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3/10/30 01:24:12
Name antif
Subject 린킨 파크 콘서트에서 이재훈 선수를 봤습니다.
오늘 린킨 파크 콘서트를 갔다 왔습니다.
저는 사실 음악을 즐겨 듣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린킨 파크의 음악도 잘 알지 못하는데
요즘 더불어 우울한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가 같이 스트레스를 풀어보자고 하여
나들이를 했습니다.

오랜만에 가보는 콘서트라 음악 자체를 떠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다만 처음에 꽤 오랜 시간동안 아무런 고지도 없이 공연이 지연되었던 것과
제가 잘 몰라서인지는 몰라도 소리가 너무 뭉개져서
노래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계속 서 있었던지라 지친 발걸음으로
올림픽 공원을 막 빠져나올 때에 앞에 한 낯익은 얼굴이 지나갔습니다.
순간 저는 친구에게 프로게이머다라고 속삭였습니다.
스타를 잘 모르는 친구는 누구냐고 물었고 저는 이재훈이라는 선수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친구가 그러면 사인받아야지 하는 겁니다.

사인이라. 제 흐릿한 기억으로 돌이켜 보건대
제 인생에 누군가에게 사인이라는 것을 받으려 한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스포츠나 문예 등을 좋아하는 편이라 마음 속으로 응원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았으나
사인을 갖고 싶다고 느끼기에는 제가 너무 뻣뻣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친구의 말에 망설이면서도 뭔가 솔깃해지는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막 사인받을 것을 내놓아보라는 친구 말에 가방을 뒤졌습니다만
오늘의 목적에 충실하게 가방에 든 거라고는 지하철에서 읽다만 신문 뿐이었습니다.
대학원생으로 논문을 준비하는데 잘 안되고 있어서
요즈음 괜히 가방에 책과 논문만 잔뜩 넣고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공부 안하면서 점점 기운을 잃고 있던 터라
과감히 가방에서 모든 문서를 빼고 필통까지 빼고는
겉옷 하나만 가방에 쑤셔 넣고 올림픽 공원을 갔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교수가 시킨 일을 밤새 해야 해서 친구가 지니고 있던 문서를 이면지로 쓰기로 하고
어딘가 달려 있던 볼펜 한자루 끄집어 내어 여전히 쭈빗하고 있는 저를 뒤로 한 채
친구가 이재훈 선수에게 달려 갔습니다.
마침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던 참인데,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과 특유의 무덤덤한 동작으로
이재훈 선수가 사인을 하기 시작했고 어느덧 우리는 횡단보도 중간에 우뚝 서 있었습니다.
이재훈 선수 일행 분들의 일단 횡단보도는 건너고 하라는 말에 후다닥 길을 건넜고
이름이 어떻게 되냐고 친절하게 묻는 이재훈 선수에게 친구가 제 이름을 답해서
결국 오늘 날짜와 제 이름이 적혀있는 이재훈 선수의 사인을 얻고야 말았습니다.

뭔가 이재훈 선수에게 응원의 한마디라도 하고 싶었으나
여전히 뭔가 어색함 속에 싸여 있던 저는
'린킨 파크 공연 보러 오셨어요?'와 '좋은 성적 거두세요.'라고만
어정쩡하게 말하고는 이재훈 선수와 일행 분들을 지나쳐갔습니다.

원래 잠실 역까지 걸어간 후 지하철 2호선을 탈 생각이었는데
뭔가 므흣한 기분에,
아마도 20여년 전 어렵게 얻은 100원짜리를 꼬옥 쥐고 집을 나설 때와 같은 기분으로,
친구와 마냥 들떠서 마구 수다를 떨며 걸었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떄는 잠실 역과는 한없이 멀어져 있더군요.
하지만 왔던 길을 돌아서 걸어가면서도 어느새 지친 발걸음이 꽤나 가볍게 느껴지더군요.

이재훈 선수. 방송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왠지 호감이 가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후 그의 플레이 스타일을 알게 되면서 더욱 그런 느낌이 들더군요.
그는 왠지 아다치 미츠루 만화의 남자 주인공이 갖는 매력 같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에서 주인공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노력이 약한 인물입니다.
이를 악물고 바라는 바를 쟁취하려고 하기보다는 스스로 한발 비켜서곤 하지요.
그것이 본인의 힘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로 주위 사람의 질책의 대상이 되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적나라하게 추구하며 잘 사는 사람이 당연한 현대 사회에서
왠지 반가운 인물로 아다치 미츠루 만화의 인기를 지탱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물론 승부의 세계에서 먼저 포기하는 것은 패배일 뿐이며
아다치 미츠루 만화의 주인공은 서서히 자기가 소중히 하는 것 앞에서
먼저 물러서지 않는 자세를 배워나갑니다.
부디 이재훈 선수가 자신의 힘을 다 보여주게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참고로 만화에서 주인공을 분발하게 하는 것은 좋아하는 여자의 존재입니다만.)

