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3/04/20 04:36:14
Name reefer madness
File #1 the_grotto.jpg (44.3 KB), Download : 58
Subject [일반] 작은 클럽 DJ의 소소한 일상




어쩌다 보니 디제잉(DJing)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제는 간간히 작은 클럽/라운지에서 판 좀 돌리는 수준의 디제이가 되었습니다.

일단 이 밤문화의 한 중요한 축이 된다는 것은 저로 하여금 떨리고 긴장되게 합니다. 학창시절을 좀 소외된 상태에서 보낸 저로서는 '인기많고 남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나 그닥 튀지 못하고 공부만 하는 범생인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네이버 웹툰의 '패션왕'을 보신 분이라면 우기명이 간지남으로 변하기 전의 모습이 딱 제 학창시절의 제 모습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이제는 시간이 흘러 저는 본격적으로 밤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클럽에서 밑바닥 일도 좀 해보고(술배달, 티켓팔기 등등) 바야흐르 이제는 한번씩 클럽에서 디제이한다 소리 할 정도로의 위치에 서 있습니다.

다만 이 직업에 대한 직설적인 소개를 하자면... 술을 파는 업종입니다. 좋은 음악을 트는것은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제가 무슨 Deadmau5 나 skrillex가 되지 않는 이상 1000-5000명 되는 관객을 모으기 힘들고, 아는 지인이 최대 100명정도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간간히 제공해 주는게 다입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아무리 디제잉을 잘 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얼마나 그 100명 내지의 인원이 술을 많이 마시고 그 클럽에서 이윤이 남나에 대해 제가 받는 돈도 달라집니다. 그러다보니 저는 정말로 특정한 분위기에 좋은 음악을 고르기 보다는 얼마나 잘 노는 애들을 불러드릴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죠. 그 과정이 제게 있어서는 굉장히 힘든 부분입니다. 좋은 밤/클럽 분위기는 너무 좋아하지만 딱히 제가 디제잉 한다고 따라올 친구들은 그닥 많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평상시에 같이 술퍼마시는 친구 한둘이 분위기에 적응 못하고 일찍 집에 갑니다. 크크.

그리고 딱히 화려함도 없습니다. 술에 취한 이쁜 여자들은 주변에 많이 어슬렁거리지만 저는 그순간 가장 집중해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해야하는 일은 그날밤 즐기기 위해 모인 모든이들에게 신선한 음악을 제공하는 것이지, 괜시리 디제이 부스에 있는 장비들에 호기심을 가진 어린양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일은 없습니다. 실제로 디제잉을 하다보면 술먹고 제옆에 와서 주저리주저리 하는 사람들 정말 많습니다. 제발... 저에게 번호를 줄 생각이 없는 이상 바쁜 저를 피곤하게 하지 마시기를... 그거는 제가 디제잉을 끝나고 잠시 담배 한대 필때나 해야죠.

어떻게 생각해 보면 신기할 정도입니다. 불과 몇년전에만 해도 클럽에서 어떻게 옷을 입나/행동하나에 대해 걱정이 앞서고 밤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극에 다다랐던걸 생각해보면, 이제는 하나의 비즈니스로 대하는 제 모습이 말입니다. 이 일 하면서 추한 모습도 많이 보고 제 신변에 대한 걱정도 될 때가 있었지만, 이보다 더 스릴있는 직종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남들이 주중의 일과들을 마치고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생각을 하며 택시에 타는 그 금요일 밤, 저를 비롯한 밤의 아티스트들은 커피 혹은 redbull을 한캔 마시며 일과를 시작합니다. 문자를 받은 여자애들은 눈화장을 하고 확답을 얻은 남자애들은 머리에 왁스를 바를 시점, 저는 아직 열지 않은 클럽 안에서 간단한 패스트 푸드를 먹으면서 오늘의 playlist를 다시 점검합니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도 좀 모이고 취기가 오른 이들이 몸을 흔들기 시작하면 저는 준비됀 곡들과 연출로 더욱 분위기를 업하곤 하죠. 그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나으면 그제서야 안도를 하며 첫 술을 합니다. Gin & Tonic. 얼굴은 별로지만 가슴이 크다는 이유로 고용됀 웨이트리스... 항상 제가 라임을 원치 않는다는것을 까먹는군요. 이제서야 알만도 할텐데... 하지만 그런 말을 하기보다는 저는 그녀에게 웃음을 던져주고 다시 디제이 부스로 돌아갑니다. 여긴 제가 일을 하는 곳이니까요...

