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3/03/23 12:07:49
Name 순두부
Subject [일반] 한국의 개혁가들
각종 폐단으로 나라가 어렵고 백성들은 고통스러워 할때 항상 개혁가가 나타나
새로운 개혁을 제시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어떤 개혁가들이 있었을까요



1. 최치원

신라말기 무너져가는 신라를 되살리기위해 진성여왕에게 시무십조라는 개혁정책을 건의하지만 당시 부패할대로 부패한 신라 사회에서는 그의 혁신적인 주장이 통용되지 않음. 중앙 귀족들은 그의 개혁에 반대를 하고 결국 6두품으로서의 한계를 느낀 최치원은 지리산으로 은퇴. 그리고 이후 신라는 결국 몰락하고 후삼국시대가 들어서게 된다.



2. 충선왕

충자 돌림 왕중 가장 유능했고 가장 개혁적인 인물. 즉위한 이후 원나라 간섭의 영향으로 인한 폐단을 개혁하고 구습을 철폐하거나 관제를 개혁하였으며 무엇보다 원의 밑에서 권세를 누리던 권문세가의 토지를 몰수하여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주목할 만한 개혁정책을 의욕적으로 실시해 나갔다. 그러나 친원파 권문세족의 반발은 심했으며 개혁정책은 큰 저항에 부딪치게 되고 결국 권문세족의 모략으로 재위 7개월만에 왕위에서 쫒겨나고 원나라로 소환됨. 이후 줄을 잘서서 새 원나라 황제의 도움을 얻어 자신을 모략한 권문세족을 몰아내고 다시 왕위에 올랐고 개혁정책을 추진했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라는걸 깨닫고 고려로가지 않고 원나라에서 원격 통치를 했다. 나름의 성과를 거둔 것도 있었는데 바로 권문세가와 사원의 소금의 전매 독점을 금지하여 폭리를 취하는 것을 막은 것.

원 간섭기의 '충자 돌림' 군주들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군주로 실제로도 이들 중 가장 능력 있던 군주였고 나름대로 개혁정책을 펼쳐서 약간의 성과를 거둔 면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개혁 대상이었던 권문세가의 힘이 여전히 막강했고, 더더욱 그 배후인 원의 영향력 또한 굳건했기에 그의 개혁은 의지 실종과 함께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3. 공민왕

고려말 고려의 개혁을 이끈 가장 유명한 임금.

왕이 되자마자 원나라 생활을 할 때 원의 쇠퇴를 파악하고 본격적인 반원정책을 펼쳐 원의 연호와 관제를 폐지했고 원의 풍속인 변발과 호복을 폐지했다. 또한 원의 황후 기씨의 인척으로 전횡을 일삼던 기철 일당을 중심으로 한 친원파 세력(권문세족)의 숙청에 나섰고 성리학을 공부한 신진사대부라는 새로운 지식인 계층을 등용 및 육성하면서 의욕적인 개혁정책을 펼쳐 나갔다.

하지만 김용의 반란, 사랑하는 노국대장공주의 죽음은 공민왕을 완전히 변모시켰고 그뒤 개혁을 일임시킨 신돈이 갈수록 세력이 커져가고 기득권의 반발이 심해지자 위기를 느껴 제거하였다. 그뒤 공민왕은 예전의 총기를 잃은채 쾌락에 빠지게 되고 결국 비운의 죽음을 맞게된다.




4. 정도전

조선을 만든 조선의 장자방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하였으며 조선의 첫 제도가 거의 정도전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면에서 그는 위의 개혁가와는 달리 절반은 성공한셈.

하지만 당시에는 지나치게 개혁적인 면이 커서 예를 들자면 모든 농민에게 모든 토지를 무상몰수해서 균등하게 무상분배하는 개혁을 내세웠으나 이와같은 노비해방이나 토지분배 등은 지방 호족이나 향리층 및 관인층의 반발이 극심해 이성계의 힘만으로도 추진하기에는 버거운 일이었고, 개혁파 내부에서도 크게 호응받지 못했다.

그리고 왕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재상중심제의 신권국가를 이룩하려고 했으나 이를 반대한 이방원에게 참살당하고 조선건국의 일등공신 정도전은 조선내내 복권되지 못하다가 흥선대원군때 복권되었다.




5. 조광조

중종시기 훈구세력으로 인해 나라가 병들어가고 있을때 조광조는 분연히 나타나 개혁을 외쳤다.

당시 대두되었던 사림파의 아이콘으로 등장 중종의 열렬한 지지를 뒤에업고 현량과 실시, 정몽주와 김굉필의 문묘배향, 소격서 폐지, 그리고 정국공신 개정 시도등을 했으나 정국공신 개정시도에 많은 기득권세력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또한편으로 너무 커져가는 조광조세력을 중종이 꺼려하게 되었다.

결국 이해관계가 일치된 중종과 훈구세력은 조광조를 몰아내는 기묘사화를 일으켰고 조광조는 중종에 의해 사사되며 그가 한 개혁은 물거품이 된다.




6. 이이

조선 최고의 천재라고 불리며 조선시대 최고의 경세가라 할 수 있는 유능한 정치가였다.

이이는 기본적으로 사회개혁을 주장한 경장론자였고 그의 경장에는 대동법의 전신인 수미법, 세제개혁 등 여러 개혁이 있었으며 10만 양병론으로 대표되는 군제개혁역시 주장하였으나 그의 주장은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다른 신하들은 붕당으로 나뉘어지며 붕당을 말렸던 이이는 사후 서인의 거두가 되어버리고 만다.





7. 정조

논란이 있지만 보통 조선의 개혁군주라고 불리는 임금

초반기 군제 개혁을 하고 수원에 화성을 지었으며 장용영을 설치하였다. 탕평책을 피고 학문적이고 문화적인 통치를 하며 나라를 부강하게 했으며 또한 외국의 문물을 수입하면서 조선 후기 실학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홍문관을 규장각으로 바꾸고 서얼 출신(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등)들을 등용하여 서학을 익히게 하고, 신해통공을 실시하여 종로 앞 거리에 육의전이 차지하는 물품을 제외한 나머지 물품을 취급하는 사전을 열 수 있게 하여 조선의 상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말년에 건강이 좋지않아 김조순에게 후손을 맡기고 이는 조선을 몰락시킨 세도정치의 시작이 되게 된다. 결국 정조가 죽은후 정순왕후의 수렴정청이 시작되고 정조의 개혁은 하나하나 부정되게 된다.




8. 흥선대원군

조선의 마지막 걸물이라고 불리며 세도정치로 망해가는 조선을 되살리기위해 여러가지 개혁을 내놓는다.

안동김씨 세력을 몰아냈으며 각지에 엄청나게 만들어진 서원을 혁파하였고 양전 사업을 실시하고 은결을 색출해 내는 것으로 전정을 개혁했다. 또한 군정을 개혁하기 위해 사람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집을 기준으로 하는 호포제를 실시한다. 이에 양반들은 반발했지만 흥선 대원군은 의견을 관철시켰고, 이에 걷히는 세금이 확연히 늘어났다. 또한 이전까지 관에서 곡식을 빌려준다는 명목 하에 수령과 아전들의 돈벌이 구실이 되었던 환곡제를 폐지하고 지역의 덕망 있는 양반이 곡식을 빌려주게 하는 사창제를 실시하게 했다.

