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4/06/21 06:24:36
Name 계층방정
Link #1 https://brunch.co.kr/@wgmagazine/32
Subject [일반] 巳(뱀/여섯째지지 사)에서 유래한 한자들 - 늪, 제사, 빛남 등

己(몸/여섯째천간 기)에서 유래한 한자들 중에서는 己와 비슷하게 생긴 巳(뱀/여섯째지지 사)에서 유래했다가 巳가 己로 바뀐 한자들이 있었다. 改(고칠 개)와 起(일어날 기). 이 한자들의 음은 巳보단 己에 가깝다. 巳에서 소리를 가져온 한자들은 없을까? 그 한자들과 巳는 어떤 관계에 엤을까?

巳은 지금의 뜻인 뱀이나 여섯째지지로 보면 뜻밖이지만, 지난 글에도 언급했듯이 갑골문의 형태는 子(아들 자)와 혼용해서 쓰고 있기에 원래는 태아의 뜻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口는 어린이의 머리가 되고 乚은 어린이가 강보에 싸여 묶여 있는 형태로, 子와 비슷하게 해석된다. 실제 갑골문에서 子는 巳와 많이 다른 형태로도 쓰지만, 巳를 子의 뜻으로도 쓰기 때문에 巳를 子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子의 다른 형태는 어린이의 정수리와 머리털을 강조한 그림에서 나왔다.

6673e52b96a7a.png?imgSeq=27313

巳(뱀 사)와 子(아들 자)의 공통 갑골문. 출처: 小學堂

6673e5f58b1a2.png?imgSeq=27314

子(아들 자)의 또 다른 갑골문. 출처: 小學堂

6673f07becc72.png?imgSeq=27315

왼쪽부터 巳의 갑골문, 금문, 전국시대 진(晉)계 문자, 설문해자 소전. 출처: 小學堂

巳가 원래부터 지금의 뜻인 뱀이었고 저 갑골문도 뱀을 본뜬 상형문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다만 태아의 형태를 본떴다는 정설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원래는 알 속에서 뱀이 발육하는 모습을 본떴다고 한다. 口는 뱀의 알을 뜻하고 乚은 발육하는 뱀의 태아를 그린 것이며, 음인 '사'는 알 속에서 보이는 뱀의 핏줄이 실 같다고 '실 사'(絲)에서 가져왔다는 것이다.

巳의 자원으로 추정되는 태아의 모습.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巳의 자원으로 추정되는 태아의 모습.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뱀 태아와 巳. 출처: 学科网

뱀 태아와 巳. 출처: 学科网

巳에서 파생된 글자들은 다음과 같다. 의외로 제사 사(祀)가 준3급으로 꽤 급수가 높고 다른 한자들도 일상생활에서 보기 어려운 글자들이 많다.

巳(뱀/여섯째지지 사): 사시(巳時), 을사늑약(乙巳勒約) 등. 어문회 3급

戺(문지방 사): 계사(階戺), 문사(門戺) 등. 어문회 특급

汜(늪 사): 몽사(蒙汜), 사수(汜水) 등. 어문회 특급

祀(제사 사): 사손(祀孫), 제사(祭祀) 등. 어문회 준3급

巸(아름다울 이, 즐거워할 희): 급수 외 한자

巸에서 파생된 글자는 다음과 같다.

熙(빛날 희): 희광(熙光), 강희자전(康熙字典) 등. 어문회 2급

66741b80d37be.png?imgSeq=27378巳(뱀 사)에서 파생된 한자들.

이 중 巳와 祀와 汜는 지금의 음만 같을 뿐만 아니라 상고음으로도 정장상팡은 ljɯʔ로, 벡스터-사가르 체제에서는 s-ɢəʔ로 같게 추정한다. 급수 외 한자지만 한국 고전에서 은근히 쓰이고 있는 圯(흙다리 이) 역시 설문해자에 수록되어 있는 오래된 글자인데 지금의 음은 巳보단 已(이미 이)에 훨씬 더 가깝지만 상고음으로는 정장상팡은 lɯ로 추정해 已의 상고음인 lɯʔ와 巳의 상고음인 ljɯʔ와 모두 비슷하게 추정했다. 이를 보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상고음으로는 已와 巳가 비슷하며 운모(대략 한 음절에서 초성을 빼고 반모음+모음+받침에 해당)도 같다.

그래서 己, 巳, 已가 모양도 비슷하고 운모도 같다 보니 기원이 같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위의 巳가 발육하는 뱀 모습이었다는 주장에서는 已는 알을 깨고 나오는 뱀의 모습이라 口가 조금 터진 거고, 己는 완전히 알을 깨고 나온 뱀의 모습이라 口가 완전히 열렸다고 보았다.

