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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5/03 15:39:31
Name 박지성
Subject [일반] 삼국지 당시 중국의 인구는?
전국시대 (기원전 5-3세기) 총 2000만명 추정
한 초 (기원전 200년 무렵) 약 1,500~1,800만
한 무제 초기(기원전 134년) 3,700만
한 무제시기(기원전 87년) 3,200만 내외
서기 2년 (한서지리지) 5,900만
후한 광무제 (57년) 28,529,108
명제 시기 (75년) 34,125,021
장제 시기 (88년) 43,356,367
화제 시기 (105년) 53,256,229
안제 시기 (125년) 48,690,789
순제 시기 (144년) 49,730,550
충제 시기 (145년) 49,524,183
질제 시기 (146년) 47,566,772
환제 시기 (157년) 56,486,856

263년 촉나라 94만
280년 오나라 230만
263년 위나라 4,432,881
삼국 전체 7,672,881 (통전의 기록)

280년 진나라 16,163,863 (진서 지리지) - 실제인구 4,500만 추정
302년 영가의 난 시기 1,322만
동진 (317-420) 시기 최 전성기 1,700만

송나라 464년 4,685,501명 (통전 식화지)
5,174,074명 (송서 주군지)
진나라 말 (580년대) 50만호, 2,000,000명 - 실제 인구는 이 보다 많았으나, 통치력이 미흡.
1500만에서 2000만 추정.
16국 시기 후기 (410년경)전후 북방 인구 약 400만호, 2000만 내외.
북위 520년 이전 500만호, 1900만호.
북위 전성시 약 600만호 가능.



왕육민이 지은 중국인구사(강소인민출판사 간행, 1995)

번역-김용만 박사님



정말 저 문헌을 곧이 곧대로믿는다면
전 영제 희평 원년=서기 172년=추정 중국인구 5천 5백만 에서 280년 전체 중국인구가 800만명으로 줄어들었다라는건데
말이 안되죠. 그리고 한참 전란때는 그보다 더 적은 인구수였다니 아무리 전란이 심해도 그렇게 인구가 갑자기 줄지는 않습니다. 그때 기록된 수치는 그야말로 제대로 기록되지않고 기록누설이 심하고 이리저리 방랑하는 시민들도 많고 해서 제대로 집계된 수치는 아닐겁니다.

그뒤 280년 진서지리지에는 중국인구가 천6백만으로 집계되어있습니다. 시간도 얼마 안지났는데 800만이 뜬금없이 두배로 뛸까요? 나라가 통일되며 안정되어 많은 인구가 통제력안에 속해있게 되면서 이전보다는 좀더 제대로 집계가 되었던거죠,. 그리고 이 천6백만이라는 집계도
아직 제대로 다 집계한건 더더욱 아닐겁니다.

삼국시대-진 같은 시기는 호구별 가구수도 적다는걸 볼때, 당시 실제 인구라기 보다는 통제력이 미쳤던 인구를 말하는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왕육민이 지은 중국인구사(강소인민출판사 간행, 1995)에서 추정하기로 280년 실제인구를 4천5백으로 추정하는데 157년도 인구와(5천 만명), 난세가 끝난후 수나라 시절(4천 만명) 인구등을 비교하고 당시 낮은 인구증가율,전쟁,재해으로 인한 인구 감소등을 계산해서 대략적으로 당시 실질 인구를 추정합니다. 그 추정에 따르면 절대 280년의 인구가 8백만명이 될리는 없죠.

문헌상으로 나온 수치가 모두 맞다고 한다면 5천만명이었던 중국인구가 전란때문에 4천만명이 그대로 몰살당했고 위촉오 인구 다합쳐서
800만명이었던 인구가 280년 진서지리지에 1600만명이니 전쟁이 끝나면서 얼마되지도 않은 시기에 두배로 껑충뛰었다라는 말밖에는 안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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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거
09/05/03 15:44
수정 아이콘
본문을 보니 전한 → 후한 왕조 교체기에

3000만명이 사라져버렸네요...;;;;

