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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0/06 23:54:57
Name 눈시BBbr
Subject [일반]  북진 - 1. 낙동강 돌파


공세 이전. 방어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북한군은 이미 작전한계점에 도달해 있었지만 당시 아군이 이를 확실히 파악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죠. 8월 말에 피아의 전력이 충분히 역전됐다 볼 수 있을 때에도 그 때 아군은 "이 병력으로는 적을 격파할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렇기에 도박이나 다름없는 상륙작전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이죠.

9월 중순, 총반격이 예정된 16일이 됐을 때는 북한군이 충분히 약해진 것을 파악했지만, 아군 역시 충분히 약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계속되는 비로 인해 공군은 제대로 뜨기 힘들었고, 포병은 하루에 20~30발밖에 못 쏠 정도의 제약을 받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평소에도 평균 200~300발을 쏟아부은 게 미군입니다. -_-; 상황이 어땠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죠. 그 미군이 병력의 부족을 느끼고 화력의 부족을 느낄 때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낙동강을 지켰던 워커는 그 공을 칭찬받기 전에 빨리 총반격을 준비해야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것도 최고의 정예인 해병대를 뱉어내고 증원병력과 화력을 모두 상륙부대에 보내야 되는 상황에서였죠.

맥아더는 언제나 주연 배우였습니다. 작전이 어떻게 진행되든 그가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했고, 고생했던 부대는 조연에 머물렀죠. 여기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연은 인천상륙작전을 주도하고 서울을 탈환한 맥아더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고생했던 워커는 그걸 띄워주기 위한 조연에 불과했죠. 여기에는 맥아더와 정반대되는 성격을 가진, 기자들을 싫어한 그의 성격도 문제가 됐겠습니다만 -_-a

워커는 북한군의 9월 공세를 막아내면서 반격을 준비해야 되는 참 어려운 임무를 맡습니다. 하지만 그의 별명인 불독처럼 그는 꿋꿋이 준비를 해 나갔죠.

가장 중요한 건 아군의 병력, 화력, 보급의 문제였습니다. 솔직히 지금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아군이 월등히 우세긴 했지만 -_-; 그 때 그 상황에서는 모든 게 부족했습니다. 국군이야 어차피 우리는 있는 게 없으니 깡으로 밀어붙여라겠지만 그 역시 미군이었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전히 북한군이 충분한 병력과 공세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아군의 평가였습니다.


"게이야. 이 형이 항상 지켜보고 있다."

역시 중요한 것은 대구였습니다. 영천의 위기만큼 미 1 기병사단이 맡은 대구의 위기도 컸고, 워커는 사단장 게이에게 적이 대구까지 들어올 경우 자기가 선두에 서서 싸우겠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그는 대구를 중요시했고, 데이비드슨선으로 후퇴하자는 논의를 모두 막아냅니다.

반격작전에서도 이게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적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상황에서 아군이 섣불리 반격하다가 대구를 잃게 될 경우를 늘 생각해야 했습니다.

------------------------------------------------------------------------------------------

서울은 물론 38선 이남을 모두 수복해야 되는 반격 작전, 여기서 주공을 어디로 둬야 될 것이냐의 문제가 컸습니다. 총 4개의 안이 나왔죠.

1안은 대구 - 대전 - 수원으로 가는 선, 8월 공세에서 북한군의 주력이 내려온 그 선이었습니다. 경부축선으로 지금도 한국의 대동맥으로 취급되는 경부선입니다. 가장 거리가 짧지만, 북한군의 주공이였던만큼 강력한 저항을 각오해야 했고 그 동안 UN 공군의 폭격으로 곳곳에서 도로와 철도가 파손돼 있었습니다. 거기다 이 곳으로 간다면 적이 뻔히 보는 상황에서 도하를 해야 했죠.

2안은 마산 - 진주 - 전주 - 대전 - 수원으로 가는 선, 호남축선입니다. 북한군이 우회기동한 그 선이죠. 적이 충분히 약화돼 있는만큼 기습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지만 우회해야 되는만큼 거리가 멀었습니다. 거기다 길이 아직 제대로 닦여 있지 않았죠. 중간에는 지리산이 있었고, 이걸로는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힘들었습니다. 여기다 8월에 했던 킨 TF의 실패가 재현될지도 몰랐죠.

