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보니 벌써 4시다. 숙소에 돌아왔을 때가 2시반이었고, 편히 쉬면서 3시에 발표된 도쿄돔 좌석을 확인하고 공카에서 이런저런 반응을 보다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나갔다. 도쿄돔 좌석이 애니패스에 나타난 순간, 공카 반응이 매우 흥미로웠다. 도쿄돔 좌석이 어디에요라는 일반적인 질문부터 이 좌석 별로일까요, 어떤 의미인지 잘 이해가 안간다는 등 여러 반응으로 가득했다. 한국에서도 많은 스위프티들이 도쿄돔에 왔으니 이런 반응이 나온다는 건 자연스러웠다.
몸을 최고의 컨디션으로 만들었으니 이제 콘서트를 즐기러 가야지. 원래 계획은 지하철을 타고 미타선의 스이도바시역에서 내리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그렇게 가려니 귀차니즘 발동하여 호텔에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도쿄돔에 가까워질수록 창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코스튬이 점차 변하는게 보였다. 테일러와 함께 하고 싶어, 테일러의 시간을 즐기고 싶은 것만으로도 즐거워하는 스위프트의 모습을 보니 나도 가슴이 점차 두근두근거렸다.
에라스 투어의 2023년 마지막 콘서트가 끝나고, 11월부터 1월까지 약 3개월동안 테일러 스위프트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먼저 타임지가 선정한 '2023년 올해의 인물'이 되어 타임지 커버를 장식하였다. 2017년에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긴 당시에는 5명의 다른 여성들과 공동 선정이 된 것이었고, 자신의 본업이 아닌 다른 활동이 선정 배경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연예인 최초로 자신의 본업으로 되었기에 그 의미가 더욱 컸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2024년 에라스 투어의 재개를 앞두고 열린 그래미 시상식에서 역사상 최초로 4번째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다. 그전까지는 시상식 최초로 올해의 앨범상을 세 번 수상한 역사상 네 번째 가수이자 최초의 여가수 기록을 가졌는데 스스로가 자신의 기록을 갱신하며 음악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만들었다. 어떤 의미냐면 불멸의 아티스트라 할 수 있는 스티비 원더, 프랭크 시나트라, 폴 사이먼도 3번밖에 하지 못한 올해의 앨범상에 그녀는 '1'을 더했다는 것이다. 앨범이 출시될 때마다 그녀는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상업적으로도 음악성으로도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사로 잡는 기염을 선보였고 이번 수상을 한 앨범 앨범은 그 정점에 있는 앨범이었으니 그녀의 수상에는 전혀 이견이 없었다고 본다.
이번 그래미 시상식에서 그녀는 자신의 정규 11집 앨범 의 발매 예고를 깜짝 발표하였다. 마치 정규 10집 앨범 의 발매 예고를 MTV VMA에서 Video of the Year를 받으며 최초로 깜짝 발표했던 것과 비슷했다. 테일러의 수상에 기뻐하고 있던 나를 비롯한 스위프티들은 그녀의 깜짝 발표에 기절초풍을 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2022년 10월에 앨범이 발매되고, 2023년 3월에 에라스 투어가 시작했으니 따지고 보면 1년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투어를 진행하면서 앨범 제작을 했다는 것이다. 이번 앨범 수록곡이 31곡이니, 소처럼 일한다라는 말이 무엇인지 테일러를 통해 증명이 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마지막으로 테일러의 새로운 남자친구인 '트레비스 켈시'가 뛰고 있는 캔자스 시티 치프스가 슈퍼볼에 진출을 확정하였다. 그때부터 미국 언론들은 테일러가 과연 도쿄 공연을 끝내고 슈퍼볼이 열리는 라스베가스에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내용을 놓고 주요 뉴스로 다뤘다. 메이저 언론들 이외에도 유튜버, 커뮤니티 등에서도 많은 언급이 있을 정도로 캔사스시티 치프스가 슈퍼볼에 진출했다는 것보다 테일러의 이야기가 더욱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에 대해 주미 일본 대사관은 공식 트위터를 통해 공식 성명을 발표할 정도였다. 