제가 알고있는 단편적인 지식으로도 그때 당시 왕망을 비롯하여 도적떼가 횡행하면서
여러모로 막장테크를 탔습니다만
전국시대나 삼국시대만큼 막장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박지성
09/05/03 15:47
수정 아이콘
오우거님// 그때도 전란이다보니 제대로 인구 집계를 할수가 없었던거겠죠. 안정된 토지위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들이 다 고향을 떠나 뿔뿔히 유랑민신세가 되니 제대로 통치권이 미쳤겠습니까... 물론 어느정도의 인구수 감소는 분명 있었을겁니다.
물탄푹설
09/05/03 15:54
수정 아이콘
박지성님/ 중국문헌에 기록된 수치를 바탕으로 한 삼국시대상황입니다.
숫자에 연연하지 마세요 삼국시대가 얼마나 비참하고 절망적인 시대인지를
도원결의 적벽대첩으로 윤색되 지금도 회자되는 삼국의 로망 그 이면의 실상을
일부나마 알리기 위해 적은 글입니다.
님의 기록이나 의견이 중국학자의 것이기도 하면
내가 적은 것역시 그렇습니다.
그걸 삼자인 우리가 논쟁하기엔 우리의 깊이가 그들만할수는 없지요
실질인구가 그랬다해도 중요한것은 저만한 세상이(육천만에 육박하는 인구가 기록될만한 사회가)
50년만에 그 십분의 일이 될까말까한 사람만 잡혀질수있는 세상이 됬다는 겁니다.
핵심포인트는 이겁니다.
기록된 사람은 8백만이고 천만내지 2천만은 유랑 떠돌이라 안잡혀 저렇다면 8백만밖에 겨우
살아갈까 말까한 세상이 됬다는게 중요한겁니다.
여기서 중요한것이 잡히지 않는 사람들수일까요 아니면 잡혀진 사람의 수일까요?
당장 우리만해도 임진왜란전 조선의 인구가 6백만을 상회했다는 기록에서 임란후 잡힌 초기기록중
1백 7십만으로 줄었다는 기록이 있음에도 임란후 호란이 발생하기 전약 30년만에 다시
조선 인구는 5백30만이라는 기록도 있읍니다.
잡을수 없는 유랑민의로 인한 수치의 폭임은 아나
우리가 왜 우리민족 역사상 최악의 시련으로 임란을 치는이유가 뭘까요
저런 엄청난 사람이 제대로 살수없는 시대이기 때문이고 그시대엔 저수많이 그시대의 실체아닐까요?
적어도 우리나 중국이나 그시대에 기록에 6천만의 인구가 8백만이 된겁니다.
유랑민 떠돌이는 바로 그시대가 얼마나 처참했는지를 증명하는것이고
삼국시대는 절대 낭만이니 영웅호걸이 활약하는 시대가 아니라 오직 백성이 죽어나가는 비참한 시대라는 거지요
난 삼국시대가 절대 소설책인 연의같은 시대가 아님을 표하기위하여 역시 중국내에서 나오고 문헌상에 기록된
수치로 그시대가 어떤시대인지를 알린것인데
도대체 숫자하나에 이렇게 집착하는건 정말 아니라고 봅니다.
막말로 그럼 한서지리지나 진서가 우리의 것입니까?
밑에 올렸던 댓글을 급히 지우고 여기로 옮겼읍니다만
왕육민의 책을 접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중요한것은 그의 책도 한서와 진서에 근거해 유추된것이고
진정한 포인트는 그시대가 말그대로 인간살육의 시대임을 알리는거 아닐까요
난 그런 취지로 삼국시대의 허상을 적은겁니다.
박지성
09/05/03 15:57
수정 아이콘
물탄푹설님// 예 저도 삼국시대가 그당시 백성들에게 힘든 시기였다라는건 공감합니다.
다만 문헌을 보고 정말로 인구수가 그렇게 확줄었다라고 생각하시는것같아서 그건 잘못된 해석이라는걸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물탄푹설
09/05/03 16:10
수정 아이콘
박지성님/ 잘못된 해석이라고 단언하지마세요
추정에 의한 해석은 누구나 하는겁니다.
나역시 나의 역사관에 집착한거지만 적어도 내가 중국학자 일본계 중국학자 진순신씨의
의견에 동조하는것은 그것이 중국의 문헌에 의한것이기도 하기에 그런겁니다.
문헌이 잘못됬다고 생각할수있고 사실 합니다.
허나 문헌이 왜 문허인가요?
우리가 조선왕조실록을 왜 찬양하고 믿습니까?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중국의 한서와 진서의 실상이 틀렸다가 진짜 틀린견해아닐까요?
당시사회는 그들밖에는 자기삶을 영위할수 없는 시대이기에 그들만이 기록되 전해진겁니다.
잡히지 않는 수치는 바로 그시대의 다른이면을 보이는거 아닌가요?
이게 잘못된 해석인가요?
나의 역사관이라는 주관적 면이 있지만 난 그시대에 그사회 그국가가 해낼수 있는 영역안에서
기록되고 확인되 남겨진것이기게 그걸 기준으로 삼은겁니다.
기록조차 할수없는 이면은 아예 존재를 잡을수도 없지 않을까요?
중국의 대전란 우리의 대전란으로 사회가 국가가 그만큼 축소되고 희생되었다는 것이 저 남겨진 기록의로
밝혀지는거 아닌가요?
그것이 잘못된 해석이라는 단언은 받아들일수 없습니다.
우리가 추정된 인구까지 거론해 그당시의 실재를 논한다면
그로인해 숫자에 현혹된다고 봅니다.
박지성
09/05/03 16:12
수정 아이콘
물탄푹설님// 문헌이 사실이라고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5천만명이었던 중국인구가 전란때문에 4천만명이 그대로 몰살당했고 위촉오 인구 다합쳐서
800만명이었던 인구가 280년 진서지리지에 1600만명이니 전쟁이 끝나면서 얼마되지도 않은 시기에 두배로 껑충뛰었다라는 말밖에는 안되기때문이니까요

