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영국군은 프랑스 군과 접경 아라스에서 사실상 참패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영국 수뇌부는 이런 참패를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직 영국군 전력은 충분했으며 작전 실패는 프랑스의 실패 였지 영국군의 실패는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1917년 6월 이전 사실상 아라스 전투가 패배로 향해 가는 시점 부터 영국군의
눈은 중부 전선 아라스가 아니라 서부 전선 이프르에 향해 있었습니다.
단지 중부 아라스에서 싸운 건 프랑스의 작전 전략에 맞추어준 결과 였으며 그들이 진정으로 노리는 곳은
영국해협을 끼고 있었던 프랑드르 지역을 주전장으로 하는 서부지역. 그곳에서도
1915년 이후 계속 혈전을 벌이고 있었던 이프르 시 주변이었습니다.
<이 폐허의 조그만 시골 도시를 점령하기 위해 영국군과 독일군은 무려 4년 동안 수십만명를 갖다 바쳤습니다.>
이곳 전장은 정말 눈물나는 환경을 자랑했는데 그나마 메신 능선등 고지를 차지하고 있었던 독일군은
나았지만
영국군의 근무환경은 최악이었습니다. 조금만 파도 물이 차는 이곳 저지대에서 영국군은 아주 깊게 참호를 파고 독일군에
대응하고 있었습니다. 겨울에는 이습기 때문에 얼어
동상이 걸렸고 여름에는
[봉화직염]보다 더한 참호족이 걸려
싸우지 않고도 수만명이 호송되어 후방으로 나갔습니다.
심심하면 고지에 위치한 독일군의 포탄에 죽어 가는 건 다반사였죠.
<참호에는 이렇게 물이 차야 정상>
영국군의 1917년 후반기 작전 계획은 이런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에 가까웠습니다.
적어도 고지대를 점령하여 더이상 물 안차는 참호와 고지대에서 포탄을 발사하여 독일군을 괴롭히는게 최소한의
작전 목표였습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고지대인 메신 능선을 점령하여 이를 기반으로 하여 이프르 시를 점령한 독일군 힌덴부르크 선을
공략하자가 작전의 두번째 단계의 목표였습니다.
이게 성공한다면
[파스상달 고지]를 점령하고 힌덴부르크 선을 뚫고 영국해협의 주요 벨기에 항구를 함락한 후
이곳을 통해 보급 사정을 개선한 후 독일에 한대 먹여주는게 이 작전의 최종 목적이었습니다.
이 작전은 영국의 2군 사령관 허버트 플러머 대장의 지휘 하에 진행될 예정이었습니다.
사실 저지에서 1단계 목표지인 고지 메신 능선(실재로는 동네 뒷산 정도의 높이지만 그래도 1차 대전 당시 엄청난
이지역에서 중요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최소 몇만에서 몇십만의 목숨을 날려야 하는게 1차대전의 상례였습니다.
만... 그에게는 나름의 꿍꿍이 속이 있었습니다.
이작전의 주역들 허버트 플러머 대장, 허버트 로렌스 대장, 더글라스 헤이그 서부영국군 총사령관(원수)
- 책략.
플러머 대장의 스타일은 일단 밀어 넣고 보는 당시 장군들 스타일과 많이 달랐습니다.
병사들의 교육을 중시하여 하급장교나 부사관, 병사들도 대략의 자신이 해야할 일을 철저히 교육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런 교육을 행한 이후 나름의 재량을 주어 돌발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죠.
플러머의 사단들은 보면 이런 모형을 가지고 자주 학습하는 모습의 사진을 자주 남깁니다.
그는 소모전에 대해 정말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상대를 많이 죽이는게 아니라
아군을 덜 죽이며 상대를 뼈아프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 말이죠.
이덕분에 사소한 사항까지 돌발사태에 대한 매뉴얼 만들고 이에 대응하게 만들었고 정말 자주 보이는
꼬라박는 명령에 대해 단호하게 거부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만 가지고 메신을 공격하는 병사들의 희생을 줄이기에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와 그의 참모 찰스 헤링턴 소장은 정말 황당한 작전을 기획했는데 이게 총사령관 헤이그의 눈에
띄어 아라스 전투에서 망해가던 헤이그가 아라스에 신경쓰지 않고 앞으로 시작될 통칭 제 3차 이프르 전투에
큰 기대를 갖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이 플러머가 생각한 작전은 바로 고지에 위치해 있는 독일군 진지를 말그대로
[날려 버리는 작전]
이었던 것입니다.
1차 대전 역사상 가장 어이 없으면서도 성공적인 기책의 전투인 메신 능선 전투 바로 플러머의 이 계책에서
시작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