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번역 제목 《세금의 세계사》는 책 전체를 대표하기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중동 고대 문명에서부터 시작하는 세금의 기원에서 시작해서 영국과 미국 세금의 역사를 살펴보고, 그래서 부제도 “세금이 우리의 과거를 만들어내고, 우리의 미래를 바꾸는 방법”이긴 합니다. 그러나 원제인 《햇빛 강도》는 그런 뉘앙스가 아니거든요.
햇빛 강도(Daylight robbery)란 물건이나 서비스에 어마어마한 바가지를 씌운다는 의미인데, 이 표현의 어원 중 하나는 영국의 윌리엄 3세가 도입한 창문세입니다. 창문이 클수록 더 많은 세금을 걷는 방식이었죠. 사람들은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창문의 크기를 줄였고, 그 결과 집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서 햇빛 강도란 표현이 유래했다는 것입니다. 글쓴이 도미닉 프리스비는 현대 사회에서 정부가 갈수록 커지는 것을 결국은 햇빛 강도와 다를 바 없다는 관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도미닉 프리스비는 영국의 금융 전문 작가이자 코미디언으로, 〈머니위크〉에 매주 투자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TV를 통한 크라우드 펀딩 프로그램인 〈머니핏〉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가디언〉지에도 유수의 칼럼을 냈고, 세 권의 책, 《국가 이후의 삶》, 《비트코인: 화폐의 미래》, 그리고 이 책, 《파이낸셜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메린 서머셋 웹이 2019년 크리스마스 추천도서로 선정한 《세금의 세계사》를 썼습니다. 《국가 이후의 삶》은 “무정부자본주의의 흥미로운 옹호이자 환상적인 읽을거리”라는 평을 받았는데, 이 책도 현대 국가의 정부가 갈수록 커지는 현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무정부 자본주의적입니다. 더 나아가서, 정부를 키우는 사람에게는 기존 역사관에서는 주목하지 않는 악한 의도가 있다는 수정주의적 역사관도 드러납니다.
간략하게 말해서, 근현대 영미 역사를 무정부자본주의의 관점으로 비틀어 해석하는 역사수정주의 책이라 하겠습니다. 이 서평을 쓰는 목적 중 하나는 저처럼 한국어판 책 제목만 보고 책을 읽었다가 낭패를 겪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책은 세금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한 책이 아닙니다. 무정부자본주의자들이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를 역사를 통해 조명하는 책입니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장 햇빛 도둑
2장 홍콩의 성장 비밀
3장 갑자기 웬 세금?
4장 세금의 기원
5장 종교와 세금
6장 조세 저항으로 탄생한 대헌장
7장 세금구조를 바꾼 흑사병
8장 세금과 근대국가의 형성
9장 나폴레옹 전쟁과 소득세
10장 남북전쟁의 진짜 이유
11장 큰 정부의 탄생과 20세기 초
12장 제2차 세계대전과 세금
13장 20세기 세금, 더 많이 더 쉽게 걷히다
14장 채무와 인플레이션은 숨은 세금이다
15장 직업의 미래와 세금
16장 암호화폐는 국세청의 악몽
17장 디지털의 탈출
18장 조세 당국의 새로운 친구, 데이터
19장 시스템이 무너진다
20장 세금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감사의 말
참고문헌
주
책 자체는 총 20장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 세부 구분은 없지만, 내용에 따라 나눠볼 수 있습니다.
1-3장: 서론
4-14장: 세금의 과거와 현재
15-20장: 세금의 미래
1장에서는 창문세를 실시한 영국, 2장에서는 세금을 최소화해 발전한 홍콩을 비교하고, 3장은 이와 같이 세금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데다 현대 선진국은 자기 수입의 상당량을 세금으로 내고 있기 때문에 세금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4장부터는 문명이 시작하면서부터 각지 문명과 역사에서 어떤 형식으로 세금이 나타났는지를 보여줍니다. 4장은 문명과 세금, 5장은 종교와 세금이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보여줍니다. 그리고 6장부터는 세계에서 초점을 좁혀 주로 영국과 미국을 포함한 유럽 국가에서 세금 때문에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를 살핍니다. “세금 때문에”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이 책은 모든 역사 사건의 원동력을 “세금”으로 해석합니다.
프랑스 혁명, 미국 독립 혁명 등은 누가 봐도 세금이 중요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남북전쟁이 세금 때문에 일어났다고 하면 어떤가요? 글쓴이는 남북전쟁이 일어난 근본적인 이유는 관세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 책만 보면 그럴싸하게 묘사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인정받는 역사적 견해는 아닌 것으로 압니다. 더 나아가서, 세계대전에서는 인플레이션세를 걷지 않았으면 전쟁이 오래가지 않았을 거라고 하는데, 정말로 그랬다면 인플레이션세를 걷지 않은 나라가 인플레이션세를 걷은 나라에 졌을 것 같습니다. 세금이 중요하기는 해도 세금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는 없는데, 이 책은 세금이 모든 것을 결정하며 세금은 적게 거두는 것이 정의롭고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이야기만 합니다.
