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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2/19 01:23:59
Name 홈런볼
Subject [일반]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가슴에 남아있는 음악의 여운...
오늘 운전을 하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일기예보의 '좋아좋아'를 틀어주더군요. 잊고 있었는데 문득 듣게되니 너무너무 좋고 새롭더군요.

'너를 첨 만나는 날 세송이 장미를 들고 룰루랄라~ 신촌을 향하는 내 가슴은 마냥 두근두근~~~♬'

노래를 듣다보니 13년 전 일들이 어제처럼 떠오릅니다. 이 노래는 저에게 있어 특별한 노래죠.

96년 저는 고3이었고 여느 고3과 다를 바 없이 열심히 대입을 준비하고 있었죠. 가을이 찾아오는 9월, 학원에서 한 천사(?)같이 어여쁜 한 여학생을 보게 됩니다. 너무 이쁜 나머지 무조건 대시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죠. 안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지만 그 땐 참 순박(?)한 어린 고3일 뿐이었죠. 하하하

그런데 알고보니 이 여학생은 재수생이었던 겁니다. 저보다 한 살 위였죠. 그렇다고 연하라고 고백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나온 거짓말이 종로학원에 다니는 재수생이라는 거짓말이었죠. 그때는 종로학원 다니는 학생이라면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이 많던 시절이어서요. 허세 쩔었죠. 하하하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고 만나자고 빌다시피 해서 결국 만나자는 약속을 받아내게 됩니다. 그 약속날이 1996년 10월 3일 개천절이었네요. 그 날 약속장소에 나가면서 왜그리 가슴이 터질 듯 긴장되던지 견딜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긴장도 풀 겸 음악을 들으며 걸었죠. 그 때 나오던 음악이 일기예보의 '좋아좋아'였어요. 그 음악을 들으며 그녀와의 핑크빛 교제를 상상했죠. 하하하 지금 생각해도 손발이 오그라드네요.

결국 그 해 저는 대학입시에서 낙방하고 재수의 쓴 잔을 마시게 됐지만 그 이후로도 일기예보의 '좋아좋아'만 들으면 1996년 10월 3일의 가슴 두근거림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날의 맑고 스산했던 날씨마저도 말이지요.

얘기가 나온 김에 음악에 얽힌 사연 하나를 더 들려드리죠.

시간은 2년이 지나 1998년. 재수의 터널을 지나 선망해 마지 않던 대학생이 되었죠. 그리고 우연히 초등학교 여자동창과 연락이 닿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친구가 또다른 초등동창생을 데리고 나왔더군요. 초등학교 졸업하고 7년이 지나 어엿한 성인이 되었지만 동창의 모습은 금방 알아보겠더군요. 참 신기하죠? 그 동창과 같이 나온 또다른 여동창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어마어마하게 변해 있더군요. ^^;;;

6학년 당시에 1등을 하던 친구였고 저는 맨날 2등을 하곤 했죠. 그런데 한 번은 제가 1등을 뺏었더니 펑펑 울고 난리부르스를 추던 독하고 돋보기 안경에 빼빼 마르기만 했던 그 친구가 엄청난 퀸카로 변해 있었던거죠.

렌즈를 했는지 안경을 벗고 긴 생머리에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은 그 친구를 본 후 저는 그날부터 잠을 못 잤습니다. 근데 의외로 초등 동창이다보니 가까워지는게 수월하더군요. 거의 리포트 써주는건 기본에 그 친구 시험공부 도와주느라 저는 재시험에 하마터면 유급까지 먹을뻔 했죠. 이 여자를 위해서라면 내 인생도 바칠 수 있을 것 같은 남자의 뜨거운 순정이 온 가슴에서 끓던 시절이었습니다.. 하하하

삐삐의 비밀번호를 서로 알아 음악도 넣어주고 할 정도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거의 사귀는거나 마찬가지의 관계였는데 그 때는 꼭 프로포즈를 해야만 사귀는건줄 알았어요. ㅜ.ㅜ

1998년 10월 24일. 해도 지고 늦은 10월이라 그런지 날씨가 제법 쌀쌀하더군요. 그 때 있던 까르푸의 네온 불빛이 호수면에 반사되어 제법 운치가 있었는데 말이죠, 하하하

일산 호수공원 벤치에 앉아서 우리 이제 사귀자고 고백을 했는데 그 친구 대답의 요지는 '부담스럽다. 친구사이로 지내는게 어떠냐' 이런 식이었습니다. 뜬금없이 사귀자는데 한 번에 흔쾌히 오케이 할 여자가 어딨겠어요. 지금 생각하면 바보 천치였죠. 그 뒤로 온 그 친구의 삐삐 음성메시지는 아예 씹었으니까요.

오안마로 뒷통수를 제대로 얻어맞은 기분이랄까요? 그 때의 충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참 순진했죠. 거절의사라 생각한 저는 도저히 함께 있을 수가 없어 겸연쩍은 인사를 나눈 후 호수공원을 나와 홀로 버스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그 때 뒷쪽의 음반가게에서 핑클의 '루비'란 노래가 흘러 나옵니다.