이전까지 집권하고 있던 세도정치가들도 몰아내야 했는데, 비변사를 폐지하고 의정부와 삼군부를 부활시키는 것으로 그것을 이루어냈다. 의정부와 삼군부는 모두 왕과 직결되는 권력 기관이었기 때문에 왕권은 강화되었고, 세도가문의 세력은 상당히 약화되었다. 또한 '대전회통', '육전조례' 등을 펴면서 법제도 바로잡았다.

그리고 병인양요 신미양요등으로 외세의 침입을 격퇴하고 척화비를 세우는등 쇄국을 유지하였다.

허나 경복궁의 무리한건축과 당백전을 지나치게 많이 찍어내 백성들의 반발을 일으켰고 고종이 성인이 되어 그런 고종을 부추긴 민비의 계략에 의해 권력에서 쫒겨나고 그가 세운 개혁은 빛을 보지 못한채 결국 조선은 망국으로 흐르게 된다.







9. 김옥균

갑신정변의 주동자이며 한국사의 풍운아

민씨일가를 몰아내고 조선의 개혁을 이루기위해 갑신정변을 일으킨다.
갑신정변을 일으켜 민씨 일가를 죽인후 김옥균을 중심으로한 개화파들은 각국에게 신정부의 수립을 통고하는 한편, 신 정부를 구성하고 혁신정강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14개 항목을 내세웠다.

하지만 민비는 위안스카이에게 도움을 청했고 곧 중국의 군대가 쳐들어오자 믿었던 일본이 배신을 때리고 도망을 가 결국 갑신정변은 삼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이후 김옥균은 일본으로 망명하여 재기를 꿈꿨으나 같은 조선인 홍종우에게 암살당한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아마돌이
13/03/23 12:19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그런데 민비라는 호칭은 적절하지 않은 걸로 압니다. 명성황후로 수정 해주세요. 혹시 제가 잘못알고 있는거라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더 좋고요 ^^;
장구레
13/03/23 12:25
수정 아이콘
살아있었을때 불렸던 칭호중 가장 존귀한 칭호로 불러주는 게 맞겠죠
13/03/23 12:28
수정 아이콘
http://58.120.96.219/pb/pb.php?id=freedom&no=27078
'적절하지 않은 = 부적절한' 호칭은 아닙니다.
순두부
13/03/23 12:32
수정 아이콘
민비가 부적절한 호칭은 아닙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선 명성황후를 민비라 표기하고 있고 2007년 개정교육과정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에선 민비란 용어를 사용한다.
-엔하위키 펌-
레지엔
13/03/23 12:34
수정 아이콘
민비가 비칭이 아님은 이미 수많은 인터넷 사이트에 정보가 돌아다니니 검색해보시길 바랍니다.
아마돌이
13/03/23 12:37
수정 아이콘
딱히 얕잡아 말하는 호칭은 아니므로 문제될 것은 없다는 말이군요. 알려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어린시절로망임창정용
13/03/23 12:50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론 민자영은 민비라는 호칭마저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13/03/23 12:57
수정 아이콘
동감입니다. 대원군은 적어도 공과 과가 병존하기라도 하지, 민자영이 대체 뭘 했길래 이렇게 인기가 좋은지 모르겠어요.
저도 왕년에 뮤지컬 명성황후 보면서 주먹 불끈 쥐고 일본놈들 XX 하던 어린이였지만, 나중에 역사를 조금씩 파고 들어갈 때마다 튀어나오는 민자영의 행각이란 원. 그 죽음이 그토록 극적이지 않았더라면 애당초 뮤지컬 같은 게 나올 수조차 없었겠지요.
nokjung777
13/03/23 13:00
수정 아이콘
민자영의 인기는 이미연 때문이죠~흐흐
sisipipi
13/03/23 13:31
수정 아이콘
표범 카펫은 레전드죠...;;
달리자달리자
13/03/24 02:51
수정 아이콘
이미연이 한 사람의 평가를 바꿔놨죠. 내가 조선의 국모다 라는 가상의 연기를 그렇게 잘 소화할줄이야. 뮤직비디오 보면서 감탄했던 기억이.
nokjung777
13/03/23 12:52
수정 아이콘
세도정치 기간동안 외척들의 미친짓거리를 목격한 흥선대원군은 며느리를 고를때 일부러 신경써서 아버지가 없는 민자영을 선정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민자영이 혼자서 100명의 외척보다 더해먹을거라고는 미처 몰랐겠지요...
마스터충달
13/03/23 19:55
수정 아이콘
도대체 명성황후가 무슨 짓을 했던거죠? 방송이나 뮤지컬의 이미지와 댓글의 평가가 너무나 다른 것 같은데;;
13/03/23 20:08
수정 아이콘
온갖 외세를 다 끌어들였죠.
국민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청나라를 끌어들여 내정간섭을 하게 만들더니, 간섭이 심해지자 러시아를 끌어들여 우리나라를 전쟁터로 만들었죠.
인기있는 이유는 일본인에게 죽었다는거하고 이미연씨 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Grateful Days~
13/03/23 22:32
수정 아이콘
이이제이 쌍X특집을 들으시면 잘 아실듯.
장구레
13/03/23 12:23
수정 아이콘
사회 체제 시스템의 개선이 개혁이라고 했을때 조선시대 최고의 개혁가는 정도전이라고 생각해요
조선의 설계자라는 별칭이 아깝지 않죠
반면에 정조는 분명히 훌륭한 임금이 맞지만
추진했던 준론탕평과 왕권강화책이 올바른 방향이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흐흐
레지엔
13/03/23 12:39
수정 아이콘
이이의 사회개혁론에 대해서는 선조수정실록의 십만양병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형이상학적, 혹은 뜬 구름 잡는 소리로 치환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백성이 잘살면 나라가 부유해지고 그러면 군대도 세진다'를 못 벗어난 얘기기도 하고...
하야로비
13/03/23 13:12
수정 아이콘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양병 이전에 양민'을 내세운 것은 맞지만, 실제 율곡은 '양민'을 위한 굉장히 자세한 개혁정책을 제시했습니다. 세제 개혁(수미법-대동법의 전신-주장, 군포제도 개선), 서얼 발탁, 정부조직 및 인사 시스템 개편, 군인 생활 보장 등등. 굉장히 현실적이고 적용 가능한 개혁안들을 제시했고 실제로 추진할려고 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뜬구름 잡는 소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순두부
13/03/23 13:20
수정 아이콘
단순히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 상당히 세세하고 구체적으로 개혁안들을 제시했었습니다.

