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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12/01 18:01:51
Name 당근매니아
Subject [일반] 인문학의 추락.
http://news.donga.com/NewsStand/3/all/20131130/59238100/1

모든 분야가 그렇듯 일반적으로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인문학자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을 겁이다. 전 그 자원의 출처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질 수 있다 보는데, 하나는 학교이고 나머지 하나는 출판 ㅡ 지식소매상으로서의 위치입니다. 다시 전자는 학교 재단과 정부 시책에 따라 그 한계가 정해지고, 후자는 그 사회가 '사는' 책과 신문에서 고용하는 인문학 칼럼리스트 등의 수요에 따라 정해지겠죠. 우리나라에서 후자는 거의 없다 봐도 무방할 겁니다. 기껏해야 스테디셀러 작가들 몇몇.
이건 굉장히 뭣 같은 사이클인데, 학교에서 인문학을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으니 흥미를 느낄 일도 없고, 그래서 그런 분야에 대한 일반 대중의 수요는 전무하고, 인문학이 쓸모없다는 인식이 박혀 학교에서의 가르침 또한 축소되는 식이죠.
링크한 글에 나오는 인문학의 새로운 시장은 '고급지향적이고' '고가지향적인', 그리고 인맥을 쌓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고소득층 대상 시장인데, 이건 산업화시대 이전으로서의 회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적어도 한국에서 정보통신의 발달은 인문학의 대중화에 기여하지 못했습니다. 이건 대단히 처참한 일입니다.
딱히 돌파구는 보이지 않네요. 대중은 인문학 대신 자기계발서를 소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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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2/0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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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긴 하지만 사회적 수요가 적다면 축소되는것도 나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하는데...
역시 공돌이라 그럴려나요
김연아
13/12/0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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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소가 아니라 씨가 마르는 분위기라....

기초학문이 튼튼해야 나라와 사회가 잘 된다는 막연한 신념에는 변화가 없는지라 좀 걱정됩니다.
王天君
13/12/01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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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박한 실용주의에 떠밀려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과 해답이 사라져가는 게 안타깝습니다. 이것이 사회적 강요에 의한 필요악의 흐름인지, 혹은 사회적 흐름을 급급히 따라가려는 인문학 자체의 타락인지는 알쏭달쏭하지만요. 대학이 취업시장의 학원처럼 변질해가는 게 참 그래요.
아이지스
13/12/0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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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책 자체의 질은 많이 좋아졌어요. 예전과는 달리 원전을 직접 계약해서 번역들을 전문가가 제대로 해 주고 있고요. 문제는 책을 읽는 버릇이 되어야 자기 수준에서 뭘 볼 수 있을지 알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게 좀 안되죠. 그래도 읽을 사람들은 저렇게 찾아가 읽습니다. http://media.daum.net/culture/newsview?newsid=20131201120211335
13/12/0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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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와 독일어문학과가 폐지가 확정되어 사라지는 중인데... 안타깝더군요.
문과대학에서도 어문 계열은 취업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프랑스어문학과 정도만 폐지에서 자유롭고...
문과대학 통합하면 제가 다니는 학과는 사회과학대학으로 옮겨갈거라 생각하지만... 철학도 없는 학교라는 호소문 내용이 기억에 남습니다.
담박영정
13/12/0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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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뒤에 이어지지만 경희대학교는 인문학쪽으로 상당히 집중을 하더라구요. 후마니타스 칼리지 이던가... 새내기들이 고전을 읽고 토론하고 하는 문화가 점점 퍼져나가고 있다던데 좋아 보이더군요.
방민아
13/12/01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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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총장이 인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투자를 많이 하고 있죠.. 근데 에휴ㅜㅜ
베인티모마이
13/12/01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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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부럽게 보고 있습니다. 우리학교는 뭔 경영대 출신 총장이 다 헤집어놔서 에효...
13/12/0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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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어찌보면 모든 학문의 뿌리가 되는 기초 학문들의 기반이 튼튼하지 않고서
어떻게 그 위에 응용학문들이 더 발전할 수 있을까요?

당장에 뭔가 이익이 나오는 실용 학문들에 대한 투자 좋죠..
당장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사는 시대는 제가 봤을때 분명히 지난거 같은데
언제까지 그 핑계대면서 기초와 근간에 대한 투자는 미룰건지.

웃긴건 공대와 같은 이공계 기피현상은 가속화되고 (체감은 못하겠지만 언론상 그렇다고 하니)
경제 구조 자체가 내수도 별볼일 없고 수출만이 먹고 사는 나란데
앞으로 어찌될지 모르겠습니다.
일본 소니꼴을 중국을 보면 절대 피할 수 없을꺼 같은데
일본이야 워낙에 저축해둔 달라가 많으니 저러고 버티는거지
우리 나라는 삼성이나 엘지 망하면 장난 아닐텐데.
항즐이
13/12/01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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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많은 공학들이 자연과학 위에 서 있고, 반드시라고 할 순 없지만 대다수의 공학 연구자들은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이를 강조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그에 반해 인문학의 파급효과에 대한 어필이 좀 부족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인문학의 2차 학문(?) 들이 당장 돈이 되는 경우가 없어서 그럴수도 있습니다만..
13/12/01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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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라는 자체가 교양으로의 인문학이 아닌 이상 인문학의 발전은 소수의 소위 천재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이끌어 나갑니다. 지금 대학에서의 인문학 전공은 그저 점수맞춰 간 것이 대부분이고 본인이 인문학 전공의 거의 절대다수가 본인이 정말 인문학을 전공해 인문학의 발전에 이바지하겠다기보단 상경계 복수전공을 노리는 실정에서 인문학 대학 정원을 줄이는 건 분명 타당하다고 봅니다. 결국은 한정된 자원의 배분과 수요 문제니까요.
삼공파일
13/12/01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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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학문이든 안 그런 것은 없습니다. 시대를 이끌어나가는 천재들이 있다면 시대를 일궈나가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칸트의 그 수많은 해설서와 주석서와 번역서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요?
13/12/0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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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냐. 문제는 실제로 인문학 대학에 다니는 학생의 대다수가 전공 관련 직업에서 일하고자 하지도 않고, 일자리도 없으니 줄여야한다는거죠.
칸트의 수많은 해설자와 주석서도 일반 인문대 학생이 쓰는게 아니라 그 당시 뛰어난 천재들이 하는거죠.
삼공파일
13/12/01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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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전공이 그렇습니다. 전공을 살리라고 하는데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전공이 좋은 전공인가요? 어른들이 "전공을 살려야 한다~" 이러시는 건 그냥 의대/법대 가라는 얘기고, 이공계도 전공을 살리는 과가 몇 개나 되겠습니까. 해설서가 그 다음판이 나오려면 그 책 사서 읽고 강의할 대학생들이 좀 앉아 있어야 그 교수님 다음 후계자도 나오는 법이죠.
13/12/01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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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다른과도 마찬가지인건 부정하지 않습니다만 그 정도가 전부 같지는 않습니다. 예컨데 상대다 하면 대개 금융권을 가려고 하고 그건 전공과 어느정도 닿아있죠. 그런데 예컨데 사학과의 경우 역사 교사, 역사 학자 정도가 그나마 살리는 경우일거고 철학과 역시 마찬가지 일겁니다. 사실 극단적으로 말씀하셔서 그런데 아예 없애자는 것도 아니고 시장 상황 등을 보자면 지금 인문학도들의 공급이 '과다'하다는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인문대 정원을 조금 줄인다고 교수님 후계자도 안나오는 수준은 아니죠.
삼공파일
13/12/0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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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대의 정원이 너무 많아서 줄인다"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범위입니다.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런데 그걸 인문학 전공이 가지고 있는 어떤 본질적인 문제를 원인이라고 지적하면 문제가 있다는 것이죠.
王天君
13/12/01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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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시는지 모르겠지만, 취업과 관련이 없으니 줄이는 게 당연하다는 취지의 발언에는 공감하기 어렵군요. 사실 그렇게 치면 사칙 연산 및 엑셀과 실무에 관한 교육만 고등학교동안에 끝마치고 바로 취업전선으로 사람들을 내모는게 더 합리적입니다.
13/12/0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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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유럽의 대학처럼 엘리트들을 위한 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이 아니라 최근의 대학은 전문 인력 양성에 어느 정도 초점을 두고 있는게 사실이고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앞선 댓글서 언급한 이야기지만 인문학도들의 졸업후 일반적인 모습을 보건데 정원을 줄일 필요도 있다가 이렇게 공격적인 반응을 보아야할만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취업과 관련이 없으니 줄여야한다는게 아니라 시장에서 해당 학문 종사자에 대한 수요에 비해 과다하게 공급이 많다는 말이니다. 이게 왜 사칙연산만 배우고 취업전선을 몰아야하는것과의 관련성도 의문시되구요.
王天君
13/12/0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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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이 공격적으로 느껴졌다면 사과드립니다.
그러나 여전히 전제 자체에 찬성하기는 어렵습니다. 교육의 수요의 범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목적과 방향성에 있어서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전문 인력 양성이라 함은 결국 어떻게든 지식의 습득이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여겨지는 것을 뜻하고, 그것이 설령 현실적인 문제와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이라 하더라도 공급의 과잉을 자제하기 위해 인문학이라는 학문 자체의 폭을 줄이는 방향은 옳지 않아 보입니다. 오히려 대학교의 수를 줄이면 줄였지, 어느 특정 학문의 범주만 줄이는 건 수요와 공급의 문제에서 볼 때, 그 형평성이나 실표성에 있어서 딱히 자유로운 학문은 없어보이거든요. 더군다나 학문이 공급과 수요의 선상에서 꼭 계량되어야 하는 부분인지, 인문학이 그렇게 다뤄져야할 부분인지도 저는 좀 불안합니다. 이러한 공급의 축소가 수요의 축소를 불러일으킬 테고, 그 연쇄작용이 결국 인문학 자체에 대한 양적 질적 하락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13/12/0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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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궈나가라고 교육시키는 인원이 지나치게 많고 정작 그 분야에 몸 담는 사람도 적다는 거죠. 그리고 저는 그 일궈나가는 사람도 범인보단 훨씬 뛰어난 아웃라이어라고 봅니다. 저는 밑에 삼공파일님이 쓰셨듯이 우리 사회의 인문학 수요 자체는 전혀 위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공감합니다. 그리고 이 수요를 충당하는 데 있어서,대학정원을 줄여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보구요. 위기는 수요에 비해 훨씬 많은 공급에 안주했던 몇몇 교육자들의 위기일 뿐이겠죠.
삼공파일
13/12/01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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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명 정도가 교과서 읽고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다가 보면 100명 정도가 몇 년 더 공부하고 10명 정도가 책을 쓰고 1명 정도 쓴 책이 사람들 기억에 남고 그런 것이죠. 대학 숫자가 지나치게 많은 것은 인정하는데 인문학 분야에 대해서만 특정해서 인문학에 뜻도 없는 사람들이 인문학과를 많이 가니까 인문학과의 정원을 줄여야라는 식의 논리는 이상하다는 뜻입니다. 인문학에 대한 뜻은 커녕 인문학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가는 게 정상이죠. 그 이후에 교육하다 보면 뜻이 생기는 것이고요.
13/12/0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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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말씀입니다만 사회적으로 자원이 한정 돼 있다는 게 문제죠. 인문학을 발전시킬려면 당연히도 투입인원이 많을수록 좋습니다만 대한민국에서 발전시켜야 하는 학문은 인문학만 있는 게 아니고 결국 사회 전체의 효용을 높이기 위해 각각의 학문의 발전에 효율적인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데 지금의 인문학에 투입되는 자원의 구조는 비 효율적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삼공파일
13/12/01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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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학문에 투입되는 자원의 구조는 비효율적입니다. 자연과학이나 공학 역시 만만치 않게 비효율적입니다. 그래서 효율의 전문가들인 대기업들이 효율적으로 하면 안되는 일들을 효율적으로 하고 있어서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이고요.
13/12/0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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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야말로 천재들에게 가장 의존을 덜하는 학문 아닌가요?
오히려 인문학이야말로 다수의 넓이로 깊이를 채워나가는 학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공 선택을 자신이 정말 꿈이 있어서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공대야 말로 거의 대부분이 점수에 맞춰서 + 취업이 되니까. 라는 걸로 선택한 사람이 대부분이 아닐까 싶은데요.
13/12/01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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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라고 보통 이야기되는게 문학, 사학, 철학인데 문학 철학은 좀 천재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죠.

