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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12/21 06:20:52
Name 눈시BBver.2
Subject [일반]  백제 vs 신라 (8) 마지막 불꽃

1. 서동
위덕왕의 뒤를 혜왕이 잇고, 이어 법왕이 잇죠. 그 뒤를 이어 일단 법왕의 아들이라는 무왕이 뒤를 잇습니다. 삼국유사에서 서동이라 하는 에어... 아니 부여장이죠.

그가 정말 법왕의 아들인지부터 그가 정말 서동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정말 많은 이견이 있습니다. 당장 일본서기에는 아좌태자라는, 일본에 가 있던 위덕왕의 아들이 나옵니다. 쇼토쿠 태자의 초상화를 그려줬다고 하죠. 원래 태자들이 일본에 가 있었으니 위덕왕이 죽었으면 당연히 왕위에 올랐어야 했습니다. 헌데 그 동생이라는 혜왕이 올랐죠. 삼국유사에서 무왕의 출생에 대해 "용의 아들"이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 아버지를 신비한 존재로 몰 때는, 최소한 정통은 아니었다는 거겠죠. 위덕왕의 자식이라든가 (이렇다면 뺏긴 정통을 다시 찾았겠죠) 전북익산!으로 천도하려 했다는 걸로 보아 그 쪽 귀족 출신이 아니었나 하는 주장까지도 나옵니다.

그가 정말 서동인지로 가면 뭐 -_-; 끝이 없죠. 미륵사를 지은 것 같긴 한데 탑을 들어냏고 보니 왕비는 "사택"씨로 나오구요. 어디서 혼란이 있었나 정말 선화공주가 있긴 했나 후처였나 첩이었나 다른 왕들이랑 헷갈렸나...... 끝이 없습니다. =_=; 끝이 없으니 그냥 엔하위키 링크만 띄우겠습니다.

http://www.angelhalowiki.com/r1/wiki.php/%EC%84%9C%EB%8F%99%EC%9A%94

참고로 신라에는 선덕여왕이 있었으니 선화공주랑 결혼한 게 맞다면 그는 자기 처형을 그렇게 괴롭힌 겁니다. (...) 선화공주는 셋째 딸이고 선덕여왕은 첫째나 둘쨰라 하거든요. 물론 그 아들 의자왕은 자기 이모를 그렇게 괴롭... 끝이 없군요 -_-; 어쨌든, 참 거대한 스캔들의 주인공이 맞을진 몰라도 이 정도 하고 넘어가죠.

2. 무왕의 치세
좋게 보면 스캔들이고 나쁘게 보면 로맨스(아 반대인가요)인 훈훈한 설화와는 달리 그는 집권하자마자 신라를 가멸차게 공격합니다. 여기서 신라는 끝도 없이 밀려난 것으로 보이죠. 대체적으로 그 위치는 경상도 쪽으로 비정되고 있습니다. 옛 가야지역이죠. 이 줄기찬 공격에 대한 위기는 선덕여왕 때 잘 알려진 설화로 잘 알 수 있습니다.

선덕여왕의 능력을 알려주는 설화는 세 가지가 있죠. 첫째는 모란꽃은 향기가 없을 거라고 한 것, 세 번째는 자기 죽을 날을 안 것, 두 번째가 바로 옥문지에서 개구리가 우는 것을 통해 백제군이 쳐들어온 것을 안 것입니다. 그것을 설명하길 "개구리가 노한 건 병사고 옥문은 여자의 거기다 (...)" "남자 건 여자 거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는다. 그러니까 쉽게 죽일 수 있다."

................. 어머머 (...)

자, 자,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고 -_-; 문제는 이 여근곡이 경주에 있는 계곡이라는 거죠. 여기까지 백제군이 쳐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삼국사기에도 비슷한 기록이 있는데, 636년의 일로 다만 여기서는 옥문곡으로 나옵니다. 합천에서 상주 사이의 어느 땅인 걸로 비정되죠. 이렇게 봐도 백제군은 신라 코 앞까지 쳐들어온 겁니다.

북쪽에서는 고구려가 평원왕 때부터 한강 회복을 노렸습니다. 어느 정도까진 막아낸 신라였지만 진흥왕 이후 빼앗은 함경도쪽 영토는 물론 강원도의 최중요 지역이던 하슬라, 강릉까지도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무왕은 외교적으로도 괜찮은 능력을 보여줍니다. 왜와 친목을 계속 다지면서 수나라에 고구려를 치기를 다시 요청했고, 자신도 남쪽에서 도울 듯한 형세를 보입니다. 하지만 위덕왕과는 다르게 사태를 계속 관망하면서 고구려와도 틀어지지 않죠. 결국 수 양제의 원정이 실패한 후 자신도 군사를 돌립니다.

