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3/04/08 18:50:43
Name sprezzatura
Subject [일반] 대인관계에서의, 강약의 바란쓰
어렸을 땐 어지간히 겁 많고 호구 잡히기 쉽상인 성격이었습니다.
누가 부탁하면 절대 거절 못하고, 매사에 베풀기만 하고(때로는 뜯기기도 했죠)
돈 1000원 빌려주고도 달란 소리 못하고 혼자 끙끙 앓는 꼬맹이였죠.

대략 중학교 다닐 때까진 계속 그래왔던 것 같습니다.
하기사 만만해보이는 인상에 키도 작고 뚱뚱하고 누가봐도 소심한 겁쟁이였으니,
가지고 놀기에 딱 좋은 타겟이었겠죠. 저도 당하면 당할수록 더 움츠려들기만 했구요.

고등학교 올라가면서부터 슬슬 상황이 변했던 것 같습니다. 일단 키부터 40cm 가까이 커지고
몽타주도 싸나워져, 어지간한 시비나 다툼 따위로부터 자유로울 만한 피지컬(?)을 갖추게 됐습니다.
일례로 초등 5학년때 저희 반 '짱'을 먹던 친구와 고3때 다시 같은 반이 됐는데,
7년만에 만난 저를 굉장히 어려워하더군요. 거기서 알량한 자신감까지 얻곤 했습니다.

그때부터 사람 대하는 태도가 강성으로 돌변했고, 이는 사회생활 시작할 때까지 이어졌죠.
"절대 만만해보이는 사람이어선 안된다" 내지 "계산에서 지는 놈은 되지 말자" 등의,
강박에 가까운 모토 아래 철저히 고자세에 실리적으로 사람을 대하게 됩니다.

대학이든 모임이든 군대든, 하다못해 알바할 때 몇 시간씩 보는 사람이든
하나같이 처음 저를 대할 땐 "차갑다", "무섭다", "기계같다" 등으로 평하더군요.
어쨌건 사람과 계속해서 마주치고 섞이다보니 개중에 친한 그룹도 생기고, 언뜻 보기엔
별 탈 없는 인간관계였습니다만, 어렴풋한 거리감은 늘상 느껴지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대학 동기 하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친구는 누가 봐도 친근한 인상에 젠틀한 신사였고, 때로는 답답해보일 만큼의 예스맨이었습니다.
항상 많은 사람들과 어울렸고, 친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친구였죠. (물론 나쁜 의도로 치고 빠졌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뭐든 들어주고 도움주려 하는 그 친구가 때로는 한심해보였고, "왜그리 밑지고 사냐?" 따져도 봤지만,
그 친구는 늘 시골 할아버지처럼 웃으며 "이렇게 태어난 걸 어쩌냐" 눙칠 뿐이었습니다.

거기에 어느새 동화된 것인지, "저게 맞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곧이어 본격적으로 그 친구를 벤치마킹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 상대함에 있어서의 힘을 쫙 뺐죠.

처음엔 어리둥절하던 주변인들도 거기에 점차 적응하기 시작했고, 확실히 관계의 폭은 넓어졌습니다.
학기초에 말도 못붙이던 같은 과 동생이 "오빠 담배 하나만 줘봐요. 나중에 200원 줄게 빨리 뱉어봐"
들이댈 정도로 대중적인(?) 캐릭이 됐죠. 뭐 저도 하하호호 거리며 많은 이들과 어울리니 나쁘지 않았습니다.

헌데 결국은 트러블이 생기더군요. 슬슬 배려나 예의의 선을 넘어오는 친구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객관적으로 무리한 부탁을 해놓고도 들어주지 않으면 '과한 실망'을 표하는 케이스도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때면 어렸을 때의 안좋은 기억이 떠올라서인지, 꾹 눌러왔던 성깔이 폭발하듯 튀어나오기도 했죠.
자연히 상대방은 혼란스러워하기 일쑤였고, 저는 저대로 뒷맛이 개운치 않았습니다.