전공선택을 점수 맞춰서 하는 거야 일부 소수를 제외하고는 다 같은데, 다른건 전공과 관련된 진로를 가느냐 아니냐의 문제죠.
삼공파일
13/12/01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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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인문학 101"이라고 볼 수 있는 내용의 책이 몇 년동안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인문학에 대한 수요가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봅니다. 모든 학자가 그러한데, 전문 분야와 대중과의 소통 사이에서 어디에 더 힘쓰느냐는 있겠지만, 둘 다 하지 않는 학자는 학자로서의 자격이 없을 겁니다.

박민규가 쓴 "조까라 마이싱"이라는 글이 있는데요, 인문학의 위기, 문학의 위기를 부르짖는 너희의 위기지, 우리는 위기가 아니라는 내용이었죠. 박민규 본인이 증명한 측면도 있고요.

대학 법인을 계속 대기업이 인수해가면서 통폐합이 일어나고 등록금 싸게 먹히고 인기 없는 과들을 없애가고 있는 것은 사람들, 대중들이 인문학의 중요성을 모르고 등한시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배부르진 않아도 최소한 등따숩게 계시던 분들에게 날벼락이 떨어진 셈이고, 날벼락은 돈 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내린 것이겠죠.
끵꺙까앙
13/12/0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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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의 히트와 인문학에 대한 수요가 직관적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동일한 주제에 비슷한 내용으로 구성된 수많은 책들이 외면되다 못해서 폭싹 망했거든요. 예전에 딴지일보에서 이를 비교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갈망이라기 보다는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한국사회에 대한 실망 + 이슈화되는 책을 읽음으로서 충족되는 허영적인 만족감의 성취에 가까울 것이라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나네요.
삼공파일
13/12/01 19:09
수정 아이콘
동일한 주제에 비슷한 내용으로 구성된 수많은 책들이 <정의란 무엇인가>보다 훨씬 수준이 낮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서 인문학자들이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책 한 권이라도 내보고 그 다음에 인문학의 위기를 논하는 게 맞지 않나 싶네요. 딴지일보의 해설에 대해서... 별로 태클 걸고 싶진 않은데 지적 허영을 만족시켰든 어쨌든 <정의란 무엇인가>가 인문학인 건 확실하고 만약에 수요가 없었다고 하면 그 책이 있지도 않은 수요를 창출시킨 것인데, 한국 인문학이 그런 뛰어남을 보고 배워서 위기를 자력으로 탈출했으면 합니다.
끵꺙까앙
13/12/01 19:11
수정 아이콘
지적 허영을 만족시켰든.... 으로 폄하될만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치면 인문학은 '시크릿'의 성공을 보고 배워야 하죠. 지적허영심을 충족시키는 용도로 구매됐다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내용이며 따라서 샌델 교수의 성공을 인문학의 수요와 직결시키는 것은 오류가 드글드글하다는 지적입니다.
삼공파일
13/12/01 19:15
수정 아이콘
인문학이 그러면 많이 팔렸으니까 "드래곤볼"의 성공을 배워야 하나요? 많이 팔려서 배우라는 뜻으로 한 얘기가 전혀 아닙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전혀 가벼운 책이 아니고, 말 그대로 인문학 강의를 그대로 옮겨 놓은 책입니다. 그러니까 인문학 서적이죠. 그래서 인문학 얘기가 나왔길래 <정의란 무엇인가> 얘기를 한 겁니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위안을 주는 내용인가요 아니면 지적 허영을 만족시켜주는 내용인가요? 전혀 아닙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수요를 창출시킨" 수준입니다. 적절한 수준의 좋은 내용의 인문학 강의라면 몇 년을 베스트셀러로 팔릴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줬습니다. 인문학자들보고 인문학자한테 배우라고 한 것입니다.
끵꺙까앙
13/12/01 19:18
수정 아이콘
적절한 수준의 좋은 내용의 인문학 강의가 매스미디어의 홍보와 그에 따른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구의 발현이 더해져 성공한거죠. 그 점을 지적하는 거구요.

덤이지만 '정의란 무엇인가' 의 성공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국내 학자들의 성과를 과감히 무시하시는데, 읽고나 말씀하시는지는 의문입니다.
삼공파일
13/12/01 19:27
수정 아이콘
그렇다면 부당한 성공이라는 말씀이신가요? 서점에서 많이 팔리는 책은 내용이야 어떻든 무조건 지적 허영심과 대중 매체의 홍보 때문이라는 이야기인데 그것이야말로 과감히 무시하는 것 같은데요.

국내 학자들의 성과와 미국 학자들의 성과를 저울에 놓고 비교해보자, 이런 말이 아니라 인문학의 위기가 인문학에 대한 수요 때문에 발발하지 않았다는 걸 지적하려는 것입니다. 인문학에 대한 수요가 뭔가요, 그럼? 인문학에 목숨을 바쳐서 평생 연구하겠다는 사람들의 숫자인가요? 아니면 남들한테 아는 척이나 하려고 책 몇 글자 기웃거리는 건 수요인가요? 그것도 아니면 그 어디 중간에 있는 사람들인가요?

이공계도 수십년째 위기입니다. 미국식 논문 제도 때문에 게으르게 살면 엄청 무시당하는 무한 경쟁 체제에 놓여 있어서 그나마 살아남고 있다고 봅니다. 인문학계도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하는 게 올바른 태도일 겁니다. 책 안 읽는 무식한 대중과 자본주의에 침식 당하는 첨탑을 한탄하기 전에요.
끵꺙까앙
13/12/01 19:37
수정 아이콘
뭔가 논점이 계속 어긋나는 것 같군요. 따져봅시다.

from 삼공파일
몇 년동안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인문학에 대한 수요가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봅니....

from 끵꺙...
정의란 무엇인가. 의 히트와 인문학에 대한 수요가 직관적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잡은 논점은 이거에요. 간단한 겁니다. 인문학에 대한 수요가 위기에 발발... 성과를 저울질.... 이공계도 수십년 동안 위기... 같은 이야기는 나올 필요가 없어요. 국내학자들을 떠나서 외국의 저명한 학자들도 비슷한 주제로 수많은 책을 써냈습니다. 근데 샌델교수의 성공의 1/10 도 못 거뒀고 대다수의 책들은 1/100 의 성과도 못거뒀죠. 미국에서 10만부 정도 팔린 샌델 교수의 책이 한국에서 백만부를 넘어서며 몇년간 팔리는 스테디셀러가 된 것은 마케팅과 지적허영심의 공이 더 크다는 논지입니다. 그 성공을 온전히 인문학 수요로 직결시키면 미국에서 10만부 넘게 팔리는 인문학 서적이 국내에 상륙한 순간 국내 출판계는 즐거운 비명을 질렀을 텐데 그게 아니라고요. 전 이공계의 위기나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서 관심없으니 허수아비 때리기는 그만하시길.
삼공파일
13/12/01 19:43
수정 아이콘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셨으면 더 좋았을 뻔 했네요. 왜냐면... 지금 이 글과 댓글들이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우리나라 출판마케팅 능력이 얼마나 뛰어났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지적 허영심이 얼마나 심하길래, <정의란 무엇인가>가 미국의 10배 가량 팔렸는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끵꺙까앙님의 레퍼로 삼으신 것도 딴지일보 기사 뿐인데, 그것 역시 매우 주관적인 해석일 뿐이고, 저도 매우 주관적인 해석을 한 것입니다. 그렇게 출판마케팅 능력이 뛰어나고 지적 허영심이 심각하면 비슷한 내용의 다른 책들도 팔렸어야죠. 왜 <정의란 무엇인인가>만 그렇게 표준편차에서 벗어나서 많이 팔렸나요?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서 토론하는 게 아니고 단순히 <정의란 무엇인가>가 왜 팔렸냐에 대해서 저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걸 지적하려고 하신 것이면 잘 알겠습니다. 저는 계속 인문학에 대한 수요가 가능하고 현재도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로 생각할테니 혹시 더 제 생각이 틀렸다고 지적하고 싶으시면 딴지일보 말고 다른 레퍼나 논거로 이야기해주세요.
끵꺙까앙
13/12/01 19:47
수정 아이콘
삼공파일 님// 딴지일보 기사가 레퍼런스가 아니라 거기서 들고온 자료가 레퍼런스죠. 존 롤스의 정의론도 망했고 존스턴의 정의의 역사도 망했으며 리 호이나키의 정의의 길로 비틀.... 뭐시기도 망했습니다. 인문학적 수요로는 이를 설명할 수 없고, 따라서 인문학적 수요가 아닌 다른 무언가, 마케팅이니 지적허영심이니 하는 외적인 요소가 되게 됩니다. 이러한 자료를 근거로 님의 주장은 틀렸다는 이야기에요.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전 자료로 해석한거고, 매우 주관적인 해석을 한 것은 님입니다. 너도 주관적이고 나도 주관적이니 승리가 없지롱~ 같은 소리 하지는 마세요. 같이 취급당하면 불쾌합니다.
삼공파일
13/12/01 20:00
수정 아이콘
지적 허영심을 만족시키려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보다는 롤스의 정의론을 사서 책상에 꽂아놓는 게 낫지 않을까요? 우리나라 가정집 중에 칸트 책이 한 권 이상 꽂혀 있는 집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정의란 무엇인가의 근간이 되는 더 어려운 책들은 안 팔리고 정의란 무엇인가는 많이 팔렸으니까 인문학적 수요가 아니라 마케팅이라는 분석인가요? 그게 제대로 된 자료 분석입니까? 존 롤스의 정의론이 근본적으로 마케팅이 가능한 책인가요? 전공자들 집에나 어쩌다가 꽂혀 있고 도서관에서 찾아보는 책이죠.

아이스크림 중에서 메로나만 많이 팔리면 아이스크림에 대한 수요가 아니라 메론맛에 대한 마케팅의 성공이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네요. 사람들이 메로나가 어떻게 성공했든지 간에 어쨌든 아이스크림에 대한 수요가 있으니까 메로나가 팔렸다고 보는 게 맞는 거 아닌가요.

