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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3/29 14:48:46
Name nickyo
Subject [일반] 박물관 만찬


대통령 여사님이 박물관에서 벌인 일로 시끌벅적하다. 사실 나도 박물관이란 장소에대해 근무지 배정이 없었다면 밥 먹는게 무슨 문제가 싶기도 했을터였다. 근데 반년 넘게 '박물관'이라는 장소에 있게되면서, 나는 이 장소가 생각보다 무서운 곳임을 알게되었다.


20년이 된 전시실은 상당히 노후해있었다. 물론, 일반인은 알 수 없는 수준의 노후화였지만 관련 부서 직원들은 새로운 개축 공사를 위해 3개월을 잠을 줄여가며 기획하고 일했다. 유물을 옮길때도 그 무거운 것들을 하나하나 조심스레 옮겼다. 행여나 안좋은 영향을 미칠까 싶어서. 사실 '저렇게까지 공을 들일 일인가'싶었는데, 그 생각이 딱 나의 인문학적교양을 나타내 주는 것 같았다.



어느날 문득 그런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옛날이 아닌 어제조차 돌아갈 수 없다. 어제는 지나버린 역사가 된다. 어제가 뭐람, 단 한시간 전으로도 돌아갈 수 없는게 이 세상이다. 점심에 짜장면을 먹었는데 맛이 없어서 짬뽕으로 다시 먹고 싶다한들, 돈데크만이나 도라에몽이 없다면 그럴 수 없다. 맨날 보는 전시실을 터벅터벅 걸으면서 보았다. 저건 진짜 그 시대에 있었겠구나.



사무실 책장에 꽂아둔 국사책을 펼쳤다. 휘리릭하고 책장을 적당히 넘겨본다. 이 한권의 책으로는 다 표현못할 시대의 삶들이 있었을 것이다. 시간을 오로지 흘려보낼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은 그저 그 순간을 미래로 전해줄 수 밖에 없었다. 생과 사로 시간을 새긴 시대의 저편에서, 그럼에도 남겨져 넘어온 것들이 이 곳에 있다.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박물관 직원은 박봉인데 왜 하지 라거나, 이 지루한 공간에 누가온다는거야, 쓸데없는 짓이야 같은 마음 한 구석의 편견들이 씻겨져 나가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돌아갈 수 없을 그 시대를, 이들은 증거로서 보여준다.



그렇기에 박물관의 유물이란 우리가 이 시대에 잠시 맡아두는 것에 불과하다. 인류가 살아가는 동안, 영원히 그 역사를, 그 시대를 표현해줄 증거물들이다. 사람들이 이 유물들을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운이 너무나 좋다고 해도 될 만큼 행운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우리는 이런 역사의 증거물들을 소중히 다뤄야한다. 우리의 것이 아니므로. 그것은 그저 함께 시간을 흘러 전해질 것이므로.



트위터에 중앙박물관을 설계한 분이 직접 그 만찬을 보고 말했다. 자신들은 아직도 그 박물관을 지으면서 고심한 나날들이 생생하고, 그래서 여전히 전시실에 들어갈 때에도 신발을 벗어야 할 것 같은 강박을 느낀다고.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그 곳에서 어떻게 음식냄새를 풍겨가며 유물을 안주거리로 씹을 수 있냐고. 플래쉬를 빵빵 터트리고 음식냄새를 배게 할 거면 뭐하러 그렇게 습도와 조명과 위치와 그 많은 것들을 고려하라고 한 거냐고. 내가 느낀 부당함은 그의 분노에 비하면 가짜라고 해도 될 만큼 가벼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분의 분노를 공감하지 못할 일도 아니었다.




중앙박물관에는 분명 잘 꾸며진 레스토랑이있다.




그저 권력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했다면, 그 졸렬함에 절망을 느낀다. 어쩌면 저렇게 끼리끼리...
인문학의 소양을 국영수보다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게 하기위한 스스로의 몸을 던진 몸부림인가 라고 해도 싶을만큼..
거기 초빙된 외국인들은 무슨 마음이었을까.

외규장각 반환을 요청하자 그걸 관리하던 프랑스 박물관 관장인지 사서인지가 울면서 말렸다고 한다. 그들에게 역사란 무사히 넘겨주어야만 하는 것이었는데, 이런 꼬라지를 보면 얼마나 불안했을까.



