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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12/15 13:12:07
Name 눈시BBver.2
Subject [일반]  백제 vs 신라 (5) 무령왕과 지증왕

무령왕 즉위년, 그는 달솔 우영을 보내 고구려의 수곡성을 공격합니다. 문제는 이 수곡성이... 근초고왕-광개토대왕 때나 나오는 황해도에 있는 쪽이예요. (...) 웅진 코 앞 대전까지 밀렸던 백제가 그가 즉위하자마자 상황이 이렇게 반전된다는 게 어이 없죠. 그 때문에 알고 보니 고구려가 한강 유역은 점령까지는 안 했던 게 아닌가, 알고 보니 동성왕 때 한강 유역을 수복한 게 아닌가 뭐 이런 얘기들이 분분하죠. 한성 백제 때의 기록을 복사 붙여넣기 잘못한 게 아닌가 (김부식이 그랬든 김부식이 참고한 게 그랬든) 백제가 한성 백제 시절의 지명을 웅진 백제 시절에도 그대로 들고 와서 붙였고, 수곡성이라 하지만 예전의 수곡성이 아닌 다른 데가 아닌가 하는 것까지 참 이런저런 얘기가... 미친 듯이 많습니다. -_-

뭐 고구려가 한성을 남평양으로 나름 중히 여기긴 한 모양인데, 삼국시대 끝날 때까지도 이 곳을 제대로 장악한 나라는 없었던 모양이고, 이 상황에서 국경이 심심하면 바뀌어도 크게 이상하진 않습니다. 특히 경기 동부 - 강원 서부에 있는 말갈들은 간접통치했던 것 같구요. 뭐 어쨌든 이런 식으로 보고 수곡성이 정말 그 수곡성이라 해도 백제의 찌르기일 뿐, 그 지역을 수복했다고까지 볼 순 없을 것 같네요.

아무튼 그 해와 다음 해에 이루어진 무령왕의 반격, 501년과 502년의 백제의 역공은 프롤로그 삼기 부족하지 않죠. 거기에 506년 지증왕 역시 역공을 벌여 실직주-하슬라 일대까지를 탈환하는데 성공합니다. 나제동맹은 이걸로 시간을 벌었습니다.

1. 무령왕

무령왕릉은 백제 무덤 중에 유일하게 주인이 확인된 왕릉입니다. 덕분에 백제왕 중에 그의 이름이 꽤나 유명하죠. 대항해시대에도 등장하고 말이죠. (...) 뭐 이 발굴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기로 하구요.

그것을 통해 큰 충격을 주게 된 것이, 무령왕이 동성왕보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동성왕의 아들로 돼 있었거든요. 재밌는 건 일본서기에는 동성왕의 이복형으로 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개로왕의 동생 곤지가 일본에 가다가 섬에서 아들을 낳았고, 그래서인지 일본서기에서 무령왕의 이름은 島軍입니다. 무령왕을 사마왕이라고도 부르는데 이것과 연관시킬 수 있죠. 거기다 일본서기에서 곤지가 일본에 간 시점이랑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출생연대가 일치한다는군요. -_-;

... 아나 이노무 일본서기를 진짜 =_=;; 복어라니까요. 아무튼 그는 신라의 탈해 이사금, 그리고 현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유삼한 일본에서 태어난 지도자입니다. (...)

무령왕은 즉위하자마자 동성왕을 죽인 백가를 토벌합니다. 뭐 -_-a 전후 사정을 보면 뭔가 거대한 권력 다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하고도 복잡한... 이전편에 썼듯 백가는 동성왕이 기존 세력을 상대하기 위해키운 측근이었거든요. 애초에 동생이 형 대신 왕에 오른 것부터 이상한데, 그 형이 동생이 죽자 왕위에 올랐다라...

아무튼, 그의 시대에 이르러 백제는 부활합니다.

한편, 지증 마립간은 505년에 실직주 일대를 탈환합니다. 울진봉평신라비에 그 때의 상황이 나와 있다는군요. 때는 문자명왕 중기, 신나게 때리던 그의 발은 여기서 멈춥니다. 이후, 고구려는 쭉 수세에 몰리게 되죠. 북쪽으로는 옛 북부여의 땅에 물길의 공격이 계속된 상태였죠. 그래도 백제를 그냥 둘 순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의 재위 6년(507) 말갈이 공격해오고 다음 해에 장령성을 쌓아 침입에 대비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겨울에 고구려가 말갈을 이끌고 직접 오죠. 10년에는 가불성을 뺏기구요. -_-a 하지만 이 상황을 보면 훌륭히 막아낸 모양입니다.


