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22일에 맞춰 적어보려고 계획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밀린 건 비밀입니다.)
*글이 워낙 장문이라 편의상 선수 존칭을 생략한 점 양해 부탁 드립니다.
언젠가 '비운의 준우승자' 홍진호의 이야기가 아닌,
'우승자' 홍진호의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했는데 이제야 적어 봅니다.
홍진호,
'황제' 임요환의 영원한 라이벌이고, 2의 아이콘이며,
우승이 없는 비운의 2인자로 기억되는 레전드입니다.
그의 우승이 없는 부분을 두고 '테란맵' 때문이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때문에 그의 우승이 없는 부분이 그 시기 테란 우승자들의 폄하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또한 그가 고군분투했다고 알려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용호가 있었고, 박경락이 있었습니다.
역사는 고정된 사실이지만, 그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재주는 부족하지만 홍진호의 '우승'에 대해 조금은 다른 해석을 해보려 합니다.
1. 코카콜라배 맵
임진록 결승이 펼쳐졌던,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맵 라인업을 두고 이야기가 많습니다.
일단 1.07 기준에 맞춰서 이전 대회에 쓰였던 홀오브발할라와 레가시오브차를 수정했고,
라그나로크라는 신맵도 만들고 했는데 1.08이 발표됐죠.
지금이라면, 아니 조금만 더 뒤였다면 빠르게 맵 수정이 됐겠지만
이때는 맵 전문팀이 제대로 존재하지도 않던 시기였고, 맵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려운 때였습니다.
(무려 엄재경 해설이 만든 정글스토리와 버티고가 공식 맵으로 쓰이던 시기입니다.)
테란을 억지로 띄우려고 했다기보다는 체계적인 맵 시스템 부재가 크게 작용했던 사안입니다.
당시 맵 4개를 보면, 라그나로크는 테란이 절대 유리한 맵,
네오레가시오브차는 저그가 절대 유리한 맵이었습니다.
몇 번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저는 지금 시선으로 고전 맵들을 평가하는 부분을 매우 경계합니다.
네오정글스토리는, 지금 시선으로 보면 대회를 하면 안되는 맵이지만
21년 전인 그때는 지금과 완전히 개념이 다르던 시기였습니다.
이윤열 등에 의해 더블커맨드가 안정화되기도 전의 고전 시대였고, 게임양상도 정말 많이 달랐죠.
당시 네오정글스토리는 테란이 유리하다고는 해도.
테란과 저그가 어우러져 게임을 진행할 수 있는 정도의 맵이었습니다.
네오홀오브발할라는, 양 선수의 스타일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맵이었습니다.
반섬맵 스타일에서 임요환의 드랍십과 홍진호의 폭풍스타일,
양 선수의 화려하고 빠른 기동전이 빛을 발할 수 있었고
그래서 코카콜라배 결승전 1경기에서 그런 명승부가 나올 수 있었죠.
어떻게 보면 맵의 한계로 네오홀오브발할라의 임진록이 모두 황제의 승리로 끝났다고 볼 수 있었지만,
당대에 홍진호를 상대로 그 맵의 한계로 인해 승리를 이끌어낼 정도의 강자는 임요환뿐이었습니다.
(와이고수 기준) 홀오브발할라 시리즈에서 임요환의 저그전은 7전 전승 (vs 홍진호 3승),
홍진호의 테란전은 5승4패, 임요환전 3패를 제외하면 5승1패입니다.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1,5경기가 네오홀오브발할라였던 것은
홍진호 입장에서 (명승부를 만들 수 있었던) 축복이자, (그 승부의 패자가 된) 저주였습니다.
이 대회에서 아쉬웠던 점은 물론 많습니다.
프로토스가 본선에 둘이었기 때문에 테란 vs 저그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
지금 같았으면 라그나로크를 중도 퇴출시켰어야 했지만 당시에는 그런 개념 자체가 없었다는 점,
재경기 이후 재재경기를 하지 않고 점수제로 승부를 가렸는데 임요환이 수혜자가 된 점,
'노동환 룰'이 가동되기 전이었는데 하필 임요환이 라그나로크 경기가 유독 많았던 점...
(노동환이라는 팬분이 제안한, 4인 풀리그 체제에서 맵을 고르게 편성하는 방식입니다)
다만 이 부분은 스타리그가 초창기였기 때문에 미숙함이 드러났다고 보는 것이 맞고,
특정 종족을 띄우거나 죽이는 형태의 개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죽었다면 프로토스가 죽었죠 (...)
실제로 이 부분에 대한 많은 비판을 받으면서 직후 대회에서 재경기 이후 점수제는 폐지됐으며,
'노동환 룰'이 적용되면서 한 선수가 특정 맵에서 많은 경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사라졌습니다.
2. 홍진호는 왜 결승에서 패배했음에도 주목을 받았는가 - 임요환의 최전성기
2001년 상반기의 임요환은 언터처블에 가까웠습니다.
임요환은 전략적인 성향만 돋보였고, 이윤열-최연성만큼의 포스를 가진 적은 없다고 흔히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임요환이 물량이라는 면에서 밀리기 시작한 건 2002년 이후 이윤열-조용호-박정석이 두각을 나타내면서였고,
이때의 임요환은 달랐습니다.
