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주차에 연이어진 업셋들로 LEC의 순위 경쟁이 맛있게 비벼졌습니다. 근래 유럽의 롤 이스포츠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치열한 다자간의 선두 경쟁이 스프링 내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프나틱 (7승 3패)
세금처럼 내주는 힐리생의 쓰로잉에서 이어지는 패배를 제외하면 상당히 빠르게 팀의 합과 경기력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뷔포는 10번의 게임에서 9개의 서로 다른 탑 챔피언을 다루었습니다. 그 안에는 렝가, 자크, 스웨인, 신지드 등 정말 의외의 픽들도 함께 섞여 있었습니다. 원래 챔프폭이 넓은 선수고 지난 시즌에도 이미 사파 픽들을 종종 다루긴 했습니다만, 고삐를 쥐던 영벅이 떠나면서 완전히 리미트가 풀려 자신의 강점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습니다. 올해 팀의 에이스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러한 다채로운 탑 픽들을 중심으로 여러가지 조합을 시도하고 있고, 유럽에서 미드 오른 꿀을 장 잘 빨고 있는 팀이기도 합니다. 미시의 밴픽 중에서는 사실 물음표가 절로 띄워지는 의문스러운 밴픽도 있긴 했고, '이거 그냥 선수들이 자기 하고 싶은거 뽑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돈이 안 된 느낌도 간혹 있었는데, 시즌이 진행되면서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 느낌이긴 합니다. 오늘 오리진과의 경기는 컨셉에 맞게 잘 짜여진 밴픽부터 그걸 수행하는 인게임 내용까지 상당히 훌륭했습니다.
새롭게 합류한 정글러 셀프메이드도 짧은 적응기를 거치고 팀에 녹아드는 중입니다. 초반 게임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피지컬이 워낙 좋은 선수라 교전에서는 멋진 장면들을 자주 만들어내고 있네요.
지난 시즌 내부 사정으로 시끄러웠던 팀 답지 않게, 팀내의 분위기도 부드럽게 잘 수습이 된 것 같고,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앞으로의 1년이 기대되는 시즌입니다. 팀 분위기가 개판 오분전인 상황에서도 롤드컵 8강은 갔던 팀이니까.. 팬들 사이에서 가장 큰 걱정거리인 힐리생의 주사위에 대해서는 레클레스가 감싸고 지지하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힐리생은 던지는 것 이상으로 캐리하는 선수이고, 정규시즌에 얼마나 던지든 중요할 때 잘하면 그만이라고. (과연 중요할 때 안 던질지는..?)
G2 이스포츠 (7승 3패)
2주차, 3주차 게임에서는 밴픽에서 인게임 경기력까지 상당히 훌륭했습니다만, 이후 삐걱대며 많은 약점을 노출했습니다.
퍽즈-캡스의 포지션 스왑이 가장 입방아에 오르고 있습니다. 사실 2, 3주차 좋았을 때의 모습을 기준으로 하면 캡스와 퍽즈의 포지션 스왑은 오히려 잘 된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경기력이 좋았는데, 4, 5주차는 두 선수 모두 경기력이 저조하다 보니 비판이 나오는것은 당연하긴 합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지난 시즌 G2를 상징하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플레이들이 높은 확률로 쓰로잉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치명적입니다. 선수 개인의 폼 문제일수도 있겠고, 메타와 어긋나는 문제일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쨌거나 G2의 가장 큰 강점이던 10~20분 사이의 스노우볼링에 계속해서 제약이 걸리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것은 G2의 2, 3주차 선전과도 연결지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당시 G2는 탑 소라카를 중심으로 중후반 경쟁력이 강한 조합을 운용했고, 안정적인 운영을 펼치며 강한 한타력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는 게임을 했었죠. 그 과정에서 '퍽즈는 작년 미드 캡스보다 안정적이고, 캡스는 작년 원딜 퍽즈보다 안정적이다' 라는 느낌을 얼핏 줄 정도로 단단한 모습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작년의 쿠세(?)가 남은 것인지, 난타전으로 승리를 따낸 프나틱전 이후 팀의 방향성이 고장난 것인지, 4주차 이후부터 욕심을 부리는 플레이가 굉~장히 많아졌고 대부분은 결과가 좋지 못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유럽 정상 수준의 폼을 회복할 팀이긴 합니다만, 그 시점이 어느 때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뭐 이러나 저러나 아직 공동 선두의 자리는 지키고 있긴 하고,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임은 아직까진 변함없긴 합니다.
