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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12/10 15:37:42
Name 오곡쿠키
Subject [일반] <서울의 봄> : 절반의 성공, 혹은 절반의 실패
약 2주 전에 영화 <서울의 봄>을 감상했습니다. 작품을 꽤 흥미진진하게 보았고, 같이 감상했던 지인들의 반응 또한 호의적이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pgr에도 이 영화에 관한 후기들이 이미 여럿 올라온 것을 보면, 이 작품이 갖는 매력이 상당함을 느낄 수 있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 대한 비판적 논조를 담은 글을 작성해보고자 합니다. 많은 평자들이 이 작품의 성취를 다각도로 조명하고 있는 반면, 단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기 때문입니다.      

두괄식으로 요약하자면, 아래의 글은 <서울의 봄>이 상당한 강점을 지닌, 재미있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역사물로서의 작품성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작품임을 주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당연히(!) 스포일러는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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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택과 집중

 이 영화의 최고의 한 수는 바로 12‧12 군사 쿠데타라는 소재를 선택한 것, 그리고 이 소재를 연출하기 위해 중언부언을 최대한 생략하고 '그 날'에 발생한 사건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10‧26사태 이후 전두환이 군내 실세로 등극하고 반대세력(정승화, 장태완)과 대립각을 세우게 되는 것이 최소한의 배경설명으로서 다뤄지기는 하지만, 이는 '그 날'의 사건을 연출하기 위한 빌드업에 불과하다. 이는 단순히 분량 상으로도 그렇고 전두환이 실권을 잡는 과정을 최소한도로만 묘사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영화는 상당히 빠르게 전두환의 계획 실행 단계로 전개되며, 이 순간부터 반란군 대 진압군 사이의 치열한 속도전과 정보전이 줄곧 이어진다. 수도 서울에서 계엄사령관이 납치되고, 대통령이 사실상 반 쯤 감금되어 협박을 당하고 있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서울 근방의 핵심 병력들을 어떻게 지휘하고 통제할 것인가를 둘러싼 정보‧군사작전이 펼쳐진다. 더불어 영화는 이 과정을 전두환(전두광)과 장태완(이태신)이라는 두 인물의 대립구도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연출한다. 다른 인물들의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이 영화의 주인공이 누구냐를 묻는다면, 아마 누구나 주저 없이 황정민과 정우성을 꼽을 테니까 말이다.

 “그 날”에 있었던 사건의 급박한 전개에 집중하는 이 영화의 선택은 무엇보다 극에 속도감과 몰입감을 부여하는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보인다. 전두광과 이태신 서로가 내뿜는 힘과 욕망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지속하면서 쉴 새 없이 몰아치기 때문에 관객 모두가 그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을 완전히 놓지 않은 채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2. 12‧12, 라는 질문

 그럼에도, 이 영화가 선택과 집중을 통해 몇몇의 장점에 도달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이 지점에서 동시에 다음과 같은 반대 방향의 질문을 제기해보고 싶다. 이 영화가 선택과 집중을 통해 도리어 잃어버리게 된 것, 놓치게 된 것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이 영화는 전두광과 이태신의 중심적 대립구도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치명적인 작품 내적 결함을 안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전두광의 주변 인물들은 모두 지나치게 우유부단하며 평면적인 인물들로 전락한다. 또한 진압군 측 인물들이 상당히 무능하게 그려지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어쨌든 역사적 결과가 그러하니까), 이태신의 고지식함은 지나칠 정도로 과도하게 부각된다. 요컨대 전두광과 이태신의 대결구도를 위해 주변의 인물들이 일종의 기능적 역할만을 수행하는 배경으로 전락해버리고 말거나, 이태신 캐릭터가 지나치게 이질적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더욱 구체적으로 이 영화가 12‧12사태를 재구성하는 태도와 관점이 어떠한지를 논해보자. 가령 이러한 것이다. 출세‧권력욕에 굴종한 노예이자 파렴치한으로서의 악인 전두환과 그를 둘러싼 무리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비합법적‧비민주적으로 권력을 찬탈하려는 것을 소수의 심지가 굳은 군인들이 막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소수의 군인들을 제외하고는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인물들이 군 수뇌부를 구성하고 있었기에 전두환의 쿠데타를 막아낼 수 없었다. 이 영화는 바로 이러한 역사적 관점‧태도를 견지하면서 그 날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것으로 보인다.

 좋다. 언뜻 보기에 이 같은 관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다소 이상해 보인다. 전두환이 정치적 좌우를 가리지 않고 역사의 죄인이라는 평가를 받아 마땅함에는 이견의 여지가 거의 없어 보이고, 실제 12‧12의 전개 과정을 돌이켰을 때 쿠데타를 진압할 수 있었던 결정적 기회와 순간들이 있던 것처럼, 달리 말하면 쿠데타를 막는 세력들이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12‧12라는 역사적 사건을 회고하면서, 나아가 구태여 영화화하면서 맞닥뜨리고 제기하게 되는 ‘역사적 질문’은 전두환을 악마화하고 장태완을 성역화하는 도식적 정리 정도에 머물러도 충분한 것일까? 전두환은 정말이지 한국 현대사에서 ‘악’에 가장 근접한 인물인 것으로 보이고, 장태완이 실제로 자신의 본분을 다한 것은 사실에 가까워 보이므로 그러한 것일까?
  
 우리가 영화를 비롯한 각종 예술을 접할 때 반드시 '윤리', '교훈', '의미' 등을 요구할 필요는 없지만, 그것이 역사물이라면, 심지어 하물며 12‧12같은 중요한 현대사적 사건을 다루는 것이라면 조금 달리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가령 예술의 자율성을 옹호하는 그 어떤 논거와 테제를 동원하더라도 이 영화 <서울의 봄>을 정치적 맥락으로부터 탈각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는 거의 모든 관객이 좌우를 가리지 않고 전두환이라는 인물을 ‘악’으로 사전 규정한다고 해서, 이 영화가 탈정치‧탈맥락화된 영화라는 주장이 타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매우 정치적인 영화이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10‧26사태 이후 ‘서울의 봄’이 도래하기를 열망했던 민주적 시민의 꿈을 공권력을 동원하여 짓밟고 찬탈하는 결과를 낳은 사건, 바로 12‧12 군사 쿠데타를 다시금 직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현실의 역사’를 상기하고 되묻게 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 영화는 분명, 가령 대체역사물로서 강한 과장과 풍자를 허용하고 활용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지 않고, 굉장히 현실적이면서 진중하게 역사적 사건에 대한 재구성의 렌즈를 들이대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영화가 '가벼운' 자세로 12‧12를 풍자적으로 재구성하려는 대체역사물이 아니라 사뭇 진지한 태도로 그날의 사태에 접근하려는 영화라고 본다면, 이 영화가 도달할 수 있었던 최고의 예술적 성취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 날"의 쿠데타가 어떻게, 안타깝게도, 정말이지 가능했는가를 두텁고도 성찰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일테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전두환을 훌륭하게 악마화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히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12‧12군사 쿠데타의 사건적 성공은 결코 전두환이라는 악의 화신 한 명의 존재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기나긴 냉전으로 인한 군사주의적 전체주의와 반공주의가 지배하는 시대의 분위기가 있고, 그러한 시대적 맥락 하에서 출세와 권력을 좇았던 '엘리트'들의 욕망과 담합이 존재하고 있다.  12‧12의 사건적 성공을 최종적으로 승인하는 것은 전두환의 악마성이라기보다, 시대와 시스템과 욕망의 네트워크가 만들어 내는 두렵고도 강력한 힘의 작용이다. 

 민주적 헌법을 근간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조직적 군대가 어떻게 12‧12 같은 비상식적인 사태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인간의 욕망과 시대와 시스템이 얽혀들어가는 과정으로서 재구성하는 것에 전두환을 악마화하고 그 주변 인물들을 단순화‧도구화하는 것이 기여하는 바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 단순화의 끝에 전두환이라는 악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도리어 공허한 결론으로 우리를 이끌 뿐이다. 전두환은 ‘악’인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토록 새삼 당연한 사실을 재확인하는 것은 과연 어떠한 정치적 함의를 가지는가? 과감하게 주장해보자면, 아마 거의 아무런 함의도 지닐 수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다행스럽게도 정치적으로 최악의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최선의 영화 또한 아니며, 훌륭한 영화라고도 말하기 어려워 보인다.