수나라를 이은 당나라에도 지속적으로 조공을 바치며 친해집니다. 문제는... 627년 당이 신라와 화친할 것을 요구했다는 점입니다. 일단 알겠다고 한 무왕이었지만 신라를 치는 걸 멈추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건 그 아들 역시 마찬가지였죠.

당나라에 아들들을 유학보내며 유교를 받아들이고, 미륵사를 세우며 불교도 융성하게 했으며, 이런저런 대규모 공사를 일으키는 등 무왕은 백제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립니다. 뭔가 너무 공사만 많이 한 것 같긴 하지만, -_-; 성왕 이후 넘사벽이 된 신라를 따라잡고 오히려 더 밀어붙이게 된 것이죠. 그 아들 역시 유능했으니, 이대로만 갔으면 삼국의 판도가 또 바뀌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이대로만 갔다면요.

3. 여왕의 그림자
당시 신라에는 두 명의 먼치킨이 활약하기 시작했습니다. 외교계의 먼치킨 김춘추와 전쟁의 먼치킨 김유신이었죠. 그럼에도 밀렸다니 참 -_-;

진지왕의 손자였던 김춘추와 족보도 없는 가야 출신 개뼉다구 (...) 였던 김유신은 잘 알려진 설화처럼 결혼으로 동맹을 맺습니다. 선덕여왕이 머리 좋은 쪽으로 잘 알려졌지만, 그건 그들의 조작일 뿐 사실상 그 둘이 정권을 장악하고 선덕여왕은 허수아비가 아닐까 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저도 이 쪽이구요. 선덕여왕 말에 이찬 비담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진압한 것도 김유신이었습니다. 헌데 이 해 선덕여왕은 죽게 되죠. 다음 진덕여왕도 당과의 외교에 힘쓴 것 말고는 딱히 활약이 보이지 않구요. 그 다음을 이어 김춘추가 왕이 되니 바로 태종 무열왕입니다. 마침내 소원 성취였습니다만, 딱히 상황은 좋지 않았죠. 선덕여왕 말부터 백제는 그 어느때보다 강력하게 신라를 압박했거든요.

4. 해동증자

"느이 신라 스벌놈들 554년 옥천 땅에서 우리 할아버지 성왕을 죽여 어따 묻었어? 지난 100년 동안 우리 조상하고 느이 조상하고 전쟁하면서 있었던 일, 한 번 씨부려 볼까?"

능력 있고 효성도 깊어서 해동증자라는 말을 들었던 무왕의 아들 부여의자, 641년 그는 왕위에 오릅니다. 그 다음해에 그는 왕족과 귀족 40여명을 숙청하는 일대 개혁을 단행합니다. 딱 이시기 귀족이었던 사택지적이 은퇴하는 것도 여기에 관련 있지 않을까 하죠. 무왕이 겨우 끌어올린 강력한 왕권을 더 강하게 만들려 한 겁니다.

그리고 그는 신라에 무수한 공격을 시작합니다. 642년 고구려와 화친한 후 신라의 40여개 성을 공략하고, 마침내 대야성을 함락시킵니다. 이로써 낙동강 서쪽이 모조리 백제의 땅이 되었죠.


"대야성에 내 딸래미 죽이삔 거 벌써 잊어삤나? 니캉 내캉은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존재데이"

이렇게 김춘추랑 원수지간이 되구요. -_-; 결국 선덕여왕은 김춘추를 보내 고구려와의 화친을 모색합니다. 하지만 연개소문은 김춘추에게 고구려의 옛 땅을 돌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가둬 버립니다. 이후 돌려보내주면 돌려주겠다고 속이고 탈출하죠. 별주부전의 모티프가 되었다고 합니다.

고구려와의 화친이 실패한 상황, 김춘추는 왜에도 손을 뻗습니다. 당시 일본은 쇼토쿠 태자가 다이카 개신으로 한창 나라꼴을 갖춰가던 때였습니다. 그는 신라 정벌까지 생각했지만 실패했었죠.


+) 수나라에 국서를 보내 "해 지는 나라의 천자가 해 뜨는 나라의 천자에게"라고 했다가 욕 먹고 쫓겨나고, 사신으로 갔던 오노노 이모코가 백제에서 답서를 버리고 왔을 때가 딱 이 시점입니다. (...)

