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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5/01 03:21:57
Name 삼화야젠지야
Subject [콘솔] [스포]파이어 엠블렘 - 풍화설월 리뷰 (수정됨)



1 캐릭터

이번 작은 흔히 말하는 캐빨물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원래 턴제 RPG 자체가 육성을 중시하고, 공들여 키워낸 캐릭터에는 자연스레 애착이 붙습니다. 때문에 턴제 RPG가 캐릭터에 집중하는건 그렇게 새로운 전략도 아닙니다. 그냥 집중하는게 아니라 풀악셀을 밟아버린게 다를 뿐이죠. 학원물로 부추기고, 풀보이스에 방대한 대사량까지 칭찬할 곳이 한두군데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방대한 대사량은 설정의 디테일로 이어집니다. 파엠의 장점은 플레이어블 캐릭터들 하나하나가 디테일한 설정을 가지고 있어 이야기를 풀어낼 때마다 강력하게 몰입을 유도하는 점일겁니다.

단순히 [이 캐릭터는 이런 개성을 가지고 있어. 성격은 이렇고 외모는 이래. 멋지지?] 로 그치지 않습니다.

[이 캐릭터는 어릴 때 이런 경험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이런 성격을 가지게 되었어. 때문에 부모와의 관계는 이렇고 그 교류로 사귀게 된 친구 관계는 이래. 이 친구랑 이런 사건을 겪어서 이런 호불호가 생겼고, 선물은 저런걸 좋아해.]까지 나아갑니다.

서로의 이야기가 얽히고 섥혀 있으니 각자의 시점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래 지낸 사이끼리는 쌓인 이야기도 많은만큼 다양한 상황에서 튀어나옵니다. 예를 들어 식사 중에서 서로의 입맛을 지적하거나, 마굿간을 정리하면서 넌 옛날부터-하며 말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전쟁에서 칼을 맞부딪히기 전에 옛 일을 들먹이기도 합니다.



2 스토리

1회차는 청사자, 2회차는 흑수리로 진행했습니다.

풍설의 스토리는 솔직히 별로입니다. 청사자 스토리가 나쁜건 아니고 좋은 장면도 많았습니다만 곳곳에 미흡한 곳이 너무 많이 보입니다. 흑수리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게 치명적인 문제로 느껴지지 않는건 메인스토리보다 지원회화의 비중이 더 많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지원회화의 퀄리티가 워낙 뛰어나다보니, 메인스트림 보다 지원회화 쪽이 본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풍화설월의 스토리는 기본적으로 군상극이란 느낌이 듭니다. 전쟁물치고는 전투 하나하나가 너무 대략적으로 진행되고 전개도 급전개가 많습니다. 5년 뒤 2부가 열리는 것도 좀 더 자세히 묘사했으면 좋았으련만...전체적으로 미흡한 스토리가 지원회화에 업혀간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캐릭터의 매력이 전방위적으로 열일하고 있습니다.

청사자는 평이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관의 커다란 음모보다는 개인에 포커스를 맞춰놓고, 왕도적인 클리셰를 적극 활용했기에 크게 흠 잡을건 없습니다. 다만 심리묘사에 실패해서 주역의 극단적인 심리변화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결국 청사자 루트는 디미트리의 트라우마가 시작한 더스커의 비극의 진실은 넘기고, 디미트리가 5년간 어떻게 변했는지 과정도 생략하고, 그러다보니 왜 갑자기 이렇게 처참히 망가졌어? 또 그렇게 망가졌는데 이렇게 간단히 개과천선해? 하고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청사자는 학생들의 끈끈한 관계도와 매력으로 캐리하는 루트입니다. 디미트리-펠릭스-잉그리트-실뱅이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기 때문에 지원회화에서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수시로 튀어나옵니다. 디미트리-길베르트-아네트-메르세데스도 그렇고 왕자를 중심으로 가지치듯이 뻗어간 인연을 톡톡히 써먹고 있습니다. 정말 촘촘한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고, 같은 사건을 각자의 시선으로 대변해 서로 다른 영향을 받은 인물들은 매력적입니다.

흑수리는 거의 에델가르트의 얼굴 원툴입니다. 개성이 굉장히 강한 학생들이 모여 있고, 색이 너무 강하다보니 물과 기름 같이 느껴집니다. 청사자 이후 흑수리를 해서 더 그렇게 느껴진거 같습니다. 주연 개인의 매력으로 이끌어 가는 루트지만, 급조된 루트답게 길이도 짧고 어색한 부분도 꽤 많습니다. 그래도 세계의 모두가 널 버려도 나만큼은-하는 구도는 매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에델가르트가 왜 교단을 미워하는지 이유를 제시하는데 실패했습니다. 때문에 그녀의 대의명분도 설득력을 잃어버립니다. 적과의 동거라는 미묘하고 흥미로운 소재도 대충 넘겨버립니다. 입장이 어떻게 다르고 어떤 충돌이 있었는지, 정치적 입지는 어떻게 차이나는지까지 다 넘어갑니다. 제국의 정치는 황제가 다 장악한건지? 섭정의 영향력은 얼마나 남아 있는지? 군사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되는지까지 다.