정의란 무엇인가가 순도 100%라고 볼 수 있는 수준의 인문학 내용이니 인문학에 대한 수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사서 열어보면 앞페이지부터 끝날 때까지 기초적인 윤리학이랑 철학이랑 그에 관련된 토론, 그것도 아주 본질적인 것 밖에 없는데 그게 인문학이지 뭔가요. 그 수요가 지적 허영심으로부터 비롯되었든지 책에서 메론맛이 나서 그랬던지요.
끵꺙까앙
13/12/01 20:05
수정 아이콘
삼공파일 님// 허영심이 충족되려면 다른 사람이 알아야 하는 것이죠. 롤스의 정의론을 사서 알아주는 사람이 몇이나 있습니까. 다만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마케팅도 잘 되고 이슈도 잘 되니 당연히 허영심의 충족으로는 그게 압승이죠. 무슨 대학 교수들끼리 허영심 배틀 하는 것도 아니고 롤스의 정의론이라고 하면 누가 아나요. 말도 안 되는 비유입니다.

덤으로 메로나가 성공했으니 아이스크림에 대한 수요가 증가. 라는 것과 마이클 샌델의 책이 성공했으니 인문학에 대한 수요가 증가. 라는 것은 전혀 동치되지 않네요. 책 시크릿이 성공했으니 낙관주의에 대한 유사과학 수요가 증가. 정도로 해석하는 수준입니다. 올바르게 비유하자면 메로나에 대해서 다룬 책이 성공했다고 메로나에 대한 수요가 증강했다고 할 수 있는가. 입니다. 비유로 이루어진 리플에서 비유가 다 틀려버리니 논지를 더 논할 가치가 없네요.
삼공파일
13/12/0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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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가 어느 집에나 다 있는 <드래곤볼> 수준으로 격하된 순간 사실 지적 허영심을 채워준다는 설명도 안 맞습니다. 지적 허영심은 자기도 모르면서 남들이 모르는 얘기하는데 희열을 느끼는 거에요. 어려운 책 보면서 떠드는데 지적 허영심입니다. 애초에 어떤 물건이 팔린 게 지적 허영심 때문이라는 해석을 들고 나오면서 객관적인 해석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책이 사치품이라는 새로운 소비자 이론을 내세우려는 건가요.

무엇보다도 <정의란 무엇인가>는 인문학이 아니라 인문학에 대해서 다룬 책이고 <정의론>은 인문학이라는 생각이 훨씬 신기하네요. 인문학에 대해서 다룬 책은 인문학이 아니고 제대로 읽으려면 몇개월씩 걸리는 고전만 인문학인가요? 그런 생각이 모여서 인문학의 위기를 만든 게 아닐까 싶네요.
끵꺙까앙
13/12/0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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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공파일 님// 지적허영심이라는 걸 자기도 모르면서 남들이 모르는 이야기 하는데 희열을 느끼는 거니깐 존 롤스를 봐야하지롱~ 이라고 축소시키는 것도 안 맞죠.

남들이 다 보는데 우리집에는 없다. And 재들은 뭔가 유식해 보이는 이야기를 저 책을 통해서 한다. -> 사야겠다!

도 지적허영심이에요. 본인만의 기준을 이상하게 적용시키지 마세요.

마지막 문단은 별로 그런 생각을 표출하지도, 그렇게 말하지도 않은 것을 본인 혼자 논의를 진행시켜 산으로 가는 내용이라 따로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뭐라는지 원.
당근매니아
13/12/0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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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공파일 님// [<정의란 무엇인가>가 어느 집에나 다 있는 <드래곤볼> 수준으로 격하된 순간] 상황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그걸 꽂아놓지 않는 사람이 스스로 뒤쳐졌다고 느끼게 될 수 있지요. 롤스의 저서와 센델의 저서 모두 인문학 도서가 맞습니다. 다만 그 팔려나가는 방식에 있어서 김난도 책 팔리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었나 하는 것이지요.
삼공파일
13/12/01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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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다 보니까 나도 봐야겠다, 남들에게 뒤쳐지기 싫다라고 생각하는 건 허영심이 아니라 유행이에요. 허영심이라는 말은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걸 남들에게 보여줌으로서 심리적 충족을 얻는다는 뜻이고, 지적 허영심이라는 말은 자기도 잘 이해 못하면서 남들한테 보여주려고 하는 걸 낮춰서 쓰는 말이고요.

많이 팔리면서 가속이 붙어서 더 많이 팔리게 되었다는 해석을 하려면 지적 허영심 때문이 아니라 유행 때문이라고 분석해야 맞죠.

"올바르게 비유하자면 메로나에 대해서 다룬 책이 성공했다고 메로나에 대한 수요가 증강했다고 할 수 있는가."라고 먼저 쓰셨는데 그게 그런 뜻이 아니면 뭐죠?
끵꺙까앙
13/12/01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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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공파일 님// 말그대로죠. 책은 책이고. 인문학에 대한 수요는 수요고. 그것을 직접적으로 동치시키는 것에 대한 오류를 위에서 꾸준히 이야기하고 있는거고요.
삼공파일
13/12/0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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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과 지적 허영심으로 많이 팔린 인문학 책에 대한 수요는 인문학에 대한 수요가 아니니까, 그렇다면 인문학에 대한 수요는 뭘로 나타낼 수 있을까요? 인문학에 대한 수요를 잘 나타낼 수 있는 지표 하나 알려주세요.

마케팅도 없고 지적 허영심도 자극하지 않는 인문학 책에 대한 수요? 인문학 고전 판매량? 인문대학 경쟁률?

애초에 그 책을 예로 든 것은 대중들은 언제나 인문학에 대한 중요성을 모르고 등한시한다는 편견을 깨준 사례라고 생각해서 든 것입니다. 그게 별로 안 좋은 사례라고 생각하시는 건 알겠는데 정의란 무엇인가 자체가 그냥 책이긴 한데 내용으로 봤을 때 인문학 기초 강의록이 팔린 것이라서 지적한 겁니다.
끵꺙까앙
13/12/01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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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공파일 님// 인문학에 대한 수요를 나타낼 수 있는 지표를 알려달라... 제가 왜요? 아니 왜 라기 보다는 어떻게요????

예를 들어 이런 개념을 내봅시다. 이런 논제가 주어졌어요.

사랑에 대한 수요를 나타내라.

거기서 누군가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판매고를 근거로 사랑에 대한 수요를 산출했다고 쳐요. 그리고 누군가가 블라블라 하면서 반박했고요. 근데 그 반박자에게 '그럼 너가 사랑에 대한 수요를 산출해봐라! 정밀하게!' 라고 논박한다면 논의는 좀 미궁으로 빠지겠죠. 전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수요에 대한 대안이라거나 인문학의 위기, 이공계의 위기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없어요. 논의가 진행되는데 오류가 나타남. 그래서 그거 지적함. 그게 끝인데요.
삼공파일
13/12/01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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끵꺙까앙 님//

제가 지금 인문학의 위기라는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라 어떤 맥락에서 이야기가 나왔는지도 제가 한 이야기가 오류인지 아닌지 확인하는데 중요한 것 같아서요.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신데 인문학에 대한 수요를 어떻게 나타내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계신다니 흥미롭네요.

인문학에 대한 수요를 나타내는 게 사랑에 대한 수요를 나타내라는 이 주제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데다가 터무니 없는 주제보다는 훨씬 쉽겠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으니 끵꺙까앙님께서 적당한 대안을 말씀해주시지 않는다면 그냥 그 한계 내에서 샌델 책으로 대충 생각해보겠습니다.
끵꺙까앙
13/12/0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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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공파일 님// 보이지 않는 용을 확증하는 방법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니 더 나은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 난 이 방법으로 보이지 않는 용이 있다고 믿으실 분이네요. 칼 세이건 자살했다고 합니다. 글 내려주세요. '

덤으로 제가 언급한 주제와 무관한 방면에 대해서는 답변 하지 않겠다고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올곧게 오류를 지적했더니 다른 방면에는 관심이 없는데 수요에만 관심 운운하는게 흥미롭다며 스리슬쩍 날을 세우는건 좀 웃기네요. 차라리 노골적으로 말하시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런 놀이 받아주고 싶지 않아요.
당근매니아
13/12/0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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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의 내용 자체는 지적 허영을 채워주는 내용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책을 들고 다니는 것, 읽는 것, 읽었다는 걸 남에게 보여주는 건 충분히 지적 허영을 채워주는 활동일 수 있지요. 김훈 빠돌이인 저로서는 같은 현상을 '칼의 노래' 열풍에서 찾는데, 그 책이 대통령 마케팅 등을 안고 수십만권 팔려나갔지만 그 책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 몇이나 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같은 논리입니다.
삼공파일
13/12/0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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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해석이긴 한데, 존 롤스의 정의론과의 판매량과 비교한다고 해서 그게 제대로 된 인문학이 아니라는 건 정말 틀린 비교라고 보고요.

문학이 많이 팔리는 건 원래 흔한 일이고 김훈 같은 파워셀러에게 마케팅도 흔한 일이죠.

인문학에 대해 다루고 있으니까 전대미문의 판매고를 올린 인문학 서적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런데 계속 이것을 인문학과는 전혀 관련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부분에 대해서 그럴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죠.

정의란 무엇인가가 패션처럼 번져서 옆구리에 끼고 다니려고 그렇게 많이 팔렸다는 해석이 오히려 그 책을 폄하하려는 의도로 보여지는데, 그냥 목도리 수준이었다고 해도 왜 인문학 서적이 패션으로까지 유행이 됐는지 인문학자들 입장에서 생각해 볼 일이 아닌가요?
당근매니아
13/12/0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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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대화의 핀트가 안 맞는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전 센델의 책이 수준 떨어진다든지 인문학 도서라 할 수 없다든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는 정의와 센델의 정의가 다른 탓에 별로 즐겁게 읽은 책은 아니었지요-_-;
위에서부터 계속 논의되고 있는 건 '정의란 무엇인가'의 성공이 [인문학 도서]의 성공이 아니라 다른 도서 분야에서도 종종 나오는 일반적인 [베스트셀러]의 성공으로 보인다는 거죠. 이게 사람들의 인문학에 대한 숨겨져 있던 관심에 힘입어 팔린 게 아니라 일반적인 베스트셀러 도서들이 상업적 성공을 거둘 때와 비슷한 양상을 띄었다는 겁니다. 김난도와 김훈의 이야기를 한 것도 이 맥락입니다.
삼공파일
13/12/01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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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인문학 서적이 어떻게 성공해야 인문학에 대한 정당한 수요로 성공한 것인가요? 다른 베스트셀러와 비슷한 방법으로 성공하면 비록 인문학 서적이 팔렸을지라도 그건 인문학 내용이라서 팔린 게 아니라고 말씀하시니, 인문학 서적이 정당하게 인문학 내용으로만 팔릴 방법도 있는 건가요?

우리 사회의 인문학에 대한 수요는 그렇다면 어떻게 측정할 수 있나요?
당근매니아
13/12/01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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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공파일 님// 개인적으로는 '철학vs철학'의 판매량 정도가 현재 이 사회의 수요 한계로 보입니다. 그리고 전 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 건지 그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 전 해당 분야의 전체 파이 크기를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자기계발서 시장의 크기, 인문학 도서의 크기, 문학 도서의 크기 말이죠.
삼공파일
13/12/01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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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도 대단히 대중적이고 마케팅이 잘 된 사람인데 그 사람을 기준으로 하면 샌델에 대해서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가장 많이 팔린 책이 아이러니하게도 강신주보다 더 드라이하게 인문학만 다루고 있는 강의라는 게 재밌는 점이죠.

