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레 뢰(雷, 畾)는 지금에는 비 우(雨)나 밭 전(田)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田은 수레 차/거(車)의 수레바퀴 모양에서 따온 것이고, 옛날에는 이에 더하여 번개의 모양을 그린 납 신(申)이 들어가 있었다. 申은 지금은 십이지의 아홉째 지지로 오래 쓰이면서 아홉째 지지를 상징하는 동물인 납, 잔나비라고도 하는 원숭이를 뜻하는 한자로 바뀌었다. 원래의 뜻은 雨를 위에 씌운 번개 전(電)으로 살아남았다.
이제 申의 자원과 이에서 파생된 한자들을 살펴보자.
申은 번개가 하늘을 찢고 돌돌 말리는 선들을 묘사한 상형문자다.
申의 변천. 출처: 小學堂
갑골문과 금문에서는 雷에서도 보았던 번개의 선들을 볼 수 있는데, 금문에서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번개의 돌돌 말리는 선 일부가 분리되어 입 구(口) 비슷하게 변형된 형태가 나온다. 이 모양은 밭두둑 주(疇)의 고문과 유사해, 둘 사이에 혼동이 있었다. 전국시대에서는 원래의 점대칭 형태가 바뀌면서 좌우대칭 형태의 변형이 나타난다. 설문해자의 고문과 주문은 점대칭 형태를 물려받은 것으로 보이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소전은 좌우대칭 형태의 변형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갑골문에서 申은 이미 아홉째 지지의 뜻으로 가차되어 쓰였다. 금문에서는 귀신 신(神)의 뜻으로 쓰였는데, 고대 사람들은 하늘에 치는 번개를 신령한 것으로 여긴 것 같다. 또 번개는 하늘에서 자유자재로 펴지기 때문에 申은 늘어난다, 펴진다, 즉 펼 신(伸)의 뜻으로도 쓰였다. 그 외에 '설명하다', '말하다', '거듭하다' 등을 뜻하기도 하는데, 일상생활에서도 신고(申古)·신청(申請) 등으로 쓰이고 있다.
이렇게 申이 여러 가지 뜻으로 활용되면서 본래의 뜻인 번개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기상현상을 가리키는 비 우(雨)를 덧붙인 번개 전(電)을 쓰게 되었다.
申(납 신, 신고(申告), 갑신정변(甲申政變) 등. 어문회 준4급)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申+人(사람 인)=伸(펼 신): 신축(伸縮), 인신(引伸) 등. 어문회 3급
申+口(입 구)=呻(읊조릴 신): 신음(呻吟), 빈신(嚬呻) 등. 어문회 1급
申+土(흙 토)=坤(따 곤): 곤여(坤輿), 건곤(乾坤) 등. 어문회 3급
申+示(보일 시)=神(귀신 신): 신경(神經), 귀신(鬼神) 등. 어문회 준6급
申+糸(가는실 멱)=紳(띠 신): 신사(紳士), 진신(搢紳/縉紳) 등. 어문회 2급
申+雨(비 우)=電(번개 전): 전기(電氣), 가전(家電) 등. 어문회 준7급
申+阜(언덕 부)=陳(베풀 진|묵을 진): 진부(陳腐), 개진(開陳) 등. 어문회 준3급
陳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陳+艸(풀 초)=蔯(사철쑥 진): 인진(茵蔯), 인진고(茵蔯膏) 등. 어문회 준특급
申에서 파생된 한자들.
陳은 '베풀다'의 뜻으로는 장음이고, '묵다'의 뜻으로는 장음이 아니기 때문에 어문회에서는 훈음을 따로 표시하고 있다.
잡아당기거나 펴서 늘임을 뜻하는 인신(引伸)이란 단어는 한자 연구에서 자주 쓰이는데, 한자의 원래 뜻에서 관련된 다른 뜻을 파생하는 것도 인신이라 하고, 그렇게 파생된 의미를 인신의라고 하기 때문이다. 위의 申을 예로 들면 '번개'는 본의고 '늘이다', '귀신'은 인신의다. 한편 '아홉째 지지, 원숭이'는 원래 의미와는 상관이 없기 때문에 인신의가 아닌 가차다.
申에서 파생된 글자들에는 번개나 번개처럼 펴진다는 의미가 있다.
