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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7/10/11 15:30:36 |
Name |
kikira |
Subject |
[일반] [가벼운 책읽기] 남경태, 개념어 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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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조론
(...) 똑같은 모양의 조그만 타일이 가득 붙은 커다란 벽이 있다고 해보자. 공을 벽에 던지면
그 타일 중, 어느 하나에 맞을 것은 분명하다. 즉 그것은 필연이다.
(...) 특정한 힘과 특정한 방향으로 던졌기 때문에 그 공은 바로 그 타일을 맞힌 것이다.
(...) 생명체를 이루는 세포는 대단히 복잡하고 환경에 절묘하게 적응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저절로(즉 진화를 통해) 형성된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은 진화의 결과물(목적)인 현재의 세포를 보고 가지게 된 선입견에 불과하다.
사실 공은 어느 타일을 맞을 수 밖에 없었는데 우연히 맞은 그 타일이 "왜 하필 나인가?
이건 신의 뜻이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바로 창조론의 목적론적 맹점이다. ]
남경태, 개념어 사전, 들녘,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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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지금 내 눈앞에 있고 오늘 소개해야 할 책 제목엔 '사전'이라 씌여 있지만
그대로 읽으면 퍽 곤란하다.
저자 말대로 사전은 개인의 저술이 아닌 여러 사람의 '편찬'으로 가능한 저작물이다.
그러하기에 여기 있는 것은 저자 개인의 인문학적 개념들에 대한 주장에 가깝다.
가령 위에 써놓은 창조론편을 보자.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할 수도 있겠
으나 또다른 누군가에겐 입에 거품을 물만할 주장이 아닐수 없다.
이런 식으로 오늘의 책은 비록 사전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내용의 공인은
전혀 보장할 수 없다. '개인'의 생각은 기본적으로 편향이고 편견이자 왜곡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세상에 공인된 가치, 보편적인 것에 대한 믿음이 과연 존재하는가?
적어도 이 책이 담고 있는 인문학 쪽의 세계에선 그러한 생각은 히틀러의 연설마냥 흘러간
옛 이야기가 된지 오래다.
자, 각설하고 내 생각에 이 책을 권하고 싶은 부류는 거칠게 다음 둘 정도다.
먼저, 인문학적 지식 확보, 혹은 최소한의 의사소통- 그러니까 당신이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다
여자친구의 "오빠 이게 무슨말이야?" 따위의 질문에 대비할 수 있다는 뜻이다 - 을 위한 '기본기'를
다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훌륭한 입문서 역할을 할 것이다.
비록 편향이고 왜곡이며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뭐 어떤가. 데리다의 말대로 책읽기는 그렇게
완전무결한 전달과정이 아니다. 책읽기를 마친다면 당신은 그저 당신 자신만의 - 많이 불완전하겠지만 -
개념어 사전을 갖게 될 것이다.
마음대로 확장하고 변용하면서 재미있게 놀리도록, 물론 가끔 아는 척도 빠뜨리면 안 된다.
이제 다시 고전적인 책읽기로 돌아와서. 두번째로, 이 책과 생산적 비평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먼저 말해두어야 하겠다.
물론 비평행위는 저자와 독자 간 승/패가 나뉘는 게임은 아니다. 만일 당신이 어떤 책을 깡그리 무시할 만할
논리를 발견했다고 하자. 그렇다고 책의 활자가 바뀌던가? 바뀌는 것은 오직 책을 수용하는 당신의 의식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사실 남경태씨는 이 쪽 분야에서 꽤 호평을 받고 있는
실력있고 구매력도 있는 출판계의 총아이다.
즉, 아예 허무맹랑한 소리가지고 지식의 상대성 운운하지는 않는다는 소리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다시 첫번째 경우로 수렴해야 하나?
아쉽게도 여기서부터는 나도 더이상 도와줄 수없다. 책읽기란 결국 자신의 오롯한 지적노동이며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어떠했느냐고?
글쎄? 아쉽지만 그건 비밀이다.
하지만 용기를 가져라, 어차피 모든 책읽기는 스파링일 뿐이니까.
근본주의, 근친상간, 디아스포라, 민족주의, 빅브라더, 소외, 원형, 종말론, 창조론,
코키토, 트라우마, 페르소나, 하이브리드, 해체
어떤가? 대충 가다가순으로 뽑아본 오늘의 스파링 라운드이다. 해볼만하지 않은가?
다시 말하지만, 결국 책읽기라는 것은 스파링에 지나지 않다.
스파링을 통해 맺집을 기르고 기술을 향상시키며 실력을 기른 후, 본게임으로 나가야 하지 않겠나?
세상이라는 진정한 게임 속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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