간략히 말하자면 12시간의 비행 시간과 17시간의 시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있게 말하는데, 슈퍼볼이 시작하기 전에 라스베가스에 도착할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센스있게 Speak Now, Fearless, Red를 사용한 것은 좋았다지. 한 나라의 대사관이 움직일 정도이니 테일러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믿겨지지가 않을 정도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도쿄돔 시티는 이미 스위프티들로 가득했다. 형형색색의 코스튬을 입고 돌아다니는 그대들을 보면서 역사적인 현장에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도쿄를 가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반신반의했는데, 확고하게 결정을 내려서 도쿄에 온게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결정을 한 나를 정말로 칭찬하고 싶다. 하하하하하. 굿즈를 살까도 했지만, 대기에만 거의 1시간 30분 가까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깔끔하게 포기했다. 굿즈 사려고 했다간 공연을 제대로 보지 못할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쿄돔 앞은 이미 축제 현장이었다. 표현하자면 전세계 스위프티들의 5년만의 정모라고 할 수 있을거 같다. 아시아의 스위프티들은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도쿄를 왔야했었고 (나를 포함해서), 미국을 비롯해서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등 서구권 스위프티들도 도쿄로 몰려들었다고 하니 뉴스로만 보았던 에라스 투어의 파급력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처음 보았을 뿐인데 테일러 스위프트라는 공통점 하나만으로 친해질 수 있었던 곳이 여기지 않았나 싶었다. 서로 말도 통하지 않지만 가까이 가서 '우정 팔찌'를 교환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감정을 느낀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었다. 지구 평화가 여기서 이루어지는구나. 정말 테일러 스위프트는 우주 대통령이라는게 느껴진다.
공카에서 만난 몇몇 한국 스위프티들을 공연 시작 전에 만났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낯선 느낌은 전혀 없고 오랜만에 본 친구처럼 '우정 팔찌'를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교환하고, 테일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고, 정신없이 이런저런 잡담을 하다보니 공연은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마치 공연 중인 것처럼 텐션은 매우 높아졌다. 빨리 공연을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공연까지는 이제 1시간 남짓 남았다. 공카분들과는 재미있게 즐기라고 서로 인사를 한 뒤, 입장 게이트로 이동했다. 보안이 까다로울 줄 알았는데 생각한 것보다는 그렇지 않았다. 애니패스 앱을 켜서 QR 코드로 본인 확인을 한 뒤, 별도의 짐이 있다면 따로 검사하는 것 이외에는 입장의 난이도는 어렵지 않았다. 드디어 도쿄돔에 입성이구나!!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홈구장이지만, 나에게는 테일러와 함께하는 공간이다.
드디어 공연장에 들어왔다. 벌써 자리는 많이 차여 있었다. 저 멀리 VIP석도 사람들로 바글바글. 처음에는 S석이라 시야제한석일까봐 걱정이 앞섰는데, 그렇게 나쁜 자리는 아니다. 아주 또렷하게 테일러를 보는 것은 못하지만 공연 무대를 넓게 볼 수 있으니 이거라도 만족할 따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VIP 구역에 있는 사람들이 부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욕심을 조금만 더 내볼껄. 이리저리 사진을 찍고, 계속 떨리는 마음으로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필시 나 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닐까.
