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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9/01 01:00:57
Name 눈시BB
Subject [일반]  단종애사 - 3. 계유정난

소설을 천시한 조선시대답게 게유정난 과정에 대한 스토리텔링은 부실하기 그지 없습니다. 수준이 그 정도였는지, 그들의 최소한의 양심이었는지는 모르겠네요. 제가 왜곡됐다 말은 하면서도 실록을 높게 보는 이유이고 역사는 승자의 것이 아니다라고 당당히 말 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뭐 -_-a 삼국사기에서도 보면 궁예가 나쁘다 나쁘다 하면서도 궁예가 잘난 모습을 은근슬쩍 보여주기도 하죠.

철저히 우리 세조대왕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그 분의 위대한 업적을 찾아보도록 합시다. 뭐 중간중간 들어 있는 딴지는 신경 쓰지 말자구요.

1. 사은사
이전에 적었듯 안평대군 이용은 문종대왕께서 승하하신 가운데서도 웃으며 고기반찬을 먹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금성대군 등 역심을 품은 종친들이 서로 잔치를 했다고 하죠. 그들은 곧 간신이자 역신 김종서, 황보인과 연계합니다. 그 힘을 업고 이용은 온갖 방자한 행동을 일삼죠. 여기에 이현로 같은 아첨꾼도 가세합니다.

"이것은 김종서가 비밀히 이용더러 인심을 수습하여 반역을 꾀하라고 재촉한 것이다." (단종 즉위년 6월 30일)
"이용이 (중략) 사람들에게 벼슬 준 것이 상당히 많았는데, 이 때에 이르러 더욱 방자하였다." (7월 3일)

허나 우리 세조대왕께서는 분노를 속으로 삼키고 이들을 몰아내 사직을 지킬 생각만 하게 되셨죠.

"이현로가 노하여 세조에게 무례함이 많았는데, 혹은 대립하여 서로 말하고, 혹은 묻는 것도 대답하지 않고, 혹은 공사를 이용에게는 고하고 세조에게는 고하지 않았으나, 세조는 오히려 사색에 나타내지 않았다." (7월 15일)

이는 세상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어서 대간들은 허구헌 날 이들을 공격했지만 간신들의 위세는 꺾일 줄을 몰랐습니다.

"황보인·김종서가 세조와 이용을 보는데, 황보인의 눈이 이용에게만 가 있으니, 사람들은 그가 이미 뇌물을 후하게 받은 것을 알았다." (8월 28일)

이런 가운데서 북경에서 문종대왕의 승하를 위문하고 금상의 즉위를 인정하는 사신이 왔습니다. 이제 이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사은사를 준비해야 했죠. 이 권신들은 게을러 터져서 나라를 위해 일 할 생각을 하지 않았고, 간신 이현로는 역적 이용에게 이 기회를 이용하라고 했습니다.

"이 때 김종서가 갈 차례였으나, 가기를 꺼려서 핑계하기를, “내가 오랫동안 변장으로 있어서 야인이 이름을 알지 못하는 자가 없는데, 만약 불의의 변이 있으면 국가에 걱정을 끼칠까 두렵다.” 하였다." (9월 10일)
역적 김종서가 하는 얘기를 보십쇼. 나이 많으면 다다 이겁니까?

"공의 용모와 수염과 시문과 서화에다 우리들이 배종하고 북경에 가면 가히 해내에 명예를 날릴 것이며, 널리 인망을 거두어 후일의 기반이 될 것입니다" (9월 10일)
이현로가 이용에게 한 말입니다. 중국에 가서 자기 이름을 알리고 인정을 받아 후에 자기가 왕이 될 기반을 마련한다는 것이죠.

이 때 세조대왕께서 분연히 일어나셔서 이들의 음모를 분쇄했습니다.
"이제 주상께서 나이가 어리고 정부의 대신은 조정 정사를 도모하고 의논하는데, 우리들은 일하는 것이 없으니 사신으로 가기를 청합니다"

바야흐로 역적 김종서와 이용이 감히 세조대왕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던 상황, 충신 권람은 대왕의 안위를 걱정하시어 이를 말리지만 대왕의 나라를 위한 충성을 누가 말릴 수 있었겠습니까. 대왕의 뜻은 오로지 어리고 약해서 권신들에게 휘둘리는 조카의 안위를 지키는 것 뿐이었습니다. 중국에 가서 자기의 기반을 확대하려는 이용 같은 생각은 당연히 꿈에도 꾸지 않으셨겠죠.

