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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1/13 03:21:06
Name 눈시BBbr
Subject [일반] 불굴 - 5. 중공군 5차 공세
서울까지 점령했던 중공군은 아군의 반격 속에 밀리면서 38선까지 포기하게 됐습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각 공세마다 어떻게든 지켜내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던 거니까요.

하지만 덕분에 큰 피해가 없었고, 그 사이 드디어 3병단과 19병단이 도착합니다. 수적으로 확실히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 것이었죠.

중공군 최고의 약점이었던 보급, 팽덕회는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중국에서 철도병사단 3개가 도착했고, 이들은 중국부터 전선까지 철도를 놓는 데 투입됩니다. 이 철도는 공군이 폭격하기 힘들게 건설됐고, 방어를 위해 많은 병력이 대공에 투입됩니다. 여기다 봄이 오면서 상황이 나아졌고, 4월이 되면 1월에 비해 3배나 되는 양을 수송할 수 있게 되었죠.

공세는 그 동안 고생한 13병단을 뒤로 빼고 3, 9, 19병단이 맡게 됩니다. 충분히 쉬었다는 장점이 있지만 UN군과 직접 상대해보지 않았다는 단점은 있었죠.

이 때 최종목표가 어디까지였는지는 파악할 수 없네요. 하지만 팽덕회가 그 동안 보여준 모습을 보면 UN군 축출까지 노리진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전쟁을 포기할 정도까지는 안 됐습니다. 최소한 서울은 먹어야지 명분이 서니까요.

+) 이후 팽덕회는 현대적인 군을 건설해야 된다고 주장해 모택동과 대립하게 됩니다. 모택동은 기존의 "인민의 바다", 거대한 중국 영토 깊숙히 끌어들이는 걸 원했거든요. 하지만 중국이 근대적인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팽덕회의 주장이 옳았습니다. 이 경우에야 남의 나라에서 전쟁한 거지만 중국이 전장이 될 경우 기존의 방법대로라면 아무리 나라를 발전시키든 전쟁이 시작되면 다 포기해야 되는 거니까요. 중국은 이를 중월전쟁에 가서야 깨닫게 되고, 등소평이 집권하고 나서야 본격적인 현대화된 군대를 만들게 됩니다.

리퍼 작전이 개시될 당시 팽덕회는 2개월 동안은 방어에만 집중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어디까지 물러나게 될 지 몰랐습니다. 어차피 춘계 공세를 위해 그 동안 참아왔습니다. 완벽하지 않다 해도 겨울에 비한다면야 준비가 잘 된 상태였고, 그의 밑에는 최소 30만의 병력이 준비돼 있었습니다. 중공군 3개 병단과 북한군 2개 군단, 병력으로는 중공군 27만명과 북한군 3만 5천명이었죠.

마침 불굴 작전을 통해 UN군은 철의 삼각지대를 향해 진격해 왔고, 이 덕분에 거대한 돌파구가 만들어집니다. 아군 입장에서야 돌파구였지만 중공군 입장에서는 쌈싸먹을 수 있는 돌출 지역이었죠. UN군은 더 이상 증원되지 않았고, 횡적으로만 연결돼 종심은 얕았습니다.

주공은 19병단, 이 휘하의 3개 군 9개 사단은 임진강 부분을 맡게 됩니다. 3병단 3개 군 9개 사단은 연천 북쪽, 9병단 5개 군 15개 사단은 김화에서 공격을 개시합니다. 목표는 서부전선을 방어하는 미 1군단과 진격해오던 미 9군단이었습니다. 한편 북한군 2개 군단을 보내 미 10군단과 국군 3군단을 상대하게 했죠.

아군은 이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정찰을 통해 북한부터 만주까지 중공군 57개 사단과 북한군 18개 사단을 파악했고, 총 75개 사단과 75만 정도의 병력을 파악할 수 있었죠. 그럼에도 불굴 작전을 계속합니다. 이미 적의 공세시 방어지역을 정해놓고 있었고 공세가 시작되면 바로 방어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적의 공세가 시작되면 최대한 출혈을 강요하고 뒤로 후퇴하면서 지연전을 펼칠 참이었죠.