무엇보다 다른 반에서 영입한 친구들까지 포함, 사정을 모르던 이들이 가문의 입장을 무시하고 에델가르트에게 투신하는 과정이, 설득이나 교감보다는 '앗! 얼떨결에 따라와버렸다!'입니다.

참 역설적이게도 제국 루트의 참맛은 청사자반 친구들입니다. 잉그리트와 메르세데스를 영입했는데 왕국과의 전투에서 상호작용이 정말 강력했습니다. 예시를 하나 들어보자면.

실뱅 : 물러나 잉그리트. 죽고 싶지 않으면.
잉그리트 : 거절할게. 나는 네 편이 될 수는 없어.
실뱅 : 하하. 고집 센건 예전부터 변함이 없네. 그런 점이, 꽤 마음에 들었다니까.
잉그리트 : ...웃음이 다 나오네. 네가 마지막으로 구애한 여자가 나라니.

거듭 강조하지만 성우가 연기를 진짜 진짜 잘해요.



3 전투

전투 자체는 단조롭습니다. 범위 끝에 걸쳐서 유도한 다음 각개격파.

하지만 난이도 조절의 절묘함이 전투의 수준을 끌어올립니다. 어렵기 때문에 전투가 단순하다고 플레이도 단순하게 하면 전원생존이 어렵습니다. 진군 경로나 배치 계략 등을 생각하며 플레이해야하고, 실수하면 영구적인 죽음이 닥쳐옵니다. 리트라이의 피로감이 높은 시스템이지만 천각의 박동이라는 시간 되돌리기를 시스템으로 넣어놔서 불쾌감은 적었습니다.

기본은 단조롭다고 했지만 지형과 증원군을 잘 꾸며놔서 전투가 지겹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천각의 박동으로 리트라이 피로도를 낮춘 것도 한 몫했습니다. 고민하고 실패하고 다시 되돌려서 도전할 만한 난이도를 잘 구현해놨고, 클래식이라면 모두 다 살리기 위해 천각의 박동까지 다 써버리고 다시 도전하는 일도 드물지 않습니다.

사실 SRPG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는 분들도 많을겁니다. 저도 SRPG를 재밌게 한건 손에 꼽고요. 그래도 치밀하게 디자인된 전투는 꽤 도전할 맛이 났습니다. 육성할 동기부여도 동시에 겸한다는 점이 좋았고요.

턴제 RPG들이 고전의 인식을 벗어던지기 위해 제각기 변주를 꾀하는 요즘 시대에, 전투를 어떻게 바꿀 생각보다 우리가 맨날 하던걸 그대로 하되, 지금보다 훨씬 더 잘만들면 저들도 재밌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엿보였습니다. 그리고 그에 걸맞게 높은 완성도를 보여줫고요. 정면돌파는 그게 정답이란 보장이 없더래도 매력적 아닙니까.

좀 더 복잡한 파훼법을 짜는 전략적인 요소는 기사단의 계략에 딸려 있는데요, 하드까지는 이걸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전투는 단순명료한 편입니다. 하지만 데미지 감소나 이속 증가 버프 같은건 활용하는 맛이 쏠쏠 했습니다.

흑수리 같은 경우 비병을 넷 정도 양성해서 참수작전을 즐겨 했는데 쏠쏠히 재미를 봤습니다. 결과적으로 레벨링이 안되서 최종보스전에 온몸을 비틀어야 했지만....



4 총점

여러 단점이 있지만 그만큼 장점도 확실하다고 느꼈고, 장점을 고려할 때 카바칠 만한 단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회차를 플레이하며 장점들이 더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점수를 좀 더 올려주고 싶습니다. 90점입니다.

디비니티 DOS2보다 2점 낮고, 레알세랑 같은 점수가 되겠네요. 정말 잘 만들었고, 장르 팬에게는 훌륭한 작품, 아니더래도 문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반면 캐릭터나 SRPG에 흥미가 없으신 분들이 보기에는 너무 고득점이 아닐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취향의 영역에서 갈리는 문제로 점수를 깎는데 동의하지 않는 편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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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와매트
22/05/01 09:44
수정 아이콘
얼굴 원툴이라니...
이브이
22/05/01 09:50
수정 아이콘
킷사마! 그말 취소해!!!
화려비나
22/05/01 10:51
수정 아이콘
올려주신건 청사자반팬들과 흑수리반팬들이 서로 자기네 최종전 BGM이라고 우기는 그 곡이네요. 풍화설월 OST 중에 제일 좋아하는 곡 중 하난데 잘 듣고 갑니다.
아쉬운 스토리를 캐릭터성이 충분히 보완하고 전투 자체도 괜찮게 재밌는 SRPG 수작이라는 본문 내용에 대체로 공감합니다.