280년 삼국이 멸망하고 인구수가 8백만명이라고 하는데 280년 진서지리지에는 1600만명으로 나와있습니다. 얼마되지도않은사이에 인구수가 갑자기 더블로 증가할리는 없겠죠?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이라고해서 거기나온 기록을 다 믿는건 아닙니다. 그 기록들중 다른 역사적 사실과 위배되거나 집권당의 입맛대로 쓰여진 기록들 그리고 상식적으로 믿기힘든 기록들은 언제나 의문의 대상이 되고 연구의 대상이되죠.
치토스
09/05/03 16:23
수정 아이콘
제 생각에는 아무리 전란이 들끓고 전쟁이 계속 됬다 하더라도 단기간에 수천만명이 줄어들것 같진 않습니다.
현대사회에서도 핵 안쓰고 민간인 몇천만명 죽기도 엄청 힘든데 예전 같이 창,칼,활 들고 싸우던 시대에
민간인 희생이 그렇게 심하진 않았을것 같네요. 만약에 갑자기 3,4천만명이 줄어든게 사실이라면 그 근거는
그 지역에 주둔하는 제후나 호족들이 민간인들을 아무 이유없이 그냥 막죽였다거나 아니면 각 지역에서 병사 착출을 하는데
뭐 남녀상관없이 만 8세 ~만 50세 이렇게 기준을 잡았다거나 둘중에 하난데 둘다 말이 안되죠.
그때 당시 수천만명을 없앨만한 극악의 전염병이 나돌았다는 얘기도 없고, 한나라 인구가 갑자기 70~80% 줄었다는건 말이 안되죠.
물탄푹설
09/05/03 16:36
수정 아이콘
박지성님/ 내글의 핵심은 기록에 대한 문헌의 오류에 대해 그숫자를 논하는게 아닙니다.
박지성님은 일단 잘못된 해석때문에 그랬다는 글에도 있듯이 숫자 자체를 증명하는데
초점을 두고있고
나의 의견은 사서가 그런수치를 문헌에 남길정도로 사람이 희생됬고 사회가 축소됬다는데에
초점이 있습니다.
진서에 오를 병합해 800만이 됬다고 하는것은 그시대상이 그인구만이 그나라의 제도권안에 잡혀졌다는
것이고 그것만이 중국에서 실재 정상적인 생활을 가진 사람의 수라고 봅니다.
전한말 6천만에 육박하는 인구는 그시대가 그만한 시대였음을 증명합니다.
자 그럼 포인트는 뭐가 될까요
그런 인구가 전란이 시작해 끝난 50년후 추정 5백만에 진이 오를 합병한후 800만이 됬음으로 기록됩니다.
내가 논하는 핵심이 여기있습니다.
진서지리지는 다시 인구가 16백만이 됨을 적고 우리의 사서는 임란직후 1백7십만에서 불과 35년정도 후세
5백3십만을 적고있는데 이숫자 자체가 중요한것은
내가 삼국의 절망적시대상을 이 숫자가 증명하기에 그런한겁니다.
그숫자가 그시대를 증명하기에 우린 임란을 우리민족역사상 최악의 시련이라 하는것이고
중국학자가 삼국시대를 영웅호걸이 아닌 절망의 시대라고 단언하는거 아닌가요?
숫자자체가 가지는 의미를 좀 넓게 보길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접할수 있는기록 비록 중국것이지만 한서의 6천만에 이르러가던 중국이 삼국의 대전란후 진서의 8백만이
됬다는 겁니다.
그당시 최고문명으로 이루어진 국가시스템의로 잡혀진 기록이 그정도라면 그시대상을 그걸로 잡아내는것이고
저수치는 그것을 뒤받침하는 거라고 봅니다.
도대체 다른 기록엔 1천 6백만이다 하니 이건 틀렸다는 근거는 또 뭔가요
진서지리지가 틀림없다는 단언은 과연 가능할까요
그리고 내가 표하는 핵심 그시대의 처참함이 덜했다는 증거가 됩니까?
8백만이 정확한지 1천6백만이 정확한지는 중국학자가 할일이라고 봅니다.
그들도 아직 정론이 나오지 않았기에 (나올수 없겠지만)
저런 수치가 그대로 인용되는 거겠지만 박지성님의 견해로 타인의 역사관을 옭다 그르다라는
판정은 하지마시길 부탁드립니다.
나의 역사관에 비추어 내가 선택한 의견의 실증을 위해 인용하는 중국의 문헌에대해
틀린해석이라고 자임하면 그걸 인용하여 중국역사서를 쓴 중국역사계에 먼저 수정을 요구해야 하는것 아닌가요?
09/05/03 16:43
수정 아이콘
물탁푹설님// 전 삼국시대의 호구조사에 대해 일말의 관심도 없습니다만,

