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09/03/13 13:51:29
Name 더블인페르노
Subject [일반] 아내..
방금전에 "아내"란 제목으로 글을 썻는데 바로 삭제되었네요 ^^;
보통은 삭제되어도 아 그렇구나 하고 단념하는 편이지만, 이글은 너무 좋은 글같아서 다른분들도 한번 보시길 원하며 다시 글을 올립니다
저 같은 경우엔 이제 결혼 45일된 신혼입니다.
엊 그제 색시의 직장 퇴사 문제로 자기전에 한바탕 했습니다 그후 제가 좀 심하게 화를 내고 아내는 울먹이면서 왜 그만두려는지
예기를 들었습니다. 직장내 인격모독이 정말 장난 아니더군요, 허나 다른곳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지금 직장에서 좋은 이미지로 퇴사를
해야 해서 참으면서 좋게 그만두려는 모습이 너무 안쓰럽더군요

방금 점심을 먹고서는 이 글을 읽엇습니다
엊그제의 상황이 오버랩되면서 눈물이 흐를정도더군요
다른분들도 한번쯤은 읽어보시길 바라며 올립니다.
--------------------------------------------------------------------------------------------------------------------------
저만치서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
"여보, 점심 먹고 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나 점심 약속 있어."
해외출장 가 있는 친구를 팔아 한가로운 일요일,
아내와 집으로부터 탈출하려 집을 나서는데
양푼에 비빈 밥을 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나를 본다.
무릎 나온 바지에 한쪽 다리를 식탁위에 올려놓은 모양이
영락없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줌마 품새다.
"언제 들어 올 거야?"
"나가봐야 알지"
시무룩해 있는 아내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을 끌어 모아 술을 마셨다.
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
아내에게 몇 번의 전화가 왔다.
받지 않고 버티다가 마침내는 배터리를 빼 버렸다.
그리고 새벽 1시쯤 난 조심조심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내가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자나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데
힘없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갔다 이제 와?"
"어. 친구들이랑 술 한잔.... 어디 아파?"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혀 약 좀 사오라고 전화했는데..."
"아... 배터리가 떨어졌어. 손 이리 내봐."
여러 번 혼자 땄는지 아내의 손끝은 상처투성이였다.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어. 너무 답답해서..."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 왜 이렇게 미련하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느 때 같으면,
마누라한테 미련하냐는 말이 뭐냐며 대들만도 한데,
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난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내를 업고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내는 응급실 진료비가 아깝다며
이제 말짱해졌다고 애써 웃어 보이며
검사받으라는 내 권유를 물리치고 병원을 나갔다.

다음날 출근하는데,
아내가 이번 추석 때 친정부터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노발대발 하실 어머니 얘기를 꺼내며 안 된다고 했더니
"30년 동안, 그만큼 이기적으로 부려먹었으면 됐잖아.
그럼 당신은 당신집 가, 나는 우리집 갈 테니깐."
큰소리친 대로, 아내는 추석이 되자,
짐을 몽땅 싸서 친정으로 가 버렸다.
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
어머니는 세상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은 없다고 호통을 치셨다.
결혼하고 처음.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태연하게 책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고 말이다.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
"여보 만약 내가 지금 없어져도,
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을 거야.
나 명절 때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니야.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 받았어.
당신이 한번 전화만 해봤어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당신이 그렇게 해주길 바랐어."

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난 의사의 입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아내가 위암이라고? 전이될 대로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
삼 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고...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아내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유난히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다.
집까지 오는 동안 서로에게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
앞으로 나 혼자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문을 열었을 때, 펑퍼짐한 바지를 입은 아내가 없다면,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가 없다면,
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아내가 없다면,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해주는 아내가 없다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 아내는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
갑자기 찾아온 부모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살가워하지도 않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부에 관해, 건강에 관해, 수없이 해온 말들을 하고있다.
아이들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데도,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난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여보, 집에 내려가기 전에...
어디 코스모스 많이 펴 있는 데 들렀다 갈까?"
"코스모스?"
"그냥... 그러고 싶네. 꽃 많이 펴 있는 데 가서,
꽃도 보고, 당신이랑 걷기도 하고..."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보다.
비싼 걸 먹고, 비싼 걸 입어보는 대신,
그냥 아이들 얼굴을 보고, 꽃이 피어 있는 길을 나와 함께 걷고...
"당신, 바쁘면 그냥 가고..."
"아니야. 가자."
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있는 곳으로 왔다.
아내에게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뭔데?"
"우리 적금, 올 말에 타는 거 말고, 또 있어.
3년 부은 거야. 통장, 싱크대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
그리구... 나 생명보험도 들었거든.
재작년에 친구가 하도 들라고 해서 들었는데,
잘했지 뭐. 그거 꼭 확인해 보고..."
"당신 정말... 왜 그래?"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게. 올해 적금 타면,
우리 엄마 한 이백만원 만 드려.
엄마 이가 안 좋으신데, 틀니 하셔야 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오빠가 능력이 안 되잖아. 부탁해."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내가 당황스러워하는 걸 알면서도, 소리 내어... 엉엉.....
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이런 아내를 떠나보내고...
어떻게 살아갈까.... 아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아내가 내 손을 잡는다.
요즘 들어 아내는 내 손을 잡는 걸 좋아한다.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러포즈하면서 했던 말 생각나?"
"내가 뭐라 그랬는데..."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 닭살 맞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그랬나?"
"그 전에도 그 후로도, 당신이 나보고
사랑한다 그런 적 한 번도 없는데, 그거 알지?
어쩔 땐 그런 소리 듣고 싶기도 하더라."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커튼이 뜯어진 창문으로,
아침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장모님 틀니... 연말까지 미룰 거 없이, 오늘 가서 해드리자."
"................"
"여보... 장모님이 나 가면, 좋아하실 텐데...
여보, 안 일어나면, 안 간다! 여보?!..... 여보!?....."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었다........

