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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11/14 19:32:11
Name cheme
Subject [일반] 프로젝트 헤일메리: 하드 SF와 과학적 핍진성의 밸런스 게임
[Disclaimer: 이 서평은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대한 강력한 스포일러를 많이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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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미국의 SF 작가 앤디 위어 (Andy Wier)의 장편 ‘프로젝트 헤일메리 (RHK, 2021)’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앤디 위어가 장편 SF ‘마션 (Martian)’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유명 SF 작가 반열에 올라선 이후에 나온 세 번째 작품이기도 합니다. 앤디 위어의 전작 ‘마션’을 읽어 보시거나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이 작가의 작품의 스타일은 대체적으로 있을법한 과학과 기술을 바탕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럴듯하게 재현하는 플롯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작 '마션'에서는 근 미래 화성 유인 탐사 중 화성에 홀로 버려진 우주인이 그곳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과 도구를 이용하여 결국 살아남고 끝내 화성을 탈출하여 동료 우주인들, 그리고 지구에 있는 수많은 과학자들, 공학자들, 행정가들이 합심하여 지원해 준 도움으로 지구로 무사히 귀환한다는 것이 주요 스토리였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마션의 주인공은 온갖 고생을 하지만 그 역경의 극복 과정들은 모두 그럴듯한 과학적, 기술적 방법으로 해결되는 것처럼 묘사되었습니다. 실제로도 대부분의 설정은 과학적 맥락에서도 큰 무리수가 없어 보이긴 했습니다. 앤디 위어는 마션 이후 '아르테미스'라는 작품을 썼으며 세 번째 작품으로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출판했습니다. 이 작품 역시 과학적, 기술적 방법을 동원하여 어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이 핵심 스토리입니다. 다만 이제 그 위기는 개인의 위기가 아닌 인류 전체의 위기, 그리고 아마도 은하계에 살고 있는 문명 전체로까지 스케일업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기 극복 과정에 도움을 내미는 손길 역시 지구 전체를 넘어 외계 문명까지 확장됩니다. 넓게 보자면 이 후속작은 전작 '마션'을 여러 차원에서 스케일 업한 버전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수많은 과학적, 기술적 장치들이 언급되고 있으며, 일부는 이미 잘 알려진 혹은 존재하는 것, 그리고 일부는 작가가 상상하여 창조한 것들입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전 인류의 위기 상황은 어느 날 그동안 관측되지 않던 적외선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 흔적을 따라가다 보니 태양의 광도가 조금씩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관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알고 보니 이는 ‘아스트로파지(astrophage)’라는 미지의 미생물들이 태양 주변에서 커다란 포위망을 형성하면서 동시에 어마어마한 량의 태양 에너지를 흡수한 것으로 인한 것이었는데, 이들의 흔적은 태양의 스펙트럼을 대부분은 흡수하고 그것을 다시 섭씨 96.415도 정도의 온도를 갖는 중적외선(mid IR)을 방출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를 작품에서는 이 중적외선 흔적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인 페트로바의 이름을 따서 '페트로바 선'이라고 부릅니다.) 아스트로파지 군집체들은 태양과 금성 사이를 왕복하면서 기다란 띠 같이 생긴 페트로바 선 (즉, 중적외선 방출 신호)을 남기는데 이것을 지구에서 관측했고, 지구에서 보낸 금성 탐사선은 이 아스트로파지 샘플을 채취하여 지구로 귀환합니다. 지구에서 분석한 아스트로파지의 생태와 생물학적 특징은 정말 특이했는데, 이들은 이산화탄소를 주된 번식의 재료로 삼되, 생명의 유지는 빛과 열에너지 흡수, 심지어 방사선 흡수로 해결하는 순환 사이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태양계에서 이산화탄소가 가장 풍부한 행성은 금성이므로 아스트로파지는 금성과 태양 사이를 왕복하게 된 셈이죠. 이 아스트로파지의 생애 주기를 최초로 분석하여 발견한 사람은 이 책의 '인간' 주인공 라인랜드 그레이스 박사입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소재를 이야기하라면 당연히 그것은 아스트로파지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작품에서 설정된 아스트로파지의 물성은 정말 괴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사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동시에 정말 놀라운 과학적 설정이기도 하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알려진 그 어떤 생물체도 태양 같은 항성이 내뿜는 광대역 스팩트럼의 전자기파에 실려오는 에너지를 모두 흡수할 정도의 소재로 이루어져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원소로 이루어진 소재든, 각 소재들을 이루는 결정 혹은 분자들은 고유한 유전율 (dielectric constant)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특정한 파장의 전자기파와 물질이 얼마나 잘 반응하는지를 수치화한 일종의 물성입니다. 물질마다 특별히 특정 파장에 더 잘 반응하는 특징을 갖는데, 예를 들어 금속은 자외선과 가시광선 등에서 반응합니다. 지구상 생명체의 주된 구성 성분들은 가시광과 적외선에서 반응을 합니다. 요즘 반도체 핵심 소재가 되고 있는 EUV 리소그래피 (EUV lithographpy) 용 광감응액 (photoresist, PR)은 극자외선 (extreme ultraviolet (EUV)) 대역의 전자기파에 반응합니다. 그렇지만 그 어떤 소재든, 외부에서 들어오는 전자기파에 대해 그 전자기파의 파장과 상관없이 무조건 상호작용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작가가 작품의 첫 부분에 등장시킨 이 충격적인 설정의 외계 미생물은 지금까지 우리가 이해하고 있던 물질의 '유전율'이라는 개념을 아득히 넘어가 버립니다. 전작 마션에 익숙했던 독자들이라면 첫 장면부터 이 아스트로파지라는 것이 사실상 기존의 과학과 작별을 고한 장치라고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스트로파지는 단순히 태양의 에너지를 빼앗아 가버리는 강도처럼만 묘사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스트로파지의 놀라운 특성은 그것이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동시에 다시 저장할 수 있는 일종의 생체 배터리로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아스트로파지는 크기 10 마이크로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미생물이기 때문에 질량은 매우 작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아주 훌륭한 고밀도의 에너지 연료, 즉, 항성 간 우주여행까지도 가능케 할 정도의 풍부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연료로 활용되기도 하죠. 작품의 주인공 그레이스 박사는 이 사실을 지구의 여러 과학자들과 함께 발견합니다. 그리고 사실 그것에서부터 지구로부터 12광년 떨어진 타우 세티라는 외계 항성계로의 편도 여행을 의미하는 '헤일메리 프로젝트'가 시작됩니다.

이 작품에는 여러 흥미로운 과학적 설정들과 함께, 그것의 핍진성을 뒷받침하는 과학기술 이론, 최신 연구 성과들 혹은 가설들이 집약되어 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흑체복사이론 (blackbody radiation theory)'입니다. 흑체복사는 19세기 유럽의 물리학자들의 골머리를 썩게 한 물리학 난제였습니다. 고전 물리학 (즉, 열역학과 뉴턴 역학)에 의하면 뜨거운 물체가 외부로 방출하는 에너지는 빛으로 관측되는데, 이를 통해 전달되는 에너지 량은 방출되는 전자기파의 파장이 길어질수록 작아지고 짧아질수록 커져야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실험 결과, 방출되는 빛의 파장이 긴 경우에 대해서는 그럭저럭 예상과 잘 맞았지만, 파장이 짧아질수록 오히려 다시 감소하는 특징을 보인 것이죠. 이는 고전 물리학의 모형과 실험 결과가 불일치함을 의미했습니다 (이를 '자외선 파탄 (UV catastrophe)'라고도 부릅니다.). 이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해 결국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 (Max Planck)는 '에너지 양자화 (quantized energy)'라는 과감한 가설을 도입했고, 이것이 결국 20세기 초반에 폭발하기 시작한 새로운 역학이자 패러다임인 양자역학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바로 이 흑체복사이론이 설정 단계 초반부터 활용됩니다. 예를 들어 아스트로파지가 태양을 둘러싸고 있을 때 이들이 태양으로부터 흡수한 에너지를 열의 형태로 (즉, 중적외선) 방출하는 것은 그저 설정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플랑크의 에너지 양자화 가설을 이용하여 흑체복사이론을 재해석하면 이른바 '슈테판-볼츠만 법칙 (Stephen-Boltzmann law)'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이 법칙은 열복사 (heat radiation)의 에너지 밀도가 열을 방출하는 물체 (이를 '흑체 (blackbody)'라고 부릅니다)의 온도의 네제곱에 비례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지구와 태양에 대해, 두 천체 사이의 거리를 알고 있고, 지구의 반지름을 알고 있으며, 태양을 주 열원 (흑체)으로 보아 그 흑체의 표면 온도 (약 5800K)를 알고 있다면, 지구의 평균 온도도 계산하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왜냐하면 태양에서 지구로 에너지가 전달되는 것은 태양과 지구 사이는 사실상 진공 상태이기 때문에 열전도와 대류 방식이 아닌, 오로지 흑체복사에 의한 방사 열전달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구의 평균 온도를 더 정확하게 계산하기 위해서는 지구의 대기가 갖는 효과 (예를 들어 태양광 반사와 흡수, 대기 중에 있는 온실 가스로 인한 온실 효과 등)도 고려해야 하겠지만 전반적으로는 이러한 방식으로 지구의 평균 온도를 계산하는 것은 꽤 정확한 값을 추정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여담입니다만 이러한 기본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외계 항성의 발광 스펙트럼을 측정하여 그 항성의 온도를 추정하고, 그 항성계에 속한 어떤 행성의 정보 (궤도 반지름과 행성 반지름)를 알고 있을 때, 그 행성의 평균 온도를 추정하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이를 통해 그 행성에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할 만한 환경인지 여부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를 통해 기본적으로 외계 행성의 이른바 '골디락스 존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는 제한된 영역)'의 범위도 추정할 수 있게 되죠.

