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산 정약용의 새 초상화를 그렸답니다. 그래서 생각이 났는데요, 역사적 인물들의 초상화 변천사도 재밌는 경우인 것 같습니다.
김구, 안중근 등등의 사진을 보면서 정말 어쩌면 이렇게 얼굴에 삶과 철학이 담겨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얼굴이라는 것이 단순히 생물학적 표현만은 아니구나 싶기도 하고요. 이명박대통령이나, 이회창 총재의 얼굴에서도 마찬가지 철학과 삶의 태도가 드러나는 것을 보면, 사람은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새삼스러운 말이 아니구나 싶습니다.(음.)
제 생각엔 사진이 있어서 가장 혜택을 본 사람은 아인슈타인이 아닐까 합니다. 천재성과 익살스러움, 그리고 자유로운 삶을 전부 다 보여주니까요. 만일 그가 초상화나 사진을 남기지 못한 시대의 위인이었다면, 아무리 상상력이 뛰어난 화가도 그런 얼굴을 그려내진 못할 듯 싶습니다. (이에 필적하는 인물이 히틀러 정도일까요?)
역사적 인물들을 그리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보면, 생각보다 진지하고 꽤 가치있는 일인것 같습니다. 특히
이순신의 경우엔 더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2.
최초의
이순신 인물화가 탄생한 것이 언제일까요?
이순신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역사적 재평가를 받아온 인물입니다. 인조임금은 청나라 황제에게 무릎 꿇은 자신의 치욕을 가리기 위해
이순신을 이용했습니다.(이때
이순신 가문은 본격적인 명문가문으로 격상시키는 작업을 합니다. 물론, 지금은 대가 끊기고, 온국민의
이순신으로 변신중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음)
정조임금은 왕권강화의 수단으로 ‘충과 효’를 겸비한 인물로
이순신을 재탄생시킵니다. 이때 비로소
이순신 일대기가 정비됩니다. 다량의 ‘신화’가 가미된 영웅이 탄생한 것이지요.
그 후
이순신이 다시 재평가된 것이 일제강점기였습니다. 일제의 폭력과 비인간적 만행앞에서 무기력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심어 줄 인물로 일본과의 모든 전투에서 이기고,일본인이 그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떠는
이순신 만한 존재가 있을까요?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다시 신화가 퍼지는 1932년에 이상범 화백이 그린 그림입니다.
과연 씩씩한 그림입니다.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사람들은 씩씩한
이순신의 그림이 그야말로 환타지라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이순신은 그렇게 씩씩한 ‘장비’상은 아니었으니까요. 게다가 우리나라도 문민통치의 시대로 접어들었으니 당연히 시대에 걸맞는 얼굴이 필요했겠지요. 오랜 일제강점기를 극복해낸 고고한 장수가 시대가 요구한 영웅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김은호 화백이 1952년에 그린
이순신입니다.
과연 선비스럽습니다.
그리고 현충사에 모셔 놓을 그림이 필요했는데요, 역시 이상범 화백의 그림을 옮겨왔더니 모두들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무인도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다시 제작한 것이 장우성 화백이 1953년에 그린
이순신입니다. 이그림은 1973년에 표준영정으로 정해졌습니다.
과연 잘 생긴(?) 선비입니다.
아시다시피
이순신 영웅화에 가장 공을 들인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입니다. 마치 조선시대 송시열이 남송의 주자와 감정이입을 해서, 민족을 이민족의 압박에서 구할 방법을 찾았듯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순신에게 감정이입을 합니다.
문인들은 전부 당쟁에 휘말려 소모적이고,쓸모없는 일을 해낼 때 오로지 유일하게 한사람
이순신 장군만이 나라를 구하였다....(임진왜란에 대한
이순신장군의 공로가 작은 것은 아니지만 이것 또한 역사적 진실은 아닙니다)
이런 이데올로기를 통해 자신의 군사쿠테타와 군사독재정권을 정당화하려 한 것이겠지요.
그래서,당연하겠지만 다시 무인
이순신 영정이 등장합니다. 1978년에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정형모 화백이 그린 영정입니다.
과연 온화하고 굽어 살피시는 무인입니다.
3.
이번에 새로 제작한 정약용의 모습의 포인트는 '안경'이라고 하네요.
이게 뭐 그리 중요할까 싶긴 하지만, 내심 진짜 정약용을 기대했던 저로선 약간 실망입니다.
내려오는 자료에 의하면 정약용은 외탁을 했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정약용의 외가는 해남윤씨.그 중에서도 자화상을 남겨 유명한 윤두서를 닮았답니다.
정약용이 가진 지적이고 샤프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외모.그러나 차마 그렇게 그릴 수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정약용이 인생과 철학이 외모를 변화시켰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약용을 다시 그리고자 한다는 것은 시대가 역동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니 일단은 환영합니다. 다만 변하는 것이 얼굴만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