"삼국시대는 절대 낭만이니 영웅호걸이 활약하는 시대가 아니라 오직 백성이 죽어나가는 비참한 시대라는 거지요."

이런걸 굳이 들추어내는 의미가 있나요? 삼국지 매니아들이 위의 사실들을 절대적으로 망각하면서 읽는다고 생각하는겁니까? 물탄푹설님의 말씀은 마치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열광하는 영웅들은 중국 역사상 가장 비참하고 잔인한 시대의 백성들을 살육한 무자비한 학살자들이라고 역설하는 것으로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이것도 관점의 차이인가요? 전 오히려 삼국지가 간접적으로 전쟁의 폐해에 대해 메세지를 주고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만, 물탄푹설님의 말씀을 보자면 지난 10년간 삼국지를 좋아한 제 자신이 무척이나 초라해지고 죄책감에 빠지는 기분입니다. 그렇다면 삼국시대 당시에 문학의 꽃을 피우게 했던 조조 부자를 비롯한 건안7자나, 오늘날 중국에서 신으로 모셔지는 관우의 존재는 애초에 없었어야 했겠군요.
물탄푹설
09/05/03 16:44
수정 아이콘
한가지 추가하자면 내가 중국 삼국시대실상의 처참함을 증명하는데 인용하는 중국문헌은
정확히는 사마광의 자치통감이고 자치통감은 저런 수치를 한서와 진서등에서 인용수록한걸로
압니다.
치토스
09/05/03 16:48
수정 아이콘
뭐 생각하는 관점의 차이는 사람마다 다 다르겠죠. 역사를 이해하고 고찰하는 관점은 자기 자유니까요.
하지만 분명한건 삼국시대를 "단지" 백성이 죽어나가는 비참한 시대라고 표현한다면,
테무진,알렉산더,나폴레옹 등은 단지 학살자로 보일뿐입니다.
물탄푹설
09/05/03 16:53
수정 아이콘
Joker님/
그점은 매우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다만 삼국지에 대한 전반적인 글이 매우 낭만적임은 사실이고
나름 역사에 관심이 있고 즐겨읽고 보는 입장에서 언제부터인가 시각적으로 다른면을 가지게 됬습니다.
솔직히 나도 삼국지를 거의 열번좀 안되고 읽고 또읽다 보니
지나친 매니아가 나도 모르게 된거 아닌가하는 생각되 합니다.
다만 삼국시대 반면적으로 우리도 그렇지만 저시대를 낭만적으로도 볼수 있지만
그다른면도 있지 않느냐는 의견에서 적은것이지 남들을 깔보거나 하는 마음에서 적은게 아닙니다.
나역시 삼국시대의 로맨틱함에서 벗어난것이 이런면을 지적한 이들의 의견에서 시작해서임은
인정합니다.
관심좀
09/05/03 16:55
수정 아이콘
물탄푹설님//
불특정 다수가 보는 글에 일인칭 대명사로 '나'를 쓰시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나'는 자기보다 아랫사람이나 대등한 사람에게만 쓰는 거 아닌가요?
연세가 좀 있는 편이시겠지만 PGR에는 분명 더 연세가 많은 분도 계실테고요.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만, 수정 부탁드립니다.
물탄푹설
09/05/03 16:58
수정 아이콘
관심좀/
그렇게 보였다면 일단 제 실수입니다.
그렇게 글을 자주쓰는 편이 아니다 보니 무의식중에 그렇게 적었난 봅니다.
막상 수정할려니 양이 의외로 좀 압박이군요
