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3/12/03 19:04:01
Name 후추통
Subject [일반] 피와 살점이 흐르는 땅, 팔레스타인 (10) 자살수
1차 인티파다는 얼핏보면 PLO의 입지를 강화시켜주는 일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1차 인티파다는 PLO에게 절망감만을 안겨주었습니다.

튀니지에서도 이스라엘군의 공습에 얻어맞던 PLO는 가자지구나 웨스트뱅크에 영향력을 행사할 상황도 아니었고, 나무다리 작전 이후에 바그다드에 작전본부를 세웠던 아라파트였지만 인티파다에는 어떠한 영향력도 끼치질 못했습니다. 당시 이란-이라크 전쟁 와중인지라 PLO역시도 전쟁에 간접적으로 휘말려 있었던데다가, PLO가 인티파다를 현장에서 지휘할 책임자로 내정했던 아부 지하드가 튀니스에 있던 자신의 집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는데 이스라엘이 보낸 암살부대에 의해 처형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라파트는 아부 지하드의 죽음을 팔레스타인 현지의 봉기 지도자들과의 연결로를 만들기 위해 그 장례식을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치르게 됩니다만 별 소득이 없었죠. 아라파트와 PLO는 이집트에서도 시리아에서도 요르단에서도 레바논에서도 어떠한 지지기반이나 머물곳을 얻지 못해 점점 코너에 몰리고 있었고, 1차 안티파다 역시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점점 그 행동력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아라파트와 PLO가 당시 기댈수 있는 곳은 딱 하나였습니다. 바로 사담 후세인이 통치중이던 이라크였습니다.

PLO 내부에서도 PLO와 이라크의 협력관계를 결정한 아라파트의 결정에 대해서 찬성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라크 협력 반대파로서 가장 유력했던 사람은 파타와 PLO의 2인자이자 아라파트의 정치파트너이자 지지자였던 살라 칼라프, 속칭 아부 이야드 였습니다. 네 바로 검은 9월단의 창립자로 강하게 의심되던 그 아부 이야드입니다. 아부 이야드는 사담 후세인과 손을 잡는 것은 위험하다고 아라파트를 여러차례 설득합니다. 하지만 아부 이야드의 설득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통할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PLO의 팔레스타인 조직망은 말 그대로 붕괴직전 상황이었고 그렇다고 본인들이 직접 들어가서 인티파다의 불씨를 되살리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했습니다. 따라서 가자-웨스트뱅크-이스라엘에서 많이 멀지 않고 이스라엘의 위협에서 비교적 안전한 땅은 이란과 이라크였고 이중 그나마 상황이 나은 쪽은 이라크였고 당시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자타가 인정하던 국가였기 때문에 군사적 지원도 얻기 쉬웠을거라 판단했던거죠.

어찌되었던 아부 이야드의 이런 반 사담노선을 목격한 사담 후세인은 팔레스타인 저항조직을 장악하고 그 명분을 획득하려는 자신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두고 볼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때맞춰 아부 이야드가 자신의 보좌관 아부 무하마드(본명 파크리 알 오마르)와 함께 암살당합니다. 이야드와 무하마드를 암살한 것은 아부 니달 조직이라고 불리는 아부 니달이 설립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약칭 ANO의 조직원이었습니다. 아부 이야드는 ANO를 CIA에 밀고해 이 조직을 와해 직전까지 몰아붙였는데 이에 열받았던 아부 니달은 이들을 암살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뒤에 이야드에 의해 PLO 장악에 실패한 사담 후세인이 아부 니달에게 사주해 이야드를 암살했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라파트는 이라크의, 특히 사담 후세인의 후원이 끊기는 것을 바라지 않았지만 사담이 PLO를 장악하고 이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양자간 관계를 국가대 무장조직이 아닌 사담-아라파트의 개인관계로 한정 짓습니다. 최대한 궁리해서 나온 최선의 방식이었을 수 있죠. 실제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후에 아라파트는 언론을 통해 사담의 침공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듯한 발언을 자주 했고, 미국의 개입에 관해 내정간섭이라며 비난하는 발언도 자주 했습니다.

