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을 거의 안보지만. 그래도 네이버에서 닥터베르의 "닥터앤닥터 병원일기"만은 가끔 보고 있다.
가장 최근은 아니고, 비교적 최근 에피소드는 호스피스 환자의 버킷리스트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36살의 젊은 나이에, 어린 딸을 두고 죽음을 준비하는 엄마는, 미래의 딸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들을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남겨주었다고 한다.
첫 생리를 시작했을 때 전해주고 싶은 말, 성인이 되었을 때, 지금의 엄마의 나이와 같은 36살이 되었을 때 등....
부모는 늘 자신의 아이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고, 말해주고 싶어할 것이다. 지금의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처럼.
나는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 결혼할 때, 전문의가 되었을 때, 첫 아이를 만났을 때, 그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등등의 상황에서 아빠에게서 어떤 얘기를 들을 수 있었을까
-----
우리 아빠는 뭐가 그리 급했는지 그렇게나 화목했던 가족을 두고 내가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먼저 저기 멀리 소풍을 떠났다.
지인들과 술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걸어오시던 길에 교통사고가 나버렸다.
사고의 규모가 꽤 커서 CPR을 2시간을 넘게 했고, 그걸 또 살아남으셨고, 중환자실에서 2개월이 넘게 누워있었다.
결국 그 해 설날을 며칠 앞두고, 가족들이 우연찮게 고향에 다 모였을 때를 맞추어 하늘로 올라가셨다.
2시간의 CRP 이후에 심박동이 돌아왔다는 것도 신기하고 놀라운데,
가족들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할 수 있게끔 두 달동안 버텨주신것도 대단했다.
장례식과 관련된 여러 장면들을 잊지 못하지만, 특히 그때의 내가 아빠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상주였기에 운구차를 타고있었고, 병원에서 나온 아빠가 장례식장으로 가던 마지막 길에 일부러 우리 집을 지나가고 있었다.
다른 도로에서보다도 집 앞에서는 매우 느리게,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원래라면 걸어서 돌아왔어야 했던 곳이었기에 그랬나보다.
"아빠, 잠시 놀러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나도 길었네요. 고생하셨어요"
내가 어쩌다 그리 또렷하게 아빠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 생각났는지도 모를일이다.
중환자실에 누워계시는 동안, 면회시간에도 아빠 귓가에 무언가 말은 했었지만, 말문이 막혀 제대로 입을 떼지도 못했었기에.
어릴 적 아빠 손 잡고 집으로 돌아오던 나는 항상 즐거웠었는데,
이번에도 같이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지만 이게 마지막인거니까.
---
장례식도 마치고, 나는 남은 대학생활을 마치고, 졸업과 동시에 의사가 되어 대형병원에서 인턴/전공의를 보냈다.
죽음을 문턱이 둔 수많은 환자들을 만났고, 많은 얘기들을 했었다. 면회를 오는 가족들의 모습도 다양했고, 가족들과도 얘기 할 일이 많았다.
스틱스 강 너머로 발가락 닿을 뻔 했다가 다시 생으로 돌아와 건강해진 분들도 많았다.
하지만 더 기억에 남는건 내가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아등바등 했으나 결국 중환자실이 그 분의 생애 마지막 장소였던 그런 환자들이 더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아무리 초짜 의사라도, 감이란게 있는 법이라, 곧 하늘나라 가실 것 같은 환자의 보호자분들께는 미리 귀띔해두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나의 아빠와의 기억을 되살려, 보호자들에게 어떤 심경인지 알고 있으니, 환자에게, 아니 가족에게 어떤 이야기를 서로 하면 좋을지 허접하지만 그래도 나름 최선을 다해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그 조언이란게 별거 아니었다. 평소에 해주고 싶었던 말을 한 번 더 해주고, 나중에라도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꺼내보시라고.
사랑한다고, 고마웠다고 말해주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환자의 의식이 없어도 그래도 듣고있을테니, 꼭 말하시라고.
머뭇거리게 될 거 다 알지만, 마지막일테니 꼭 용기를 내시라고.
----
지금은 지역사람들 아픈데 긁어주는 동네병원 의사가 되었다.
대학병원 시절 숱하게 보았던 중환자는 우리병원에 올 리가 없다. 그래서 그때 그 조언들은 하지 않게 된 지 오래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보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아빠가 누워있던 중환자실의 모습은 꽤 자주 생각난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아빠가 의식을 차리고 일어나면 나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지 상상해본다.
지금의 나는 아빠에게 물어보고싶은 질문들이 참 많다.
첫 아이를 키울 때의 마음가짐이라던가, 가족을 화목하게 만드는 방법이라던가.
아니면 그냥 당구 잘 치는 법이라던가, 요즘 나온 FIFA 게임은 옛날이랑 달라서 아빠 이길 수 있다고 말한다던가.
(앗 근데 FIFA 게임은 사라졌잖아? 이제 FC인데!)
아빠가 만약, 미래의 큰아들에게 영상편지를 남길 수 있었다면
그러면 어떤 내용을 담아서 나에게 전해줬을까.
내가 우리 아빠의 나이와 같아지면 그땐 더 잘 상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웹툰을 보다 생각난 의식의 흐름이지만 남겨보고 싶었다.
아빠! 나도 이제 다 큰 어른이 되었어요! 아이도 둘이나 생겼어요!
좀 오래 기다려주십쇼. 나중에 하늘에서 봅시다. 진짜 좀 오래 기다려야될겁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