다만 이 시기 미 8군 사령관이 된 밴플리트는 리지웨이와는 다른 생각을 합니다. 후퇴는 하되 기존처럼 37도선까지 후퇴는 거부한 것이죠. 특히 서울에 대한 생각이 달랐습니다. 군사적으로 별로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았던 리지웨이에 비해 밴플리트는 군사적으로도 서울이 중요하다고 여긴 것이었습니다. 애초에 수도가 됐던 이유가 있는 거니까요. 서울을 포기할 경우 서울에 쌓아 둔 보급품을 포기해야 되고 보급로의 붕괴 역시 걱정해야 했으니까요. 때문에 밴플리트는 무려 26개 포대를 서울에 배치합니다. 절대 서울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였습니다.

적이 오랫동안 준비해 왔고 아군은 이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의 꼼수는 통하지 않았죠. UN군 대 공산군의 힘과 힘의 대결이었습니다. 개전 이후 최고 규모의 충돌이었고, 이것이 전쟁의 향방을 가를 것이었습니다.

4월 22일, 공사군의 5차 공세, 춘계 공세, 혹은 4월 공세가 시작됩니다.

  
"서울을 빼앗아 모 주석께 노동절 선물로 바치겠다."

팽덕회의 작전계획은 이랬습니다.

- 중공군 19병단은 임진강 서쪽의 국군 1사단 방어선을 돌파, 의정부를 우회해 UN군의 증원과 퇴로를 차단하고 영연방 29여단을 섬멸, 이후 의정부로 진격해 미 24, 25사단을 섬멸한다.
- 중공군 9병단은 영연방 27여단을 섬멸하고 미 24, 25사단을 섬멸한다.
- 중공군 40군은 가평으로 전진 국군 6사단을 섬멸 후 춘천-가평간 도로를 차단해 동부전선의 증원을 막는다.
- 39군은 화천 이북에서 UN군을 견제한다.
- 중공군 3병단은 연천의 미 3사단과 터키여단을 섬멸한 후 미 24, 25사단을 섬멸한다.
- 북한군 1군단은 임진강의 국군을 섬멸한 후 서울을 점령한 후 방어임무로 전환한다. 북한군 6군단은 적의 해안 상륙과 공수 강하를 방어한다.
- 북한군 3, 5군단은 조공으로 양구 이북에서 미 2사단과 국군 7사단을 견제하고 주력으로 국군 3, 5사단을 섬멸한 후 평창-강릉 방면으로 진격한다. 북한군 2군단은 통천-양양 일대에서 UN군의 상륙을 저지한다.

이렇게 중공군 33개 사단과 북한군 12개 사단이 참가한 4차 공세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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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세의 주인공은 역시 영연방군입니다.

공세 당시, 임진강의 영연방 29여단은 글로스터 대대를 적성에, 푸실리어 대대를 감악산 북쪽에, 얼스터(북아일랜드죠 -.-a) 소총대대를 예비대로 두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배속받은 벨기에 대대 역시 전방에 배치했죠.

하필 4월 22일은 성 조지의 날, 영국군은 이를 맞아 대비가 느슨해진 상태였죠.

가장 먼저 공격받은 글로스터 대대는 갑작스런 포위 공격에 어려움에 빠졌고, 우측에 있던 푸실리어대대와 벨기에대대 역시 공격을 당합니다. 이 상황에서 글로스터대대는 고립, 푸실리어대대는 후퇴하면서 벨기에 대대가 고립돼 버렸죠. 다행히 미 3사단에서 벨기에 대대에 전차 2개 소대를 보내면서 급한 불을 끕니다. 영국 여단장은 후퇴를 요청하지만 미 3사단장은 이를 승인하지 않았고, 대신 이들을 구하기 위한 역습을 시도했지만 실패합니다.

결국 후방 방어선으로 철수하면서 이들의 엄호를 위해 필리핀 대대를 투입하지만 역시 실패, 푸실리러 대대와 벨기에 대대는 철수에 성공했지만 글로스터 대대는 완벽히 포위당했죠. 거기다 후퇴한 주저항선에서도 적의 공격이 계속돼 구멍이 생겨나는 상황이었습니다.