미스핏츠 게이밍 (7승 3패)
2020년 LEC의 가장 큰 반전. 꼴찌 후보로 꼽히던 팀이 상위권 경쟁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는 작년 LCK의 샌드박스와 유사한 느낌의 팀입니다.
신인 정글러 레이조크의 놀라운 캐리력, 2015년의 전성기로 회춘한 페비벤, 우수한 시야 장악력에서 이어지는 오브젝트 운영, 안정적인 중후반 데미지 딜러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주고 있는 비보이의 깜짝 활약까지. 오늘 연승이 끊기긴 했지만 7연승을 달리던 팀이었고, 순수하게 선수의 이름값이 아닌 팀의 경기력만 놓고 봤을때는 유럽에서 가장 강한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는 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라인전부터 우위를 점하고 게임을 풀어가는 팀이라기보다는, 레이조크를 중심으로 팀적인 설계로 이득을 보고 그걸 굴리는 팀인데, 요즘같은 정적인 메타에서 그런 주도적인 스노우볼링을 깔끔하게 실행해내는 팀이 드물다는 점에서 미스핏츠는 특기할만한 면이 있는 팀입니다.
다만 이 선수들의 기본 체급이 과연 다른 최상위권 팀들과 꾸준히 경쟁할 역량이 되는가는 아직 확실히 말할수 없습니다. 레이조크, 페비벤, 비보이의 현재까지 경기력이 매우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분명 개인보다는 팀워크에 더 방점을 찍고 평가할수 밖에 없는 팀입니다.
작년의 샌드박스가 그랬듯이, '이 팀이 과연 언제까지 잘할까? 결국 언젠가는 미끄러지겠지?' 하는 의구심 섞인 시선이 계속 따라다닐 수 밖에 없는 팀이기도 합니다. 결국 마지막 플레이오프 무대까지 가서 증명하기까지 검증의 요구는 꾸준히 달라붙을 것 같습니다.
덧붙이자면,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 새로 팀의 전략코치로 합류한 어메이징의 공헌도 높게 평가받을 부분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밴픽과 초반 설계에서 기여도가 결코 적지는 않을 것 같아서..
오리진 (7승 3패)
'드래프트 킹덤'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메타에 가장 잘 맞는 밴픽으로 안전한 승리를 따내는 팀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한편으로는 밴픽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게임에서는 생각보다 별 거 없이 추하게 무너지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중후반 성장 기대치가 좋은 조합을 쥐고, 준수한 라인전 + 절지의 초반 운영을 바탕으로 중반 이후까지 갈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 후, 편안하게 승리를 떠먹는 느낌의 게임이 많습니다. 게임 운영이 적극적이지 않고 수동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어쩌면 메타에 부합하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강팀들을 상대로는 '성장 기대치가 좋은 조합을 쥐고도 중반까지 무난히 끌고간다' 는 전제 자체를 성립시키기 쉽지 않기 때문에, 그걸 커버하는 과정에서 밴픽이 꼬이거나 혹은 인게임 플레이에서 조급한 모습으로 샷콜링이 흔들리는 모습이 자주 보입니다.
많은 이들의 우려하던 오세아니아 출신의 서포터 데스티니는 훌륭하게 LEC 무대에 안착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현재 오리진의 운영이 다소 수동적인 면이 있는데 그 약점을 잘 채워주는것이 데스티니의 공격성과 이니시에이팅입니다. G2전에서 털린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긴 하지만, 나머지 경기들에서 데스티니의 활약은 이번 시즌 LEC 서포터들 중 명백히 상위권입니다. 유럽의 서폿 풀이 매우 협소한 상황에서, 도박이었던 데스티니의 영입 성공은 오리진 코칭스태프와 데피시오를 아낌없이 칭찬할 만 합니다.
