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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8/15 17:01:06
Name 눈시BBver.2
Subject [일반] 낙동강 - 1. 뚫느냐 막느냐

낙동강 방어선은 크게 미군이 맡는 수직의 X선과 국군이 맡는 수평의 Y선으로 이루어집니다. 일단 이게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죠.

이 때 가장 큰 문제는 서쪽에서 거침 없이 찔러 들어오는 6사단과 4사단이었습니다. 대체 이 규모가 어떻게 되는 건지 파악도 못 하고 패배만 거듭하던 미군은 7월 31일에야 이들의 규모를 알게 되었죠.

도착하는대로 병력을 던지는 게 의미가 없다는 건 이미 충분히 알게 된 상황, 충분한 전투력을 보유한 미군을 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 미 1 기병사단과 25사단은 상주 방면에서 지연전을 계속하고 있었고, 부산에 계속 도착하는 병력을 던져봐야 똑같은 결과만 낳을 뿐이었습니다.

워커는 결국 25사단을 투입한다는 결정을 내립니다. 하지만 이미 한참 늦은 상황이었습니다. 25사단은 하루만에 김천에서 마산까지 240km를 이동해야 했습니다. 이들에게 철도 및 도로 사용에 대한 우선권이 주어졌고, 그 동안 1 기병사단은 단독으로 북한군의 공격을 막아내야 했습니다.

다행히 북한군의 공격은 없었습니다. 이 방면으로 오고 있던 북한군 3사단이 UN 공군의 집중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게 됐거든요. 그 사이 25사단은 36시간만에 240km를 이동하는데 성공합니다. 아무리 6사단이 강하게 밀고 온다 해도 제대로 준비를 갖춘 미군을 상대하기는 어려웠습니다.

6사단의 호남우회기동을 "가장 성공한 기동"으로 평가한다면, 이 미 25사단의 기동은 "나라를 구한 기동"으로 평가합니다. 북쪽의 북한군은 이제 막 안동을 점령한 정도로 부산까지 가기는 너무나 멀었고 지형도 좋지 않았습니다. 반면 마산-진해-김해-부산으로 가는 길은 낙동강만 넘으면 쉽게 부산을 공격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워커 중장은 이 서쪽에 모든 미군을 집중합니다. 북한군의 전술은 미군을 포위해서 쌈싸먹는 것, 반면 역시 개활지에서의 화력은 북한군이 미군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미군에게는 산보다 강이 막기에 더 좋았습니다. 마침 서쪽이 개활지였기에 미군의 우수한 화력을 동원하기도 쉬웠구요. 하지만 낙동강만 쭉 따라가면 부산이라서 25사단은 마산에서 적과 직접 마주해야 했습니다.

정말 엄청난 기동을 보여준 6사단이었지만 이렇게 미군이 강력한 방어선을 만들 시간을 준 것은 참 치명적이었습니다. 이들이 전남의 항구를 차지하지 않고 광주 같은 도시에도 눈길을 주지 않고 달렸다면 최소 2일부터 최고 5일까지 먼저 마산에 도착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러지 않았죠. 전남을 전부 차지하기 위해 "안 한" 것인지 해상으로의 보급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인지는 확실히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일단 후자 쪽이 우세한 모양입니다.

마산부터 왜관까지, X선의 길이는 120km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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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거 계속 쓰기 ( - -)

한편 국군은 내려오던 그대로 방어선에 안착합니다. 예비진지가 만들어지고 있었고, 이들 역시 도착하자마자 방어선을 강화할 준비를 합니다. 맨 좌측의 1사단부터 6, 8, 수도, 3사단 순이었죠. 이들은 경북의 산악지대를 맡습니다. 그 범위 역시 120km, 낙동강 전선은 이렇게 240km의 방어선으로 시작합니다.

이렇게 방어선이 짜인 이유는 첫째, 일단 미군이 급속히 악화돼 가던 서부전선에 병력을 급히 투입한 것에 있습니다. 상주-영덕 선은 아직 부산에서는 멀었지만 마산은 곧바로 부산이었으니까요. 둘째, 병력을 섞거나 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팀전을 할 때 제일 힘든 건 양측의 의사소통입니다. 국군이 미군을 배워가고 있었지만 양측의 전투 방식은 아직 너무도 달랐고,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았죠. 국군은 국군끼리, 미군은 미군끼리 놀아야 그나마 잘 싸울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북한군은 주공을 국군과 미군의 사이, 왜관-다부동 방면으로 잡습니다.