해당 분야의 전체 파이를 인문학에 대한 수요로 정의하는데, 어떤 뛰어난 책 하나는 그 수요를 넘어서서 파이까지 키워버렸습니다. 그렇다면 그게 잠재적 시장이고 잠재적 수요 아닌가요? 인문학에 대한 대중들의 무지와 인문학에 대한 수요가 적음을 인문학의 위기로 돌리지 말라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뿌지직
13/12/01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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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얘기를 하자면 전 인문학은 모든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배울수 있게하고 인문학 관련과나 정원은 축소해야된다고 봅니다. 위쪽의 댓글처럼 정말 인문학에 뜻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냥 점수 맞춰서 들어온거고 실업자 양성소밖에 안되죠.. 더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라 문과쪽보단 이과쪽 수요가 더 많죠..
13/12/01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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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전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교양의 부문에 불과해서 그런지 마치 이공계에서 기초과학 같이 기초학문이라는 느낌이 없네요.
not 인문학=실용적인 학문이라고 보기도 그렇고 사회과학도 충분히 각자의 분야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과 해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봅니다.

또한 대학교 수준에서 인문학을 제대로 접할 방법이 없다는건 동의하기 어렵고, 말씀하신 학교가 고등학교라면 거기선 사회과학도 접할 기회를 준다고 보기가 어려운데요..그냥 입시 공부를 할 뿐이죠.
13/12/01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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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에서 공학를 가르치는 저희 아버지도 요즘 대학이 취업만을 위한 곳이 됐다고 한탄을 하시는데...
학문에 수요가 적으니 공급도 줄여야한다는 걸 보면 정말 대학이란 취업준비 양성소가 됐나 봅니다.
13/12/01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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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원래 신학교 예과에요 교구를 기준으로 설립된 것이고 학부에서 뭘 마친다는 현재 인문학과정이 이상한건지도 몰라요
13/12/01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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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전공의 공급과 수요가 얼마나 무의미하냐면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고 현재의 수요가 미래의 수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PCS가 한창 급부상할 때 대학에서 관련 취업자리가 늘어나자 부랴부랴 PCS관련 과를 만들고 정원도 엄청나게 늘렸죠.
그리고 그 전공생들이 졸업할 때쯤엔 이미 PCS의 수요가 거의 사라져버린 상태가 되고 관련 전공생들은 공중에 붕 떠버린 꼴이 됐죠.
급변하는 현대야말로 수요에 의한 전공 몰아주기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오히려 기초학문이야말로 수십 수백년을 이어진 학문으로 그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진 않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꾸준히 이어지고,
그 기초가 밑바탕이 되어 다른 형태로 사회의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고요.
당근매니아
13/12/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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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공감이 가네요.
13/12/01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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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 합니다.
13/12/01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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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에 맞춰 과가 아닌 대학을 정하고 비인기과들은 살기 위해 복수전공을 하고 인기과들은 복전생때문에 수업도 제대로 못 듣는 상황에서 수요에 맞춰 공급을 어느정도 바꾸는건 나쁘지 않다고 보는데요.
9th_avenue
13/12/0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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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안되고 수요가 떨어지니 정원을 줄이자??
정말 인문학의 몰락이 맞긴 하네요.
깜짝 놀라고 갑니다.

철학과 문학적 소양이 결여된 사회야 말로 상스럽고 천한 사회죠. 소수의 천재가 이끌어 준다한들 같이 이야기를 듣고 담론으로 성장시킬 토양이 없으면 무용이죠.
교육기관에 아웃풋을 강조하는 건 기업논리구요. 그런 잣대를 댈 부분이 있고 배제해야 할 부분도 있는것 같아요.
유로회원
13/12/01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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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대 인문학자들의 태만이죠

꼭 "대가"가 아니라도 자기 분야에서 깊이를 어느정도 이루었어면 사회적 담론을 생성하고 외연을 넓히는 등 지식인 본연의 의무를 자각해야 하는데

그냥 안락하게 정년채우기만 합니다.... 학회가 동호인정모같습니다

사실 추락이라곤 하지만 일정한 기득권을 확보한 입장에선 별로 아쉬울것도 없을겁니다

뒤늦게 순정을 바친 후학들이나 망하는거죠...
몽키.D.루피
13/12/0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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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여기에 동감합니다.. 교수들 보면 참..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전혀 공감을 못해요. 마지막 문장에 와 닿네요. 진짜 뒤늦게 순정 바쳐봤자 남는 건 없습니다.
치탄다 에루
13/12/0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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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대학을 직업훈련소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웃긴 것입니다. 그럴거면 대학 다니지 말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취업하던가 해야죠.
대학은 공부하러 오는 곳이여야합니다. 물론 대학 통폐합부터 해야하긴 하겠지만.. 하아... 웃기네요. 시대의 요구가 '옳은 것' 을 망가트려서는 안됩니다.
삼공파일
13/12/01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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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문학소년도 있었고, 문학소녀도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초등학교 남자애들은 전부 과학자가 꿈이었고요. 그 꿈을 꺾어버린 건 나쁜 사람들이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그 꿈을 키워준 건 문학도였고 과학도였습니다. 지금도 <과학콘서트> 같은 책 보면서 과학자 꿈을 키우는 학생들 많습니다. 물론 막상 공대 들어가면 그딴 콘서트는 없죠. 우리나라 인문학자들이 인문학의 중요성을 설파하려고 얼마나 노력했습니까? 물론 노력하시는 분들 아주 많고 저도 그런 분들 책 읽으면서 지적 허영심 만족시키면서 삽니다.

하지만 말하고 싶은 건 인문학의 위기가 절대로 인문학에 대해 무지한 대중들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고, 설령 대중들이 인문학에 무지하더라도 원인과 결과가 반대로, 그 책임이 인문학에 있는 것이죠.
13/12/01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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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학문은 실용성 효율성 상관없이 꼭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무슨 기업도 아니고 기초학문의 가치를 취업 기능성으로 판단하나요;
yurilike
13/12/01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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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공감은 안가네요.
바우머리돌
13/12/01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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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돈이 안되는걸 아니까 안하는 거죠 뭐
13/12/0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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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철학 좋아하는 입장이지만
원론적으로 기초학문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들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요?

자기가 하고 싶은데 학교에서 안 가르쳐준다면 그것에 대해 인문학의 중요성을 주장할 수 있겠지만
가려는 사람도 없고 점수 맞춰서 들어온 학생들이 오히려 나중에 갈 길이 없는데.

어떤 변화가 있으려고 할 때
어떤 상태가 이상적인지를 논하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실익이 없죠..
내가 인문학을 하러 갈 것이 아니고 내가 인문학자를 내 돈 들여서 키울 생각이 없는 한
이상적인 상태가 따로 있다한들 무슨 소용인가요.

헤겔이 얘기했죠. 철학의 적은 일상에만 과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라고.
요즘 주위를 보면 자기 밥그릇이 최우선이고 ( 이건 어쩔 수 없는것이죠. ) 남는 시간에는 죄다
드라마 영화 등의 사소하고 일상적인 영역에 대한 관심이던데. 그리고 그 드라마랑 영화 등의 연예산업이
엄청난 돈을 벌고 있고요.
저 스스로를 봤을 때 일년에 철학 등의 인문학 책을 대중문화에 쓰는 반도 안되는 사람인데
주변에선 철학책 많이 본다고 (실제로 아무도 안보더군요;) 할 정도면
설령 인문학이 기반이 되는 사회가 타당하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Liberalist
13/12/01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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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우리나라에서 김재권 교수님을 넘어서는 철학자는 앞으로 나올 일 자체가 없겠네요. 수요에 맞춰서 공급을 줄이는 추세가 계속 되면요.
아무리 인문학이 천재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학문이라고는 하지만, 인재풀이 점점 좁아져가는데 어떻게 천재가 나옵니까?
13/12/0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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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전세계적인 기준으로 봐도 인문학에서 천재가 나오던 시절은 예전에 지났죠.
한참전에 물리학으로 갖고 또 경제학으로 다시 옮겨간 것도 한참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비욘세
13/12/01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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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이상 유명한 대가들을 불러야죠. 경희대가 지젝 불러온것처럼, 스타학자들을 불러서 학생들에게 호감을 불어넣어야죠.
한화99스
13/12/0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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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도 마르고 기초 과학도 마르고.. 기초를 하면 돈을 못 버니 다들 안 하려고 하고 그런 현실이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13/12/01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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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대중이 인문학을 소비해야만 하는 당위가 있을까요.
13/12/0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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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이라 그냥 짧게 쓰고 댓글이나 볼려고 했는데 저를 겨냥한 댓글들이 좀 보이는 군요 흐흐

위에서 나왔듯이 최초의 대학교육은 신학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인문학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문학과 철학입니다. 즉 최초의 대학교육은 신을 찬양하는 수사법과 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철학을 배우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러한 신학과 관련된 학문을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사회 지도층의 기본 소양이었고 출세의 필수학문이었죠.

하지만 그 이후로 수백년이 흘렀습니다. 인류의 진리라고 받들여지던 신학과 인문학은 그 자리를 점점 과학에 내주기 시작했습니다. 사회가 변함에 따라 필요로 하는 학문도 변했다는 겁니다. 애초에 인문학이 대학교 커리큘럼에 속했던 이유는 거창하게 인류의 아름다움을 논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사회가 변하고 시대가 변하면 학문의 중요도도 그에 따라 변합니다. 변하는 시대에서 그 시대가 요구하는 학문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중요해지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인문학적 소양이 없으면 그것은 부족한 사회라구요? 그렇다면 경제학적 소양이 없어서 합리적 사고를 못 하는 사회는 괜찮습니까? 아니면 과학적 사고를 못 해서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지 못 하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의학적 지식이 부족해 온갖 미신과 근거없는 건강신념이 넘쳐나는 지금 사회는 어떻습니까? 인문학의 가치가 유독 뛰어나서 사회적 요구를 넘어선 특별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모든 학문은 그 사회가 요구하는 만큼 중요합니다.

결국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거고 그 흐름의 일부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인문학은 교양으로 지적 호기심 정도의 인문학을 원한다면 그에 맞춰 변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대학이 직업 교육소가 아니다. 라고 하시는 분들은 그냥 2 차대전때의 폴란드가 독일과 소련 양쪽으로 동시에 전선을 펼쳐서 독립해야 한다. 정도의 원론적인 이상론만 외치고 현실을 보는 것을 피하는 것 아닌가요? 현실적인 문제를 벗어나서 볼 수는 없습니다. 대학이 직업 교육소까지는 당연히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벗어나서 현실과 사회의 요구를 무시하고 그냥 고고하게 탁상공론을 하는 곳도 아닙니다.