"나는 맞춰주고 배려하는데, 왜 그들은 그만큼의 성의를 알아주지 않는가?" 하는 의문에
한동안 고민이 많았습니다. "나는 옳았고 그들이 잘못했다. 그래서 화가 난다"는 생각만 들곤 했죠.

어쨌든 그 후로도 대학, 직장, 사교모임, 접대자리 등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때로는 무작정 참고, 때로는 화도 내고, 또 그로 인해 칭찬도 욕도 듣고 하며 갖은 경험들을 쌓아가게 됩니다.

"사람을 어느 정도의 호의, 얼마만큼의 강약으로 대하는 것이 답일까"
"그냥 그런 생각 자체를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대하는게 맞는 걸까"
"그렇다면 있는 그대로의 나는 또 어떤 모습이며, 그 '날것'의 내 모양새가 긍정적으로 작용할까"
"애초에 이런 걸 따지고 있는 것 자체가 가식에 가깝지 않을까"
..등의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몇 년이 흘러, 이제 어리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지만, 사실 답을 아직 모르겠습니다.

지금 시점에서의 잠정적 결론은 "강도 약도 아닌 중 언저리"입니다.
냉혈한스럽게 굴지도, 그렇다고 슬램덩크 안선생마냥 홋홋홋 거리지도 말 것이며,
'풍류 좋아하는 동네형' 싸이즈에 '한편으론 뼛속까지 속물' 정도를
버무려낸 모습이랄까요. 하긴 모두 본연의 제 성격의 갈래들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중'으로 가고 있는 지금 자체는, 나름 그 결과가 괜찮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또다른 환경에서 또다른 사람들을 겪다보면 또 달라질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항상 느끼지만 '사람↔사람'은 어려워요. 애초에 정답이 없는, '그때그때 다른' 문제일런지도 모르죠.
때문에 누군가 이런 주제로 답을 구해온다면, 그 대답을 주기가 주저되고 조심스러워집니다.
"이러이러한게 맞소이다" 정답이랍시고 알려주기엔, 그 꼴이 너무 교만해보여서 말이죠.

여튼,
"사람 상대로의 정도(正道)라는 것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일단은 더 살아보고 겪어보고 생각해봐야겠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설탕가루인형형
13/04/08 19:00
수정 아이콘
아무리 자신만의 장점, 특수성이 있어도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남들 생각, 자신의 단점을 생각해야만 하니 어떤일이던지 결국은 바란쓰(!) 가 중요하죠.
한쪽 성향이 지나치게 강하면 반대 성향을 이해하지 못하고, 본인도 남들에게 쉽게 예측이 되는 사람이 됩니다.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면 관계가 깊어지기 어렵고, 남들에게 예측이 되면 끌려다니기가 쉽워집니다.
근데 스스로를 바란쓰 있고 중립적이라고 생각해도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관망적, 무관심으로 보일수도 있고...

결국 각자의 성격, 환경에 맞춰 살아갈 뿐 정도는 없는 것 같습니다.
sprezzatura
13/04/08 19:07
수정 아이콘
역시 '진리'보단 '케바케'에 가까운 주제라 생각되네요. 고로 진리의 케바케..?
어강됴리
13/04/08 19:02
수정 아이콘
정신과 전문의 김현철 선생님이 상담코너에서 항상하는말이, 싫다 라고 명확히 의사표현을 할수있을떄가 성숙된 자아라고 한다고 합니다.
솔직히 모든사람에게 호인으로 보이고자 하는것은 사실은 심각한 자기학대죠, 모두에게 좋은사람이고자 하지만 나 자신에게는 이보다 더 나쁜사람일수가 없습니다. 저도 말씀하신 강약의 밸런스에서 강쪽으로 치우쳐 있기는한데 어느지점이 편한가는 개개인이 다 다르기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사회생활하면서 어울린 사람에게는 지근거리를 내주지 않되, 일정선을 지키고 그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람에게만 터놓는다" 정도가 정답이 되더라고요 솔직히 사람의 감정이라는 에너지가 제한된 자원인데 나한테 영향을 줄지도 안줄지도 모를사람한테 허비해서야 되겠습니까 내 소중한 사람에게 몰빵하기에도 모자른데
sprezzatura
13/04/08 19:14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 의견에 (현재의 제가) 가깝습니다. 종종 그 '일정선'의 범위가 헷갈리는 경우도 생기곤 하지만.
13/04/09 00:28
수정 아이콘
"솔직히 모든사람에게 호인으로 보이고자 하는것은 사실은 심각한 자기학대죠, 모두에게 좋은사람이고자 하지만 나 자신에게는 이보다 더 나쁜사람일수가 없습니다."