아스트로파지 군집체가 태양 주변을 둘러싼 형태는 일종의 ‘다이슨 구 (Dyson sphere)’로도 볼 수 있습니다. 다이슨 구는 영국 태생의 미국 물리학자인 프리먼 다이슨 (Freeman Dyson)이 제안한 일종의 가상의 거대 구조물입니다. 이 구조물의 주목적은 태양 같은 항성 주변에서 그 항성이 내뿜는 복사열 에너지/전자기파를 흡수하여 에너지로 변환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슈테판-볼츠만 법칙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아스트로파지가 섭씨 96도 정도 (절대온도로는 370K)의 중적외선을 방출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이들이 얼마나 태양과 가까이 있는지를 계산할 수도 있습니다. 단위 면적 당 열방출량은 절대 온도의 네제곱에 비례하니까, 아스트로파지로 이루어진 다이슨 스피어와 태양의 열방출 밀도 비율은 ((5800/370)^4) = 6만 배 정도 됩니다. 이만큼의 비율은 태양의 반지름과 아스트로파지 다이슨 스피어의 겉면적 비율, 다시 말해 둘 사이의 반지름 비율의 제곱과 같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이슨 스피어에서는 에너지 평형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이슨 스피어가 태양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형태가 아니라면 둘러싼 비율만큼 곱해줘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들이 전체 면적의 9% 정도만 감싸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섭씨 96도 정도의 온도를 갖게 되는 아스트로파지 다이슨 스피어의 반지름은 태양 반지름의 73배 정도 됩니다. 즉, 아스트로파지의 궤도 반지름은 태양 반지름의 73배 정도로 추정되는 셈입니다. 참고로 이 소설에서 등장하고 있는 금성은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 함량이 매우 높아서 이산화탄소에 의존하는 아스트로파지의 번식 사이클을 완성시켜 주기 위한 주요 장치로 활용되고 있는데, 금성의 평균 태양 공전 궤도 반지름은 태양 반지름의 약 150배입니다. 그러니까 아스트로파지 군집체로 이루어진 다이슨 스피어는 태양과 금성 사이 대략 딱 정중앙쯤에 위치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셈이죠. 이러한 설정이라면 아스트로파지의 생애 주기에 있어서는 최적의 위치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너무 태양과 가까우면 금성까지 가는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고, 너무 태양과 멀다면 흡수하는 에너지가 지나치게 작아질 것이기 때문이죠. 이는 아마도 작가가 고도로 여러 번 계산하여 설계한 장치일 것입니다. 실제로 앤디 위어가 한 말에 따르면

‘제 소설은 수많은 자료 조사와 수학적 계산을 통해 과학에 대한 제 열정을 전염시키는 것이 저의 기쁨입니다.’
라고 하는데, 분명 이 아스트로파지 다이슨 스피어 설정에도 정밀한 흑체복사이론 계산이 들어갔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합니다.

여기에 천체물리학 이론이 살짝 덧 입혀지면 또 재미난 설정이 하나 더 생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스트로파지 같은 인공(?) 다이슨 스피어가 어떤 항성을 둘러싸서 그 항성의 광도가 약해졌다고 해도 외부에서 (즉, 그 항성계에 속하지 않은) 볼 때는 그 항성의 원래부터 광도가 약했던 것인지 여부를 그저 광도 스펙트럼 분석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다이슨 스피어가 그 항성의 광도를 가린다고 해도, 그 항성의 중력장까지 차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항성 주변을 돌고 있는 행성들의 주기와 질량만 알고 있다면 그 항성의 중력을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죠. 마치 전구의 밝기를 약하게 해도 그것을 무게추 삼아 진자 운동을 시키면 진자의 주기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그 항성의 중력과 크기를 알고 있다면 그 항성의 광도 역시 항성의 주계열성 진화 방정식의 질량-광도 관계를 통해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덩치, 즉, 질량에 비해 광도가 과도하게 낮다면 이것은 뭔가 비정상적인 상황, 예를 들면 다이슨 스피어로 둘러싸여서 에너지를 뺏기고 있는 상황 같은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이죠. 만약 이 작품에 등장하는 외계 지성체 종족이 태양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면 이들은 태양이 자신의 덩치에 비해 빛을 왜인지 모르지만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관측을 오래 했다면 눈치챘을 것입니다. 작가는 이 설정도 물론 아주 알뜰하게 작품 속에서 활용합니다. 예를 들어 태양 주위에 있는 다른 항성들이 자신의 덩치에 비해 빛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관측하면서 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광도를 잃는 것이 아니라, 시차를 두면서 잃어가고 있다는 것, 즉, 뭔가 이 다이슨 스피어스러운 것들이 이 항성 저 항성 옮겨 다니면서 항성의 광도를 약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게 되는 것이죠. 작가는 이를 이 항성들이 아스트로파지에 ‘감염’된다는 재미있는 표현으로 묘사합니다. 마치 아스트로파지가 은하계 스케일의 코로나바이러스처럼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설정과 계산은 앤디 위어 같은 디테일에 집착하는 작가만이 풀어내고 활용할 수 있는 장치들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아스트로파지에 대한 묘사 역시 작가가 여러 분야의 지식을 조합하여 만든 것이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샘플로 확보된 아스트로파지의 움직임은 마치 '활성 브라운운동 (active Brownian motion)'을 방불케 합니다. 원래 브라운 운동은 '랜덤 워크 (random walk)', 즉, 마구잡이 운동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인슈타인도 이에 대해 1905년에 유명한 논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활성 (active)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이는 브라운 운동을 하는 입자가 그냥 랜덤 워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의지’를 가지고 주어진 환경에 맞춰 자신의 운동 방향과 거리를 바꾸게 됨을 의미합니다. 일종의 엔진이 달린 마구잡이 운동이 되는 셈이죠. 엔진과 랜덤은 어울릴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조합이지만, 의외로 이러한 조합은 자연계에도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인간의 정자는 매우 미세한 세포고 평상시에는 랜덤 워크를 하는 것처럼 관찰되지만, 이들은 주변의 환경 변화 (예를 들어 주변의 pH와 온도, 호르몬 분자의 농도 변화 등)에 맞춰 편모를 제어하는 방식을 취하면서 진행 방향과 속도를 제어하는 일종의 액티브 브라운 입자 (active Brownian particle)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아스트로파지를 구성하는 입자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을 때, 이들이 만약 평범한 랜덤 워크를 보이는 입자였다면 이들은 'active'하다고 볼 수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이를 관찰한 과학자들인 이 입자가 생물체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랜덤 워크와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관찰함으로써 작품 속에서는 이들이 생물체일지 모른다는 실마리를 얻게 됩니다. 이 역시 흥미로운 설정이죠.