伸(펼 신)은 人(사람 인)이 뜻을 나타내고 申이 소리를 나타내며, 번개가 뻗어나가듯이 사람이 펼쳐지는 것을 뜻한다.
坤(따 곤)은 土(흙 토)가 뜻을 나타내고 申이 소리를 나타내며, 번개가 뻗어나가듯이 흙이 펼쳐진 땅을 뜻한다.
神(귀신 신)은 示(보일 시)가 뜻을 나타내고 申이 소리를 나타내며, 번개와 같은 귀신, 신령을 뜻한다.
紳(띠 신)은 糸(가는실 멱)이 뜻을 나타내고 申이 소리를 나타내며, 실로 만들어 펼치는 띠, 특히 관료의 띠를 뜻한다. 흔히 쓰이는 '신사'란 말은 이런 띠를 하고 있는 인물들로 이룬 사회 계층인 '신사'에서 유래한다.
電(번개 전)은 雨(비 우)가 뜻을 나타내고 申이 소리를 나타내며, 비와 같이 울리는 번개를 뜻한다.
陳(베풀 진|묵을 진)은 阜(언덕 부)가 뜻을 나타내고 申이 소리를 나타내며, 언덕에서 군대를 펼쳐 진열, 포진하는 것을 뜻한다.
이상의 관계를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申에서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도.
申의 파생자로 보아야 할지 東의 파생자로 보아야 할지 고민인 한자가 있다. 바로 베풀 진/묵을 진(陳)이다. 음은 申에 가까운데, 형태는 東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를 해석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한자가 바로 申과 紳이다.
허난성 난양시 북쪽 교외에서 발굴되어, '남신'(南申)이란 고대 주나라의 제후국의 존재를 고고학적으로 알린 유물인 궤(簋: 기장과 조 등을 담는 제기)로 중칭보궤(仲爯父簋)가 있다.
중칭보궤. 출처: 古宮博物院
이 중칭보궤에 새겨진 명문에서, 주인공 중칭보를 설명하는 문구는 다음과 같다.
둘째 글자는 (亂-乙)에 東과 田이 덧붙은 모양으로, 컴퓨터로 다룰 수는 있으나 유니코드 U+2454C로 유니코드의 기본 다국어 평면 밖이라 어지간한 인터넷 환경에서는 깨지기 일쑤인 글자다. 이 글자를 A이라고 하면, 이 문구는 남A백의 태재(벼슬 이름. 옛날에 大와 太는 서로 통했다.) 중칭보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유물은 문헌에서 옛날 신(申)나라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난양시 근방에서 발견되었으므로, 중칭보궤를 신나라의 유물로 보고 아마도 나라 이름이었을 A를 신(申)으로 읽어 남신백의 태재 중칭보라고 읽는 것이 정설이다.
본디 저 글자는 시라카와 시즈카가 왼쪽은 실을 걸어놓은 모양, 오른쪽 위의 東은 염료를 담은 자루, 오른쪽 아래의 田은 솥의 모양으로 해석해, 실을 염료에 거듭 담가 염색한다는 뜻의 글자로 해석했으며, 더 나아가 거듭하다, 더하다를 뜻하는 緟과 같은 한자로 보았다. 지금 重을 무겁다 외에 거듭하다의 뜻으로 쓰는 것은 이 緟을 간략화한 것이다.
그런데 이 글자의 음이 申이라는 주장은 더 발전해서, 이 한자가 띠 신(紳)의 옛 형태로 추정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申과 緟은 둘 다 '거듭하다'라는 뜻이 있으므로, 음이 다르긴 하지만 통용하는 데에는 문제는 없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亂-乙)은 제멋대로 얽힌 실뭉치를 정리하는 모습으로, 띠를 단단히 묶는 의미로 보아 이 부분을 紳의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내반(逨盤)·여왕궤(厲王簋)·모공궤(毛公簋) 등 여러 유물의 명문에서 이 글자를 申으로 해석해야 뜻이 통하는 사례가 있다.
이렇게 紳은 원래는 申이 아니라 東이 들어가는 한자였음을 알고 나면, 이 글자의 변천도 이해할 수 있다.