'I can`t cry. I can`t cry. 그래 널 보내주겠어. 나 무엇도 바라지 않아~♬'

노래를 듣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르더군요. 그 때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처량한 비련의 주인공이란 생각과 함께 핑클의 '루비'가 가슴에 콱 박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술마시고 핑클의 '루비'를 가끔 들으면 그 때의 쓸쓸한 기분들이 어제 일처럼 떠오르곤 하죠. 물론 손발이 오그라드는 유치함도 함께 맛보고요. ^^;

10년여가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유치하고 순진한 짝사랑의 기억들이지만 음악이 있어 그날의 기억들이 아름답게 포장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다들 저와 같이 음악에 얽힌 추억들이 있으시죠? 군대 갔다 온 친구들은 대부분 군대에서 듣던 음악들이 많이 떠오른다고들 하던데 pgr21님들은 어떤 추억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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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2/19 01:27
수정 아이콘
이런 추억담이 바로 아래글에서 진행되고 있는 저의 음방에서 함께 나누어졌다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요.
그러고보니 오늘 방송 주제도 "나의 추억이 담긴 노래"였는데, 고작 사연 두개 였다는....(이지만 두분 고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의 추억이 담긴 노래 한곡은,
소중한 사랑 - 박지윤
이네요. 저의 첫사랑이 박지윤씨와 닮았었다죠. 저 버리고 다른 분과 사귀신 그님과 박지윤씨는 목소리까지 같았지만,
이 노랫말과는 달리 제게 돌아와 주지 않으셨습니다.

http://c03.inlive.co.kr:7100
(클릭하지 마시고 음악프로그램 실행 후에 컨트롤+U 한후 이 주소를 붙여넣기 해주세요)
관심있으시면 방송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09/02/19 01:41
수정 아이콘
홈런볼님// 그런데 저랑 나이차이가 조금....나시나봐요. 근데 왜 저 노래 저도 열심히 들었을까요
바람이시작되
09/02/19 02:26
수정 아이콘
음악이라는게 감성을 자극하는 물건이라서 그럴지. 많은 추억은 사랑과 연관되어 있는거 같더라구요. ^^
제가 8년여간 만났던 친구는 참 작았어요. 저도 그 친구도 박정현을 무지 좋아했었죠. 박정현과도 참 많이 닮았던 친구구요.
외모가 닮은건 아닌데, 작지만 참 당차고 강렬한. 그리고 또 이쁘기도 했구요. 아무튼 둘다 좋아해서 그런지 박정현씨 노래 하나하나에는 참 그리운 추억들이 담겨 있는것 같네요.

아무말도, 아무것도. 그 친구 집앞에 시립체육관이 있었는데, 가끔 바래다주는 길에 아쉬움이 남아서인지
운동하시는 아주머니들 틈에 섞여 손잡고 트랙을 걷곤 했었죠. 2001년 여름이던가 그렇게 걷다가 벤치에 앉아서 이어폰 하나씩 끼고
노래를 듣는데, 제귀의 이어폰을 잡아 빼더니 나지막히 따라 불러준 노래. 사랑을 속삭이는 간지러운 노래는 아니지만, 그래도 살짝 수줍어 하면서도 끝까지 불러주던 그 목소리가 아직도 가끔은 귓가를 맴돌곤 하네요.

전야제. 참 슬픈 가사라고. 저보고 너는 참 냉정하고 칼같은 인간이라 혹시라도 헤어지면 뒤도 안돌아 볼 놈이라고. 그럴일 없길 바라지만 혹시라도 우리가 헤어진다면 자기는 이노래처럼 청승맞고 힘들게 받아들이게 될거라고. 결국 가사처럼 이별전야제를 준비하는건 그 친구가 아니라 제가 되버렸지만, 아니 그래서 더 기억나는 노래일지도 모르겠네요.

JaeS님// 사연이 적어서 실망하셨나보군요~ 저도 적을까말까 했는데, 너무 청승맞아질꺼 같아서 참았네요 흐흐.
09/02/19 02:30
수정 아이콘
바람이시작되는곳님// 이 사연. 또 울컥할뻔 했어요. 전 눈물은 잘 안흘리는데
울컥하면서 "울 것 같은" 느낌은 자주 받거든요.
모든 사람의 일상엔 정말로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순간이 있어요. 그래서, 인생은 소중해요. 누구에게나 너무나
09/02/19 07:45
수정 아이콘
많이 공감이 가네요. 저는 가사랑 연관지어져서 기억되는 노래는 별로 많지 않고 특정 상황에서 들었던 노래는 나중에 들어도 그 여운이 길게 가는 것 같아요. 그 음악,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상황이 백그라운드로 깔리는 느낌이랄까요? ^^;

나름대로 힘들었던 고등학교 시절, 이현도 솔로1집과 DJDOC 4집을 참 많이 들었고.. 대학 초반은 핑클이 수놓아 주었고, 짧지만 매우 강한 기억을 남긴 미국 체류 기간에는 많은 노래 중에서도 빅마마와 윤건씨의 노래가 유독 기억에 남았네요. 이 노래들을 어쩌다 다시 들을 때면 그때로 되돌아간 착각이 들 정도로..
09/02/19 11:27
수정 아이콘
일기예보의 "좋아좋아" 집사람이랑 연애할 때 추억이 떠오르는 군요.
군대에 있을 때 어느 날 카셋테이프가 소포로 와서 내무반에서 틀었는데 선임들 한테 맞아 죽을 뻔 했습니다.
앞, 뒷면이 한곡으로 채워져 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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