이 활성 브라운 운동 입자들이 자신의 운동 방향을 제어하는 방식은 다름 아닌 빛, 즉, 전자기파의 운동량으로 설정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운동량은 질량 (m)과 속도 (v)의 곱하기에서 얻는 고전역학적인 운동량 (m*v)이라기보다는, 전자기파의 파동의 특성에서 기인한 운동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자기파는 맥스웰 방정식에 따라 빛의 속도로 진행하는데, 각각의 파장에 따라 주파수가 정해집니다. 이 때 이 주파수에 2pi를 곱하고 그것을 다시 빛의 속도로 나누면 그것을 우리는 파동 벡터 (wave vector, k)라고 부르는데, 양자역학에 따르면 빛의 운동량은 바로 이 k값에 플랑크 상수를 2pi로 나눈 값인 h_bar를 곱한 값으로 정의됩니다. 빛 (광자)은 정지 질량이 없으므로, 정지된 상태의 빛을 순간 가속시켜 속도를 부여함으로써 생긴 고전 운동량은 정의할 수 없지만, 파동으로서의 운동량을 정의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 운동량을 아스트로파지는 자신의 액티브 브라운 운동의 제어 수단으로 활용하는 셈입니다. 물론 이것은 다소 무리하다 볼 수 있는 과학적 설정입니다. 물론 광자를 엄청나게 많이 모아서 운동량을 구성할 수 있는 것은 가능하지만, 10 마이크로미터 밖에 안 되는 미생물이 자신 안에 담겨 있는 열에너지를 중적외선으로 바꾸고, 그 중적외선의 파동을 모아 이용하여 커다란 모멘텀으로 바꿔서 이용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모아 봐야 거의 0에 가까운 운동량 밖에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운동량과 아스트로파지가 직접 반응하기 위해서는 그 미생물체 역시 입자이긴 하지만, 동시에 파동의 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반응을 하는 대상이 갖는 원래의 운동량에 전자기파의 운동량이 파동 벡터들의 합으로 전환되는 형태로 운동량 연산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작품에서 다뤄지는 아스트로파지는 엄연히 무려 10 마이크로미터나 되는 크기의 미생물이고, 이들의 물질파는 중적외선보다 한참 길 것입니다. 따라서 중적외선과 직접적으로 모멘텀을 주고받을 정도로 상호작용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기하광학 (geometric optics) 관점에서만 놓고 보더라도, 이들이 방출하는 중적외선과 이들의 물리적 크기는 거의 일치하는데, 이러면 이들은 중적외선의 모멘텀을 이용하기는커녕, 중적외선과 상호작용하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일단 입자의 크기가 중적외선보다는 더 커야 하기 때문입니다.

앤디 위어는 여전히 전작 마션의 스타일, 즉, 세세한 설정들을 빌드업하여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스타일을 버리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스케일이 훨씬 확장됨에 따라 결국 과학적 엄밀함과 치밀함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 나오는 것을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는 사실 앤디 위어가 아닌 다른 뛰어난 SF작가라고 해도 결국 어느 시점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최대한 메꾸면서 설정의 파괴를 막고 문학적 핍진성을 보존하려는 시도가 강화되면 더 훌륭한 하드 SF가 되는 것이고, 그것을 포기하면서 그것을 문학적 장치로 격하시키면 하드 SF과 거리가 멀어지는, 일종의 논픽션 가까운 보고서가 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앤디 위어의 SF 스타일은 그의 전작 ‘마션’을 고려했을 때, 상당히 현실적인 과학기술 진화 로드맵의 외삽형 스타일입니다. 그렇지만 ‘헤일메리 프로젝트’에서는 조금 더 과감한 시도를 많이 합니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 설정에 대한 무리수를 두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과감함이 늘 신선하고 그럴듯한 이야기로만 연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주인공이 탑승한 헤일메리호 우주선이 긴 항해 끝에 드디어 목적지인 타우 세티 항성 근처에 도달해서 근처에 있던 외계 지성체와 조우하는 장면이 바로 그러합니다. 외계 생물체, 특히 분명 지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는 생명체와 조우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의사소통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마치 암호학의 원리대로 특정한 신호들이 품고 있는 숨겨진 패턴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게 될까요? 애초에 그러한 패턴이 어떻게 표현되거나 발화될 수 있는 것인지 알기 위해 외계 생명체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물리적 혹은 화학적 수단을 먼저 탐색하게 될까요?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이 시도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원론적이고 간단합니다. 즉, 예측 가능한 수단을 사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아마 이는 작가의 상상력 한계에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작품의 주인공은 아주 지루하고 세밀할 정도로 이종족 간 언어 소통의 방식을 탐구합니다. 앤디 위어는 이 과정을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상세하게 기술합니다. 예를 들어 외계 종족의 화음 같은 소리를 캐치하여 그것을 녹음하고 하나씩 주파수 별로 분해해 보는 방식 등이 그러합니다. 이는 마치 그가 예전의 작품 스타일을 벗어나 새로운 작품을 시도하면서 독자라는 이종족과 조금 더 긴밀한 소통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앤디 위어는 그의 고집스러울 정도로 디테일한 설정을 충실히 따르려 합니다. 또한 현재 사용되는 혹은 근미래에 충분히 기술적으로 달성 가능할 것 같은 도구들을 적재적소에서 잘 활용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예를 들어 이종족이 쓰는 정보 처리 방식인 음파 신호를 분석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신호 처리의 수학적 도구인 '푸리에 변환 (Fourier transform)'을 쓰는 것이 좋은 사례입니다. 이는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음파형 인지/소통을 취하는 외계 종족이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파동 형태의 신호를 다룰 수 있는 지성체에 대해서라면 무조건 기본적으로 항상 취하게 되는 방법입니다. 외계 지성체와의 조우, 그리고 언어 해석과 의사소통 방식에 대한 이해를 충실하게 다룬 소설로서 또 다른 SF 대작인 테드 창의 ‘컨택트’가 있습니다. 컨택트에서 나오는 셉타포드라 불리는 외계 종족 역시 특별한 의사소통 방식을 취하지만 그 방식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은 여전히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수학적 알고리듬에 기반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알고리듬에는 당연히 푸리에 변환 같은 주파수 변환 및 재조합 방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작품의 주인공 그레이스 박사와 그가 조우한 외계 지성체 (나중에 '로키'라고 이름이 붙은 개체)와의 대화 패턴 파악 과정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주인공은 로키의 화음처럼 들리는 '음성'을 녹음하고, 그 신호를 주파수 별로 분리하여 각 신호의 고유 패턴을 파악합니다. 이는 수학에서는 각 신호를 이루는 고유 함수와 각각의 가중치를 분리해 내는 것에 해당합니다. 마치 네 명의 남녀 성악가가 동시에 각자의 음을 내면 우리 귀에는 한 화음으로 들리지만, 그 화음에서 조금 더 잘 들리는 음은 그만큼 더 세게 발성된 음처럼 들리는 것을 생각하면 됩니다. 작가의 상상력은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갑니다. 예를 들어 인간 네 명이 각자의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여러 명의 소리를 동시에 낼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것이죠. 이미 복화술사나 몽골의 어떤 부족들은 이러한 복수 발성법을 낼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5-6개 정도까지의 소리를 동시에 낼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죠. 그렇지만 만약 외계 생명체에 성대가 5-6개 정도 있다면 서로 다른 소리 5-6개를 동시에 내고, 각각의 조합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런 생명체가 우리 우주에 정말 있을지는 현재로서는 확인하기 불가능하지만, 충분히 있을법한 생명체고 그럴듯한 의사소통 방식이므로 흥미로운 상상력입니다. 여러 개의 성대에서 서로 다른 주파수의 소리를 동시에 냄으로써 신호를 구성할 수 있다는 방식은 손이 10개 있고, 각각의 손으로 10가지 문자를 동시에 쓸 수 있는 것과는 다소 다른 맥락입니다. 왜냐하면 일단 전달되는 매개체는 음파이기 때문이죠. 음파는 파동이기 때문에 동시에 같은 공간의 공기 혹은 전달 매개체를 진동시킴으로 전달됩니다. 그에 반해 문자는 각각이 이미 독립된 매개체이기 때문에, 10 종류의 서로 다른 문자를 동시에 쓰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렇지만 문자를 2차원 평면 상에 겹쳐 쓰는 것이 아닌, 마치 CT처럼 3차원 공간 상에 차곡차곡 쌓아서 한꺼번에 보여주는 방식도 의사소통 방식이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작가의 상상력은 아마 1970년대에 나온 유명한 SF 영화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미지와의 조우 (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에서 자극받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영화에서 그려진 외계 지성체 (더 정확히는 지성체가 탑승한 우주선)과 지구인들은 음파를 이용하여 통신하죠. 그 지성체들은 일종의 화음 기반 통신을 시도하고, 지구인들은 이를 금방 파악하여 의사소통에 성공합니다.