셋째로는 이 지형이 양측에 유리했기 때문이죠. 화력으로 밀어붙이는 미군은 개활지가 편했고 지형에 익숙했던 국군은 산악지대가 편했습니다. 미군이라면 몰라도 국군은 화력으로 따지면 북한군에 여전히 밀렸죠. 그나마 UN 해공군의 지원 덕에 이건 좀 낫긴 했습니다만.

이렇게 낙동강으로 방어선을 좁힌 효과는 바로 나타났습니다. 북한군의 장기는 밤을 이용한 후방 포위 작전, 하지만 아군이 최대한 밀집하면서 이게 어려워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북한군은 계속 그 전술을 시도했고 성공하기도 했지만, 최소한 이전보다는 나았죠.

가장 컸던 것은 보급선이 너무나도 길어진 것이었습니다. 병력도 줄 만큼 준 상태에서 남북한의 장정들을 최대한 동원했지만 UN 공군의 폭격에 큰 피해를 입어 갔죠. 처음에는 지원으로 했던 것이 갈수록 강제가 돼 갔고, 전투력은 약해져 갔습니다. 여기에 8월 말이 되면 보급도 눈에 확연히 보일 정도로 줄었구요. 반면 아군은 교두보만 지킬 수 있다면 미군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오는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때 이미 병력은 양 측이 7~8만 정도로 비슷해집니다. 북한군은 38선부터 여기까지 오느라 지칠대로 지쳤고, 신병은 훈련도와 의지가 기존의 정예 병력보다 약해질대로 약해졌습니다. 공간을 주고 시간을 버는 것이 성공한 것이었죠.

이제 문제는 역시 시간이었습니다. 북한군이 약화됐다 하나 국군 역시 약화될대로 약화됐고, 국군 역시 징병을 시작하게 됩니다. 미군은 뒤이어 올 증원군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미군은 북한군에게서 겪은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태평양 전쟁 개전 때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을 이겨내고 북한군을 압도할 병력과 화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국군은 투지야 아직 왕성했지만 병력과 화력 면에서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었습니다.

미군은 국군을 불신했습니다. 이들에게 국군은 도망치기에 급급하고 제대로 싸울 줄 모르는 전근대적인 군대에 불과했습니다. 국군이 보내주는 정보는 일단 무시하고 봤고, 자기들이 직접 얻는 정보만을 신뢰했죠. 이 때문에 곳곳에서 불협화음이 계속됩니다. 국군 역시 미군을 불신했습니다. 이 때 미군은 워커 라인이라 불리는 낙동강 전선 후방에 울산-밀양-진해로 이어지는 데이비드슨 라인을 정합니다. 이 선은 부산 교두보를 방어하기 위한 선이었지만, 적의 공격이 계속된다면 이 선은 방어를 위한 선이 아니라 철수하는 미군을 엄호하는 선일 뿐이었습니다. 실제 북쪽에서 계속 밀려나면서 미군은 비공식적으로 New Korea 계획을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만약 여기까지 밀렸다면 그건 현실이 됐을지 모를 일입니다. 최소한 이 때 국군은 그렇게 느꼈습니다.

이런 불신이 꼭 나빴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이 때문에 서로 "점마들은 믿을 수 없으니 우리가 죽을 때까지 싸워야 된다"고 여겼으니까요. 하지만 합동작전에 있어 이건 치명적이었습니다. 전투가 계속되면서 슬슬 연합작전도 펴고 양 측의 군대가 섞여가기도 했지만, 아직 신뢰를 얻기엔 한참 먼 상태였습니다.

미군은 한국을 지키기 위해 더 이상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북한군 공포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강을 방어선으로 삼는만큼 반격 역시 어려웠습니다. 국군은 이런 미군에게 신뢰를 주고, 더 많은 증원군이 올 때까지 자기 지역을 지켜야 했습니다. 미군이 단 한 명이라도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미군은 이런 국군이 더 잘 싸울 수 있게 물자를 최대한 지원해야 했습니다.

딱히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한미 연합군은 슬슬 제대로 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다른 나라의 증원군은 오지 않았습니다. 낙동강 방어선을 지킬 것은 국군과 미군 뿐이었습니다.