3안은 대구 - 문경 - 충주 - 수원 축선, 동부중앙축선이었습니다. 1안과 비슷하긴 했지만 소백산맥의 문경새재를 정면에서 돌파한다는 불리함을 안고 있었죠.

4안은 이 모든 축선에 병력을 고루 배치, 어느 쪽을 주공으로 두지 않고 한꺼번에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모든 축선에 고루 병력과 화력을 배치할 정도로 여유가 있지 않았다는 것이죠.

워커는 이 중 1안을 채택합니다. 서울까지의 최단경로이자 도로가 끊겼다 해도 기갑부대를 쓰기 가장 쉬운 곳, 주공을 투입하는만큼 적의 반격에 대구를 쉽게 뺏기지 않을 방법을 택했죠.

이 때 또 문제가 됐던 것은 지휘권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미 8군이 국군과 미군, UN 육군을 통솔하기로 했지만 이러면 효율적으로 작전하기 힘들었죠. 미군은 물론 국군까지 효율적으로 지휘하기 위해서는 그 사이에 뭔가가 필요했습니다.

이를 위해 미 제 1군단과 9군단이 8월 초에 창설됩니다. 1군단장에 임명된 것은 지장으로 유명했던 콜터, 9군단장은 밀번이 맡았죠. 문제는 반격작전 개시까지 9군단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패튼의 기동전의 후계자였던 워커에게 필요한 건 지장이 아닌 맹장이었죠. 이 때문에 반격작전 전에 군단장이 교체됩니다. 지장은 방어에, 맹장은 공격에 필요하다는 워커의 판단 때문이었죠. 이후 북진을 보면 이게 꼭 맞는 것까진 아닌 걸로 보이긴 합니다만 -_-a


밀번이 맡은 미 1군단에는 동해안전선에 투입됐던 미 24사단과 미 1 기병사단, 국군 1사단이 배속됩니다. 영연방 27여단은 24사단에, 미 5연대전투단은 미 1 기병사단에 배속됐죠. 이들이 경부축선에 투입될 반격작전의 주공이었습니다.


콜터의 9군단에는 미 2사단과 미 25사단이 배속됩니다. 서쪽을 맡은 부대가 그대로 배치됐고, 호남축선으로 진격, 서울로 향하는 것이었죠.


유재흥이 이끄는 국군 2군단에는 6, 7, 8사단이 배속됩니다. 이들은 중부지역으로 진격을 명령받았죠.


김백일이 이끄는 국군 1군단은 수도사단과 3사단이 그대로 배속됐고, 동해안으로의 진격을 맡게 됩니다.

이렇게 반격작전의 준비가 갖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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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자체는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양 쪽 다 차기 공세를 위해 요충지를 차지하려 했죠. 총반격 개시는 16일 09시부터였지만 부대의 사정에 따라 다르기도 했죠.

하지만 이들 모두에게 공통된 문제가 나옵니다. 일단 포병의 부족도 큰 이유였지만 더 큰 게 있었죠.


비가 등판한 겁니다. -_-;

16일의 총반격은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우로 인해 (아마 태풍 케지아겠죠?) 공군의 도움도 없이, 악천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시작부터 영 안 좋군요. 또 문제였던 것은 아군에 충분한 도하장비가 없었다는 것이죠.

여기에 김일성은 인천상륙작전을 극비에 붙이고 공세를 명합니다. 사실 인천에서 낙동강까지 정보가 전달되기도 이른 시간이었죠. 김책은 여전히 김천 등지에서 머물고 있었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짜내서 공세를 시도했죠. 17일부터는 아군의 공세에 수세로 전환하긴 했지만 북한군의 공격력은 아직까지도 살아 있었습니다.

