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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12/07 23:24:23
Name swordf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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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기사 몰락의 전초전 - 폴커크 전투




중세는 기사의 시대였습니다.
태왕 사신기라는 드라마에서 혼자서도 일어나지 못한다고 평한 쇠덩어리 갑옷을 입고 말 한마리를
타고 창 하나를 꼬나들고 적진에 향해 돌격하는 기사들.
물론 실상은 이와 많이 다르지만 아무튼 기사는 중세에서 대세였던 건 맞습니다.

그 대표적인 전투가 헤이스팅스 전투였습니다. 이전투에서 노르망디공 윌리엄은 노르만 기사들을 활용하여
잉글랜드의 보병대를 썰어 버리고, 잉글랜드의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시대를 풍미했던 기사들도 점차 중세의 가을에는 그 위상이 떨어져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가 가시적으로 들어온게 바로 브레이브 하트의 배경인 1차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
이었습니다.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게 억압 받던 그 시대, 한 스코틀랜드 하급 귀족이 분연히 일어 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윌리엄 르 월레스. 영화처럼 부인의 죽음에 분노를 느꼈거나, 전설처럼 자기가 잡은
송어를 잉글랜드 군에게 빼긴 것에 분노를 느꼈거나 해서 아무튼 그는 일어 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병사들까지 모으는데 성공합니다.

그와 그의 병사들은 스털링 다리에서 잉글랜드 군을 격퇴하는데 성공합니다. 늪지에서 닥돌하던
무식한 잉글랜드 기사들은 그의 병력에 의해 말 그대로 살육 당해 버렸습니다.
이 전투 후 스코틀랜드에서 잉글랜드 군을 몰아낸 그는 잉글랜드 북부에서 노략질과 살육을 하며
나름의 복수를 하는데 성공하죠.

한편 전투의 한 쪽을 담당하게 될 잉글랜드의 위너왕 아니 꺽다리왕 에드워드 1세는 프랑스 보르도
에서 빈약한 영국인의 식탁에 나름 와인 정도는 올리기 위해서 프랑스 왕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습
니다.

그러나 성질이 화이어 스러운 그가 프랑스왕과 전쟁이 끝난 후 위스키를 털기 위해 스코틀랜드로
갈 것이라는 건 누가 봐도 어둠 속에 화이어 보기 만큼 알기 쉬운 것이었죠.

그는 전쟁이 끝나자 마자 중세 역사상 가장 큰 군대를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무려 만5천 대군을
동원한 것이죠.(동방 빼고 이 숫자는 중세 전쟁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대군이었습니다.)
이 군대는 잉글랜드인, 프랑스인, 웨일즈 인들로 구성된 부대였는데, 특히 웨일즈인과 잉글랜드
인의 관계는 최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최근에 에드워드 1세에게 나라가 멸망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에드워드 1세가 웨일즈 인들을 동원한 것 성공적이었습니다.
그건 그들이 바로 장궁의 달인이라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잉글랜드 군에게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에드워드1세가 이끄는 1만 오천 대군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많은 물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조달하는 건 당시에는 주변 지역에서의 구매와 약탈 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눈치 챈 윌레스는 잉글랜드 군의 진격로를 불태워버려 잉글랜드 군을 배고프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기다렸죠.
이런 윌레스의 노림수는 곧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잉글랜드 군은 굶주렸고, 사이가 나쁜 잉글랜드인과
웨일즈 인들의 관계는 험악해졌기 때문었습니다.
윌레스는 이런 잉글랜드 군의 사기 약화와 내분을 알게된 윌레스는 6000명의 군대를 폴커크로 진격시킵니다.
적의 약점을 노려 승리하기를 꿈꾸며 말이죠.

하지만 그의 계산에서는 한 요소가 빠져 있었습니다. 바로 에드워드 1세의 존재였습니다.
이 왕은 성격이 dog같긴 했지만 카리스마와 추진력을 가진 뛰어난 장군이었습니다. 그는 이런 내분을 봉합하고
병사들의 사기를 최대한 높여 놨습니다.
그러나 전투 전에 에드워드 1세는 분명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말이 그를 걷어차 갈비뼈 3대를
날려 놨기 때문이었습니다.

윌리엄 월레스의 전술은 중세를 바꾸어 놓을 전술이었습니다. 기사의 기병 돌격에 대비하여 장창을 중심으로
한 보병들의 밀집대형을 구성했습니다. 또한 기병 진격을 방해하기 위해 숲을 뒤로 두고 늪을 앞에 둔 곳을 전장
으로 선택했습니다. 만약 기사들이 돌격하면 늪때문에 속도가 떨어지고 스코틀랜드 군 지형 앞에 이른다고
해도 장창에 꼬치 구이가 될 판이었습니다.