얼마전에 죽기전에 못 먹는 밥이 생각나겠냐.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냐. 라는 글에 사악군님이 죽기전에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냐 꿈 쫓아다니다 밥 굶긴 처자식이 생각나겠냐라고 댓글 다신 거에 대해 저는 굉장히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인문학의 몰락은 그냥 시대의 흐름일 뿐이고 변화하는 세상의 일부일 뿐입니다. 만약에 사회가 정말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해서 상스럽고 천하다고 사람들이 생각한다면 인문학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메인 학문의 타이틀을 가져가겠죠. 근데 과연 사람들이 사회가 천박하고 상스럽다고 생각해서 그럴일이 생길지는 잘 모르겠네요. 폰으로 쓰는 건 참 힘드네요
13/12/01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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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합니다. 대초에 대학이 상아탑으로서의 낭만을 가진건 중세 유럽에서 엘리트 한정 교육을 할 때였고 지금은 거의 보통 교육의 연장선상이되었죠. 직업교육소라는 특성을 어느정도 대학이 가지는데 이게 대학의 가치를 폄훼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이나 모르겠어요.
눈시BBv3
13/12/01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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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지만 말씀하신 사악군님 댓글 좌표 찍어주실 수 있나요? 뭔가 와닿네요
13/12/02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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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pt21.com/?b=10&n=180748&c=2273162
얼마전에 본 거라 금방 찾았네요 핳핳
사악군
13/12/0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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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뭔가 쑥스럽네요 댓글 좀 멋있게 쓸걸..? 크크
뜻은 통하지만 오히려 realise님께서 쓰신 표현이 더 와닿는 것 같습니다.
Starlight
13/12/0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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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반대로 국어,영어,수학은 수요가 끝도없죠.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하니깐 수요가 늘어나느겁니다.
자기계발? 자기계발이 필요하니깐 보는거고요. 인문학이 필요없는 사회제도하에 있으니 인문학의 수요가 줄어드는건 당연하죠.
쾌락도 없고, 삶에 필요성도 못느끼는 내용의 책을 사서 읽을만큼 요즘 한국 사회가 널널하지 않고요.
여기서 인문학을 안배우는 사람은 야만인이니 무식한 사람이니 해봤자, 직장 제대로 가진 사람이 더 높게 평가받는다는게 현실이죠. 제대로된 직장을 갖추기 위해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라고 강요하지도 않고요.
13/12/0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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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쪽을 전공으로 하고 있는 제 입장을 조금 남겨봅니다.
약 2년 전부터 한국 학계에서 "인문학의 위기"라는 담론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이 "인문학의 위기"라는 현상이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의 위기" 담론을 주장하시는 분들은 보통 자본주의 시장의 팽배와 평가수량화가 현재의 위기를 만들었다고 주장하시고, 그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인문학의 위기"가 없었던 시대가 있었을까요?
제가 공부하면서 느끼는 바는 아주 먼 고대시대부터 문, 철, 사로 대표되는 인문학의 대가들 중 명예와 평화로운 삶을 온전히 누리다 간 사람들은 극히 드뭅니다;
잘 만들어진 문학 작품이 대중에게 외면당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한탄 역시 수많은 시대를 관통하면서 관찰되는 모습중에 하나입니다.
인문학의 발전과 형성에 기여했던 수많은 사람들 중 이름도 안남은 사람들이야 수없이 많을테구요.
이러저러한 점을 봤을때, 제가 생각하기에는 인문학이란 애초에 각광받는 학문의 자리였다기보다, 사회와 인간에 대해 고민하고 갈등하는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어왔기 때문에 "인문학의 위기"란 사실상 낯선 위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댓글을 보다보니, 인문학이 천재들에 의해 이끌어 가진다는 댓글도 보이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글을 읽다보면 "와 어떻게 이런생각을 해냈지? 천잰데!"라는 감탄이 나오는 대가들이 있습니다만,
사실상 인문학의 대가들 대다수 교육과, 노력없이 탄생한 사람들은 거의 없거든요.
그리고 그 대가들의 출연 이전에 그들에게 영향을 미친 수많은 인문학자들을 생각하면, 학문이란 역시 끊임없는 축적의 과정이 아닌가 합니다.
천재가 나타나 어떠한 변환점을 만든다는 생각 자체도 칸트 이후에나 만들어진 담론이구요.
王天君
13/12/0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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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나누는데 있어 인문학의 정확한 정의를 한번 내려보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그 범위가 제각각 협소하거나 광범위한 것 같습니다.
13/12/01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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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란 신의 말 즉 계시 즉 성경을 의존하지 않고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여 세계를 사색하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아비뇽 유수등으로 교회의 권위가 실추되면서 인문학이 독립했고 자연의 영역을 담당한 과학은 아직 미발전한 상태에서 인문학이 과학의 영역의 일부도 자기 것처럼 사용했었죠.
13/12/01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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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와 공급을 신봉하고 전가의 보도로 쓰는 사람에겐 인문학의 추락이 자연스런 일이겠지요.
옆집백수총각
13/12/03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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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격하게 동의합니다.
13/12/01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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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천재가 이끌어나가더라도 일단 인재풀이 넓어야 천재가 나오는 것입니다.
13/12/01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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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인재풀이 있어야 천재들이 안떠나죠. 다들 멍청이 인데 혼자 천재면 답답해서 떠날수밖에..
13/12/01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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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위기인 것도 맞긴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인문학 전공자의 초과공급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잉크부스
13/12/01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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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 대한 요즘 유행은
개인적 생각으론 고 스티브잡스의 한마디에서 발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을 기술로 실현하여 인간에게 제공하는기업 애플...
사실 따라하기 좋아하는 우리나라에서 "그래 우리도 인문학이라는데 관심을 가져보자.."
라는데서 촉발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티브잡스는 인문학을 기술과 만나게 했는데
우리나라는 기술에 인문학을 가져다 붙일려고 하고 있지요
애플의 오늘날은 발상의 전환에서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얼하고 싶어서 기술을 개발하는것과
기술을 개발한뒤에 이걸 어디다 쓸까를 고민하는 차이죠..

아무리 인문학을 기술에 가져다 붙여보려고 해도 그리 붙지 않을겁니다.
그 태생이 다른거죠
늘 있어왔던 유행처럼 지나갈겁니다.

페스트 팔로워에게 감히 인문학이라뇨..

더불어 유교적 기반이어서인지 모르지만 사회에 뿌리깊은 기술 경시(공돌이) 사상을 겪어온 저로선
인문학이 추락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결하고 형이상항적인 그 무언가는.. 늘 형이하학적인 기술을 마음속으로 멸시하여왔으니까요.

사실 현업(기술)에서 순수 인문학자는 할일이 없습니다.
기술자가 인문학적 소양을 갖고 있는 편이 훨씬 강력하죠
13/12/01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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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도 아니고 기술경시라뇨.
요즘 가장 인기많고 커트라인 높은 대학들이 의대와 공대인데요.(의사도 엄연히 기술자입니다.)
졸업하고 나서의 취업률이나 생애연봉을 보더라도 인문계열보다 압도적으로 좋구요.
혹시나, 공대출신 일반과 변호사 + 금융업 고소득직종을 비교하시는 거라면, 비교가 이상한 거구요.

우리나라 공대 출신들은 이상한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던데,
한국은 세계적으로 봐도 공대출신들의 대우가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비교대상이 미국이라면 몰라도 말이죠. (아마 이거겠지만...)
오카링
13/12/01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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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인문학 천시사상이 있을지언정 기술경시 사상이 어디 있나요. 비하개그에 민감한 pgr은 안 그렇지만 대부분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공대개그/수학드립 치면서 '문돌이들...쯧쯧' 하는게 완전히 패턴화 되었고 좁은 온라인을 떠나 사회를 봐도 '인문학도라고? 그거 취업 못하는 애들 아님? 낄낄' 이런 인식이죠. 조선시대에서 타임머신 타고 오셨나요.
13/12/02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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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기술경시는 그냥 피해망상입니다. 우리는 왜 공대출신 대통령이 없는가! 에 가깝죠(근데 그나마도 이제 있잖아?)
취직도 직장 생활보장도 이차 직장도 이공계가 킹왕짱이에요. 인문계열은 경영 복전 안하면 취직 자체가 어려운 나라에서 무슨.... -_-;
베인티모마이
13/12/01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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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을 수요와 공급의 법칙으로 다 가져다 붙이는 건 학문의 본질 자체에 대한 이해가 없는 거죠. 우선 수요와 공급 법칙에 맞춘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최적이라는 보장이 있나요? 입시학원, 영어학원에 들어가는 그 천문학적인 비용은 학원업계 종사자 말고 누구를 배불리고, 누구를 행복하게 하나요 -_-;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서 현장에서는 쓰지도 못할 지식을 가르치고, 그 과정에서는 철저한 물질주의와 복종이라는 부수적 산물마저 학습시키죠.

게다가 학문은 단순히 수요에 지배를 받는 게 아니라 수요 구조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겁니다; 학문이 수요 구조 자체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학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이를 탐구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사회의 선호체계가 뿌리부터 바뀔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물질적인 것과 자신의 행복 중 어느쪽을 중시할 것인지, 정신적인 감수성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 나아가서는 사람들의 권리의식 및 역사적인 공동체 의식 등이 그 사회에 인문학이 뿌리박혀 있는 정도와 관련되어 있죠. 아이들에게 삶의 철학과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서 완전 논술형으로 다루게 하는 프랑스의 졸업시험, 인간의 사회성에 대한 북유럽인들의 인식이 다 인문학적 기반에서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재편하는게 쉽다는 건 아니고, 단순히 인문학만 좀 살린다고 되는건 아니지만 한번 바뀌면 효과는 굉장하죠. 이 사회에 들끓고 있는 무지막지한 속물주의와 물질주의, 기회주의의 산물들이 5%라도 줄어든다면 인문학은 제 일을 다 하는 거라고 봅니다. 어마어마한 사교육 시장의 5%가 줄어들고, 일베인의 5%라도 좀 제정신을 가지게 되고, 투표율이 5%라도 늘어나고 뭐 이런식으로요 -_-; 단순히 수요공급에 의한 어쩔 수 없는 변화가 아니라 가진게 사람과 교육밖에 없는 우리 나라가 좀 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투자로서 필요하고, 지금은 얼마없는 인문학의 최소한의 기반조차 속물주의와 물질주의에 삼켜지게 될 위기다. 막 이런 위기의식이 좀 더 생겼으면 좋겠네요.
13/12/01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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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에 대한 사회의 수요와 공급이 아니라 학문을 (배우길) 원하는 사람의 수요와 공급은 매우 크리티컬하죠. 인문학을 배울 의지가 없는 사람을 인문학과에 넣는다고 인문학적 지식이 산출되는게 아닙니다.