갑골문에서도 나타나는 巳의 파생자로는 祀와 汜가 있는데, 그 중 祀의 변천도 살펴보자.

6673f83b3eb87.png?imgSeq=27316 

왼쪽부터 祀의 갑골문, 금문, 전국시대 진(晉)계 문자, 전국시대 초(楚)계 문자. 출처: 小學堂

제단을 나타내는 보일 시(示)와 巳가 결합한 모습을 상나라 시절부터 지금까지 죽 유지해 오고 있다. 진(晉)계 문자에서는 반원형 장식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골자는 같다. 이 글자는 巳를 사람의 모양으로 보고, 꿇어 앉은 사람을 본뜬 卩과 유사하게 취급해 '제단 앞에 사람이 꿇어 앉아서 제사를 드리는' 모습으로 해석한다. 巳와 已의 유사성에 착안해서인지 설문해자에서는 已의 다른 뜻인 '그치다'에 의탁해, '제사가 그치지 않는다'라고 풀이했다. 이 글자는 갑골문에서는 제사의 일종이었다가 조상 제사를 두루 일컫는 단어로 바뀐 것 같다. 그런 한편, 조상 제사를 1년 주기로 돌아가면서 드렸기 때문에 이 글자는 상나라 시대에는는 한 해를 나타내는 글자로도 쓰였다. 즉 우리가 1년, 2년, 3년... 하면서 햇수를 세는 것을 상나라에서는 1사, 2사, 3사.... 와 같은 식으로 센 것이다.

그런데 설문해자에는 좀 뜬금없는 祀의 이체자가 있다. 바로 巳 대신 異(다를 이)를 쓴 禩다.

6673feda106e5.png?imgSeq=27320

祀의 이체자 禩의 설문해자와 전래되는 고문자 초본(전초고문자), 그리고 전초고문자의 (示+己). 출처: 小學堂

異의 음이 已와 비슷하므로 巳→已→異의 변화를 거친 것 같기도 하지만, 정장상팡과 벡스터-사가르는 異의 상고 운모를 職(직분 직)으로 추정했으므로 已와는 달라서 이렇게 보기도 애매하다. 명나라 시기에, 전래되는 고문자들을 수집해서 초본을 낸 것을 전초고문자라고 하는데, 전초고문자에도 수록된 것을 보면 허신의 착오라고 단정하기에도 섣부르다. 한편 전초고문자에는 巳를 己(몸 기)로 바꿔쓴 형태도 있는데, 이를 보면 현대뿐 아니라 갑골문이나 금문에서도 己와 巳를 헷갈리는 사람이 있던 것 같다.

그리고 熙도 살펴보자. 熙는 巸(아름다울 이, 즐거워할 희)가 소리를 나타내고 火가 뜻을 나타내며 설문해자에서는 불에 말린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그러나 실제 예문을 보면 이 뜻으로는 거의 쓰이지 않고 火가 붙기 전 巸에 가까운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금문에는 熙를 쓰지 않고 대신 巸를 쓰기에, 이 巸를 熙로 해석한다. 巸는 頤(턱 이)의 왼쪽 부분(???? 이 글자도 턱 이인데, PGR21에선 깨지므로 頤로 대신함)와 巳의 결합으로, 두 글자 모두 운이 같아서 뭘 기준으로 봐도 형성자의 성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巳는 순수하게 소리만 나타낸다고 보며, 설문해자에서는 頤에 주목해 '턱이 넓은 모양'이라고 했는데, 옛날에는 지금과는 달리 턱이 넓은 모습이 아름답다고 봤는지 아름답다는 뜻이 인신되어 나왔다. 나중에 이 인신의를 더 강화하기 위해 불빛을 표현하는 火를 붙여서 '빛나다'는 의미가 되었다.

667403ef15d90.png?imgSeq=27322

왼쪽부터 巸의 춘추시대 초기 금문, 춘추시대 후기 금문, 전국시대 진(秦)계 문자, 설문해자 고문, 설문해자 소전. 출처: 小學堂

巸의 옛 형태는 위와 같다. 설문해자의 고문은 아마도 턱 이를 戶(지게 호)와 헷갈린 것 같다. 나머지 문자들은 모두 턱 이와 巳의 결합이다. 저게 턱이라고요? 여자 가슴 아니에요? 하실 분도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 그게 턱 이의 유력한 자원 중 하나기도 하다.


요약

巳는 갑골문에서는 子와 혼용해 태아의 모습을 본뜬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나, 알 속의 뱀 새끼를 본뜬 것이라는 설도 있다.