미 1군단장 밀번은 글로스터 대대의 구출까지 어떻게든 진지를 지키라고 명령합니다. 이에 대해 여단장은 글로스터 대대장에게 포위망을 돌파하거나 투항하라는 권한을 위임했죠. 글로스터는 대대에 철수명령을 내리면서 그 자신은 부상자와 함께 잔류하기로 결정합니다.

이후 시작된 포위망 돌파에서 글로스터 대대는 한 개 중대 외에 모두 중공군의 포로로 잡히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이 3일 동안 버텨준 덕분에 주력은 무사히 철수할 수 있었죠.

그 동안 좌측에서는 국군 1사단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이들 역시 중공군의 강력한 공격에 도하를 허용했지만 공군의 지원과 보전포 협동 공격으로 중공군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죠. 이에 중공군은 영연방 29여단과의 접경지인 우측 12연대가 지키는 파평산을 공격합니다. 3일간 계속된 공격에서 12연대는 결국 파평산을 포기해야 했고 중공군은 여기로 돌파구를 확대하며 몰려듭니다.

이에 사단장 강문봉은 (백선엽은 김백일의 후임으로 1군단장이 됐죠) 역습을 시도, 24일 17시에 돌파구를 회복하는데 성공합니다. 이 과정에서 글로스터 대대의 일부를 구출하는데도 성공했죠. 하지만 적의 저항으로 더 이상의 반격은 실패합니다.

25일이 되면서 1사단은 우측의 UN군과 맞추기 위해 후방으로 후퇴합니다. 델타선이라 명명된 캔자스선 후방의 방어진지였죠.

"전역우회 임무를 맡은 64군이 장파리, 고사동 일대를 점령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미타사 북쪽에서 한국군 1사단의 저지를 받아 적의 주진지를 신속히 돌파하지 못 했다."

이렇게 서울로 가는 서부전선은 적의 기세가 한 풀 꺾이게 됩니다. 중공군은 글로스터 대대 하나를 격파하는 정도에 그쳤고, 남쪽에서 새로운 방어선을 준비한 UN군에 맞서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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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에서 철원, 김화를 목표로 가던 미 24, 25사단은 22일 강력한 방어에 부닥쳤고, 급히 방어로 전환합니다. 중공군은 그 날 밤에 바로 공격해 왔죠.

그들의 목표는 좌측에 있던 터키 여단이었습니다. 이들의 좌측에는 필리핀 대대가 있었고, 미군 본대를 상대하는 것보단 터키, 필리핀군이 낫다는 것이었겠죠.

19시부터 시작된 40분간의 준비사격에 여단은 큰 피해를 입었고, 곧이어 들이닥친 적에 적에게 포위된 상태에서 백병전으로 맞서야 했습니다. 이어 좌측의 필리핀 대대 역시 적의 파상공격에 휘말렸고, 통신도 끈겨 아무런 지원 없이 막아야 했죠.

이들 덕분에 미군 주력은 후퇴할 수 있었고, 이들도 큰 피해를 입으면서도 후퇴에 성공합니다. 이어 미군은 중공군의 대부대를 유인, 화력으로 큰 피해를 입히는 데 성공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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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미 9군단이었습니다. 이들은 국군 6사단이 김화로, 미 1 해병사단이 화천저수지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죠. 중공군은 주공인 19병단의 동쪽을 엄호하기 위해 이 지역에 9병단을 투입합니다. 첫 목표는 국군 6사단이었죠.

사단장 장도영은 적의 공세 소식을 듣고 낮에 방어로 전환합니다. 중공군은 좌측, 미 24사단과 연결돼 있는 19연대를 집중 공격했죠. 문제는 연대가 포위된 이후였습니다.

