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초, 오늘날 아프리카 북부 지역에 한 황제가 있어, 막대한 수행원을 대동하여 위대한 성지로 순례하는 길에 황금을 물쓰듯 뿌려 훗날 전설로 남은 그 자의 이름은 바로 만사 무사였다.
무사는 바로 구약의 '모세'의 다른 발음이며 만사는 황제라는 뜻이니 그는 곧 '모세 1세'라고도 부를 수 있다. 이 이슬람 믿던 황제는 예수와 십자가 믿는다는 기독교도들에게도 퍽 흥미를 끌었는데, 그들의 옛 텍스트에는 바로 이렇게 적혀져 있었다.
"가나(Gineva) 흑인들의 땅 한 가운데에 가장 고귀하고 부유한 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그 땅에서 나는 가장 풍요로운 산물을 모조리 지배하는 그 땅의 군주이니라."
만사 무사는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사람 중 하나로 오늘날 손 꼽히며, 그가 소유했던 재산의 총 가치는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로서는 차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다. 그는 말리 제국 북부의 소금무역로를 통제하고, 제국 남부의 황금 광산을 직할령으로 삼았던 바, 오늘날 그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제국을 통치하였는가에 대한 정확한 밑그림은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그러나 그의 순례행렬에 무수히 많은 노예들이 있었다는 것과, 그가 훗날 카이로에 머물며 현지인들에게 정복한 스물 네 개의 도시들과 그 주변 수백의 마을들에 대한 썰을 풀었다는 점으로 인해, 그의 제국이 끊임없는 정복전쟁으로 유지되는 대단히 호전적인 국가였다는 하나의 추측만은 신빙성을 갖는듯 하다. 그의 부는 여타 역사 속 다른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창 끝으로부터 흘러들어왔을 것이다.
1324년, 이 위대한 정복왕은 메카로 성지순례(حَجّ)를 떠났다. 전설에 따르면, 이 행렬은 총 6만여 명의 수행원들에, 그 중 1만 6,000여 명은 노예였으며, 노예들 각각은 1.8kg 상당의 금괴를 지니고 있었고, 황금 지팡이를 들고 비단 옷을 입은 관리들이 선두에서 말들을 관리하고 짐짝을 정리했다고 한다. 행렬에는 낙타 80여 마리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낙타 각각 한 마리당 사금이 20~130kg 가량 적재되어 있었다고도 한다.
이 기나긴 행렬은 가난한 이를 도우라는 꾸우란의 말씀에 따라, 나그네들에게 황금을 나눠주며 전진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간이 모스크가 세워졌고, 그 모스크들 중에서 일부는 향후 수십에서 수백년 동안 그 지역에 굳건히 서 있을 것이었으며, 카이로와 메디나를 포함하여 순례 행렬이 지나치는 각 도시의 기념품들은 막대한 황금과 교환됐다. 이렇듯 막대한 값어치의 사치품을 펑펑 뿌려댔으니 이로 인해 무슬림 세계의 금 시세가 휘청거릴 지경이었음은 당연지사였다. 이 때의 충격은 수백년 동안 온 이슬람세계 그리고 무역으로 연결된 기독교세계에서마저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맘루크 제국의 수도 카이로에서 이 부유한 황제는 그 곳의 술탄을 접견했다. 술탄 알-나시르 무함마드는 이미 이 이방인 황제가 엄청나게 부유한 것을 보고 기가 눌려 있었지만, 짐짓 거만한 체하며 자신 앞에서 엎드려 부복할 것을 명했다.
만사 무사는 처음엔 거절했지만, 결국 조건을 달고 따르기로 결정했다,
"나는 당신이 아니라, 오직 신에게 절하는 것이다."
처음에 있었던 미묘한 신경전에도 불구하고, 이 두 통치자들은 곧 우정을 쌓을 수 있었다. 술탄은 만사 무사가 카이로에서 최대한 편하게 있을 수 있도록 그 어떤 편의도 다 봐주었고, 이방인 부자 손님은 술탄의 기대에 부응하여 황금을 펑펑 뿌려댔다.
