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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2/18 18:03:02
Name 눈시BBbr
Subject [일반] 근대의 시작 - 주절주절
https://ppt21.com/?b=8&n=33321

작년에 여기까지 썼었군요.

생각해보면 안 쓴다 안 쓴다 해놓고 올해 현대 참 많이 다뤘어요 -_-a

후... 시작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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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고종이 즉위합니다. 아명은 MB (...) 명복이었죠. 그 때의 나이 12세, 당연히 그대로 통치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죠.

철종의 조부 은언군과 고종의 증조부 은신군은 모두 사도세자의 서자였습니다. 이 때문에 박해의 대상이 됐지만, 헌종에서 직계가 끊긴 이상 서열로 이들의 후손이 선택된 것이죠. 철종마저 죽은 상황, 자식들이 있긴 했지만 일단 서자에 어렸습니다.

그 이외에 찾아볼만한 남연군의 자손들이었습니다. 은언군의 동생 은신군의 자손이었죠. 은신군 역시 정조 대에 형들과 함께 고생 많이 하다 죽습니다. 이후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의 자손 이구가 은신군의 양자로 대를 이었고, 남연군이 됐죠. 그에게는 자식 넷이 있었습니다. 첫째 흥녕군 이창응, 둘째 흥완군 이정응, 셋째 흥인군 이최응, 그리고...


겨우 재건한 경복궁이 비참한 사건들의 중심이 될 줄 알기나 했을까요.

대원군은 조대비와 함께 강경한 개혁을 시작합니다. 세도정치가 마침내 무너졌고, 왕권이 강화됐죠.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그가 원한 건 조선 초기로의 복귀, 무너져버린 왕권의 복원이였습니다. 사실 정조 때부터 달라진 건 없어요. 개혁이라 하지만 기존의 세계관 내에서의 개혁일 뿐이었죠. 시대의 흐름이 있으니 달라지는 모습이 보이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다를 순 없습니다.

그래도 개혁이 쭉 이루어져 잘 갔으면 조금이라도 더 강한 국력으로 열강과 상대할 수 있긴 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미 게임은 끝난 상태였죠. 차라리 세도정치 그대로 가서 망했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이렇게 한 다음에 망해버리니 참... 짜증나죠.

이미 시대는 변해가고 있었고, 조선에도 깊숙히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외부에서만이 아니었죠. 내부에서도 근대적으로 볼 수 있는 흐름이 나타났고, 그렇지 않았더라도 변화가 보였죠.

새로운 가치가 들어오고 나타나고, 대원군을 비롯한 기존의 기득권은 이에 맞섭니다. 고려 말에 나타난 단군 숭배와 유교는 그래도 예전부터 있었던 것이었고, 큰 충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조선 말에 나타난 것과는 이제까지와는 너무도 달랐죠.

특히 동학과 서학, 이 둘은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애초에 종교를 부정하는 조선에서 이를 억눌러야 되는 건 당연했고, 이들의 움직임 역시 이전과는 달랐죠. 서학이야 외세를 끌어들였고 -_-; (박해가 강경하게 시작된 건 황사영 백서 사건 이후입니다) 동학은 기득권 타파를 외쳤죠. 어느 쪽이든 기존의 유교와는 달랐습니다. 여기에 정치 논리까지 들어가면 말 다 했죠.

대원군이 바란 것은 왕권의 강화, 이게 좀 더 진행됐으면 왕권과 신권의 균형이라는 기존의 방식대로 돌아갔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아직 시간이 필요했고, 그럴 시간은 없었습니다. 거기다 결정적인 게 있었죠. 그가 아무리 왕권 강화를 원한들 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가 힘을 쥐면 쥘수록 왕권은 약화돼 갔으니까요. 그가 뭘 했든간에 그는 왕이 아니었습니다.

척사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죠. 그가 척사파의 대표로 꼽히지만, 사실 그가 한 건 이제까지 그대로였습니다. 그라고 완전 척사를 외친 것도 아니었죠. 문제는 그는 고립주의라는 원래의 세계관 유지를 원했고, 그럴수록 열강의 통상 요구는 강해져 갔습니다. 그에 대비되면서 더더욱 척사를 외칠 수밖에 없었죠.


대원군과 비슷한 포지션이면서도 뭔가 다른 최익현, 그는 기존의 신권의 대표주자였습니다. 그가 원한 건 대원군처럼 왕이 아니면서 권력을 휘두르는 것에 대한 경계, 그리고 기존 사림의 위치를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세도정치야 없애는 게 맞다고 봤겠지만, 그의 주장은 노론이 주장하던 것 그대로였습니다.