그레이스 박사와 로키는 최초의 조우 직후 서로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서로의 언어를 배웁니다. 이렇게 끈질기게 영어-로키어 '사전'을 늘려 나가는 과정은 앤디 위어의 전작 ‘마션’에서도 이미 비슷하게 묘사된 바 있는 방식입니다. 물론 마션에서는 화성에 홀로 남겨진 지구인이 지구에 있는 동료들과 화성-지구 사이 빛이 왕복하는데 걸리는 시차를 두고 망원경 관측과 위성 영상을 통해 이미지를 연결하여 언어를 전달하는 방법이었다는 것이 차이점이지만, 결국 초반에 몇 개의 단어를 이용하여 일단 사전을 구성하기 시작하면, 그것을 기반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단어장을 늘리는 (마션에서는 이를 ASCII 코드를 통해 달성합니다.) 방식은 전작과 동일한 방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래 어느 시점, 마침내 지성을 가진 외계 종족과 인류가 정말 조우하게 된다면 인간은 이 소설에 묘사된 것처럼 초기의 혼란을 조금만 극복하면 얼마든지 소통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까요? 쉽게 단어장을 만들고, 나중에는 사전을 만들고, 종국에는 인공지능 기반의 자동번역기까지 만들 수 있을까요? 사실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일 수도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려진 외계 종족과의 의사소통은 거의 1:1로 교환될 수 있는 단어들의 매칭을 통해 조립되는 가장 간단한 방식의 통역입니다. 그렇지만 컨택트에 나온 것 같은 회문형 언어 (circular language)는 지구의 언어와 1:1 단어/개념 매칭을 보장하지 않으며, 특히 시제나 성, 단/복수의 개념이 혼동되어 있을 경우에는 1:N, N:1, N:M으로 매칭될 수도 있는 복잡한 연결고리가 생기기 때문에, 이종족 간 서로 다른 의사소통 방식을 통한 의미 파악은 생각보다 더더욱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작품의 핵심 소재인 아스트로파지는 태양을 좀먹는 주범이지만, 동시에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 저장고, 즉, 생체 배터리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 주요한 설정이라는 언급을 한 바 있습니다. 문제는 이 아스트로파지를 항성 간 여행에 활용할 수 있는 수준의 연료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양의 배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태양 근처의 아스트로파지 다이슨 스피어에서는 자동적으로 에너지 공급이 이뤄지지만, 아주 제한적인 규모의 태양 에너지가 내려 쬐는 지구에서는 훨씬 더 공들여 이 에너지를 모아서 아스트로파지를 양산 (배양) 해야 합니다. 이때 배양 시설로 언급된 '흑색태양광패널' 역시 흥미로운 아이템입니다. 태양광을 흡수하여 전기로 변환하는 '광전변환 (photovoltaic effect)'은 다름 아닌 우리에게 익숙한 태양광발전 전지, 즉, '태양전지 (solar cell)'입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 언급된 흑색패널은 일반적인 태양전지가 아닙니다. 오히려 태양광을 직접 흡수하여 열로 바꿔주는 광열변환 시스템, 즉, '광열전지 (solarthermal converter)'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막에 방사형으로 배열된 거대한 거울들이 각자 반사한 빛을 한 초점에 모아 엄청난 고온을 만들어 그곳에 저장된 거대한 질량의 물을 순식간에 수증기로 바꾸고 그것을 압축하여 터빈을 돌리는 일종의 태양화력발전인 셈이죠. 작가는 이 클래식해 보이는 발전 방법을 자신이 창조한 아이템인 아스트로파지의 배양, 그것도 대량 생산을 위한 핵심 장치로 잘 묘사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태양화력발전에 쓰이는 거울과 흑색패널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기존의 태양화력발전은 거울과 수증기 발생 장치가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스트로파지를 양산하기 위해서는 거울과 고열원이 같은 장소에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스트로파지는 직접적으로 에너지를 생명 유지 활동에 활용하는 생명체이기 때문입니다. 거울은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태양광을 반사하기 때문에 거울 자체가 태양광에 의해 직접적으로 크게 뜨거워지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기존의 광열발전 시스템은 사용하기 어렵죠. 이에 대한 대응 기술이 존재할까요? 놀랍게도 이는 이미 존재하는 기술입니다.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들은 전기를 잘 통하는 금속으로도 유명하지만, 사실 이들 금속은 플라즈모닉 효과 (plasmonic effect)를 갖는 금속으로도 유명합니다.

플라즈모닉 효과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전자기파가 금속 표면의 자유전자와 특정 주파수 대역에서 일종의 하나의 양자화된 입자처럼 결합하여 공명함으로써 입자이자 파동의 특성을 갖는 양자화된 상태가 창출되는 효과를 의미합니다.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들은 이러한 공명 파장이 가시광 대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우리의 태양도 표면 온도가 대략 5800K 정도 되기 때문에 방사 스펙트럼 중에서 에너지 밀도가 가장 높은 대역도 가시광 대역 (가장 높은 에너지 밀도는 초록색 영역)이죠. 금이나 은을 아주 작은 크기, 예를 들어 나노입자 (nanoparticle)나 나노선 (nanowire) 등의 형태로 만들 경우, 이들은 플라즈모닉 효과 중에서도 '국부표면플라즈모닉 공명 효과 (localized surface plasmon resonance, LSPR)'라는 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이들의 반지름이나 길이, 방향 등을 제어하면 가시광 대역 거의 전 영역에 걸쳐 빛을 반사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흡수할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거울이 원래 유리 표면에 은을 얇게 바른 것임을 생각해 보면, 금이나 은이 빛을 잘 반사하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있는데, 이들이 매우 작은 크기가 될 경우 오히려 가시광 대부분을 흡수하게 된다는 것은 이들이 겉으로는 검은색으로 보이게 됨을 의미합니다. 이런 나노 크기의 금 플라즈모닉 효과 기반의 물질을 ‘검은 황금 (black gold)’이라고도 부릅니다. 물론 석유를 관용어로 검은 황금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맥락이죠. 이렇게 대부분의 태양 가시광이 블랙골드에 흡수되면 어쨌든 그 가시광 전자기파들이 가지고 있었던 에너지도 블랙골드 안에 머물게 됩니다. 블랙골드가 그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보내지 않으면 당연히 그 에너지는 열에너지로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블랙골드는 금방 뜨거워지죠. 실제로 블랙골드를 실용적으로 응용하려는 공학자들은 이 블랙골드를 넓은 면적을 가지면서 동시에 물 위에 뜰 수 있는 스펀지 같은 멤브레인에 붙여서 바닷물 위에 띄워 두려고 합니다. 그러면 블랙골드는 자신이 흡수한 전자기파, 그리고 그것이 변환된 열에너지를 바닷물에 직접 전달할 수 있고, 따라서 블랙골드 주변에 있던 바닷물은 끓어오르게 되고, 마침내는 수증기가 됩니다. 수증기는 멤브레인 내부에 송송 뚫린 작은 구멍을 통해 대기로 나가게 될 텐데, 이들을 모아 다시 식히면 그것은 그대로 민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닷물을 민물로 만드는 담수화 공장을 굳이 해안가에 짓지 않더라도 마치 석유시추선 같이 바다에 떠 있는 상태에서도 대량으로 민물을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작가가 설정한 흑색패널이라는 장치도 이러한 블랙골드와 비슷한 원리입니다. 블랙골드가 모은 뜨거운 열에너지를 바닷물이 아닌 아스트로파지에 전달하여 저장한다는 개념으로 바뀐 것만 제외하면 말입니다. 작가가 이 책을 쓰기 위해 굉장히 다양한 분야의 과학과 공학 지식, 원리, 그리고 응용 사례를 참고로 했음이 이러한 설정에서도 확인됩니다. 물론 그가 작품 속에서 그리고 있는 스케일은 일반적인 블랙골드 기반 해수 담수화 공장보다 훨씬 큽니다. 사하라 사막을 무려 1/4이나 덮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블랙골드 기반 패널이 필요하다는 계산을 했기 때문이죠. 물론 이러한 에너지 역시 12광년 떨어진 항성으로의 가속 여행을 위해 필요한 엔진에 필요한 에너지 계산에 기반을 둔 것이기도 합니다. 즉, 이렇게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는 다름 아닌 지구에서 다른 항성으로 가기 위한 에너지 확보를 위한 장치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로 인해 사하라사막이 저장할 수 있었던 열 에너지의 1/4이 아스트로파지의 배양을 위한 먹이로 사라지게 된 셈이고 이는 직접적으로 지중해 지역에 격심한 기후 변동을 가져오게 되는 것으로 작품에서 그려지기도 합니다. 기후는 결국 지구 스케일에서의 열 에너지 이동과 분배라는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으므로, 사하라사막에 설치된 광열변환 용 블랙골드는 당연히 지중해 지역의 기후에 커다란 요동을 가져다주었을 것입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작가의 세심함이 이런 부분에서도 잘 보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작가의 세심함과는 별개로 이 작품에 무리한 과학적 설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꽤 많이 있습니다. 물론 이 작품을 그저 하드 SF로만 읽는다면 더더욱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작품의 핵심이자 일종의 데우스엑스마키나로 작동하는 것은 다름 아닌 아스트로파지임을 언급했습니다. 이 작은 10 마이크로미터 짜리 ‘입자’들은 처음에는 태양 주변에서 태양 스펙트럼 대부분을 흡수하며 금성과 태양을 왕복하는 특이한 생물체처럼 묘사가 됩니다. 그렇지만 알고 보니, 이들은 인류에게 커다란 해악을 끼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위험만큼이나,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를 저장하고 심지어 그것을 질량으로 바꾸거나 질량을 다시 에너지로 전환하거나, 어마어마한 고온의 열에너지를 차폐하거나 다시 전환하고, 심지어 우주 방사선을 차폐할 수도 있는 놀라운 물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메커니즘의 주요 입자로 묘사되는 것은 다름 아닌 '중성미자 (neutrino)'입니다. 그렇지만 인류가 지금까지 파악한 중성미자는 대부분의 물질과 상호작용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 중성미자가 자기 자신의 반입자라는 특징을 근거로, 이들이 일종의 쌍생성을 할 수 있는 입자, 그래서 아스트로파지의 놀라운 에너지 흡수, 저장, 그리고 방출 특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주요 메커니즘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입자물리학 관점에서는 사실 성립하기 어려운 설정입니다. 물론 중성미자의 쌍생성 결과물로 발생하는 광자를 실제로 검출하여 중성미자의 존재, 그리고 그들의 물성을 실험적으로 증명하고 확인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이 태양 스펙트럼과 상호작용하거나, 열에너지를 전환 혹은 저장하거나, 심지어 에너지를 질량으로 변환하는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다는 실험 결과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암흑물질의 정체를 찾는 초기 과정에서 중성미자를 가장 강력한 후보로 놓았다가 결국 그 가설을 폐기하게 된 과정과 유사한데, 작가는 이미 폐기된 가설로부터 무리한 설정을 가져오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우리가 아직 중성미자의 모든 물리적 특성을 파악한 것은 아니므로, 작가에게 다소간의 과학적 자유도가 없는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설정은 대표적인 무리수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외계 종족, 즉, 에리디안 (로키)이 항성 간 우주여행을 할 정도로 기술과 문명이 발전한 종족이고, 이들은 심지어 아스트로파지를 엔진 연료로 사용하는 법을 알고 있을 정도로, 즉, 아스트로파지가 중성미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 정도로 과학 문명도 발달한 상황일 텐데, 이들이 가장 간단한 원자물리학만 알고 있어도 깨달을 수 있는 방사선 물리학을 몰랐다는 설정도 무리수로 보입니다. 물론 이들이 살고 있는 행성은 매우 어두워서 이들은 빛을 감지하는 것을 포기하고 음파 혹은 초음파로 세계를 인지하는 방향으로 진화를 했다는 설정이 있지만, 그러한 설정만으로는 중성미자의 설정 구멍을 메우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중성미자를 알기 위해서는 어쨌거나 핵물리학, 입자물리학,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에너지 물리학에 대한 기본적인 원리를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마치 인류가 현재 표준모형에 근거한 입자 물리학이라는 무기를 손에 쥐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도로 발달한 지성체 (에리디 안)들은 방사선, 특히 우주 방사선의 존재를 전혀 몰라서 결국 그들의 우주 탐사선에 있는 생명체 대부분은 떼죽음을 당하고 맙니다. 이는 굉장히 이상한 설정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우주 항행을 처음 시도한다고 할 정도였다가 항성 간 여행을 바로 시도하는 수준까지 급격한 이야기 전개가 되는 사이에도 이러한 설정이 충분히 대응되지 못한 것은 작가가 미처 생각하지 못 한 포인트로 볼 수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흑체복사이론 역시 온도의 감지가 중요한 것이 아닌, 그 온도를 갖는 흑체가 방출하는 전자기파 (빛)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인데, 빛을 감지할 수 없고, 전자기파에 대한 물리적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 외계 문명이 항성 간 여행을 하거나, 아스트로파지가 자신의 모항성 온도를 낮추고 있는 이유를 파악할 수 있다는 설정은 여러모로 무리수로 읽히기도 합니다.

