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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3/08 02:12:11
Name 王天君
Subject [일반] [하소연] 아직도 이런 여자가 있긴 있구나 상편

로맨틱 영화 속의 여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이쁘고 매력적인데, 나사가 하나 풀려있거나 맹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천치 끼가 솔솔 풍겨나온다. 길 가다 엎어지고, 자료를 산더미 같이 끌어안고 뒤뚱거리다가 끝내 놓치고, 자명종 시계를 반쯤 감긴 눈으로 보고는 날카로운 쇳소리의 비명 후 엉망진창의 모습으로 어딘가를 헐레벌떡 뛰어가는  이 장면들은 뻔하다 못해 클리셰로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인간적인 모습으로  여성 관객들에게는 공감대 형성과 신데렐라 드림의  하나  남은  떡밥을, 남성 관객들에게는 부성애와 더불어 조금은 쉬워 보이는 (그러나 도전 가치가 있는) 공주님의 환상을 충족시켜 주니 이 어리숙한 아가씨들을 나무라고 싶은 사람은 몇 안될 것이다. 나 같이 까칠한 사람 빼고.

넘어지고 깨지느라 궁상스런 미소 혹은 눈물을 머금은 스크린 너머의 그녀들을 향해서 나는 산 부처라 감탄하며 일갈을 고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등신(불)을 보았나’ 아무리 극적 장치의 일환이라 하더라도, 자기 자신에게 나태하고 무책임한 그녀들의 태도는 전혀 봐줄 만 하지 않다. 뭐하러 밤 늦게 술을 처먹나? 뭐하러 오랜 친구와 하룻밤을 보내나? 왜 서두르다 중요한 물건을 빼먹고 택시에서 눈을 휘둥그레 뜨는가? 암만 데헷 거려봐야, 아랫입술을 내밀고 내리 깐 눈동자로 올려다봐야 냉혹한 나의 눈에 그들은 하나도 사랑스럽지 않다. (드류 베리모어는 예외다)

헐리웃 대 스타들부터 한국의 잘 나가는 여배우들까지 흔들 수 없던 내 앞에 실제로 푼수끼가 상당한 여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지금, 나는 깊은 빡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누군가에 대한 명예훼손을 하소연이라는 명목 아래  하지 않고서는 못배길 지경이다.  몹시도 갑갑하건만, 말로 썰을 풀자니 단순한 뒷담화로 내 인격에 흠집이 갈 것 같고 아는 사람 한 두명에게 풀어놓자니 별로 속이 시원치 않다. 고로 나는 익명성을 가면 삼아 이 여자를 조금 더 안전하게, 야비하게 응징하고자 한다.

이 여성 A는 내가 시드니에서 알바로 일 하고 있을 떄 우연히 손님으로 만났고 너무나도 구수하게 친근감을 표시해오는 마음 씀씀이가 순박하고 따뜻하게 여겨져서 식사를 한번 한 게 전부였다. 미안하게도 그 다음부터는 어떤 호감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식사 동안 대화를 나누며 고집만 있지 그 고집을 조리있다고 느낄 만큼의 내공을 느끼지 못했던 탓에A라는 사람 자체가 나에게는 상당히 지루한 사람이었다. 대화 내내 나는 주어와 서술어를 또박또박 다시 말 하면서 화자의 의도를 다시 되짚어줘야 했고, 엉뚱한 데로 흐르는 대화의 맥을 정리하느라 애를 썼으며 뒤늦은 이해를 만회하고자 내가 한 이야기를 그대로 다시 말하며 자신의 주장인 척 하는 동어반복을 경청하는 척 해야 했다. 듣지를 못하는 사람이로군. 나쁜 사람은 아니다만, 그렇다고 나쁜 사람이 또 따로 있겠어? 아무쪼록 저 말고 좋은 사람 만나시길. 끝 – 인줄 알았는데.

그 한번의 식사에서 무엇이 그리 감명깊었는지 지칠 새도 없이 연락을 시도하는A때문에 나는 우쭐함보다는 황당함을 느꼈다. 나는 교제 중인 사람이 있음을 분명히 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괜한 오해를 사지 않으려고 정말 열심히 낯선 사람 사이의 선을 그어댔다. 그리고 그 때 나눈 대화는 서로 통하지도 않았고 별로 재미도 없었으며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 확인하고 끝난, 썩 유쾌하지 않았건만. (예정된 이별의 슬픔에 대해서 궁상을 떨었더니 여기에 지나치게 감동한 기색이 있긴 했다. 눈물 나올 것 같대나 뭐래나) 아무튼 친구로서의 매력도 별로 없는A의 연락은 나에겐 반가움보다는 불편한 마음이 더 컸다.

