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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12/03 01:28:16
Name 눈시BBver.2
Subject [일반]  윤관의 여진 정벌, 그리고 척준경 - (2) 무쌍

1. 동북 9성의 위치
이 얘기를 함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동북 9성의 위치가 제대로 해명이 안 됐다는 겁니다. 네, 아예요. -_-;


흔히 돌아다니는 이 지도, 함흥 평야설은 폐기된 거나 다름 없습니다. 헌데 이걸 이을 지도가 없죠. 교과서에서도 지금은 지도 없이 그냥 그랬다고만 하는 모양입니다.


그 뒤를 이어 약간 정설 취급 되는 게 길주 이남설, 이게 조선시대의 길주를 포함하는지는 모르겠군요. 이 점을 지도로 보면 요렇게 되겠죠.

약간씩의 힌트가 있습니다. 윤관은 아무 생각 없이 진군하지 않았습니다. 여진족과 경계로 할 만한 곳을 정했죠. 그 위치는 병목, 주변이 하도 험해서 적이 올 만한 길이 한 군데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길주성은 대 여진 전선에 있어 최전선이 되었습니다. 또한 영주는 그 서쪽의 경계라고 했죠. 그 위치를 개마산 동남, 이를 백두산이라 해석합니다. 한편, 조선시대 들어 문제가 된 공험진이 있습니다. 윤관은 이를 세운 후 여진과의 경계를 정하는 비석을 세웁니다.

두만강 인근, 혹은 두만강 이북 설도 있습니다만 저는 이 부분에서는 부정적입니다. 두만강이라는 천혜의 요지가 있는 상황에서 강에 대한 언급이 보이지 않거든요. 여진과의 경계는 어디까지나 산맥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마천령 산맥은 최고의 지역입니다. 이 전쟁은 동북쪽의 농토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17만이라는 대군과 전광석화 같은 작전, 목표에 도달하자 바로 성을 세운 모습 등을 보면 현 북한의 자강-양강도 부근에는 딱히 관심을 기울였을 것 같지 않습니다. 지도만 봐도 고저 차이가 확연히 나죠. 제가 늘 쓰던 지도인데 태백산맥이 딱히 두드러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조선 때도 저 곳에 여러 고을을 만든 후 4군을 만들었지만 폐 4군으로 망했던 곳이죠. 고려가 영토를 개척했다면 동해안을 따라 쭉 늘여졌을 겁니다. 동해를 통해 보급도 가능하니까요.

어쨌든 이런 점에서 마천령이 최적이고 실제 조선시대 때도 그냥 여기로 하자는 말도 있었습니다. 후기의 안정복 같은 역사가들도 마천령에 비가 있으니 이게 윤관의 비고 이 정도였을 거라 추측했죠.

헌데 문제가 있으니... 여기서 발견된 비석은 신라 진흥왕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진흥왕이 함경도까지 영토를 확장했다는 증거로 쓰이는 그 마천령비요. 또한 여기로 보기에는 개마산 동남이라는 영주가 너무 낮습니다.

문제는 그 반론으로 영토를 북으로 늘리기에는 적당한 요충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길주성을 포위했다는 여진족이 바다로 가서 아군의 보급을 차단했다는 말도 있으니 동해 쪽이 맞을텐데 말이죠. 그 점에서 생각해 본 게...


여깁니다. 경성, 4군 6진 편에서 얘기했듯 최북단 경원에 이은 두 번째 국경으로 거론된 곳이죠. 이 쯤이라면 병목이라 할 만한 요충지도 있었을 거니까요.

두만강 이북 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게, 만주에 비가 발견됐다고 하지만 이게 고려 건지, 고구려 건지, 아니면 아예 다른 나라 건지 확인이 안 됐다는 점입니다. 마천령비에서 볼 수 있듯 과거의 금석문은 너무나도 부족했으니까요. 안정복은 여기에 "그냥 북쪽에 세운 거지 거기까지 영토로 볼 순 없지 않느냐"는 반론을 하기도 했구요.