"안평이 나의 적수가 아니요, 황보인·김종서도 또한 호걸이 아니니, 어찌 감히 움직이겠는가? 임금만을 보호하면 무사할 것이다"

이 이전 대왕께선 인재를 널리 구하고 계셨는데 마침 권람이 호걸을 추천하니 희대의 충신이요 명재상 한명회였습니다. 이 날이 7월 28일, 허나 대왕께서는 주변의 이목을 걱정하시어 그를 만나지 않았죠. 혜빈 양씨를 견제할 때나 분경을 허용할 때 강경한 자세와 달리 이 무렵에는 행동이 신중해졌는데... 아 이 말은 신경쓰지 마세요. 아무튼 이 때부터 그의 제갈공명과도 비교할 만한 꾀가 도움이 됐을 것입니다.

대왕께선 자기가 없는 동안 나라가 어찌 될까 두려워 권신 김종서와 영의정인데도 공주의 남자에서 이름도 언급되지 않는 불쌍한 황보인의 아들을을 끌어들였으니 황보석과 김승규입니다.
"안평 대군의 흉한 꾀가 부족함이 아니고 다만 나를 꺼리는 것이다. 만약 두 사람의 아들이 나를 따라가면 안평 대군이 아무리 속히 거사하고자 하여도, 저 두사람의 아들이 내 손바닥 가운데 있는데 어찌 즐겨 난을 일으키는 데 따르겠는가? 반드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이것이 모사를 토벌하는 계책이다" (윤 9월 22일)
한편 이보다 앞서 집현전의 충신 하나를 포섭하였으니 그가 바로 신숙주였죠. (그 대화는 이전 편에 실었으니 생략)

이렇게 그들의 간악한 흉계가 어그러졌으니 "이용이 여러 계책으로 간청하고 황보인 등도 여러 계책으로 도모하였으나 마침내 얻지 못하니, 이용과 이현로가 분함을 스스로 이기지 못하였다." 했다 합니다.

세조께서 떠나시기 전 그 충의를 알아차린 큰 어른 양녕대군의 집에 효령대군 등 종친들이 모여 술을 마셨는데, 아무리 많이 마셔도 취하지 아니하셨으니(부럽다 ㅡㅡ) 양녕 대군이 찬양하기를
"이는 천하의 호걸이다. 중국 사람이 그것을 알 것인가" 라고 했다고 합니다. 허나 이런 말에도 세조께서는 겸손하셨다고 하죠. 가기 직전에도 양녕은 세조의 사람됨을 알아보았으니 "수양은 천명이 있는 사람이라" 이라 했다고 합니다.

이 때 계양군 이능은 "공이 떠나면 국가가 위험하다"고 만류했으나, 세조께서는 나라를 위한 충정을 생각하며 이리 말씀하셨다 합니다.
"부득이하다. 국가의 안위가 이 한번의 행차에 달려 있으니, 나는 목숨을 하늘에 맡길 뿐이다"
이 날 밤 후에 정희왕후가 되어 최초의 수렴을 행하시는 대비와 함께 비통히 울었으니 그 때 이리 말씀하셨다 합니다.
"나의 충성을 하늘이 알아 주기를 원한다" (10월 11일)
개국 초처럼 중국과 대립하는 것도 아니고 사신 온 것 때문에 한 번 가는 건데 뭐가 그리 위급한 상황이었을 지, 동생 자리 뺏어놓고 무슨 죽을 자리 찾으러 가는 것처럼 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 끕시다.

다행히 천명이 대왕께 있어 무사히 돌아오셨고 그 이름은 높아져 갔습니다. 아무리 자기 아들들이 같이 갔다 하나 이런 천금 같은 기회에 일을 저지르지 않은 안평대군 이용과 김종서 같은 무리는 참으로 허약하고 간악한 무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정말 일을 벌일 생각이나 세조를 견제하려는 생각이 없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무시합시다. 이 때 이용은 간첩을 보내 감히 세조의 집을 염탐하려 했다 하니까요.