또한 학문과 사회수요 구조사이에 몇가지 요인이 있는지 알수도 없고 그 기간이 얼마만큼의 장기인지, 내가 살아있을 때 겪을 수 있는 것인지 알수도 없습니다. 바라지 않는 학문을 어쩔수 없이 하는 사람들이 삶을 끝마치고 나서야 변화가 일어날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어쩌면 사회수요와 학문 사이에는 복잡한 다요인이 있어서 북유럽인의 사회에 대한 인식은 인구수 대비 자원의 풍족함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일수도 있으며 또한 그들의 방식이 우리의 삶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도 미지수입니다. 삶의 철학과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 논술형으로 다루게 했더니 대학교수한테 과외받고 논점을 사사받은 학생들과 평범한 사범대출신 교사에게 배운 학생들의 수준차이가 너무 벌어져버리는 일이 일어날수도 있어요.
13/12/01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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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교수님께서 그러더라구요. 인문학을 배워서 어디다 쓰냐. 아무데도 쓸데가 없다. 무용하다는 것만이 현시대에서의 인문학의 진정한 가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인문학은 전공자를 많이 육성하기보다는 교양으로써의 범위확대가 지향점이 되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어차피 지금 많은 대학에서 이중전공이 필수화되어있는걸로 알고 있는데, 주전공이 인문학이 아닌 학생에게 부전공,이중전공으로 인문학을 이수하게 하는 식의 방법이 있을수 있겠네요. 교양을 넘어서는 수준의 인문학자는 분명 사회에 필요하지만 강제로 전공선택의 자유를 빼앗을 정도로 크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구밀복검
13/12/01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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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이런 류의 이야기는 대체로 '인문학은 근간적인 학문이라는 점에서 엄청 중요한 거지만 대중들이 그걸 모르는 것 뿐이라능. 그러니 살려야 한다능.' 정도의 인식에 머무르곤 하는데, 오히려 인문학에 대한 이해가 얕기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막상 인문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고 인문학이 필수적인 학문이라는 생각은 잘 안 들 거라고 봐요. 말이야 기초학문이지 실제로 여타 다른 학문을 전공할 때에 인문학이 얼마나 필요한가요. 학문을 전공할 때 대개의 경우 기초의 역할을 하는 것은 인문학이 아니라 수학, 물리, 화학이나 통계학 따위의 <자연과학적>인 것들이죠. 혹은 차라리 영어실력이나... 인문학이라고 하면 결국은 철학, 그 중에서도 인식론과 존재론을 중심으로 하는, 즉 형이상학이 메인인 대륙철학이 오랜 세월 코어의 역할을 해왔는데, 이미 인식론의 지위는 인지과학 등이 대체했고, 존재론은 생명과학 등에 의해 대체되면서, 형이상학이란 것이 별 의미가 없어졌죠.

따라서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철학은 더 이상 기초학문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도발적으로 말하자면, 이 세상과 세계와 만물과 실재들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느니 파인만의 빨간책이 낫죠. 그나마 분석철학이나 실천철학으로서의 정치/사회철학이나 역사철학 같은 것들이 근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고, 이런 분야에 대한 수요는 지금도 어느 정도 있어요. 위에서 언급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폭넓은 관심 같은 것도 그런 거고, <폴리테이아>나 <리바이어던>이나 <통치론> 같은 것들이 아직도 많이, 의미있게 읽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물론 인문학에 철학만 있는 건 아니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이게 코어일 뿐더러, 다른 것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가장 대중적인 문화적 매체였던 문학이 차지하고 있던 지위는 영화가 가져간지 이미 오래고(물론 영화학 역시 인문학의 범주에 들어가겠지만 전통적이진 않죠.) 페미니즘이니 후기구조주의니 포스트모던이니 하는 문학이론들은 이미 클리셰가 되었거나 유행이 지나간지 한참 되었고...결국 살아남은 인문학 분야들은 대개 실증적인 학문들, 곧 자연과학의 문법을 받아들인 학문들이죠. 언어학 같은 것들.

이렇게 볼 때 전통적인 인문학은 현대사회에서는 기초학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교양, 클리셰, 지식인 문법에 가깝죠. 데카르트 드립이나 슬램덩크 드립이나 아는 사람들끼리 웃고 즐기고 공감 나누기에 적당한 건 거기서 거기입니다. 이는 인문학은 어느 정도는 [훈고학], 다시말해 [학을 위한 학], [코드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의미있는 학]일 수밖에 없단 거고요. 위의 논쟁에서 '인문학 수요 많다' vs '그건 인문학 수요가 아니라 허영심 수요다.'라는 쟁점이 있었는데, 이것도 상호모순되는 주장이 아님을 간단히 설명 가능하죠. 원래 인문학이 그런 수요라는 것으로.
13/12/01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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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제가 아는 과학철학 교수님은 뇌과학과 철학을 연계시켜 연구하시죠. 과학과 연계하는 철학은 아직 쓸만한가봅니다.
구밀복검
13/12/01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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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과학화된 학문들인데, 이쯤되면 인문학의 위기를 논할 때 언급되는 순수학문, 기초학문으로서의 <고상한> 이미지를 가진 고전적인 인문학과는 거리가 멀죠. 그나마도 입지가 굳건하지도 않고...
13/12/01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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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리고 '전통적인 의미의 철학/인문학적 위상'이라는 것도 학내 위상이 아니라 학자/학도나 그들의 발언이 갖는 사회적 위상에 초점을 맞추어 본다면 '인문학의 위기'라는 현 세대보다 나았던 적이 얼마나 있을까, 있다고 할지언정 그 부재 상황을 '인문학의 위기'라는 표현까지 만들어가면서 의문시해야할만큼 보편에 두고 말할 수 있는 걸까와 같은 의문은 여전하죠.
구밀복검
13/12/01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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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인문학의 위기는 외부에서 왕따당하며 온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기능을 잃으며 온 거죠. 진짜 필요하고 가치있고 의미있을 때에는 상업적으로야 어떻든 전공자들 사이에서의 카르텔만으로도 확대재생산과 진보와 발전이 가능하니까요. 과거에는 그게 되었고 지금은 안 된다는 게 차이일 테고, 이쯤 되면 자성이 필요한 거지 개탄이 필요한 게 아님을 알 수 있죠.
13/12/01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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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동의합니다. 다만 여기서 인문학이 말씀하시는대로 대륙철학적 전통에 기반한 그것을 말한다면 굳이 자성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좀 서로가 따로따로 알아서 놀면 안 되나요. 굳이 자성을 해가면서 사회에서 자신들의 의미를 찾아야한다고도, 그게 언급하신 '인문학'의 본령이라고도 생각하진 않아서요.
구밀복검
13/12/01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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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과 개탄의 대비란 것은 자신의 배움의 목표와 방향과 의미가 없음을 안타까이 여겨야한다는 것이지(전공자들 사이에서의 카르텔이 약화되는 건 그 이유죠.), 안 팔림을 걱정할 게 아니라는 의미였습니다.
그쯤 되면 뭐 매춘과 다를 게 없죠. 이게 왜 중요한지 왜 가치있는지 왜 의미있는지 스스로조차 잘 모르면서 남들이 자기를 사주기만 바라니..인문학을 돈벌이로 간주하는 쪽은 진정 누구일런지.
13/12/01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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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합니다. 특히 문학이 그렇죠. 문학만이 줄 수 있는 것들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이야 계속해서 있지만, 문학만이 줄 수 있을거라고 믿었던 수많은 것들은 이미 영화로 대체되었죠.
구밀복검
13/12/0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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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아직도 문학만이 줄 수 있는 건 여전히 남아있긴 하죠. 매체의 특성상 텍스트는 영상보다 효율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즉 가장 경제적인 방법으로 내용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문학도 텍스트로서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고요. 예컨대 반지의 제왕은 물론 두꺼운 소설입니다만, 이걸 영화화할 때에는 요약하고 요약하고 추리고 추렸음에도 불구하고 3부작 10시간짜리 대작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죠. 반면 그걸 다시 소설화 한다고 하면 훨씬 홀쭉해질 테고요. 다시 말해 텍스트는 그만큼 분량에 비해 정보량이 많고 볼륨이 두터울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고유한 강점을 가지긴 합니다. 인터넷에서 종종 텍스트 운동 같은 것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똑같은 내용을 전달해도 트래픽을 훨씬 덜 먹는다능..작가와 출판사가 소설이나 시집 내는 데에 돈을 아무리 방만하게 써도 영화 한 편에 들어가는 예산에 비하면 훨씬 적게 들어가죠.

다만 어떤 매체나 장르든지 다른 매체나 장르가 갖고 있지 않은 고유한 장점이 있기 마련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수히 사라져갔단 점에서, 문학에 고유한 강점이 있다한들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긴 어렵죠. 최소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근대문학적인 형태와는 꽤나 다른 무언가로 대체될 거라고 봐요.
13/12/02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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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근데 말씀하신 부분은 사실 다른 모든 장르에 마찬가지로 적용될만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고, 문학이 그 중에서 특기할만큼 특수한가 생각하면 그건 아닌 거 같아서요. 막말로 클래식에 비하면 훨씬 낫죠. 그리고 살만 루시디를 보니 그 고유성 역시나 영원하진 않을지언정 적어도 나 하나 죽기 전엔 그 강점이 마르진 않을듯 하구요. 헤헤. 그럼 된 거죠.
13/12/02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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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만, 구밀복검님의 댓글을 읽으면서 과학만능주의적 시선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구밀복검님이 인문학이 "클리쉐가 되었거나 유행이 지나간지 한참 되었고", 현대의 살아남은 인문학은 "실증적인 학문들" 뿐이라는 의견에 다소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확실히 철학으로 분리되던 많은 지식들이 이제 철학이라는 분야와 분리되어, 과학, 경제학, 경영학 등으로 심화되었고 그에 따라 영향력이 예전만큼 절대적이지는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는 동의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말씀하신 것처럼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이 "학을 위한 학"을 하는 분야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말씀하신 바와 같이 자연과학의 문법과 인문학의 문법의 통섭은 현재 한국 학계의 가장 큰 유행중에 하나입니다만, 그 유행을 경계하는 시선도 존재합니다.
구체적으로, 자연 과학의 문법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합리성, 개방성, 비판성, 자율성, 보편성, 엄밀성 등으로 구성"된다고 한 교수님께서 이야기하신 바 있는데, 이러한 문법은 인문학과 충분히 융합될 수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위험한 것이기도 합니다.
특히 합리성과 보편성에 대한 비판은 우생학이나 원자폭탄과 같은 과학이 불러온 재앙들과 함께 20세기 이후 인문학의 키워드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근매니아
13/12/02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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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어떻게 써야 할까 고민 중이었는데 나오미 님이 제가 하고 싶은 말들을 많이 대신해주셨네요.
예컨대 이기적 유전자에서 도킨스는 인간이 gene의 운반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역설하다가, 그렇다면 우리는 영원히 gene의 지배 하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럼에도 우리는 인간이다]라고 답 합니다. 전 그게 인문학이 할 역할이라고 봐요.
구밀복검
13/12/02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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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윤리학적인 영역만 남는 셈이란 건데, 사실 이 부분은 법과 행정, 통치, 정치, 경제와 같은 것들이 상당 부분 대체하고 있을 뿐더러, 도킨스의 일반적인 주장은 외려 반대와 맞닿는 이야기죠. 즉 인간의 도덕이나 윤리 같은 것은 생물학적 토대에 기반하고 있고, 일정 부분은 그로부터 도출되며, 따라서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이런 주장이 좀 더 급진적으로 나아가면 윤리학의 고유 영역은 없고 생물학에서 파생될 따름이라는 식으로 이어질 수 있죠. 아마 인문학자들은 싫어할만한 이야기일 겁니다.
구밀복검
13/12/02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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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씀이신지는 알겠습니다만, 일반적인 설득력을 가지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남들이 어떻게 여기건 우리는 그렇게 생각 안함.' 이상의 이야기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럼 그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래라? 우린 신경 안 쓸 테니까 너 할 거 알아서 하렴.' 정도 밖에 없죠.