그리고 고종, 그는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습니다. 열강과 수교하고 근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죠. 그는 마냥 휘둘리기만 왕이 아니었습니다. 개화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갔죠.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나도 실망스럽습니다. 문제는 이제 막 개화한 상황에서 알아봐야 얼마나 잘 알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죠.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는 "무능"과 "무지", 어느 쪽이 더 컸느냐로 나뉩니다. 무지로 어쩔 수 없었다면 그는 나름 열심히 한 것이지만 무능이라면 그냥 군밤왕일 뿐이죠. 이 경계를 정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김홍집

그에 따라 나온 온건개화파, 동도서기식으로 차근차근 개화를 진행하려 했지만 국내외의 사정이 그걸 따라주지 않습니다. 모두가 조선을 노렸고, 누굴 믿든 배신당하거나, 끌려다니거나, 이용당할 뿐이었죠.


김옥균

그리고 급진개화파, 일본의 근대화에 감명 받고 조선도 그렇게 되길 바랐습니다. 일본처럼 배우고 의식 있는 소수의 엘리트가 변화를 주도해야 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변화는 너무도 컸고, 힘은 없었습니다. 결국 일본만 믿고 일을 벌이고, 배신당하거나 친일파가 돼 갔죠.

이 모든 것들이 엉키고 조선을 둘러싼 외세끼리도 엉켜가는 가운데 조선은 망국의 길을 걸었습니다.

애초에 고종과 대원군의 관계부터가 문제였어요. 대원군이 대체 뭘 했길래, 아니면 고종이 대원군의 섭정을 어떻게 받아들였길래 그가 물러난 후 고종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의지로 그를 찾지 않습니다. 죽는 순간까지도요. 그리고 대원군은 아들에 맞서는 쿠데타를 몇 차례 계획했죠. 대원군이 직접 주도한 게 얼마나 됐을진 몰라도 언제나 관연됐죠. 을미사변까지도요.

대체 뭔 일이 있었길래 부자지간이 이렇게 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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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조선 외에서도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기존 중화세계관에 있던 나라들에서 말이죠.

"귀국에서 만약 무사할 때에 조약을 체결하는 것을 허락한다면 저들은 뜻밖의 일에 기뻐하여 당치않은 요구를 제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편을 판매한다든가 내지에 선교하는 여러 큰 폐단들에 대해서 엄하게 금지시켜도 아마 저들은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청은 외국의 부탁을 받아들여 조선에 개화를 조언합니다. 이들의 움직임도 예전과는 달랐죠. 중화세계의 사대외교가 아닌 근대적인 제국-식민지의 관계로 바꾸려 했습니다.

특히 문제는 일본이었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오랫동안 태평스럽게 지내 군정이 해이해지고 군사 방비가 허술해져 장구한 계책을 써서 놈들을 제압하여 하찮은 배들을 돌아가지 못하게 하지 못하였으니 비록 2, 3차 싸움에서 이기고 다소나마 적들을 섬멸하기는 했지만 진실로 무력을 크게 떨쳐 멀리에서 온 저들을 두렵게 만들지는 못하였다. (중략) 또 저들 쪽에서 방자하고 횡포하게 날뛰면서 몰래 기회를 노리며 이를 갈고 혀를 날름거리면서 침략할 틈을 엿보고 있는데도 귀국에서 혹 그 교묘하고 음흉한 정상을 알아차려 그 기세를 미리 꺾지 못한 것은 아닌지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을 몹시 걱정하며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병인양요 직후에 일본에 보낸 편지입니다. 보시다시피 은근히 우리가 서양에 맞서 이겼다고 하면서 (...); 일본의 상황을 걱정하고 있죠. 어디 예뻐서 걱정하겠습니까. 일본이 변하면 조선에도 영향이 큰 걸 알고 있으니까 그런 것이죠.

하지만 10년도 안 돼서 일본은 그들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보여주죠.


뭐 이것과 관련은 없지만...

1875년, 일본 사신은 기존의 복장이 아닌 단발을 하고 양복을 입고 들어옵니다. 자신들의 천황을 알리면서 외교관계 역시 재수립하려고 했죠. 조선은 이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만 하다가 시간이 가 버렸고, 일본이 대답을 요구하며 들고 나온 게 바로 운요호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 후 조선은 마침내 문을 열죠.

