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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12/13 03:58:10
Name 비연회상
Subject [일반] 국정원은 이젠 해체가 답인거 같습니다
아니, 해체라기 보다는 '해체 수준의 개혁'이 맞겠죠. 세상에 국가의 정보기관의 존재 의의 자체를 부정하는 바보는 없습니다. 적성국 스파이가 아니고서야... 다만 그놈의 오용때문에 '개혁'이란 말 자체가 공갈빵처럼 허망해진 탓에, 그 단어를 쓰는것 자체가 무의미해진 탓이죠.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개혁'이라는 단어는 어떠한 충격적 울림도 주지 못합니다.

남재준이 A4용지 세장짜리 셀프 개혁안이란걸 들고 나온걸 보고 확신이 생겼습니다. '이건 정말 심각하다'

폐쇄적인 조직이 스스로 개혁하는건 불가능합니다. 그게 국가기관이라면 더욱 그렇고, 심지어 그 기관이 막강한 권력을 갖고있기까지 하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막강한 권력기관이라도 결국은 대통령을 우두머리로 하는 행정부에 종속된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그 대통령에게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국민에게 종속된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감히' 정치의 한 주체로 전면에 나서려고 시도하는 조직이라도 국민적인 개혁요구에 맞닥뜨리게 되면 '어느 정도 선에서는 양보할 수 밖에 없다'라는 타협을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권력기관이 되어버린 검찰조직조차 그렇고, 또 그래왔습니다.

하지만 국정원이 들고 나온 셀프 개혁안은 문자 그대로 [개수작]이라는 단어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 라는 말조차 너무 나이브하게 느껴집니다. 국민에 대한 선전포고에 가깝습니다. 민주당이요? 그런것 따위는 이 정권 출범하기 전부터 이미 안중에 없었습니다.

이 '개혁안'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입니다. 제 멋대로 형법으로 기교를 부려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옥살이도 시켜온 검찰조차 이 정도로 막나가지 않았고, 막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군인독재 시대를 제외하고, 이 정도로 파괴적인 무대뽀 돌진을 한 국가기관은 유례가 없습니다. 아니, 군인독재 시절까지 포함해도 이런 조직은 존재했던 적이 없어요. 그 시절의 정보기관이나 검찰은 어디까지나 명백하게 주인에게 예속된 개에 불과했습니다. 스스로 권력의 주체가 아니라, 단지 정권의 두목이 생사여탈권을 틀어쥐고 힘을 부여해준 도구였을 뿐이죠.

국정원은 '감히' 정치의 한 주체로 나설수 있도록 허용된 조직이 아닙니다. 시사프로 같은데서 공공연하게 남재준이 '정국의 핫한 인물 베스트'같은데 랭크되는 것을 보고 정말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 누구도 국정원에게 정치를 하라고 용납해준 적이 없습니다. 그런건 헌법에도 없고 법률에도 없으며 군사독재 수괴들조차 상상하지 못한 발상입니다.

지금 시점에서는 지난 대선의 댓글공작 같은 건 이미 별 것 아닌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범죄행위는 시일이 얼마가 걸리든 끈질기게 추적해서 단죄하면 그만입니다. 문제는 단순히 조직의 안위와 연명을 위한 공작을 하는데서 더 나아가, 자신들에게 맞붙어오는 도전들을 상대로 국정원이 '싸우기로' 결심하고 '이기려고' 작정했다는 겁니다. 거듭 말하는데, 검찰조차 감히 이렇게는 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조직이든 그 조직원들은 한몸으로 뭉쳐서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중학교 동아리라도 그럴겁니다. 권력을 누리는 국가기관이라면 말할 것도 없습니다. 문제는,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위기'로 진단했을때, 그 집단이 어떻게 대응하냐는 겁니다. 아무리 강력한 기관이라도 결국은 선출된, 즉 민주적 정당성있는 정치권력에 예속될 수 밖에 없으므로 살점을 좀 내놓더라도 어떻게든 뼈만은 남기기 위한 적당한 타협의 선을 모색하게 마련입니다. 반란이라도 일으킬게 아니라면 말이죠.

하지만 국정원은 조직적인 범죄행위가 들통나고 자신들의 상황을 위기로 진단하자, 직접 링 위에 올라가서 파이터로 뛰기로 작정했습니다. 대통령 정상회담 대화록을 유출하고, 심지어 '감히' 스스로 그것의 성격을 규정하며, 시기를 조절해가며 자신들이 쥐고 있던 공안 카드를 사용하고, 적성국의 정치상황에 대한 정보를 필요할 때에 필요한 만큼 풀기도 합니다. 야당 정치인과는 직접 맞붙어서 대결하고, 직원 명의로 가능한한 모든 민/형사 소송을 제기해서 자신들이 만만하게 건드릴만한 집단이 아니라는 위세를 과시했습니다.

그리고 개혁의 메스를 대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기에 스스로 마련했다는 개혁안을 들고 와서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정보기관이 정치를 주도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별로 심각하게 느끼는것 같지가 않습니다. 오해받기 쉬운 말이긴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대선 여론조작 범죄같은건 꼬리에 불과합니다. 정치평론가라는 자들이 TV에 나가서 태연자약하게 국정원장을 정치게임의 신규 플레이어로 취급하고 있고, 사람들은 흥미진진하게 '국정원이 이번엔 뭘 터뜨릴까?' 같은걸 두근두근하며 기대합니다. 만약 2013년 대명천지에 군대가 문민통제에서 벗어난 정황같은게 조금이라도 보이면 다들 충격에 빠질 겁니다. 대상이 국정원이라, 즉 아직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다들 무감각한걸까요?

