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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12/14 14:39:50
Name swordf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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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 #2 b0038209_1291286.jpg (11.4 KB), Download : 13
Subject [일반] 수정궁과 엠마




수정궁- 영어로 크리스탈 팰리스 하면 뭐가 생각나십니까?



저는 특히 크리스탈 팰리스라는 영어 이름을 들으면 프리미어 리그에 승격하여 그 다음해에 폭풍 강등당한
크리스탈 팰리스 FC가 생각납니다.

하지만 제가 이야기할 크리스탈 팰리스는 독수리와 축구 아래 있는 건축물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저 건물이 팀이름과 이 팀이 있는 동네 이름의 기원이 되는 수정궁입니다.

수정궁은 Palace라는 이름이 붙지만 기존에 유럽에서 사용했던 펠리스의 뜻과 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위대한 석학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책 '궁정사회'에서 펠리스는 앙시엔 레짐 시기 귀족들이 살았던 거대화 되고
규격화 저택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이 크리스탈 펠리스는 왕도 귀족도 살지 않는 '궁전'이었습니다. 이 건물은 만국 박람회를 위해 당시 패권국인 대영제국의 위대함을 만방에 알리고, 영국 국민들이 이런 성과를 구경할 수 있게 만든 일종의 보고서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런 나름 대형 프로젝트를 주도한 사람은 빅토리아 여왕이 그녀의 일생에서 가장 사랑했던 남자이자 여왕의 남편 알버트 대공이었습니다.

하이드 파크에서 건축을 시작된 이 건물은 조셉 팍튼의 설계하에 당시 상상을 초월하여 지어 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석재가 아닌 철과 유리를 사용해서 온실처럼 설계된 이 건물은 당대 건축물 치고 상당히 특이한 외관을 자랑했
습니다. 또한 그 규모 역시도 상당히 큰 규모였습니다. (위키에서는 135 feet high, 772,784 square feet 라고 나오더군요)

또한 내부도 거대한 크리스탈 분수나 여러 기기묘묘한 세계의 건축물 모형 같은 채워 졌습니다.
이 때문에 들어간 인력도 대단했습니다. 한번에 2000명이 동원되었으며, 공사 기간동안 총 5000명이 동원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엄청난 사업은 1851년 수정궁이 완공되면서 끝나게 됩니다. 공사도중 참새가 극성이자 워털루의 영웅 월링턴
공이 매를 풀어 놓자는 뻘 소리를 했다는 전설을 남긴 채 말이죠.

아무튼 어떤 왕과 귀족도 살지 않는 당대 가장 화려하고 최첨단 '궁전'은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평민들도 단 1페니만 내면 이 호화 궁전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아주 혁명적이었습니다. 고상하고 화려한 문화는 그 전시대에는 오로지 귀족이나 일부 부르주아지만
향유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때부터 중산층과 가난한 사람도 단 1페니만 내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물론 1페니가 단돈은 절대 아니었습니다만) 그리고 이런 변화는 박람회 기간인  
6개월 동안 82만명의 관객이 이 곳을 찾음으로써 확실한 것임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모리 카오루'의 엠마에서 잘 나옵니다. 엠마의 고용주이자 어머니와 같은 존재인 케리 스토너 부인이
젊은 시절 몇일 동안 남편은 야근하고 자신은 거의 굶어서 수정궁에 들어 갈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이과정은 상당히
고생스럽게 묘사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아예 이런 문화는 이들에게 금지된 것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만화에서 이런 경
험을 언제하겠냐 라는 식으로 이야기 합니다.
(참고로 저는 번외편 중 이 편을 가장 좋아합니다. 케리 부인의 젊은 모습도 볼 수 있고, 케리 부인으로써 남편과의
앞으로 이어질 추억 중 하나라고 믿었던 이 때 추억이 남편과의 거의 마지막 추억이었다는 내용은 상당히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으니까요. 그리고 엠마의 수정궁 데이트와 연관해서 생각하면 뭔가 다른 느낌도 들기도 하고요.)