위기이자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큰 변화였습니다. 처음에 그들이 요구한 것은 자본주의 세계로의 편입이었고, 최종적으로 노린 것은 식민지였죠. 우리 걸 노리는 것은 그들이었지만 배워야 될 대상도 그들이었습니다. 내줄 건 내주면서도 그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 아슬아슬한 선을 결국 넘을 수 없었죠. 아니, 방법이 있었을까요? 조선의 입지는 너무나도 좁았습니다. 대원군은 청에 납치되고, 민비는 일본의 손에 죽었죠.

각 세력은, 각자의 방식으로 여기에 반응합니다.

최익현은 당연히 척사였죠. 그라고 아무 생각 없이 척사를 외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본주의가 들어올 경우, 조선에 들어오는 것은 사치품이고 나가는 것은 생필품이라는 지적은 정확했죠. 하지만 문을 닫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후 그는 기존의 유교가치관을 지키다 죽습니다.

김홍집은 나름의 외교전을 벌였고 한 발 한 발 내딛었지만 외국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그런 걸 감수하고 나아갔지만, 결국 백성들의 손에 처참히 죽게 되죠.

김옥균이야 뭐 위에서 설명했죠. 가장 빠른 개혁을 원했지만 그만큼 일본에 대한 의존을 더 깊게 할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 망명 후에는 나름 이런저런 다른 방안을 생각해본 것 같습니다만... 결국 일본에서 죽죠.

문을 닫아봐야 격차만 커질 뿐 막을 수 없고, 살짝 열어봐야 이런 데에 만렙을 찍은 그들에게 휘둘리고, 문을 활짝 열면 빠르게 먹힐 수밖에 없는 상황...

참... 답이 없는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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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시작하기에 앞서 정리하는 느낌으로 쓰려 했는데, 그냥 주절주절로 바꿉니다. -_-a 참... 대체 여기서 뭐 어떤 결론을 도출해야 되는지 연구하는 사람들도 머리 참 아플 거예요. ㅡ_ㅡ

다만 한 가지는 경계해야 된다고 봅니다. 혹은 한 가지를 더 생각해 봐야 된다고 봐요.

해방을 맞이한 당시의 한국인들이 이 시대를 어떻게 생각했고, 그걸 통해 어떤 결론을 냈느냐는 것이죠.

근대화가 더 빨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당연한 결론일 겁니다. 지금이야 그렇다고 근대화가 무조건 좋은 거냐는 생각을 할 여유라도 있고, 많은 상처가 남았어도 나라가 이 정도로 발전했으니 그 다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어땠을까요? 식민지 지배와 바닥 없는 가난, 근대화가 좀 더 빨랐다면 최소한 나라가 먹히진 않았을 거고 분단도 안 됐을 거고 이 모양 이꼴로 안 살았을 거다는 생각, 이런 게 피부로 와 닿았겠죠.

그 시간 역시 마찬가집니다. 어차피 이 빌어먹을 지정학적 위치에서 우리에게 시간은 얼마 없다, 최대한 빠르게, 빨리빨리 근대화를 이뤄야 된다... 언제 나라가 다시 먹힐지 모르는 상황에서 근대화를 최대한 빨리빨리 해야 된다는 것이요.

당시의 지배층은 분열돼 지들끼리 편 나눠 싸웠고 백성들은 멍청했다, 조선놈은 안 돼, 못난 엽전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원래 못난 민족은 아니었다. 뭉치면 된다. 나라를 분열시키려는 놈들은 지금도 얼마든지 남아 있다. 바로 저 빨갱이들이다. 흩어지면 다시 나라가 먹힌다. 하나의 주장 아래, 국가를 위해 뭉치자. 개인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일단 나라가 다른 나라에 꿀리지 않을 정도로 커야 된다...

중요한 건 힘이다. 그리고 이 굶주림을 면하고 나라를 발전시키는 것이 먼저다... 부국강병, 이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될 길이다.

해방 후의 정치인들은 물론 국민들도 민주주의를 전혀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익숙한 건 힘의 논리였죠. 혼란보다는 안정을 원했구요. 그 방법론은 극으로 기우는 민족주의였습니다.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에게서 가장 인기 있었던 외국 정치인은 히틀러였습니다. 임정 내에서도 이범석을 볼 수 있죠. 그 반대인 공산주의 역시 극으로 가는 주장이었죠. 이것이 해방 후 한국을 뒤덮었습니다. 좀 유화적인 걸 원하는 이들은 힘의 논리에 압살돼 갔죠. 역사는 단절되는 게 아니고, 이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닙니다. 전 시대의 경험을 통해 나온 것이죠.