다만 선조가 잘 받아주지 않았고 붕당이 시작되면서 흐지부지된거죠
레지엔
13/03/23 13:23
수정 아이콘
군포제 개선은 여러 사람에게서 여러 차례에 걸쳐 문제 제기가 되었으니 이이의 특별함을 보이기 어렵고, 기타 다른 부분의 경우 현대적 감각으로 봤을때에 현실적이라는 것이지 당대에는 큰 설득력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개혁안의 세부 내용이 부족해서 형이상학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이걸 현실화할 수 없어서 검증의 대상이 되지도 못한다는 점에서 형이상학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저 개혁안들 상당수가 결과적으로 후기로 갈수록 조선시대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점에서도 방향성 이외의 선구자적 면을 찾기 어렵죠. '저게 다 받아들여졌으면 어땠을까'라는 가정에서 '이상적으로 굴러갔다면' 좋았을 것이다밖에는 할 말이 없다는 점에서도 '개혁가' 이이는 지극히 뜬 구름같은 존재가 되고요.
13/03/23 13:30
수정 아이콘
이이의 개혁론은 그렇게 단순히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당대에 설득력을 가지지 못했다는 건 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고요.
실제 조선 후기의 대부분 개혁은 율곡 이이에서 시작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_king.jsp?tid=knb&pos=0&mTree=0&inResult=0&indextype=1&keyword=%EB%A7%8C%EC%96%B8%EC%86%8C
레지엔
13/03/23 13:35
수정 아이콘
이이가 지적한 모순점이 실제로 이이의 정책에 기반한 온전한 해결로 이어질 수 있었냐 자체에 대해서 동의하지 못하므로 세번째 문장에 동의할 수가 없네요.
13/03/23 13:38
수정 아이콘
세상에 온전한 해결이라는 게 어딨나요.
당연히 모든 개혁엔 그 정도에 따른 충돌이 생기고 절충안으로 타협하는 것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죠.

현대나 과거를 통틀어 온전한 해결로 이어진 개혁이 하나라도 있는지가 전 더 궁금하네요.
레지엔
13/03/23 13:42
수정 아이콘
저기서 온전한 해결이라 함은 후대로 넘어간 후의 그 과제가 더이상 유의미한 사회적 과제가 아니게 되었을때, 그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방안을 제시한 것이 어떠한 선구자의 주장에서 기인하느냐를 이야기합니다. 즉 제가 보는 이이의 개혁안은 '좋을 수도 있었지만 된 게 없고 저 방안이 최적의 해결안이라고 결론날만한 후대의 변화도 명확하지 않으므로, 본인이 담았던 선한 의지나 좋은 기획과는 별개로 일정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입니다. 단, 대동법에 연관된 부분에서는 의견을 보류하겠습니다. 제 의견의 틀린 점이 있는 것 같아서.
순두부
13/03/23 13:47
수정 아이콘
대동법하나만으로도 이이의 개혁안이 후대에 변화를 준게 명확합니다.

수미법 하나가 이이의 개혁안중 가장 큰부분중 하난데 이걸 제외하고 이이는 최적의 해결안도 제시못하고 후대의 변화도 명확히주지못했다라고 하는건 말이 안되는 소리 아닐까요?

왜 핵심을 빼고 한 인물의 개혁안을 평가합니까?
레지엔
13/03/23 13:48
수정 아이콘
아래에 단 리플로 갈음합니다.
13/03/23 13:48
수정 아이콘
개혁이란 건 당장에 무언가를 시행해야하는 것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율곡 이이의 개혁론은 현 시대에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제시함과 동시에
사회적 환기를 불어넣어 주었으며, 후대를 양성 해 그것을 실현할 기반을 갖췄죠.
이걸 개혁이라 보느냐 아니라 보느냐는 각자 선택에 따른 것으로 님은 아니라 보는 거군요.

그런데 좋을 수도 있지만 된 게 없고, 최적의 해결안이라고 결론날만한 후대의 변화도 명확하지 않은 건
이이 뿐 아니라 저 위에 적인 모든 인물들의 공통된 특징입니다.
님이 주장하시는 문제는 딱히 이이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죠.
레지엔
13/03/23 13:52
수정 아이콘
그래서 아래에 다른 리플에도 달았지만 '모든 실패한 개혁가는 거품의 요소가 있다'라는 이야기를 한 거죠. 생각치도 못하게 제 리플이 논쟁을 불러일으킨 건 아마 저 말에 부정적인 뉘앙스(이이는 별 거 아니다)가 읽힐 수 있어서인 것 같은데, 그런 건 아닙니다. 이이는 충분히 대단한 사람이며 그 시대의 문제점을 지적해서 다음 세대로 넘겼다는 점에서 충분한 의의를 가진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왜 그가 '실패한' 개혁가일 수 밖에 없는가, 그 지점에서의 이야기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이이만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아닙니다. 제가 리플에서 이이'만' 언급했을 뿐인거죠.
13/03/23 13:53
수정 아이콘
ㅡㅡ;;;;

더 이상 할 말이 없네요.
레지엔
13/03/23 13:54
수정 아이콘
뭐 저도 더 할 말이 없네요. 수고하세요.
순두부
13/03/23 13:58
수정 아이콘
그 실패한 개혁가라는 이유로 이이가 뜬구름잡는 형이상학적인 소리를 햇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후에 영향을 미친게 없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니 반박이 나오는거죠

이이는 절때 뜬구름잡는 개혁을 주장한적이 없으며
이이의 개혁은 후에 조선시대 개혁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순두부
13/03/23 13:33
수정 아이콘
사후 조선에서 거론된 수많은 정책과 개혁론은 이이의 사상과 정책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당대에는 당연히 기득권의 저항이 심했기에 설득이 안되었던것뿐이지 절대 뜬구름 잡는 형이상학적 이야기만 이이가 늘어놓은게 아니죠

그의 경장에는 대동법의 전신인 수미법, 세제개혁 등 여러 개혁이 있었으며 수미법은 후에 김육의 대동법으로 실현이 되죠.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주로 그 내용이 어떤 구체적인 실천방안이나 행동지침이 없을때 주로 하는 이야기인데 이이의 주장은 그것과는 전혀 상반됩니다. 이이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내놨어요. 그게 당대에 실현되지 않았다고 해서 이이의 주장을 뜬구름잡는 이야기라고 해서는 곤란하죠
레지엔
13/03/23 13:38
수정 아이콘
대동법과 수미법의 사례는 제 의견에 반하는 사례라고 봅니다만, 세제개혁, 정부조직 개편, 군사조직 개편의 틀에 있어서 이이의 개혁의 방향이 후대로 이어져서 필연적인 결과로 이어졌는가에 대해 동의하지 못합니다. 뜬 구름 잡는다는 표현은 제가 잘 못 썼다고 봐도 좋고, 여기에서 제가 지적하고 싶었던 것은 계획의 디테일함이 서술되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당면 문제의 해결방안의 실효성의 문제입니다. 당대에 실현되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실현될 수 밖에 없는 과제와 그 답안이 기술되었느냐 아니냐를 이야기하는 거고요.
13/03/23 13:42
수정 아이콘
대체 이게 무슨 소린지......
레지엔
13/03/23 13:43
수정 아이콘
위에 단 리플로 갈음합니다. 그래도 모르시면 저도 더 설명할 도리가 없네요.
순두부
13/03/23 13:45
수정 아이콘
수미법 하나만으로도 이이가 절대 뜬구름 잡는 형이상학적인 의견만 내놓은 인물이라는건 부정되는 걸 텐데요

다른 개혁안이 결국 기득권에 반대에의해 막혔다라고 해도 그게 이이의 개혁안이 계획의 디테일함이 없었다 당면문제의 해결방안의 실효성이 없었다 라는 걸 의미하는게 아닙니다.