굳이 좀 더 나아가자면 과학적으로는 윤리적 영역을 해결할 수는 없고, 인문학이 이 부분을 전담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인문학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건데, 이것은 결국 '공부만 잘해서는 안 되고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과 크게 다를 게 없거든요. 이런 이야기는 소박하고 단순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주장의 연결고리 자체가 나이브하다는 느낌이 들죠. 일단 윤리적인 영역만 담당하는 거 자체가 학문과 세상의 기초, 근간을 운운하기에는 굉장히 제한적이고 후퇴된 초라한 입장이 아니냐부터 시작해서, 과학적, 혹은 실용/실증주의적으로는 윤리적 영역을 접근 불가능한지를 이야기해볼 수 있을 테고, 뭣보다 인문학 공부한다고 사람이 되는지부터가...이러면 인문학이 영역 확보를 위해 다퉈야할 경쟁자는 자연과학이 아니라 가정교육이 됩니다. -_-;

뭐 과학 만능주의 맞다면 맞습니다. 형이상학에 근간을 두고 있던 전통적인 형태의 인문학은 할머니와 다를 게 없다고 보네요. 밥은 먹었냐, 왜 이리 말랐냐, 살이 쪽 빠졌다, 빨래 안 널고 뭐하니 등등..., 스스로는 아무 것도 잉태하지 못하면서 여타 학문에 대한 참견과 어깃장 이상의 고유한 기능이 없는 불임의 학문이라고 봐요. 그게 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잔소리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고. 왜냐하면 그런 거 없이도 그럭저럭 잘 굴러가거든요.

물론 지나치게 극단적인 의견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위에서도 팟저님과 나눈 이야기인데, 인문학이 정말 필요한 학문이라면 상업적으로야 어떻든 전공자들 사이에서의 카르텔이 단단하게 형성될 수 있고, 그것만으로도 확대재생산과 진보와 발전이 가능합니다. 과거라고 대중들이 철학이나 문학에 관심 많았고 책 많이 사줬고 문필가들 추앙해주고 이러지 않았어요. 오히려 요즘은 잘만 입소문 나면 TV도 타고 책도 팔면서 이름 알릴 수라도 있지, 과거에는 그런 게 있었나요. 스탕달 같은 작가가 생전 받은 관심을 고려하면 현대의 대중들은 꽤나 인문학에 애정 가져주는 편입니다. 하다못해 PGR에 재밌는 소설 추천해달라고 하면 리플이 수두룩하게 달리는 걸요. 100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인문학이 활력이 있었던 반면 지금은 없느냐하면, 과거에는 저 하늘에 빛나는 별의 경이로움을 인문학적 방법론으로 해명할 수 있다는 믿음이 인문학자들 자신에게 있었고, 지금은 그게 없을 따름이죠.
13/12/02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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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밀복검님 글 진짜 잘쓰시네요...와...
어떻게 하면 이렇게 생각하고 쓰시나요 -0-... 쓰신 리플 전부 추천 있으면 추천하고 싶네요.
자투리여행
13/12/0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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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인문학은, '증명' 없이도 언제나 참견하고 어깃장 놓을 수 있는 학문입니다.
이게 발전하고자 하는 사람한테는 상당히 짜증나는 일이겠지만, 어떻게 보면 과속을 방지하는 브레이크 기능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참견'과 '어깃장' 없이 그럭저럭 잘 굴러간다고 느끼는 건 당사자 뿐일지도 모릅니다.
본인은 주변 눈치 신경 안 쓰고 편안히 산다지만, 정작 이웃 사람들은 '할머니 말 지지리도 안 듣는 나쁜 놈'이라며 욕할지도 모르죠.
말씀하신대로, 전통적인 인문학(여기서는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이겠죠.)은 '잉태'의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고 봅니다.
그래도 아직은 산부인과나 산후조리원, 혹은 백신 정도의 역할은 하고 있습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과학적 지식을 갖추고 증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신기술을 바라보지는 않으니까요.
잉태 기능을 잃었다고 해서, 완전히 필요없는 학문이 되었다는 말은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보입니다.
구밀복검
13/12/0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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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브레이크의 기능을 <실제로>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문학자들 밖에 없다고 봐요. 현실적으로 볼 때, 거시경제학자들이든 천체물리학자들이든 분자생물학자든 국제정치학자들이든 진화심리학자든 간에 인문학자들이 비판을 하더라도 전혀 신경쓰지 않습니다. 뭐라고 하는지 잘 알지도 못할 거에요. 그네들을 실제로 신경쓰게 하고 삼가고 조심하게 하는 것은 인문학에서의 비판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학계에서의 비판, 나아가 실증에 대한 요구입니다. 그것들이 훨씬 충실한 이해 하에 추상같이 따지고 검증하고 비판하며 브레이크 걸거든요. 산부인과, 산후조리원, 백신의 기능은 인문학이 아니라 각 분과학문에서 스스로 하고 있다는 거죠. 예컨대 어떤 경제학자가 2014년 한국 경기를 예측하고 구체적인 대응 정책을 제시하는 출판물을 낸다고 할 때, 철학자의 고담준론이나 유명 소설가의 트윗 묶음이야 귓등으로 흘리면 그만이지만, 동료 학자나 전문 수학자의 수학적/통계학적인 문제제기는 무시할 수 없는 법이죠.
자투리여행
13/12/0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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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분야 학자들 사이에서는 당연히 무시할겁니다.
애초에 인문학자들 보고 다른 분야 학자들 상대하라는 것 자체가 무리죠.
그런데 인문학이 바라보는 것은 학자들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입니다. 애초부터 이런 식으로 유지된 학문이죠.
브레이크를 거는 것은, 인문학 학자들이 아니라 새 발전을 직접 경험하고 받아들이게 될 일반인, 그리고 사회 분위기입니다.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이 새로운 기술을 바라보는 시각은 전문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인문학적인 관점입니다.
구밀복검
13/12/0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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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은 분과학문들의 학적 성과를 딱히 인문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요. 인문학자들의 관점에 의거해서 판단하지도 않고요. 그저 자기 나름으로 근시안적으로 인식할 따름이죠. 그리고 그네들은 대개의 경우 그게 입증이 된 것이냐, 혹은 쓸모가 있는 것이냐와 같은 부분부터 따지고 보죠. 이때에 학적 근거가 지침이 되곤 하고요. 이처럼 현대의 대중들에게 강력한 호소력을 가지는 것은 모호한 담론 따위가 아니라, 실질적인 팩트 - 그때문에 팩트의 나열에 쉽게 속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팩트 제시의 힘을 보여주죠 - 입니다. 그리고 팩트를 마련하는 데에 있어서는 각 분과학문들이 인문학에 비해 훨씬 우월하죠. 즉, 대중들에 대한 설득력과 접근성 역시 각 분과학문들이 우위에 있단 것입니다.

오히려 인문학적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이 현대의 인문학을 바라보는 시각이야말로 인문학적이기는 커녕 지극히 실증/실천주의적이죠. 다시 말해, 대중과의 거리로 치면 인문학이 개별 분과학문들보다 멀면 멀지 가깝지 않다는 것입니다. 당장 인문학은 써먹을 데가 없는 무용한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인의 절대다수이며, 이 본문에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식 역시 대중들의 인문학에 대한 몰이해에 대한 것이죠. 애초에 인문학이란 것 자체가 고래로부터 귀족과 지식인과 철인을 위한 교양이었지 보편 대중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대중들의 옆에 있었던 것은 처세술과 기술같은 각종 술術이었죠.
자투리여행
13/12/02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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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그리 이성적이지는 않습니다.
모호한 담론에 넘어가 흔들리는 사례를 너무 많이 봐왔지요.
게다가 학적 근거가 완벽하다고 해도, 윤리적인 문제와 부딪혔을 경우에
대중들은 반드시 학적 근거만을 따지지 않습니다.
학적 근거로는 반대할 수 없지만 다른 이유로 반대하고자 한다면, 결국 꺼내드는 것은 인문학적 관점입니다.
인문학이 과학적 성과에 대해 100% 브레이크를 걸 수야 없겠지만,
어느 정도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만큼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대중들의 옆에 있었던 술術 역시 그 근간은 인문학에 기반한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구밀복검님이 말씀하시는 인문학은 형이상학적인 중세 철학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형이상학적인, 전통적인 인문학에만 맞춰서 이야기한다면 구밀복검님의 의견 자체에 큰 거부감은 없습니다.
다만,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철학 자체를 '필요없는 학문'으로 규정하는 것에는 거부감이 듭니다.
과거의 연구결과가 부정되었다고 해서, 그 연구 자체를 없던 것으로 해버리는 경우는 없습니다.
반례로서, 패러다임을 깬 좋은 예로서 존재하지요.
구밀복검
13/12/0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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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인문학적 관점이 아니라 그냥 윤리적인 판단이라고 해야죠. 단순히 윤리가 인문학의 전통적인 대상이었다고 해서 대중들의 윤리적 판단이 인문학적인 것이 된다고 할 수는 없죠. 논리와 웅변과 수사가 인문학의 전통 영역에 속했다고 해서 PGR에서의 모든 토론이 인문학적 토론이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요. 예컨대 '종교인들이 정치에 관여하면 안된다.'와 같은 것은 단순한 도덕적 판단이지 인문학적인 비판이 아니죠. '롤스의 정치적 자유주의적 관점에 의거하여 볼 때 포괄적 교설들은 공적 영역과 분리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억압을 낳으므로 종교가 정치를 장악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와 같은 식으로 이야기해야 인문학적이라고 할 수 있죠. 이와같이 대상을 비판함에 있어 인문학적인 전거나 방법론을 통해 이야기가 될 때, 비로소 그것을 인문학적인 비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 대중들이 분과학문들의 성과를 윤리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 있어 인문학이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대중들은 보통의 경우 인문학적/윤리학적인 관점과는 전혀 동떨어진 일상도덕만 가지고 살아가며, 차라리 법적, 경제적, 정치적인 관점이 그나마 약간의 영향을 줄 따름이죠. 분과학문들이 딱히 대중들의 판단 의존하여 자신들의 진퇴를 결정하지도 않지만, 간혹 그런다고 해도 그것은 현실적으로 인문학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점에서 인문학적 비판이란 지독히 외로운 것이며, 현대의 인문학자들은 전문가와 대중 사이의 파워게임을 먼곳에서 관전하며 끼어들 기회를 바라지만 이를 획득하지는 못하는 무기력한 관중에 가깝죠.

더불어 제가 말하는 인문학은 중세철학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예로 든 것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인 걸요. 언급했듯이, 형이상학과 결부된 철학이 인문학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사라진 인문학이란 것은 전통적인 의미의 인문학과는 완전한 거리가 있으며 거세된 수탉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반례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데에는 동의합니다만, 오직 반례로서만, 타산지석으로서만, '저렇게 삽질하지 말아라.'의 표본으로서만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비극적인 일이겠지요.