조선시대에 문제가 되는 게 명과의 국경을 이 공험진을 기준으로 갈랐다는 점입니다. 세종 때까지도 이를 계속 강조하면서 두만강까지 영토를 개척합니다. 이를 보면 조선에서는 공험진을 최소한 두만강 인근, 잘 하면 두만강 이북까지로 생각한 거라고 봐야겠죠. 때문에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는 공험진이 두만강 이북 700리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문제는 같은 지리지에 공험진의 위치에 대한 다른 얘기가 두 개나 나온다는 점입니다. -_-;

저로서는 두만강을 국경으로 하기 위해 조선에서 일부러, 혹은 실수로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세종은 김종서에게 공험진의 위치가 어딘지 알아보라고 몇 차례나 주문했는데 제대로 답이 안 나왔거든요. "일단 두만강 이북이긴 한데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다"가 조선의 공식적인 입장이었을 겁니다. 또 공험진 이남을 완전히 자기 영토로 생각하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명과 약속한 건 어디까지나 공험진 이남 여진족들의 관할이거든요. 태조 이성계 때부터 두만강을 국경으로 한다는 얘기가 나오며, 세종 때 확정된 이후에는 공험진 얘기가 아예 사라지거든요.

이 점에 대해서는 제가 블로그에 쓴 글으 참조하시구요.
http://blindbard.egloos.com/274678

여하튼 이런 식으로 동북 9성의 정확한 위치는 제대로 비정되지 못 하고 있습니다. 통일되면 좀 나아질까요 -_-; 언제나 길주성이 최전선으로 나오는데 공험진이 최북단이라 나오는 것도 이상하죠. 전 이 점에서 공험진이 최북단이긴 한데 여진족이 모여 있는 쪽에서 가장 가까운, 즉 최전선이 길주라 생각하긴 합니다.

이 동북 9성의 위치가 어디일지는 각자의 마음에 맡기고, 그 다음 얘기를 해 보죠.

2. 반격
최초의 4성을 만들자마자 여진족은 강력한 반격을 시작합니다. 그런 주전론의 선두주자는 완안아골타, 금을 세운 자였죠.

"군사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갈라전을 잃는 것은 물론이요, 모든 부족들이 우리를 떠나갈 것입니다"

이 때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했으니, 길주성으로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었던 겁니다. 병목에 대한 자료가 부족했던 탓이겠죠. 이 때문에 여진족은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왔고, 고려는 이 때문에 크게 고전하게 됩니다.

1108년 1월 14일, 윤관은 오연총과 함께 8000의 군사로 병목으로 가다가 여진족의 복병을 만납니다. 모든 일이 한 큐에 끝날지도 모를 일이 벌어진 거죠. 오죽하면 부원수인 오연총까지 화살을 맞을 정도였습니다. 윤관 주변의 모든 고려군이 와해되고 불과 10여명 정도만이 그를 지키고 있었던 상황!

누가 나타났겠어요?


(화봉요원에서의 장비)

척준경은 당시 후방에 있었던 모양인지 포위망 바깥에 있었습니다. 그는 급히 윤관을 구하러 가려 했는데 동생 척준신이 말렸죠. 개죽음이라구요. 이에 그는 이렇게 말 합니다.

"너는 돌아가서 늙은 아버지를 봉양하라 나는 몸으로써 나라에 허락하였으니 의리상 가히 그만 둘 수 없다"

자신을 알아 준 자, 자신을 위기에서 풀어준 윤관은 그에게는 주군이나 다름 없었을 겁니다. 자신의 목보다 더 중히 해야 할 주군, 그는 단 열 명의 용사를 거느리고 포위망을 뚫습니다. 이렇게 윤관은 구사일생의 위기에서 살아나죠.