역사는 시민의 것도 권력자의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저 흘러온 시대의 증거를 조심스레, 다음 시대에 인류가 지나온 나날들이 거짓이 아님을 전해줄 의무가 있다. 그런면에서 이번 만찬은, 방송심의에 걸릴만한 욕을 면전에두고 침으로 목욕을 할때까지 하고싶은 사람이 한 둘은 아니었을테다.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 두고두고 조롱을 당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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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는가라
12/03/29 14:56
수정 아이콘
무개념여사는 진작 포기하긴 했지만..
진심으로 이 정권의 개막장을 보는듯 합니다.

무엇을 하든 상상 그 이상이네요.

투표근이 너무 근질근질 해서 살 수가 없습니다. ㅠㅠ
(Re)적울린네마리
12/03/29 15:01
수정 아이콘
여기에도 믿거나 말거나 한 스토리가 있더군요.
G20회의때 박물관장이던 인사가 아이디어를 내어 훌륭한 만찬을 개최하고 그 덕으로 문화재청장, 문화부장관에 초고속으로
오르더니 은혜에 보답코자 다시 한번 개최했다는...


미국 개인및 재단 소유의 민간미술관의 후원행사를 다른나라에서도 이렇게 함.. 이라고 떡하니 해명하는 꼴이 우습네요.
9th_Avenue
12/03/29 15:02
수정 아이콘
동감합니다. 그게 오히려 현 영부인이라서 오히려 막말하기 어려운 점이 있더군요.
정치색에 따른 비난이라는 시선이 부담스럽거든요.

정부입장에서는 중요한 행사이니 격에 맞게 멋지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겠지요. 박물관에 있는 유물이 단지 국가의 소유물로만 바라보는
정권의 시선이 무척 불편합니다. 마치 유물들을 소유한 것처럼 착각하는 그 태도가 무척 맘에 들지 않습니다. 관리할 의무를 망각하고 그 권한을 소유로 착각하는 태도가 불편하구요.

굳이 좋은 글에 한가지 삐딱한 시선을 보내자면 외규장각의 반환을 거부한 사서들의 태도는 그것을 소중히 여기든 그렇지 않든 도둑질한
물건을 마치 제 것인양 착각하는 도둑놈의 온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물을 아무리 애지중지한다고 한들 장물아비의 탐욕입니다.
비유인 것을 알고 있지만 그냥 불편한 감정을 숨기기 힘들어 그냥 끄적여봅니다.
12/03/29 15:06
수정 아이콘
영부인도 참 천박한 졸부스럽더군요. [m]
새강이
12/03/29 15:07
수정 아이콘
진짜..끝판왕입니다 허허허허
그리메
12/03/29 15:08
수정 아이콘
설마 영부인이 직접 기획했을까요? 어느 돌대가리가 아부하려고 이런 기획안을 냈겠죠. 그걸 좋다고 하는 영부인이나 그걸 기획한 인간이나... 각국의 영부인들이 모라고 생각했을까 싶네요.
PoeticWolf
12/03/29 15:09
수정 아이콘
나름 어느 누구도 까지 않는 입장을 고수해오고 있기 때문에 보통은 남모르는 사정이 있었겠거니... 하고 넘어갔는데..
이 여사님과는 같이 작업을 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사실 마음이 전혀 안 갑니다.
그래서 여태까지 유지해온 균형감각을 잃고 어제는 이 기사를 보고 걍 '또 한 건 하셨구만'이라고 했네요.

세계 다른 나라에서도 한다, 선례가 있다...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다... 설명이 많이 있었지만 그냥 이건 무식한 행동 같습니다. (법을 어긴 것 같지는 않지만요..)
다른 나라에서 했다면, 그건 그 나라 관리들도 무식한 거 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본문에 적힌 그대로고요.