우와 이거 명언이네요.
13/04/08 19:05
수정 아이콘
저는 중학교 졸업 때부터 했던 고민이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었는데,
10년 넘게 고민해봐도 아직도 답은 못 얻었습니다.

그래도 위안이라면
그 때보다는 인간관계가 무엇인지 좀 아는 것 처럼 느껴진다는 걸까요..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아서
그래도 다행입니다.

그렇게 계속, 끝없이 배우는게 인간관계인가봅니다.
sprezzatura
13/04/08 19:16
수정 아이콘
저역시 어렸을 때보단 나아졌다 싶어 다행스럽긴 합니다.
13/04/08 19:11
수정 아이콘
글쓰신 내용 관련하여 공감을 얻는 이론이 있지요.
맨날 잘해주는 사람은 한번 지X하면 사람 잘못봤다는 소리 듣고, 맨날 X랄하는 사람은 한번 잘 해주면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란 소리 듣는다.
에이, 뭐가 그렇겠어 그랬는데, 겪어보니 맞는말 같다??????

어중간히 눈치보면서 살려니 힘드네요.
sprezzatura
13/04/08 19:18
수정 아이콘
특히 연애에서 통용되는 바로 그 이론이로군요 헐헐.
안동섭
13/04/08 19:13
수정 아이콘
패턴은 역시 강 약 중강 약.... 농담입니다 ^^;

저도 나이 먹어가면서 갈수록 깨닫게 됩니다만

역시 대인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의 태도나 행동 설정보다는 "빠르고 정확한 파악"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제게 바라는 게 많아서 접근하는 이도 있고

질투하는 이도 있고

선망하는 이도 있고

미워하는 이도 있지요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같은 사람인데도 어떤 때는 미워하다가 어떤 때는 좋아하다고 또 어느 날은 질투하기도 하고 그렇습디다

그런 상대방의 태도, 속내가 그 때 그 때 잘 보이면 적절한 응대가 잘 되더군요.

비유하자면, 초보시절 저는 빌드와 전략을 달달 외서 상대가 뭘 하고 있는지는 신경도 안 쓰고 그냥 냅다 내 전략만 준비했었지만

실력이 좀 늘고 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한 정찰을 통해 상대의 의도를 읽고 맞춰가는 플레이어가 되었다고 할까요

도움이 될랑가 모르겠네요;
sprezzatura
13/04/08 19:21
수정 아이콘
정찰 매우 중요하죠. 꾸준히 연습중이긴 합니다. 맵핵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퀘이샤
13/04/08 19:15
수정 아이콘
저도 고민했었는데 개인적인 결론은 이렇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천성을 바꾸지는 않는다. 다만, 좋은 모델이 있으면 내것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나이가 드니 여유라는 것이 생기더군요...)
일반적인 사회 통념상 예의를 반드시 지킨다.
내 마음을 타인을 몰라주더라도 아쉬워하지 않는다.

이정도 지키니 어디가서 욕먹지 않고, 또 저 스스로 마음 상하는 일 별로 없습니다.
단지 마당발은 못되는데,,,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인맥(?)에 대해서는 적당한 처신으로 관리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계속 보는 친구들과는 길게 좋은 관계 유지가 되는 것 같습니다. (끼리끼리 만나는 면도 있겠지만요...)
sprezzatura
13/04/08 19:24
수정 아이콘
저도 좋은 모델들은 깊이 참고해나가야 하겠습니다.
최종병기캐리어
13/04/08 19:44
수정 아이콘
전 주로 '허허허...영감님' 입니다만,

거절은 잘합니다...근데 단칼에 거절은 못하구 빙빙 둘러서 거절하는.편입니다...