무령왕릉의 금제관식

대신 그가 신경 쓰고 있던 곳은 남쪽이었습니다. 침미다례가 있던 전남지역이 이 때 백제에게 완전히 먹히면서 유물유적도 백제계로 아예 변하거든요. 그와 함께 전북지역을 슬금슬금 먹어 오던 대가야에도 반격을 시작한 모양입니다.

일본서기에는 512년 임나국의 4개 현을 백제에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원래 자기 땅이었던 걸 뺏겼다구요. 그 이전에도 백제가 망하게 되자 임나국의 구마나리를 주었다고 돼 있죠.

... -_-; 뭐 더 설명할 필요 없죠? 백제가 약해진 틈을 타 대가야는 백제를 공격했고, 백제는 이제야 반격을 개시하게 된 거죠. 전방후원분이 영산강 유역에 나타나는 게 딱 이 시점, 동성왕과 무령왕이 있던 5세기 말~6세기 초입니다. 무령왕부터가 일본에서 태어났듯 일본의 도움을 꽤 받긴 한 모양이예요.

남선경영설이 일본에서도 공식적으로 폐기된 상황에서 이걸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긴 합니다. 이 양반들은 이 전방후원분이 일본서기와 교차검증이 된다고 하는데... 그럼 왜 수백년간의 지배에서 딱 이 때만 나타나는지를 설명할 수 없죠. 백제, 신라, 가야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일본계 유물 유적이 이상한 시점, 이상한 장소에 나온다는 건 오히려 남선경영설을 부정하는 거죠. (...)

그냥 이 시점에 무령왕이 남쪽과 대가야를 공격하는데 있어 그만큼 일본의 도움이 많았다고 생각하면 될 겁니다. 거기다 전방후원분이 딱 이시기에만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일본의 유력가가 백제에 귀화했다 해도 이상할 게 없죠. 그 후로 나오는 건 백제계 뿐이거든요.

아무튼 이렇게 백제의 힘은 단기간에 급성장했습니다. 이 힘이었는지 무령왕은 동성왕 때부터 해 오던 왕권 강화를 지속합니다. 백제의 22담로에 왕족을 보내 지방통치를 혁신하죠. 이전에도 있었던 것 같긴 합니다만, 담로가 백제의 직할 통치로 자리매김한 건 이 때부터일 겁니다.

한편으로 제방 구축 농사 권장 이런 게 나오면서 애민군주로서의 모습도 보이죠.

그의 재위 말기는 한강 이북의 백성들을 동원해 쌍현성을 쌓고 돌아온 것으로 돼 있습니다. 자 이렇게 되면 더 헷갈리죠. (...) 정작 성왕 때 전장이 됐던 곳은 다시 충청도 일대.......................

더 이상 생각 안 할래요. 어차피 다음 편도 그 다음 편도 해야 될 얘기예요 -_-;

아무튼 동성왕에 이어 무령왕대에 남쪽지방을 완전히 장악하는데 성공하면서, 백제는 완전히 부활했습니다. 제주도, 탐라가 첫 등장하는 것 역시 동성왕 때였죠.

이렇게 백제의 부흥기를 만든 무령왕은 523년 세상을 뜹니다. 그 뒤를 이은 왕이 성왕이죠.

2. 지증왕
지증왕, 네 왕이요. 0_0a 그는 신라의 마지막 마립간이었습니다. 전왕인 소지 마립간의 6촌 형제. 신라도 뭔 일이 있었던 건지 -_-;

백제의 무령왕이 고구려와의 싸움에서 훌륭한 탱커 역할을 수행하는 동안, 지증왕은 신라라는 나라 자체를 바꿔 버립니다. 아니, 신라라는 이름이 그 때 생겼죠.

지증왕 4년, 503년에 신하들은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 는 新자와 "사방을 망라한다"는 羅자의 국호를 올립니다. 또 지금까지 단지 방언으로만 호칭을 정했지만, 이제 확실히 칭호를 정하니 신라국왕이었죠. 이렇게 해서 그는 신라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의 시대는 고대 국가가 다음 테크를 밟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3년에 순장 금지, 소를 이용하는 우경법 도입(이제서야;;), 4년에 국호와 왕호 제정, 5년에 상복에 관한 법 제정, 그리고...

6년, 505년에 지방 체제를 정비합니다. 주, 군 현이었죠. 이 때 실직주도 탈환해서 군(軍)주를 뒀는데 그 장수의 이름이... 이사부죠. 13년에 그가 했던 것이 바로 우산국 정벌입니다. 뭐 그 외에도 위치를 확실히 알 수 없는 아시촌에 소경을 설치해 6부와 지방 사람들을 이주시킵니다. 통일신라 때의 5소경으로 이어지겠죠?