충분히 이이의 개혁안은 디테일햇고 당대 문제를 해결 할 실효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레지엔
13/03/23 13:48
수정 아이콘
형이상학적인 의견'만' 내놓는 인물이라고까지 폄하한 바 없습니다. 순두부님이 절 그렇게 보신 거고, 저는 그 시각에도 동의안하고요. 대동법에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 제가 제 주장의 잘못이 있음을 인정한 것은 '시대환경 변화에 따른 필연성'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음에 대한 부분이고요.
또한 당대의 반대로 좌초되었다라는 이야기 역시 제가 하는 이야기와는 논점이 다릅니다. 디테일했냐 아니냐 역시 관계없음을 다른 리플에서 밝혔고요. 뭐 제대로 이해가 안되게 쓴 제 잘못이기도 합니다만 순두부님과의 논쟁 자체가 성립되기가 어렵네요 이건-_-;
순두부
13/03/23 13:54
수정 아이콘
이이의 사회개혁론에 대해서는 선조수정실록의 십만양병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형이상학적, 혹은 뜬 구름 잡는 소리로 치환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백성이 잘살면 나라가 부유해지고 그러면 군대도 세진다'를 못 벗어난 얘기기도 하고...


님의 첫글을 볼까요

이이의 사회개혁론을 가지고 형이상학적, 혹은 뜬 구름 잡는 소리로 치환한건 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이유로 현실에 실현이 되지 않았다, 후에 계승되지 못했다 라고 하셨는데 이건 제가 이미 대동법으로 반박을 해드린부분이구요.

님이 그렇게 쓰셨으니 저뿐만 아니라 여기계신 많은 분들이 님이 이이의 사회개혁론은 형이상학적인 이야기이다 라고 말한다고 생각하는거죠
나이트해머
13/03/23 20:59
수정 아이콘
애초에 율곡 이이는 스스로 경장을 외치던 실무적 개혁가의 성향을 그 누구보다 강하게 가지고 있었고, 이건 당대에도, 후대에도 모두 인정하는 바였는데 뜬구름잡는 소리라니, 율곡 이이에 대해서 전혀 모르신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겠는데요.

유형원이 당시의 실무적 개혁 및 필요한 개혁론을 쭉 검토 분석한 결과 대부분이 이이에게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은 알고나 있습니까.
윗 리플로 갈음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셨으면 하네요.
nokjung777
13/03/23 13:37
수정 아이콘
개혁안들 상당수가 결과적으로 후기로 갈수록 조선시대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던 건 아니지 않나요? 수미법은 대동법으로 실현되었고 서얼발탁도 정조때 행해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백성들의 삶을 위한 개혁은 아니었지만 양인개병제가 무너지면서 군포제도 개선이나 군인생활보장 등도 결과적으로 이루어졌구요.
레지엔
13/03/23 13:40
수정 아이콘
대동법 부분은 위의 다른 리플에서 이야기했듯 제 주장에 반례이니 넘어가고(인정한다는 얘기입니다), 세제개혁, 정부조직 개편, 군사조직 개편의 틀에 있어서 이이의 개혁안이 후기 조선으로 넘어가는 필연성을 제공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13/03/23 13:49
수정 아이콘
후기 조선으로 넘어가는 필연성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게 대체 무슨 의미인가요.
레지엔
13/03/23 13:50
수정 아이콘
'실학의 한계'와 비슷한 관점입니다.
13/03/23 13:50
수정 아이콘
더 이해가 안 되네요.
레지엔
13/03/23 13:53
수정 아이콘
위쪽에 단 다른 리플로 갈음합니다.
순두부
13/03/23 14:01
수정 아이콘
위쪽에 단 리플이 한두개가 아닌데... ;;;
순두부
13/03/23 13:52
수정 아이콘
대동법 자체가 이이의 개혁안중 가장 큰 부분중에 하나입니다.
그걸 제외하고 이이의 개혁안을 평가하는건 말이 안되는거죠.

그리고 대동법 자체가 세제개혁이에요.
레지엔
13/03/23 13:53
수정 아이콘
다른 리플로 갈음한다고 여러 차례 달았는데 안보시는 것 같군요. 그럼 저도 그냥 더 안보겠습니다.
순두부
13/03/23 13:55
수정 아이콘
여러번 봤습니다. 뭐 계속 위로 갈음한다 아래로 갈음한다 이러시는데

일일이 다 봤어요. 여기서도 갈음 저기서도 갈음...

이미 대동법 자체가 세제개혁인데 대동법은 인정하는데 세제개혁은 인정안한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nokjung777
13/03/23 13:59
수정 아이콘
주장하시는 내용이 글을 적을수록 추가되거나 누락되는 느낌입니다. 처음에는 분명히 결과적으로 실현되지 않아서 선구자적인 면을 찾기 힘들다고 하셨는데, 결과적으로 실현되었다는 점이 밝혀지니까 결과적으로 실현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필연성이 있어야 한다?
순두부
13/03/23 14:02
수정 아이콘
저도 그렇게 느껴집니다.

자꾸 자신이 말씀하시는게 계속 상황에 따라 바뀐다는 느낌
레지엔
13/03/23 14:09
수정 아이콘
결과적으로 실현되었다라는 것이 어차피 온전한 모습 그대로 될 수는 없는 것이고, 그 해결책의 직접적인 연장선, 그러니까 '필연성'이 있었느냐 아니냐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쪽이 원래 했던 주장에 더 가까운 이야기인데 처음 리플은 단순히 감상에 가깝게 적다보니 전달에 상당한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부분 사과드리는 바입니다.
nokjung777
13/03/23 14:35
수정 아이콘
아무리 보고 또보고 다시 봐도... 말씀하시는 '필연성'이 무엇을 뜻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네요.
순두부
13/03/23 13:37
수정 아이콘
그냥 간단히 대동법 하나만 가지고도 이이가 상당히 현실적이고 꼭 필요한 주장을 한것을 알수 있죠




공물변통론을 처음으로 시작한 율곡 이이는 '동호문답'에서 '지금 아전들은 대개 봉급이 없다. 아전들이 뇌물 받는 것을 마땅히 근절해야겠지만, 경작을 대신할만한 생활 자료를 주어야만 한다' 고 하여 이러한 가렴추구에 대해 단순히 엄정한 감시만이 해답이 아닌, 제도적 진단과 대안을 내놓아야 함을 지적한 바가 있다.

선조 치세 중 임란 이전 시기는 본격적으로 중앙정부 내에서도 공물변통의 논의가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로 여겨진다. 이러한 개혁 논의에 앞장선 것은 율곡 이이였다.

율곡 이이는 선조 즉위 초인 1569년(선조 2년)에 이미 <동호문답>을 올리며 방납의 폐단을 지적하고 이를 개혁하기 위해 수미법을 시행할 것을 건의하며 수미법 시행을 위해 공안을 개혁할 것을 건의하면서 이러한 공물 변통 논의를 본격적으로 제기하였다.

이러한 건의를 계기로 선조 3년 11월 이 시기의 영의정인 이준경의 건의로 정공도감을 설치해 공납의 균등화를 시도했으나 조정 대신들은 이에 미온적 태도를 보였고, 결국 2년을 채 못버티고 혁파되었다.