이 소식이 퍼지자마자 우측의 2연대와 예비인 7연대가 분산 철수해 버린 것이었죠. 후퇴한 장소는 사창리, 많은 물자들을 포기했고, 좁은 도로에 많은 병력이 몰리면서 혼잡이 발생합니다. 6사단을 지원한 미 포병대 역시 중공군의 기습을 받아 화기를 포기하고 철수해야 했죠. 동쪽의 해병대는 6사단의 후퇴로 좌측이 텅 비어버렸고, 포위공격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지연전을 펼치며 철수하는데 성공했구요.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날이 밝으면서 공군, 포병의 지원으로 적의 공격이 둔화됐고, 6사단은 급히 부대를 재편해 캔자스선을 점령했지만, 밤이 되면서 또 밀려버립니다. -_-;

무질서하게 철수하는 6사단, 그 앞에는 영연방 27여단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영연방 27여단은 캐나다 대대와 호주 대대, 미들섹스 대대, 아길(아길 서덜랜드 하이랜더 연대 1대대의 약칭) 대대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이 중 성 조지의 날도 있고 아길 대대가 홍콩으로 돌아갈 시점이라서 분위기가 어수선했죠.

6사단이 철수하자 미 9군단장은 급히 영연방 27여단을 가평 북쪽에 배치합니다. 6사단을 지원하던 뉴질랜드 포병연대 역시 다시 합류했죠.


문제는 후퇴하는 6사단과 추격해 오는 중공군을 구분하기 힘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급을 위해 배속된 전차도 철수해버렸죠. (후퇴하는 국군을 적인 줄 알고 먼저 후퇴했다는 말도 있군요)

영연방군은 전방에 캐나다 대대와 호주 대대를 두고 있었습니다. 이 중 중공군이 밀려온 곳은 우측의 호주 대대였죠. 그들은 밤부터 시작된 적의 두 차례 공격을 막아냅니다. 이 틈을 타 여단장 버커 준장은 호주 대대를 미들섹스 대대 후방으로 철수하게 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중공군이 다시 와 버렸죠.


이 때 호주대대장 퍼그슨은 직접 전차에 타 야이 중공군노무새끼들아 내가 지금 전차를 몰고... 아무튼 그랬다고 합니다.

호주 대대는 무사히 철수, 낙오된 병력 역시 뒤늦게나마 합류했고 캐나다 대대가 이어진 공격을 막게 됩니다. 그 뒤를 미들섹스 대대가 방어를 강화하며 기다리고 있었고, 동쪽에 미 5 기병연대가 증원오면서 결국 중공군은 물러나게 됩니다. 이후 영연방군은 기병연대에 작전지역을 인계하고 예비대로 빠지게 되죠.


가평 전투에 참가한 노병들

이렇게 전선을 두 개로 나누려던 중공군의 공격은 실패했고, 아군은 그 틈을 타 방어선을 구축, 적의 공세를 막을 수 있었죠.

여기서 문제는 6사단입니다. 국군의 붕괴 -> UN군의 방어라는 점에서 횡성-지평리 전투와 비슷하긴 하죠. 하지만 6사단은 8사단에 비해 상황이 좋았습니다. 8사단은 중공군의 모든 공격을 한 몸에 받은 반면 6사단은 다른 나라의 대대, 여단급이 해 준 걸 하루도 못 해 준 것이었죠. 말 그대로 도망간 것이었습니다.

"거구의 밴플리트 장군은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다가 그의 큰 눈으로 내 눈을 쏘아보다시피 들여다 보는 것이었다. 한참 있다가 그는 “Can you fight?"하며 고함을 질렀다. 나는 순간적 반응으로 속에서 악이 북받쳤다. 내가 아무리 젊고 또 이번에는 실패를 하였지만 나는 어깨에 별을 단 장군이지 않은가. 적을 앞에 놓고 이게 무슨 질문이란 말인가." - 장도영, 망향

사병과 하급 간부진의 훈련, 경험, 교육이 부족했던 국군의 문제가 제대로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거기다 사단장 장도영의 지휘 역시 문제였구요. 위에서 밴플리트에게 저 말을 들은 장도영의 열받아서 적을 향해 마구 쏴라는 명령도 내렸다고 합니다. -_-; 뭐 하는 짓인지... 부하들에게 이런 말도 했다고 합니다.