이후 마치 영화에서 뒤늦게 등장하는 경찰처럼 ( ..) 영주에서 최홍정과 이관진이 달려와 여진족을 몰아냅니다. 겨우 끝난 전투, 윤관은 척준경의 손을 잡고 울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로부터 내가 마땅히 너를 보기를 아들과 같이 할 것이니 너는 마땅히 나를 보기를 아비와 같이 하라"

척준경은 정 7품에 오르게 되고, 정말 그들은 부자지간처럼 사이가 좋았던 듯 합니다.

맘 먹고 덤볐던 첫 시도가 끝난 후, 여진족은 혼란에 빠집니다. 고려로 투항하는 이들이 늘어났던 거죠. 완안부에서는 이걸 그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17만이라는 별무반의 병력 때문에 동북 9성이 훨씬 넓었을 것이다고 하는 쪽도 있지만, 그건 정벌군이었죠. 정벌이 일단 끝난 상황에서 각 성의 주둔군이 이와 같을 순 없었을 겁니다. 그마저 여러 성들에 분산 주둔해야 했을 테니까요.

1월 26일, 적의 역공이 다시 시작됩니다. 2만이나 되는 병력이 영주성을 포위한 거죠. 윤관은 일단 성을 지킬 방책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적의 포위는 시간이 지날수록 엄해질 것인데, 구원병이 오지 않고 양식마저 떨어지면 어찌 하겠습니까"

척준경은 이를 반대하며 오히려 공세적으로 나갈 것을 주장합니다. 이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자, 진짜 말도 안 되는 말을 하죠.

"전날 소장이 싸워 이긴 것을 보지 못한 분들이 많은데, 오늘 소장이 사력을 다해 싸울 것이니 망루에 올라 구경하십시오"

어디서 나온 자신감일까요? 윤관 등은 그걸 믿은 건지 마음대로 해라인지 그를 보냅니다. 그리고...


(창천항로 여포)

이런 일이 벌어지죠. 그는 순식간에 19명을 목 베어 돌아왔고, 적은 놀라 군을 물립니다. 혼자(뭐 결사대 여럿 더 있었겠죠) 2만명을 물리친 겁니다. (...)

어쨌든 이 병목 지역을 지키긴 해야 되는 상황, 때문에 윤관은 급히 공험진을 쌓습니다. 함편 함흥 쪽 함주에도 성을 쌓았죠. 9성 중 6성이 완성됐습니다.

이 중 공험진을 맡은 장수가 바로... 바로... 바로! 왕자삐~였죠. 이거 글로 쓰기만 하는데도 모자이크를 넣어야 될 거 같네요. 0_0... 뭐 사실 본명이 이런 상황이니 그의 호를 쓰면 됩니다. 왕원장이라 부르면 되겠죠. 헌데... 그의 초명은 또 뭔고 하니 왕소중입니다. ( ..) 이쯤되면 뭔가 노린 거 같죠? 그러고보니 여말선초 때도 김자삐라는 문관이 있었죠.

공험진을 맡았던 그가 적의 기습을 받아 말을 잃기도 했는데, 이 때 역시 달려온 장수가...


(창천항로 장료)

또 척준경이었죠. 이후 그는 영혼의 투 톱으로 놉니다. 이 시대를 사극으로 삼을 수 없는 이유 (...) 일려나요.

아무튼 그의 활약으로 여진족에 대한 메뉴얼이 만들어집니다. 적이 포위하면 성문을 열고 기습한다는 거였죠. 2월 11일에는 웅주성이 포위됐는데 최홍정이 성의 문을 모두 열고 기습, 대승을 거두고 많은 물자를 노획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끝이 아니었죠. -_-; 누가 먼저 지치나, 상황은 치킨 게임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땅이 절실했던 건 원래 그 땅에 살던 여진족이었다는 거였죠.

=================================

이런 고려의 9성 개척 상황을 보면 조선의 4군 6진 때의 태도가 어느 정도 설명이 되네요. 뭐 양 쪽의 상황이 꽤 다르기도 했지만요.