6시가 가까워지자, 대형 스크린에 보여지고 있는 시계의 숫자가 줄어들었고 6시가 되는 순간 공연장의 모든 빛이 꺼지더니 스크린이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Miss Americana' 음악이 흘리면서 댄서들이 화려하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왜 비명을 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좋아서 그런거 같았다. 그리고 댄서들 가운데서 테일러가 등장하는 순간, 도쿄돔은 환호, 감탄, 기쁨의 소리로 가득찼다. 그리고 대망의 'Cruel Summer'이 흘러나오는 순간 또 다른 비명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영화로 이미 보고 와서 기분이 덜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냥 좋아서 괴물 같은 내 목소리지만 테일러가 부를 때 따라 불렀다.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인데 공연장은 이미 절정의 순간이었다. "Hello, Tokyo!"라고 말할 때는 도쿄돔 무너지는 줄 알았다.
20대 때는 수많은 공연을 다녔지만 나이가 들다보니 이러한 공연을 가는 것도 낯설었다. 하지만 큰 마음을 먹고 여기에 오니 정말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마치 자신의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공연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있으면 꼭 가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열심히 공연하는 테일러를 보며 내 생애 언제 이런 공연을 다시 갈 수 있고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테일러의 체력이 대단하고, 자신의 무대에 매우 열정적인 모습을 보며 테일러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에 눈물이 흘렀다.우리의 윗세대가 비틀즈, 마이클 잭슨의 시대를 살았더라면 나는 테일러의 시대를 경험하고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앞으로 이런 기회는 다시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정말 잘 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티켓 가격도 전혀 아깝지도 않았고 그 이상의 만족을 얻었으니까 뭐가 부족하랴. 데뷔 앨범부터 최신 앨범까지 10개의 시대를 관통하며 같이 테일러의 팬으로서 있었구나라고 새삼 추억이 소록소록 들었다. 나 정말 여기 온거 잘한거 같아, 스스로에게 칭찬해줘야지.
마지막 곡 'Karma'가 끝나며 컨페티가 휘날리는데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3시간이 짧게만 느껴졌다. 더 해줘도 좋은데, 이대로 보내기 아쉬울 정도였다. 괜히 하루 공연만 티켓을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카에서 4일 공연 내내 간다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나도 그럴게 할 걸. 아쉽다. 내 인생 언제 다시 테일러의 콘서트를 갈 수 있는 순간이 다시 올까. 앞으로 몇 달간은 오늘 하루의 추억으로 버티고 오늘을 기억하고 힘을 내면서 살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굿즈를 아니 살 수 없었다. 도쿄돔에서 빠져 나오는 사람들, 굿즈를 사기 위해 줄서는 사람들, 도쿄돔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 등이 한꺼번에 모이니 정신이 없었다. 일반 머챈을 사기에는 긴 줄을 기다리는게 자신이 없어서 (이때 어느 정도 체력이 망가진 거 같은 느낌) 타워레코드 굿즈라도 사야지하고 줄을 섰다. 그나마 짧은 줄이었다. 15분쯤 줄을 서서 기다리니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뭘 살까 고민을 하는데 뒤에서 사람들이 기다리니 얼른 빨리 골라야했다. 그래서 결국 고른것은 'Midnights' 앨범 LP 2장! 어차피 살거, 여기서 사는게 낫겠지.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도쿄 공연이 끝나고 몇일 뒤에 나온 일본 뉴스를 보니, 약 3,000억원에 가까운 경제효과가 4일간 발생했다고 한다. 전년도 동기간 비교해서 22만명의 방문객이 증가를 했고, 도쿄도 한정으로 세금이 200억 가까이 추가로 증가했다는 것은 덤이고. 이러니 각 나라 정치인들이 자기 나라에서 공연을 해달라고 요청하는게 십분 이해가 갔다. 나같아도 그럴 듯.
정신 없이 갑작스럽게 온 도쿄였지만 정말정 단 한톨의 먼지만큼의 후회도 들지 않은 공연이었다. 이제 5월부터 유럽 공연이 시작되는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야지. 내한도 해줬으면 좋겠다. 몇배의 가격을 내더라도 후회하지 않을테니 제발제발 꼭! 공연의 여운에 빠져서, 행복의 극치를 느껴서 도쿄에서의 두번째 밤은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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