속 시원히 잘 읽었습니다.
등짝이가살아나야제.
12/03/29 15:10
수정 아이콘
정말 졸부틱하네요 진짜 투표근이 근질근질합니다..(2)
XellOsisM
12/03/29 15:12
수정 아이콘
역사에 관심있고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정말 울화통이 터지더군요..
Dornfelder
12/03/29 15:13
수정 아이콘
문화제라는 것은 보존하고 후대에 물려줘야 하는 것인데, 그것을 품위를 과시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다는 사고 방식을 갖춘 자가 권력을 가지면 이런 참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저기서 식사를 하던 귀빈들이 과연 한국의 문화제는 과연 아름답구나라고 생각했을까요. 아니죠, 이 나라 놈들은 우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이런 짓도 하는 호구들이구나라고 생각했겠죠.
12/03/29 15:15
수정 아이콘
부창부수 [m]
에어로
12/03/29 15:18
수정 아이콘
어차피 유리막이 있어서 훼손 염려 없다. 라는 박물관장의 궁색한 변명이 있기는 했네요.
훼손 염려 없으므로 관람객들의 음식물 반입, 사진 촬영 다 허용해도 될텐데... 그렇게 안하는 이유는 뭘까나.
앉은뱅이 늑대
12/03/29 15:18
수정 아이콘
저는 저 사람들을 볼 때마다 '참 어울리는 한쌍이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12/03/29 15:19
수정 아이콘
진짜 졸부라는 말이 잘어울리는 행동이죠.. 나는 권력이 엄청나니 역사고 유물이고 내 소유다 라는 마인드였겠죠.
앞으로 일반인이 박물관에서 플래쉬터트리며 사진찍고 음식물반입하는걸 제제한다면 박물관측은 권력>>>유물 을 택한게 되겠군요.
12/03/29 15:27
수정 아이콘
음식물 반입 시위라도 한 번 할까 싶네요. 저 같은 서민도 역사적인 유물을 보며 식사를 하는 호사를 누려보고 싶은데...
스치파이
12/03/29 16:08
수정 아이콘
사진만 봐도 고개가 절래절래 저어지네요.
클레멘티아
12/03/29 17:25
수정 아이콘
글쎄요..... 이건 본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릎팍 도사의 "유홍준" 교수님 편이었습니다.
링크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11&aid=0000086235
이 무릎팍 도사에 이런 말이 나오죠.
다른 나라들 역시 국제 대회 마지막 만찬은 고궁이나 박물관 로비에서 한다"며
"국빈 대접을 한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라고 덧붙였다. 더불어서
"외국 손님들에게 우리의 위용을 보여주는 것이 문화재가 가진 본 뜻이다" 라고 반박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를 쓰신 분이신데, 그 분도 단순 자신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문화재를 팔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관점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무턱대고 MB쪽이라고 "권력에 대한 과시"로 해석되는 것은 조금은 지양해야 하지 않나 싶네요.
루크레티아
12/03/29 17:28
수정 아이콘
프랑스 사서가 우리나라의 문화재 보호 현실이 한심해서 울었을지, 그냥 주기 싫어서 울었을지는 아무도 모르죠.
물론 아무리 봐도 후자 같습니다만.....정부에서 정책 정해서 반환하라고 명령을 하는데도 월급 받는 공무원들이 태클 걸고 거부하는 것이 소위 말하는 '부정에 항거하는 행위'로 보이기 십상인데, 본문은 약탈한 문화재를 본주인에게 돌려주자는 것에 태클을 거는 행위를 저렇게 해석하신 것으로 읽히는군요.
12/03/29 18:05
수정 아이콘
외규장각은 걍 주기 싫은거죠
도둑놈의 자식들이 뺐어간 거 돌려주기 싫어서 그랬을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봅니다.
누렁쓰
12/03/29 21:39
수정 아이콘
외규장각 건은 당연히 주기 싫은 마음이 컸을겁니다. 다만 그가 양심에 털이 났건 안났건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프로 의식 면에서는 인정해줘야 합니다. 문화재 반환 건으로 사표를 던지는 직원들이 있는 박물관 전시실에서 높으신 분들 식사할 수 있을까요? 글쓴이께서 하신 말씀은 그런 의미이지 싶네요.
내일은
12/03/30 01:58
수정 아이콘
로비라면 괜찮다고 봅니다. 밥 다먹고 안내원 따라서 전시실 관람하다 가면 되는거니까요.
그런데 전시실이라니요... 그것도 기획전시실. 한마디로 문화유산을 인테리어 삼아 밥먹겠다는거 아닙니까. 입에 음식 우적우적 넣으면서 역사 깊은 나라가 자랑하고 국가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문화유산을 감상한다는게... 싸만코바밤바 말이 된다고 보십니까? 이건 국격이전에 예의 입니다.

문화유산에 끼칠 여러 부정적인 영향을 둘째치고 개인 소장품도 아닌 중박 소장 중인 문화유산을 식당 인테리어로 삼는다는 천박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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