"단상에 오른 사단장은 서언도 없이 “너희들은 지금부터 나가 죽어라”한다. 그리고 “사단의 명예를 회복하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올 생각은 말라! 나도 너희와 같이 죽겠다!" - 김학철, 노병들의 증언

=_=; 그래도 장도영은 저 질문에 "Yes"라고 고함을 치며 대답했고, 영어를 잘 했던 그를 미군은 다시 한 번 믿어줍니다. 압록강에서부터 패전만 해 왔던 6사단은 이 패전으로 미군이 돌을 던지며 욕 할 정도로 몰락해 버립니다. 개전 초부터 가장 잘 싸웠던 6사단이 말이죠.

하지만 명예회복의 날은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한편 미 10군단과 국군 1, 3군단은 화천저수지-한계령에 달하는 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맞습니다. 24일에 5사단이 인제를 포기하고 후퇴하긴 했지만 바로 탈환에 성공했고, 김종오가 이끄는 3사단 역시 일시 후퇴했다가 다시 반격합니다. 3사단의 경우 북한군과 4일 동안 싸우면서 마침내 목표인 한석산 탈환에 성공했죠.

북한군이 조공 오브 조공인 것도 있었지만, 역시 중공군보다는 상대하기 쉬웠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달도 안 돼서 이 곳은 다시 지옥이 돼 버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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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서울로 돌아오겠습니다.

국군 1사단과 영연방 29여단의 방어에 큰 피해를 입었지만, 중공군은 낮에도 진격해오며 서울을 향한 진격을 계속합니다. 어쨌든 최소한 서울은 먹어야 했으니까요.

이를 위해 준비된 방어선은 서울 북쪽의 성동산-포천-가평을 연하는 델타 선과 서울 외곽 수색-북한산-덕소를 연하는 골든 선, 한강-양평-횡성-양양을 연하는 네바다 선이었습니다. UN군의 방침은 축차 철수 후 적의 공세가 끝나면 반격으로, 언제든지 서울을 포기할 수 있는 방어선이었죠.

하지만 밴플리트는 이를 반대합니다. 더 이상 서울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죠. 그는 네바다선 북쪽에 용문산-홍천-한계령-속초를 연하는 새로운 방어선을 만드니 그 이름은... 없었습니다. (...) 아니 정말요.

당시 참모들이 이 방어선에는 어떤 이름을 붙일까 질문하니 밴플리트는 "지금 그딴게 중요하냐. 이름 따윈 필요 없다"고 일갈했고, 참모들은 여기에 NoName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25일 델타선으로 후퇴한 1군단은 28일에는 골든선으로 철수합니다. 국군 1사단은 구파발에, 미 1 기병사단은 구파발-쌍문동에, 미 25사단은 쌍문동-덕소에 있었죠. 그리고 여기서 마침내 중공군을 막아냅니다. 4월 30일이었죠. 중공군 4월 공세의 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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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간에 적들은 남쪽으로 10-50 km 격퇴되었고, 중공군 및 북한군의 평균 공격속도는 서부전선에서 1일 6-7 km였다. 그러나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중공군 및 북한군은 부여된 임무를 달성하지 못했다. 공중 우세권과 큰 기동성을 이용, 적은 격멸되는 것을 피해 38선 남쪽의 사전 준비된 방어선으로 후퇴하였다. 따라서, 상호 협동조직과 전열을 가다듬기 위한 부대의 부분적인 정지는 큰 승리를 쟁취하는데 장애가 되었다." - 러시아가 본 한국전쟁

4월 26일, 팽덕회는 모택동에게 공세의 실패를 보고하고 29일까지 조기 종결합니다.

진격은 어느 정도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UN군의 후퇴는 패배가 아닌 계획된 철수였고, 이런 상황에서 너무 큰 피해가 나버린 것이죠. 그러고도 서울을 점령하지도 못 했습니다. 덕분에 아군은 적이 충분히 준비해도 이길 수 있다는 걸 확실히 깨닫게 됐죠.

그는 패전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습니다.

- 공세를 위한 준비가 불충분했다.
- 적군의 배치가 상호 밀집돼 틈이 없었다.
- 적이 전과 달리 너무 강력했다.
- 아군이 깊숙히 진격할 경우 적의 상륙기도가 우려되었다.

하지만 그가 공세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차기 공세를 빨리 하기 위해 이번 공세를 미리 끝낸 것이었죠.