그리고 보다 더 시간이 흘러 새벽이 되면 저도 더이상 디제잉을 하지 않습니다. 클럽에는 조명을 더 켜서 사람들로하여금 나가도록 하죠. 이때 밖에서는 술에 취한 여자애들에게 입담을 까는 애들이 보이고 택시를 부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때 저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날 얻은 수익과 배분을 정확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죠. 클럽 사장님로부터 그날 배분을 받고 다음에 또보자는 말을 들은 후에는 이미 늦은 시간입니다. 어떤 날에는 새벽 3시, 어떤 날은 거의 해가 뜨기 직전입니다.

디제잉이 끝나고 난 뒤, 그때보다 더 배가 고플수는 없다고 생각이 되는군요. 24시 문을 열고 따뜻한 음식을 제공하는 모든 아주머니/아저씨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혼자 늦은 시간에 어슬렁거리는 제 모습은 느닺없은 별볼일 없는 사람입니다. 어느 놈이 혼자서 맨정신으로 새벽 4시에 김밥천국에 check in한답니까. 조용한 상태로 김밥과 라면이 제 앞에 놓여있지만, 아직까지도 제 몸속에서는 베이스라인과 술에 취해 흔들거리는 젊음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문득 친한 친구가 생각이 들때 저는 폰을 키고 이렇게 말합니다.

"마, 지금 니 뭐하노? 내 방금 클럽서 한판 뛰고 왔다. 별일 없으면 소주나 한잔 땡기자."

"...야이 x친놈아... 지금이 몇신데... 알겠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어강됴리
13/04/20 04:50
수정 아이콘
이런거 좋네요 밤문화 이야기,
시끄럽고 사람많은거 딱 질색이라 내돈내고 클럽이란곳을 갈일이 있을까 싶지만 듣는건 좋아합니다. 뭔가 저에겐 중동 열대사막에서 플랜트 건설하는 노동자와 같은 느낌...
reefer madness
13/04/20 04:52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제가 처한 상황이 그래요. 시끄럽고 사람많은거 싫지만 클럽에서 디제잉 하는 사람이라는거... 하하하.
오후의산책
13/04/20 04:54
수정 아이콘
하고싶은 일을 하시는게 부럽네요..
reefer madness
13/04/20 04:57
수정 아이콘
이건 단지 간간히 하는 일입니다. 지금은 취업 준비생이고요. 곧 정신차려야지요 흐흐.
13/04/20 06:17
수정 아이콘
전업으로 하는 분들은 별로 없나요?
니가팽귄
13/04/20 05:09
수정 아이콘
학창시절을 좀 소외된 상태에서 보낸 저로서는 '인기많고 남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나 그닥 튀지 못하고 공부만 하는 범생인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 이부분 저랑 똑같네요.. 저도 남들에게 사랑받는 매력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는데..

최근에서야 이런 것이 제 인생에 큰 문제가 된다는걸 깨닫고 지금은 알바하면서 돈을 모으는 중이네요..
방황뿐이었던 20대 초반을 보내고 나서야 이걸 알고 지금 24살이 되었는데
남은 20대의 목표가 '자존감이 높은 매력있는 사람되기'가 되었네요.

클럽 디제잉이라니 너무 멋있습니다.
reefer madness
13/04/20 05:20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님의 목표는 어쩌면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아주 중요한 무언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보봉보
13/04/20 05:57
수정 아이콘
부럽습니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오늘 같은날 이런 시간에 일어나서 지금 출근해야 하는 그런 종류의 일을 하고 있지만,

지난 10여년간 마음속에서 잊지 않았던 꿈이 DJ이지요.