그야말로 교과서적인 테크를 밟은 게 바로 그의 시대였죠. 다만 이름도 다 중국식으로, 지명도 다 중국식으로 바꿔서 그의 시대에 신라만큼은 참 신비한 느낌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국문학도로서 아쉽기도 하구요.


천마총의 주인이기도 하죠

뭐 그것보다 유명한 건 역시... 20~30cm는 됐다는 거근이겠죠? (...) 이것 때문에 결혼을 못 해서 처녀를 구하러 가는 도중 거대한 똥(어머)을 두고 개들이 싸우는 것을 보고 역시 거대한 처녀를 구하게 돼서 결혼하게 됐다...는 훈훈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ㅠ_ㅠ)

3. 법흥왕
514년을 기점으로 지증왕과 바톤 터치한 그의 아들 법흥왕, 그 역시 아버지에 이어 나라를 재정비합니다. 520년 율령 반포에 이어 528년에는 불교를 공인하죠. 이차돈의 순교가 있었던 때가 이 때입니다. 그의 후반기인 23년, 536년에는 건원(建元)이라는 연호까지 칭합니다.

이쯤 되면 -_-; 백제, 고구려가 고대 국가 테크에 머물고 있는 동안 혼자 중세 테크를 타기 시작한 것 같을 정도예요. 후발 주자의 무서움이겠죠. 어차피 약소국으로 무릎 끓을 만큼 끓고 영향 받을 거 다 받고 있었으니 아예 옷을 갈아 입는 것도 딱히 어색하지 않았고,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됐는지를 다 봤을테니 그들에 비해 최소한의 테크를 탈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의 아들, 진흥왕의 무시무시한 업적과 마침내 통일까지 이르는 길에는 이 두 왕의 치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의 시대에 신라도 슬슬 확장을 시작합니다. 대가야는 이 때 신라와 혼인동맹을 맺은 것으로 보입니다. 백제에 맞서기 위해서였겠죠. 하지만... 그 때 신라는 공주를 보내며 100명을 딸려주는데 이들이 신라 옷을 입고 있자 추방했다고 합니다. 빡친 법흥왕, 8개의 성을 쳐부수니 현 진해의 탁순국이 멸망하고 창녕의 탁기탄국이 신라에 투항합니다.

이 때가 530년 전후인 것으로 보이는데... 532년에는 속국이나 다름 없던 금관국이 마침내 땅 전체를 들어 항복해 옵니다. 일본서기와 삼국사기의 내용으로 보면 대가야국이 백제에 맞서 친신라 정책을 펴다가 틀어졌고, 신라의 공격이 시작되면서 낙동강 부근의 정세과 확연히 바뀐 것으로 보여요. 신라가 금관국을 살려준 건 그 이용 가치 때문인 것 같은데, 스스로 항복해오니 크게 기뻐하면서 이들을 진골에 편입시킵니다. 통일신라 때도 경주 코 앞인 김해 지역이 금관경으로 남았죠.

4. 6세기의 주인은 누가 될 것인가?
아마 대가야는 신라 백제가 조금만 더 무너졌으면 고대 국가로 확실히 성장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_-; 그 꿈은 이리도 쉽게 무너졌죠.

고구려는 안장왕 때에 이르러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삼국사기에는 531년 죽었다고 돼 있는데 양서에는 526년으로 나오죠. 일본서기에는 암살됐다고 나옵니다. =_=; 뭐 어쨌든 왕 자체는 그리 막장이 아니었고, 북위에 맞서 옛 후연의 수도였던 용성을 공격하기도 하는 등의 활약을 보이긴 합니다. 한편으로 죽기 전에 백제를 두 차례 공격하는데, 만약 무령왕 때 한강을 수복했더라도 이 때 다시 되찾았을 겁니다.

그리고 그의 동생인 안원왕, 그의 대에 이르러 고구려는 막장이 됩니다. 일본서기에는 그가 들인 두 명의 후비가 다음 자리를 놓고 세력다툼을 했다고 합니다. -_-; 이 때 추군과 세군이 나뉘어 싸웠는데 패한 세군 측에서 죽은 사람만 2000명이라고 하죠. 그나마 싸움이 끝나고 양원왕이 오르는데, 북쪽에서 돌궐의 공격을 받게 되죠. 이로써 고구려가 나제 동맹을 이길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의 다음대 왕이 온달로 유명한 평원왕이죠.