적을 쉽게 보고 밀고 나갔던 아군은 곳곳에서 막힙니다. 고지 하나를 점령하니 적의 야습에 다시 쉽게 뺏기는 형국이었죠. 맨 남쪽 마산을 맡은 미 25사단은 아예 반격할 상황이 아니라고 주장할 정도였습니다. 중부전선의 6, 8사단도 진격보다는 적 8사단과 15사단 잔여병력을 상대하기 급급했고, 동해안의 수도사단과 3사단 역시 적에게 빼앗겼던 안강 지역을 탈환하는 게 급선무인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일성과 김책은 아군의 주공인 왜관 방면을 절대 뺏기면 안 된다고 다짐합니다. 미 1 기병사단의 공격은 계속 실패하고 있었죠.

따지고보면 작전을 시작한 지 몇 일 정도로 막히는 건 크게 신경쓸 정도가 못 됩니다. 노르망디에서도 바로바로 진격한 게 아니었죠. 하지만 높으신 분들의 생각은 다르죠.


"워커야, 이 형이 항상 지켜보고 있다."

맥아더는 반격 작전이 제대로 안 되는 걸 보고 17일에 충격적인 명령을 내립니다. 데이비드슨선으로 철수한 다음에 미군 2개 사단과 국군 2개 사단을 빼서 군산에 추가 상륙을 한다는 것이었죠. 단 이틀도 그냥 보지 않은 겁니다. 맥아더의 폭주는 이렇게 인천상륙작전 직후에 나옵니다.

워커가 이 말을 듣고 얼마나 열받았을지는 굳이 추측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다음 날인 18일 미 2 사단은 북한군을 격파하고 낙동강 돌출부를 돌파, 도하에 성공합니다. 이 소식을 오매불망 기다렸던 워커는 반격작전 최고의 수훈이라며 추켜세우기도 했죠. 일단 미 8군 사령부에서 적의 역습이 없다면서 곧 돌파에 성공할 것이라고 보고, 군산 추가 상륙은 일단 무마됩니다만 19일에 다시 꺼냅니다. 워커는 결국 폭발합니다.


"돌파는 성공할 것이다. 미 8군에서 단 1명도 차출할 수 없다. 조금만 더 전황을 관망해주기 바란다. 8군은 곧 거대한 쇠망치가 되어 돌진할 것이다."

욕 안 한 게 다행이군요. -_-; 그리고...

이런 워커의 말에도 맥아더가 군상 상륙을 포기한다는 구체적인 말은 없었습니다. (...) 진짜 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

"미 1군단이 반격에 성공해 낙동강 전선에서 북상하기 시작하면 인천상륙작전은 최고의 효과를 거두게 된다. 그 반대로 미 1군단의 반격이 실패한다면 적의 주력은 인천으로 상륙한 미군을 배후에서 공격함으로써 상륙작전 자체를 실패로 몰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미 1군단의 반격은 그래서 중요했다. 맥아더의 담대하기 짝이 없는 인천상륙작전도 미 1군단의 반격이 실패한다면 도로(徒勞)에 그치고 만다. 따라서 맥아더의 반격 독촉은 낙동강 전선의 미 8군 사령관 월턴 워커 중장, 1군단장 프랭크 밀번에게 사정없이 날아들고 있었다"

군상 상륙작전이 워커에게 전해졌던 17일, 워커는 국군 1사단 사령부를 찾아갑니다. 사단장 백선엽에게 워커는 이런 말을 내밀었죠.

"백 사단장, 우회 전술이라고 들어 봤나? 미군 참모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이다. 상대를 공격하다가 적의 저항에 부딪히면 옆으로 돌아가라는 전술이다. 어떻게 적의 약점이 있는 곳으로 파고들어갈지는 귀관이 부하들과 상의해 보라."

당시 국군 1사단은 미군 1군단의 예비로 주력인 미 1 기병사단의 우측을 엄호하고 있었습니다. 가산부터 팔공산까지 있는 적 1사단과 상대하고 있었죠. 2~3km씩이나마 진격에 성공하고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크다고 볼 순 없던 상태였습니다.

워커의 말을 들은 백선엽은 12연대장 김점곤에게 돌파를 맡깁니다. (전사에는 워커가 직접 찾아왔다는 말이 없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작전을 성공한 거니 별 문제는 없겠죠) 다음 날,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죠.