2. 동지
힘이 없으나마 세조께는 힘이 되어 주는 이들이 있었으니 첫째는 권람이요, 둘째는 홍윤성이었습니다.
"어린 임금이 왕위에 있어서 충신과 간신이 뒤섞이어 조정이 문란하니, 공이 비록 부질없이 소절을 지킨다 하더라도 한 번 악명을 얻게 되면 후세에 누가 알겠습니까? 이 때는 바로 부득불 변에 대처해야 할 때입니다"
"능히 나를 따라서 처자를 잊고 사직을 위해 죽겠는가"
"이게 제 마음입니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 주는 사람을 위하여 죽는 것이니, 처자의 누를 어찌 족히 논하겠습니까"  (즉위년 7월 25일)

이런 동서고금에 찾기 힘들 충정에 힘 입어 여러 사람을 규합하였으니 황희의 아들 황수신, 이징옥의 형인 이징석과 동생 이징규 등이었습니다. 허나 그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이는 역시 한명회였죠. 오랜 기다림 끝에 둘은 만납니다.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다 하겠습니다.

"두루 오랜 옛날의 일을 보건대, 국가에 어린 임금이 있으면 반드시 옳지 못한 사람이 정권을 잡았고, 옳지 못한 사람이 정권을 잡으면 여러 사특한 무리가 그림자처럼 붙어서 (중략) 그때 충의(로운 신하가 있어서 일어나 반정을 한 뒤에야 그 어려움이 곧 형통해지니~" (1년 3월 21일)

반정.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이란 말입니까. 한명회는 말 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니, 그가 끌어들인 인물이 홍달손, 양정, 유수 등입니다. 공주의 남자에서 실제 칼을 휘두르는 자들의 모태가 되는 인물들이죠.

세조께서는 이에 더 해 역대병요를 지은 이들에 대해 자급을 올려주기를 청하여 그들의 공을 치하하려 했으나, 그들은 오히려 은혜를 원수로 여겼으니 성삼문, 하위지 등이었습니다. 허나 순리를 돌릴 수는 없는 법, 백 가지 죽을 길에도 한 가지 살 길이 열렸으니 그 길은 홍달손에게 있었습니다.

"홍달손이 이제 감순이 되었으니 이와 더불어 협모한다면 순졸 수백 인을 얻을 수 있으니, 우리 일이 성사될 것이다" (1년 5월 15일)
감순은 도성을 순찰하는 병사를 관리하는 직책. 역적들이 역모를 꿈 꾼다면 그 수백의 병력으로 먼저 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 어디까지나 방어용이예요.

3. 충정
한편 어리신 임금에 대한 충성도 계속되었으니, 임금께서는 어리다 하나 총명하시어 이 말을 귀담아 들으셨습니다. 허나 대신들의 반대로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죠.

"여러 종친은 천안을 모실 길이 없으니 매월에 한 번씩 만나 주시는 것이 어떠합니까"
"이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대신들로 하여금 의논하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9월 6일)

이렇게 세조께서는 권신들에 밀려난 종친들을 대신해 그들을 보듬어주길 청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우국충정입니까. 이 부분이 왠지 당시 종친들의 공통된 생각이라고 본다면 이미 이 때부터 종친들의 암묵적인 합의가... 아 제가 무슨 말 했나요?

허나 역적 이용은 왕에 대한 예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러 종친이 자주 와서 문안하는데, 어찌하여 한 번도 오지 아니합니까? 또 어제부터 성상의 몸이 조금 편찮으십니다" (9월 23일) 환관 김연이 이용에게 한 말

아무튼 세조께서는 어린 임금을 위해 나랏님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상소했으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첫째는 바른 사람을 가까이 할 것입니다" "그 둘째는 백성의 힘을 아낄 것입니다" "그 세째는 군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네째는 도적을 그치게 하는 것입니다" (9월 25일)
이러한 장문의 글을 올리니 노산군은 크게 기뻐하여 "상소가 아주 알맞고 적절하여 내가 심히 아름답게 여긴다"하며 "한 통을 다시 써서 올려라. 내가 마땅히 항상 두고 보겠다"하였습니다. 후에 폐주가 되었다 하나 역시 영명한 문종대왕의 아드님이셨죠. 권신들에 귀가 막혔다 하나 충언을 무시할 분이 아니었던 겁니다. 거기에 그 보상도 적지 않았으니 안장 갖춘 말을 직접 세조께 하사하였다 합니다.

