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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2/21 03:02:41
Name 몽땅패하는랜
Subject [일반] 詩라고 우길 생각 없습니다만 그냥
   연애편지

                     1

너에게선 내가 가지지 않은 냄새가 난다
여지껏 한번도 가져보지 못했고
단 한번도 스스로는 다가오지 않았던
나에겐 언제나 생전 처음으로 다가오는
너에겐 내가 가질 수 없었던 냄새가 난다

그건 네가 태어나면서
하느님이 너에게만 부여한 달란트일 수도 있고
네가 어려서부터 배워온 너만의 삶 속에서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스며든
너의 인장이 찍힌 냄새일지도 모른다

매일 만나는 너이지만
언제나 너는 새로운 냄새로 내게 다가온다
너에겐 변함이 없는 익숙한 체취일수도
볕 좋은 날 널어말린 네 옷에서만 피어나오는
너만의 세제향일 수도 있다

사람에겐 누구나 저마다의 냄새가 있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고 마음 기울인 적 없었건만

이상스럽게도 너의 냄새는 나에겐 언제나 놀라움이다 새로움이다 감격이다

너는 내가 가지지 않은, 아니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며 돌아보지 않으며 살아온
내 삶을 흔드는 냄새를 가졌다

어쩌면 내가 너를 사랑하는 까닭에는
나에게도 없고 누구에게도 없는
세상 가운데 오직 너만이 간직한
지금도 내게 다가오는 너의 냄새가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킁킁거리며 맡아보려 하면 다가오지 않는
산문(散文)을 허용하지 않는

               2

비둘기 잰 걸음으로 튀어나갈 때마다
낙인인 듯 암시인 듯
발자국들 이쁘게 땅 위에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퍽이나 따뜻해진 오후를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나무 의자에 앉아
주름살만큼이나 꾸벅 꾸벅 졸고 있습니다

향하는 길에는 언제나 적당한 숨가쁨과
상당한 두근거림이 발걸음을 재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직 녹다 만 습기가 배어든 구석 응달진 땅은
여전히 밟으면 깊숙하게 물러나지만
각질을 벗고 새살 오른 땅은
한참을 따뜻하더군요
무척이나 보드랍더군요

세상은 온통 당신에게로 향하는 길입니다

대단한 마술이 눈 앞에 일어나고 있는 셈이지요
간달프의 지팡이 없이도
샤루만의 마법서가 없이도
당신은 세상 최고의 마술사입니다

한 사람의 마음에 이렇듯 봄을 불어넣는 기적은
어떤 대마법사라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온통 세상에 숨어있는 당신,
오늘도 숨은 그림 찾기는 시작입니다

당신에게 향하는 길은
매일 매일 새로운 숨은 그림 찾기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당신
오늘은 또 어디에 시침 뚝 떼고 숨어계신가요?

아, 미끄럼틀 내려오며 깔깔거리는 아이의 빠진 앞니를 채우고 계시는군요
아아, 흐뭇하게 아이의 웃음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손에 들린 콜라병 속 거품 속에  오두마니 숨어 저를 보며 깔깔거리시는군요

아...저기에도

                3

간밤엔 비가 들썩였습니다
늦가을에 내리는 비는 하루씩 겨울을 불러오고
이른 봄에 내리는 비는 하루씩 새싹을 일으킨다고
제가 아는 지난 날의 상처는 속삭이곤 했습니다

끊어야 하는 담배를 물어봅니다
약속을 어기면서도 버릇으로, 몹쓸 버릇으로 새초롬해져있을 당신을 생각합니다
지금 제 모습을 보신다면
부산으로 향하는 KTX 티켓을 사시러
입술을 비죽거리며 뛰어가고 있으시겠지요

조금만 참아주세요
빨아들이고 내뱉는 저 푸르스름한 연기 속에는
좀처럼 치유 받지 못하던
지레 놓아버리곤 하던
못생긴 한 남자의 과거가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너무도 잘 녹아들어
혀를 뒤틀리게 하고
마음을 사납게 하고
허파를 마르게 하던
흑사병보다도 무섭고 에이즈보다도 더러운
생사람 집어삼키던 고질병 하나 뿌리 내리고 있습니다