紳의 변천. 출처: 小學堂
원래 갑골문에서는 지금과 같이 糸과 申으로 구성된 한자가 아니라, 東과 오른손을 나타내는 또 우(又)로 구성된 한자였다. 손이 여러 개 들어가기도 하고, 東이 여럿 겹치기도 한다. 금문으로 넘어가면 아까 말한 복잡한 실뭉치인 (亂-乙)+東+田의 형태가 나타나기도 하고, 東이 생략되기도 하며, 드디어 糸이 나타나긴 하나 申이 아닌 東과 결합하고 있다. 시라카와 시즈카는 田은 솥, 東은 염료를 담은 자루로 보았는데, 세 번째 금문은 4개의 솥과 자루가 가운데의 糸을 둘러싸고 있는 듯하다.
전국시대 초나라 문자로 넘어가면 이렇게 복잡한 변형들이 정리되면서 糸+東, 糸+東+土 등이 나타나고, 드디어 현재의 紳이 첫 선을 보이게 된다. 허신은 이렇게 복잡한 紳의 옛 글자들을 찾아내지 못했는지 《설문해자》에 紳만을 수록했고,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말이 길어졌는데, 東과 申이 소리가 일단은 달라 보이지만 통할 수 있다는 것으로, 陳 역시 東을 성부로 쓰는 한자라면 東 대신 申의 소리를 따올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東 대신 申을 성부로 쓴 迧이나 申+戈의 형태도 발굴이 되었으니, 《설문해자》에서 陳의 소리를 東이 아니라 申에서 따왔다고 한 것은 東과 申이 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핵심을 짚은 면도 있다.
추 시구이는 東에는 밭 전(田)이 들어가 있으므로, 東이 소리를 나타내는 한자는 田에서 소리를 가져왔을 수도 있어서 申으로 읽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그 예를 陳으로 들었다.
陳의 변천. 출처: 小學堂, zi.tools.
陳은 갑골문에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금문에서 나타나는데, 《설문해자》에서는 별개의 글자로 소개하는 敶이 이 글자의 원형으로 보인다. 금문에서는 敶과 陳이 같이 나타나고, 또 陳 아래에 흙 토(土)를 받쳐 쓰는 형태도 나타나는데, 이는 전국시대 제나라의 왕가로 진(陳)나라 출신인 진(陳)씨들이 자신의 씨족을 표시하기 위해 만들어낸 글자다. 혹은 東 대신 東을 성부로 삼는 다른 글자인 무거울 중(重)이 들어가기도 한다.
전국시대 문자로는 주로 초나라 출토문헌에서 많이 보이는데, 重을 성부로 삼는 글자가 주류를 이룬다. 초나라가 진(陳)나라를 병탄하면서 진(陳)나라 사람들이 초나라에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때부터 申을 성부로 쓰는 ⿰申戈나 迧의 사용이 나타난다. 《설문해자》 소전은 옛날의 陳과 敶을 이어받았는데, 고문 ⿰阜申이나 출토문헌의 ⿰申戈, 迧 등의 영향인지 東을 東이 아니라 나무 목(木)과 申의 결합으로 풀이했다. 그러나 陳과 攴이 결합한 敶의 소전을 보면 東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陳은 군대를 사열하는 진지를 상징하는 阜가 뜻을 나타내고, 東이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다. 그래서 원래의 뜻은 '진을 치다', '진열하다'다. 나중에 진을 뜻하는 진칠 진(陣)이 따로 만들어져 나갔고, '진열하다'의 뜻에서 '진부하다', '오래 묵다'가 인신되었다. 이체자 중 ⿰申戈는 글자에 무기가 들어가서 그런지 '진치다'의 뜻 전용으로 쓰였다. 迧은 군대가 행진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阜 대신 쉬엄쉬엄 갈 착(辵)을 쓴 것 같다.
이런 紳과 陳의 사례에서, 형성자의 성부로 申과 東이 서로 교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약
申은 번개의 모양을 딴 상형문자로, 번개에서 파생되어 '펼치다', '귀신' 등을 뜻하며, 가차되어 '아홉째 지지', '원숭이'를 뜻한다.
申에서 伸(펼 신)·呻(읊조릴 신)·坤(따 곤)·神(귀신 신)·紳(띠 신)·電(번개 전)·陳(베풀 진|묵을 진) 등이 파생되었고, 陳에서 蔯(사철쑥 진)이 파생되었다.
申은 파생된 한자들에 '번개, 번개처럼 펼치다'의 뜻을 부여한다.
申은 형성자의 성부로서는 東(동녘 동)과 상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