아무튼 저런 모습을 봤으면 충분히 이름만 들어도 지릴 만 합니다. 아마 여진족들은 이렇게 말 하지 않았을까요?


"저 자는 누군가? 굉장히,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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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과
11/12/03 01:33
수정 아이콘
우와...잘 봤습니다. 굉장히 재밌네요 ^^
Je ne sais quoi
11/12/03 01:33
수정 아이콘
영토문제는 참 어렵군요. 오래 전 일이라 그렇긴 하지만 이 작은 땅에서도 아직 모르는 일이 이렇게나 많다니.
척준경 이야기는 센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무지막지한지는 몰랐네요. 시원하면서도 그 끝을 생각하면 아쉽고... 참 그렇군요.
11/12/03 01:37
수정 아이콘
"전날 소장이 싸워 이긴 것을 보지 못한 분들이 많은데, 오늘 소장이 사력을 다해 싸울 것이니 망루에 올라 구경하십시오"

읽자마자 빵터졌습니다. 이게 전쟁인가요? 영화인가요? 혹은 삼국지연의 재연 공연장인가요?
정말 말이 안되네요. 이걸 망루에서 봤을 장군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압권이었겠네요.

제가 이래서 맨날 무협지식 무공이 고대엔 약간이나마 가능했지 않았을까란 가설을 말한다니까요. 크크.
1:1로 곱게 싸워줄리도 없고, 말 쓰러뜨리려고 사방에서 창으로 찔러대었을 것이며,
화살도 날아왔을 것인디..

이것의 답은 정말 하나 같습니다.
휘두르면 칼이고 방패고 사람 몸이고 가리지 않고 쪼개며, 한칼에 2~3명이 한번에 죽고. (즉 위의 만화처럼)
아 영화가 아니고 정말 타임머신 있다면 현실에서의 압도적 무력이 어떤건지 평생 한번쯤은 보고 싶네요.
트레빌
11/12/03 01:38
수정 아이콘
재밌게 봤습니다~ 그런데 상대가 불과 몇 년후 초강대국 요나라를 박살낼 자들인 걸 감안하면 고려가 굉장히 잘 싸웠네요.
그만큼 준비를 잘했고 척준경이란 불세출의 맹장이 있었다고 해도 말이에요.
11/12/03 01:45
수정 아이콘
준비를 무시할 순 없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척준경 없었으면 성립 자체가 안되었겠습니다.
승리를 향한 전략은 있었는데, 전술 매뉴얼이란게

1. 딱히 방법없을 때 - 척준경 내보낸다
2. 작전대로 흘러가지 않고 변수가 나왔을 때 - 척준경 내보낸다
3. 위기시 - 척준경 내보낸다

치트키 쓴 전쟁이었으므로, 일반론적인 방법으론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임진왜란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그런거 보면, 우리나라는 정말 좁디좁은 땅떵어리에 비해서 기이할 정도로 불세출의 인물들이 종종 나왔네요.
사티레브
11/12/03 01:53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무쌍은 전쟁론에서 나오는 '마찰'을 무력화 시키는 자라고 보는데
패자로 기록된 인물임을 감안 안하더라도 척준경은 사상 으뜸이죠

그나저나 장료 씬에서 왕원장이 자신의 풀네임 혹은 이름만 부르면서
"나는 왕XX"라고 했으면 참..........
11/12/03 02:06
수정 아이콘
유금필은 부대를 움직인거니 인간미라도 있었지... 척준경은 그냥 괴물...