pgr21에 처음 쓰는 글인데 길어졌군요. 결국 집에 오는 길에 술 한 잔 했거든요.
자꾸 원서 표지에 사인을 받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드는구요. 그럼, 이만.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DeGerneraionX
03/10/30 01:33
수정 아이콘
아~ 가고 싶었는데...지방의 설움...지방에서 제대로 된 공연 언제 볼수 있으려나...30년후?
보드카 레몬
03/10/30 01:35
수정 아이콘
악! 저도 오늘 린킨 공연 갔었는데 이재훈 선수를 보셨습니까? 저도 락을 좋아하는 일부 프로게이머들-최연성 선수나 이재훈 선수^^-이 왔을까 싶어 주위를 두리번 거렸지만 아무도 못 뵈었습니다. 저도 이재훈 선수를 참 좋아하는데...ㅠㅠ antif님, 정말 부럽습니다. 부러워요!!!!!! 저라면, 제 린킨 투어 티셔츠에 받았을 겁니다. >,<
참, 공연이 지체된 것은 피아 공연 이후 사운드 체크와 드럼 셋팅을 바꾸는라 늦어진 것입니다. 원래 1시간씩 걸려서 잡는게 사운드 체크인데 오프닝 밴드가 있었으니까라며 참았답니다. 피아 공연도 나름대로 좋았으니까요. ㅠㅠ 그리고 체스터 목소리가 하나도 안 들려서 무척 어이가 없긴 했어요. 여린 체스터의 목소리가 잘 안 들렸지요! 저도 스탠딩 공연 가서 린킨 노래에 맞춰 스트레스 풀고 왔습니다. 슬랭하는 분들에 치이며 제 나이를 실감했지만요.^-^a
기영상
03/10/30 01:37
수정 아이콘
이재훈 선수가 더 힘이 되셨다니 이재훈선수가 이글 보시면 뿌듯하시겠어요^^
쉬면보
03/10/30 01:49
수정 아이콘
제가 이재훈선수를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하시군요. ^^
白い死神
03/10/30 02:12
수정 아이콘
팀리그 등등에서 그가 보여주는 실력은 진짜 강민,박정석,박용욱(제가 개인적으로 꼽는 현재 3대토스입니다)등과 어깨를 견줄만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경기에서 항상 제실력을 못보여주며 절 아쉽게 하죠. 하지만 그의 플레이를 보다보면 그의 경기처럼 어느샌가 이재훈선수가 좋아지죠^^
03/10/30 03:15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이재훈 선수에 관한 느낌은..
누구와 붙더라도 이길 것 같은 선수입니다만 누구와 붙더라도 승리를 확신할 수는 없는 선수라는 것..
기억나지 않는 어떤 만화에서 정말 강한데 힘을 쓰는 순간이 아주 짧은 캐릭터가 있었는데..이재훈 선수의 이미지가 제겐 그렇습니다..
진가를 발휘할때는 누구보다 강하다. 그러나 그 진가란, 어쩜 진가기 때문에 흔히 볼 수 없다..^^
03/10/30 04:05
수정 아이콘
명경기 제조기라고 어떤해설분이 말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말 잘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기면 더 좋구여...^^
03/10/30 05:42
수정 아이콘
주인공을 분발하는 것이 여자라..
재훈님 여자친구분도 재훈선수 좀 분발하게 만드실라나...-_-;;;
03/10/30 08:50
수정 아이콘
역시 히까리가 있어야... 히까리 생일날 하는 게임에선 절대 질 수 없다! 생일 선물은 게임에서 사용했던 마우스. 생각해보니 재미있네요.
신촌졸라맨
03/10/30 09:29
수정 아이콘
아 이재훈선수가 온겜넷 결승에 올라가는걸 보고 싶습니다요
이노시톨
03/10/30 09:58
수정 아이콘
저는 어느 게시판에서 본듯한....구영탄 같은 느낌이 ^^
MastaOfMyself
03/10/30 12:30
수정 아이콘
저두 이재훈 좋아합니다.(생활사투리)
03/10/30 12:36
수정 아이콘
사운드 체킹하는 시간이 좀 루즈하긴 했지만, 오프닝과 그것을 포함해서 전체적인 시간이 계획된 거라 공연시간 지체라고 보긴 좀 어렵지 않나 싶네요.
참! 저는 감사하게도(?) 이재훈 선수 뒤쪽에 자리하게 되어서 LinkinPark는 물론이거니와 이재훈 선수도 감상;;했는데, 음 아주 훌륭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정말 잊지 못할 공연이 될 것 같네요. ^^