이런 전술은 후에 기사 몰락에 큰 영향을 미칠 하나의 방식을 만들어 냅니다. 비록 직접적인 영향은 아니었
지만 스위스나 플랑드르의 시민병들이 귀족 영주 중심의 기사단을 격파한 것도 파이크(장창)을 이용한 보병
밀집 전술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에드워드 1세가 내놓을 전술은 기사 돌격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기사들은 돌격하긴 했지만 그의 전술
의 핵심은 기사가 아니었습니다.

폴커크 전투가 시작되자 잉글랜드는 먼저 기사들을 돌격 시킵니다. 윌리엄 월레스의 바램대로 그들은 쉽게 격퇴었
지만 스코틀랜드 궁병이 이 돌격에 의해 괴멸되어 버립니다. 다시 영국 기사들이 배후에 양동작전을 펼치며 후방
을 위협하자 이번에 레드커뮨이 이끄는 스코틀랜드 기병들이 후퇴해 버립니다. 영화에서는 이 장면을 배신처럼
묘사했지만 말이죠.

기병과 궁병이 사라지자 스코틀랜드 군은 창병 밖에 남지 았습니다. 그러자 잉글랜드 군은 웨일즈 궁병을 내세
웁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전투는 종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잉글랜드의 장궁병들이 속도도 느리고 밀집되어
있어며 방어구도 형편 없는 스코틀랜드 군에게 화살 세례를 쏟아 버려 도륙해버렸기 때문입니다.

폴커크 전투는 사실 정치적으로는 일시적인 효과만  가져 왔습니다. 이 전투에서 도망쳤던 윌리엄 월래스는
몇년 후 잡혀 처형 당했지만 이는 스코틀랜드 지도자를 윌리엄 월래스에서 로버트 브루스로 바꾼 것 뿐었습니다.
에드워드 1세는 이 때문에 스코틀랜드로 몇번 더 원정을 가야 했으며, 그의 사후 멍청이 아들 에드워드 2세는
브루스에게 베록번에서 참패 해 버리는 바람에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에서 완전 축출당해 버립니다.

하지만 에드워드 1세의 폴커크 전투는 정작 이 전투에서는 기사와 상대하지 않았으면서도 기사와 싸울 수 있는
새로운 전술발전에 큰영향을 미칩니다. 바로 장궁병의 화력을 이용하여 기사들을 상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후에 에드워드 1세의 손자 에드워드 3세에게 이어져 크레시 전투, 후에 아쟁쿠르 전투
같은 백년 전쟁기에 큰 성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이 백년 전쟁을 거치자  기사는 전장에서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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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바다
09/12/07 23:29
수정 아이콘
와우.... 재밌게 읽었어요~~
블랙독
09/12/07 23:36
수정 아이콘
만일 창병들에게 300과 같은 대형 방패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기병에 대한 밀집형 파이크에 의한 대비는 중세 기사에 대항하여 나왔다기 보다는
오히려 고전시대에 더 많이 쓰였고, 중세 말미 아주 잠시 반짝했었죠.

기사의 확실한 몰락은 아무래도 총과 대포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swordfish
09/12/07 23:44
수정 아이콘
블랙독님// 장창이라고 해도 파이크 길이가 거의 3m~6m정도 됩니다. 그래서 당시 병사들은 이 창을 두손으로 잡고 있어야 했습니다.
방패 들고 있을 정신이 없죠. 당시 삽화 보면 대충 아실 겁니다.

밀집형 파이크 대형도 반짝하지도 않았습니다. 머스킷과 섞어서 거의 17세기까지 사용되었습니다.
단 파이크병만 있는 게 아니라 몇몇 검이나 폴암계 무기를 쓰는 병사도 섞었습니다. 이래서 유연성을 높인 거죠.

대포의 경우 프랑스는 장궁병 잡으려고 열심히 쓴 편이었습니다. 이미 그 이전에 기사 돌격이라는 구식 전술은 거의
접은 상태였지만요.
09/12/07 23:44
수정 아이콘
모든 와우 전탱들의 피를 뜨겁게한 300
블랙독
09/12/07 23:59
수정 아이콘
swordfish님//
역시 자세히 들어가면 그런 속내사정이 ^^;;
그나저나 중세의 몰락이 도대체 얼마의 시간동안 이뤄진건지;;;;;
말씀을 듣고보니 그럼 17세기에는 한쪽에선 대포쏘고 그옆에선 머스킷 쏘고 그앞으로 기병이 나가면 그걸 창병이 막아서고
뭐 이런 그림이 머리속에서 그려지네요 -_-;;
09/12/08 00:04
수정 아이콘
100년 전쟁 때 석궁의 등장으로 기사들은 안드로메다로..
스카이_워커
09/12/08 00:09
수정 아이콘
swordfish님의 글을 읽으면서 밀리터리 매니아이신가- 하고 생각했었는데 옛날옛적 전쟁에도 흥미가 많으셨군요 =)
(이전에도 고대전에 대한 글을 많이 쓰셨는데 제가 못본거라면 죄송합니다;;)