쇼토쿠 태자가 죽은 상황에서 왜 역시 신라와 백제 사이에서 갈등합니다만, 소가씨 등 백제 출신으로 추측되기도 하는 친백제파에 의해 확실히 백제로 돌아섭니다. 고립무원에 몰린 신라, 남은 건 당나라밖에 없었죠.

그러거나 말거나 의자왕은 신나게 신라를 몰아붙입니다. 642년, 대야성이 함락된 해에 고구려와 함께 수원, 화성 일대로 비정되는 당항성을 함락합니다. 이제 한강 유역까지 위험해졌습니다. 연개소문은 당과 싸우면서도 차근차근 신라를 밀고 들어가 죽령 이북지역을 상당히 탈환한 것으로 보이구요. 김유신이 2년 후에 7성을 탈환하면서 어떻게 나서봤습니다만, 곧바로 다시 공격해서 차지하죠. -_-;

그 동안 의자왕은 왕권 강화를 계속하니, 657년에는 왕자 41명을 모조리 좌평으로 임명해 버립니다. (...) 음란과 향락에 빠져 타락했다는 시점이 딱 이 때죠. 일본서기에도 임금의 대부인이 국가의 권력을 뺏아 나라를 망쳤다는 부분이 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없지만, 이 때 백제의 상황이 결코 좋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것이 귀족이나 외척이 정권을 잡은 것이든, 의자왕이 왕권 강화를 위해 귀족들을 크게 압박한 것이든 간에요.

5. 신라, 죽느냐 사느냐

경남 쪽이야 많이 빼앗겨서 경주도 위험권에 들어간 것 같고, 충청도와 경상북도 사이가 어느 정도 먹혔을지는 의문입니다. 다만 하늘재-남한강으로 가는 위치를 최대한 뺏으려고 했을 것이며, 한강 유역 역시 백제와 고구려의 쌈싸먹기가 진행됐겠죠. 그럼에도 악착같이 지켰을 겁니다. -_-; 어쩌면 한강 유역에 힘을 다 쏟아서 남쪽이 그렇게 먹혔을 수도 있겠죠.

비담의 반란 후 선덕여왕이 죽고 진덕여왕이 즉위합니다. 이 때부터 신라는 당에 절대적으로 기대게 됩니다. 김춘추를 당에 보냈고, 스스로가 진당태평송을 지어 당에 아부합니다. -_-; 당에서도 이걸 받아들여 백제는 물론 고구려에도 압박을 주어 신라에 대한 공격을 멈추게 합니다만... 의자왕이고 연개소문이고 듣지 않았죠.


651년, 의자왕 11년에 당에 사신을 보내는데, 당 고종은 신라에 대한 공격을 중지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의자왕은 듣지 않았죠. 고구려와 백제가 신라의 33성을 공격한 것이 바로 이 직후입니다.

그 3년 후, 김춘추는 마침내 왕위에 오릅니다. 의자왕에 대한 복수를 꿈 꾸고 있던 자가 왕이 된 것이죠. 그 동안에도 당과 고구려의 전쟁은 계속됐고, 6년 후인 660년, 당 고종은 마침내 백제 정벌을 결심합니다.

이 직전의 삼국사기 기사는 모두 백제의 세기말적인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19년(659) 봄 2월, 여우떼가 궁중에 들어 왔는데 흰 여우 한 마리가 상좌평의 책상에 올라 앉았다.
여름 4월, 태자궁에서 암탉이 참새와 교미하였다.
5월, 서울 서남쪽 사비하에서 큰 고기가 나와 죽었는데 길이가 세 발이었다.
가을 8월, 여자 시체가 생초진에 떠내려 왔는데 길이가 18척(= 5.4m...)이었다.
9월, 대궐 뜰에 있는 홰나무가 사람이 곡하는 소리처럼 울었으며 밤에는 대궐 남쪽 행길에서 귀신의 곡소리가 들렸다.
20년(660) 봄 2월, 서울의 우물이 핏빛으로 변했다. 서해에 조그만 물고기들이 나와 죽었는데 백성들이 모두 먹을 수 없이 많았다. 사비천(백마강/금강) 물이 핏빛처럼 붉었다.
여름 4월, 두꺼비 수만 마리가 나무 꼭대기에 모였다. 서울 시민들이 까닭도 없이 놀래 달아나니 누가 잡으러 오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쓰러져 죽은 자가 1백여 명이나 되고 재물을 잃어버린 자는 셀 수도 없었다.
5월, 폭풍우가 몰아치고 천왕사와 도양사의 탑에 벼락이 쳤으며, 또한 백석사 강당에도 벼락이 쳤다. 검은 구름이 용처럼 공중에서 동서로 나뉘어 서로 싸우는 듯하였다.

