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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4/02 17:12:55
Name 트위스터
Subject [일반] 고부갈등의 핵심은 무엇일까? -2- <크리스마스의 역설>

크리스마스의 역설, 신형철 평론가가 한 칼럼을 기고하면서 ‘크리스마스의 역설’이라는 말을 사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평소라면 지나쳤을 사소한 일들이 정작 크리스마스에 거대한 슬픔으로 다가온다는 뜻이죠, 그래서 결국 불행한 크리스마스가 되어버리는 아이러니함은 한국의 결혼 문화와도 매우 닮아있습니다.

예물과 예단은 결혼 준비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핵심이자 꽃입니다. 집값과 혼수에 대해서는 나중에 상세하게 다뤄보기로 하고, 이번에는 예물과 예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예비 시어머니와 예비 며느리가 느끼는 감정들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여자들의 ‘괜찮아’에 대해서
사실 여러모로 불공평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한국 결혼 문화의 통념은 ‘남자는 집+예물, 여자는 혼수+예단’입 니다. (저는 사실 집값과 혼수 모두 50:50으로 공평하게 나누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그 이후 서로에게 불공평하게 몰려 있는 문화들이 총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남자가 가장이 되는 문화가 아니라 부부 공동체라는 개념, 모병제 폐지 혹은 양성 모두 군대에 가는 문화, 사위는 대접하지만 며느리는 일을 하는 기형적인 구조 및 분위기의 변화, 사실 저는 성姓’을 기본적으로 남자 쪽으로 따르는 것에도 회의가 있습니다만, 이 이야기에 대해서 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으니 이만 줄이고..) 이 때 ‘두 여자’의 기준은 바로 ‘내 친구들 중 가장 좋은 것을 받은 사람!’에 대해 초점이 맞춰집니다.

사주라도 보고 싶은 며느리
인간은 내가 모든 세계에서 월등히 뛰어난 존재일 때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나를 속해 있는 집단의 멤버 중에서 내가 가장 뛰어날 때 행복을 느낀다고 합니다. 여자들은 결혼을 할 때 이 불안감이 가장 극심해집니다. 내 친구들이 나를 우습게 여기면 어떻게 하지? 내가 제일 시집을 못 가는 거면 어떻게 하지? 남자들은 이 논리가 사실 잘 이해가 안 갑니다. 왜 그렇게 친구들과 비교하나요?

저는 그 이유가 <‘관계’를 중시하는 여자들의 문화+결혼으로 여자들의 인생이 변화할 거라고 주입하는 한국 사회의 주장>이 기형적으로 혼합되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전자는 당연한 이야기이라고 치고, 후자를 한 번 볼까요? 경제권이 남편에게 있었던 시절, 여성들의 지위와 생활 수준, 그리고 행복은 ‘오로지’ 남편의 위치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런데 이 남편이라는 것은 참으로 알 수 없는 생물이죠. 돈도 성격도 다 좋아야 하는데 그것을 다 충족시키기가 어디 그렇게 쉽나요?

이 의식이 아직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한국 사회는 여자들에게 강하게 이 생각을 주입시키려 합니다. 남자를 잘 만나야 돼, 결혼으로 너의 인생이 폭삭 망가질 수도 있어. 그리고 사실 이 주장 안에는 남자들에게 ‘완벽한 남자’가 되기를 강요하는 사회의 강압적인 요구도 숨겨져 있습니다. 모두의 비극이죠. 이게 모두 통치를 더 편하게 하려는 기득권의 음모(?)라는 생각도 솔솔 들지만 스킵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사실 제가 볼 때, 여자들이 거한 예물+꾸밈비라는 말도 안 되는 문화를 주장하는 건 ‘내가 내 인생을 망치지 않을 결혼을 하는 걸까?’에 대한 보상심리라고 봅니다. 그 부분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물질을 통해 보상받고 싶고, 그 물질을 통해 친구들로부터 ‘우와~ 진짜 부럽다, 남편이랑 시댁이 진짜 좋은 분들인가봐!’라는 확신 어린 대답을 듣고 싶은 겁니다. 그리고 여자들에게 시댁은 ‘아직 뭐가 뭔지는 하나도 모르겠지만 내가 30kg 찌는 것보다 백배쯤 두려운 대상’이니까요. 그런 복잡하고 다양한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한 행위라고 봅니다, 내 미래는 괜찮을 거야, 나를 사랑해주고 존중해주는 남편과 시댁을 만난 걸꺼야, 이혼이 아직도 흠이 되는 사회에서는 더 그렇죠.



나의 인생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시어머니가 된 여자들은 극도의 상실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요새 아들은 내 아들이 아냐, 며느리의 남편이지.’ 라는 풍문을 곱씹으며 처량해지죠. (심리에 대해서는 지난 편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 그리고 또! 그 놈의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앞으로 내 아들은 한 달에 몇 번이나 볼 수 있는 걸까? 며느리가 아주 싹퉁바가지이면 어떻게 휘어잡아야 하지? 며느리 친정에서 내 아들이 무시당하면 어쩌지? 그보다.. 나는 영영 잊혀지는 게 아닐까? 아들의 엄마가 아니라, 미움받는 시어머니로만 살아가게 되는 건 아닐까?