아마 빠르면 한두달 후부터는 믹싱을 배워 볼 수 있을것 같습니다. 데드마우스는 못되더라도 그의 음악을 남들에게 들려주는 정도로도 저는 만족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난시간들이... 천성이 야행성인데 과연 길고도 긴 기다림이었네요.
reefer madness
13/04/20 17:43
수정 아이콘
오우 꿈이 있다면 해야죠!
윤주한
13/04/20 07:00
수정 아이콘
{}
reefer madness
13/04/20 07:03
수정 아이콘
뭐 그런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곧내려갈게요
13/04/20 07:55
수정 아이콘
고등학교때는 DJing을 하고 싶었습니다.
수능을 치고 클럽 DJ형한테 돈내고 Djing을 배우러 다니기도 했지만... 쉽지 않더군요.
부럽습니다.
reefer madness
13/04/20 17:45
수정 아이콘
디제잉 스킬 자체는 어려운게 아닙니다. 다만 현재 인디 디제이에게 요구돼는 것은 '요란한 애들 불러서 진탕나게 술마시고 놀아서 이윤을 남기는 것'이기 때문에 그 요구에 부흥하기가 힘들 다름입니다.
13/04/20 08:00
수정 아이콘
디제잉은 꼭배우고싶은것중 하나ㅠ 부럽네요.
王天君
13/04/20 09:26
수정 아이콘
와 진짜 멋있어요. 제가 꼭 해보고 싶은 게 디제잉인데 크크
좀 하드한 걸 좋아하시나 보군요. 저도 요즘 막 Skrillex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이런 것 보다는 적당히 뿅뿅 거리거나 멜로디가 많이 들어가 있는 걸 좋아하지 않나요?
reefer madness
13/04/20 17:47
수정 아이콘
음 사실 그닥 하드한거 틀지 않습니다. funk가 많이 가미됀 house정도? 제가 사실 시끄러운 음악을 안좋아하는 편이라 제가 디제잉 할때는 좀 수위 낮은 곡들 위주로 디제잉 합니다. 물론 밤이 깊어가고 사람들이 좀 흥분하면 또 다른 이야기지만 말입니다.
13/04/20 09:38
수정 아이콘
가끔 클럽갈때 디제잉 형들이 너무 부러웠는데 뒤로는 힘들수도 있겠지만 좋아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디제잉모습이 참 부럽더라구요.
reefer madness
13/04/20 17:52
수정 아이콘
힘듭니다. 하지만 관중의 무드를 좌우지 한다는 파워가 아무래도 저를 비롯한 다른 분들로 하여금 이 직책에 대한 매력을 느끼는 요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심군
13/04/20 10:57
수정 아이콘
경대쪽이신가요? 요 몇년간 핫한 클럽은 경대에 많은거 같던데..
절름발이이리
13/04/20 11:25
수정 아이콘
오..
13/04/20 11:37
수정 아이콘
다른 체험을 하는 이런 글 상당히 좋습니다 :)
reefer madness
13/04/20 17:33
수정 아이콘
댓글 감사합니다
Fabolous
13/04/20 12:27
수정 아이콘
밤일 힘드실텐데 ;; 저도 한때 클럽직원이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출근을 하던 시절이 있었기에... 흐흐 ..
일렉트시나보네요. 뭐 요즘 대세가 일렉이니 ..
네오크로우
13/04/20 12:42
수정 아이콘
새벽 네 시. 술 먹자고 하는데
"...야이 x친놈아... 지금이 몇신데... 알겠다." 아,,, 친구분 멋있습니다.
이재균
13/04/20 13:30
수정 아이콘
부산쪽 인가 보네요.. 저 학교 다닐때만 해도.. 서면에" 파트너" 라는 클럽 비슷한 곳이 유행 이었는데.. 광복동에 "DMC" .. 그러면서 유로댄스에 심취했었죠.
지금도 간간히 그때의 음악들을 틀어서 듣고 있습니다. 한번 가보고 싶네요..헤헤헤
모지후
13/04/21 00:50
수정 아이콘
한때 DJ에 대해서 관심가진 적이 있었는데, 실제 디제잉 하시는 분의 글을 보니 부러움만 드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D
양동이
13/04/21 21:25
수정 아이콘