그러니까 결론은, 이재훈 선수 화이팅!!!
BeHappY!
03/10/30 15:40
수정 아이콘
이재훈 선수 곰돌이 Pooh 닮았어요
리오스
03/10/30 16:46
수정 아이콘
아 저도 공연갔다왔습니다 ^^; pgr회원분들, 재훈님도 보러오셨었군요!!
리오스
03/10/30 16:48
수정 아이콘
아 참, 마지막 무대에 올라가신분이 '스크림'이라고 외쳤던게 맞나요? ^^;
03/10/30 18:03
수정 아이콘
재훈동에 글 링크 좀 걸겠습니다 ^_^;
03/10/30 18:39
수정 아이콘
정말 재밌으셨겠네요~ 린킨파크의 라이브에 재훈선수까지.. 부럽습니다! 그런데 재훈선수가 린킨파크 라이브를 보시며 어떻게 행동하셨을지 궁금하네요. 곰돌이 이미지의 재훈선수가 락음악을 들으시며 몸을 흔드시거나 소리지르시는게 상상이 안가서요;
보드카 레몬
03/10/31 00:21
수정 아이콘
앗! what?님도 부럽습니다. 재훈선수는 스탠딩이 아니라 좌석에 앉으셨나 보네요. 저도 재훈선수가 어떻게 하셨을지 궁금하지만 사생활 보장을 위해 참아 보렵니다. 평상시 경기 모습이랑 연관해 보니 참으로 궁금하네요.^^;;
리오스님/ 무대에 올라갔던 분이 '스크림'이라고 외쳤습니다. 저도 그 단어를 듣고 마구 울부짖었지요.^^
03/10/31 01:45
수정 아이콘
보드카 레몬님/ 이재훈 선수는 스탠딩 맨 뒷구역 이었습니다. 가서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고;; 싶었는데, 공연 보시는데 방해될까봐 참았답니다. 공연 중 이재훈 선수의 행동은... 네, 참지요. ^^
아, 앞에 나가신 그 분은 스크림외에 아임레디~ 라는 명언을 남기셨죠. T_T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4555 오늘 NaDa vs Yellow 대결 기대만빵입니다. [12] kobi3573 03/10/30 3573
14553 내 전략이 정석이 된다면? [1] TheHavocWorld2286 03/10/30 2286
14552 린킨 파크 콘서트에서 이재훈 선수를 봤습니다. [20] antif5797 03/10/30 5797
14548 [잡담] 내가 스타리그를 보면서 하는 행동 [26] 햇빛이좋아4550 03/10/29 4550
14547 맵에 대한 엉뚱한 생각..^^ [15] 조포2221 03/10/29 2221
14544 itv개편에 따른 게임 방송 [16] relove4404 03/10/29 4404
14543 [테란]변형된 2팩 쪼이기 [7] 푸른보배2788 03/10/29 2788
14542 투 저그 이야기.. [2] Yang2622 03/10/29 2622
14540 바로크 토스 무섭네요-0-;; [16] 마왕펭귄™5301 03/10/29 5301
14539 [re] 디아블로 1.10 패치 tcp 경험담 [6] Teferry2516 03/10/29 2516
14538 성격 좋아보이는 프로게이머 [42] 50kg6964 03/10/29 6964
14537 1.10패치 변경사항 (출처:warcraftxp) [4] 두더지3313 03/10/29 3313
14536 패스트 다크 드랍 전략 [23] 이근혁3924 03/10/29 3924
14535 [잡담] 디아블로 1.10 패치! [22] TheMarineFan3964 03/10/29 3964
14534 NBA가 개막했습니다. 이 기쁨. [70] kobi2989 03/10/29 2989
14533 [잡담&요청]WCG [2] neo2366 03/10/29 2366
14532 Enter The Dragon을 봤습니다. [9] 마리양의모티3248 03/10/29 3248
14531 답답...하네요... [13] ElaN3993 03/10/28 3993
14530 [그림일기]옐로우의 원한을 갚아주마! [14] 막군5370 03/10/28 5370
14529 [듀얼이야기]다음 주...C조의 사정... [14] 왕성준5812 03/10/28 5812
14528 오늘. 그가 웃지 못했습니다. [36] 뒹구르르곰돌6330 03/10/28 6330
14527 드랍에 대한 생각... [18] DeGerneraionX4034 03/10/28 4034
14525 [연재픽션] 세동고 스타부 - 2편, 그리고 2.5편 [5] 막군1867 03/10/28 1867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