계산은 잘 못해요
sprezzatura
13/04/08 20:06
수정 아이콘
거절해야 마땅할 상황에서, 그럴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큰 것 같습니다.
라울리스타
13/04/08 19:52
수정 아이콘
저랑 반대의 성장과정을 거치셨네요. 저 같은 경우는 초-중학교때 사춘기가 빨리와서 제멋대로 굴었으나(이때 이차성징 온 학생과 아직 변성기도 안 온 학생의 피지컬 차이는...크크), 이후로 성장이 멈춰서 지금은 호구 피지컬을 가지고 있습니다. 크크

아무튼 요새는 '친한' 친구들에겐 최대한 편하게, 낯선 사람들에겐 최대한 예의 바르게 하고 있습니다(심지어 후배들한테도). 어찌보면 너무 극으로 치달아서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예의바르게 행동하니 상대 입장에서 먼저 막대하는 상황은 없더라구요. 아마 이유없이 제가 싫은 사람이 있어도 딱히 그렇다고 '막대하기는 뭐한' 상황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크크크

이래서 어르신들이 어렸을 때 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주지 말고 살라고들 하시나봐요. 단점은 인간관계로 받는 스트레스는 별로 없지만, 그렇다고 인간관계로 얻는 무언가도 없다는 것? 크크
sprezzatura
13/04/08 20:07
수정 아이콘
젠틀맨시네요 헐헐. 그만큼의 열매도 얻으시길 바라겠습니다.
13/04/08 20:22
수정 아이콘
Tic for tat이요
sprezzatura
13/04/08 20:33
수정 아이콘
눈눈이이로 이해하면 될까요 헐헐.
13/04/08 20:57
수정 아이콘
나름 기준과 설정을 세워놓고 그에 맞춰 살아봤습니다만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가는 피곤함에 지치더군요.
이제는 그냥 내키는대로 살고 있지만 모나다는 소리는 안듣고있어 다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2막2장
13/04/09 00:17
수정 아이콘
저는 나름 허허하면서 살아왔는데, 그닥 크게 사람한테 데인적이 없어요.
언젠가는 데일날이 올것 같아 내심 불안하기는 한데, 신기하게도 30대중반임에도 그런적이 없네요.
아무튼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그냥 살아볼랍니다.

아.. 근데, 저 거절은 무지 잘해요. 그냥 생각해보고 도저히 안되겠다 싶으면 이미 약속했더라도 미안하다고 하고, 그냥 안해버리는 경우가 꽤 있었던것 같아요.
그리고 은근히 저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도, 훗날 알게된 경우가 있었어서, 뭐.. 그래도 대놓고 저에게 반기 드는 인간은 아직 못봤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6228 [일반] CrossFit fundamental [60] 동네형9324 13/08/31 9324 3
46157 [일반] 복근과 다이어트 [45] 동네형10531 13/08/28 10531 4
43081 [일반] 대인관계에서의, 강약의 바란쓰 [21] sprezzatura4944 13/04/08 4944 2
42975 [일반] 만우절 ㅋㅋㅋㅋㅋ [233] 동네형20522 13/04/01 20522 5
42906 [일반] 다이어트 얘기 [77] 동네형11797 13/03/28 11797 5
36506 [일반] 괜찮은 닭집을 소개할까 합니다 라고 하려다가..... [10] AttackDDang5651 12/04/07 5651 0
35888 [일반] [음악] 괜찮아 잘될거야~ [38] 티파니에서아점을5440 12/03/12 5440 0
30656 [일반]  릴렉스한 자게를 위한 음악 관련 잡글. [6] hm51173404838 11/07/29 4838 2
25836 [일반] [캐치볼모임후기]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아 드립니다. [22] fd테란4716 10/10/17 4716 0
16175 [일반] K-1 서울대회 프리뷰 [9] wish burn3399 09/09/23 3399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