3. <서울의 봄>이 도달한 성공, 혹은 실패

 <서울의 봄>은 인간들의 욕구와 욕망이 시대와 시스템 속에서 뒤얽혀 들어가며 비릿하고도 씁쓸한 뒷맛의 파열음을 내는 ‘역사적’ 영화로서 완성되지 못한다. 이 영화는 인간의 형상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혹은, 매우 피상적으로만 들여다본다. 이 영화는 12‧12 당일에 발생한 사건의 스피디하고 긴장감 넘치는 전개를 연출하는 것에 관심이 있지, 역사 속에 존재했던 인간들의 복잡미묘하고도 다종다양한 형상을 재발굴하는 것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 마주하게 되는 인물들은 역사적 시선 하에서 재구성되는 인간의 형상이라기보다, 상업영화적 문법의 성립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적 조형물에 가까워 보인다. 악의 화신 전두광의 꽁무니에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전두광이 하사하는 혁명의 전리품을 감사하게 받들고자 하는 놀랍도록 무능하고 평면적인 군 장성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모든 사태가 사실상 종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수방사 대원들을 이끌고 적을 진압해야만 하는 고지식함의 화신인 이태신의 모습에서 우리가 목도하게 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 영화가 '역사적' 영화로서 완성되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연이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역사적 관찰자로서 우리는 12‧12사태를 둘러싸고 존재했던 ‘인간들’의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질문 말이다. 우리는 12‧12의 비극적 성공이 다른 무엇도 아닌 인간들의 욕망이 복잡다기하게 얽혀들어간 것의 결과임을 직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여 12‧12의 사건적 성공에 관하여 우리가 취해야 하는 올바른 거리두기란, 악마적인 것들을 규정하고 범주화하여 그것을 우리(‘나’)와 완벽하게 단절시키는 방식의 거리두기가 아니라, 어쩌면 그 모든 악마적인 것들이 또 다른 인간인 우리에게도 존재할 수 있음을 섬뜩하게 인식하게끔 만드는 방식의 거리두기인 것이 아닐까. 나는 이런 방식이 12‧12라는 하나의 사건이자 시대를 역사적으로 올바르고도 효과적이게 단죄하는 한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영화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었던 주제의식은 단지 '고지식한(동시에 강직한)' 성품의 군인이었던 이태신의 고결성이 아름답지 않냐 하는 차원의 얄팍한 윤리주의 정도에 머무를 뿐이다. 이 영화에서 이태신은 그 이름에서도 암시가 되듯, 마치 최후의 12척에 모든 것을 걸고 조국 조선을 수호하는 명량의 이순신이 20세기의 광화문에서 서울을 수호하는 형태로 재림해 관객을 향해 자신의 (영화적인)존재 의의를 역설하는 기능을 수행할 뿐이다. 어쩌면 그가 행주대교에서 단신으로 2공수 부대를 막던 장면까지도 괜찮았던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 영화에는 전술했던 장점이 존재하고, 이 영화가 오롯이 그 장점을 위해 질주하는 영화인 것으로 본다면 그것이 고지식한 이태신 캐릭터에 충분히 부합하는 연출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말부의 고집스러운 광화문 출동 장면과 그 과정에서 노골적으로 클로즈업되는 이순신의 형상은 역시나 이 영화에 대한 판단에 관하여 고개를 갸우뚱하게끔 만든다. 결국 이 영화는 시종일관 속도감과 몰입감이라는 극적 쾌감을 위해 단순화하기라는 방식을 채택했으면서도, 자기 자신이 12‧12라는 중대사를 다루고 있다는 그 컴플렉스를 결정적으로 의식하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든 장르적 유희를 넘어 의미와 윤리의 차원을 건드려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문제제기에 대해 이태신에게 고결한 순교자의 아우라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대답하는 것. 혹은, 그것으로밖에 대답하지 못하는 것.

 그 날의 사건을 긴박하게 재구성하는 이 영화는 상당한 극적 쾌감을 주는 영화이지만 역사물로서 특정 수준의 미학적 성취에 도달한 수작이라고는 이야기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 영화가 12‧12에 접근하는 태도는 분명 진지하고 무겁지만, 안타깝게도 그 결과물은 다소 얄팍하고 가볍다. <서울의 봄>은 '왜 하필 12‧12인가'에 관한 충분한 대답을 주지 못한다. 이 영화는 어두웠던 한국의 근현대사를 조명하는 영화라기보다, 오히려 임진왜란 때의 이순신을 다루는 영화에 가까워 보인다. 12‧12에 대한 회고에 있어, 광화문에 구태여 이순신을 강림시키는 방식이 꼭 필요했던 것일까? 아이러니컬하게도 <서울의 봄>은 시민의 민주적 열망이 좌초되는 순간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과정을 성찰적으로 직시하게 한다기보다, 종국적으로 이태신이라는 고결한 엘리트의 안타깝고 분한 실패를 위무하게끔 만드는 각색된 위인전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에 머물고 있지 않은가? 영화를 통해 우리가 끝끝내 마주하게 되는 결과물이 기묘하게 각색된 현대판 위인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서울의 봄>은 절반의 실패라는 그 은근히 노정되었던 결과에 도달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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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돌이
23/12/10 15:51
수정 아이콘
쓰실 글에서의 영화에 대한 비평이 인상평에 가까워 제가 공감할 부분이 많지 않네요. 영화는 어제 봤는데 상당히 잘 만든 영화였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23/12/10 16:01
수정 아이콘
a를 다룬 영화에 왜 b는 없냐고 하면, 그건 다른데 가서 찾으랄 수 밖에...
오곡쿠키
23/12/10 16:59
수정 아이콘
'a를 다루지만 b도 꽤 멋지게 다루고 있어'라고 영화가 답하고 있는데, 그게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이 본문의 주장입니다.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어쩔 수 없겠지요.
23/12/10 16:26
수정 아이콘
'12.12라는 대형 사건을 다룬 것 치고는 아쉽다' 의 견지이신 것 같은데...글쎄요 이 영화가 꼭 그런 역사적 사명을 띄어야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지금을 사는 관객들에게 12.12가 뭐 되는것도 아니구요.
오곡쿠키
23/12/10 17:09
수정 아이콘
12•12를 다루는 영화가 꼭 역사적 사명을 가질 필요는 없겠죠. 대신, 역사적 사명이라고 말하니 너무 거창하기는 한데, 무튼 이런 문제의식을 벼린다면 더 '걸작'을 뽑을 수 있는 것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 영화의 '각본'으로서의 완성도는 꽤 훌륭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재밌게 보기도 했지요.

본문은 다소 정치적, 역사적 비평의 성격을 띠는 것이 사실입니다. 대놓고 그렇게 주장하고 있구요. 그런데 여기에 대해 이 영화를 옹호하는 논조로 '영화에 왜 그렇게 많은 걸, 무거운 걸 요구하냐'고 반론을 한다면 적어도 이 영화에 관해선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가 그걸 하려고 하고 있으니 말이지요.
식물영양제
23/12/10 16:43
수정 아이콘
일단은 전두환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첫 영화라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전두환이와 당시 사건을 영화적으로 명확이 구성한 예가 없는데 첫술부터 배부르겠습니까.
오곡쿠키
23/12/10 17:18
수정 아이콘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고, 영화도 잘 뽑혔죠. 여러 긍정적 의미를 가지기도 하겠고요. 대신 영화의 맹점 또한 짚어보고자 하는 글로 받아들이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라그나로크
23/12/10 16:44
수정 아이콘
정치에 물든 시선에서 바라보는 영화 같네요.
한국 독립군 영화를 보고나서 나중에 몇몇 사람은 공산당되는 부분도 그려줘 하는 느낌도 들고요.
오곡쿠키
23/12/10 18:53
수정 아이콘
소재부터가 정치적이고, 감독이 연출하는 방식에서도 그게 드러나니까 말이지요. 이와 달리 보신다면 그 근거를 제시해주시면 됩니다.
23/12/10 17:21
수정 아이콘
원하시는 걸 찍으려면
-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를 찍어야 되거나
- '촬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아예 나오지도 못하게 다 막아주실 정도의 지원은 해주셔야 될 것 같은데요?

현재 시점에서 영화로 가능하지 않은 부분을 얘기하면서 아쉽다고 하시면 맹점짚기가 아니라 흠집내기로밖에 안보입니다.
척척석사
23/12/10 17:22
수정 아이콘
그거는 다큐멘터리 아님? 이라고 하려다가 "새 댓글이 있습니다" 눌렀더니 바로 전에 달렸네용
사람에 따라 상업영화에도 무거운 기준 요구할 수도 있지만 크게 공감을 받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구
오곡쿠키
23/12/10 17:29
수정 아이콘
당연히 12.12와 궤는 조금 다릅니다만,

한국 영화로는 <박하사탕>이, 외국 영화로는 놀런의 <오펜하이머>나 <굿 바이, 레닌>같은 작품이 떠오릅니다. 박하사탕이나 레닌은 역사를 배경으로 하지만 상상력을 훨씬 발휘한 각본이긴 합니다만.. 무튼 영화 구력이 짧아서 더 많은 예시를 들어드리진 못하겠지만, 영화의 러닝타임으로도 본문의 문제의식을 충족시키는 걸작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해주신 답변이야말로 예술의 가능성을 상당히 축소시키는 것이라 보고요.
23/12/11 13:30
수정 아이콘
그러면 물어보겠습니다.
박하사탕, 오펜하이머, 굿 바이, 레닌은 '쉬운 영화'입니까?
사람들이 별 생각 없이 영화관에서 보면 한 방에 등장인물과 사건의 흐름, 개연성이 이해가 되는 영화인가요?
예시로 드신 영화 중 제가 아는 영화는 오펜하이머밖에 없지만 그 영화는 결코 '쉬운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12.12를 좀 더 심도깊게 다루는 영화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 그럴 수 있습니다. 실제로 12.12가 주는 무게감을 상당히 내려놓은 영화고,
그로 인해 스토리의 깊이나 예술적인 부분이 부족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므로 반쯤 실패한 영화고, 특정 수준에 도달한 수작이라고 볼 수 없다 - 이 결론이 나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굉장히 거만한
발언이라 생각합니다. 12.12가 반드시 심각한 역사/예술로 표현되어야 되는 내용도 아니고, 겨우 2시간 반 남짓한 시간에 오롯이
담을 수 있는 사건도 아닙니다. 최소한 이 영화는 시청 난이도 상승을 최소화하는 한도 내에서 필요한 주제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데
확실히 성공한 영화이고, 그 결과가 엄청난 인기로 치환된 것이라고 봅니다.

본인 취향이 '쉽지 않아도 좋으니 문제 의식에 대한 완벽한 설명' 쪽이라면 그러한 주관이 강하게 들어가 있고, 이 영화에 대한 평가가
보편적이지 않고 매우 개인 취향에 편향되어 있음을 뚜렷하게 얘기하시는 게 먼저가 아닐까 합니다.
오곡쿠키
23/12/11 14:35
수정 아이콘
(수정됨) (오타 수정)
비슷한 차원의 문제제기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인데요, Nybbas님의 의견에 답을 드리는 것으로 이런 차원의 문제제기에 관한 답을 마치고자 합니다.