항상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시간나시면 동양의 고대전투에 대해서도 부탁드릴게요~
(이전에 많이 올리셨다면 정말정말 죄송합니다;;)
09/12/08 00:17
수정 아이콘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기는데 그럼 월레스는 기병을 왜 후방에 배치한거죠? 단순한 포위전을 위한 예비대의 성격이었나요?
아무리 습지대에서 싸웠더라도 양익에 배치해서 최대한 기동성을 살려주는 것이 제 상식인데 말이죠 -_-;
웨인루구니
09/12/08 00:25
수정 아이콘
미디블 토탈워2를 해본 사람으로..
좀 이해가 되네요.
wish burn
09/12/08 00:26
수정 아이콘
원래도 좋은 글 쓰셨지만 유머가 포함되니 좀더 보기 즐거운 글이 되네요.
이적집단초전
09/12/08 00:36
수정 아이콘
트리폴리에서 300명의 기사돌격으로 2만명을 아작내던 그 위엄쩔던 기사님들은 어데로가고...

후새드.
09/12/08 00:37
수정 아이콘
확실히 현대전보다는 고대전이 창칼에 대한 로망이라고 해야되나..
아무튼 그런게(?) 있어서 흥미로운 것 같네요
그런 비슷한 연유로 지금까지 본 영화들 중에 브레이브 하트를 으뜸으로 꼽습니다
하도 재밌게 봐서 당시에 이것저것 열심히 검색해보고는 했는데
다 까먹어버렸는지 swrodfish님 글내용이 처음 본 듯 새롭게 느껴지네요
윤성민
09/12/08 00:56
수정 아이콘
잘읽었습니다 흐흐
나이트해머
09/12/08 01:00
수정 아이콘
기사로 대표되는 창기병의 몰락은 단순히 장창밀집방진의 힘이 아닌 총과 장창의 결합의 힘입니다.
16세기까지 기사의 후예라 할 수 있는 쟁다르므는 여전히 랜스 차징의 힘으로 전장을 휘젓고 다녔으며, 단순히 장창밀집방진만으로는 이를 완전히 무릎꿇리지 못했습니다.
장창으로는 갑옷을 뚫기가 요원하고, 연거푸 이어지는 랜스 차징을 확실히 막기 위해서는 폴암이나 워해머 같은 둔기류를 든 병력이 장창에 가로막혀 멈춘 순간에 계속 피해를 누적시켜야 하나, 그게 쉬운 건 아니였죠.
결국 어지간한 보병방진은 랜스 차징에 먼저 무너지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이는 장궁의 등장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죠.
영국이 백년전쟁 당시 장궁으로 승승장구한 건 언제나 좋은 지형(보통 언덕)을 잡고, 하마기사들이 주축으로 보병들이 물러서지 않고 몸빵을 해 주었기에 장궁이 효과를 나타냈습니다. 하마기사, 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영국은 기사들을 말에서 내리게 해 이들이 주축으로 보병방진을 구축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병방진이 돌파당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기도 하고.

스위스 용병이 그렇게 고평가를 받은 건 다른 게 아닙니다. 스위스 용병들만큼 기병 상대로 물러서지 않는 보병이 없고, 대기병 전술인 둔기류의 적절한 운용도 스위스 용병들만큼 잘하는 용병이 없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나노 전투에서 프랑소와 1세의 연속된 랜스 차징에 무너지기도 했습니다.(이때 랜스차징을 스물 몇번을 했던가...)