만병통치약이죠. 안 풀리면 척준경.
11/12/03 02:11
수정 아이콘
척준경 얘기는 많이 나올 테니, 지나가면서 다른 얘기 하자면, 저는 여진족이란게 도대체 뭔 지 참 궁금합니다.
1. 결국 여진족은 지금은 완전히 사라진 것인가요? 아니라면 저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살고 있나요?
2. 여진족은 몽골리안인가요? 우리랑 유전적으로 흡사한 사람들인가요?
눈시님의 지혜를 하사해주세요 굽신굽신
11/12/03 02:27
수정 아이콘
여진족이 어디서 기원이 왔고 뭣때문에 다른 만주의 여타 거주민들과 구별되었는지는 저도 궁금한데,
현재 어떻게 된건지는 분명하죠. 한족에 '흡수' 되었습니다. 피는 그냥 섞인 거지만 문화적으론 흡수쪽이 맞겠지요.

청나라 지배층이 바로 여진족이었으니까요. 청 왕조가 성공적으로 지속되면서
한족+여진족의 동화는 완벽해진 거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외세의 침입 때문에 더더욱 분열보다는 한데 뭉치는 환경이었을테고.

현대의 중국인은 그냥 한족 만주족 구별안하고 같은 '우리 중국인' 이라 생각할 것 같아요.
눈시BBver.2
11/12/03 02:46
수정 아이콘
확정된 건 없습니다. 일단 부여 동쪽에 있던 읍루, 숙신, 물길 등의 무리가 그 원류가 아닐까 하죠. 이들은 고구려,발해 때도 복속되거나 반항하거나 합니다. 일단 위지 동이전 등에서는 "언어가 다르다"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형질인류학적으로 보면 비슷하긴 한데, 한민족이랑 더 가까운 건 일본이라고 하네요. (때문에 이들을 단순히 "복속"으로 쳐서 고구려 지도 동북쪽을 축소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한반도 내부에도 이들이 살았던 것 같은데, 백제와 신라 등을 쳤다는 말갈이 저 읍루, 물길 등이랑 이어지는 건지 별개의 종족인지 영 알 수가 없습니다. -_-; 어쨌든 고구려와 계속 같이 움직였습니다. 강원, 함경도 쪽의 지도가 휙휙 움직이는 걸 보면 (함경도 쪽에 있던 옥저 점령 후에 강원도까지 영토가 어떻게 변하는 지 알 수 없고, 진흥왕 때도 함경도까지 휙 올라갔다가 이후 휙 내려옵니다) 이 쪽에 걸쳐 살았던 이들은 직접 점령보다는 간접으로 지배력이 약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 민족이랑 꽤나 같이 살았고, 고려 때도 유금필부터 시작해서 고려에 복속됐습니다. 요가 성장하기 전에는 송화강 쪽까지도 영향력이 닿았다고 하는군요. 사실 여진족의 (말갈에서 여진으로 -_-a) 범위가 꽤나 넓습니다. 송화강, 흑룡강 등지에서 함흥까지요. 이들이 다 같은지도 의문입니다. 그냥 다 묶어서 부르는건지 동류였던 건지... 때문에 예전에 나온 말갈은 그냥 고구려의 하층민들을 비하해서 부른 게 아니냐는 말도 있습니다.

요랑 고려가 싸우는 동안에 얘네는 불쌍하게 삥 뜯기다가 이제 금 세우면서 오히려 강대국이 됐고, 몽골에 깨지면서 약소민족으로 돌아옵니다. 이 때도 여진, 야인 등 세 개로 나누어졌죠. 이들도 서로 약간씩 달랐다고 합니다. 어디는 올 유목인데 어디는 반농반목 이런 식으로요. 그냥 성격이 달랐던건지 종족이 달랐던 건지도 의문입니다.

달랐든 같았든 이들을 다 묶어서 홍타이지는 만주족이라 칭합니다.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죠. 일제가 만주국 세워서 청의 후신이라 했다가 중국에 흡수됐는데, 현재 한 천만명 살아 있다고 합니다. 다만 만주 문화랑 만주어는 망 ㅠ_ㅠ 오히려 훈민정음으로 쓰여진 만주어 교재가 만주어 복원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하네요.