우선 <박하사탕>, <굿 바이 레닌>, <오펜하이머>의 경우 다소 민감한 역사를 소재로 삼는다(5.18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 현대사/ 동서독 통일을 배경으로 한 사회갈등 / 2차 대전과 맨해튼 프로젝트)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 빼면, <서울의 봄>에 관한 본문의 비판을 만족시키는 그런 종류의 적절한 레퍼런스는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군사쿠데타를 다루는 영화를 예시로 들어드리는 것이 맞을텐데, 제 영화 구력이 짧아 어쩔 수 없이 언급한 영화들입니다. 일단 이 점은 인지해 주시고요. 그래서 이 영화들이 '쉬운 영화'냐고 물으신다면, 말씀해주신 "흐름과 개연성" 측면에서 본다면 박하사탕과 굿 바이 레닌은 어려울 것이 전혀 없는 매우 쉬운 영화이고, 오펜하이머는 그렇게 쉽진 않다고 대답을 드리고 싶네요. 오펜하이머의 플롯이 상대적으로 더 복잡합니다. 어디까지나 제가 느낀 바이지만 대다수 평자가 비슷한 이야길 하리라 생각합니다.

"12.12를 좀 더 심도깊게 다루는 영화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 그럴 수 있습니다. 실제로 12.12가 주는 무게감을 상당히 내려놓은 영화고,
그로 인해 스토리의 깊이나 예술적인 부분이 부족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므로 반쯤 실패한 영화고, 특정 수준에 도달한 수작이라고 볼 수 없다 - 이 결론이 나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굉장히 거만한
발언이라 생각합니다. 12.12가 반드시 심각한 역사/예술로 표현되어야 되는 내용도 아니고"

이에 대해 답변을 드리자면 이렇습니다. 본문에서 이미 다 했던 주장이라 똑같다고 느끼실 수 있는데요. 본문 주장을 요약해보겠습니다.

1. <서울의 봄>은 12.12군사 쿠데타를 소재로 다루는 역사 영화이고, 정치 영화이다. 간단하게 소재가 그러하니 그렇다.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 중 하나로 이 소재를 다루는 것, 이 소재를 다루는 작품은 그 자체로 정치적인 함의를 갖는다. 12.12라는 소재를 선택하는 것 자체, 12.12에 대한 건조한 묘사이든 특정한 입장을 강하게 견지하고 있는 재구성이든 그 사건을 영화적으로 연출하는 특정한 선택을 하는 것, 그 모든 것이 정치적인 것과 긴밀한 관련을 맺는다는 것은 동어반복같지만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2. 이 영화가 전술한 것처럼 '정치적'영화인 것이라면, 이 영화가 연출을 통해 제시하게 되는 주제의식이나 함의에 대한 평가는 작품성에 대한 평가와 직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작품을 해석하기로, 이 작품이 제시하는 주제의식이란 12.12의 성공에 분노하며 반란수괴 전두환에 대항했던 장태완의 고결성을 그에게 이순신의 아우라를 부여함으로써 치하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정치적 결론은 다소 공허하거나 부적절하다. '악'의 이해에 대한 진전에 기여하지 못하고, 군인 엘리트에 대한 대안적 이상으로 또 다시 (군사독재 시절의)군인 엘리트를 제시하는 것은 충분히 성찰적이지 못하다.

3. 설령 이 작품이 애초에 깊이보다는 쉬운 이해나 빠른 전개를 주안에 두고 설계된 것이라고 보더라도, 감독 본인이 이태신에게 이순신의 형상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매우 정치적 함의가 강한 메시지를 관객에게 제시하고 있으므로, 이에 관해 냉정한 평가를 내리는 것이 부적절하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이렇게 본다면 '정치물이자 역사물'인 이 영화가 제시하는 정치적 함의가 위에서 언급하였듯 얄팍하며 비성찰적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절반의 실패'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4. 그러니까 저는

"최소한 이 영화는 시청 난이도 상승을 최소화하는 한도 내에서 필요한 주제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데 확실히 성공한 영화" 라는 평을 부정한 적이 단 한번도 없으며, 대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단점이 어떠한 것인지, 왜 그 단점을 언급할 수밖에 없어지는 것인지를 본문부터 모든 댓글에서 근거를 들어 설명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비판하는 다수의 댓글들은 "당신이 요구하는 장점이란 건 애초에 이 영화의 장점을 위해선 달성될 수도 없고, 감독이 의도하지도 않은 것"이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지요. 이런 종류의 비판에 대해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없습니다. 이미 한 이야길 또 하라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5. 평론이라는 행위에 대한 이해의 지반이 서로 다른듯합니다. 모든 평론은 주관적이죠. 다 개인의 의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취향"이 반영되지 않는 평론이란 건 사실상 가능하지 않습니다. 다만 평론은 취향제시나 작품성 평가에 대한 기준과 근거를 제시해야 겠지요. 저는 본문을 통해 이 작품을 평가하게 되는 기준이 왜 그러한지와 그 기준을 바탕으로 작품성을 어떻게 평가하게 되는지의 그 근거를 전부 제시하였습니다. 이 같은 기준을 충족하는 이상(달리 보는 평자가 있다면, 바로 그 부분을 비판하면 됩니다), 평론은 가령 '다수의 취향'을 긍정하고 옹호해야 할 아무런 이유는 없습니다. 근거 제시만 타당하게 할 수 있다면 "개인 취향에 편향"되는 것은 전혀 위험한 일이 아니며, 오히려 창의적이고 독특한 심미안을 기르는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도 있습니다. 다수의 기호에 응답하는 평론이 좋은 평론이 될 수도 있음은 인정하지만, 다수의 기호에 응답하지 못하므로 좋은 평론이 아니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오곡쿠키
23/12/10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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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금지 가처분의 경우 이 영화가 더 노골적으로(제가 서술한 방식으로) '정치적' 이었으면 상영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다..이런 주장으로 들리는데요. 여기에 관해선 제가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말씀하신 바가 타당할 테니까요. 근데 이런 것과 별개로 작품성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따로 시도할 수 있죠. '왜 이렇게 안 만들었냐'가 아니라 '이렇게 안 만들어서 작품성은 다소 떨어지는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니까요.
Eyelight
23/12/1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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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걸 얻으실려면 이거말고 10시간짜리 다큐멘터리를 보셨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이 평면화시킨 인물들을 다루는데도 2.5시간을 숨가쁘게 썼으니 말이에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걸 왜 못했냐고 물으면 할말이 있겠습니까.

지금 얘기하신대로 그 배경인물들이나 맥락을 더 다루면요. 아무리 시간 줘도 누구도 그런 영화 절대 못만듭니다. 디테일은 시간이나 관객과 타협하는거에요. 전두환이 국민학교 때 어떤 학생이었지, 최규하가 유신시대에 뭐했는지 그것까지 관객들이 다 알아야 할까요? 피자집서 왜 치킨무는 없냐는거랑 똑같죠.
오곡쿠키
23/12/1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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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인물들의 전기적 정보를 꼭 시간적으로 길게 제시하지 않더라도 인물들에 충분히 '인간'의 형상을 부여할 수 있죠. 이 영화의 장면만 예시로 들더라도, 처음 전두광의 '인가' 계획이 실패했을 때 주위 장성들의 반응이 어떻게 그려지나요? 뭔가 전두광의 머릿속에 있는 설계도를 철썩 믿고 자신은 그저 기다리고만 있는데(무려 장성이란 사람들이 말이죠), 그게 좀 틀어지는 것 같으니 '이러다 반란수괴범으로 다 몰릴 거야, 어떻게 좀 해봐 두광아' 하는 태도로 징징거리죠. 이 장면을 좀 달리 표현하기 위해 10시간의 러닝타임이 필요했을 것 같진 않습니다.

물론 위처럼 표현해서 얻은 게 있습니다. 전두광 중심의 스피디한 사건 전개가 용이해지죠. 그건 서두에서도 충실히 적시했습니다. 그리고 이 판단이 꼭 나쁜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이 영화는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감독의 정치적•역사적 성찰의 의도를 과감히 드러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는 본문에 서술했고요. 그렇게 본다면, 이 영화는 역사적•정치적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되죠. 감독이 그걸 평가해 달라는데요. 이런 관점으로 보게 되면 위에서 말했던 전두광-똥별들에 관한 묘사가 굉장히 얄팍해진다는 겁니다.
23/12/11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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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장관의 묘사가 특히 얄팍했죠. 그것이 연출의 결과든, 배우의 해석이든요. 다른 배우들까지 다 그렇게 연기했다면 정말 한심한 리버스 반공영화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오히려 현대사이기에 1212를 보는 시각이 지나치게 복합적이거나 시대에 휩쓸린 개인들을 극적인 방식이 아닌 작품성 높은 통찰로 접근하여 선악 가치 판단을 모호하게 그려버리는 방식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님이 기대하는 시선의 영화를 기계적 중립을 통한 실질적 편파, 또는 전두광 일당에 대한 일반 대중의 시선보다 온화한 이해의 관점을 배제한 채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어서요.
오곡쿠키
23/12/11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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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문단에 관하여 말씀드리자면, 확실히 그런 걸 하기 위해서는 예술가로서의 강한 자의식과 용기와 어떤 측면에서의 확신, 자칫 치기나 혈기라고도 볼 수 있을.. 뭐 그런 것이 필요하겠죠. 저도 매우 어려울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의 이덕화씨 때문에(?) 전두환 팬들이 생겼다는 웃픈 일화도 있다고 하니까요. 실제 역사 쪽으로 간다면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 전범재판에 대한 글을 쓰고 나서 겪었던 곤욕같은 것도 있을 테고요. 본문이 이런 고려를 충분히 명시하지 않은 점은 인정합니다.
23/12/10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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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분은 공감합니다만 절반의 성공이라고 하기에는
성공의 비중이 아주 큰 것 같습니다.
23/12/10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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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10부작 다큐멘터리였다면 말씀하신 모든 게 담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별로 재미는 없었을 테죠.
이 작품은 2시간 안팎의 러닝타임으로 관객을 꼬드겨내야 하는 상업영화입니다. 대상을 바라보는 톤을 결정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신중하게 카메라의 거리를 조절해야 합니다.
"쿠데타가 어떻게, 안타깝게도, 정말이지 가능했는가를 두텁고도 성찰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았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작진도 본인들이 엄청난 예술작품을 제작하고 있다거나 대단한 역사적 소명을 담았다 생각하진 않을 겁니다.
그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크게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남녀노소 누구나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는 상업영화를 잘 만들어냈고, 그에 대한 화답으로 '극장의 위기'에도 벌써 700만의 관객이 선택을 하지 않았나 합니다.
오곡쿠키
23/12/10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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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상업영화로서 탁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거의 누구도 이에 대해선 토를 달지 않죠.