아무튼 이 에피소드 끝에서 언급하듯 스토너 부부의 당시 곧 없어진다는 믿음과 상관 없이 크리스탈 팰리스는 박람회가 끝난 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일단 위치가 하이드로파크에서 시든햄 힐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건축물 역시 확장되어 더욱 커지게 되었죠. 시설 역시 보다 일반인들을 위해 다양해졌습니다. 콘서트 장, 전시장, 그리고 위락 시설까지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철도가 근처 건설되었고, 근처 두군데 역에서 이 수정궁으로 들어 올 수 있었습니다. 즉 이전한 수정궁은 완전히 근대적인 테마 파크로 변형 된 것입니다.

엠마에서 이 때 시절을 담은 에피소드가 몇개 있습니다.
그리고 이중 가장 중요한 에피소드가 엠마와 윌리엄의 데이트 에피소드이죠. 이 장면은 그냥 통속적인 연애 장면으로 그냥 넘길 수 있습니다만, 사실 좀더 생각하면 뜻 밖에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윌리엄이 속한 부르주와지 계급은 이 수정궁에서 여가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엠마가 속한 일반 서민들 역시 시간과 자신들의 의지만 있다면 수정궁에서 즐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화에서 별로 이 둘이 같이 다니는 것에 대해 별로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점은 사실 그 전시대에서는 놀라운 점입니다. 귀족이나 상층 부르주와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곳에는 원칙적으로 평민들은 들어 갈 수 없었습니다. 또한 평민들 역시 자신의 문화 향유 장소에 다른 계급의 사람들이 들어 오는 것에 대해 베타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가 되면 이런 각 계급 간의 문화 향유 장소가 겹칩니다.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수정궁과 브라이튼 해변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브라이튼 해변도 엠마에 나오네요.)

이렇게 일반을 위한 시설로 시간을 보낸 수정궁은 국제 정치가 급변하게 되자, 잠시 그 역할을 바꾸게 됩니다.
1차 대전 때 수정궁은 해군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쓰였습니다. 해군 잉여 병력을 육군 처럼 사용했던 왕립
해군 사단의 훈련장으로 말이죠.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수정궁을 보존하자는 운동이 일어 납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도 쓸모 없이 1936년 11월
30일 화재로 소실되어 세상에서 수정궁은 사라지게 됩니다. 참 아이러니 하게 이 시기 대영제국은 몰락하고 있
었으며, 제국의 숨이 끊어지게 될 마지막 싸움에 대비하고 있었던 시기 였습니다. 즉 대영제국의 영광을 보여주기 위해
지어진 이 건물은 대영제국의 숨의 끊어지기 직전에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화재 소식을 들은 윈스턴 처칠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이게 한 시대의 끝이다."

지금까지 수정궁에 대해 몇자 적어 보았습니다. 좀 자료가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좀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위키 신공이죠)
사실 대충이 이름만 들었지 저도 수정궁에 대해 알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만화 엠마 때문이었습니다.
엠마와 윌리엄 두사람의 사랑의 장소로 정말 잘 어울렸기 때문입니다. (모리 카오루 여사님은 그냥 수정궁을
그려 보고 싶어서 배경으로 삼았겠지만요.)

수정궁의 상징 크리스탈 분수 앞에서 엠마와 윌리엄- 만화 쪽이 훨씬 잘 묘사되어 있는데
구하기 귀찮아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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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덩이
09/12/14 14:53
수정 아이콘
아.. 저는 처음 안 사실이네요.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다.

근데 왠지 '수정궁'이란 단어가 어감이 달라붙진 않네요. 중국집 이름 같기도 하고...
이슬먹고살죠
09/12/14 14:59
수정 아이콘
엠마!! 제가 제일 좋아하는 평면세계의 인물이 엘레노아라죠.
LunaticNight
09/12/14 15:59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재밌어요~
엠마 만화책으로 정말 재밌게 봤는데.. 다시 보고 싶네요.
slowtime
09/12/14 19:50
수정 아이콘
헨리 페트로스키의 <인간과 공학 이야기>에 "수정궁의 빛나는 성공"이란 장이 있습니다.
토목공학의 발전을 보여주는 이정표로서 수정궁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래도 엠마와 윌리엄의 데이트에 얽힌 swordfish님의 이 글이 더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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