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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11/27 12:32:28
Name 당근매니아
Subject [일반] 오바마의 즉흥 연설을 듣다가 문득
http://m.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148712

영상에서 보여주는 오바마의 화술은 대단합니다. 준비된 원고 중간에 돌발적으로 일어난 상황에 대해서 빠르게 대처하고, 그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사를 찾아냈습니다. "내가 의회에서 법을 통과시키지 않고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 고함을 치거나, 내가 법을 어겨서 마치 뭔가 할 수 있는 것처럼 행세하기는 쉬운 방법이겠지만 나는 좀 더 어려운 길을 제안하겠다"라는 말은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를 좋게 포장한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그 수사가 가지는 울림은 상당하죠. 그걸 지나서 제가 주목한 건 오바마가 연설을 끝맺는 말입니다.
'이 나라가 가진 위대함은 우리가 가진 훌륭한 민주주의적 장치들에서 나오는데, 이건 때때로 번잡하고 때로는 힘들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정의와 진실이 승리하게 된다. 이 나라는 항상 그렇게 되어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러하다.'라고 오바마는 연설을 끝마치는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정의와 진실이라는 단어의 용법입니다.
일전에 미국 여행을 갔을 때에도 느꼈고, 이런저런 매체에서도 슬쩍슬쩍 비춰지는 미국인들의 자국에 대한 자존심은 상당한데, 그게 실제로 정의이든 아니든 간에 정의와 진실이라는 가치를 상정하고 그를 추구해야 한다는 게 사회 전체적으로 공감대를 얻고 있는 듯 합니다. 그게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과 조종당할 가능성이야 뭐 물론 존재하겠지만요. 그럼에도 한국 정치에서 정의와 진실 같은 단어가 조롱당하기 시작한 건, 혹은 한국 사회에서, 혹은 한국의 웹 상에서 저 단어들이 멸시되기 시작한 건 저런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우리는 그러한 가치들에 이제 무게를 두기 어려운 날들을 살고 있습니다.
예전에 본 연구 결과에 따르면 범죄율을 줄이는 것은 강력한 처벌이 아닙니다. 그보다 범죄율 감소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잘못을 하면 반드시 처벌받는다'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지요. 이건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어떤 선행을 행했을 때 반드시까지는 아니더라도 높은 확률로 보상이 돌아온다고 했을 때 유인책은 작동합니다. 과연 이 사회는 그렇게 굴러가고 있을까요. 적어도 신문지상의 모습은 그러하지 않은 듯 합니다.
아이들은 때때로 어른들보다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줍니다. 그룹 내에서 약한 아이를 찾는 것도 빠르고, 마주치는 어른들 중 누가 마음이 여린지도 재빠르게 캐치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어린 애들은 사회의 리트머스 종이 같은 걸로 작동하지 않나 싶습니다. 롤판에서는 얼마 전에 apdo라는 '프로급대리'로 시끄러웠습니다. 커뮤니티에서는 옹호하는 측과 비난하는 측으로 극명하게 나뉘었는데, 전 이게 작금의 사회 풍조를 정확하게 짚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편법, 불법, 탈법 등을 저지르거나 규칙을 어기는 것을 눈 감고 그저 그 자가 가진 능력에 초점을 맞추는 세태 말입니다. 프로들을 1대1로 발라먹는 게임 실력을 가졌다는 것 하나만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자신이 저지른 분명한 규칙 위반에 대해 심리적 면책을 가져갈 수 있다는 거지요.
전 이런 것들이 장기적으로 사회를 좀먹어 들어갈 거라 의심치 않습니다. 규칙과 법규를 지키게 하는 건 정부가 강력한 법치 따위를 캠페인 구호로 내세운다 해서 해소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폭을 강력하게 처벌하겠다고 나서면서 정작 재벌 총수들은 앰뷸런스 타고 가석방되거나 사면되는 것이 일상화되어있는 사회, 음란물 유포죄는 쥐잡듯이 색출하면서 정치권의 성접대와 사회 전체에 만연한 매춘은 눈 감아 주는 사회가 어떻게 올바로 설 수 있을까요.
정의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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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1/27 12:41
수정 아이콘
정의는 오늘과 내일이 아니라 어제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앞으로 정의는 역사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사어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강가의 물안개
13/11/27 13:03
수정 아이콘
분수님 너무 부정적이세요.
어제의 역사에서도 찾고 미래에도 꿈꿔야 하구요...오늘날에도 희망을 갖고 찾고자 힘써야 합니다.
정의는 그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이뤄내야 하는거고 다른시대 사람들만의 몫은 아니니까요. 과거시대 사람들이 해냈다면 우리시대도 해낼수 있고 그래야 미래세대도 힘을 내서 해내지 않겠습니까?
13/11/27 13:06
수정 아이콘
가끔 부정적인 생각이 저를 지배하곤 하는데 오늘이 그런 날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반합이라는 역사의 발전방향을 믿고 있긴 합니다. ^^
뭐 500년이 걸릴수도 5년이 걸릴수도 있겠죠.
그거야 그 당시의 사람들의 노력여하에 달렸겠죠.
Lainworks
13/11/27 13:07
수정 아이콘
어제오늘 일어난 일 보면 좀 부정적이어도 될것 같습니다. 하소연이지만....
be manner player
13/11/27 13:39
수정 아이콘
뭐 정의의 개념은 앞으로 살아남더라도 '정의'라는 말은 사어가 되고 justice나 正義만 쓰일 날이 올 수도 있겠지요.
전 이쪽이 더 걱정되긴 합니다.
13/11/27 12:53
수정 아이콘
짧으면 5년 길어도 20년 안에는 다시 (+)의 방향으로 궤도가 수정될거에요.
젊은층은 보다 공정성이라는 가치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으니.
인간흑인대머리남캐
13/11/27 12:57
수정 아이콘
정의 라는 말 자체를 유치하고 치기어린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죠
13/11/27 13:01
수정 아이콘
중2병의 독특한 발산이 일베로 대표되는 어린 층이라 생각합니다.
사회의 모두가 당연히 추구해야 하는 가치로 인식되는 '정의'를 X선비질이라 부르며 조롱하는 것,
남들과 나는 다르다는 자각에서 우월감을 느끼는 게 중2병이 맞다면 그와 다를 게 없겠죠.
The xian
13/11/27 13:14
수정 아이콘
장기적으로 사회를 좀먹어 들어갈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좀먹어 들어가고 있고 지금부터 막으려 한다 한들 앞으로 일어날 피해를 모두 막을 수는 없는 지경까지 왔다고 봅니다.
Liberalist
13/11/27 13:44
수정 아이콘
우리나라에서 정의는 그다지 존중받지 못하는 가치죠.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을 죄다 돈키호테 취급하는게 우리나라 사회의 일반적인 풍경인데요. 내부고발자가 배신자 취급 당하고 'X선비질' 같은 멍청한 단어가 어린 세대에서 공공연하게 쓰이는 지금 상황을 보면 앞으로도 우리나라에서 정의가 최고의 가치가 되는 순간이 오길 기대하는 것은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atmosphere
13/11/27 14:04
수정 아이콘
당장 현직 대통령부터가 독재자의 딸이 대선개입으로 대통령직에 당선된 나란데요 뭘..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루하루 배워나가는 국민들만 불쌍할 뿐이죠
일베는, 그냥 쓰레기통이죠. 뭐 사회악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거창하고, 그냥 인터넷 익명성의 폐해랄까요
설탕가루인형형
13/11/27 14:12
수정 아이콘
박대통령이었으면 투명프롬프터의 연설문을 읽다가 버벅버벅버벅. 울그락 푸르락.
경호실에서 뒷덜미 잡고 끌어낸 이후에 박대통령은 단호한 표정으로 다시 연설 시작.
언론 등에서는 이민자의 무례함을 꾸짖고, 신상 탈탈 털리고, 박대통령은 법에 따라 단호하게 대처할것임을 밝히고 끝~
13/11/2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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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실이 참 슬픈거죠. 그래서 부러운거고.
그런 의미에서 자게 글들에 대해서도 좀더 여유롭게 대할필요가.. 있지 싶습니다. ^^
13/11/2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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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13/11/27 14:25
수정 아이콘
건국이래 이 사회가 정의로웠던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가요? '일단 먹고살고보자'라는 명목하에 정의와는 거리가 먼 길을 반백년동안 걸어왔고, 또 지금도 그러한데요. 사람도 그렇듯 사회도 바뀌기 참 힘들죠. 아마도 몇세대가 더 흐르지 않는한 정의라는 가치는 이 땅에서 별로 존중받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지금뭐하고있니
13/11/27 15:01
수정 아이콘
그냥 쉽게 쟤네는 정의가 승리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죠.
(이면에 모략과 부정, 비리가 있어왔기도 했지만, 저만큼 정의가 승리한 역사를 찾는 게 쉽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식민지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자유를 쟁취했고, 피흘려 얻은 자유를 지킬 방법을 모색했고, 합의하여 누구도 이 룰 만큼은 건드릴 수 없게 했죠. 이후에 흑인 노예를 해방했고, 나치즘, 공산(일당)독재와 싸워 자유를 수호한 것처럼 보이죠.(적어도 자국민의 눈에는 빛나는 역사로 보일 법 합니다)