본문은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를 깐깐한 관점에서, '미학적'으로 평가해보려는 글이에요. 그리고 이 영화는 정치 영화이기 때문에(라고 저는 보기 때문에) 영화가 도달하는 정치적 함의에 대한 평가가 미학적 평가에 직결된다는 주장이고요. 저야 평론가도 아니고 영화나 미학 쪽을 전공한 것도 아니라 미학적 비평 운운하는 것은 좀스럽고, 댓글에서도 "인상비평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만, 목적이 그러하다는 것이죠. 상업영화라고 해서 그 작품성을 깐깐하게 따져보려는 시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당연히 아닐 테죠.
23/12/1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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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들'의 영화적 성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자못 궁금합니다.
오곡쿠키
23/12/10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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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보지 못했습니다. 블랙코미디를 많이 첨가한 대체역사물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아예 이런 노선으로 가도 걸작이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동일한 10.26을 다룬 <남산의 부장들>은 봤었습니다. 10.26은 애초에 김재규의 내면에 집중하는 방식이 역사물로서도 유효한 방식이라고 생각하고(정말 개인의 우발에 가까우므로), 남부장은 김재규라는 인물에 대한 하나의 해석론으로서 나름 납득할 수 있던 작품으로 기억합니다. '와..' 까지였는지는 모르겠는데 '오..'정도는 되었건 것 같아요.
국수말은나라
23/12/10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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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극적인 장치는 썼겠지만 가장 역사와 유사하게 묘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무엇이 불편하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실제로도 전두환의 권력 집중과 보스기질 때문에 좌천시키려 했고 요소요소 하나회들의 불만을 규합하여 쿠데타를 일으킨건데 어떤점이 불편하셨을까요?
당시 군부 실세들 중 비육사 비하나회 찾다보니 결국 이태신한테 맡긴 것도 팩트이고 휘하 하나회들이 전두광에 붙은것도 팩트구요
심지어 영화는 노태우의 내적갈등까지도 드라마틱하게 잘 표현해 냅니다만 (실제로 노태우가 자결할 생각도 했다고 하죠)
오곡쿠키
23/12/1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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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실제 역사와 얼마나 '흡사'했을지는 전기적 조사가 더 필요한 부분이겠죠. 사료 차원에서 얼마나 질적 자료가 누적되어있는진 모르겠습니다만(전두환의 자서전을 언급하긴 좀..그런 측면이 있죠).

저는 이 영화를 '역사 다큐'가 아니라 '역사 영화'로 보고, 당연히 재구성의 렌즈를 들이대는 것으로 봤습니다. 가령 표면적인 기록들에서 "전두환이 보스였고 하나회를 규합했다" 라는 서술이 포착된다면, 감독은 이 문장 하나를 얼마든지 창작의 차원에서 각색할 수 있겠죠. 이것을 영화로 표현할 때, <서울의 봄>처럼 앞뒤 과정을 최대한 생략하고 전두환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시간 범위를 조금 더 늘려서 하나회라는 조직이 어떻게 군부를 장악하는지를, 거기에 아주 많은 입체적인 인물들이 어떻게 녹아들어가는지를 더 깊게 표현해볼 수 있겠죠. 영화에도 이런 장면이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장면 하나로 퉁치기엔 전두환의 주변 인물들이 하나같이 '똥별'로 표현되지 않습니까? 그것 또한 감독의 관점입니다만 저는 그런 방식이 훌륭한 역사물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23/12/10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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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절반의 실패라 말하는 것은 오만이라고 해야할 것 같은데요
오곡쿠키
23/12/1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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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씀해주시면 저로서는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제가 이 영화의 성취에 대한 평가를 독점할 수 있는 무슨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영화 몇 편 보고 글이나 조금 남겨보는 방구석 글붕이일 뿐이니 제 평에는 솔직히 아무런 권위도 없고요. 뭐 워딩을 세게 가져가기는 했으니, 오만이라면 오만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다만 '절반의 실패'라는 표현은 그래서 가령 이 영화가 10점 만점에 5점짜리 영화가 된다는 의미로 쓴 것은 아님은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아래 충달님이 지적해주셨듯이 제목을 달리 하는 게 더 나았으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마스터충달
23/12/1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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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보니 하시는 말씀이 다 타당하고, 서사 장르를 접하는 식견이 대단한 글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근데 말씀하신 점들을 담아 걸작을 만들면, 대중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을 것 같아요. 저는 서울의 봄이 대중적인 영화라서 오히려 극찬합니다. 살면서 접했던 어떤 12. 12 관련 작품 중 이보다 몰입했던 작품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것도 유튜브와 넷플릭스와 틱톡이 미디어를 장악하는 세상임에도 말이죠.

저는 서울의 봄이 걸작이 아니라 수작이어서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영화의 한계를 명확히 알게 해주신 고마운 글이라고 생긱합니다. 휼륭한 분석과 성찰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오곡쿠키
23/12/1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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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1문단의 내용이 너무 당연히 받아들여지고 있어서 과감하게 축약해도 상관 없을 것이라 봤는데, 상대적으로 이후 문단을 길고 강한 어조로 가져가다보니 1문단이 아예 묻히게 읽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글쓰기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마스터충달
23/12/10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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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절반의 성공/실패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아쉬웠던 점 정도로 표현했으면 어떨까요? 절반이나 실패했다고 말하기엔 그 비중이 너무 크게 다가오는 게 아닐까 싶거든요.

저는 제목을 이렇게 제안드려보고 싶어요. "서울의 봄이 걸작이 되지 못하고 수작에 머문 이유"
오곡쿠키
23/12/10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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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해주신 제목도 글의 주장과 부합하긴 하는데요(저도 이 영화가 뛰어나다고 봅니다). 다만 본문은 분량 측면에서나 논조 측면에서나 영화의 단점에 더 주목하고 있는 것은 맞기 때문에, 그 성격을 반영하는 지금의 제목으로 일단 두려고 합니다. 제목이 다소 유해진다고 하더라도 내용이 유해지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이로 인한 부정적 반응이야 감수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조언 감사드립니다.
23/12/11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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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충달님이 제안한 제목이 더 적절하다고 느껴지는데, 애초에 시도하지 않은 것을 “실패”라 할 수 있는지에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단점”과 “실패”는 표현의 수위 이전에 의미 자체가 상당히 다른 용어니까요.
피우피우
23/12/10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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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글은 잘 읽었고 문제의식에도 어느정도 동의합니다만, 이게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의 문제라고 하면 그건 잘 동의가 안 됩니다.

예를 들면 페이커가 아직 e스포츠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불리기에 부족한 이유라며 히오스 리그에도 참여해서 히오스 살려야했는데 그러지 못했음. 이라고 하는 걸 보는 느낌이랄까요..?
오곡쿠키
23/12/10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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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스포츠로 비유를 하자면.. 음, 페이커 선수는 자타공인 '걸작'이겠죠. 대신 '서울의 봄' 선수(?)는 월즈에 모든 걸 몰빵하기 위해 스프링과 msi, 서머는 등한시하고 워크에씩에도 문제를 드러내지만 '난 스프링 서머도 잘하고 월즈도 잘한다'고 주장을 하는 것이죠. 거기에 대해 "너 월즈만 잘하잖아"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고.. 롤판은 월즈 몰빵이므로 비유가 완전하진 않겠지만 말이에요.
짐바르도
23/12/1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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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걸 선택과 집중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23/12/10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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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역사적 무게에 비해 좀 가볍게 다뤄진 측면이 있지요. 글처럼 영화가 만들어졌다면 정말 완벽한 영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스무스 초콜릿
23/12/10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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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제목대로 잘 읽히네요~
23/12/1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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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켄로치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장르물로서의 성격을 만족시키면서 동시에 시대적 배경과 고민을 잘 녹아냈죠.

비록 감독과 관련된 윤리적인 문제때문에 보는내내 감독의 숨겨진 의도가 다르게 느껴지긴 했어도 로만폴란스키의 장교와 스파이 역시 장르적인 성격과 시대의 고민을 다면적으로 잘녹아냈다고 생각합니다.


잘해냈지만 좋은 소재를 좀 더 잘해냈으면 하는 욕심으로 생각하고 리뷰 잘 읽었습니다. 앞선 언급한 두작품을 보면서 저는 재미를 느꼈지만 보고 나서는 많은 생각에 잠겼거든요.
오곡쿠키
23/12/10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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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더 좋은 레퍼런스들을 제시할 수 있었으면 글의 설득력을 높일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습니다. 특히 12.12의 특성과 유사하게 맞아떨어지는 더 좋은 사례까지 생각하기에는 저에겐 한계가 있네요. 위에 몇몇 작품을 언급하긴 했지만.. 무튼 말씀해주신 작품들은 추후에 꼭 참고해보겠습니다.
주먹쥐고휘둘러
23/12/1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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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로 박정희가 군사반란으로 권력잡고 종신독재까지 잘 닦아 놓은걸 본 군인들이 박정희처럼 "혁명" 함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을 안해봤을까요, 수많은 욕망이 있었지만 박정희 생전엔 반란을 일으킬만큼 행동력있는 나쁜놈이 없었는데 때마침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갑작스레 죽는 혼란한 틈이 생기니까 타이밍 노리고 나온거고 그게 먹혀든거죠.