셀프개혁이고 개혁특위고 나발이고, 다 헛소립니다. 말 그대로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모조리 부순 후에 주춧돌부터 다시 쌓는 수준의, 말하자면 얄팍한 개혁 나부랭이가 아니라 재창조 말고는 답이 없습니다. 제 상식으로는 그렇습니다. 차라리 간부가 뇌물을 몇억쯤 받았다든지 직원이 룸살롱 접대를 받았다는 정도라면 이렇게 두렵지는 않았을겁니다.

'북괴의 위협' 같은걸로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고정관념 자체를 깨 부숴야 합니다. 그거야말로 진짜로 한가하고 나이브한 얘깁니다. 이를테면 구성원의 90%의 착취를 전제해야만 번영하는 공동체라면, 그 공동체는 이미 존재가치를 상실한 겁니다. 마찬가지로, 민주적 정당성없이 저 혼자 괴물로 큰 정보기관은, 그 기관이 주는 국가안보적 이익 이전에 이미 존재 자체를 용납받을 수 없습니다. 안보란 결국 공동체 구성원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가치입니다. 그런데 구성원 자신들을 향해 칼을 겨누고 있는 문지기나 경비원이라면?

진보든 보수든 나름의 신념대로 나름의 가치를 좇을 수 있고, 거기에는 토론의 여지가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결정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단 하나, 진보든 보수든 새누리당이든 민주당이든 반드시 합의해야 할 의무가 있고 또 감히 포기할 수 없는 단 하나의 가치가 있다면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의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를 통치할 정치권력은 반드시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해야 하고, 민주적 정당성 없는 권력은, 만에 하나라도 그 권력이 너무나 완벽한 통치를 한다든지 너무나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 해도 존재 자체가 부정되어야 합니다.

국정원은 정보를 수집/가공/분석해서 정당한 집행권한 있는 주체에게 넘기는게 임무인 '정보기관'입니다. 국정원은 정치의 주체가 아니고, 정치의 주체일수도 없으며, 만약 감히 스스로 적극적인 정치행위를 해서라도 조직의 위력을 과시한다면 (헌정질서 문란같은 추상적인 말을 집어치우자면) 반란을 일으킨 군대와 하등 다를게 없습니다.

나같은 일개 소시민이 이런거 끄적인다고 달라질건 없지만, 이렇게라도 스스로 결심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국정원은 이제 답이 없어요. '가급적 현상유지'를 전제로 하는 개혁 같은건 망상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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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매니아
13/12/13 04:03
수정 아이콘
김재규니 김형욱이니 장세동 이후로 제가 이 나라 국가정보기관 수장 이름을 딱 두명 압니다.
원세훈, 남재준.
저글링아빠
13/12/13 04:08
수정 아이콘
딜의 일부인데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진 마세요.
얼마까지 보고 오셨어요?에 대한 국정원의 답인 셈이니까요.
이 상황에서 딜을 건다는게 괘씸하고 어처구니 없을 수는 있지만,
어차피 교착상태를 풀 수 있는 건 딜이고 그 딜의 물꼬를 튼다 정도의 현실적인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현대엘스
13/12/13 04:10
수정 아이콘
좋은 글에 추천드리며 말씀하신 바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키스도사
13/12/13 05:06
수정 아이콘
지금 이시각에도 목숨걸고 활동하는 국정원 비밀요원들이 있습니다. 적성국가 첩보수집, 산업 스파이 적출 등 다양한 위치에서 상당히 위험한 일을 하고 계신 요원들이 상당수죠.(아, 편하게 인터넷으로 댓글 다는 분들 빼고요.)

그런 분들을 생각하니 윗대가리들이 하는 짓이더 화가나고 짜증나는군요. 돌아가는 상황을 보자니 답답합니다.
13/12/13 08:10
수정 아이콘
멋진 글이네요
추천 한방!!!
The Silent Force
13/12/13 08:57
수정 아이콘
국정원이라는 곳의 전신이 중앙정보부 - 안전기획부 인것을 생각하면 어찌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국정원은 정부 견제의 목적을 가진 기관도 아닌지라.. 권력자가 권력의 단 맛에 눈을 뜨고 이를 활용하고자 했을 때에 가장 쉽게 부릴 수 있는 기관이기도 하죠. 예전 역사가 이를 증명하구요.
글 쓴 분의 의견의 십분 공감하며 추천드립니다.
치탄다 에루
13/12/13 09:17
수정 아이콘
추천 드립니다.
악한건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능한건 참을 수 없습니다...
13/12/13 09:44
수정 아이콘
그건 새누리당 지지다들의 주장인데;;
무능보다 부패를 선택하겠다...
치탄다 에루
13/12/13 09:47
수정 아이콘
유능하고 깨끗한 사람도 있죠. 전 저번 선거때 그런 사람을 찍었습니다.

애초에 부패가 알려진 그 시기에서 그사람은 무능한겁니다. 부패한걸 우리가 안다는 것 자체가 부패를 재대로 숨기지 못하는 무능이죠... 그래서 부패하면서 유능한 사람은 없습니다.
선행을 남들 모르게 하는 사람은 많지만, 악행을 남들 모르게 하는 사람은 거의 없죠.
13/12/13 09:43
수정 아이콘
남재준이 수방사령관 시절...수방사에서 복무했었는데.
진짜..유능하다란 생각을 들게했던 인물이었는데.
그릇이 딱 장군까지인건가요?
전 일단 좀더 지켜볼 생각입니다.
13/12/13 09:58
수정 아이콘
어제 라이도 들으니 국정원 개혁안이 뼈를 깍고 정치권의 손을 너무 들어줬다 국정원의 힘을 이렇게 없앨거냐
그러고도 너희가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이냐 이러더군요

머 그 교수말로는 정치인들 뒷조사하는건 예전부터 했으니 별문제될게 없다던데
정말 할말이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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