이 때 중국은 마침내 오호십육국 시대가 끝나고 하나로 통일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슈퍼파워의 재림이 다가오고 있었죠.

아무튼... 이렇게 나제 동맹의 힘의 균형이 맞춰지는 동안 백제와 신라는 크게 발전했고 강성해졌죠. 나름대로 굳건하게 지켜진 동맹이었지만, 그것은 고구려가 강할 때나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보시다시피 그들이 힘을 얻고 제일 먼저 한 건 고구려에 대한 반격이 아니라 가야 공격이었죠. (...)

동맹을 동맹이라 하지만 그것은 동맹이 아닌 반고구려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가 꺾이는 순간, 그 동맹이 끝날 것은 다들 알고 있었겠죠. 다음은 누가 남은 6세기의 주인공이 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538년, 성왕은 사비로 천도하며 국호를 남부여로 바꿉니다.
그리고 540년, 진흥왕이 왕위에 오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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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르
11/12/15 13:16
수정 아이콘
지증왕하니까 예전 국사선생님이 주셨던 야사가 떠오르는군요 그...그얘긴데...더불어 왕비간택 얘기도 재밌었고요 [m]
무한낙천
11/12/15 13:48
수정 아이콘
저것이 신라 통일 테크의 시작이군요..
몇대에 걸쳐서 훌륭한 왕이 계속 나오는게 신기하네요..
5대 정도 인물들이 왕을 하니 최약소국도 급성장해서 결국 통일까지 하네요
달리자달리자
11/12/15 13:58
수정 아이콘
역사상 최강의 왕은 지증왕이었습니다.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김연우
11/12/15 16:30
수정 아이콘
백제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호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인거 같아요. 실제로는 이렇게 늦게나 돼어서야 호남을 먹었는데..
chowizard
11/12/15 18:41
수정 아이콘
적어도 삼국통일 이전까지의 기록에 대해서는 왕들의 혈연 관계에 대해서 100% 신뢰하고 보면 안됩니다.
왕 아니라도 중요인물들의 혈연 관계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일본서기는 이 혈연 관계를 연대 조작에 이용하기 때문에...
A왕의 아들 B왕이라고 해도, 단순히 정통성을 위해서 왕력에 입적시켰을 가능성이 있거든요. 첫째 아들이라고 못 박지 않는 한, 둘째 아들부터는 진짜 혈연 관계가 아닐 가능성이 점점 높아집니다. 왕의 동생 정도 되면... 그냥 남남인데 왕통에 포함시키려고 기록만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연구 결과, 아버지 왕과 아들 왕이 나이가 비슷하거나, 아니면 (기록상)아들 왕이 나이가 오히려 더 많거나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는 특히 일본서기의 천황들과 후기 이전 백제사의 왕들이 이런 현상이 심한데, 본래 소국 연합체의 왕들끼리 힘겨루기로 백제 왕위를 이었던 삼한 방식의 통치 특성으로 보입니다.(백제는 5세기나 되어서야 삼한 전체 영역을 다 장악하죠. 소속이 어디인지 모르겠는 호남 지방...;;) 이 시기의 왕력은 아버지 - 아들 간 왕위 계승이 이루어진 경우가 별로 없다고 봅니다. 심지어는 통치 기간이 연속으로 30 ~ 50년 씩 되는 왕들의 경우에는 본래는 2, 3명이었던 왕들의 통치기간을 기록에서는 특정 왕에게 몰아주기(...)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습니다.
그러한 기록 기준은 김부식에 의해 설정되지 않았다고 봅니다. 김부식도 특히 삼국시대 초기 기록에 대해서는 거의 이해를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그런 모습으로 보아서, 삼국사기 집필진은 이미 고대의 어떤 나름의 기준으로 왕통이 설정된 역사 기록을 그냥 가져다 옮기기만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HealingRain
11/12/15 20:02
수정 아이콘
호남지방은 도대체 백제가 차지하기전엔 뭐하던 동네였던거죠? ;;

신라는 정말 한번에 쭉 치고올라가는 느낌이네요. 지증왕은 무슨 창업군주 느낌마저 납니다.
업적이 많은 왕이었군요.
Je ne sais quoi
11/12/15 22:52
수정 아이콘
역시 의문의 시대군요. 뭐 이렇게 감춰진게 많나요...!
그럼에도 재미있는 글 써주셔서 감사하구요 ^^
우던거친새퀴
11/12/16 17:55
수정 아이콘
그나저나 천마총의 주인이 지증왕인건 이제 굳어진건가요?

그리고 무령왕릉 발굴이야기도 재미는 있잖아요. 언제 한번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것도 흑역사라고 봐야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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