일찍이 세종대왕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착한 아들 한 사람이 있다"했으니 이게 곧 세조대왕을 이르는 것이었고, 이 때 종친이나 내정에서 잘못된 게 있으면 임금은 몰라도 세조께 들리는 것은 두려워 했다 합니다.

이보다 몇 달 전, 비록 상중이다 하나 나라의 주인에게는 안 해가 필요한 법이므로 감히 국혼을 하기를 주청하였으나 노산군은 듣지 않았습니다. 허나 자신의 욕심이 전혀 없다는 걸 강조하는 그 우국충정에 대해 노산군도 감동했겠죠. 상소 하나에 대해 저렇게 좋게 반응한 것은 걱정이 해소됐다는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요, 정치 9단이었던 김종서, 황보인 등도 저런 모습을 보며 세조께 다른 욕심이 없다는 것으로 오판... 아 혼잣말입니다.

4. 역모
허나 그들의 음모는 계속 되었으니... 세조와 한명회가 풀어놓은 첩자들에 의해 그들의 움직임이 속속들이 드러났습니다.

"내가 선사포에 있을 때 함길도에서 온 자가 말하기를, ‘이징옥이 비밀히 이경유로 하여금 경성의 병기를 서울에 옮기도록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미친 말이라고 하였으나 과연 사실이었습니다." (5월 15일)
홍달손의 말이었습니다. 감히 함길도의 이징옥과도 결탁해 병기를 옮기려 했다니 하늘은 속여도 세조를 속일 순 없었죠.

이 때 혜빈 양씨도 마음이 그릇되지는 않았는지 역적 이용이 무뢰배들을 모은다는 말을 비밀스레 알렸고, 이용을 따르는 자들은 스스로를 신(臣)이라 일컫기도 하는 등 역적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김종서는 이용을 대함에 있어 용, 봉황 같은 말을 썼다고 하죠. 역적을 따르던 이들은 정난 후에 얼굴을 바꾸고 꼬리를 흔들었으나 자비로우신 세조께서는 그 남은 죄까지 묻진 않으셨다고 합니다. 허나 그 역적들은 은혜를 원수로 갚았죠.

9월 25일, 세조께서는 마침내 역모의 확실한 근거를 잡게 됩니다. 황보인의 종이 권람의 종 계수와 함께 일을 하고 있는데 그가 이렇게 말 했다 하죠.
"네가 나라 일을 아느냐?" / "내가 어찌 알겠느냐?"
"우리 주인 영상이 김정승 등 여러 재상과 더불어 모여서 의논하여, 장차 임금을 폐하고 안평 대군을 세워서 임금으로 삼으려고 하는데, 오는 10월 12일과 22일로 기한을 정하였다"

천운이 따라 그가 역모를 주절주절 내뱉으니 창덕궁 수리에 황해, 충청의 병력을 불러 10월 12일이나 22일에 일을 벌이기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먼저 임금에게 아뢰는 것이 먼저이나 저들에게 알려지면 안 될 일이니 선조치 후보고를 하자고 결론을 냈습니다. 이 때 장사들은 나라를 위해 죽기를 원하였다고 합니다. 명장 밑에 강병이 모인 것이죠.

참고로 이 날은 임금에게 상소를 올려 말을 선물 받은 날이었습니다. 아, 물론 우연의 일치입니다.

거사 날은 10월 10일로 정해집니다. 허나 황보인이 세조의 거사를 눈치 챘으니, 목숨이 경각에 달한 와중에도 세조께서는 당당하셨습니다.
"저들이 비록 알더라도 회의하기를 3일, 경영하기를 3일, 약속하기를 3일로 하여, 모두 8, 9일은 걸릴 것이니, 만일 10일의 기한만 어기지 않으면 미칠 수 있다." (10월 2일)

일이 발각됐는데도 이렇게 태연하시니 참으로 영웅의 자질을 알 수 있으며, 8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걸 보면 김종서의 꾀도 겨우 그 정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애초에 한양의 병사와 무기를 쓰면 될 것을 구태여 황해도니 충청도니 함길도니 하는 데서 무기와 병사를 끌어 오고, 종에게서 기밀이 나가 버렸으니 일의 기본도 모르는 자라 할 수 있겠죠. 애초에 노비 한 놈이 거사의 구체적인 내용을 다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데 별로 신경 쓰지는 맙시다.