" 나는 놀라고 말았다. 효령면 거매동은 다부동 북쪽 12㎞ 지점이다. 적의 전선을 깊숙이 뚫은 셈이다. 나는 쉽사리 믿을 수 없었다. 당장 12연대 쪽으로 달려갔다. 김 대령을 만나자마자 나는 “어떻게 뚫었어?”라고 물었다."

김점곤의 설명은 간단했습니다. 미군에 집중포격을 요청한 후 바로 보병을 진출시켰다는 것이죠. 미군끼리도 쉽지 않은 보포 합동작전을 성공한 것이죠. 이렇게 하루만에 12km나 되는 돌파구가 생깁니다. 이걸로 끝이 아니었죠. 1사단은 돌파구를 넓혔고, 적은 이를 막지 못 합니다. 적 1, 3, 13사단의 퇴로가 차단됩니다.

"나는 이튿날 12연대를 따라 계속 북상했다. 군위 남쪽까지 진출했다가, 다시 방향을 서쪽으로 돌려 계속 진군했다. 12연대의 돌파는 비록 작은 지점 한 군데를 뚫은 것이었지만 의미를 따지자면 낙동강 전선 전체를 일으켜 세운 것이었다. (중략) 다부동이 상징하는 낙동강 전선, 즉 부산 교두보의 성공적인 방어에 이어 인천 상륙작전에 맞춘 1사단 12연대의 반격은 6·25 전쟁의 획을 긋는 전투였다. 그 승리의 선두에 섰던 사람이 김점곤 대령이다. 그런 유능한 부하와 작전을 벌일 수 있었다는 점, 내게는 또 다른 행운이었다."

이후 12연대는 계속 돌파구를 넓혔고, 11연대는 대구-상주간의 도로를 차단했으며, 15연대는 다부동으로의 포위 공격을 계속합니다. 한순간에 대구 방면의 전세가 바뀐 것이죠. 미군이 크게 기대하지 않은 1사단에 의해서 말이죠. 워커도 두 번이나 전화를 걸며 대체 어떻게 돌파했느냐고 놀라워 했다고 합니다.

그 동안 미 1 사단장 게이는 진격이 멈춘 7 기병연대장을 교체하는 강수를 두면서 진격을 계속합니다. 북한군은 점차 무너져 가고 있었습니다. 19일에는 13사단장이 부상당했고, 참모장 이학구가 아군에 투항합니다. 자고 있는 미군을 깨워서 했다고 하네요 -_-; 그는 후퇴를 건의했지만 돌아오는 답이 자기를 죽인다는 것이어서 투항했다고 밝혔죠. 그리고 이 증언을 통해 7 기병연대가 진격을 멈춘 게 삽질이었다는 것 역시 밝혀집니다.

21일이 되면서 대구 방면은 아군의 우세로 확실히 바뀝니다. 게이는 777 이무부대를 편성, 반격을 넘어 후퇴하는 적을 추격할 수 있는 기동부대를 편성합니다. 이제 서울까지 달릴 때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백선엽은 게이와 마주칩니다. 여기서 그는 백선엽에게 이렇게 말 했다고 하죠.

"See you Seoul"

정작 백선엽은 1사단이 서울 진격이 아닌 북한군 패잔병 소탕을 맡게 돼서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하고 있습니다만.

그 동안 다른 전선에서도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됩니다. 북한군은 이걸 더 이상 버티지 못 했죠. 김일성은 17일에 이미 금강과 소백산맥 선으로 후퇴, 새로운 방어선을 짜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하지만 북한군이 이걸 제대로 수행하기도 전에 전선이 전체적으로 밀려 버렸죠.

23일에 김일성은 38선 이북으로 총퇴각 명령을 내립니다. 하지만 상황은 이미 끝났습니다. 22일에 인천상륙작전의 결과가 북한군 전 부대에 퍼집니다. 적이 후방에 있다는 것만큼 큰 충격은 없습니다. 맥아더가 인천상륙을 계획한 이유이자 워커가 그렇게 기다렸던 북한군의 붕괴가 시작됩니다.