위의 문장들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문제있다는 지적이 이어지면 모두 그냥 자삭처리하겠습니다.
관심좀
09/05/03 17:03
수정 아이콘
물탄푹설님//
댓글 쓰고 나서 너무 주제넘는 짓이 아닌가 싶었는데
그렇게 받아들여주시니 감사합니다.
치토스
09/05/03 17:05
수정 아이콘
물탄푹설님과 관심좀님 훈훈한 장면.. 이런거 정말 좋습니다 사람냄새가 물씬 풍겨서요^^
창해일성소
09/05/03 17:51
수정 아이콘
삼국시대의 인구가 격감한 건 단순히 호구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던 것 뿐입니다.
물론 전란으로 일해 어느 정도는 감소했겠지만 감소폭이 10%가 넘진 않았겠죠.
실제로 유비가 신야성주이던 시절 호구조사를 새로 했더니 신야 인구가 단숨에 3배가까이 뛰어올랐다고 했죠 -0-
물탄푹설
09/05/03 18:36
수정 아이콘
창해일성소님/
그래서 제가 이렇게 삼국지에 비판적인 시각이 된겁니다.
당장 그기록부터가 정사에는 없는걸로 압니다.
삼국지연의에는 나오죠 유비가 신야성주가 되 눈부신선정을 베푸니 신야인구가 늘었다고
그래서 삼국지연의는 소설책인겁니다.
나이트해머
09/05/03 18:52
수정 아이콘
저 인구조사는 쉽게 믿기 어렵죠. 그 근거는 서진시기 인구가 1700만대였던 걸로 근거합니다.
영국 인구가 로마제국 시기 400만에서 중세 초반에 절반인 200만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로마제국시기 인구가 되는 데 두세기 이상 걸렸습니다. 인구 증가는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죠. 감소야 손쉬울 지 모르지만.

보통 전란기의 민중이 택하는 가장 대중적인 방법은 '사라지는 것' 입니다. 피란가고 숨는 거죠. 물론 삼국지 시대의 전란기는 상당히 참혹했고, 그 결과 희생된 백성들의 숫자는 어마어마했을 겁니다. 정치, 경제의 중심지인 중원지역만 해도 환녕제 암군의 막장 통치-황건적의 난-동탁 대 반동탁연합군-2차 황건적의 난-조조의 서주 대학살-조조와 여포의 대결 이라는 전란의 연속으로 무지막지한 인명피해가 났습니다. 조조가 시행한 둔전제가 '진짜로 그 지역에 사람이 없어서' 수행한 일이었고, 세력확장시 맨 먼저 하는 일이 그지역의 인구를 강제로 연예주 등 조조의 초창기 기반지역인 중원에 이주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하북 또한 관도 8만 생매장-원가 내전-조조의 하북공략의 삼중콤보를 맞았고, 관중-관서지역도 동탁의 침탈-관서팔부군 군벌간의 다툼-조조 대 관서팔부군 이라는 전란의 피해를 받았고, 여기에 북방 이민족이 세력공백을 틈타 침투해 들어왔습니다.(따지고 보니 인구 중심지라는 황하 일대의 전란에 조조가 대부분 관여되어 있습니다. 과연 중화의 인구를 격감일로로 만든 조조.) 파촉도 유언 사후 유장- 파촉 내 호족- 유언이 끌고 들어왔던 동주군- 장로 등 네 세력이 서로 치열하게 다퉜고, 강동지역은 인간사냥이 흔하던 미개척지. 형주는 이것저것 할 거 없이 세 세력이 수십년을 다툰 엄청난 분쟁지역.
800만까지는 오버라도 5900만 선이었다던 인구가 반으로 줄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껍니다.