또한 위에서도 말한 바 있습니다만 현대의 제 과학이란 게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몰가치적이고 도구적이고 기계적인 것이 아닙니다. 과학적 토대에서 윤리적/가치적인 영역들을 탐구하는 것 역시도 활발하죠. 예를 들어 인간의 행동을 전전두엽 피질이 제어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생물학적인 규명은, 인간은 자신의 행위를 선택하고 제어할 수 있으며, 따라서 자신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라는 주장에 대한 근거가 되어줄 수 있죠.
자투리여행
13/12/02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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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밀복검 님//
윤리적인 판단과 인문학적 관점을 완벽하게 구분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인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인문학적 관점이 존재했었기에 윤리적 기준이 존재합니다.
대중들이 살아가는 일상도덕, 법적, 정치적 관점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요.
그러한 관점들을 연구하는 건 법학과, 정치학과만이 아닙니다. 대체할 수 있는 연구도 아니구요.
인문학이란 게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인지라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영향력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죠.
본인들의 인식 여부와는 상관없이 사회와 대중들은 기본적으로 인문학적 근간 위에 서있다고 봅니다만,
구밀복검님께서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으실 것 같군요.

그리고 과거의 형이상학적 인문학이 사라진다고 해서 인문학이 거세된 수탉이 되지 않습니다.
인문학 하는 사람들이 과거의 '전통적인 의미의 인문학'에 집착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흐름을 알기 위해 배우는 거지, 그걸 따라가는 게 아닙니다.
그걸 따라갔다면, 위에서 말씀하신 실증주의, 실천주의나 모더니즘 같은 건 나오지 않았을겁니다.
인문학 역시 과학적 성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것을 토대로 발전해나가고 있습니다.
문제라면, 인문학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겠죠.
13/12/02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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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밀복검님. 제가 글재주가 신통치 않아 분명 댓글을 쓰다 길을 읽을 것 같습니다. 미리 양해의 말씀을 구합니다.
일단 구밀복검님이 이야기하시는 모든 댓글을 보았을 때 "모든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실증/실천주의적으로 사고한다."는 대전제를 밑에 두고 생각하시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그런데 이 대전제가 과연 타당한지는 사실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물론 사람들이 무언가를 받아들일때 실제로 실천가능한지, 이익되는지, 증명가능한지를 따져보는 것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우리가 소위 과학이라는 분야에서 참/거짓을 따지는 것과는 상당히 다를 수 있습니다.
특히 감정이라는 부분때문에 이성적으로는 분명 손해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손해를 선택할 때가 있죠.
그렇기 때문에 실증/실천주의로는 모든걸 설명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고, 따라서 다른 방식의 문법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문학이 근본학문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에 있어 "인문학이 더 이상 새로운 학문을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이상은 근본학문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신다면 아마도 근본학문이라는 정의에 있어 여러 혼동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보통 인문학을 근본학문이라고 부를 때, 구밀복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인문학에서부터 많은 학문들이 파생되어 왔기 때문에 근본학문이라고 부르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학문이라는 명칭에 더 주요한 정의는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라는 의미가 더 크게 사용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법학이 "어떠한 죄를 어떻게 처벌하는 것이 좋은가?"와 같은 질문을 토대로 학문을 형성하고 있다면 법철학은 "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죠.
예가 굉장히 거칩니다만, 여하튼 요점은 인문학적 접근이 말씀하신대로 다른 분과의 영역에 가서 어깃장을 놓고 심통을 부리는 것이라기 보다, 문제를 삼고있는 바가 굉장히 다르다는 점을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원점으로 돌아가 인문학 위기론에 대해서는 구밀복검님이 보시는 것처럼 지금의 "인문학의 위기"라는 담론은 호들갑스런 측면이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인문학의 분야에서 다루어지는 것들을 다루던 과거의 대가들 역시 "우리가 하는게 도대체 인정을 못받는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제가 구밀복검님의 댓글에 댓글을 달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그래서 도출되는 결론이 "이제 더이상 인문학은 필요없다."가 아니라 "인문학은 새로운 방향을 향해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흐름에 대한 최성만 교수의 글을 인용하면서 댓글을 마쳐볼까 합니다.

[무릇 평판이 좋은 경제학, 여성학, 심리학, 정치학 책들은 반드시 인문적 요소를 담고 있다. 게다가 텍스트는 언어로 쓰여 있는 이상 적나라한 사실들을 다루는 내용 이외에도 그 내용을 전달하는 문체와 수사학이 수용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또한 오늘날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말하고 배우기 위해서는 의학과 생물학만이 아니라 여러 다른 분야의 지식과 경험이 통섭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이미 통섭의 시대에 살고 있다. 또 다른 예로 정치학의 경우 정치학과에서는 정치에 관한 기능적 지식을 주로 배우지만 인문학에서는 ‘정치란 무엇인가’ 등 정치철학을 배울 수 있다.

요컨대 우리의 삶을 다루는 토픽들에는 인문학적 지식과 경험이 반드시 들어 있다. 인간과 사회의 모든 현상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없으면 우리는 실증주의, 실용주의, 기능주의, 과학주의로 흐르면서 단편을 전체로 오인하게 된다. 인문학적 경험은 바로 그러한 분과학문적 지식의 독단과 위험성을 경고한다. “인문학은 없다. 왜냐하면 인문학은 도처에 있기 때문이다."]
13/12/01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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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키 와타루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 많은 부분 이와 같은 인문학도들의 울먹임을 대차게 까고 있죠. 발자크 시대 국민의 절대다수는 문맹이었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자비 출판에 그조차 바그너파의 공격으로 여의치 않아 지인들에게 몇부 돌리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걔네가 힘들었으니 너네가 하는 건 고생도 고생이 아니야'라는 게 아니라...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이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전제된 '(위기 이전의)인문학'이 보다 일반적인 것이고, 정상적인 것이라 굳이 당대의 특수성에 초점을 맞추는 게 가당한지 의문이라는 겁니다. 설혹 허구적인 인문학적 위상이 있었다고 할지언정, 보편적이진 않았으며, 그 중에서도 '인문학적 위기'라는 현 세대의 인문학도들보다 높은 인문학적 위상을 누렸다고 할만한 이는 더욱이 소수에 불과했다고 보는 게 온당할테죠.
13/12/01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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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입니다만 언급한 책에서 말하는 결론을 본문과 댓글에서 다루는 소재에 맞게 왜곡한다면... '그냥 쓰고 싶으면 쓰고 공부하고 싶으면 공부하면 된다. 네가 지금 손에 붙들고 있을만한, 고전의 반열에 이른 인문학자들은 그런 고민이 일만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공부를 이어간 사람들이다. 그때 그들을 추동한 힘은 책을 쓰는 당대에 부여된 [사회내 합의된 의미]가 아니라 해당 고민 속의 답을 자신의 사유 속에서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찾아낸 것이다' 이쯤 되겠네요. 좀 왜곡을 심하게 했나.
endogeneity
13/12/07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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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학문이 신학 각론에 불과하다던 중세에, 당대 최고 신학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조차 처음 사제의 길을 걸으려고 했을 때 친척들이 이걸 말려보려고 밤에 보쌈을 해서 납치했을 정도니까...
이카루스테란
13/12/02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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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와 공급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한번 따져볼까요? 전체 인구 중에 따졌을 때 일반 기업(대기업, 중소기업)에 취업하거나 혹은 사업(작은 가게라도) 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전공은 뭘까요? 간단하죠. 현재 한국에서는 경영학과와 공대겠죠. 그러면 경영대랑 공대만 남기고 다 폐지하거나 축소해야 하나요? 실은 좀 더 따져보면 스탭 업무나 회사 내에서 전문화되지 않은 업무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전공조차 필요없습니다. 총무가 무슨 전공이 필요한가요? 그냥 상식만 있으면 되죠. 치킨 집 사장님이 꼭 경영학과 나와야 하나요? 무슨 학문의 전당이니 이런걸 다 떠나서도 말이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에 전문 전공 지식 없어도 할 수 있는 직업은 넘쳐납니다.

사학과 나와서 취업하면 이상한가요? 철학과 나와서 사업하면 이상한가요? 저는 경영학과 사회학을 전공했습니다. 사회학 전공한 이유는 공부하고 싶어서 관심이 있어서 했습니다. 제가 사회학 연구소에 안들어가면 제 선택에 문제가 있는건가요? 전 회사에 다니지만 살다보면 사회학적 시각에 도움을 받을 때도 많습니다. 인문학은 말 그래도 기본이 되는 학문이고 학문 영역이 직업이랑 무슨 블럭 맞추기처럼 딱딱 맞아들어가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럴려면 다 전문대로 만들고 기술교육 시키면 됩니다. 인사 전공, 총무 전공, 구매 전공 등등 만들 것도 많죠. 따라서 인문학의 공급이 과잉이니까 줄여야 한다는 것은 근거는 전공 = 직업 이라는 것인데, 실은 이 논리라면 대부분 대학을 갈 필요조차 없는거죠. 그 직업군에 들어가서 배우면 됩니다.

근데 위에서도 말했지만 철학에 관심이 있어서 배우려는 사람에게 넌 어차피 연구 안할거니까 철학 수강 금지야. 정원 자체 줄여서 연구하겠다고 계약서 쓴 사람들에게만 수업을 열어줄거야 라고 말하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인가요? 대학의 역할이 변했다고 하시는데 대학의 역할을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역할이 다양해지고 넓어진 것이죠. 신학 철학만 하다가 다른 학문들로 넘어갔다고 한분이 이야기 하셨는데, 대부분의 학문이 근대 이후에 정립되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신학 철학 할 때는 대학이 더 고고하고 귀중한 존재라서 철학과 신학만 가르친게 아닙니다. 학문으로 정립할 수 있는 만큼의 체계화되어야 학문으로서 대학에서 가르치게 되는거죠. 무슨 수요가 있고 해서 가르치는게 아닙니다. 수요의 논리는 갑자기 어떤 나라에서 특정 직업이 각광을 받는다고 그걸 전공화해서 가르치자는 것 밖에 안됩니다. 실은 그런 특정 분야를 학부-대학원 수준으로 체계화 시켜서 가르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겠죠.

위에 보면 인문학은 소수의 천재들이 이끌어 가기 때문에 공급 과잉이라고 나오는데 다른 학문들은 아닌가요? 특출한 개인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가지 않는 학문이 존재하나요? 자연과학도 경제학도 공학도 마찬가지죠. 그 분야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소수의 사람들이죠. 실은 대부분의 분야에서 이 룰은 적용됩니다. 이것이 논리적으로 어떻게 인문학을 줄여야 한다라고 이어지나요? 그렇게 이야기 하자면 학부 수준의 배움은 그 학문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안됩니다. 학부 = 석사 = 박사 숫자부터 맞춰야죠. 어차피 소수가 이끌어간다고 하면요.
13/12/02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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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중고등학교에서부터 꾸준히 배워야하는데 잘 안가르친다는게 함정이죠.
필수교양으로 하되 심화적인건 관련학과만 배우면 된다고 봅니다. 정치학과나 문학등등
13/12/02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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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윤리랑 사회 합치면 얼추 인문학이라고 할 만한 거 같은데요.
13/12/02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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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은 사회과학의 영역이고 일반적인 대학의 인문대 구성은 문대와 사학과 철학과로 구성되어지죠
자투리여행
13/12/0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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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철 세 학과 모두 필수교양 정도로 해결할 수 있는 양이 아니긴 합니다. 장난 아니죠...
신용운
13/12/02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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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이면 한 번 바닥까지 내려가본 후에 어떻게 할지 보고싶어 졌습니다.
이외수 작가의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칠수 있는 자는 반성하는 자이다라는 말처럼 그때가서 반성할지 안할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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