이 날, 워커는 이렇게 말 합니다.


"우리가 전면의 포위를 뚫고 전진한다면 적은 즉시 패배할 것이다. 제8군으로써는 오늘까지 실로 번민과 고난의 수주일이었다. 이제 우리는 곧 공세를 취할 것이다"

이렇게 아군은 수없이 많은 피와 시체가 쌓인 낙동강을 건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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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07 00:07
수정 아이콘
선리플 후감상 하겠습니다 후후.
사티레브
12/10/07 00:08
수정 아이콘
낙동강부터 압록강까지 글이 몇개나 나올런지 흐으
12/10/07 00:17
수정 아이콘
이런! 7,8 사단 마크가 링크가 깨지는군요~
12/10/07 00:22
수정 아이콘
전쟁사에 관심을 가지고는 있지만, 정말 어렸을때 중학교 시절 도서관에서 읽었던 6.25의 역사라는 시리즈물이나.
아니면 예전부터 가끔씩 보게되는 다큐멘터리물 빼고서는 거의 알수가 없었는데, 항상 눈시님의 글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실, PGR을 찾아오게 된것도 눈시님의 충무공 게시글들 때문이었는데...크크크.

좋은글, 여건이 되시는 한에는 지속적으로 남겨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드릴수 있는건 댓글과 추천밖에 없네요. 크크.

+)항상 글 잘보고 있습니다.
DarkSide
12/10/07 00:25
수정 아이콘
허허 ... 고등학교 1학년 국사 시간에는

"맥아더" 의 "인천 상륙 작전" 이 너무 유명하게 다뤄져서

워커나 게이의 경우에는 제가 그다지 관심있게 초점을 맞추지 못했는데

오히려 이 글을 보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저 둘이 6.25 한국 전쟁에서 더 대단한 활약을 한 것 같군요 ;;
눈시BBbr
12/10/07 00:38
수정 아이콘
그만큼 인천상륙작전의 영향이 크긴 하지만, 그걸 위해서는 낙동강 방어선이 잘 버텨줘야 했죠. 그 방어선을 굳게 지킨 것이 워커이고 9월 이후 대구 방면을 맡은 게 기병사단이구요. 다들 정말 열심히 싸워줬습니다.
다만 미 1 기병사단은 마냥 잘 했다고 보기 힘든 일을 터뜨려 버려서 orz;;;
Darwin4078
12/10/07 02:24
수정 아이콘
브금 넣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크리모사는 참 꾸준하죠. 고딕메탈 스타일로 09년까지 정규앨범을 계속 내고 있습니다.

워커 행님, 맥아더 사진 밑에 무언가 익숙한 문구가 있는 것은 기분탓이겠죠?
swordfish
12/10/07 10:11
수정 아이콘
매카서가 보여준 기준의 모습과 비슷하면 다른 모습이 이시기죠. 강력한 해군력을 통한 병력 우회로 상대방 굶어 죽이기는 맞지만
이는 천천하게 이루어진 태평양과 달리 한국전에서는 공명심에 들떠서 미칠 듯한 기동을 보여 줍니다. 문제는 인천도 애매 한데
그외 기동은 정말 다 쓸데 없었고 오히려 주공의 속도만 늦추는 짓이었죠.
눈시BBbr
12/10/07 17:14
수정 아이콘
똥 마려웠나 봐요 ㅡ.ㅡ
다만 추격전 및 북진 당시의 기동전은 맥아더의 압박도 있지만 기동전을 선호한 워커 자신의 문제도 있었다고 봅니다.
12/10/08 08:43
수정 아이콘
저번 레퀴엠도 좋았는데 이번 선곡도 참 좋네요. 사실 역사는 잘 모르지만 음악은 잘 듣고 가요 헤헤
12/10/08 08:50
수정 아이콘
아 듣다보니 메탈이네요 멜로딕 스피드 메탈 비슷한건가...
blue wave
12/10/08 14:57
수정 아이콘
워커 짱 멋있군요...... 뚝심있고 용장 스타일의 장군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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