아, 그리고 저 시대때 위, 촉은 병호제를 수행했습니다. 병역을 지는 인구를 따로 계산하는 제도죠. 즉, 저시대의 인구는 인구수=민간인+병력 이 아닌, 병력 인구수와 민간인 숫자가 별도의 호구로 계산되는 시대입니다. 따라서 저것보다는 약간씩 더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촉한의 인구수는 94만이 아닌, 94만+12만(병력 수) 인 108만이 멸망시 국가가 파악하고 있는 인구수이며, 저시대의 특성상 전체 총 인구가 아닌 국가가 파악하고 있던 숫자이므로 인구적 측면에서 전성기 시절인 장완 시대때는 120만~150만까지 파악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애국보수
09/05/03 20:30
수정 아이콘
전근대시대 국가의 공식인구통계를 신뢰하는 역사학자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국가 스스로도 자신의 인구 통계를 믿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본문에 나온대로 국가가 집계하는 인구는
세금을 매기고 부역을 부과하는 생산력에 대한 통계이지 전체 인구에 대한 통계가 아니거든요.

http://lyuen.egloos.com/4527648
전근대시대 공식 인구와 실재인구의 차이에 대한 글 중에 괜찮은 것 긁어왔습니다.

병자호란에 가장 근접한 시점인 1639년의 조선의 공식 인구 통계는 152만1000명이다. 1639년 기준 구수(口數) 152만1000명에서 여성을 제외하기 위해 절반으로 나누면 남성 추정 구수는 76만이다. 여기서 조선 후기 각종 문헌에서 산출한 총인구 대비 경상도의 인구비율 21~33%를 적용하면 경상도 지역 남성 구수는 15만~25만이 된다. 이미 언급했듯이 당시 구수에는 20세 이하자는 거의 포함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므로 이 숫자는 말그대로 성인 남성의 숫자다. 여기에서 양반의 숫자를 제외한다해도 병력 자원 4만명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이 자료상의 구수보다 실제 인구가 더 많았음을 짐작케하는 사료도 적지 않다. 당장 인조실록에 따르면 1626년 호패청에서 일종의 신분증에 해당하는 호패를 발급하면서 집계한 남자 숫자만 226만명이다. 여기에 여자를 계산하면 500만에 육박하게 되며, 호패를 발급받지 않은 미성년자를 감안할 경우 인구 총계는 순식간에 800만명에 육박할 수 있다.

관련 전문가들의 견해도 유사하다. 조선시대의 구수는 현대적 개념의 인구와는 개념이 좀 다르며 실제로는 구수로 표시된 규모보다는 훨씬 실제 인구가 더 많았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결론이다. 이 문제를 연구한 이영구, 이호철 교수 같은 학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당시 호구총수 등에 집계된 구수에는 20세 이하가 대부분 누락되어 있다. 한영국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당시의 호구/구수 계산은 실제 인구를 파악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재정 및 군역이 어느 정도 충당될수 있는 정도의 호구를 확보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누락된 호구가 많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실제로는 당연히 위 통계보다 잠재적 병력 자원이 더 많을 수 밖에 없다.