우리는 식민지를 유감스럽게도 우리 손으로 걷어내지 못 했고, 자랑스런 대통령 이씨 덕분에 친일파 해소를 못 했으며, 군부를 청산했다고 하지만, 그 세력들이 여전히 기득권에 남아 있고, 돈과 권력으로 얼마든지 사람들을 짓밟는 모습을 봐왔죠. 요즘들어 내란죄를 DJ가 용서했으면 안 되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정의가 승리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4.19, 6.10 같은 자랑스런 승리의 기억이 있지만, 결국 장기적인 맥락에서 치른 비용은 어마어마했는데, 국민들이 체감하는 바는 그에 비해서는 훨씬 적습니다. 그러니 누구나 정의를 우습게 볼 밖에요. 자본주의가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비용은 큰데 편익은 적은 이런 멍청해보이는 짓을 누가 하겠습니까.

정의가 무엇인지 확고히 정의내리고, 정의가 승리하는 역사를 현현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정의의 편에 서기를 원하게 될 테니까요. 지금은 정의의 편에 서는 사람들을 비웃을 뿐입니다.
개미먹이
13/11/27 15:55
수정 아이콘
"한국 정치에서 정의와 진실 같은 단어가 조롱당하"는 것은 물론,

한국 사회 전체에서 정의와 진실이 조롱 당하고 있지요.

추천합니다.
인간실격
13/11/27 17:10
수정 아이콘
우리나라에서 자기 실속 못 챙기고 정의를 외치면 그냥 무능력자에 얼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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