이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 물론 미국의 힘은 압도적이긴 하나, 사담이 평소 호언장담했던 "미국인이 5천명 정도 죽거나 다치면 미국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병합을 인정하고 물러날것이다."라는 발언도 어느정도 타당성이 있었거든요. 여기에 당시 이라크군의 재래식 전력이 "겉으로는" 다섯손가락 안에 들었다는 점도 있었고, 미국 역시 분석을 통해 워게임을 돌려 분석한 결과 많은 피해를 낼 것이라는 결과를 받고 부시 대통령 이하 행정부 전원이 멘탈이 붕괴했고 미국 정치권과 언론에서도 군사력 투입보다는 경제재제와 협상 등으로 물러나게 해야한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죠.

하지만 정작 걸프전쟁이 시작되자 이라크는 육해공 상관없이 박살이 나다못해 가루가 되었죠. 당시 미국은 후세인을 축출할수 있었지만 전쟁 목표인 쿠웨이트 해방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쿠웨이트를 이라크에서 해방하자 전쟁을 종료시켰고, 이라크 내에서도 쿠르드족과 시아파들이 봉기를 일으켰고 사담의 주변인들도 사담을 쫓아내거나 죽이려고 했을 정도로 이라크는 말 그대로 가루가 됩니다. 이 와중에 이라크 편에 섰던 아라파트는 엄청난 궁지에 몰리게 됩니다. 그간 아랍국가들, 특히 사우디 아라비아와 아랍에미레이트에게 들어오던 지원금이 걸프전쟁 이후로 뚝 끊겨버림은 물론 그나마 지원 여력이 조금이나마 살아났던 이란은 마침 내전이 난 구 유고슬라비아의 보스니아 지역에 무기 지원을 하고 팔레스타인과 PLO에 관심을 별로 두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당시 쿠웨이트에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원유 채굴 및 관련 업종에서 많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침공하며 PLO에 압력을 가해 이라크의 쿠웨이트"해방"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지지 집회와 시위를 하도록 강요했고 당시 쿠웨이트에서 온갖 잔학한 행위와 압력을 행사하던 이라크 보안군은 이 지지 행위를 거부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구금, 고문, 살해를 자행했고 이를 피해 도피했고, 쿠웨이트가 해방된 이후 이라크에 적극 부역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쿠웨이트 왕가와 국민들의 보복이 두려워 쿠웨이트를 떠납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전까지 쿠웨이트에서 살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약 35만명이 넘었는데 90~91년 동안 이라크 혹은 쿠웨이트 정부에 의해 강제로 쿠웨이트 땅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무려 28만 7천명에 달합니다.

안그래도 당장의 자금줄이 틀어막힌 PLO와 아라파트는 해결책이 필요했습니다. 영국 국가범죄정보국은 93년 보고서를 톨해 PLO는 모든 테러리즘 조직 중 가장 부유한 조직이며 이 부는 무기 거래, 마약 밀매, 돈세탁, 사기등으로 15~20억 달러를 벌어들여 총 자산이 최소 80~100억 달러에 이를것이며 이 모든 자금은 아라파트가 전체적인 맥락을 쥐고 있다고 발표하죠. 하지만 국제 정치적으로 몰릴대로 몰린 PLO 상황에서는 돈만 있다고 해서 모든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지원해줄 국가나 세력이 있는 것이 더 중요했죠. 하지만 이렇게 아랍 내에서도 몰린 상황에서 더 청천벽력같은, 아니 그들의 머리 위로 엄청난 벼락이 떨어집니다.

바로 소비에트 연방 해체였습니다.