10월 7일, 이용은 자기 편을 거느리고 사냥을 떠났다 합니다. 이 날 이렇게 말 했다 하죠.
"내가 지금은 너희들에게 덕을 보일 것이 없으니,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천시를 기다리라"

에 뭐 그랬다 합니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네요.

5. 10월 10일
"그리 원한다면 이 손으로 죽여 드리리다."

"내가 깊이 생각하여 보니 간당중에서 가장 간사하고 교활한 자로는 김종서 같은 자가 없다. 저 자가 만일 먼저 알면 일은 성사되지 못할 것이다. 내가 한두 역사를 거느리고 곧장 그 집에 가서 선 자리에서 베고 달려 아뢰면, 나머지 도적은 평정할 것도 없다."

이렇게 휘하 장사들에게 말을 하고 무사들을 불러 활 쏘기를 하면서 놀고 마셨습니다. 아무리 결심했다 하나 쉽게 말이 떨어지지 않았나 봐요. 허나 더 시간을 끌 수는 없는 일, 해가 저물어 홍달손은 자기 일을 하러 갔고, 세조께선 무사들을 불러 이렇게 외쳤습니다.

"지금 간신 김종서 등이 권세를 희롱하고 정사를 오로지하여 군사와 백성을 돌보지 않아서 원망이 하늘에 닿았으며, 군상을 무시하고 간사함이 날로 자라서 비밀히 이용에게 붙어서 장차 불궤한 짓을 도모하려 한다. 당원이 이미 성하고 화기가 정히 임박하였으니, 이때야말로 충신 열사가 대의를 분발하여 죽기를 다할 날이다. 내가 이것들을 베어 없애서 종사를 편안히 하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허나 이 망할 자들이 쉽게 따르지 않고 도망가는 자도 있었다 하죠. 세조께서 이를 한명회에게 의논하는데 그가 하는 말이 이랬습니다.
"길 옆에 집을 지으면 3년이 되어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중략) 지금 의논이 비록 통일되지 않더라도 그만둘 수 있습니까? 청컨대 공이 먼저 일어나면 따르지 않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이어 홍윤성도 소울칼리버를 들고, 아니 그냥 칼을 들고 궐기를 촉구하니 마침내 결심하시어 말리는 자들을 발로 차고 나아가셨다 합니다.

"지금 내 한몸에 종사의 이해가 매었으니, 운명을 하늘에 맡긴다. 장부가 죽으면 사직(社稷)에 죽을 뿐이다. 따를 자는 따르고, 갈 자는 가라"

후에 감히 대왕의 목숨을 노리다 실패한 이들에 비하면 과감한 결단력이었습니다. 후에 정희 왕후가 되시는 자성 왕비께서 직접 갑옷을 입히셨고, 종 임어을운을 데리고 혼자 역적 김종서의 집으로 갔습니다. 한명회는 그 용기에 감탄하며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주변에 병력을 배치했죠.

그 날이 왔습니다. 허나 김종서의 곁에는 덩치가 크고 무예에 능한 첫째 아들 김승규가 있었죠. 안으로 들어가서는 일을 벌일 수 없으니 금방 간다는 핑계로 밖에서 얘기를 했습니다. 세조께서는 사모 뿔이 부러졌다면서 빌려달라느니 하며 핑계를 대는데 김승규는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비밀리에 할 얘기가 있다"면서 물러나게 했고, 그들은 몇 걸음 떨어졌죠. 이 때 세조께서 자기 딸이 김종서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가 아니라 그냥 아무 편지를 보라면서 주었습니다. 이 때가 기회였죠.