이제.....  아내는 웃지도..... 기뻐하지도.....
잔소리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아내 위로 무너지며 속삭였다.....
사랑한다고.....사랑한다고...
어젯밤... 이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09/03/13 13:59
수정 아이콘
음 왜 삭제된걸까요?

좋은글 이긴 하지만 내심 씁쓸하네요...
루베트
09/03/13 14:01
수정 아이콘
펌글의 경우 5줄로 인정될걸요.
아무래도 이전 글은 줄수 제한에 걸려 삭제된듯 보이네요.
랜덤좋아
09/03/13 14:06
수정 아이콘
흠.슬프네요.
아내에게 잘해줘야겠군요.
더블인페르노
09/03/13 14:08
수정 아이콘
네 5줄이 안되어서 삭제된거죠 ^^;
겜게만 15줄 규정이 있는줄 알고 착각한 저의 잘못이니 어쩔수없죠 ^^
메타루
09/03/13 14:14
수정 아이콘
ㅠㅠ
오늘도대략
09/03/13 16:03
수정 아이콘
아... 좋은 글이에요. 감사합니다.
캐스윈드
09/03/13 16:26
수정 아이콘
전 결혼을 안해서 그런지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나네요...
09/03/13 20:34
수정 아이콘
운수 좋은 날이랑 비슷한 느낌이네요.

이건... 엄밀히 말하면, 감동을 주는 글이 아니라 그냥 나쁜놈이 마지막에 뒤늦은 후회를 잠깐 하는 글이... 30년 부려먹은 사람이 캑 죽어버리면, 누구라서 저정도 후회는 하죠. 근데 한달도 안간다는거..
Minkypapa
09/03/13 23:08
수정 아이콘
'운수좋은날'에 '세상끝까지'가 겹치네요. 너무나 한국적인...
이런글이 슬픈게... 왠지 이런 글 읽고 여자분들은 별로 감동받지 않을것 같습니다.
Gun_PPang'-')
09/03/14 00:45
수정 아이콘
Minkypapa님 // 전 너무감동입니다....눈물이..ㅜㅠ 왜!!!그러니까 왜!!!!왜!!!!!!!!!!!!!죽고나서 후회를하냐구 왜!! 왜 옆에있을때 잘해주지못하고 떠났을때 마치 자기는 비련의 남주인공처럼 그런느낌을 받으며 .. 아후.. 이 나쁜사람아..ㅜ
모두들 옆에있는분이 옆에온전히 계실때 사랑한단말 한마디 더 해주세요.. 물론 부모님께도...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5690 [일반] 걸그룹 평균 나이에 대한 고찰 [39] Shura8589 09/09/02 8589 0
15577 [일반] 브라운 아이드 걸스 좋아하시나요? [116] 교회오빠7758 09/08/29 7758 0
15508 [일반] 옛 게시물을 보는 즐거움... [3] 크리스3048 09/08/27 3048 5
15250 [일반] 소외받은 원피스 에피소드 [하늘섬 이야기]-2탄- [37] nickyo12023 09/08/16 12023 0
15224 [일반] 허경영 이야기 [154] 남음6195 09/08/14 6195 0
15213 [일반] [소녀시대] 소원을 말해봐 활동 일지(수정) [32] 추억8347 09/08/14 8347 2
15106 [일반] [소녀시대] 소원을 말해봐 컴백전 안무영상 [29] Anti-MAGE6826 09/08/10 6826 3
14990 [일반] 가요계는 女風! 가요프로로 본 2009년 여성 가수 리뷰<1> [64] GPS5537 09/08/05 5537 0
14901 [일반] 제시카,온유의 1년후 무대영상 [27] Anti-MAGE7204 09/08/01 7204 3
14480 [일반] '명카드라이브'의 '냉면'이 인기를 얻은 네가지 이유 [74] 로사11854 09/07/15 11854 2
14154 [일반] [소녀시대] 친친에 소녀시대가 출연했네요~~ [23] 권보아4404 09/07/02 4404 0
14151 [일반] 소녀시대 윤아를 위한 변명 [55] 야채구락부7040 09/07/01 7040 0
13715 [일반] 전설의 깐탱.swf [26] 로사6425 09/06/15 6425 0
13663 [일반] [리뉴의 잡설] 기운내서 살아가기가 참 힘든 세상입니다 : ) [2] 뉴[SuhmT]2588 09/06/14 2588 0
13502 [일반] [펌-수정]아키야마와 추성훈. 어느쪽이 진실인가? [49] nickyo7954 09/06/08 7954 0
13319 [일반] 소녀시대에 얽힌 즐거운 추억 [9] 세느4160 09/06/01 4160 0
13042 [일반] 그 분의 투신을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이제 의문사가 되었습니다. [102] 시현4545 09/05/27 4545 0
12318 [일반] 마이클 조던 어록 [26] 블레이드7932 09/04/30 7932 0
11650 [일반] 한국 가요계의 라이벌들. [83] ROSSA9103 09/03/26 9103 0
11465 [일반] 태연이가 형도니를 너무 싫어하네요 ㅠㅠ [128] 강마에12680 09/03/16 12680 0
11404 [일반] 아내.. [10] 더블인페르노3340 09/03/13 3340 0
11370 [일반] 소녀시대가 SES의 Dreams Come True 커버를 했었군요. [53] 양념반후라이7550 09/03/11 7550 0
11330 [일반] [PGR에서 라이트노벨... 계약 본편] 왜 그녀는 자신을 찔렀나 [4] 폭창이2798 09/03/09 2798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