이런 것들은 한국의 발전에 큰 영향을 줬지만, 동시에 많은 폐해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건 이런 폐해도 극복해 가면서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식민지가 되기 전의 역사, 그 시대를 어떻게 평가하든 이렇게 식민지 시대와 해방 후의 역사에 대입해보고 결론을 내려야 됩니다. 분명 지금에 바로 대입하면 안 되는 것들이 있고 그걸 고치면서 지금까지 온 것이었으니까요. 지금이 힘이 먼저인 시대가 아니잖아요? 사람이 먼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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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참 -_-a

시작은 병인양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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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ngjyess
12/12/18 18:18
수정 아이콘
제 생각엔 힘이 먼저인 시대는 인류가 멸망하는 그날까지 끝나지 않을거 같습니다... 다만 사람이 먼저이길 바라고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할 뿐... 그러기 위해서는 힘의 논리도 배우고 그걸 이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눈시BBbr
12/12/18 18:24
수정 아이콘
그거야 어쩔 수 없죠. 그거 하나에 메몰리는 게 싫을 뿐이구요
루크레티아
12/12/18 18:45
수정 아이콘
고종의 권력욕이 상상 이상으로 강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흔히 고종의 이미지는 무능, 무지와 맞물려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우유부단하고 물 같은 이미지를 상상하게 되는데, 사실은 행적만 보더라도 왕실의 권위와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별 짓을 다했죠. 그런 상황에서 권력을 쥐고 내놓지 않는 아버지가 있으니 당연히 사이가 벌어진 것이겠고요.
눈시BBbr
12/12/18 19:31
수정 아이콘
그렇게 생각은 합니다만... 참 상상 이상이죠.
권력이란 게 요물인 건지 대체...
Paranoid Android
12/12/18 20:11
수정 아이콘
참 나라위치도 예술인거같아요...
힘도엄청세진않은주제에 잘 버텨왔다는 생각도 듭니다.
포텐셜이 터져서 일인자될날이올까요 크크
단빵~♡
12/12/19 05:02
수정 아이콘
전 좀 생각이 다른게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세계전체로 보면 강대국 반열에 오른다고 봅니다. 그래서 잘 버텼다고 봐요 다만 주변국들이 더 세다는게 함정?.......;;
눈시BBbr
12/12/20 02:08
수정 아이콘
크크
뭐 일인자는 바라지도 않아요. 그저 강소국으로 꿋꿋하게 나가기만 바랄 뿐이죠
난멸치가싫다
12/12/18 20:21
수정 아이콘
조선이 망한 원인이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있다기에는 국력 차이가 너무 컸죠...거진 레드코트VS아메리칸 네이티브 수준의 기술력, 군사력, 행정력 등등의 격차가 있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고종은 할 만큼 했다고 봅니다. 나폴레옹과 공명과 이순신이 동시에 조선에 환생했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 아니었을까요,
눈시BBbr
12/12/20 02:09
수정 아이콘
그렇기에 더더욱 극단으로 가는 것이겠죠. 답을 더 멀리서, 더 빠른 방법을 찾아야 되니까요
강가딘
12/12/18 21:32
수정 아이콘
김옥균은 일본에서 죽은게 아니고 중국 상해로 갔다가 그 곳에서 홍종우에게 암살당하죠
눈시BBbr
12/12/20 02:09
수정 아이콘
,,,,, 감사합니다 ㅠ-;;
12/12/18 21:35
수정 아이콘
현재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가장 중요한 역사인거 같은데 실제론 후반부에 배워서인지 중요하게 언급도 안되고 배드엔딩이라 그런지 스스로 찾아보기에도 재미없고 여러모로 소외받는 시대가 아닌가합니다.
흔히 배우는 서양사는 근대화하면 르네상스라는 멋진말로 시작하면서 인간과 자연에 대해 블라블라 떠드는데 한국사는 근대화하면 강화도조약이든 갑신정변이든 뭔가 실패로 끝나는걸로 시작하죠.
제국주의 시대에서 뒤쳐진 국가는 식민지로의 길이 거의 필연이기 때문에 우리만의 실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좀더 좋은길 좀더 바른길로도 갈수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눈시BBbr
12/12/20 02:14
수정 아이콘
하긴 스팀펑크를 생각하면 서양인들에게는 이 때가 정말 낭만의 시대인 것 같아요. 이거 가지고 따로 글 쓸까 생각하다가 말았지만; 그런 거 보면 참 씁쓸하죠.
좀 더 바른길로 가면서도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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