김종서가 편지를 달빛에 비춰 보는 순간, 임어을운이 번개 같이 뛰어들었습니다. 그의 손에 든 철퇴는 어김 없이 김종서의 머리를 맞추었고, 김승규가 급히 아버지를 감싸자 양정이 칼을 뽑아서 쳤죠.

"김종서·김승규를 이미 죽였다"
세조께서는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합니다.

이제 쉴 틈이 없었습니다. 급히 주상께 반역을 알리고 사정을 설명했으며, 여러 재상들을 불러오라는 왕명을 내렸습니다. 대궐을 겹겹이 둘러싸서 역적들이 함부로 움직일 수 없게 했고, 들어오는 자마다 하나하나 검열했죠. 이 때 사용된 것이 바로 한명회의 살생부입니다.

이 날 조극관, 황보인, 이양 등의 역적을 철퇴로 때려 죽었고 오지 않은 윤처공, 이명민, 조번, 원구 등을 직접 사람을 보내 죽였습니다. 한 나라의 재상들이 백수의 손에 운명이 갈린 것이었습니다. 역적 이용도 잡았지만 세종과 문종께서 사랑하시던 마음을 기억하고 자비를 베풀어 살려 주었으니, 이용도 자기 죄를 깨닫고 울며 "나도 또한 스스로 죄가 있는 것을 안다. 이렇게 된 것이 마땅하다"라고 했다 합니다. 그러면서도 역심을 버리지 않았는지 끌려가며 이렇게 말 했다 하죠.

"네가 급히 가서 김 정승에게 때가 늦어진 실수를 말하여 주라."
하였으니, 대개 김종서가 이미 주살된 것을 알지 못하고 (일을) 다시 이루기를 바란 것이다.

거사 몇 일 전에 사냥을 갔다는 것과 함께 그가 역모를 꿈 꿨다는 유이한 증거입니다. 아 이거면 차고 넘치죠. 그가 역적이라는 것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것 아니겠습니까?

허나 역적 김종서는 그 때까지 살아 있었습니다. 감히 꿈을 포기하지 않고 여장을 하고 임금을 뵈려 했으나 사대문이 막혀서 포기했고, 다음 날 세조께서 직접 사람을 보냅니다. 자기가 하옥될 걸로 알았는지 이렇게 말 했다 하죠.

"내가 (재상인데) 어떻게 걸어 가겠느냐? 초헌(가마)을 가져오라"

역적의 최후입니다. 이렇게 단 하루만에 모든 일들이 해결되고 조정은 정상으로 돌아갔으니, 이 모든 것이 세조대왕의 공이었습니다. 이 일을 계유 정난이라고 합니다.

6. 정난
난을 평정한다. 계유정난은 이렇게 흘렀습니다. 이 위대한 업적에 대한 후대인들은 이렇게 적고있습니다.

"계룡산 동학사는 곧 조종조에서 원통하게 죽은 사람을 위하여 공양드리는 시설이었으므로 절에 《초혼적기》가 있다." (학사혼기) (명단에 단종을 포함한 계유정난 희생자들 모두 포함)
"집현전으로 하여금 교서를 초안하게 하니, 여러 학사가 모두 도망쳐 갔는데 유성원만 남아 있다가 협박을 받아 초안하고는 집에 돌아와 통곡하니 집 사람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하였다. (동각잡기 추강집)
"성삼문ㆍ박팽년은 집현전에서 궁을 숙위하였다 하여 공신의 호를 주니 성삼문이 그것을 부끄러워해서 밥맛을 잃었으며, 공신들이 윤번으로 연회를 열었지만 성삼문은 홀로 열지 아니하였다" (추강집 명신록)

이후 김종서는 영조 대에 이르러서야 추복됩니다. 이 때 안평대군은 인조 대였죠. "일시 죄를 짓긴 했으나 그래도 종친인데"가 명분이었습니다. 영조 대에 김종서, 황보인이 신원되면서 안평대군의 관직도 회복되구요. 아무튼 이 때 김종서의 명예를 회복해야 되는 이유가 이랬습니다.