8월이 시작됐습니다. 북한군의 8월 공세 역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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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북한군은 11개 사단, 1개 전차사단, 1개 독립연대로 구성됐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간단했습니다. 우선 국군 1사단과 미군 1 기병사단이 맡은 X와 Y선의 교차점에 4개 사단을 집중하는 것이었죠. 그 외의 전선에서는 각 1개 사단씩을 배치, 공격하고 뚫리면 그 곳에 병력을 집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전선에서 격전이 계속됐기에 그냥 지역별로 얘기하는 게 나을 것입니다. 이건 크게 서부전선과 동해안, 그리고 적의 주공이 집중된 왜관-다부동으로 나뉩니다. 우선 동해안으로 가 보겠습니다. 그 이유가... 여기가 가장 먼저 뚫렸거든요 - -; 거기다 저번 편이랑 연결할 수도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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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army.mil.kr/history/참고/그림/8월경과.html

안동에서 큰 피해를 입으며 후퇴했던 8사단과 수도사단은 각기 의성과 청송에 자리잡습니다. 미군은 이들을 도로에 따라 배치했고, 국군 역시 이에 따랐죠. 하지만 큰 문제가 곳곳에 있었습니다. 일단 안동에서 후퇴하면서 너무 큰 피해를 입었고, 다들 지쳐 있었다는 것이죠. 아직 철수하지 못 한 병력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정면은 강이 없었습니다. 산악지형은 그 동안 국군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지만, 이는 북한군에게도 마찬가지였죠.

북한군은 의성의 8사단에 맞서 자기네 8사단을 투입했고 국군이 이들에 집중하는 사이 12사단을 우회하게 합니다. 그 동안 8사단과 수도사단 사이의 구수동에 소규모 적이 침투합니다. 그들의 목표는 수도사단 18연대 지휘소였습니다.

8월 5일 08시 쯤, 연대장 및 참모들이 식사를 하려는 순간 근처에서 교전이 시작됩니다. 참모들이 직접 나서서 막아내긴 했지만 적은 계속 들어오고 있었죠. 부연대장 한신 중령도 직접 장갑차를 타고 가다가 적을 만나 교전하고 돌아오기도 했죠.

18연대는 포위망이 형성되기 전에 8사단이 맡은 의성으로 후퇴하려고 했지만 이미 도로는 막혀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16시에 대규모 병력이 발견됩니다. 문제는 이들이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었던 것이었죠. 이런 혼란이 계속되면서 20시에는 막무가내식의 철수가 시작됩니다. 모든 차량과 보급품을 버린 패주였습니다.

수도사단장 김석원은 18연대를 구출하러 휘하의 다른 두 연대를 투입했지만, 이런 건 북한군의 작전에 말려드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이들의 문제가 하나 더 있었거든요.

수도사단과 동해안을 맡고 있던 3사단 사이에는 넓은 간격이 있었습니다. 작은 도로가 있긴 했지만 아군은 설마 이곳으로 들어올까 하면서  무시했죠. 이 틈을 적 12사단의 주력과 산을 행군해 온 766부대가 침투해 옵니다.

딱 이 시기, 영덕을 맡던 3사단에도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갑작스런 적의 기습에 후방의 다리를 폭파해 버린 것이죠. 그 북쪽엔 여전히 아군이 남아 있었고, 이 다리는 이들에 대한 유일한 보급로였습니다.

12사단의 우회 기동 및 766부대의 진격과 비슷한 때인 걸 보면 공포가 전염된 거라고 생각하는 게 맞을 듯 합니다. 북쪽의 공격만으로도 버거운데 적이 아군의 측면으로 오고 있다고 생각한 상황일 테니까요.

이렇게 동해안 전선에는 거대한 구멍이 생깁니다. 북한군은 산을 열심히 행군해 무려 40km나 되는 돌파구를 만들어 버리죠. 허가 찔린 것이었고 병력도 부족한 상황이니 이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문제는 각 사단 사이는 물론 각 부대 사이에도 간격이 너무 넓었고, 이에 대한 대책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북한군에겐 최상의 환경이었죠.

