그에 버금가는 끔찍한 유배생활을 견뎌야 했지만요)
14/01/07 07:09
수정 아이콘
왕안석의 애국의 개념이,
지금 시대 그의 자리에 있는 사람의 애국과 같은 개념일까요?
기아트윈스
14/01/07 07:39
수정 아이콘
애국심이 어느 선을 넘어서면 파쇼가 되죠. 왕안석까지는 모르겠지만 그 뒤를 이은 채씨 정권을 보면 전체주의자라고 해도 될만큼 국가의 영향력을 확장해서 사회의 가장 말단까지 장악하려고 했죠. 지금 시대의 그분들도 뭐...
마스터충달
14/01/07 08:40
수정 아이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 통용되는 애국심은 18세기 이후에 나왔다고 보는게 맞을 겁니다.
제국주의 침략과 맞물려 정신침략의 일환으로 등장한 셈이죠.

과거의 애국심이란 결국은 군주에 대한 충성심과 다를바 없을겁니다.
국가의 3요소 보다 황제가 위에 권림했으니까요.
감모여재
14/01/07 07:13
수정 아이콘
왕안석은 매우 유능한 인물이었죠.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기아트윈스
14/01/07 07:39
수정 아이콘
왕안석은 불세출의 천재였죠.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라이트닝
14/01/07 07:16
수정 아이콘
무슨 얘기인지 알거같네요
강가딘
14/01/07 07:43
수정 아이콘
무슨 얘기인지 알거같네요 (2)
추천누르고 갑니다
치탄다 에루
14/01/07 08:33
수정 아이콘
애국심이라고는 한톨도 없는 사람이 이 글을 보면 정말 두려움에 치를 떨게 되는군요... 그래도 잘 읽었습니다.
덱스터모건
14/01/07 08:45
수정 아이콘
무슨 얘기인지 알거같네요... 지금 그분이 생각하는게 애국심인지 효심인지는 모르겠지만요
키니나리마스
14/01/07 08:48
수정 아이콘
확신범은 무섭습니다.
단약선인
14/01/07 09:39
수정 아이콘
공감합니다.
또한 콜린 윌슨이 말한 '확신인간'에도 가깝다고 봅니다.
꽃보다할배
14/01/07 09:52
수정 아이콘
제가 생각하는 현재의 그분과 어쩜 이리 싱크로율이 일치하는지 아마 k씨도 정확히 맥을 짚은듯
어린시절로망임창정용
14/01/07 10:04
수정 아이콘
이경규씨가 남긴 말이 생각나네요.

'무식한 사람이 신념까지 가지면 무섭습니다'

왕안석은 천재이기라도 했지, 지금은..
14/01/07 10:07
수정 아이콘
그 분의 애국심은 교과서에 나오는 애국심과는 차이가 있을 것 같네요.
14/01/07 10:36
수정 아이콘
근데 K 가 누군가요??
더딘 하루
14/01/07 12:35
수정 아이콘
KYS
14/01/07 13:44
수정 아이콘
아.. 그분이군요..크크...
오카링
14/01/07 12:17
수정 아이콘
왕안석은 중국 수천년 전체 역사의 재상들 탑급 꼽을때에도 1.5군 이상은 항상 되는데, 지금은;
14/01/07 12:34
수정 아이콘
애국심이라는 광기에 휩싸여 미쳐 날뛰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일단 일이라도 제대로 ;;
석신국자
14/01/07 14:28
수정 아이콘
그래도 왕안석의 방향성이라도 옳았지
백마탄 초인
14/01/07 14:42
수정 아이콘
왕안석은 정말 천재에다가 사상적 완성이 높은 규범등을 마련하고 현재로 치면 큰정부 형태의 통치를 하려 했었죠...

그러나 지금은.... 솔직히 뭘 하고 싶은건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한몫 챙기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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