알파리와 절지의 활약에 힘입어 현 시점 유럽 최고의 탑정글 캐리력을 보유한 팀입니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탑정글의 캐리력에 대한 의존도가 다소 강해보여 딜러들의 존재감이 생각보다 밋밋하게 느껴지는 감도 있습니다.
로그 (6승 4패)
초반 지표는 LEC 최고의 팀입니다. 라인전 우위, 퍼블, 첫 포탑, 첫 용, 첫 전령 등 대부분의 초반 지표에서 LEC 최상위권을 기록중입니다.
그 강력함이 승리로 충분히 이어지지 못하는 것은 중반 운영이 좀 거친 면이 있고, (충분한 준비 과정 없이 '우리가 싸우면 이겨' 식의 운영이나, 안일한 사이드 푸쉬 등) 밴픽에서의 실책으로 내준 게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탑 소라카를 연이어 내주고도 제대로 공략해내지 못해 2연패를 내준 게임들이 치명적이었죠.
어쨌거나, 순수한 라인전의 힘과, 꽝 붙는 한타에서의 강력함은 여전히 매우 강력해서, 기대할 수 밖에 없는 팀이기는 합니다. 라센은 유체미 경쟁에 이미 진작 합류했고, 최근 메타에서 살짝 고생하는 면이 보이는 인스파이어드를 제외하면 다들 유럽 최상위권 라이너로서의 폼을 보이고 있습니다.
핀의 경우 재기넘치는 플레이로 한타에서 팀을 수차례 구원하기도 했죠. 의외로 세트를 너무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세트를 픽한 2경기에서 모두 전패한 것은 씁쓸하기는 했지만요.
개인적으로 기대했던것보다는 시즌 초반의 기세가 좀 미흡한 팀인데 일단은 인스파이어드가 제대로 본 궤도에 올라야 안정적인 최상위권 경쟁이 가능할듯 싶습니다. 현재로서는 절지, 얀코스, 레이조크, 셀프메이드같은 다른 상위권 정글러와 비교했을때 초반 게임이든 중반 이후의 운영이나 한타든 비교우위에 서는 면이 딱히 없으니까요.
매드 라이언스 (6승 4패)
LEC 무대경험이 현저히 부족한 신인들을 가득 모아놓은 팀 치고는 굉장히 선전 중입니다. G2와 프나틱같은 강팀들을 상대로도 업셋을 만들어낼 정도의 저력이 있습니다.
기대를 모은 신인들 카르찌, 쉐도우, 카이저 모두 기대치를 웃도는 데뷔 시즌을 보내고 있습니다. 카르찌는 이미 세 차례 POG를 손에 쥐었고, 한타에서 보여주는 집중력과 경기 내, 외적으로 보여주는 쇼맨쉽을 보면 확실히 차세대 LEC를 이끌만한 스타가 될 재목입니다.
쉐도우는 현재의 기량보다도 미래의 잠재력이 훨씬 크게 보이는 선수입니다. 01년생의 어린 정글러이기도 하고, 운영의 묘가 아직 부족한 감은 있지만 순간순간 보여주는 피지컬은 괴물 신인이라는 평가를 하기 부족함이 없습니다. 리신으로 보여주는 한타에서의 슈퍼플레이는 어우야
휴머노이드는 몇 차례 거하게 쓰로잉하는 장면이 매우 인상깊지만, 전반적인 활약과 지표를 보면 그래도 팀을 무난하게 잘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르블랑과 같은 암살자 픽을 잡았을 때에 발휘되는 순간적인 킬각 잡는 능력은 올해도 발군입니다. 다만 계속해서 지적되는 쓰로잉이나 짤리는 장면들이 개선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는 점은 향후 플옵 다전제를 생각했을때 여러모로 문제이긴 합니다.