김석원은 이 일로 인해 8월 7일 수도사단장에서 잘립니다. 안 그래도 그를 싫어했던 군 수뇌부에게는 참 좋은 기회였습니다. 김석원이 이 전투 때 제대로 대응 못 한 것도 사실이구요. 이건 더 나아가서 동해안 지구를 맡던 1군단 자체의 문제로 번집니다.

한편 이 때를 계기로 완전히 해체된 부대가 있었으니, 국군의 기병부대였습니다.


이들을 이끌던 장철부 소령은 낙동강에서의 후퇴 후 전선 곳곳을 누비며 정찰과 기습을 반복해 왔습니다. 국군은 물론 미군도 후퇴 과정에서 이들이 적의 후방, 특히 포병대를 찔러주면서 도움을 받기도 했죠. 하지만 그만큼 아군의 피해도 커져 갔고, 보급도 어려워지면서 보유한 말도 떨어져 갔죠.

이들은 8월 4일 낙동강 전선에서 경찰병력과 함께 766부대를 상대했고, 곧 포위되었죠. 그 역시 부상을 당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적 12사단 역시 조선의용군 출신이 많았던 부대, 투항 권고가 계속됩니다. 독립운동가 출신이었던 그가 투항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겁니다. 적 중에서도 일제에 맞서 같이 싸웠던 이가 많았구요. 나라가 이 꼴이 된 상태에서 자기 목숨도 경각에 달했으니 딴 생각이 얼마나 들었을까요.

하지만 그는 이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죽는 것을 선택합니다.

무심한 솔바람이여 / 너는 알고 있는가 / 내 슬픈 눈물 / 내 붉은 피는 /누구를 위해 흘렸는가
오! / 조국이여 나의 사랑하는 조국이여
내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라 / 내 붉은 피는 역사의 불꽃이 되어 / 밤하늘에 찬란히 피어나리

- 장철부 중령 추모시


그의 죽음과 함께 국군 기병대는 전멸했고, 살아서 빠져 나간 이들이야 있었지만 더 이상 군마를 충원할 수 없었습니다. 거기다 미군의 기갑 전력이 계속 들어오면서 기병대 자체의 필요성도 사라졌죠. 이후에도 수송 수단으로 말을 쓰기는 했지만 기병대의 짧은 역사는 이것으로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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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북한군 12사단의 우회기동은 한국전쟁의 아르덴 전투로 불리...는 경우도 있는 모양입니다. 뭔가 참 놀라운 기동이지만, 넋 놓고 볼 틈은 없었습니다. 수도사단이 꽤 피해를 입긴 했지만 전멸 수준은 아니었고 미군부터 1, 6, 8 사단은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군 방어선을 뚫고 들어온 적을 최대한 격퇴하면 되는 문제였죠.


총사령관 정일권은 1군단장 김홍일과 의견을 나눈 후 대담한 결정을 합니다. 들어온 부대는 예비대 및 전방의 병력을 빼서라도 포위 섬멸하고 북쪽의 전선 자체를 축소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포항지구전투사령부"가 만들어집니다. 수도사단에 배치돼 이동 중이던 17연대가 여기에 소속됐고 이들에게 경주 북쪽, 포항 서쪽의 안강-기계 일대로 급히 진군하라는 명이 떨어집니다. 북한군 12사단의 포항, 경주 도착이 빠르냐 이들의 안강-기계 도착이 빠르냐의 문제였습니다. 미군 역시 3사단의 퇴로를 확보하고 연일비행장을 방어하기 위해 없는 병력을 쥐어짜 브래들리 특수임무부대를 구성, 포항으로 보냅니다. 다만 이들은 중간중간 북한군에 끊겨서 (...);

한편 이들의 퇴로 차단은 수도사단에 맡겨집니다. 이 때 김석원 대신 수도사단장이 된 것은 17연대장이었던 백인엽, 딴 건 몰라도 용맹이라면 의심할 필요 없는 이였습니다.



11일을 기점으로 국군은 방어선을 뒤로 물렸고, 이들의 정면은 100km로 축소됩니다. 늦었지만 옳은 결정이었습니다. 북한군에게 들어올 틈을 주지 않는 게 제일 중요했고 국군에게 그럴 병력은 없는 상태였으니까요. 이제 들어온 적을 빨리 내쫓고 방어선을 다시 강화하는 게 급선무였습니다.

다음 편은 이 때 있었던 슬픈 전투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공간 남으면 다른 얘기도 좀 해 보구요.