이러한 몇 가지 설정의 구멍을 감안해도, 작가의 상상력은 여전히 주목할만합니다. 특히 작가가 기존의 상식을 비트는 것을 확인하는 것도 이 작품이 줄 수 있는 매력입니다. 아스트로파지에 ‘감염’된 태양은 조금씩 에너지를 잃어가고, 따라서 대부분의 에너지 공급을 태양에만 의존하는 지구 입장에서는 이는 커다란 재앙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언급되는 것이 지구온난화를 일부러 일으키는 방법입니다. 현재의 주류 학계의 의견은 당연히 지구온난화가 인간의 인위적인 온실 가스, 즉, 이산화탄소나 메탄 같은 가스가 대기로 과도하게 방출됨에 의해 가속되고 있는 것으로 이미 충분한 과학적 증거가 누적되어 결론이 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태양이 에너지를 조금씩 잃어가는 상황에서는 지구가 너무 빨리 에너지를 잃어버려 식어버리기 전, 즉, 엄혹한 빙하기를 맞기 전이라면 약간의 시간이라도 벌어두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럴 용도로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 가스를 일부러 더 많이 방출하는 행위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인류 입장에서는 더 도움이 될 수도 있긴 할 것입니다. 작가는 바로 이러한 지점을 소설 속에 흥미로운 설정으로 녹여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역시 무리수로도 볼 수 있는 지점이 있습니다. 현재의 지구 온난화는 사실 온난화라는 현상 자체로만 뭉뚱그릴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현상으로 가파르게 치닫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구 기후 위기입니다. 온난화로 인해 지구의 평균 온도가 높아지는 것뿐만 아니라, 높아진 평균 온도만큼 지구의 대양과 대기의 온도 변화폭이 커져서 지난 수백, 수천, 심지어 수백만 년 간 안정적으로 작동하던 지구의 많은 기후순환 주기, 예를 들어 대양의 해류 순환 주기나 성층권의 제트 기류 순환 영역/주기 등에 큰 교란이 찾아오게 됩니다. 엘니뇨와 라니냐의 빈도가 높아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는 지구의 기후에 커다란 변동을 가져오고 이로 인해 온대, 열대, 한대 등의 기후 지역 구분이 사실상 의미 없게 됩니다. 이는 세계 주요 곡창 지대의 흉년과 폭우, 폭설, 홍수, 가뭄, 태풍 등의 기후 피해가 막심해질 것임을 의미하고, 극지방의 빙산과 빙하가 녹아내림으로 해수면 상승, 그리고 극지방의 영구동토층이 녹음으로 인한 추가적인 이산화탄소/메탄가스 방출이 가속화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즉, 이산화탄소를 인위적으로 배출할 경우, 지구의 평균 온도가 다소간 높아지는 것 이상으로, 지구의 기후 변동 폭은 인간의 예상보다 훨씬 더 극심하게 변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태양에너지가 줄어듬으로 인해 지구가 받는 에너지도 그만큼 줄어드니까 당장 언발에 오줌누기 식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높이는 것이 그럴듯한 미봉책이 될 수 있을 지언 정, 이것이 더 커다란 재앙을 가속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은 간과되고 있습니다. 지구의 기후 위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이기도 하지만, 그것의 급격한 변화가 가져올 비선형성은 기후 위기를 오히려 더 가속시킬 수 있습니다. 매트릭스나 설국열차 등을 비롯한 디스토피아적 SF 작품 혹은 미디어에서 자주 언급되는 극단적인 지구 온난화 처방책으로서, 대기 중 태양광 반사용 입자 살포 등이 바로 이러한 근시안적 대응책이 가져 올 재앙의 가속화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입자들이 대기 중에 살포되면 당장 지구로 입사하는 태양 스펙트럼의 일부가 우주로 다시 반사되어 지표에 닿은 단위 면적 당 에너지가 감소할 수 있을지는 몰라고, 이로 인해 다시 지구 기후 위기가 촉발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근시안적 방법은 결코 바람직한 방법은 아닐 것입니다.