巳에서 戺(문지방 사)·汜(늪 사)·祀(제사 사)·巸(아름다울 이, 즐거워할 희)가, 巸에서 熙(빛날 희)가 파생되었다.

祀는 제단 앞에 사람이 꿇어 앉은 모습을 본딴 글자며, 옛날에는 제사 주기에서 파생돼 1년을 뜻하기도 했다.

熙는 옛날에는 火(불 화) 없이 巸로 썼으며, 턱이 넓은 모양에서 아름답다, 빛나다의 뜻이 파생되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4/06/21 09:38
수정 아이콘
전혀 생각도 못한 내용이군요.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말 잘 배웠습니다.
계층방정
24/06/21 13:29
수정 아이콘
저도 조사하면서 이런저런 것들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항상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4/06/21 14:13
수정 아이콘
오 뱀사자가 태아랑 연결될줄은 몰랐네요
알깨서 저 한자가 됐다는건 설득력이 있으면서도 끼워 맞추는 느낌이고 크크
계층방정
24/06/21 21:06
수정 아이콘
저도 몰랐어요. 쌀 포(包) 자가 어느 정도 힌트를 주긴 하지만 巳만 떼어놔도 저럴 줄은 몰랐거든요. 저도 뱀알에서 저 한자가 나왔다는 주장에선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정치] [공지] 정치카테고리 운영 규칙을 변경합니다. [허들 적용 완료] [126] 오호 20/12/30 256032 0
공지 [일반] 자유게시판 글 작성시의 표현 사용에 대해 다시 공지드립니다. [16] empty 19/02/25 330922 10
공지 [일반] [필독] 성인 정보를 포함하는 글에 대한 공지입니다 [51] OrBef 16/05/03 453568 28
공지 [일반] 통합 규정(2019.11.8. 개정) [2] jjohny=쿠마 19/11/08 325237 3
101784 [정치] 김진표 전 국회의장 "尹, '이태원참사 조작가능성' 언급" [7] 빼사스806 24/06/27 806 0
101783 [일반] <핸섬가이즈> - 오묘하고 맛깔나는 (호불호는 갈릴) B급의 맛.(노스포) [8] aDayInTheLife464 24/06/27 464 0
101782 [일반] 물고기 입속에서 발견된 쥐며느리? [11] 식별3441 24/06/27 3441 5
101781 [정치] 美 6개 경합주 유권자 "민주주의 위협 대처, 트럼프 > 바이든" [22] 베라히3219 24/06/27 3219 0
101780 [정치] 최근 핫한 동탄경찰서의 유죄추정 수사 [428] wonang10359 24/06/26 10359 0
101779 [일반] 육아 1년, 힘든 점과 좋은 점 [51] 소이밀크러버3140 24/06/27 3140 30
101778 [일반]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날 (스포유, 전편 보신분은 스포무) [9] 헝그르르3179 24/06/27 3179 0
101777 [정치] [서평]《대통령과 한미동맹》 - 자율성은 동맹과 상충하지 않는다 [17] 계층방정2847 24/06/27 2847 0
101776 [일반] [추천사] 핸섬가이즈, 썩시딩 유 '시실리2km' [37] v.Serum4185 24/06/27 4185 5
101774 [정치] 저한테 미친여자라 그랬죠? [47] 어강됴리9687 24/06/26 9687 0
101773 [일반] 인터넷 가입 피싱 사기 전화 이야기 [24] 류지나3825 24/06/26 3825 1
101771 [일반] 병원 에피소드(전혀 무겁지 않습니다) [16] 두부두부5003 24/06/26 5003 19
101770 [일반] 우리는 왜 '오너'의 경영권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99] 사람되고싶다8487 24/06/26 8487 49
101769 [일반] 삼국지 장각은 거대한 음모의 희생자였을까? [4] 식별3013 24/06/26 3013 10
101768 [일반] <테이크 쉘터> - 증폭하다 끝끝내 삼켜버릴 불안.(스포) [4] aDayInTheLife2800 24/06/25 2800 1
101767 [일반] 문화와 경제의 동반론 [13] 번개맞은씨앗4595 24/06/25 4595 2
101766 [일반] 턱 이에서 파생된 한자들 - 턱? 빗? 유방? [10] 계층방정3703 24/06/25 3703 7
101765 [일반] KT는 네트워크 관리를 목적으로 사용자의 통신을 감청한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28] Regentag9326 24/06/25 9326 6
101764 [일반] 추천게시판 운영위원 선발 결과를 공지합니다 [5] jjohny=쿠마3351 24/06/24 3351 1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