이 시기 황제의 총전적은 (와이고수 기준) 64승 21패 승률 75.3%,
저그전은 30승5패에 승률 85.7%였고, 약점이라고 평가받았던 프로토스전도 21승8패, 승률 72.4%였습니다.
(테란전이 13승8패로 그나마 인간다웠는데, 테란 라이벌이었던 김정민과 승패를 주고받은 영향이 있습니다)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에서 장진남을 3:0으로 완파하며
테란 첫 스타리그 우승자가 된 임요환은 이후 몇 차례 5전제를 더 가집니다.
비슷한 시기 열렸던 게임큐 스타리그에서도 우승했고,
최인규를 상대로 한 결승전 스코어 역시 3:0이었습니다.
기욤과의 결승전이 성사되지 않아 아쉬워 했던 팬들을 위해 임요환 vs 기욤의 Last 1.07이 성사됐고,
또 3:0으로 승리했습니다. 이후 프레드릭과의 특별전도 3:0... 아예 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임요환을 상대로, 사상 최초의 체육관 이스포츠 결승에서,
졌지만 무려 두 경기를 따낸 홍진호는 단번에 임요환의 라이벌로 떠오를 수 있었습니다.
2경기 네오정글스토리에서 홍진호가 1:1을 만들었을 때,
중계진이 "임요환이 5전제에서 한 경기 패했다"며 흥분했던 기억이 나네요.
3. 왕중왕전 우승, 그리고 홍진호의 시대
홍진호는 이후 스카이배에서도 4위를 기록했습니다.
"아니 임요환은 이때 3연속 결승을 갔는데 이게 뭐 대단해?" 하실 수도 있지만,
2000년의 군웅할거 시대까지 한 선수가 장기간 상위권을 유지한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벤처 붐과 함께 다양한 리그와 다양한 팀이 약간 정리되지 않은 채로 많이 생겨난 이유도 있습니다)
온게임넷 스타리그는 더더욱 그랬습니다. 연속으로 4강 이상을 간 최초의 선수가 임요환, 그 다음이 홍진호였습니다.
임요환이 3연속 우승을 했다면 왕중왕전은 열리지 않았겠지만,
스카이배를 김동수가 우승하면서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두번째이자 마지막 왕중왕전이 성사됐습니다.
2001년 두 명의 우승자(임요환-김동수)와 두 명의 준우승자(장진남-홍진호)가 참가했고,
세 명의 3위(기욤-조정현-김정민)가 승부를 가려 조정현-김정민이 추가 합류했습니다. (기욤 지못미...)
풀리그 과정에서 홍진호가 4승1패로 결승에 선착했고 (1패는 임요환)
조정현-김정민-김동수가 3승2패 3자 동률이 되어 재경기까지 간 끝에 조정현이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임요환은 3연속 우승에 실패한 후유증으로 풀리그 초반 3연패를 했고 2승3패로 마무리했습니다.
*장진남은 5전 전패 (...)
바이오닉 전술에 고질적인 약점이 있었던 조정현이었기에 결승은 홍진호의 우승 예상이 많았고,
결국 2월 22일(!) 펼쳐진 결승전에서
홍진호는 3:0 완승과 함께 자신의 커리어에 우승을 추가합니다.
(21분 인터뷰에서 "준우승의 황제라는 닉네임을 얻을 뻔 했는데 우승함으로써 안 얻게 된 게..."
이 부분을 보니 마음이 복잡해지네요.
당시 홍진호는 1월에 KPGA 위너스 챔피언십 결승에서 성학승에게 2:3으로 패하며 준우승 1회를 추가한 상황이었습니다)
홍진호는 물론 01년부터 03년까지 꾸준히 높은 곳에 올랐던 강자였지만,
가장 강했던 시기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저는 이때를 말합니다. 2002년 1월부터 3월,
이때 홍진호의 전적은 (와이고수 기준) 47승15패로 승률 75.8%,
변수가 많은 저그전만 10승8패로 5할이 조금 넘었고
테란전은 21승3패 승률 87.5% (!) / 프로토스전은 16승4패 승률 80%였습니다.
이 시기 커리어로는 왕중왕전 우승, KPGA 투어 위너스 챔피언십 준우승에
이후 펼쳐진 KPGA 투어 1차리그에서 전승으로 결승까지 진출했습니다.
왕중왕전 직후 펼쳐진 스타리그 시드결정전에서도 1위를 차지하며
당당히 [온게임넷 스타리그 1번 시드]를 차지했습니다.
(참고로 첫 왕중왕전 끝나고 나서는 왕중왕전 우승자-준우승자였던 기욤과 국기봉에게 시드를 줬고
이전 스타리그 우승자-준우승자였던 김동수-봉준구에게 시드를 주지 않았는데,
이게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아 이때는 왕중왕전 우승자-준우승자(홍진호-조정현)와
이전 스타리그 우승자-준우승자(김동수-임요환) 4명 모두에게 시드를 주고,
1~4번 시드 순서를 가리기 위한 시드결정전을 가졌습니다)
'테란맵에 울었던 비운의 강자'가 아닌, '당당한 최강자' 홍진호의 시대였습니다.
생각보다 글이 길어져서 2편으로 넘어갑니다. 이 주제는 2편이 적당할 것 같기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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