이 작품이 다른 SF와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지성을 갖는 외계인과의 조우, 외계인과의 협력, 그들의 과학기술 문명의 이기를 적극 이용하는 것 등은 이미 다른 작품에서도 많이 다룬 아이템들이므로 딱히 새로울 것은 없습니다. 정말 새로운 점이 있다면 인간이 지성을 갖는 이종족과의 협업이, 그것도 대등한 협업이 가능할 정도로 두 종족 간의 지성이 ‘비슷하다’라는 설정일 것입니다. 이는 사실 꽤나 철학적이면서도 여러 측면에서 곱씹어 생각할 거리들을 줍니다. 예를 들어 인간이 우연이 만난 외계의 종족이 인간보다 훨씬 지능이 떨어지는 경우는 어떨까요? 그러면 이는 흔하디 흔한 외계 행성에 대한 식민 정복 서사시가 될 것입니다. 당연히 지능과 문명 수준이 열악한 외계 종족일 것이므로 그들은 스스로 그들의 행성을 벗어나 항성 간 여행을 시도도차 할 수 없었을 것이므로, 인간이 이들과 조우하는 것은 철저히 인간이 모종의 이유로 인해 이들의 행성을 방문함으로써만 일어나는 일방적인 조우였을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요? 인간이 힘들게 온갖 자원과 과학기술을 동원하여 마침내 항성 간 여행까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 어떤 먼 행성 주위에서 지성을 갖는 외계 종족을 만났는데, 그들의 지능과 문명 수준은 인간의 것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었다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요? 인간이 가져간 과학기술 도구들과 지식은 그 문명 앞에서는 하등 쓸모없는 것이 되었을 것이고, 결국 외계 종족 입장에서는 인간은 전 우주에 널린 흔하디 흔한 하등 종족 정도로 폄하되었을 것입니다. 이 작품은 이 두 극단 사이에서 매우 절묘한 균형을 취합니다. 물론 인간과 에리디언 두 종족은 겉모습도 너무나 다르고, 생태적 특성도 다르고, 구성 성분도 다르고, 생물학적 특성도 완전히 다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공통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음파의 주파수 대역이 있고, 1:1로 매칭될 수 있는 언어를 교환할 수 있으며, 화학과 물리, 수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어느 정도 비슷한 위치에 올라와 있습니다. 물론 인간은 에리디언에 비해 화학적 진보가 다소 늦어 보이고 에리디언은 인류에 비해 물리적 진보가 다소 늦어 보인다는 소소한 차이는 있지만, 이는 우주 전체의 시간과 공간 스케일로 보자면 정말 비슷한 지적 수준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넓은 우주에서 이러한 ‘우연’이 일어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사실 이 작품의 핵심 설정 중 하나는 에리디언과 인류는 우주 스케일로 보면 그저 아주 가까운 이웃사촌이라는 것입니다. 즉, 두 종족은 이미 같은 은하계에 살고 있으며, 은하계 내에서도 꽤 가까운 지역에 살고 있는 이웃인 셈이죠. 이렇다면 이 작품에서 빈번하게 언급되고 있는 가설, 즉, 인류와 다른 지성 이종족은 알고 보니 아주 먼 과거에는 하나의 기원에서 시작했을 수 있다는 ‘판스페르미아’ 가설이 성립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가설은 가설일 뿐, 이를 지지하는 그 어떤 실험적 증거는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SF에서는 훌륭한 설정으로 활용될 수도 있는 것이겠죠. 인류와 에리디언이라는 두 종족이 우연히 조우하여 각자의 삶과 죽음의 운명을 놓고 서로 치고받고 경쟁하며 전쟁하는 것이 아닌, 상호 간 협력하여 위기를 같이 극복한다는 설정은 다소 인간 중심적으로 또한 한 편으로는 작위적인 설정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지성 수준이 비슷하다고 해서 늘 협력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종족 전체의 운명이 풍전등화인 상황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려 할 것이니, 이종족과 전쟁을 불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방법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미 지난 수천 년 간의 역사에서 같은 인간끼리 서로 문화적 기준이 다르고, 종교적 가치가 다르고, 제도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거듭해 왔는지의 불행한 역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류와 에리디언 두 종족은 (물론 작품에서는 두 종족의 대표가 각각 딱 한 명씩만 등장하지만), 서로 경쟁하지 않고 공동의 위기 앞에서 협력합니다. 이 협력이 가능한 것 역시 두 종족의 문명과 지성 수준이 우주적 스케일 안에서는 사실상 동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작가는 이 지적 동등성을 설정하기 위해 몇 가지 힌트를 작품 속에 제시합니다. 그중 흥미로운 설정은 바로 오버랩되는 음파의 주파수 대역의 원인은 물체끼리 부딪히는 소리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는 것, 그리고 움직이는 물체의 정보를 처리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 물체가 속한 중력장의 세기의 함수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행성의 중력은 그 행성 위에 서식할 수 있는 모든 생명체들에 대해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강력한 변수로 작용합니다. 기체와 액체의 흐름에 의한 기후 변동부터, 비생물이든 생물이든, 정형화된 형태의 시간에 따른 이동 (즉, 속도와 가속도), 무게와 마찰력 등 물리적 운동에 관한 모든 것이 중력의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돌이 낙하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오로지 그 돌의 위치와 중력에 의해서만 결정됩니다. 당연히 중력가속도가 더 클수록 이 시간은 짧아질 것이므로, 이 돌의 움직임 정보를 처리해야 하는 생물체가 있다면, 이 생물체는 이 짧은 시간 동안 정보를 처리해야 하는 압박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될 경우, 이 생물체는 살아남는 과정에서 짧은 시간 동안 더 많은 감각 정보를 처리할 수 있도록 진화를 거듭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높은 중력가속도를 갖는 행성에서 진화한 생물체들이 지성을 가질 경우, 이들은 단위 시간당 처리할 수 있는 정보가 더 많아지고 더 멀티모달 형태의 고차원 정보 처리 시스템 (즉, 뇌)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므로 기본적인 지능은 매우 높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기본 지능이 높아졌다고 해서, 이것이 그들의 문명 수준 자체도 모두 높아졌다고 가정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너무 머리가 좋아지면 그것을 보조할 다른 도구, 예를 들어 컴퓨터 같은 도구를 굳이 열심히 개발해야 한다는 동기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지구보다 더 높은 중력가속도를 갖는 모행성에서 진화한 에리디언은 그래서 중력에 의해 납작해진 외모만큼이나, 강력해진 기본 지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다루는 정도의 컴퓨터 기술을 가지지는 못 했던 것으로 설정됩니다 (로봇 비슷한 장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컴퓨터 같은 보조 수단이 없다고 설정된 것은 조금 이상하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들은 항성 간 여행을 가능케 한 문명까지 달성했으니, 절묘한 밸런스를 맞추게 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설정들은 이 작품이 줄 수 있는 지적 즐거움의 요소들이기도 합니다.

천체에 대한 설정도 한 번 더 살펴보면 좋을만한 부분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지구와 아스트로파지에게 감염이 안 된 항성 (타우 세티) 사이의 거리가 12광년 정도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멀다면 먼 거리이지만, 사실 우주적 스케일에서는 꽤 가까운 거리이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사실상 이웃사촌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거리죠. 실제로 작가도 이 거리를 그냥 선택한 것은 아니고, 아스트로파지가 항성 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최대의 거리를 8광년 정도로 설정해 둔 것과 맞추려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설정에는 조금 찜찜한 면이 있습니다. 작품에서 설정된 아스트로파지는 은하계에 있는 항성들을 감염시키고 그 항성으로부터 에너지를 흡수하고 근처의 이산화탄소가 가득한 행성에서 번식하는 생애 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스트로파지가 항성 하나의 에너지를 다 소모하는 데에는 얼마나 시간이 필요한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지구를 기준으로 대략 한 세대 (30년 정도) 정도만에 지구의 인구 절반이 절멸한다는 설정도 작품 속에 있기 때문에, 대략 수백 년 정도면 항성 에너지의 상당수를 흡수한다는 계산을 해 볼 수 있습니다. 편하게 1,000년 정도가 걸린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사실 감염이 안 된 항성은 아스트로파지의 고향입니다. 그 고향 항성계의 어떤 행성에는 아스트로파지를 잡아먹는 ‘타우메바’라는 포식자가 있기 때문에 그 항성계에서 아스트로파지는 무한 증식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타우 세티는 감염되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런데 불과 12광년 밖에 안 떨어진 타우 세티를 고향 삼는 아스트로파지가 태양계로 오는 데까지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요? 타우 세티에서 바로 태양계로 온 것은 아니겠지만, 이들은 8광년 정도를 버틸 수 있다고 했으니, 어쨌든 평균 8광년 이내의 항성들은 차례로 감염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지구에서 관측할 수 있는 주변의 항성들 상당수는 분명 광도의 변화가 뚜렷하게 보였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흔적이나 과거의 기록 등이 명시되지 않은 채 갑자기 태양계가 아스트로파지에 감염되었다는 설정은 무리한 설정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아스트로파지의 고향 항성계로의 여정 역시 13년 정도 걸린다는 설정도 우연의 일치 같은 장치처럼 느껴집니다. 아스트로파지를 연료 삼아 편도로 도달하는데 인류가 만든 가장 빠른 우주선 (헤일메리 호)이 걸리는 시간은 13년 정도입니다. 그런데 태양 광도의 저하로 인해 인류가 절반 이상 절멸되는 데까지도 대략 30년 정도 걸리는 것으로 설정되고 있으니, 아스트로파지 모 항성계로의 왕복 여행 시간과 대략 일치합니다. 물론 작가는 이러한 설정의 앞뒤를 맞추기 위해 다양한 가정을 거듭한 것이겠지만, 여전히 아스트로파지의 생애 주기가 인류에게 남겨진 주기와 맞춰져 있다는 것은 과도하게 인류 중심주의적인 설정처럼 보이기도 하죠. 물론 그러한 주기를 못 맞춘 다른 항성계의 문명들은 멸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에서 한 가지 더 흥미롭게 다루고 있는 것은 미생물의 진화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미생물의 생애 주기는 매우 짧습니다. 그래서 박테리아나 E. Coli 같은 대장균, c. elegans 같은 미생물들은 진화생물학의 주요한 모델 생물이 되기도 합니다. 작품에서는 아스트로파지를 제어하기 위한 독특한 포식자 ‘타우메바’를 여러 세대에 걸쳐 진화시키는 장면이 언급됩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진화 전략은 이 타우메바가 금성 수준의 대기에서도 살 수 있는 특질을 획득하도록 선택적 유전 형질 획득을 제어하는 방식입니다. 그렇지만 이는 사실 진화생물학의 알고리듬이라기보다는, '유전 알고리듬 (genetic algorithm)'을 차용한 설정으로 보는 것이 맞을 듯합니다. 수학이나 컴퓨터과학에서는 이른바 최적화문제를 풀기 위해 유전 알고리듬이라는 방법을 예전부터 잘 개발해 오고 있습니다. 유전 알고리듬은 간단히 말해 마치 부모 세대의 유전자를 받아 자식 세대의 유전자가 구성되는 생물학의 유전 개념을 그대로 흉내 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최적화를 하고 싶은 어떤 함수가 있을 때, 그 함수의 최적값을 줄 수 있는 후보가 여러 개 있다고 합시다. 이때 이 후보 들 중 두 개를 랜덤 하게 골라서 섞습니다. 마치 아버지의 유전자와 어머니의 유전자가 섞여서 자녀의 유전자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그러고 나서 자녀의 유전자에 해당하는 새로운 후보가 부모보다 더 좋은 결과를 준다면 이 유전자는 유전될 수 있는 우선순위가 올라갑니다. 유전 알고리듬에서는 최대한 다양한 후보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다양한 유전자 교환 방식을 택합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세대를 거듭하여 더 최적에 가까운 해를 얻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주인공이 외계인과 협력하여 타우메바의 최적화를 위해 세대를 거듭한 선택적 진화를 하는 방식 역시, 유전 알고리듬을 차용한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 미생물의 진화가 이렇게 쉽게 선택적 유전자 표현형만 골라서 나타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러려면 유전체학 (genetics), 그리고 전장유전체검사 (genome-wide association study, GWAS)라는 유전학 방법론,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마어마한 유전자 정보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생명정보학 방법론과 컴퓨팅 하드웨어가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작품에서는 이러한 설정이 별로 언급되지는 않습니다.