클럽 가고 싶다~ 클럽 들어갈 때 가슴을 울리는 쿵! 쿵! 소리가 얼마나 사람을 흥분시키는데 흐흐..
이세상은말야
13/04/22 12:55
수정 아이콘
고등학교때 가지고 다니던 수많은 벌크 댄스판들을..담임선생님이 쫓아와서 박삭내고...꿈을 접었던게 , 기억나는게 예전에는 RPM을 수동으로 헤드폰 들으면서 Mixing 하던기억이 있는데, 요즈음은 거의 CD table이던데 어떤지 궁금하네요.
lupin188
13/04/22 14:44
수정 아이콘
클럽간 지 꽤 되었네요...다시 한 번 가 보고 싶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3448 [일반] [영화] 스타트랙 다크니스, 맨 오브 스틸, 은밀하게 위대하게, 토르2 예고편 [14] 타나토노트8087 13/04/27 8087 0
43323 [일반] 작은 클럽 DJ의 소소한 일상 [29] reefer madness6445 13/04/20 6445 9
43204 [일반] 성남이 드디어 홈에서 이겼습니다. [15] 막강테란4121 13/04/15 4121 2
43166 [일반] 여러분이 재밌게 읽으셨던 장르소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125] kien15466 13/04/12 15466 0
43139 [일반] 영화 '전설의 주먹' 후기(스포) [11] 류크7739 13/04/12 7739 0
43126 [일반] (아랫글보고)저는 초능력자입니다. [28] 시간6984 13/04/11 6984 3
43087 [일반] 웹툰 추천-'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 [15] AfnaiD12274 13/04/08 12274 0
42808 [일반] [신앙] 루카치의 꿈과 나의 꿈 (다원적 민주주의 시대에 사는 한 기독교인) [29] 쌈등마잉4263 13/03/22 4263 4
42806 [일반] 장그래씨 아이템 너무 아쉽네요. 미생과 쌀 이야기 [11] luvnpce7660 13/03/22 7660 1
42647 [일반] 웹툰 '미생'과 관련된 칼럼하나. [41] par333k9277 13/03/10 9277 3
42581 [일반] 한국 웹툰, 일본 애니메이션화!!! 그런데.... [96] 오우거9989 13/03/06 9989 0
42102 [일반] 모두에게 완자가 라는 웹툰 [57] 김도진8188 13/02/03 8188 1
42083 [일반] 웹툰 공모전 우승했습니다. ^^ [16] sonmal6519 13/02/02 6519 1
41849 [일반] 축하할 일이 있어서 글을 적네요.(웹툰 관련) [8] FreeSpirit5041 13/01/23 5041 0
41532 [일반] [연애학개론] 바둑과 연애(2) - 파격과 아생살타, 그리고 접바둑 [37] Eternity7398 13/01/06 7398 2
41362 [일반] [판타지] 조아라라는 사이트를 아시나요? [20] sisipipi10583 12/12/29 10583 0
41267 [일반] [연애학개론] 바둑과 연애(1) - 응수타진과 봉위수기 [30] Eternity9692 12/12/25 9692 2
41111 [일반] [K리그] 주말 오피셜 - 부제 : 윤성효 감독의 귀환 [11] 막강테란3585 12/12/17 3585 0
40995 [일반]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만화 부문 대통령상 수상 [30] The xian6874 12/12/11 6874 1
40946 [일반] 아청법이 개정없이 결국 국회 통과 되었습니다. [102] 허느9604 12/12/09 9604 0
40851 [일반] [리뷰] 26년 - 피로 얼룩진 정의는 살아있는가 (스포 있음) [24] Eternity4557 12/12/05 4557 0
40728 [일반] 한심한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 방송 심의 기준 [10] 타테시5556 12/11/29 5556 0
40470 [일반] 화광, 적벽을 채우다(끝)-여전히 불타오르다. [3] 후추통4808 12/11/18 4808 3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