"옛날 태종께서는 정몽주를 죽이고 나서 곧바로 시호를 내려 포장하는 은전을 베푸셨는데, 두 상신의 일은 정몽주의 경우와 똑같습니다. 김종서·황보인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정난의 거사를 이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광묘께서 어쩔 수 없이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종을 훈계함에 이르러서는, ‘나는 고난을 주었지만, 너는 태평을 주라.’는 하교가 있었습니다." (영조 22년 12월 27일)

어쩔 수 없이 죽였다 -_-a 뭐 결국 그에게 죄가 없다는 걸 인정한 거죠. 사군 육진을 개척한 명장이자 고려사 등을 편찬한 명신, 조선의 대호 김종서는 이 때에야 다시 위인으로 등장합니다. 이 때 김승규 역시 아버지를 보호했다는 것으로 충효의 화신이 되었고, 영조 대에 그 후손을 어떻게든 찾아내서 관직을 주게 됩니다.

에휴... 세조대왕은 무신.

명에 사은사로 간 것과 왕비를 맞을 것을 요청한 것, 상소를 올린 것 등이 모두 계유정난 이전의 일들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모든 건 단종과 김종서 등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고 봐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집으로 그렇게 쉽게 들였겠죠.
과연 반역이라는 게 있긴 했을까요? 애초에 안평을 왕으로 앉히려 한다면 함경도 병력까지 필요 없었겠죠. 대충 죄를 만들어서 수양을 유배 보낸 후 왕만 압박하면 되는 일이거든요. 안평이 왕이 된다 해서 김종서 등에게 득이 되는 것도 없었습니다. 어린 왕 vs 다 크고 유능한 왕. 어느 쪽이 좋을까요? 고문을 해도 모자랄 판에 역모죄로 금방 금방 죽여버린 것, 이것은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해야겠죠.

이 때 싸움은 권신 vs 종친 수준까지 간 것 같지만 그게 겉으로 드러나진 않은 것 같습니다. 계유정난 때의 모습을 보면 수양의 힘도 크지 않은 것 같죠. 고만고만한 상황에서 수양이 치고 올라왔고, 남은 종친과 신하들은 그 편을 든 거라고 봐야겠죠. 어린 왕을 사이로 한 힘 있는 종친, 노련한 권신들간의 힘겨루기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 납니다. 아니 솔직히 상황 보면 제대로 갈등 생기기도 전에 일 저지른 거 같아요 -_-;

그 뒤의 역사는 너무나도 순조롭게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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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원
11/09/01 01:21
수정 아이콘
안평대군과 김종서의 역심이 25.7% 정도는 차올랐었나보군요.
명민하신 세조대왕님께서 '사실상' 역모를 일찍이 알아보시고 미리 처리하신 듯 합니다.
Je ne sais quoi
11/09/01 01:27
수정 아이콘
오늘은 모 일보 패러디인가요.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내용은 재미거리가 아니지만 -_-a
무리수마자용
11/09/01 01:36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m]
양념반후라이
11/09/01 02:23
수정 아이콘
신 전두환과 노태우는 육참 정승화가 만고의 역적 김재규와
한 패거리 였음을 알고 급히 병력을 모아 간신배를 하옥하려
하는 과정에서 정병주, 장태완과 같은 역적도당들과 마찰이
있었으나 모두 무사히... 불라불라불라

읽는 내내 29만원의 그 분이 생각나네요.
사람들 하는 짓은 몇백년이 흘러도 그게 그거인듯 합니다. [m]
11/09/01 02:45
수정 아이콘
예나 지금이나 역적도당 놀이하는 애들이 제일 역적인건 변하지 않는 것같아요.
지니쏠
11/09/01 03:14
수정 아이콘
ㅜㅜ 조상님........ 크크. 잘 봤어요. 이번 글 컨셉도 상당히 재미있네요.
11/09/01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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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눈시BB님 글 정독합니다. 밀린거 몰아치기로 다 봤네요.
물여우
11/09/01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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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처벌할 수 없는 성공한 쿠테타...
그나저나 조정 권신이 아닌 일반 사림에서는 어떤 반응은 어땠을까요? 사육신, 생육신만 알지 일반 사림의 반응에 대한 것은 본 적이 없네요.
11/09/02 14:53
수정 아이콘
재밌게 읽었습니다. 크크 언제 진심이 나올까 유심히 읽어봤습니다. 이렇게 쓰시니 역사도 꽤 웃기네요 흐흐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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