... 솔직히 억지가 많은 것 같긴 하죠 -_-; 암탉이 참새랑 교미를 하든 잡아 먹든 무슨 상관이라고...

전체적인 느낌을 보면, 황산벌 전투에 대해 조금 다른 생각이 들긴 합니다. 우선 이 때 고구려와 백제의 동맹부터 해서 돌궐-일본까지도 연결되는 신라-당에 맞서는 거대한 한 축이 만들어진 것 같은데, 그 둘이 같이 움직였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한강이 신라로 막혀 있다고 하지만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 어떤 구원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죠. 백제가 멸망했다고 딱히 고구려에서 위험을 느낀 것 같지도 않구요. 말 그대로의 화친일 뿐, 하지만 신라는 당나라랑 꽤나 끈끈한 동맹을 맺고 있었습니다.

한편 수나라 때부터 중국은 신라를 파트너로 할 생각을 확실히 잡은 것 같습니다. 괜히 원교근공이 아니죠. 반면 의자왕은 당이 대군을 몰고 오는 건 둘째 치고 당이 백제를 공격할 거라는 것 자체를 예상하지 못 한 느낌을 줍니다. 조공하긴 하지만 삼국이 중국 말 안 들은 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_-; 무왕 때도 당나라 무시하고 신라 쳤지만 별 반응이 없었죠. 거기다 당은 고구려랑 계속 싸우고 있었으니까요. 어차피 승승장구하던 시점, 당나라가 백제를 친다는 가능성 자체를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신라는 거기에 모든 목숨을 걸었고, 당은 말도 안 되는 작전을 시작했죠.

660년 6월, 당나라의 대군이 인천 앞 덕물도에 도착합니다. 무열왕은 이에 호응해 5만의 병력을 김유신에게 맡겨 이천까지 북상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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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21 08:45
수정 아이콘
오늘도 재밌는 글 감사합니다.

그런데 비담의 난 이후 선덕여왕이 죽고 진덕여왕이 왕이 되나요? 10여년 전의 역사스페셜에서(유인촌장관이 하던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본 기억으로는(제가 본 건 2~3년 된 것 같구요.) 선덕여왕이 죽고, 왕위계승 다툼으로 비담의 난이 있었고, 난이 있던 중에 진덕여왕이 승계했다는 가정을 폈었거든요. 정확히는 난 중에 김춘추가 자릴 비운사이였음에도 자연스럽게 진덕여왕에 계승된 점을 들어서 비담의 난이 왕위계승싸움이었다는 해석을 한 것이었습니다. 비담이란 인물이 고위귀족으로 남자에게 왕권이 이어진다면 왕이 될 인물이라 또다시 여자에게 왕위가 가는 것에 반대해서 난을 일으킨 것이 아니냐는 거죠. 저야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도 아니고, TV에서 말하면 그런가보다하는지라... 사실관계가 어찌되는지, 어디까지가 팩트이고 어디서부터가 추측인지가 궁금하네요.

그리고 전 선덕여왕이 허수아비였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약한 왕이었다고는 생각하지만요. 왕위를 계승할 남자가 없는 상황에서 여자가 되지 않으면 다른 가문에 왕위를 빼앗길 수 있었기에 우선 여왕이 되었고, 여왕이란 점 때문에 세력이 약해져서 고위귀족에 대한 반발세력으로 왕위계승에서 살짝 밀려난 왕족인 김춘추와 가야출신으로 중앙귀족들과는 거리가 있던 김유신을 키워준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다르게 말하면, 언젠가 김춘추에게 왕위를 물려줄 것을 낙점해 놓은 상태에서 당시 왕가는 명분은 있으나 힘이 없는 상태였고, 반대로 힘은 있으나 명분은 없는 가야출신의 김유신 가문과 연합을 한 것이 아닐까...하는 아무런 기반이 없는 추측입니다.
무한낙천
11/12/21 12:37
수정 아이콘
김유신이 전쟁의 먼치킨이라 하지만,
영토에서 저렇게 많이 밀린 것을 보면
그렇게 많이 활약을 못했나보네요..
parallelline
11/12/21 21:28
수정 아이콘
여태 물조로만 봐서 댓글활동을 안했는데 모처럼 데탑으로보니 브금도 들리고 왠지 더 신선합니다(?) ..... 재미있는글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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