12. 12. 군사반란은 그냥 박정희가 뿌린 씨앗 때문에 그 당시 한국의 군인들이 군인 본연의 임무가 아니라 정치권력 획득에 더 관심이 컸고 군인이 그래도 엘리트 취급 받던 시대라 가능했던 반란이지 뭐 여기에 어떤 역사적 시대적 고찰과 담론이 들어갈 거리가 별로 없다 봅니다.
오곡쿠키
23/12/10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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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달리 봅니다. 혹은 비슷하게 보더라도 더 할 얘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12. 12. 군사반란은 그냥 박정희가 뿌린 씨앗 때문에 그 당시 한국의 군인들이 군인 본연의 임무가 아니라 정치권력 획득에 더 관심이 컸고 군인이 그래도 엘리트 취급 받던 시대라 가능했던 반란"

이 문장만 분석해 보더라도 창작자는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를 해볼 수 있습니다.

"박정희가 뿌린 씨앗", "군인이 엘리트 취급 받던 시대" -> 장기 독재자 '박정희'라는 인물. 냉전이라는 시대적 맥락 하에서 기회를 잘 포착했던 인물이죠. 조금 달리 틀어보면, 여기에는 냉전과 반공주의,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군사주의, 더 나아가 남성중심주의라는 시대사적 맥락이 있습니다(남자가 군대를 가고 군대가 짱이었으니 말이죠). 시스템적으로는 입결부터 상당했던 육군사관학교가 당연히 자리하고 있을 것이고요.

"그 당시 한국의 군인들" -> 이런 시대사적 맥락을 먹이로 삼아 저 나름의 욕망을 품은 군인들이 득세하죠. 누군가는 반공과 애국의 가치를, 누군가는 출세와 권력을, 누군가는 경제발전시기에 특히 유효하게 작용했던 한국적 가족주의에 추동을 받았겠죠(남자인 내가 성공하고 출세해야 된다). 하나회가 군조직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전두환식 내집단 만들기 방법론이 이런 시대적 상황과 잘 조응했기 때문인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국 전두환과 하나회의 성공은 이런 '맥락들' 속에서, 그리고 이 속에 존재했던 '인간들의 모습' 하에서 반추될 수 있습니다. 그 시절 군인들이 전부 그렇게 무능하고, 퇴행적이고, 악마적인 인간들이어서 하나회와 12.12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테죠. 거기엔 당연히 우연한 박정희의 죽음, 그 기회를 잘 잡았던 전두환의 결단도 작용했겠습니다만, 이와는 별개로 시대에 접근해볼 수 있는 다양한 관점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게 뭐 대단한 "역사적 시대적 고찰과 담론"인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특정 시대에 접근하는 창작자들이 대부분 시도하는 접근이 아닐는지요.
주먹쥐고휘둘러
23/12/10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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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은 혼란한 시기에 자기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기회를 틈타 들고 일어난 나쁜놈이고 12. 12 당시 전두환에 들러붙은 '똥별'들은 5.16 군사반란 당시 반란세력이 그러했듯 그 나쁜놈의 가능성에 베팅해서 성공한건데 여기에 자꾸 시대적 맥락이나 다양한 관점 같은 소리를 하니 저는 이게 인혁당 사건엔 두개의 판결이 있다는 박근혜의 발언이나 80년 광주에 대해 다양한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던 모 만화가의 말과 별 다를게 없이 들립니다.

국가가 혼란한 시기에 군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권력이 교체되는건 그냥 역사적으로 흔한 사건인데 여기에 굳이 시대적 관점을 들이 밀어야 할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오곡쿠키
23/12/10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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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사적 관점을 들먹이면서 전두환과 하나회의 역사적 원죄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서술(전두환과 똥별의 베팅)이 결코 '틀리지' 않습니다. 다만 거기서 더 들어갈 수 있는 것이라 보는 거죠. '악'에 시덥잖은 미화의 가능성을 부여하자는 것이 아니라(적어도 이 영화는 그걸 하진 않으니 정치적으로 최악은 아님이 제 생각입니다), '악'에 대한 더 깊은 이해요. 이런 걸 호들갑이라고 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는 이런 걸 해내는 게 예술의 역할 중 하나라고 보고, 이런 예술의 성취가 삶을 더 깊고 풍요롭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23/12/10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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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경제 관련 내용이 나온다고 모두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고찰하거나 정치적으로 다룰필요가 없듯이 서울의 봄도 상업영화라는 틀안에서 담을 메시지는 감독이 선택했다고 봐야겠죠.

저는 본문 시각이 개인적으로 원하는 최고의 영화상일 순 있지만 꼭 그래야만 좋은 영화거나 성공이라는 건 동의되지않고, 오히려 서울의 봄은 정치적 메시지는 절제하면서 선악을 단순화하고 사건 진행 속도감과 인물들 개성에 관객들이 집중할 수 있게한 게 성공 요소 중 하나라 봅니다.
23/12/1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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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보는 관점에 따라 평가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점 인정하고
79년12월12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돈 주면서 알려줘도 듣기 싫어했을 수백 만의 대중들을 셧업 텍마머니 하게 만들고 재미 챙기고 시간 아깝지 않게 잘 설명한 것 만으로도 이 영화는 마스터피스라 생각해요.
오곡쿠키
23/12/1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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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시는 기준으로는 그렇다는 점에 공감합니다. 본문에서 이 영화가 정치적으로 최악은 아니라고 언급한 것도 전두환과 12.12를 다시금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었는데요, 이걸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내면서 달성하는 데는 성공하였으니 여기에 비중을 둔다면 이 영화는 마스터피스인 것이 맞겠지요.
성야무인
23/12/10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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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남산의 부장들, 헌트, 택시운전사, 1987까지는 봤는데

서울의 봄은 이상하게 끌리지 않더군요.

개인적은 생각은 누가 되었던 지 간에 장성급 군인들의 경우

박정희의 하수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봐서요.

제가 너무 시그컬하게 받아드렸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일간베스트
23/12/10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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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컬이 아니라 시니컬을 아마 의미하신 것이리라
오곡쿠키
23/12/10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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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감사합니다만, 그래도 당시의 군 장성들을 모두 박정희의 하수인으로 보는 것은 어려운 측면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5.16에 동조 가담했던 이들이야 장성이 되었을 확률이 높았을테지만, 어쨌든 서울의 봄은 20년 이후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니 이 때의 군인들을 전부 박정희의 하수인으로 보는 것에는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겠죠. 물론 육사를 나와 군조직 내의 주류가 되는 테크를 탄 것이면 박정희의 군사독재에 사실상 동의한 것이나 다름 없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좀 더 복잡함은 있을 테지요.

다만, 말씀해주신 견해의 연장선상에서도 이 영화가 '이태신'이라는 인물에 이순신의 형상을 부여하고, 이순신 동상을 대놓고 클로즈업 하는 것은 이 영화가 충분히 성찰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장태완이 그 날에 본분을 다 했음을 긍정적으로 인정해주는 것을 넘어, 전두환이라는 독재자에 맞서 '서울의 봄'을 수호하려는 이태신이라는 인물을 대안적 이상으로 제시하는 것은 뭔가 이상합니다. 박정희가 이순신 동상을 만들었다는 얘기는 너무나 유명하기도 하고, 군사독재를 이어나가려는 인물에 대한 대항마로 제시하는 것이 또 다른 엘리트-군인이라는 것은 아이러니컬하죠. 저는 굳이 이태신을 이순신으로 만들어놓지 않았어도 이 영화가 극적으로 충분히 지금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굳이 그걸 하죠. 그건 이 영화가 뭔가 극의 종결지점에서 의미 있고 호소력 있는 메시지를 넣고 싶었기 때문이겠죠. 그걸 국가적으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성웅 이순신의 형상을 이태신에게 부여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는 것이고요. 제가 이 영화를 정치적으로 비판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에요. 이순신은 위대한 영웅이고 장태완이 대단한 것. 맞죠. 그런데 이 영화는 이걸 이상한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갈길이멀다
23/12/10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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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은 그저 악이다“ 는 메세지를 수백만의 가슴 속에 강렬하게 새긴 것만으로 충분한 정치적 함의를 가집니다. 벌써 위기를 느낀 반대세력에서 학생들이 영화를 못보게 하려는 한심한 공작을 벌이고 있는게 그 방증입니다. 지지하는 세력들도 자발적으로 한번 더보기 운동을 벌이고 있고요. 지금의 추세라면 천만관객을 돌파할 것 같은데, 유명 정치인을 철저한 악으로 규정한 이 영화가 이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회자되는 것이야말로 정치 그 자체가 아닐까요? 철저하게 영화적으로만 접근한다면 오곡쿠키님 말씀에 공감가는 부분이 많지만, 정치물로 규정한다면 절반의 성공이 아니라 초대박이라고 봐야죠. 더구나 감독의 제작동기가 이 사건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었기에 그 목적을 충실하게 충족시킨 영화라고 봅니다.
오곡쿠키
23/12/10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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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감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정치적 함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해볼 수도 있겠죠. 다만 제가 가졌던 생각은 전두환에 대한 역사적 평가야 압도적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정도로 이미 내려졌고, 전두환이라는 시대적 '악'을 더욱 다각도로 밝히고 논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는데요. 여기에 대해선 달리 볼 수 있음을 충분히 공감합니다. 제가 확언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겠지요.
갈길이멀다
23/12/10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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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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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곡쿠키
23/12/10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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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합니다. 제 글이 굉장히 오만한 것으로 읽혀지는 것 같은데, 본문의 요구를 잘 하는건 당연히 매우 어렵죠. 전두환과 하나회를 다루려면 특히 그럴 테고요. 대신 그렇기 때문에 그걸 성공하면 정말 걸작이란 평을 들을 수 있는 것일테고요. <서울의 봄>만 해도, 괜히 후반부에 이순신 놀음을 하지만 않았어도 저는 지금보다 더 고평가했을 겁니다.
마샬스피커
23/12/10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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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좋은 글이네요. 영화가 도달했으면 하는 지점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상 이 글이 영화를 보완하고 완성하게끔하는 컨텐츠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직업으로 하시나 싶은. 마스터충달님의 의견도 좋구요. 아무튼 상당히 좋은 평론입니다.
오곡쿠키
23/12/10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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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평 감사합니다. 이 글을 굳이 작성하고 업로드한 것도 영화에 대해 더 다양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 였는데요. 글이 영화를 더 다양한 관점으로 보게 해준다면 저로서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23/12/10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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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적으로 관점은 다양하다 생각하고, 분명 미흡한 점은 있다 생각합니다. 근데 그걸 실패라 말하는 건 분명 오만이라 생각합니다. 왜냐면 이 영화는 그 시절을 보여주려는 영화가 아니라, 그 시절을 보여주는 상업 영화기 때문입니다. 이건 상업 영화로서 완성된 영화에요. 최대한 많은 사람을 보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감독이 하고자 하는 말을, 최대한 많은 사람에 때려박기 위해