늘 생각해보지만
참, 연애편지로는 제 글은 항상 낙제점입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알 수가 없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짚어낼 수가 없습니다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
저는 아무 것도 적히지 않은 백지 답안장을 놓고
퍼렇게 질려 이렇게 담배만 물고 세균을 토하고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당신
조금만 참아주세요
이번 시험은 시험시간이 너무 깁니다
어쩌면 평생 치루어야 할 시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꼭
당신이 채점하시며 흐뭇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런 사나운 심술을 태연스레 부려대며
쓰여지지 못한 답안지 마음에 접어놓으며
담배를 피워봅니다

너무 화내지만 말아주세요

                     4

세상 온갖 아름다움이 와짝 고개를 듭니다

모퉁이마다 고인 사연들이 겨우 내내 바싹 얼어 있다가
이런, 흐드러지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소스라치게 내려온 바람에 펄럭이다가
앙증맞은 손가락 펼치며 쏟아집니다
온통 보라빛입니다
가득 노란빛입니다

도시 속에서도 용케 살아남은 용감한 아름다움이
이렇게 번져가는 시간입니다
그래요 어느덧 봄입니다

겨울을 버텨온 사연들이 여기저기 빛을 틔우고
지난 봄 묻혔던 아픈 이야기들이 또 다른 눈물들로 싹을 돋우는

세상이 온통 살아나고 있습니다
이런, 죽음이 들리지만 여전히 세상은 삶으로 새롭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이상 추워하지 않는
부유한 사람들이 세상에 번진 따뜻함에 겨우 주위를 돌아보는
여기저기 나무 그늘 아래 멈추어 하늘을 가린
가지를, 꽃망울을, 꽃잎들을 눈에 담그는 시간입니다

이렇게 살아나는 세상
다 그대가 있어서임을 압니다

언제나 그대를 가슴에 담으면
세상은 항상 새로운 계절입니다
언제나 봄입니다



- 예전에 피지알에 댓글식으로 달았던 글입니다;;;

대학시절. 학교앞은 좁고 바늘같은 골목길이었습니다.
그녀의 자취집은 초등학교 앞 담벼락 낮은 허름한 집.
언제나 밤 열시쯤이면
어느때엔 적당히 술에 취해
그리고 대부분은 그녀를 향한 사랑에 취해
발간 얼굴을 담벼락 위에 올려놓고 그녀를 불렀지요
그녀는 늘 묻곤 했습니다.
"또 술마셨군요? 유(You)"

그럴때면 전 히죽히죽 웃었습니다.
하고픈 이야기는 많았지만 그냥 백지처럼 히죽히죽 웃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그녀의 얼굴이 사라지고
커튼이 닫히고
제 얼굴에 다시 어둠이 담길 때 쯤에야
겨우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차마
여기서 이야기할 수는 없군요

제 스무살 시절, 첫사랑이었습니다.

* 그냥 예전에 긁적거렸던 글들입니다(제목처럼 시라고 우길 생각 전혀 없습니다)
그저 사랑이란 감정은 사람을 가장 아름답게 만든다고 생각하기에 한번 올려봅니다.
굳이 반전이 있다면 이렇게 써봐도 제 경우엔


안 생겨요 ㅜㅜ
** 덧붙인 글 때문에 유게로 갈지도 모르겠다는;;;;
   암튼 누군가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입니다!!!!!!
*** 원사운드님의 명대사를 빌리자면
   "사랑?..그런거 왜 해요?"
  "ciba...사랑하는데 이유가 있나? 그냥 하는거지-_-;;;;"

제목을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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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ESBEST
09/02/21 04:03
수정 아이콘
세상은 러브앤 피스입니다. 모님 명언 패러디 ^^;; (새벽에 좋은글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닷!~ 몽패랜덤님!)
Sansonalization
09/02/21 04:36
수정 아이콘
아.. 제목을 '사라고' 우길 생각 없습니다라고 읽고 들어왔는데 왠 연애편지들이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09/02/21 11:32
수정 아이콘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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