드디어 성지에 도착한 만사 무사는 이집트에서보다 훨씬 더 거친 이방인 종교 형제들을 만났다. 그들은 야만적인 투르크 전사들이었다. 약간의 말다툼이 벌어지자마자 그들은 불쑥 칼부터 뽑아댔다. 만사 무사는 그의 부하들을 뒤로 물리는 관대함을 보여, 유혈 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만사 무사의 기지에도 불구하고, 순례에서 돌아오는 길은 끔찍한 재앙으로 점철돼 있었다. 추위, 굶주림, 도적떼들의 습격은 황제의 수행인들을 하나 둘 앗아갔고, 그가 다시 맘루크 술탄국의 영역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그때까지 남아있던 카이로의 기념품들을 다시 팔아야만 했다. 술탄 알-나시르 무함마드는 그러나 만사 무사의 관대함을 기억하고 있었고, 사재를 털어 순례행렬이 고향까지 편안히 돌아갈 수 있도록 보답했다.
그는 단순무식하게 사치를 부리기만 한 황제는 아니었다. 사치품은 곧 무슬림 세계 전역의 위대한 학자들을 그러모으는 미끼 역할을 수행했고, 당대 최고의 지성들이 그 부유함의 원천을 좇아 말리 제국 내부로 자연스레 흘러들어왔던 것이다. 그는 팀북투를 이슬람 세계의 학문 중심지로 탈바꿈하는 수많은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명군이었다.
그런데, 만사 무사는 한 가지 더 기묘한 전설을 남겼다. 그가 맘루크 술탄국의 카이로에서 체류하고 있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그는 친하게 지내던 아부 알-하산 알리 이븐 아미르 하지브(Abu al-Hasan Ali ibn Amir Hajib)라는 길고 긴 이름의 한 맘루크 관리에게 이상야릇한 이야기를 건넸다. 이 관리는 카이로 내에서 만사 무사가 머물고 있던 구역의 책임자이기도 했다.
"황제 폐하, 당신이 이토록 부유한 것은 물론 당신의 부왕께서 훌륭히 통치하신 덕이겠지요?"
만사 무사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 제국은 왕권을 상속하는 전통이 있던 바, 선왕께서는 어리석은 짓을 하셨기 때문에 나의 권리로 황제의자리에 올라 이토록 부유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선왕께서는 서쪽 바다 너머의 끝을 찾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다.
그는 200여 척의 배에 몇 년 동안 버틸만큼의 물과, 식량과, 금을 가득 싣고는 그 배를 타고 떠날 이들에게 '바다 끄트머리에 도착하거나 식량과 물이 고갈되기 전까지 돌아오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그들은 그렇게 했고, 오랫동안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단 한 척의 배가 돌아왔다. 그들은 '바다 한 가운데에 마치 강하게 흐르는 듯한 강이 나타났고, 나머지 배들은 모조리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증언했다.
그러자 선왕께서는 곧장 이천여 척의 배를 준비시켰는데, 그 중 일천 척은 바로 자신의 일행들이 타고 갈 것들이었으며 나머지 일천 척은 물과 식량과 황금을 싣고 갈 것이었다. 선왕께서는 나를 섭정으로 임명해 두시고는 부하들과 함께 바다 너머로 떠나셨다.
그것이 나와 내 부하들이 선왕의 일행을 본 마지막 장면이었다. 그렇게 나는 황제가 되었던 것이다."
만사 무사의 전임자는 오늘날 학자들에 의해 만사 무함마드로 여겨진다. 그는 만사 무사와는 증조부를 공유하는 한 단계 아래 항렬의 다소 거리가 먼 친척이었고, 정말로 그가 바다 너머로 여정을 떠났는지, 아니면 만사 무사에 의해 공구리쳐져서 바다 한가운데로 수장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또한 그가 정말로 바다 너머를 향해 항해를 떠났다 하여도, 대서양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 했는지 아니면 가다가 폭풍우를 만나 모두 불귀의 객이 되었는지 그 또한 여전히 알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일단 현재까지로서는 이 일군의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이 아메리카에 콜롬버스보다 먼저 성공적으로 도달했다는 물적 증거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실정이다.
어쩌면 휘황찬란한 모험에 대한 욕망은 말리 제국 만사 일가의 가족력인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만사 무사는 그의 전임자보다는 다소 현실적인 성격이라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고, 오늘날까지 역사 상 가장 부유했던 사람 중 하나로서 이름을 날렸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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