이런 강력한 창기병의 몰락 원인은 총의 등장이였습니다.
스페인 테르치오는 장창밀집방진에 총을 결합시켜 드디어 랜스 차징을 완전히 격퇴해버리기 시작했지요. 정면 뿐만 아니라 측후방의 랜스 차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랜스차징은 한두번이 아닌 여러번 연거푸 일어나는데 이 과정에서 총기류는 이전의 어떤 병기도 가하지 못한 심대한 타격을 창기병에게 줄 수 있었지요. 결국 총기에 의해 충격력이 감소한 창기병은 보병 방진을 뚫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총기병-아르케부스와 쿼러시어 역시 창기병과의 기병전투에서 우위를 보이며 창기병을 몰아내는 데 한몫 했지요.
창기병에 비해 훨씬 깊은 종심과 원거리 전투능력을 가지고 창기병의 충격력을 받아내는데 성공하면서 창기병은 몰락하기 시작했다 하겠습니다.
물론 동유럽의 폴란드 윙드 훗사르처럼 무지막지한 사기와 어마어마한 명성, 높은 훈련도와 수많은 전적에서 나오는 위압감에 힘입어 상성을 무시하고 테르치오를 정면돌파한다거나 총기병을 돌격 한방에 박살내는 비상식적인 기병이 없던 것은 아닙니다만, 총기류의 등장이 창기병의 몰락을 가져왔다 해야 옳다 하겠습니다. 16세기 말까지 유럽의 기병 주류는 기사의 후예들인 창기병이였으니까요.
09/12/08 01:05
수정 아이콘
역사상 가장 잔인한 사형을 당하신 윌리엄 월레스님 관련 글이군요! 영화에서 묘사한 것이 순화된 것이었다고는 믿기 어렵지만, 하여튼 윌리엄 월레스 지못미 흑흑흑;;
09/12/08 02:35
수정 아이콘
에이지오브엠파이어2에서의 먹고먹히는 상성관계가 떠오릅니다.
창병<궁병<보병<기마병<창병<보병<궁병<기마병... 헷갈려 ;;
09/12/08 03:14
수정 아이콘
전 tv에서 틀어줬던 브레이브 하트 보면서 울었습니다. 특히나 월레스 죽는 장면.. 당시 배경이 우리나라 식민지 시대랑 유사한 것도 있어서 더더욱 공감이 되더라구요. 성우 더빙판인데도 그렇게 감동적이었습니다. 나중에 비디오로 한번 더 빌려봤다는;
09/12/08 10:15
수정 아이콘
나이트해머님이 말씀하신 스페인 테르치오(혹은 테르시오)를 볼 수 있는 영화가 있는데 비고모텐슨이 주연한 영화 <알라트리스테>입니다. 물론 테르시오가 성공적으로 기병대를 상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총과 장창의 결합뿐만이 아니라 테르시오를 구성하던 병사들의 대담함과 전쟁수행의지도 작용했다고 생각되네요.

테르시오는 15세기말에 개발되어 그 후 표준전술이 되었지만, 약점이 없는건 아니었습니다. 대기병전술이었기 때문에 방어력은 뛰어나지만 상대 방진을 분쇄할만한 공격력은 부족했습니다. 따라서 창기병에서 총기병으로 변모한 기병대는 전장의 주역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죠. 대표적인 예로 네덜란드 전쟁에서 나소백작 모리스의 네덜란드 기병이 있습니다. 네덜란드 기병은 일차적으로 스페인 기병대를 분쇄시킨 후 테르시오 방진의 후방을 공격, 테르시오를 무력화시켰습니다.(여담이지만 나소백작 모리스는 후에 오렌지공이 되고 윌리엄1세가 되어 네덜란드의 통치자가 됩니다. 아프리카의 모리셔스섬은 모리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섬이구요)
따듯한담요
09/12/08 13:13
수정 아이콘
OrBef2님// 어떻게 사형을 당했나요? 얼마나 끔찍했으면..역사상..-_-;;
09/12/08 13:27
수정 아이콘
유익한 글을 재미있게도 볼 수 있네요.
중간중간에 유머포인트가 일품입니다 :) 추천한방.
swordfish
09/12/08 14:12
수정 아이콘
나이트해머님// 오히려 좋은 가르침을 받은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말씀 대로 하마 기사나 파이크 병들이 탱커 역할을 해줘야 기병돌격을 막을 수 있죠.
안그러면 예전에 궁기병들이 그랬듯이 기사들의 발끈 러쉬에 털리 듯 털려 버리니까요.
그런 면에서 스페인이 고안한 테르시오는 진짜 당시 전쟁 때 뛰어난 전술인 건 같습니다.

른밸님// 마우리츠 보다는 이 쪽에서 더 뛰어난 사람은 앙리 나바르(후에 닭을 먹게 해준다는
프랑스 왕 앙리 4세) 쪽 아닙니까? 피스톨을 사용하는 라이터로 구식 기병대를 발라 버렸으니까요.
마우리츠의 가장 큰 공적은 테오시오를 전술을 대체할 선형 전술을 만든 것이지요.
물론 초창기에는 별 위력은 없었다고 들었지만요.

따듯한담요님// 4조각인가 다섯 조각인가 인수 분해 되어 런던 다리에 걸렸을 겁니다. 아마
09/12/08 21:02
수정 아이콘
swordfish님// 앙리 나바르라면 베트남에서 떡실신...농담이구요;; 물론 앙리 나바르쪽이 제대로 진가를 발휘했지만 오리지널 테르시오와 붙은게 아니라서-즉 스페인과 격돌한게 아니라서- 모리스를 언급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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