공식인구가 150만이라고 기록한 조선왕조의 호패청에서 성인 남성 226만명에게 호패를 발급합니다.;; (학자들의 당시 인구 추정치는 약 900 ~ 1100만정도더군요.)혼란기 중국인구가 급격하게 급변하는 것은 아무래도 국가 시스템 지배하의 인구수가 변동하기 때문이지요.
창해일성소
09/05/03 21:53
수정 아이콘
물탄푹설님// 눈부신 선정과는 눈꼽만큼도 상관없습니다.
그냥 호구조사 제도를 정비했을 뿐이죠.
심지어 현대 중국에도 인구집계에 들어가지 않은 인구가 1억명이 넘는다고 보고 있습니다(중국 정부의 추산입니다).
내일은
09/05/03 22:11
수정 아이콘
삼국지 정사 사료를 검토할 여유가 없어 논쟁에 개입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논쟁에 도움이 될 몇 가지 이론을 더하면

근대 이전시기에 어떤 태평성대나 치세가 있어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시대라 해도 인구증가율은 대개 0.1% 정도이고, 정말 높게 잡아도 0.3%입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0.04~0.05 정도?) 인구학자들은 서력 기원 시대의 인구가 두 배가 되었던 시점을 1650년 정도로 잡습니다. 전 근대기 인구가 두 배가 되는데는 1650년이 걸린다는 겁니다.

거기에 더해 지금으로부터 1800년 전에, 오랜 내전으로 정부 통제력이 없다시피한 시대의 기록은 믿을 수 없습니다. 애국보수님이 잘 쓰셨지만, 농업국가에 있어서 인구 통계란 지금의 국민국가 시대의 그것과 개념이 조금 다릅니다. 안정기에도 특정 지역, 특정 직업을 가진 부락이나 집단들이 통째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통일이 된 서진시기 인구를 보수적으로 봐서 1700만 정도라고 보면, 내전이 가장 심했던 200년 경 초에도 1500만 정도는 인구가 나와야 합니다. 남북국시대가 끝나고 수나라 시대 인구가 4000만이라면 영토가 넓어졌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한말 내전기가 끝날 때즘 인구는 3000만 정도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물론 어떤 결과를 봐도 상당할 정도의 인적 손실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800만이라는 수치는 그것이 기록에 있다고 하더라도 조금 믿기 힘든 수치네요.
09/05/03 22:22
수정 아이콘
옛다~ 똥.
DynamicToss
09/05/03 22:31
수정 아이콘
두분이서 실제로 만나서 대면을 하는게 좋겠네요

댓글이 어쩐지 많다 했더니

당시 시대에 살아보진 않고선 확실한건 모릅니다 문헌도 얼마나 믿을수 있는지...
박지성
09/05/03 23:03
수정 아이콘
물탄푹설님// 몇번이나 말씀드렸지만 저 삼국시대가 백성들이살기힘든 시대였다라는 말씀은공감합니다. 이부분에대해서 제가 언제부정한적이 있습니까 다만 문헌에 나오는인구수는 그대로 믿어서는안된다라는 말을 덧붙인것뿐입니다. 문헌의 인구수에 대한 옳고그름을논하다가
갑자기 중요한건 당시 백성들이 살기힘든시대였다라는걸 말한다면 제가 뭘할말이있겠습니까
저역시 그시대가 백성들이 살기힘든시대라는걸 공감하는데요

밑의 여러분들이 말씀해주셨듯이 문헌의숫자기록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곤란합니다.
정 주지 마!
09/05/03 23:25
수정 아이콘
하이에나가 먹이 하나 물었네요.
진리탐구자
09/05/04 03:26
수정 아이콘
흑사병과 백년 전쟁, 십자군 전쟁으로 세계가 멸망한다 어쩐다 했을 때도, 유럽 인구의 3분의 1 <밖에> 죽지 않았지요.

설령 6천만이 700만으로 줄 수는 있다고 칩시다. 하지만 이게 단시간 내에 2천만 가까이는 될 수 없습니다. 고대 역사상 그런 사례는 없어요. 산업 혁명 이전 인류의 인구 증가율은 지역을 막론하고 100년에 10% 정도입니다.

실제로 한국만 해도 고구려 + 백제 + 신라를 합한 인구가 조선 중기의 인구보다 많지요. 시대가 안정하건 불안정하건 인구가 잘 안 늘어나는 시기라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점을 종합하면 삼국시대의 인구는 4천만 정도로 보는 게 맞습니다. 여왕개미가 있지 않는 한 저렇게 단기간에 인구가 늘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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