이걸 역사 영화로서 실패했다 하는 것은, 오히려 영화에 대한 오만이라 봅니다
오곡쿠키
23/12/10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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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에 관해서는 위에 달아주신 댓글에서 대답을 했으니 이해해주시리라 믿고,

본문 또한 <서울의 봄>이 상업영화로서 성공적임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역사를 다루는 영화로서 말씀하신 바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끔 하려는 영화라고 본다면, '역사 역화로서' 이 영화는 성공적인 것이죠. 이걸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본문의 '역사적'이란 워딩은 조금 다른 의미에서 사용되었지요. 바로 그런 본문의 의미에서 '실패했다' 라고 평하는 것이, 이 영화에 대한 어떤 결례를 저지르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면 아주 똑같은 방식으로 제가 좋아하는 어떤 예술영화를(대신 상업적 성공에는 실패하는)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혹은 '극적 흥미를 불러일으키는데 실패했다'고 표현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상업영화를 상업적인 잣대, 예술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것도 가능하며 예술영화를 그 모두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닉네임을바꾸다
23/12/10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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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근데 사실 예술영화라해도 상업성은 무시할 순 없어도(보는 사람이 없으면 의미가 0)
상업영화에서 솔직히 예술성은 필수적이지 않는 느낌이라...(속된말로 팔리면 그만...)
그렇게 일대일로 대응이 되나 싶은...상업영화에서 예술적인 관점에서 실패했다와 예술영화가 상업적으로 실패했다가 그런식으로 동치가 될 수 있나...
덴드로븀
23/12/1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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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평론가]
​<서울의 봄>★★★☆
야만과 무능의 그 겨울밤에 대한 분노가 시종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펄펄 끓는다.

이동진 평론가의 평가도 그리 높지만은 않은 이유가 오곡쿠키님처럼 판단할 여지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겠죠.

특히 이태신만 너무 노골적으로 이순신을 차용해서 만들면서 제한을 많이 걸어버린게 사실이니까요.

영화는 감독빨이다보니 김성수 감독 자체가 [명작영화] 급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 아니라
아쉬운 점이 사람마다 존재할수밖에 없긴 하다고 봅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23/12/1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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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뭐 3개반 정도면 뭐.. 이동진 님 치고는 잘주신거.. 기준이 .. 3개면 추천 , 4개면 수작, 5개면 마스터피스 뭐 이런걸텐데.. 3개반이면 적당한 평가라고 봐요..
23/12/1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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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식이형이 7점줬으면 뭐.... 꽤 큰 성공일수도 있죠... 저 제한적인 내용을..

평식이형 7점영화들 리스트만 봐도..(?)
유료도로당
23/12/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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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생각보다 이동진 별점이 잘 나왔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우리나라에도 차가운 영화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 사람인데 전형적으로 뜨겁게 (하지만 잘) 만든 영화라, 3개 생각했는데 하나 더 주셨더라고요 크크
23/12/11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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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썼다 지웠는데, 글과 마스터충달님의 댓글에 주로 공감하고, 그 밖의 다른 댓글에 대해서도 공감합니다.

이 영화의 장점은 단점과 연동되는 것 같습니다.
장점을 살리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했는데, 그렇게 된 순간 이미 단점도 정해져 있었다는 느낌이 들구요.
그리고 영화를 더 잘 만들었다면 명작이 되었겠지만 대중적으로 흥행하진 못했을 것 같습니다.

더해서, 사실 말씀하시는 방향의 영화를 그려낼 수 있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예를 들면 반란군 쪽 인물들의 생애에 비해, 진압군 쪽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아무래도 단편적으로 그려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아무래도 서울의 봄이 흥행하고, 모티브가 된 역사의 선악 시비가 너무 뚜렷하다 보니 여러 비평이 묻히는 감도 없지 않아 있는데,
좋은 비평 잘 읽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23/12/1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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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상업영화로서 대단히 영리했고 잘만들었다. 정도겠죠 머. 다큐로서 혹은 명작인가? 라는 관점에서는 글쓴이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이 매우 정확하고 좋은 시각이라고 봅니다.. 다만 상업영화로서 역사적왜곡을 최소화하면서 관객들에게 단순한 재미 이상의 메시지를 줬다는 점에서 매우 휼륭하다고 생각해요. 20대 직원분들과 이야기를 해봤는데, 저희 40대에게 5.16이 그분들께 12.12.인거라… 충분히 어떤 사회적 소명까지 이영화가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 영화보면서 상당히 아쉬웠던점이, 육군참모총장이나 특전사령관.. 그리고 이태신 등이, 무슨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대단한 사명감이 있었던건 아니었는데, 이점을 표현하지 못한점이라고 전 생각했거든요.. 어차피 3사람다 박정희에게 최소한 저항은 하지 않은 사람이고(잘보이면 잘보였지..), 결국 유신의 수호자들이었죠. 결국 '군인은 나라를 지킨다.'라는 소명의식이 강하고 거기에 '육사 하나회 무리들이 설치는 꼴은 봐주기 힘들다.'는 반동의식이 강했다는 정도인건데 그렇다면 어차피 쿠데타를 한 박정희를 따랐다는 점에서 자기모순인점을 벗어날수가 없죠. 다만 이런 내적갈등이나, 여러가지 빌드업을 했으면 상업영화로서의 명쾌함이 사라지면서 흥행하기는 힘들었지 않았을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윗분들 말씀대로, .. '절반'이나 실패했다고 하신점이 너무 센표현인거 같아서... 명작이나 걸작이 아닌이유, 혹은 몇마리 토끼를 놓친 이유, 뭐 이정도로 했으면 훨씬 댓글들이 수무스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오곡쿠키
23/12/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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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감사드립니다. 위에 성야무인님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제기해주셨는데요. 더 자세히 풀어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씀하신 부분들에 대해 다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여러 댓글에서 지적되고 있듯이, "정치적으로 최악은 아니다", "정치적으로 훌륭해보이지 않는다", "절반의 실패" 같은 표현들이 글과 주장에 대한 상당한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을 인지합니다. <서울이 봄>에 관해 '이건 무엇보다도 현실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 정치적 영화'라는 관점 하에서 꽤 신랄하게 쏘아 붙이면서, '단순히 많이 보게 하는 것' 정도의 정치적 의의는 아주 박하게 평가했었는데요. 이 견해는 수정해야겠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가치부여할 수 있다고 말이에요.
바람돌돌이
23/12/11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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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도 이상한데 댓글 덧붙이는건 더 이상하네요. 최악은 아니라는 표현같이 무슨 졸작을 평가하듯이 평을 쓰시네요. 글 제목부터 정말 이상한 영화 감상평입니다. 미슐랭 3스타 아니면 음식은 절반의 실패, 같은건가요?
오곡쿠키
23/12/11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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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실패"라는 표현이 10점 만점에 5점짜리 영화라는 의도로 쓴 것이 아니었음은 위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더불어 바로 윗 댓의 대댓글을 통해, 문제제기 하시는 부분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23/12/1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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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해서 이동진씨 글을 조금 옮겨오자면
"냉철하고 지적인 빅쇼트를 보면서 내내 떨칠 수 없었던 것은 이건 특히 한국영화에서 정말 보기 어려운 종류의 수작이란 생각이었습니다.
... 한국의 극영화들을 부조리하고 부도덕한 시스템을 비판하는 이야기에서조차 그걸 결국 개인의 차원으로 환원해버리는 오류를 범할 때가 많습니다.
... 극에서 다루는 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비판은 그저 싸가지 없고 오만한 개인들의 문제로 축소되어버립니다. 그러니 관객은 자신들과 근본적으로 달라 보이는 그런 악한 캐릭터들을 보며 도덕적 우월감 속에서 마음껏 분노를 터뜨리다가 손쉽게 카타르시스를 얻고서 극장을 나선 후 말끔히 잊기 쉽습니다.
... 네, 적잖은 한국영화들이 지나치게 뜨겁고 감정에만 호소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동진 블로그, 빅쇼트를 보고 (https://blog.naver.com/lifeisntcool/220610698093)

저는 본문의 비판점에, 이동진씨의 의견에 긍정합니다.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그게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걸 비판하는 이유가 될 순 없겠죠. 이미 빅쇼트, 스포트라이트, 우리나라 영화중에서는 1987 같은 훌륭한 예들이 있습니다.