책의 후반부는 마션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위기가 고조되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식이 특히 그러합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마션의 주인공은 혼자서 이 위기를 극복했다는 것이고, 헤일메리호의 주인공은 외계 지성체인 로키와 협력하여 이 위기를 극복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거의 자유롭게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된 둘은 마치 평범한 지구의 과학자-공학자 한 쌍처럼 서로 업무를 효율적으로 분담하고 때로는 서로를 가르쳐주기도 하면서 다양한 위기 상황을 극복합니다. 그래서 후반부는 SF를 가장한 버디무비 액션 스토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의 묘미는 단순히 전반부의 공들인 과학/기술적 설정이 후반부에서 문학적 클라이맥스로 향한다는 것에만 있지는 않습니다. 읽을수록 예상되기는 하지만, 주인공이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다시피 하면서까지 외계 종족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모험을 감행하는 것은 독특한 감동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인류와는 전혀 닮은 구석이라고는 없는, 작품의 표현을 빌리자면 거대한 거미 같아 보이는 외계 종족이 자신들의 항성을 회복시킬 수단을 확보하지 못할 까봐 지구로 되돌아갈 수 있는 소중한 편도 티켓을 버리면서까지 우주선의 방향을 되돌려 결국 로키에게 도달한다는 것은 더 이상 하드 SF의 맥락으로 이 작품을 보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일깨워 주기도 합니다.

이 책은 분량도 거의 700페이지에 달하면서도, 두 가지 이야기 (로키와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 타우 세티로 가기 위한 헤일메리 프로젝트 수립 과정)가 교차로 진행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호흡으로 이야기의 전체 얼개를 쉽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앤디 위어는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세계를 선물했습니다. 그의 의도에 따라, 이 책에서 시도된 다양한 과학적 사고 실험과 상상력의 확장은 때로는 신선함을, 때로는 감동을, 때로는 진부함과 지루함을, 때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찜찜함을 주고 있지만, 종합적으로 본다면 장편만이 가질 수 있는 긴 호흡 속에서 서로 성격, 스케일이, 차원이, 다루는 대상이 판이하게 다른 여러 과학과 공학의 이론들, 가설들, 시스템과 한계들이 잘 어우러지면서 빚어내는 흥미는 충분히 시간 들여 이 작품을 읽는 것에 대한 보상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은 이 작품에서 다뤄진 여러 과학적 장치와 상상력, 이론과 한계, 결합과 분리 등에 초점을 맞춰 생각을 나누며, 동시에 나와 다른 커다란 우주를 가지고 있는 다른 지성체와의 의사소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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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와매트
23/11/14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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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클라크가 우리 말고 더 있거나, 우리뿐이거나. 그 두 가능성이 모두 끔찍하다라고 말했다죠. 저는 전자 쪽이 더 끔찍하다고 보는 입장이라 다른 지성체와의 소통이라는 소재 자체가 다가가기가 힘드네요
23/11/14 20:07
수정 아이콘
우리 말고 더 있거나에 대해 아주 비관적으로 세계관을 설정한 SF가 바로 류츠신의 역작 삼체죠. 그 작품에서는 어둠의 숲이라는 개념도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서로 더 상위의 문명에게 행여나 들키지 않기 위해 숨어 있을 것이라는 설정이죠.
구급킹
23/11/27 15:47
수정 아이콘
(수정됨) 삼체는 고등문명이 하위문명 끔살하는 방법이 참 기상천외하고 멋있죠.. 1부에서 예원제가 그 결정을 하기까지 빌드업이 정말 명작이고 2부에서도 면벽자 아이디어로 흥미를 돋우다 2부 후반 3부로 가면서 제 기준에서는 디테일이나 핍진성이 떨어지면서 기발한건지 뇌절인지 아리까리해지긴 하지만 그 상상력만큼은 킹정이라할 수 있습니다.
참룡객
23/11/14 19:58
수정 아이콘
SF를 보다보면 과학의 발전으로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이나 인간성이 메마르고 이성만 강조되는 소설들이 많은데
앤디 위어 작가는 마션 결말에 사람을 살리기 위해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여주는 모습이나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외계인과 인간 모두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인간 긍정? 선한 사람의 영향력? 을 강조해서 좋은 것 같습니다.
23/11/14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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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위어 본인도 몇 차례 밝혔듯,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본인의 이상향(?)을 구현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이상향은 상당히 긍정적인 마인드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 같구요.
구급킹
23/11/2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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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역시 문학인지라 인간에 대한 고찰이 담긴 훌륭한 작품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입문으로 글에서도 언급된 테드창의 단편집을 추천드리는데 현재 2권이 나와있고 어떤 단편도 수작 이상 가는 퀄리티이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23/11/1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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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감사해요.
소설 내용에 더해서, 물리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첨단 이론을 이렇게 긴 장문으로 녹여냈는데도 한호흡에 다 읽을 수 있다는게 항상 놀랍습니다.
뜬금없이, cheme님께서 해설해주시는 그렉 이건의 <쿼런틴>은 얼마나 흥미로울까 상상해 봅니다 크크
23/11/1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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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쿠 감사합니다. 사실 서평을 쓰려고 하고 있긴 했어요. 그렉 이건의 다른 책 '내가 행복한 이유'에 대한 서평도 조만간 공유할 예정입니다.
23/11/14 20:24
수정 아이콘
앤디 위어의 두번째 소설 <아르테미스>는 좀 실망해서 이 작품 읽을 때는 기대를 내려 놓았었는데, 다행히 아주 재미있게 감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영화화 된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프로젝트가 자꾸 늦춰지는 것 같아 안타깝네요.
다른 글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23/11/14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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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미스는 아마도 전작 '마션'과 대비되어서 더 초라해 보였을 수도 있었겠습니다.
23/11/14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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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뭔가 10대 여성 특유의 뉴앙스때문에 번역의 문제도 좀 있어 보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 두작품 다 좋아합니다.
aDayInTheLife
23/11/14 20:40
수정 아이콘
'우왕! <프로젝트 헤일메리>다!'하고 들어왔다가 글 길이 보고 노트북으로 다시 들어왔습니다. 크크