선조 대의 공납개정 논란은 그 논의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작은 편은 아니다. 실제로 조선 후기 공납개정에 관한 논의의 기본 틀이 만들어진 것이 선조대였다.
레지엔
13/03/23 13:39
수정 아이콘
위의 리플로 갈음합니다.
순두부
13/03/23 13:56
수정 아이콘
제발 그만 갈음하세요..
위에 님 리플이 한두개인줄 아시나요... 그냥 이 의견에 대해 반박을 하시던지 하지
레지엔
13/03/23 13:59
수정 아이콘
했던 얘기 붙이는 거 싫어해서요. 그리고 뭐 더 할 얘기가 많긴 한데 순두부님께서 제대로 안보셨다고 판단했고(뭐 보셨다고 하긴 했습니다만), 그래서 더 이야기할 필요성이 없다라는 의견을 타 리플에서 밝혀서 추가적인 반론을 하지 않습니다. 이 리플을 단 건 제가 '무책임하다'라는 소리를 듣는게 싫어서 달 뿐입니다.
순두부
13/03/23 14:01
수정 아이콘
논쟁에서 가장 무책임한게 제 댓글 보세요 제 옛글 보세요 라는겁니다.

어떤 글이 내 주장에 반박이 되는지 그걸 일일이 찾아야 한다는건데 그렇게 찾아도 상대의 생각과 다른경우가 충분하죠.
그냥 본인이 내 의견은 이렇다 라고 밝히는게 가장 낫지 남보고 찾으라라는건 제대로 된 논쟁에 전혀 도움이 되지못합니다.
레지엔
13/03/23 14:04
수정 아이콘
논쟁에서 뭐가 도움되느냐 아니냐를 순두부님께 딱히 들을 이유도 없고, 충분한 의견 제시를 했으나 여러 차례 제 주장에 대한 곡해랄까 잘못된 이해랄까 다른 해석이랄까...하여튼 의도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셔서 더 대화상대로 적합하지 않다고 보고 그걸 말씀드린 겁니다. 무책임하다고 비난하신다면야 그건 자유입니다만, 이미 이 시점에서 논쟁이 아니라 감정싸움이니 더 이야기할 바도 없네요.
순두부
13/03/23 14:09
수정 아이콘
그 충분한 의견제시에 충분히 반박을 해드렸는데

계속 갈음 갈음 하시면서 댓글 갈음하라고 하는건 예의가 아니죠 그냥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는거죠.
거기서부터 이미 님이 논쟁에 대한 예의를 어긴거죠.

자신의 주장이 곡해되었다고생각하면 그에 대해 반론을 하면 되는데 갈음... 갈음...
그게 무책임하다는겁니다.
nokjung777
13/03/23 14:01
수정 아이콘
그냥 갈음한다는게 더 무책임해 보이는데요. 레지엔님이 이이에 대해 주장하시는 것처럼 형이상학적인 말로만 풀어가시지 마시고 알아듣기 쉽게 풀어서 써주시면 안될까요
13/03/23 14:16
수정 아이콘
제 생각을 그대로 이야기 해주셨네요.
진짜 형이상학적인 건 이이가 아니라 레지엔님이죠.
13/03/24 01:57
수정 아이콘
네, 너무 형이상학적이에요...
절름발이이리
13/03/23 12:49
수정 아이콘
조광조는 거품이죠.
레지엔
13/03/23 13:07
수정 아이콘
실패한 개혁가 중에 거품이 아닌 경우는 없죠.
13/03/23 13:13
수정 아이콘
당대에 개혁을 실패해 조광조가 거품이면 최치원, 충선왕, 공민왕, 이이도 거품입니다.
특히 이이는 당대에 대체 뭘 했는지도 모르겠다 싶죠.

김옥균은 저기에 낄 레벨도 아니라 생각되고요.
절름발이이리
13/03/23 14:42
수정 아이콘
실패해서 거품이란 게 아니라, 하려한 게 별로 개혁적인 것이라 보지 않아서..
13/03/23 14:45
수정 아이콘
조광조에 대해서는 저도 이리님 의견에 공감합니다.

특히 군사문제 등에 대해서는 순진할 정도로 반동적(?)인 면을 보여줬던 것이 조광조였던지라.....
13/03/23 15:07
수정 아이콘
군사적 문제야 이해의 부재로 치부한다 하더라도
조광조 개혁에서 솔직히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것이 현량과 실시를 주장한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건 성리학적 이념을 역행하는 듯한 모습인지라.
13/03/23 15:05
수정 아이콘
당시 시대정신이라 볼 수 있었던 성리학 질서의 확립을 개혁으로 보느냐 안 보느냐의 관점이겠죠.

현대 민주주의의 확립을 개혁으로 보느냐 안 보느냐 처럼.
절름발이이리
13/03/23 15:38
수정 아이콘
성리학 질서 성립이 시대정신이던건 조선초죠.
13/03/23 15:47
수정 아이콘
하지만 훈구파의 득세로 퇴보해버렸죠. 조광조은 그걸 바로 잡으려 했던 거고요.

그리고 의외로 성리학 질서 확립과 적용은 선조때야 가야 제대로 이루어집니다. 성리학에 관한 정리야 세종 때 완성이 됐다해도 무리가 아니지만 성종 때 소학이 유행한 것만 봐도 무엇을 이해하느냐와 그걸 현실이 적용하느냐는 별개이 문제입니다.

조광조는 훈구파를 제거함으로써 왜곡된 성리학 이념을 바로 잡음과 동시에 여러 개혁을 통해 그걸 현실에 적용하려 한 거라 봅니다.
nokjung777
13/03/23 15:57
수정 아이콘
조선초의 시대정신은 부국강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초기에 정권을 잡았던 관학파에게는 제1목표가 부국강병이었고 그 수단이 성리학이었지만, 세조를 기점으로 관학파가 훈구파로 변질되었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사림이 내세웠던 것이 정통성리학의 정립이었지요.
13/03/23 16:29
수정 아이콘
저 역시 조광조가 뭘 하려고 했는지 자체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우리 파의 세상을 만들자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보는데 말이죠.
사림이니 정통 성리학이니 하는데 당장 남곤부터도 당시 사림출신 거물 중 하나였죠. 조광조의 패가 아니었을 뿐이지.
13/03/23 16:58
수정 아이콘
조광조는 개혁을 한 게 아니라 사림을 싸고 돈 것다. 그것도 자기파만..
그런 이야기가 좀 나오는 거 같은데, 정도전의 개혁도 그런 관점이면 크게 다르지 않죠.

불교는 무조건 나쁜 것. 성리학이 짱.
권문세족 죽일 놈들, 동시에 사대부 세상을 만들자는 것.
즉, 자신의 세상을 만들자는 것뿐이 안 되죠.