그러고보니 심심하면 얘기 나오는 여진족 신라인 설, 여진이 고려, 조선을 부모로 여겼다느니 하는 동족 드립은 잘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하도 족보 없는 것들 (...) 이라서 신라나 고려를 자기 조상으로 끌어들인 거라구요. 제가 "한반도 내에 있었다 해서 약소국은 아니었다능!"이라 하는 근거 중 하나죠.

아 그리고 여요전쟁이나 9성 과정에서 많은 여진족이 귀화하고, 조선 개국 후나 4군 6진 과정에서 또 많이 귀화하는데, 아마 천민 쪽을 많이 이루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근데 그렇게 각기 고려, 조선에게 신나게 뜯긴 걸 참고 귀화하지 않은 애들은 나중에 금이랑 청이라는 나라를 이루게 되니 아이러니 (...);

간단히
1. 숙신, 읍루, 물길 -> 말갈 -> 여진 -> 만주로 가는데 그냥 오랑캐 싸그리 다 부른건지 공통점이 있었던 건지는 확실히 모릅니다.
2. 부여 때부터 우리랑 복속됐다 말았다 하며 아웅다웅하고 살았습니다. 일본이랑 상하관계였다느니 하는데, 사실 여기에 더 주목해야 되죠. 아무래도 우리 민족이랑은 농민/목축으로 성격이 확연히 갈라지지 않았나 싶네요.
3. 솔직히 청나라가 중국의 마지막 왕조가 아니었다면 만주에 대한 영향력으로 만주 땅 어느 정도 차지할 수 있었을지도요. 그것 때문에 청나라가 압록-두만강 국경에 대해 참 까칠하게 나왔죠. -_-; 에 이건 딴소리고.

더 간단히
이걸로 봐 주세용 '0')/
구밀복검
11/12/03 02:45
수정 아이콘
조조전 매니아들은 자체 편집을 통해서 조조전 신버전을 만들곤 하는데(신조조전이라든지, 여포전, 징기스칸 전 같은...)
척준경 전도 한 번 만들어볼 법 한 것 같습니다. -_-;
미카에르
11/12/03 04:37
수정 아이콘
조조전 매니아인데, 아직 척준경 버전은 안 나왔습니다~ 있다면 보고 싶네요 왕건전 같은 것은 최근에 나오긴 했어요.
강가딘
11/12/03 08:09
수정 아이콘
소녀시대전은 있던데 척준경전은 없네요. [m]
11/12/03 09:22
수정 아이콘
아니 왕자지를 왜 왕자지라고 안적습니까?
왕자지가 나쁜 짓한 사람도 아니고 실제 인물인데요;;
왕자삐라니 흑흑...

근데 이분때문에 척준경을 다룬 사극이 만들어지기 힘들죠;;
하필이면 이름이 왕자지라니;;
11/12/03 10:16
수정 아이콘
척준경을 다루면 사극이 아닌 무협으로 보겠어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뭐 이런 하면서 웃네요 괴물이네요 [m]
레지엔
11/12/03 11:06
수정 아이콘
저걸 보면 척준경은 그저 무골 호인... 이 아니라 소드마스터로 보이는데, 그 뒤의 정치판에 끼어들면서 몰락하는 과정을 보면 어린애같은 것이 정말로 이계고등학생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강동원
11/12/03 12:31
수정 아이콘
아... 이거 답없어요. 척준경 가야해요...
선데이그후
11/12/03 14:35
수정 아이콘
괴물이네요. 사극으로 한번 보고싶을정도로..
왕자지때문에 사극이 힘들면.. 실제이름이라도 좀 그렇습니다.^^
11/12/03 18:16
수정 아이콘
이런 원맨쇼를 보고 있자면 왜 척준경이 이자겸과 손을 잡고 금나라에 사대할 것을 주장했는지 되려 이해가 갑니다.
결국 여진족을 이긴 건 내 덕이었는데 이젠 내가 은퇴했잖아. 그러니까 안될거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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