개인적으로 앤디 위어 작가의 가장 큰 강점은 외삽한 이야기와 본인이 가지고 있는 낙관적 기술론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저는 테드 창이 현존하는 최고의 SF작가라고 생각하지만, 하드 SF 비스무리한 이야기를 팔릴만 하게 쓰는 능력은 앤디 위어라는 작가가 위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공교롭게도, 이 책에서도 언어의 '번역'에 대해 나오니, 비교해볼만한 가치가 있을지도요. 크크)그 낙관성이 있기에 <마션>이 재밌었고,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괜찮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저도 <아르테미스>는 한 끗이 아쉬웠거든요. 크크
저는 앤디 위어의 세계관에서 고립과 연결에 대한 키워드가 조금 보이는 것 같아요. 제가 읽은 지 오래되어서 기억이 제대로 맞는지 모르겠는데, <마션>이나 <프로젝트 헤일메리>나 둘 다 처음 주인공이 고립되는 데서 시작하거든요. 마션이 같은 종 내에서의 연결과 구원에 대한 이야기라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종 간을 뛰어넘는 수평적 연결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수평적 지위에서 그려지는 두 종의 인물'이라는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저는 이 '낙관성'이라는 측면에서, 앤디 위어 작가의 앞으로의 작품들도 영화나 다양한 매체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과학적 엄밀성이 빈틈없는 수준은 아니지만 꽤 잘 구성되어 있고, 그 위에 굉장히 낙관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인 것 같거든요.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23/11/17 13:33
수정 아이콘
맞습니다. 앤디 위어 작품은 뭔가 고립-고난-역경 극복-연결-회복 의 기승전결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 같습니다. 그 안에 여러 과학적 설정이 그럴듯하게 양념처럼 버무려져 있고요. 그렇지만 이러한 구조적 전형성은 앤디 위어의 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이 구조를 빨리 탈피하고 전형성을 벗어버려야 새로운 작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네요.
23/11/14 20:42
수정 아이콘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책 보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전 마션보다 더 재밌었어요
영화 아주 기대하고 있습니다
23/11/15 01:36
수정 아이콘
저도 너무너무 잼있었습니다 크크
비마이셀프
23/11/15 18:11
수정 아이콘
저도 읽고 울었어요.
23/11/17 13:24
수정 아이콘
영화화 이야기가 나오긴 하던데, 저는 솔직히 별로 기대가 안 됩니다.흐흐
미드웨이
23/11/14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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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라서 이과내용은 싹다걸렀지만 리뷰만 봐도 재밌어보이네요. 분명 우리은하만해도 많은 지적생명체들이 있을텐데 어떤 모습 어떤 문명일지 참 궁금합니다.
23/11/17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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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말입니다. 분명 어디엔가 지적 문명을 이룬 생명체가 있겠죠.
23/11/14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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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한 때 공돌이의 길을 걸을 뻔 했다가 문돌이 길을 걸은 터라...
사실 하드 SF가 관철하여야 하는 과학적 엄밀성에는 사실 무지합니다.
그러나 공돌이 성향이 약간 있는 문돌이가 읽기에도, 꽤 재미있는 소설 아니었나 합니다.

I'm comin', buddy. Hold tight.
가고 있어, 친구. 딱 기다려.

작 중 주인공 그레이스가 (지구로 돌아갈 편도티켓을 포기하면서까지) 로키를 구하러 가면서 하는 말입니다.
저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떠올렸습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도.. 허크는 흑인노예 짐을 구하러 갑니다.
사실 허크가 짐을 '구하러'가는 것 자체가.. 당대 흑인노예를 부리던 미국 사회에서는 하나의 범죄였지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크는 짐을 구하러 갑니다. 짧은 시간이나마 자신에게 주입되었던 도덕과 기타 등등을 모두 버리면서요.
그러면서 허크는 한 마디 말을 하지요.

All right, then, I'll go to hell.
그래, 그러면 내가 지옥에 가지 뭐.

앤디 위어도.. 마크 트웨인도... 그 문장 하나에 담긴 '평범한 선량함'이 주는 감동을
독자들에게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앤디 위어가 마크 트웨인의 위치에 오를 수 있을지까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이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읽고 나서는... 그런 기대를 조금이나마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작품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소설 최후반 말미 부분을 보면서... 저는 영화 '마션'의 끝부분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면서 큭큭댔음을 부연해 둡니다.
23/11/17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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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코멘트 감사합니다. 저도 이 작품이 마션의 스케일 확장판이라 생각하는데, 그래도 그 안에서 버디무비만이 가질 수 있는 감동을 찾을 수 있었네요.
23/11/1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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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재미있음, 다른 책도 추천, 질문?

리뷰, 매우, 좋음 좋음 좋음 좋음 ♪♬♩♬♪♬
23/11/17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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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E-book으로 원문 읽으실 수 있다면 꼭 voice 재생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주 흥미롭고 재미난 로키의 목소리(?)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23/11/14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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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SF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알고있는 (하드) SF의 근본적인 문제점중 하나인 '설명충이 필요하다'를 아주 재미있는 도구(기억상실과 외계인)로 불편하지 않게 풀어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하드 SF를 볼때 흥미있는 부분은 얼마나 부드러우면서 참신하고 납득가능한 방법으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아주 마음에 드는 작품이죠.
23/11/17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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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느 하드 SF나 한 개 이상의 big lie는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관건은 그 big lie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그 안에서 나름 일관성과 연결 구조를 이어갈 수 있냐는 것 같습니다. 앤디 위어는 그 연결을 최대한 만들어 보려 노력했지만, 솔직히 여기저기 구멍난 설정을 다 메꾸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VinHaDaddy
23/11/14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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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글 감사합니다. 일단 추천부터…

앤디 위어는 “클리프행어형 SF”를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둘을 잘 버무리지만 핵심은 앞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데뷔작 마션에서도 ‘화성에 혼자 남은 사람’이라는 대전제를 만들기 위해 ‘실은 화성에 그 정도 세기의 모래폭풍은 불 수 없다’는 점은 무시했던 전례가 있고,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도 ‘먼 우주에서 혼자 정신을 차린 과학자가 공학과 화학레벨은 인류보다 뛰어나지만 물리 수준이 떨어지는 외계인을 만나 위기에 함께 대처한다’는 설정을 짜 놓고 그 설정에 맞추기 위해 몇 가지 무리수를 두죠. 글에서 언급하신 아스트로파지 문제도 그렇고, 에리디언들의 설정도 그렇고, 그레이스의 코마 문제도 그렇고. 글 내에서의 정합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응?’ 하게 만드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저는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매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것은 작가가 클리프행어 장면을 계속 만들고 그걸 해결해나가지만, 그럼에도 말씀하셨던 대로 방대한 양의 조사를 통해 SF로서의 정체성을 잃지는 않는 점이 첫 번째이고, 위에 다른 분들께서 댓글로 다셨듯 앤디 위어가 ‘인류애의 실현에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글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두 번째입니다. 낙관적이라서, 마션도 헤일메리도 객관적으로 보면 엄청난 위기상황이지만 유쾌합니다. 그 유쾌함 덕분에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에 ’쿼런틴‘이나 ’내가 행복한 이유’를 다루신다니 매우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23/11/17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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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행복한 이유 리뷰는 잘 아시다시피 이 책이 단편 모음집이라 각 작품에 대한 서평이 될텐데, 그래도 뭔가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되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도 있기에 재미날 것으로 생각합니다.^^
츠라빈스카야
23/11/15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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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저도 재미있게 읽은 소설입니다. 전체적으로는 제노나이트가 너무 무안단물급 아이템이었지 않나 싶긴 한데...흐흐..

영화화된다는 것도 기대중인데, 개인적으론 마지막에 지구쪽에서 비틀즈 도착 발견하는 씬 정도 넣어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23/11/17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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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고 싶습니다. 제노나이트.
Serapium
23/11/1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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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책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두 외계종족이 마주쳤는데 서로의 기술력이 엇비슷하다는건 사실 우주적 관점에서 봤을때 말도 안되는 확률이죠. 그런데, "더 나은 기술력이었다면 여기 올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더 못한 기술력이었다면 여기 오지 못했을거야!" 라는 작중 가설로 이 확률을 설명했을때, 저는 이 책과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이렇게나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자연스러운 전개 또한 갖추고 있다는 점은 너무나 매력적입니다.

다만, 도입부의 과학과학한 이야기 부분 때문에 많은 분이 포기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 주변에 열심히 이 책을 전도했지만, 딱 한명만 이책을 끝까지 읽더군요 흑흑...
23/11/17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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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에도 언급했듯, 흑체복사이론을 조금 깊게 알아두어야 하는 것이 장벽으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있는 독서모임에서도 회원분들이 그 초반 설정 때문에 고생하셨다는 후문이...^^
23/11/16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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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 높은 리뷰 너무 감사합니다
23/11/17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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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급킹
23/11/2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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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저도 이 책을 이북대여로 1번, 실물로 1번 읽었습니다. 이공계적 디테일은 솔직히 제가 비평할 지식이 있는게 아니지만 어쨌든 A는 B고 B는 C니까 A는 C야 정도의 논리는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에 작가 특유의 구구절절 설명법이 있음에도 재밌게 봤습니다.

제가 가장 인상깊게 본 부분은 주인공과 외계인이 처음 조우하고 가장 초보적인 의사소통부터 시작해서 미션을 같이 수행할 수 있을 때까지 서로의 언어와 소통체계를 이해하는 그 디테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두 종족 모행성의 자연환경과 신체, 정신적인 차이점을 드러내는것도 좋았고요. 솔직히 테드창의 그 유명한 단편에 꿀리지 않는다고 볼 정도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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