신인들이 모인 팀 답게 경기 내용이 한 게임 안에서도 확 좋다가 갑자기 확 나빠졌다가 하는 식으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경향이 있고 운영이 섬세하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탑라이너인 오로메는 나머지 네 선수들에 비해 확실히 클래스가 떨어지는 느낌도 짙습니다. 하지만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팀이 스프링 초반부터 성적까지 챙기고 있다는 점에서 칭찬이 아깝지 않은 팀입니다. 서머에는 더 무서운 팀이 될 가능성이 높겠죠.
엑셀 이스포츠 (5승 5패)
약팀 판독기의 느낌이 강합니다. 6~7위 플옵 문턱에서 계속 경쟁은 하겠지만 그 위로 올라가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소위 이런 유형의 중위권 팀들에게 해당하는 '크랙이 없다'는 설명이 현재의 엑셀에게도 유효합니다.
엑셀의 에이스로 손꼽히던 캐드럴의 올 시즌 경기력이 지금까지는 좋게 봐도 평범한 정도의 수준이라, 상위권 팀들을 상대로 업셋을 만들어 낼 만한 동력은 부족해 보입니다. 사실 이번 샬케전 경기력을 보면 약팀들을 상대로 계속해서 판독기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도 살짝 의문이긴 합니다.
그 와중에 올 시즌 패트릭은 매우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라인전부터 한타에서의 활약까지 A급 원딜로서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고 있습니다. 영벅의 엑셀은 올 시즌 뿐만 아니라 다음 시즌까지 바라보고 있는 팀이고, 2년 계약으로 잡은 패트릭-토레의 봇듀오가 코어로 성장하느냐의 여부가 상당히 중요했는데, 올 시즌 패트릭의 활약 정도면 팀 리빌딩의 중요한 기둥은 잘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라 그 점은 희망적입니다.
익스펙트, 미키 두 명의 솔로 라이너들이 다른 팀들의 상위권 라이너들과 비교하면 현저히 격차가 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탑 라인이야 다른 팀들에도 적당히 1인분을 추구하는 선수들이 좀 있다고는 하지만, 미드의 경우 미키의 라인전 기량이 많이 떨어졌고 한두번씩 나오는 슈퍼플레이로 메꾸기에는 안정감이 부족합니다. 심지어 미드 오른같은 가자미 픽을 잘 수행해낼 수 있는 선수도 절대 아님이 지난 게임에서 바로 드러났죠.
아마 매드 라이언스와 남은 시즌 플옵 마지막 1자리 경쟁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 지금처럼 상위권 팀들에게는 여지없이 다 패하고 하위권 팀들에게만 승리를 따먹는 식으로는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아직 팀별로 8경기가 남아있고 격차가 좁은 상황이라 일곱 팀의 서열이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예상하기 힘듭니다.
6강 플레이오프라고는 하지만, 새로 개정된 플레이오프 규정상 4위 안으로 시즌을 마무리하는것이 유리한 시즌입니다. 아마 막판까지 순위 경쟁을 보는 재미가 있는 시즌이 될 것 같네요.
시즌 전에는 4강 구도가 예상되었는데, 수준에 미달하는 약팀들을 제외하면 순위표가 그럭저럭 잘 비벼지네요. 외롭게 독주하고 있는 C9 정도가 조금 특별한 예외일 뿐 다른 지역들의 상황도 거의 비슷한 것 같고요.
이번 시즌 LEC에 대해서는 상향평준화라는 의견도 있고, 작년과 비슷한 리그 수준인데 G2가 더 못해졌을 뿐이라는 냉소적인 의견도 있는데, 리그의 수준을 떠나서 구도 자체는 상당히 재미있게 전개되고 있기는 합니다.
'과연 이번에는 G2, 프나틱 외의 팀이 우승을 차지할 수 있을까'가 두 팀의 팬들을 제외한 많은 팬들의 열망인데, 그나마 두 팀이 아직 덜 완성되어 보이는 이번 스프링이 적기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드네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서머 막바지가 되고 롤드컵이 다가오는 시점이 되면 결국에는 G2와 프나틱이 왕좌를 다투는 구도가 될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