사실 그가 등진 이색은 정도전의 스승이고 정몽주는 동문이었죠. 모두 성리학의 거물들입니다.
그런데 정도전이 그들과 등지자마자 바로 비판을 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개혁가가 무조건 완전무구한 선의와 대의에 의해서만 개혁을 시도한다는 건 아니죠.
이해관계가 안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니 당연한 부분이라 봅니다.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이지 성인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절름발이이리
13/03/23 22:22
수정 아이콘
정도전의 개혁을 성리학적 질서짜기로 한정짓는 건 지나친 폄하지요. 성리학을 완전히 빼고 봐도 정도전은 손에 꼽을만한 개혁가입니다.
제가 조광조의 개혁을 개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성리학적 질서란 것이 시대정신이라고 보지도 않거니와, 그걸 빼면 더욱이 컨텐츠가 없기 때문입니다.
nokjung777
13/03/23 22:29
수정 아이콘
정도전이 성리학만을 신봉하고 사대부들만의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개혁을 추구했다고 생각하신다면 오해하고 계신겁니다.
성리학을 절대화하고 그 중에서도 주자를 울트라짱으로 추대했던 건 조선중기 이후의 사림들이었죠.
조선을 건국했던 정도전을 비롯한 관학파들은 부국강병을 위한 수단으로 성리학을 활용했을 뿐입니다. 정도전의 정책이나 출신을 생각해보면 틀에 박힌 신분제에 집중했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13/03/23 22:59
수정 아이콘
당연히 우리 파의 세상을 만들자는 것 자체는 나쁘게 볼 일이 아니지만, 그래서 조광조가 가진 계획이 뭐였느냐는 말이죠.
정도전이야 정치사회경제 전분야적으로 아예 국가의 체제 자체를 바꿔놓은 사람이고,
이이만 봐도 성리학을 넘어 나라를 어떻게 바꿔나가겠다는 구상이 있었습니다.

근데 조광조가 내세운 게 성리학적 질서를 세우자.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기존 정치인사들을 몰아내고 대신 우리 패가
대거 중앙정치권에 진출해서 싹 물갈이를 하자. 라는 구호 빼고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는거죠.
이 정도 구상을 개혁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빈약하잖습니까. 사실 조광조보단 차라리 김육이 더 어울려보여요.
꺼뱅뱅
13/03/24 04:30
수정 아이콘
조광조는 거품이죠(2)

사대부 입장에서나 개혁이지, 어떤 병폐를 타파해서 현실을 더 낫게 만들었다는 건지...
우리 세대 입장에서도 이 분을 개혁가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13/03/23 13:17
수정 아이콘
이이가 과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긴 했지만 보통 정약용을 조선 최고의 천재로 꼽지 않나요?
13/03/23 13:19
수정 아이콘
이이는 스페셜리스트, 정약용은 멀티플레이어..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특히 과거시험 성적만 보면 이이 성적이야 이미 유명하지만,
정약용은 차석밖에(?) 못했죠.
13/03/23 14:44
수정 아이콘
천재의 기준을 다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같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면에선 정약용이 원탑 아닌가 하지만, 언급하신 대로 막상 중요관직에서 실무에 많은 시간을 쏟은 다른 천재급 인물들과 비교했을 때 자유로운 환경의 수혜(?)를 받기도 했고... 결국 평가는 다면적으로 해야 되는데 국사에는 어두워서 잘 아시는 분들의 중론이 어떤가 궁금했습니다.
레빈슨
13/03/23 14:51
수정 아이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정말 너무 자연스럽게 읽고 넘어갔는데
뭔가 찝찝해서 다시 봤어요 크크
다빈치..말씀하시는거죠?
순두부
13/03/23 14:58
수정 아이콘
레빈슨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폭이 넓고 다방면으로 연기할수 있긴하죠 [m]
13/03/23 18:10
수정 아이콘
으앜크크 네... 다빈치요... 리어날도 디캐프리오 말구요... 말 할때만 뻘소리 나오는줄 알았더니 글 쓸때도 이럴 때가 있네요 허허
13/03/23 13:56
수정 아이콘
다산을 참 좋아하지만,
회사에서 잘리는 바람에 그에게는 시간이 좀 많이 있었다는 점도 고려는 해야겠죠.
물론 백수로 놀고먹지 않고 그 시간에 저술활동을, 그것도 엄청나게 했다는 면에서 이미 GG......
13/03/23 14:00
수정 아이콘
천도책이 조선 최고의 대책으로 꼽히고 있죠.

개인적으로는

다산 선생의 능력이 더 부럽긴 합니다만...
켈로그김
13/03/23 13:53
수정 아이콘
...서태지?
王天君
13/03/24 19:47
수정 아이콘
한표 더
13/03/23 14:00
수정 아이콘
개혁을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게, 실패한 개혁가. 불완전한 개혁가.
이런 이야기를 하지만, 역사상 성공한 개혁가, 완전한 개혁가라는 건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보이는 게 있다면 그건 그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아주 단순화해 본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모든 개혁가는 일정부분 실패나 불완전함, 혹은 현실과의 타협,
그것도 아니면 당대엔 완전히 실패하고 아무런 영향력을 보이지 못했지만,
그것이 후대에 영향을 미쳐 아주 나중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등의 모습을 보입니다.

사회라는 서로 각기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를 가진 인간들의 모임에서
완벽한 개혁이란 건 당연히 존재할 수 없고 그런 불완전한 발전 속에서 나아가는 게 기본 모습이죠.
가끔 보면 역사를 현실이 아닌 무슨 상상속 이데아로 착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현대 시각으로 보니 생기는 문제인 거 같은데 역사란 과거의 현실입니다.
현재와 다를 게 하나도 없는 세상이라는 거죠.
레지엔
13/03/23 14:02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 논리를 대부분 공감합니다만 그래도 실패한 개혁가라는 평가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봅니다. 딱히 현대 시각으로 본 건지도 의문이고. 오히려 이 리플은 모든 개혁가는 높이 평가받아야만 하며 이론은 제기할 수 없다는 리플로 보이네요.
13/03/23 14:03
수정 아이콘
님이 오해하기 쉬운 소리로 필요 이상으로 깍아 내리는 모습을 보인 건 생각 못하시나보네요.
레지엔
13/03/23 14:05
수정 아이콘
깎아내린 적도 없고 그렇게 보일 수 있겠다 싶어서 아예 '이이가 대단한 사람임은 부정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했죠. 그럼에서 깎아내린 거라고 보신다면 논쟁과 전혀 무관한 폄하이니 더 드릴 말씀이 없네요.
sisipipi
13/03/23 14:08
수정 아이콘
레지엔님 잠시 쉬셨다가 다시 한번 자기가 쓴 리플을 다시 찬찬히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제3자가 봤을 때 이건 무슨 소린가? 황당하게 느껴지네요.
레지엔
13/03/23 14:10
수정 아이콘
첫 리플이 감상에 가깝게 적힌 것이라 충분한 전달이 못된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사과드립니다.
13/03/23 14:08
수정 아이콘
논쟁이 실컷 된 후 이이는 대단하다라는 한 마디 해놓곤 난 그런 의도가 아니다?라는 말만큼 무책임한 게 없죠.

저는 궁예가 아니라 관심법을 익히지 못했기에 님이 쓴 글만으로만 님의 생각을 이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님의 첫 리플과 두 번째 리플을 다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레지엔
13/03/23 14:11
수정 아이콘
첫 리플이 감상에 가깝게 적힌 것이라 충분한 전달이 못된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사과드립니다. 그와는 별개로 논쟁 자체에 대해서는 제가 질 수 있는 책임을 충분히 졌고(애초에 논쟁이 잘못된 행위도 아니고), 고로 무책임하다는 폄하에는 수긍해드릴 수가 없네요.
nokjung777
13/03/23 14:09
수정 아이콘
주장하시는 의견에 일관성이 없어요.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앞서 주장한 내용에 살을 붙였다가 다시 줄였다가 하는 모습입니다. 쓰신 리플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세요.
레지엔
13/03/23 14:10
수정 아이콘
첫 리플이 감상에 가깝게 적힌 것이라 충분한 전달이 못된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사과드립니다.
순두부
13/03/23 14:10
수정 아이콘
님의 첫리플 다시 읽어보세요

본인의 리플을 갈음하셔야 할분은 여기계신 다른 분들이 아니라 님이십니다.

