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3/07/26 13:43:17
Name 쌈등마잉
Subject [일반] [그냥 잡글] 도시의 계절
<도시의 계절>


계절을 갈아입는 자연을 잊은 나는
계절을 갈아입는 패션을 본다.

---------------------------


종종 친구와 자연에 들어갑니다. 산을 가고, 바다를 가고, 강을 가고. 새들을 보고, 노을을 보고, 별을 보고.
호들갑과 추억에 잠기는 친구 곁에서 저는 무리한 호응을 해줍니다.
자연, 학습된 감성은 딱딱하기만 합니다.

저는 도시의 중심에서 태어났습니다. 삼면이 도로로 둘러싸인 집에서 자랐지요.
제가 기억하는 유년기의 풍경은 콘크리트와 시멘트의 조형물들이었고, 저를 추억으로 부르는 냄새는 자동차의 매연과 하수구의 퀴퀴함입니다. 기계와의 데시벨 싸움은 자연스러운 일상이었지요.

저는 그런 곳에서, 그렇게 자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에 대한 감수성이 딱딱합니다.
잘 보이지 않는 하늘의 별보다는 도시의 네온사인에 더 반응합니다.
먼지를 일으키는 흙의 땅보다는 합성물질로 닦은 도로가 더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거리를 배회하는 똥개보다 사람의 손을 탄 고양이가 더 사랑스럽습니다.

하지만 자연을 서운하게 할 수는 없죠.
자연을 그리워하는 그녀에게 속내를 내 비칠 순 없죠.

그녀는 계절을 갈아입는 자연을 봅니다.
저는 계절을 갈아입는 그녀의 패션을 봅니다.

자연의 계절보다, 도시의 계절이 익숙한 저는
잎의 변화보다, 그녀의 치마가 눈에 들어옵니다.

계절을 갈아입는 자연을 잊은 저는
계절을 갈아입는 패션을 봅니다.

그녀가 떠난 도시의 중심에서
도시의 계절은 멈춰있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3/07/26 14:27
수정 아이콘
좋네요.. 안타깝기도 하고요.

본인의 경험으로 쓰신 글인지..?
쌈등마잉
13/07/26 15:18
수정 아이콘
그렇죠. 얼마 전 차였답니다. 그녀는 시골에서 자라다 도시로 온 아이였고, 저는 전형적인 도시인이었죠.
꿈꾸는늑대
13/07/26 16:01
수정 아이콘
전형적인 도시인 같지 않은 글의 고움에 이별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쌈등마잉
13/07/26 16:51
수정 아이콘
사랑은 의지의 여부에 의해 좌우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니까요. 미련에 미련을 쌓아 올렸지만, 그마저 허물어지고- 너무 비참해 지지 않는 선을 지킬 수 있어서,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아리지만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5482 [일반] [해축] 오늘(일요일)의 BBC 가쉽 [34] 최종병기캐리어5312 13/07/28 5312 0
45481 [일반] 걸스데이가 신곡 "말해줘요"로 돌아왔습니다. [45] 성시원6591 13/07/28 6591 0
45480 [일반] 브라운아이드걸스 5집 컴백무대. 드디어 타이틀 곡 공개 [21] Leeka5499 13/07/28 5499 0
45479 [일반] 15년만의 잠실 한일전. 비가 오니 생각나는 명승부의 추억 그리고 황선홍. [16] LowTemplar5754 13/07/28 5754 1
45478 [일반] 키코(KIKO)사태가 마무리 되어 갑니다. [18] 루치에10727 13/07/28 10727 5
45477 [일반] 김치찌개의 오늘의 메이저리그(킹 펠릭스 9이닝 1실점 11K ND) [5] 김치찌개4894 13/07/28 4894 1
45476 [일반] 고노무 호두과자 - 비상식의 미친 질주 [199] 보고픈12227 13/07/28 12227 0
45475 [일반] 쑨양이 박태환을 존경하는 이유.....jpg [29] 김치찌개10934 13/07/28 10934 2
45474 [일반] 강남, 신촌, 홍대 가면 꼭 가봐야 하는 맛집.jpg [34] 김치찌개10321 13/07/28 10321 0
45473 [일반] LG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에게 도전장을 제대로 던지나 봅니다... [59] Neandertal11276 13/07/27 11276 0
45471 [일반] 무협을 금(禁)해야 하는가 [14] tyro8260 13/07/27 8260 23
45470 [일반] 방금 역대 최고의 꿈을 꾸었습니다. [38] DEMI EE 178223 13/07/27 8223 3
45468 [일반] 다이어트??.. 인생의 다이어트 잔혹사 [23] 기성용5711 13/07/27 5711 0
45467 [일반] 흔한 피지알러의 주말 노래 추천 [4] 달달한고양이4997 13/07/27 4997 1
45466 [일반] [논의] 아프리카 방송홍보와 게임관계자의 유예기간 면제에 대한 이야기 [126] MDIR.EXE7876 13/07/27 7876 0
45465 [일반] 뜬금없는 깜짝 공개 프로포즈는 또다른이름의 민폐 [118] 순두부10709 13/07/27 10709 2
45464 [일반] 대의멸친(怼劓滅親) ⑦ 여태후와 효혜제 [6] 후추통8353 13/07/27 8353 2
45463 [일반] 콰인 "존재하는 것은 변항의 값이다" [27] 삼공파일8234 13/07/27 8234 3
45462 [일반] 500만원을 빌려줬습니다. 후기 [124] 삭제됨10434 13/07/27 10434 6
45461 [일반] 김치찌개의 오늘의 메이저리그(구로다 히로키 7이닝 무실점 시즌 10승) [1] 김치찌개4317 13/07/27 4317 0
45459 [일반] 최성국 감싸는 K리그 vs 마재윤 지워낸 e스포츠 [50] shindx8565 13/07/26 8565 0
45458 [일반] 영화 [감시자들] – 무리수를 두지 않는 영리함 (스포 없음) [19] Neandertal6182 13/07/26 6182 0
45457 [일반] [야구] 라이트한 시청자가 본 류현진 선수. [18] 왕은아발론섬에..6610 13/07/26 6610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