이제 결정할 시간이 와 버린 것이었습니다. 끝까지 싸우다가 죽을지, 아니면 화해를 통해 최소한의 생존이라도 할 것인지. 그리고 피는 여전히 더 흘러야만 했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3/12/03 20:22
수정 아이콘
흥미진진하네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23/12/03 20:29
수정 아이콘
여담으로, 본문에 등장하는 아부 니달은 한국과도 악연이 큰 인물이죠. 1986년 김포국제공항 폭탄 테러의 주범으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2002년에 이라크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는데, 공식적으론 자살로 발표되었지만, 모종의 이유로 후세인이 죽였다는 설이 우세합니다.
23/12/04 11:11
수정 아이콘
어렴풋이 알고있던 역사지식에 디테일을 추가하는 것도 재밌군요 크크
한쓰우와와
23/12/22 17:38
수정 아이콘
다음편 주세요. 현기증난단 말이에요.
후추통
23/12/22 17:45
수정 아이콘
죄송합니다 지금 몸이 많이 아파서 ㅠㅠ
한쓰우와와
23/12/22 17:54
수정 아이콘
애고. 농담삼아 단 댓글이었는데. 실제로 몸이 안좋으실줄은 몰랐네요.
날씨도 추운데 잘 추스르시고 오시길 바랍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0410 [일반] 행복은 쾌락인가 [31] realwealth9929 23/12/05 9929 7
100409 [일반] 허수아비 때리기, 선택적 분노 그리고 평행우주(4.추가) [252] 선인장21659 23/12/05 21659 27
100407 [일반] 스위트홈 시즌2 예고편만 보고 거른이유(스포주의) [37] 마트과자9635 23/12/05 9635 4
100401 [일반] 강아지 하네스 제작기 (1) - 불편은 발명의 아버지 [4] 니체6595 23/12/04 6595 4
100400 [일반] 뉴욕타임스 11.26. 일자 기사 번역(군인 보호에 미온적인 미군) 오후2시8357 23/12/04 8357 3
100399 [일반] 그 손가락이 혐오표현이 아닌 이유 [93] 실제상황입니다15945 23/12/04 15945 13
100398 [일반] <괴물> : 그럼에도 불구하고 던지게 되는 질문(스포일러o) [20] 오곡쿠키9166 23/12/04 9166 7
100395 [일반] 달리기 복귀 7개월 러닝화 7켤레 산겸 뛰어본 러닝화 후기.JPG [36] insane11177 23/12/04 11177 5
100394 [일반] 애플워치9 레드 컬러 발표 [22] SAS Tony Parker 11031 23/12/04 11031 1
100393 [일반] 이스라엘 신문사 Haaretz 10월 7일의 진실(아기 참수설) [51] 타카이10961 23/12/04 10961 8
100390 [일반] 피와 살점이 흐르는 땅, 팔레스타인 (10) 자살수 [6] 후추통7229 23/12/03 7229 20
100389 [일반] 서면 NC백화점 내년 5월까지 영업하고 폐점 [30] 알칸타라16159 23/12/03 16159 1
100388 [일반] [팝송] 빅토리아 모네 새 앨범 "JAGUAR II" 김치찌개6215 23/12/03 6215 1
100387 [일반] 커피를 마시면 똥이 마렵다? [36] 피우피우11515 23/12/02 11515 18
100386 [일반] <나폴레옹> - 재현과 재구축 사이에서 길을 잃다.(노스포) [16] aDayInTheLife7229 23/12/02 7229 2
100383 [일반] 리디북스 역대급 이벤트, 2023 메가 마크다운 [37] 렌야11771 23/12/02 11771 2
100382 [일반] [책후기] 그가 돌아왔다, 의학박사 이라부 이치로 [14] v.Serum8426 23/12/02 8426 3
100381 [일반] 구글 픽셀 5년차 사용기(스압, 데이터 주의) [37] 천둥10203 23/12/02 10203 11
100379 [일반] <괴물> -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며 감정적인 영화를 만들기. (스포) [4] aDayInTheLife6386 23/12/02 6386 6
100378 [일반] 유로파의 바다에서 생명체가 발견되면 안 되는 이유 [29] 우주전쟁11546 23/12/01 11546 9
100377 [일반] 나 스스로 명백한 잘못을 행한다고 판단할 알고리즘이 있을까? [21] 칭찬합시다.8070 23/12/01 8070 6
100375 [일반] 플레이리스트 2023 [1] Charli6523 23/12/01 6523 1
100373 [일반] RTX 3060:단종 X. 저렴한 가격으로 AMD RX 6750과 경쟁 [35] SAS Tony Parker 8129 23/12/01 8129 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