그리고A는  내가 지역이동을 했다는 이야기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자신도 내가 있는 곳으로 거취를 옮기리라 통보했다.  2인1실 방도 좀 알아봐주라는 뻔뻔한 부탁과 함께.  그녀의 추진력은 실로 놀라웠다. 보통 , 최소 2주전이라는 사전 공지 기간을 무시한 채 일주일만에 하던 알바직을 그만두었고, 주급이 나오는 데로 비행기표를 끊어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어쩌자고  밥 한번 같이 먹었던 사람을 이리 쫓는지….아주 당차게, 혹은 기 차게A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여기 있으니 오는 거라고, 내가 여기 안 있으면 올 이유가 없다고. 원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찡하거나 설레여야 하는 게 정상이지만, 난 진심 당혹스러웠다. 이 병맛 나는 시츄에이션은 뭐란 말인가…..

안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은연중에 표현하기 위해 참으로 많은 것을 설명해야 했다. 여기는 시드니처럼 일자리가 많지 않다, 한 번 본 사람을 믿고 아무 것도 모르는 채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건 너무 큰 모험이 아니냐, 나는 누군가를 그렇게 책임지는 사람도 아니고, 내 상황도 전혀 좋지가 않다, 일이 예상 밖으로 안 좋아지면 어떡할 거냐…

나도 참 문제가 있는게, 정말 어이없게도 자꾸 A의 생떼 앞에서 우유부단해지고 있었다. 사실 이미 삘이 와 있었다. 여친을 배신할 마음이 전혀 없는 남자와, 그 남자한테 아무런 매력적 어필을 못하는 여자. 그리고 많은 부분을 반 자의 반 타의로 도와주고 챙겨줘야 하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남자의 일방적인 봉사와 희생. 불 보듯 훤한 이 쌩뚱맞은 관계의 찜찜한 결말. 나는 전혀 성숙하지 못한 인격체인데, 나보다 더한 혹덩어리를 하나 더 달고 다니자니 꽉 쥔 엄지검지를 살짝 푼 풍선 주둥이에서 마냥 한숨이  나온다. 여기 수렁이니 괜히 발 담글 필요 없다는 말 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그리고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A에게 이러면 안되는 데 하면서도 자꾸 오게 되면 이렇게 이렇게 하겠다 하고 뭔가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고 있었다.

하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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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시카입니다
13/03/08 02:15
수정 아이콘
중요한 질문이 있는데.. 예뻤나요?
Star Seeker
13/03/08 02:47
수정 아이콘
묘사만 들으면 상당히 빡치는 캐릭터인데 하편에서 잘되면 곤란하니까 평가보류..크크
잭윌셔
13/03/08 03:28
수정 아이콘
초장부터 대책없네요 허허허...... 하편 기대합니다!
엘에스디
13/03/08 07:46
수정 아이콘
...왜죠? 왜 로맨스 코미디급 염장을 당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거죠?
금천궁
13/03/08 08:17
수정 아이콘
몰입력이 아주그냥 덜덜덜... 숨한번 안쉬고 다읽었습니다 얼렁 하편 내놓으시죠!!!
증~재균~ ^^//
13/03/08 08:31
수정 아이콘
진심으로 재밌네요 ^^
13/03/08 08:51
수정 아이콘
요즘 절단하는게 유행인가요?
얼렁 하편을 주세요! !
Darwin4078
13/03/08 09:10
수정 아이콘
왜 하늘은 여친 있는 남자에게 또 여자를 보내주는 것인가!
네버스탑
13/03/08 20:35
수정 아이콘
이거 이미 결과는 나와있는 과거 일인지 현재진행형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에 따라 반응을 달리 할 수 밖에 없겠군요 하하
13/03/08 23:20
수정 아이콘
지난번에 피지알에서 한여자가 남자에게 적극적으로 티지아이도 사주고 파르페도 사주셨던 글이 생각나네요.......
하편 빨리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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