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는 없지만 있을 수도 있으니(?) 스포에 예민하신 분은 주의를 요합니다.
1. 왜 이 영화냐?
[똥에 관한 영화이고 여기는 피지알이기 때문입니다]오랜 시간 쌓인 정과 의리를 무시할 순 없죠.
직접 보지는 않더라도 이런 게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똥이 주인공인 영화가 인류 역사에 등장했는데 피지알에는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햇반각입니다.
비지찌개와 카레라이스가 떠오르고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단종된 cgv잡채밥이 생각났습니다. 입맛이 도네요.
(사진: k밥심! cgv잡채밥 현재 팔지 않음)
혹자는 이렇게 물을지 모릅니다.
영화에 똥이 나와봤자 얼마나 나오겠어?
이건 확실히 답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기대 이상 혹은 최소 기대만큼은 나올 거예요. 똥이요.
그래서 영화는 투자자를 찾는 것부터 힘이 들었다고 합니다.
투자자: 어떤 영화죠?
제작자: (땀을 닦으며) 똥이 주제인 영화입니다. 그리고... (환경과 순환 경제가 어떻고)
투자자: 사요나라
제 상상이지만 대충 이런 시나리오였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자세한 이야긴 아래서 해보죠.
2. 이 영화의 훌륭한 점
아무튼 그래서 제작 초기엔 사비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영화는 처음엔 15분 길이의 단편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개봉 버전에선 영화의 뒷부분이고, 상대적으로 똥이 덜 나옵니다.
이걸로 투자금을 모으기 위해 홍보했다고 하네요.
똥이 덜 나오는 부분으로 투자자를 찾고 그 뒤에
똥이 대량으로 나오는 앞부분을 만들었습니다. 괜찮은 전략 아닙니까?
9드론 할 것처럼 해놓고 몰래 해처리 펼친 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속이진 않았겠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해둡시다.
팩트보단 똥이 중요하니까요. (똥이 덜 나오는 후반부 15분을 먼저 찍고 홍보한 건 맞음)
겨우겨우 기대하지도 않던 곳에서 투자를 받았지만
완성 직전까지도 배급사가 없었다고 하네요.
똥이 좀, 많이 나온다고. 너무하네요.
부자들도 똥은 다 쌀 텐데.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쿠로키 하루 등 주연 배우들도 노개런티로 출연한 모양입니다.
팩트체크는 안 했지만 똥 앞에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똥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모인 열정.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이 똥.
[이것만으로 훌륭한 영화입니다. 반박시 그래서 님은 똥 안 쌉니까?]3. 똥이 주연이라고 영화도 똥일까?
23년 키네마준보 일본영화 1위
(똥 영화로 키네마준보 1위 출처:나무위키)
똥 영화로 역사와 전통의 키네마준보 1위라니 이건 업적 아닐까요.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인정받은 괴물, 고지라, 퍼펙트데이즈를 누르고 똥 영화가 1위라니요.
뭘 좀 안다는 생각이 드네요.
조금 덧붙이자면 아무래도 외국인보단 일본 고인물들이 더 좋아할 영화긴 합니다.
오즈 야스지로 같은 과거 일본 영화가 떠오르고, 흑백 화면의 아름다운 정취가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이런 쪽에 흥미가 없으면 매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야기만으로 충분히 매력이 있는 영화긴 합니다만.
흑백 영화지만 컬러 화면도 짧게 있습니다.
덕분에 똥 칼라도 잠깐이지만 볼 수 있습니다. 훌륭합니다.
감독은 똥 때문에 흑백으로 찍은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만
나중에 똥 샷을 보면서 흑백으로 찍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답니다.
관객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그런데 지금 떠오른 생각은 풀컬러도 나름 괜찮았을지도요.
재작년 키네마준보 1위였던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과 비교하면
흑백 영화긴 해도 청춘 로맨스에 유머도 품고 있는 이쪽이 좀 더 대중적이지 않나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역시 ‘똥’ 때문에 진입장벽이 있는 영화입니다.
매일 엄청난 양의 똥이 생산됩니다만
큰 스크린으로 똥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으니까요.
조금 반성이 필요한 부분 같습니다. (아님)
곧 개봉 예정인 여기는 아미코도 그렇고 플랜75도 그렇고
불편한 소재를 다룬 일본 영화들이 극장에 걸려 있군요.
하지만 이 영화는 정말 똥 말고는 불편한 게 없습니다.
청춘 로맨스 코미디 영화입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4. 소박한 이야기가 주는 매력
스케일이 큰 영화가 주는 재미도 좋지만
소소한 이야기가 주는 매력도 있습니다.
간결하고 여백의 미가 있고 정다운 공감이 있고요.
이 영화는 15분 찍고 돈 모으고 (똥 때문에) 15분 찍고 돈 모으고 해서
단편 영화 모음 같기도 하고 고전 무대극 느낌도 납니다.
오즈야스지로 영화에 간판이 먼저 나오듯 작은 세트에서 1장=1무대 이런 식으로 흘러갑니다.
시시하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만 반대로 고전적인 매력이 있는 영화였습니다.
흑백 화면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봉준호 감독 덕에 용산 4관(구아이맥스관)에서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대형 스크린으로 똥을 본 게 자랑입니다.
해외 영화제에선 아이맥스 관에서 상영된 곳도 있다고 하더군요.
똥을 영화관 스크린으로 볼 기회긴 합니다만 특별히 추천한다기보단
위에서 적었듯 피지알에는 알려야 할 듯했습니다.
독립 예술 영화, 흑백 영화 좋아하는 분들께는 추천드립니다. 배우 팬분들께도.
비위가 좀 약하시다면 식전 식후 텀을 두는 게 좋을지도요.
대사 하나만 소개하자면
어차피 먹으면 곤죽이 되는 것. 음식과 똥은 같다. 똥 같은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