그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서울이 아닌 적부대 격멸로 목표를 바꿉니다. 거기에 걸맞는 것은... 역시 국군이었죠. -_-; UN군의 화력을 잘 쓸 수 없었던 중동부 산악 지대로 전장을 바꾸고 거기 몰려 있는 국군을 격파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목표가 됐던 것은 국군 3군단, 3, 7, 9사단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3중 포위망을 준비합니다. 여기에 좌측의 국군 5사단과 우측의 국군 1군단 소속 수도, 11사단까지 섬멸하는 계획이 준비됩니다.

이를 위해 팽덕회는 38개사단 중 18개를 동원합니다. 남은 20개 사단 중 12개 사단은 서부지역에서 UN군을 견제, 나머지 8개 사단은 다시 가평-춘천 방향으로 기동해 서부와 동부를 다시 가를 예정이었습니다. 사기가 땅에 떨어진 국군 6사단이 여기에 다시 맞서야 했죠.

이렇게 중공군 6차 공세, 5차 2계단(단계) 공세(중국 쪽은 이렇게 부르는 듯), 춘계 2차 공세(이 쪽이 가장 많이 쓰이는 듯), 5월 공세가 시작됩니다. 5월 15일이었습니다.


"...;;;"

심정 한 번 들려주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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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wave
12/11/13 06:5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리네요.^^
Je ne sais quoi
12/11/13 08:23
수정 아이콘
미술에서나 보던 무제를 여기서도 보게 되는군요 ^^;
사티레브
12/11/13 09:15
수정 아이콘
어마어마하네요 마지막...
눈시BBbr
12/11/13 11:54
수정 아이콘
테란은 1부대 가지고 노는데 저글링 5~6부대가 쏟아지는 느낌 =_=;;;
전쟁말쯤 가면 135만인가 아마 그쯤 있었을 겁니다
swordfish
12/11/13 09:17
수정 아이콘
유장군 당신의 군단은 어딨소? by 벤플리트가 다음 편이군요.

참고로 당시 영국군은 카투사 같은 부대를 두고 있었습니다. 캇콤이라고...
사진 보면 이게 구르카 병인지 뭔지는 모를 정도로 닮았더군요.
swordfish
12/11/13 10:18
수정 아이콘
영국군의 특징에 대해 더 말하자면-지금도 그렇지만- 이당시
영국군은 기본적으로 사단-여단-(연대)-대대 체제 인데 전투에는 대대 바로 위가 여단 입니다. 애초 여단을 각 연대 예하 대대를 차출해서 구성하기 때문이죠.
그덕분에 연대는 이 대대 병력을 모병한 곳에 배치 하면서 여기서 징병 재편성, 해체를 관리 하기에 실 전투에서 연대를 찾기 힘들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외 근무 방식도 특이 한데 미군의 경우 초기 부대 들이 전멸 당하지 않는 한 보통 남아 있는 게 정석이고 병사들만 고참병은 전속하고 신병은 배치하는 식으로 순환시키는데 비해 영국군은 1개 대대가 1년만 근무하고 전부 빠지는 대신 새로운 대대가 이를 대신하는 방식입니다.
물론 일장 일단이 있어서 미군 식은 새로 부대가 와서 시작할 필요가 적고 이 지역에 익숙한 사람이 언제나 부대 내에 존재하는 반면 계속 전투가 계속되면 부대 자체 구성이 고참병-신병으로 이질 적으로 갈리는 반면 영국군의 경우 새로운 환경에 부대 자체가 익숙해져야하는 단점은 있는 반면 훈련 부터 손발을 맞춘 부대이기 이기 때문에 부대 평균 질과 협동성은 좋다는 장점은 있죠.

한국전에서 이런 영국군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기에 보면 엄청 부대가 자주 갈린 걸 알 수 있습니다.
설탕가루인형형
12/11/13 10:00
수정 아이콘
너무너무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Tristana
12/11/13 16:09
수정 아이콘
계속 완파당하는 6사단...
12/11/14 08:41
수정 아이콘
매번 스마트폰으로 읽어서 답글을 안달았는데 여전히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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