다만,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감정적으로는 저도 납득 했습니다. 영화적 완성도는 아쉬울지언정, 이 정도로 감정을 흔들수 있다면 이것도 나쁘지 않은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났고,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지난 일을 잊었습니다. 전두광에 대한 분노를 다시 한번 상기하고, 영화가 끝나고 나무위키를 검색하고, 영화보다 더 어이없는 현실에 다시 한번 허탈해하는게 감독이 바라는 바였다면, 그건 120% 이상 성공적으로 달성했다고 봐야겠죠.
오곡쿠키
23/12/11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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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이동진 평론가의 평점을 언급해주신 분도 계시는데 그에 관한 간접적인 해명이 될 수 있겠네요. 레퍼런스 감사합니다. 또 마지막 문단의 의견에 다 공감하는데요, 저도 영화 재밌게 보았고, 덕분에 12.12에 관해 더 찾아보고 그랬습니다. 그런 부분들을 본문이 평가절하한 것은 맞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23/12/11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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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쇼트나 국가부도의 날과는 결을 다소 달리하는 역사의 사건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리먼이나 imf 사태는 여러 무능과 부주의와 환경적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건이고 이것을 특정인 책임이나 윤리적 악으로 단순화화하여 귀일시키는 것은 명백한 왜곡입니다.
반면 1212는 특정인의 결단이 실제로 큰 축이고 윤리적으로도 악성이 농후한 사건이죠. 이 두 이슈를 같은 것으로 치부하는 관점은 오히려 물타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같은 살인이라고 해서 김보은 양 사건과 유영철 사건을 같은 관점으로 접근할 수 없는 것처럼요. 최소한 히틀러를 아이히만처럼 다루면 안 되는 것이죠.
23/12/1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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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어릴적입니다. 90년대 초였을겁니다.

아무튼 박정희는 죽었고, 김재규는 어디론가 가는데서 중정과 6번중 어디로 가냐고 묻는데, 뭐하다가 6번으로 간다고 합니다.
어린 마음에 그때는 그런 직제를 인터넷으로 찾아볼 수도 없던 시절이죠. 6번? 6번이 어디야...?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야 6번이 아니고 육본이라는걸 알았습니다. 뭐 비슷하게 아니 별두개인 사람이 왜 별4개한테 막 개기고 그러지? 같은 것도 있었죠.

최근의 마블 영화에서 나오는 공통적 요소가 하나 있습니다. 영화를 보기 위해 선행학습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다, 하나의 영화를 하나의 영화로만 볼 수가 없기 때문에, 디플의 스트리밍을 보던가 요약된 뭔가를 보고 봐야 이해가 가능하거나 영화에 더 몰입할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12.12 관련 페이지를 압축해서 다루는 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꽤 많은 생략은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하지만 이걸 보는 사람들은 왜 저 장면에서 '삽질하는지', '좋은 선택을 날려먹는지'에 대해서 이해하기 굉장히 어려울 수 있는 영화입니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계엄이 뭔지, 정보부는 뭔지, 보안사는 뭔지.... 수경사는 또 뭐고.. 사실 군대용어기도 하지만 시대상이 달라져서 크게 관심 없을 수 있는 단어들입니다. 현대사 관련 내용을 알고 있거나, 직제나 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저게 뭔 말인지 이해를 하죠.

* 추가. 중앙정보부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를 거쳐, 국가정보원(국정원)으로, 보안사령부는 기무사령부를 거쳐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이름조차도 기능은 명맥을 유지하지만 바뀌어 왔으니까요. 현시대에서 국정원이 뭐하는곳인지, 안보지원사령부는 뭐하는 곳인지 모르거나 몰라도 사는데 문제 없는 세상(?) 이기도 합니다.

** 22년 11월에 국군방첩사령부로 이름이 또 바뀌었군요 -_-;


12.12의 구체적 문제를 본다면 계엄사령관인 육군참모총장이 합동수사본부장인 보안사령관에게 합법도 아닌 불법적으로 연행을 당하고, 그 과정에서 불법이 합법화 되는 과정에 대해 적법했는가를 보는게 메인이 될겁니다.

1. 수도경비사령관이 되었는데, 명령이나 지휘권이 해당 상황에서 30, 33경비단 두개의 지휘관이 하나회라서 결국 뭘 하지 못한 문제
2. 특전사령관은 휘하의 공수 4개 여단중 3개의 여단(하나회 출신)에 대한 지휘권을 제대로 발동하지 못한 문제, 이 사건으로 인해 특전사령부 아래에는 직할 특임대가 편성될겁니다 아마.
-> 1, 2를 혹시 몰라 생일집 잔치라는 미션으로 장태완, 정병주, 김진기를 한곳에 모아두고 시간을 끌기도 하죠.
3. 3군사령관 휘하 전투부대(사단급)들에 대해 정확한 명령권을 주지 못하거나 우유부단한 문제, 이건영의 경우는 굉장히 짧게 다뤄지고 끝났죠.
4. 각 부대마다 아저씨지만 슈퍼갑 같은 보안부대가 다 있기 때문에 그에 따른 혼선과 회유로 뭘 못하도록 보안사가 유리하게 끌고간 부분
5. 감청으로 정보전을 하고 있는 보안사가 주도한 일이라는 점. 심지어 박정희 생전 3대 정보조직인 중앙정보부 / 경호실 / 보안사중 살아남은건 보안사 뿐이며, 경호실의 인력 재편등을 했지만 그 제어권은 사실상 전두환의 손에 있었다는 것
6. 전국계엄이 아니기 때문에 계엄사령관 위 국방장관이었고, 국방장관 위 대통령이라는 기이한 상황이었다는 점. 그리고 국방장관이 수습을 못하고 본인 생존만 따지고 있었다는 것.
7. 정승화 총장이 하필 그날(10.26) 궁정동 안가에 있었다는 것, 아예 생짜로 명분도 없었던것도 아니기 때문에...
8. 공수여단도 문제였지만, 전방사단에서 부대를 뒤로 돌린 9사단의 노태우의 미친짓(물론 그 대가를 철저히 돌려받지만)..

2시간 30분 가량의 영화에서 저 모든걸 하나하나 세세하게 다루는데는 한계가 있을 뿐더러 그래서 왜 이게 이모양이 된거야를 보여주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일부 분량은 축소하고 최대한 생략 혹은 다른 형태로 다루게 될 뿐인것이죠.

근데 그시절 군장성의 경우 야심이 있기도 어려웠고(있으면 썰려나감. 당장 후계자 이야기하다 썰려나간 윤필용만 봐도), 분위기가 묘한 상황이었던걸 고려하면 사실 똥별들인거도 맞습니다. 그나마 강경진압 주장한 육본 참모측만 봐도 하....

물론 100% 실제를 다룰 수 없기 때문에 인상적이고 강렬한 부분 중 픽션을 일부 넣습니다.

1. 이태신이 한강다리 위에서 홀로 2공수를 막아세우던 부분. (실제로는 수경사의 탱크전진을 김진영이 막았을겁니다 아마...)
2. 마지막 출동 부분의 시작부터, 이태신의 마지막 대사까지

저 역시 저 2개의 역사에 없는 더하기 덕에 이게 지금 장태완을 너무 올려치기하는 영화 아니냐 라며 살짝 감정적인 거슬림이 없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아 그럴수도 있지가 아니고, 그 상황에서 나름 최선을 다 하려 노력은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쿠데타를 막지 못했다. 정도로 해석하는게 맞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더 열이받죠.

심지어 사실 저시절에 하나회가 뭔지도 모르는게 맞는데, 여기저기서 너도 하나회야 하는데선 어처구니가 없었긴 합니다만, 마찬가지로 영화의 상황을 이해시키는데 차라리 편했던 부분도 있을겁니다. 그시절 육본 지휘부가 하나회를 알 정도면 무능이 아니고 핵유능하다 쯤으로 생각합니다. 기껏해야 전두환과 친한 몇몇 군인놈들 수준으로 인식했겠죠.

실제 장태완의 출동 셋업은 없는병력 끌어모아 가보려 시도하는데 무전으로 보는 즉시 사살하라는 웃지 못할 상황이 나오고, 사실 영화 보던 후반부에 그래서 이제 클라이막스를 어떻게 할래 라고 생각했는데, 나름의 상상력으로 정사가 아닌 허구로 적절하게 끌고 갑니다. 스포를 이미 수도없이 당하고 가서(역사의 정사를 학습했단 이야깁니다), 아니 저기서 뭘 어쩔? 어? 오...? 하.... 하면서 그래 차라리 이게 낫네 할 만한 결말로 끌고는 가줬죠.

그리고 엔딩씬은 설마 그거인가 했던 그거로 가고, 끝납니다.

보고나서 허탈함과 분노감이 제법 있었는데, 이정도면 실패는 없는 성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적어도 10.26부터 12.12까지는 여러 방식으로 접해보고 편제나 직제도 알아보고 갔으니 더 와닿았을 텐데, 그런 부분에 대한 적절한 생략과 스피드웨건만으로도 사람들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 적절한 가지치기를 했다고 보니까요.