'이이의 사회개혁론에 대해서는 선조수정실록의 십만양병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형이상학적, 혹은 뜬 구름 잡는 소리로 치환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
순두부
13/03/23 14:04
수정 아이콘
위에 쓴 제 댓글로 갈음합니다.






가 아니고

실패한 개혁가라고 평가할수 있으나 개혁안이 평가이유가 형이상학적인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 후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라면 그건 잘못된 이유죠.
이이의 개혁안은 충분히 현실적이었고 구체적이었으며 이이의 개혁은 후에 조선시대 개혁에 큰 영향을 주었으니까요
13/03/23 14:24
수정 아이콘
레지엔님의 논지가 옳고 그름을 떠나서, 공론장에서의 논의 중, 타 회원의 질의를 "....의 댓글로 갈음한다."로 답변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은 적절한 태도라 할 수 없습니다. 상대의 질문이 구체적이라면 답변 역시 구체적이어야 하는 것이 토론과정에서의 최소한의 책임입니다.

1) "위, 혹은 아래의 댓글로 대답을 갈음한다."라고 말씀하신들, 댓글에서 지칭된 위, 혹은 아래에 수록된 댓글이 무엇인지 회원들은 알 수 없으며,
2) 한번의 질의가 반복될 때마다 회원들이 모든 댓글을 열람해야 하는 비대칭적인 불편함을 강요하며,
3) "이미 기존의 댓글을 납득하지 못했기에" 논의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지난 댓글을 참고할 것만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회원들의 문제제기에 대한 경시마저 담겨 있습니다.

간단히 예를 들어서, 청와대 기자회견에서 대변인이 기자의 질문에 "XX년 X월 X일의 속기록을 참조하라."고 답변한다면, 혹은 100분토론에서 패널이 상대의 질문에 "방송시간 5분째에 했던 발언으로 대신하겠다."라고 대답한다면 어떨까요? 답변이 옳고 그름과는 별개로 난리가 날 것입니다.
레지엔
13/03/23 14:27
수정 아이콘
제가 갈음한다라고 했던 리플은 '그 분에게' '직전에' '다른 추가 리플로' 달았던 경우에 한합니다. 보시는 분이 나중에 보시기에 불편하긴 하겠네요. 죄송합니다 그 부분은. 지속적으로 특정인과만 대화하는 상황이 아니라 이쪽 저쪽에서 같은 분인 같은 내용으로 여러 개의 리플이 달리던 상황이라(당연히 제 반론 역시 같을 수 밖에 없고) 한 번 달았으면 두번째에는 갈음한다고 하고 넘어갔습니다. 귀찮음때문이기도 하겠지요. 다시 한 번 사과드리는 바입니다.
13/03/23 14:32
수정 아이콘
논의에 있어서 "갈음"은 구체적인 설명 대신 기존의 기록을 참고할 것을 독자 혹은 청자에게 강요한다는 점에서, 동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 간에는 쓰이는 단어가 아닙니다. (특히 자신이 존중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는 "갈음하겠다."는 말을 쓸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대 학자의 학술논문이라고 해도 "....의 설명으로 갈음한다."는 말은 함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설명을 제공하는 것은 작자, 혹은 발언자의 책임이기 때문이지요.

"갈음"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것은, 독자나 청자에게 "네가 수고해서 내 지난 의견을 찾아봐라."라고 강요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뿐입니다. 사용 자체가 불평등한 위계를 전제하고 있는 단어이기에 참여자들의 동등성을 전제하는 공론장에서는 여러모로 금기시되는 단어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각종 게시판에서 "갈음"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던 것 같은데 (어감이 멋있나.....) 이것은 전혀 바람직한 추세가 아닙니다.
13/03/23 14:46
수정 아이콘
대신한다고 쓰면 되겠죠. 어감이 그럴듯하긴 합니다. 갈음이 아니라 뿅뿅이나 뚜뚜였으면 쓰이지 않았을 말인 듯 하네요.
레빈슨
13/03/23 14:48
수정 아이콘
위에 단 리플로 뚜뚜하겠습니다.
이거 괜찮은데요..? 흐흫
13/03/23 14:50
수정 아이콘
"대신"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 토론에서는 상대가 물어보면 예전에 했던 말이라도 구체적으로 반복해주는 것이 원칙이라더군요.
눔차래
13/03/23 14:50
수정 아이콘
뿅뿅? 뚜뚜? 잘 몰라서 그런데 신조어 인가요?
13/03/23 14:55
수정 아이콘
저는 어감이 조금 그렇습니다. 'A를 A'로 갈음한다'는 '원래 내용을 대신해서 새로운 내용으로 바꾼다 혹은 대리한다' 정도의 느낌인데, 맥락상 어떤 내용을 부연하고 그 전 내용으로 갈음한다고 하시니까 뭔가 어색하네요.
아하스페르츠
13/03/23 15:10
수정 아이콘
흠... 제가 잘 못 이해한 것이 아니라면,

레지엔님께서는 이이의 개혁론이 당대에서 실현가능하고 설득력 있는 정책이 아니었다라고 말씀하셨고,
다른 분들 께서는 대동법 등의 예로 이이의 개혁론이 실현된 반례를 들었으며,
레지엔님께서는 해당 반례에 대해서는 인정하나, 여전히 군사 정책 등 다른 것들은 당대에 실현가능한 개혁 정책이 아닌 형이상학적인 면이 있다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저같이 식견이 짧은 사람은 어떤 면에서 대동법의 예를 제외한 이이의 다른 정책이 레지엔님의 말씀처럼 현대적 관점에서 보기에 적합할 뿐이지 당대에서는 현실적이지 못한 것이었는 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레지엔님께서 긴 토론을 하시며 주장을 하고 계시기에 그에 대한 설명을 해 주시기를 약간 기대하였고, 다른 분들이 그에 대한 내용을 물어 보시기도 하였으나, 위의 댓글, 아래 댓글로 갈음한다는 말씀으로 정리하고 이해하기엔 충분한 설명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실학의 한계'라는 말로 말씀을 이해하기에는 역시 실학에 대한 제 식견이 부족합니다.