다회차를 유도하는 게임이니만큼 다회차플레이와 관련하여 제가 느낀 단점, 장점 하나씩 추가해본다면
단점 : 초회차까지만 해도 게임의 큰 재미포인트였던 산책파트가 회차를 반복할 수록 지겨워지고 게임을 루즈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함
장점 : 빌드 육성이 상당히 자유로움, SRPG로서 큰 메리트이자 다회차 플레이의 동기를 부여해주는 요소로 작용함
삼화야젠지야
22/05/01 11:03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 장단점에 100% 동의합니다. 산책은 정말 정말 정말 재밌는 파트인데 비중이 가장 큰 1부의 산책은 다회차를 하는 와중에도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 너무 컸습니다. 다회차 요소는 의외로 잘 준비했습니다만, 정작 그걸 활용해서 산책을 스킵하면 게임의 재미가 반감되어버리는 문제가....

전투가 단조로운만큼 육성은 굉장히 다채롭게 열어뒀죠. 창을 쓴다고 꼭 드래곤을 못갈 것도 없더라구요. 페르디난테로 창 들고 드래곤 타고 다니는 맛이 있었습니다.
페로몬아돌
22/05/01 10:54
수정 아이콘
1회차는 엄청 재밋게 하고 2회차 부터는 뭔가 텐션이 떨어져서 중도 하차... 역시 미연시라 남캐를 공략 못하겠....
삼화야젠지야
22/05/01 11:03
수정 아이콘
결국 1회차가 재밌다는 점에 대해서는 다들 동의할거 같은데, 게임이 스토리를 제대로 알려면 다회차를 전제한다는 점이 너무 컸습니다 크크.
잠이온다
22/05/01 11:03
수정 아이콘
SRPG를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이겜이랑 엑스컴 말고는 잘만든 SRPG가 드문데, 이게임은 캐릭터 게임과 전략성을 둘 다 잡은편이라 잘만든 겜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스토리적으로는 좀 불만인게 메인 스토리가 너무 별로라는점. 메인 스토리는 맵 재활용에 1부는 복붙이라 4개루트를 다하긴했지만, 교단은 솔직히 없어도 되는 루트고 1부도 토씨하나 안바뀌고 그대로 갈거면 그냥 스킵 기능 있었어야 한다고 봅니다. 파이어 엠블렘이란 시리즈가 원래 메인 스토리 그딴거 필요없다는 마인드인지 지원회화 원툴겜이긴 했습니다만...(에코즈 제외)
삼화야젠지야
22/05/01 11:07
수정 아이콘
이게 제일 인기 많은 캐가 남자한테는 황녀, 여자한테는 왕자일텐데. 그 둘을 고르면 1회차만으로는 스토리가 영 부실하다는게 아쉽죠. 1회차를 했을 때 제일 재밌는 게임이라 다들 금사슴을 많이 추천하시는건데, 저는 지원회화 게임이라고 생각해서 청사자를 추천하는 편입니다. 진짜 애들 면면이 너무 호감이고 설정도 치밀하고.

저도 2회차 1부를 빠르게 넘기는데 중점을 둬서 1회차 기술랭크 해금한 리시테아/잉그리트로 후다닥 밀었는데 1부를 스킵하면 그건 그것대로 애착이 안붙어서 재미가 반감되더라구요. 1회차 청사자 동창회는 지금 생각해도 애착 활용의 끝판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뽕이 찼는데.....
이민들레
22/05/01 13:46
수정 아이콘
Srpg에 흥미를 붙이신 분들... 배틀브라더즈 강추합니다!!!! 풍화설월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긴 하지만...
22/05/01 17:32
수정 아이콘
스토리의 단점이 크긴 한데

괜찮은 게임성, 캐릭성과 [브금]이 있어서 다 용서가 됩니다

1회차랑 노인계 노 DLC 루나틱 플레이가 진짜 재미있었어요 크크
비선광
22/05/01 17:42
수정 아이콘
특수리반애들은 어딘가 하나씩 다 나사가...
음흉한 책사, 잠꾸러기 마성의남자, 히키코모리, 열혈바보 등등등..
그래도 1회차로해서 정이가네요 들크크
The Greatest Hits
22/05/01 18:58
수정 아이콘
1회차 노말 - 청사자 2회차 하드 - 흑수리 3회차 루나틱 캐주얼 - 금사슴 4회차 루나틱 클래식 - 교단 진행하고
5회차 루나틱 클래식으로 청사자까지 딱 끝내고 쉬고 있습니다.(모두 노인계)

신기하게 이게임은 회차를 진행하고 난이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게임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네요.
400시간 넘어갈만큼 엄청 달리고 나니 더 진행할 엄두가 안나네요.

하드까지는 전략을 잘짜면 그냥 되는데 루나틱 캐주얼은 육성이 무척 중요하고
루나틱 클래식은 모든 것을 마스터해야 합니다.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와 죽으면 끝이다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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