그래서 시어머니들은 대접받고 싶다는 욕망으로 똘똘 뭉치게 됩니다. 까놓고 보면 사실 두려움 뿐인 감정이죠. 그래서 자꾸 며느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싶어집니다. 전화를 자주 하렴, 우리가 친해져야 하지 않겠니? 자주 밥을 먹자꾸나, 혼수도 최고로 좋은 것으로 해오렴, 예단은 친척들에게 모두 돌릴 수 있을 만큼 넉넉하게… 이 말을 풀이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나를 사랑하고 존중해 줘, 앞으로도 나를 좋은 시어머니로 여겨 줘, 그리고 내가 가부장적인 구조 속에서 대접받는 전통적인 시어머니로 살게 해 줘 내 아들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서 호들갑스럽게 기뻐해 줘, 시어머니들은 며느리들이 180도로 허리를 숙이고 들어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내 인생에 위해가 되지 않도록, 내가 두려움을 느낄 대상이 되지 않도록 말이죠.

하지만 저도 알고 당신도 알고 우리 모두 알듯이, 아무리 달랜다고 해도 그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사실 사회가 조성한 불안감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갈등으로 깊게 파고들어 중재를 해야 할 남자들은 다른 골치 아픈 일들(ex. 집값 등)에 골몰하고 있기 때문이죠.


두려움과 불안감에 대한 통찰
그렇다면 이 두려움과 불안감을 어떻게 해소시켜야 할까요? 사실 제가 생각하는 궁극적인 해결책은 사회가 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들에게 육아휴직 및 육아휴직 이후의 커리어를 제도적/문화적으로 확실히 보장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사회 전반적으로 팽배한 ‘유리천장’과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도요. 사실 이런 부분들이 제도적으로 해소되면 지금 ‘며느리 세대’의 ‘결혼으로 내 인생이 망할까봐’ 두려워하는 일은 많이 해소되리라고 믿습니다. 지금도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멀었죠.

(이건 약간 이상적인 말이기는 한데) 일단 가장 친한 친구로서, 예비 신부가 본인의 커리어를 쌓을 수 있도록 앞으로, 지속적으로 서포트해 주겠다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남자)의 인생에 종속된 게 아니라, 결혼 후에도 너의 독자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이 포인트죠. 아니면 아예 반대로, 내가 팍삭 망하는 일이 있더라도 너만은 먹여 살리겠다는 믿음을 줄 수 있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불안감 해소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머니께는 결혼을 한 이후에도 ‘어머니’의 위치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확인시켜드려야 합니다. 귀찮으실 정도로 대화를 많이 하고, 의견을 묻고, 가끔 강짜도 부리고 애교도 부리면서 ‘여전히 나의 편한 아들’이라는 것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그렇지만 ‘독립된 가정’이라는 점에서는 명확히 선을 그어야죠. ‘어머니에게 어떻게 그래..’라는 말은 사실 내가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이기심입니다. 그러면 어머니께 결과적으로 더 큰 상처가 됩니다. 합의되지 않은 사소한 일과로 인해 며느리는 상처를 받고, 결국 어머니를 미워하게 되죠. 어머니는 점점 더 많은 아들과 며느리에게 더 많은 프라이버시를 내줄 것을 요구하게 됩니다. 어느 순간 갈등은 빵! 터져버리죠. 이 케이스로 인연을 끊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고부갈등의 핵심’이 ‘나’라고 받아들이는 데서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엄마와 나를 사랑하는 아내의 갈등이니까요, 사실 ‘내’가 그 싸움의 핵심인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비겁한 일이죠. 많이 어려운 일이지만 조금 더 용기 있어지시길 바랍니다, 그 후에는 조금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오글거리는 말이지만 그러리라고 생각합니다. 길고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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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4/02 17:23
수정 아이콘
연재2 인것을 보고 1편부터 보고 왔습니다. 젊은 부부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글링아빠
13/04/02 17:29
수정 아이콘
고부갈등의 키를 남자가 쥐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명백한 바보짓에 장단 맞춰주는 걸 어디까지 해줘야 하는가도 쉬운 문제는 아니죠.
보통 기본 문제의식만 있다면 사고는 남자의 귀차니즘보다 오히려 말도안되는 짓들 뒤치다꺼리하던 중의 짜증/증오에서 더 발생하기 쉽습니다.
게다가 그냥 내가 당하고 그만이면 좋겠습니다만 바보짓을 내가 알고 한다고 바보짓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기에 결국 그건 또 다른 문제로 돌아오게 마련이구요.

남자는 두 여자가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자신을 가장 사랑할 뿐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라는 기본 사실만 언제나 잊지 않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마음이 그렇다면 행동은 그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는대로 합리적인 선에서 해나가도 크게 무리 없죠.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사리분별 못하는 애들이 아니니 모든 걸 (예비) 남편이 떠안을 필요는 없고 떠안아서도 안되구요.
그저 그 정도만 해주고 나머지는 스스로 중심을 잘 잡고 며느리와 시어머니선에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직접 풀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편이 좋습니다.

키를 쥐고 있는 사람은 키를 이리저리 함부로 흔들어선 안됩니다. 물살이 빠를 수록 더욱 그렇죠.
그리메
13/04/02 17:54
수정 아이콘
본문은 여자들의 심리에 대해서 덧글은 실제 결혼을 오래 해오신 분의 노하우에서 둘 다 좋은 글을 보고 갑니다.
Waldstein
13/04/02 19:18
수정 아이콘
어줍잔은 효 이데올로기 안에서 허우적대는걸 멈추고 새로운 가정을 꾸렸으니 모든건 새로운 가정(즉 아내)을 최우선으로 여기면 됩니다.

부모는 아내 자식 다음인 3번째 순위라는걸 확실히 한다면 별 문제 없을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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