사실 말이 쉽지 저시절 군편제나 사항등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봐도 크게 어려움없이들 봤다는 후기만 봐도 굉장히 성공한 영화입니다.
페스티
23/12/1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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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댓글이 공정한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1212가 뭔지도 잘 모르는 젊은 관객들에게 영화는 여러 편의적 설정과 인물상을 도입해서 굉장히 친절하면서도 흡입력있게 몰입을 시켜줍니다. 본문의 기준은 시간 제약이 없는 다큐영화에나 바랄만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오곡쿠키
23/12/11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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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스런 댓글 감사드립니다. 다른 분들도 역사적으로 더 많이 알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조금 반복적으로 드리게 되는 답인 것 같긴 한데, 이 영화가 "선택과 집중"을 잘 했다는 것에는 당연히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문의 경우 그 선택과 집중이 '스피디하고 몰입감 있는 전개'를 가능케 한다는 점만 평가하지, 그것이 그 날의 다소 복잡다단했던 일들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어렵지 않게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도록 한다는 평가를 하고 있진 않지요. 사실 스피디하고 몰입감 있는 전개라는 평이 후자를 이미 내포하는 측면이 있다고 보지만, 어쨌거나 이 부분은 제가 장점에 대해 더 분량을 할애하고 세심히 다뤘으면 당연히 들어가게 될 부분이었을 것입니다. 다만 앞서서 밝혔지만 이 영화가 갖는 이런 긍정적인 측면은 '사람들이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작성시의 생각이었고(여기서도 이미 충달님의 정성들인 리뷰도 있었고요), 그래서 빠르게 다음 절로 치고 나간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결과론적으로 이 리뷰가 전체적으로 균형잡히지 않은 리뷰가 된 것은 당연히 타당한 지적입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23/12/1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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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댓글입니다. 읽고나니 정말 영리하게 대본을 잘 짰다는 생각이 드네요.
23/12/12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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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 허탈함과 분노. 이게 감독의 목적이었으니 200% 성공이죠
유료도로당
23/12/11 10:54
수정 아이콘
저 또한 재밌게 봤지만 동의하는 부분이 많은 비평입니다.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에 대한 비판적 비평에 대해서 인터넷에서는 좀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은것같은데, 그건 원래 별개의 영역이라고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ex.저는 여전히 <오징어게임>을 명작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름부터 노골적으로, 이태신을 너무 이순신에 맞추려고 하다보니 영화가 좀 얄팍해진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봐요. 물론 그렇다고 비추할 영화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상업영화로써 높게 평가할 부분도 많이 있었어요.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좋았고요.
노둣돌
23/12/11 14:03
수정 아이콘
본 글을 한줄로 줄이자면 김어준이 자주 얘기하던,
'내안의 이명박이 대통령 이명박을 만들었다'
가 되네요.

동의합니다.
안철수
23/12/11 14:31
수정 아이콘
이태신을 더 담백하고 사실에 가깝게 그렸으면
평론가 평점 0.5 올라가고 관객 3백만명 잃지 않았을까…
23/12/12 07:42
수정 아이콘
아마추어 평론가(?)들이 자주하는 실수 중에 하나가. 영화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남과 다른 시각'을 보여주는거에 집중하게 되는경우인데요. 본문을 보고 느낀점이 약간 그런게 느껴지는것 같아요.
서지훈'카리스
23/12/12 09:03
수정 아이콘
저도 글쓴분과 비슷한 부분을 느꼈었는데
대중들이 원하는 건 역사적사실이나 복잡한 인물구조, 현실적 가능성 등이 아니더군요
다른 분들이 언급한대로 1000만 돌파는 힘들었을 것 같네요.
다른 사이트에도 비슷한 질문을 던진 분이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양상이었습니다.
23/12/12 10:2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수사학적으로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는 그냥 흔히 쓰는 관용어구라고 생각했는데.

읽는분들중 많은 분들이 실제로 50점을 줬다고 느끼는군요.
23/12/17 14:24
수정 아이콘
(수정됨) 그런 점에서 남한산성은 역사적 캐릭터를 입체적이고 수평적인 관계로 그려내면서 말씀하신 성취를 이뤄냈다고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흥행에 실패한 남한산성에 비춰보듯이 12.12 반란을 더욱이 그렇게 그려주기를 원하는 소비자들은 거의 없었을 겁니다

일언반구 사과도 없이 죽은 전두환이 되려 이런 권선징악 영화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주었고요
그래서 윗 댓글 반응을 보듯이 이 영화에 대해 비판을 하면 심리적 거부감이 먼저 드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만

저도 이순신을 비추면서까지 감독이 단순함에 기대려는 부분은 너무 짜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이 영화는 또 다른 전두광을 만들 수 있는 프로파간다적인 구조를 내포하고 있죠 앞으로도 우리가 경계해야 할

좋은 영화이기보다는 재밌는 영화, 그래서 절반의 성공이지만 뭐 그래도 시간내서 보기에는 후회하지는 않았던 영화였습니다
Arcturus
23/12/17 19:53
수정 아이콘
글쓴분의 평에 동감하기도 하지만 또 현실적으로 힘들다 생각하긴 합니다.

근현대사의 어두운 부분을 다루는만큼 원래 주제가 "재밌게" 보기는 힘든 영화인데
실제 역사의 오롯한 재조명에 공을 들인다면 넷플릭스 10부작 다큐면 모를까
영화를 그렇게 만들면 상업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전두환에게 그 시대의 폐단을 전부 돌리는 평면적인 해석이 그리 마뜩치는 않지만
그렇다고 다면적이고 복잡한 이면을 건드리는 순간 관객의 집중력은 확 떨어지거든요.

마왕 전두광을 막으려했던 용사 이태신의 이야기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인데 굳이?"
라고 싶을 정도로 단순한 플롯입니다만, 반대로 12.12 반란을 상기시키는데는 효과적이었다고 봅니다.

100점을 노린 영화가 70점 정도 거둔거 같아 아쉽다고 생각하시는것 같지만,
전 애초에 70점을 노렸다고 생각해서 성공한 영화인것 같습니다.
오곡쿠키
23/12/17 22:34
수정 아이콘
윗댓의 LCK님도 그렇고, 글이 좀 밀렸는데도 감사하게도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이 계시네요. 다른 분들의 댓글에 하나하나 답을 다 드리지 못하는 것은 일단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무튼, LCK님과 Arcturus님이 남겨주신 의견이 제 의견과 거의 흡사한데요. 애초에 본문은 '현실적 어려움'과 '작품성 평가'는 별개로 상정하고 접근한 글로 다른 분들도 받아들여주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 친절함을 갖춘 글은 전혀 아니었지만, 댓글에서의 의견교환들로 충분히 해소가 되었길 바라고요. 어떻게 읽으셨든 간에 본문을 통해 이 영화에 대한 논의의 폭이 미약하게나마 더 확장될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candymove
23/12/17 23:23
수정 아이콘
오늘에야 영화를 봐서 뒤늦게 본문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본문 내용에 대체로 공감하고, 위 Arcturus 님의 댓글에도 공감합니다.
본문의 감상이 대체로 유효하지만 Arcturus 님께서 지적하신 바와 같이 이는 영화 스스로가 철저하게 의도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게 되는 것은 70점을 노린 그러한 '의도' 자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많은 분들이 상업영화의 속성 내지 한계를 언급하시는데, 저는 이에 대해서는 약간 유보적인 입장입니다. 어느 정도 복잡하고 심층적인 영화의 상업적 가능성이 그 어느 나라보다도 높은 곳이 한국 영화시장 및 한국에서 영화를 소비하는 대중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100점을 노려 100점 짜리 영화를 만들었다면 그 영화는 지금과 유사한 흥행을 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생각합니다(비평적 찬사는 당연한 덤).

역사적 '시기상조'의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지 40여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1212사태를 본문 비평과 같은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다소 '시기상조'인 것은 아닌지, 단순한 선악구도를 넘어선 비평적 태도로 1212사태와 신군부의 등장을 바라볼 것을 요구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아직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은 아닌지의 문제입니다. 이 부분은 뭐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영화를 좋아하고, 또 역사를 좋아하는 저 같은 사람으로서는 그래도 이제는 때가 된 것 아닌가, 아직도 '26년'식의 단순 구도만을 소비해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대체 '때'는 언제 오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시기장소'의 판단은 누가 하는 것일까요. 영화 제작과 유통의 정점에 있는 분들이 계시겠죠. 또 이 영화가 상당한 흥행을 하고 있으니 현시점의 '대중'이 이 영화를 인정한 것 아니냐 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이와는 다른 이야기, 혹시 '때'가 이미 온 것은 아닌지와 같은 이야기를 영화 감상자들은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70점을 노려서 정확하게 70점 짜리를 만들었다는 것은 창작자에 대한 찬사가 될 수도 있지만(이 경지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영화가 대부분이죠) 한편으로는 '과실'이 아니라 '확신범'이라는 점에서 준엄한 비평의 근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다 알면서도' 모종의 노림수 내지 의도를 가지고 고의로 70점 짜리를 만들었다는 것은 어찌보면 100점 짜리를 만드려고 하다가 역량 부족으로 30점 짜리를 만든 경우보다 밉상일 수도 있겠습니다.

본문의 작성자 분이나 많은 댓글 주신 분들의 말씀처럼 이 영화는 영화적으로 상당히 잘 만들었고, 저도 재밌게 봤습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본문과 같은 아쉬움이 더욱 남는 것이겠지요(영화적, 소재적 포텐셜이 아깝게 소비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 한편으로는 본문에서 지적한 포인트들이 지나치게 노골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영화를 감상하는 데에 방해가 덜 되는 느낌도 있었습니다(실제 역사적 사실과의 거리두기). 70점 짜리를 만들겠다는 '의도'에 대한 비평은 별론으로 하고 70 점짜리를 의도해서 기어이 정확하게 70점 짜리 영화를 훌륭하게 만들어내었습니다. 다만 저는 비평적 관점에서는 '70점을 의도해서 잘 만들었다 짝짝짝'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소 의문이라, 굳이 글을 쓰면서 해야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고, 무언가 의미 있는 감상평을 쓴다면 본문과 같은 방식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본문에 대하여 비판적인 몇몇 댓글은 잘 공감이 가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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