15장부터는 세금의 미래를 예측합니다. 현대 정부가 세금을 쉽게 거둘 수 있는 이유는 유리지갑 소리를 듣는 정규직 노동자들 때문인데, 정규직이 아닌 임시직과 프리랜서, 자영업자가 늘어나고 재택근무나 원격근무를 통한 디지털 노마드 생활이 확산되면서 정부가 쉽게 세금을 거둘 수 있는 유리지갑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는 돈을 만들 수 있는 기성 기관들의 지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아마존 같은 기업은 수익을 내지 않음으로써 조세를 성공적으로 회피하고 있습니다. 3D 프린터 생산에는 어떻게 세금을 물릴 수 있을까요? 그러나 기술의 발전은 세금을 거두는 사람들에게 결코 불리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들은 빅 데이터 기술로 사람들을 감시해 세금을 효율적으로 거둘 방법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19장과 20장은 글쓴이가 꿈꾸는 이상적인 세계가 어떤지를 잘 보여줍니다. 글쓴이는 현대의 선진국을 “사회민주주의 국가”로 보고 있으며, 많은 세금을 거두어서 재분배를 한다고 주장하지만 오히려 그 세금 때문에 중산층과 노동자들을 가난하게 만들고 사회 불평등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세금 혁명으로 만들어진 민족주의 국가는 자유와 자치권 추구를 추구하는 사람들 때문에 위기를 맞이할 것이며, 이에 맞추어 세금을 줄이고 조세제도를 단순하게 개혁하는 나라가 번창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그러면 그 낮은 세금, 단순한 조세제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글쓴이는 국가 채무와 인플레이션세를 합친 모든 세금을 GDP의 15% 내외로 정하고, 마약조차도 합법화해서 15%의 세금을 거둡니다. 그리고 헨리 조지가 주장한 토지가치세를 입지이용세라는 이름으로 도입합니다. 토지가치세는 밀턴 프리드먼조차도 '가장 덜 나쁜 세금'이라고 부를 만큼 작은 정부를 선호하는 사람들일수록 오히려 권장하는데, 그들이 보기에는 토지가치세야말로 진정한 불로소득에 매기는 세금이며, 토지를 개발할 의욕이 있는 사람만이 토지를 소유하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세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입지사용료가 전체 세수의 1/3을 차지하며, 지방정부가 징수합니다. 지방정부가 많은 세금을 거두므로 시민들은 더 쉽게 세금이 얼마나 잘 쓰이고 있는지 감시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공공 서비스에 구독제를 도입할 것을 주장합니다.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는 아주 저렴하게 공급하는 대신 원가보다 훨씬 비싼 비용으로 추가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이렇게 하면 자발적인 누진세 제도가 만들어집니다.
이 책을 읽고 저는 무정부자본주의자들도 상당히 공상적인 이상 사회를 꿈꾸는 한편 현실 사회는 자신들의 이상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심하게 깎아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글에서는 건강보험이나 교육에 세금을 투입하지 않았으면 19세기 우애조합처럼 자생적으로 문제를 잘, 어쩌면 세금으로 해결하고 있는 현재보다 더 잘 풀어나갔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런 공공 서비스는 주류경제학에서는 외부 효과 때문에 가장 효율적인 수준보다 과소하게 공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 분야입니다. 다른 무정부주의 사상이라면 모를까 무정부자본주의자들이 기본적으로 가정하는 인간은 주류경제학에서 가정하는 합리적 인간과 거의 같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인플레이션세에만 주목하면서 현대 조세 제도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유리하고 없는 사람들에게 불리한 제도라고 주장하는데, 그러면서 1960년대와 금융위기 이후를 비교하는 건 심히 잘못됐습니다. 1960년대라면 케인스주의의 전성기고, 금융위기라면 신자유주의의 전성기이니, 그 사이 세제의 개혁은 글쓴이가 주장하는 “사회민주주의”가 심해진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과연 현대 조세 제도가 인플레이션세와 국가 부채를 포함해도 누진적인지 역진적인지는 정교한 수학적 분석이 필요한데, 이 책은 정교한 분석보다는 그저 무정부자본주의자들이 현대 조세 제도에 악이라는 딱지를 붙이기 위해 역진적이라는 결론만 내려 놓고 그에 맞는 근거는 나중에 가져온 듯한 느낌입니다.
제가 무정부자본주의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이 책이 저에게 무정부자본주의를 매력적으로 묘사하려는 시도가 영 탐탁잖게 보이긴 했습니다. 그래도 공감한 내용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조세 제도가 복잡하면 있는 사람들에게만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있는 사람들만이 복잡한 제도를 잘 숙지할 수 있지요. 없는 사람들에게 조세 제도가 불리하지 않으려면 우선 최대한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 급선무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중세 농노나 현대 선진국 시민이나 조세로 자신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