7월 25일 화요일 쾌청.
동아빌딩엘 갔다. 학도의용대 본부는 2층에 있었다. 학도병 지원서에 날인을 했다. 벌써 많이들 모였다. 효신이 아버님께 인사를 하고 돌아서면서 만수무강을 빌었다. 마음이 무겁고 답답하다. 쾌청한 하늘과는 달리.

7월 26일 수요일 쾌청.
학도의용대라는 완장과 태극 마크를 그린 흰 띠를 받았다. 이로써 나는 학생이 아닌 병사가 된 것이다. 이제 적과의 싸움만이 나의 전부다. 용감한 학도병이 될 것을 다짐했다. 병사는 전투를 통해서만 그 생명의 불꽃이 찬연히 빛날 것이다.


8월 10일
황기태는 애인 자랑을 곧잘 하지만 나도 아끼는 소녀가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그 눈매 고운 소녀가 생각난다. 언제나 잘 손질한 세일러복이 멋있었고 고개를 숙이고 치켜뜨던 그 눈매가 명멸하여 나를 사로잡았다. 전쟁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면 그 때 그 소녀에게 말하리라. 전쟁에서 공훈을 세우고 돌아온 영웅처럼 그녀에게 나의 무용담을 들려주겠다면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후 3시 포항여중 강당으로 옮겼다. 초등학교 교실보다는 역시 여자 중학교의 강당이 마음에 든다. 뭇 소녀가 여기서 노래하고 춤추었을 것이다. 희고 예쁜 얼굴을 가진 여학생들이 웃고 떠들고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 ... 한창 좋을 때죠. 그리고... 사망 플래그죠.

포항여중 전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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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레브
12/08/15 17:08
수정 아이콘
기병부대는 건십으로 업그레이드를...
는 개소리고
밀양방어선은 처음보네요
눈시BBver.2
12/08/15 17:11
수정 아이콘
저 밀양 방어선이 데이비드슨 선입니다. 저기까지 밀렸다면 진짜 어떻게 됐을지 모를 선이죠. 다행히 안 밀려서 "밀렸다면 어떻게 됐을 것인가"는 IF지만,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대체적으로 한국을 포기했을 거라는 예측을 하죠. 맥아더나 워커를 보면 그래도 버텼을 것 같지만 미국 본토에서는 8월 말쯤엔 포기하자는 말이 비공식적으로 나오긴 했습니다
그리고 업그레이드하고 싶은데 전멸해서 지금도 한국은 헬기가 부족한 모양입니다(?)
stargazer
12/08/15 17:17
수정 아이콘
낙동강 방어선이면 박진 전투도 나올까요?
레기아크
12/08/15 18:05
수정 아이콘
첫줄에 혹시 잘못 쓰신거 아닌가 싶은데... 수평의 x축과 수직의 y축 아닌가요? 반대로 쓰신거 같네요..
12/08/15 18:11
수정 아이콘
눈시님글은 잘쓰여진 교양서적을 읽는것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달리자달리자
12/08/15 18:14
수정 아이콘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추천 꾹 누르고 가요!
자이체프
12/08/15 19:56
수정 아이콘
제가 좋아하는 추리소설 중 하나가 바로 '유태인 비밀경찰'입니다. 이스라엘이 세워지지 않고, 유태인들이 엉뚱한 곳에 정착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죠. 한국전쟁때 한반도가 북한군 손에 넘어갔다면 망명정부는 어디에 세워졌을까요? 일본? 제주도? 태평양의 어느 섬?
드라고나
12/08/15 21:05
수정 아이콘
백인엽. 딴 건 몰라도 제멋대로 즉결처형 남용과 비리로 자기 형 얼굴에까지 똥칠한 인간인 건 분명하죠.
눈시BBver.2
12/08/15 21:08
수정 아이콘
그것 때문에 두고두고 잘근잘근 씹고 싶은데 한국전쟁 얘기하면서는 힘들 것 같네요.
그래도 즉결처형 남용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보다 보면 어이가 없어서 - -
Je ne sais quoi
12/08/15 23:20
수정 아이콘
에고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자세히 알게 되면 기분이 더 안 좋아지는 건 왜일까요..
blue wave
12/08/16 10:55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전장이라는 게 무섭군요. 한번 방어선이 뚫리면 대책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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