이이의 다른 정책들이 왜 현실적이지 못했는지 구체적으로 자세히 설명해 주시는 것은 앞의 이야기의 반복은 아닌 것 같습니다.
13/03/23 15:13
수정 아이콘
본문에 실패하거나 좌절한 예를 들어주셨는데 반대로 성공하였던 예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태종, 정조 정도밖에 없을라나요... 아니면 신분제 철폐? 미군정 이후의 유상몰수 유상분배?
젊은아빠
13/03/23 15:46
수정 아이콘
김영삼 정부의 금융실명제가...
치코리타
13/03/23 17:12
수정 아이콘
아 댓글에서 터졌어요.
이게 왜 웃긴거죠. 크크.
은하관제
13/03/23 18:17
수정 아이콘
크크크 순간 빵 터졌습니다
중고등학교때 사회 분야에 있어서 꼭 나오는 부분이긴 하죠 크크크
무플방지위원회
13/03/23 19:55
수정 아이콘
가장 큰 개혁은 훈민정음 창제가 아닐까 합니다.
거의 천지개벽급의 개혁이라 생각하네요.
나이트해머
13/03/23 21:05
수정 아이콘
레지엔님의 댓글에 대해, 애초에 백만양병설이 사실이 아니면 형이상학적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첫 댓글에서부터 율곡 이이의 개혁론을 단 하나도 제대로 아시고 계신 것 같지 않다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근거는 윗분들의 여러 리플로 갈음합니다. 아니면 반계 유형원이 반계수록에서 율곡 이이의 개혁론을 다룬 부분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고.
나이트해머
13/03/23 21:09
수정 아이콘
그리고 본문에 대해서는. 대표적인 개혁가로 잠곡 김육이 빠져있다는 점이 좀 아쉽군요.
물론 조선 후기의 국가행정 및 지방통치 개혁은 어떤 개혁가 한두명이 나와서 단기간에 이거이거 저거저거 일일히 풀어낸 결과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의 논의와 시행착오, 수십년에 걸친 지속적이고 꾸준한 정책 변화의 부산물이라 단 한명을 뽑기 참 힘듭니다만, 그래도 그중 한명을 뽑으라면 김육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생각되거든요.
알리스타
13/03/23 22:12
수정 아이콘
김육과 대동법은 정말 배우면 배울수록 '평생의 숙원'이란 단어가 이만큼 어울릴 수가 없겠구나 싶더라구요.
사티레브
13/03/23 22:42
수정 아이콘
조선 자체가 그렇게 굴러가라고 설계한 선대의 영향이 있을테니 그럴수록 윗대의 창립자들이나 나라를 다진 왕과 신하가 대단하네요
Moderato'
13/03/24 01:07
수정 아이콘
저도 김육이 정도전 이후 원탑이라 봅니다. 관료인생을 대동법에 걸었다해도 과언이 어닌 인물이죠.
꺼뱅뱅
13/03/24 04:35
수정 아이콘
아 위대한 김육....
Moderato'
13/03/24 01:13
수정 아이콘
이성무, 이태진 교수님등이 쓰신 '류성룡과 임진왜란'이란 책을 보면 이이의 개혁책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 나오는데요.
보통 10만 양병설은 후대, 송시열 대에 추가된 내용으로 보시더라구요. 이이 당대에 10만이라는 구체적인 수치가 나온 적은 없다네요.
저 책에서는 이이와 류성룡을 대비해서 둘의 현실 개혁정책의 차이를 보여주는데요. 상대적으로 이이는 형이상학적 정책을 주로 폈다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류성룡이 주제인 책인걸 감안해야겠죠.
나이트해머
13/03/24 12:07
수정 아이콘
반계 유형원은 반계수록에서 그때까지 나온 각종 개혁론 및 정책을 비교분석한 후 율곡 이이를 개혁을 추구한 경세가 중 원탑으로 꼽았습니다.
Moderato'
13/03/24 01:17
수정 아이콘
요새는 조광조에 관한 얘기는 거의 없더라구요. 이황마저도 현실성 없는 개혁정책을 펼쳤다고 평가했을 정도니 당대에도 조광조는 너무 이상만을 쫓다 죽었다고 봤던 것 같습니다. 소격서 철폐나 위훈삭제 이런 건 괜찮다고 보는데 현량과가 문제라고 봐요. 이건 정말 사림끼리 해처먹겠다고밖에 안보이거든요.
.Fantasystar.
13/03/24 02:52
수정 아이콘
사실 누가봐도 조광조는 지나치게 현실을 직시하지 않았죠.
그 조광조의 힘은 오로지 중종의 총애 하나뿐이었는데 중종이 변하는 순간이 곧 죽음이었으니..
13/03/24 08:32
수정 아이콘
지난 10여년간을 거치면서 후손들이 불쌍할 정도로-_- 송시열 거품이 확 빠졌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다음 차례가 조광조라고 봅니다. ;;;;
나이트해머
13/03/24 12:04
수정 아이콘
송시열은 거품빠진 게 아니라 처음부터 지나치게 저평가된 거죠. 특히 이모씨 덕분에.
오히려 학계에서는 요즘 몇년간 송시열 재평가 관련 연구가 진행중입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3783 [일반] 마블 유니버스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들... [36] Neandertal9467 13/05/15 9467 0
43742 [일반] 명량해전에 대한 새로운 연구 [67] 눈시BBbr13826 13/05/14 13826 11
43736 [일반] 광우병 사태 지금은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554] 삭제됨10859 13/05/13 10859 1
43700 [일반] 왜, 다들 특정 지역비하를 해대는지 모르겠네요. [209] 명괴물임10322 13/05/11 10322 0
43682 [일반] [역사] 명분만 중시하는 어리석은 신하인가, 꺾일 줄 모르는 올곧은 충신인가... [15] sungsik5098 13/05/10 5098 2
43656 [일반] 손석희 교수 JTBC 보도 총괄 사장직 [86] 대보름9963 13/05/09 9963 1
43565 [일반] 민주당 당대표 경선에서 김한길씨가 승리했습니다. [50] 4thrace6271 13/05/05 6271 0
43527 [일반] 다문화와 한국 사회 [114] 삭제됨7477 13/05/02 7477 0
43467 [일반] 허허.. 이거 진짜 큰일났네요.. [149] 스톰브링어RX15886 13/04/28 15886 2
43386 [일반] 변희재가 이번엔 낸시랭의 '홍대 부정입학-논문표절'을 들고 나왔네요. [193] 부끄러운줄알아야지9897 13/04/24 9897 1
43370 [일반] 민주통합당 강령·정책 개정안. [109] 5643 13/04/23 5643 0
43327 [일반] 낸시랭 아버지 "내가 죽은 줄 알았을 것.. 낸시랭은 죄없다" [528] 어느멋진날15649 13/04/20 15649 1
43325 [일반] 영화 글래디에이터와 역사에 대한 우리에게 이미지. [23] swordfish6623 13/04/20 6623 2
43321 [일반] [역사] 원 간섭기 고려와 조선에 대한 대만 정씨 왕조 관점 [15] sungsik6505 13/04/20 6505 0
43210 [일반] [역사] 조선시대 실패한 화폐제도: 저화(楮貨) [39] sungsik7917 13/04/15 7917 3
43198 [일반] [역사] 조선은 왜 가난한가. [125] sungsik12381 13/04/14 12381 2
43123 [일반] 정부 지난 3.20 해킹은 북한 소행으로 결론 [184] empier10976 13/04/10 10976 4
43022 [일반] 국제 해킹그룹 어나니머스 북한소유 우리민족끼리 계정및 트위터 해킹 [370] empier13804 13/04/04 13804 2
42913 [일반] 참여연대. 스웨덴에 천안함 관련 질의서 보내... [205] 순두부12158 13/03/29 12158 0
42844 [일반] [역사] 선조에 대한 변명. [53] sungsik21464 13/03/25 21464 3
42815 [일반] 한국의 개혁가들 [127] 순두부11440 13/03/23 11440 0
42813 [일반] 그들의 죽음 - 조선의 선비들 [18] 눈시BBbr8202 13/03/22 8202 2
42805 [일반] 고고학적 발굴로 밝혀진 인류최대의 학살극 [89] 깃털티라노36000 13/03/22 36000 6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